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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북망산 가는 길 2

title: 유벤댕댕도이치휠레2019.01.16 11:28조회 수 878추천 수 1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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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집안 공기가 미묘하게 뒤틀린 것 같았다.

거실을 걸어 나가는데 이유 없이 ‘저릿’ 하는 느낌이라던가, 어쩐일 인지 공기 밀도가 평소와 다르게 느껴진다거나.

몸살이 오는 것쯤으로 치부하고 있다가 문득, 언젠가 한번 경험한 적이 있는 감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 방문했던 선배형 방, 옥탑방 주제에 방이 세 개나 있던 그 집. 한구석 있던 방문을 열며 선배는 말했다. “이 방은 여자 귀신 두 명이 사는 방인데” 하하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며 방으로 들어갔지만, 방에 발을 디디자마자 바로 알 수 있었다. 그 말이 진담 이었다는 걸.

기묘하게 뒤틀린 것 같은 시각감, 거실과 완연히 다른 공기 밀도감, 들어가자 순식간에 축축해져 버린 것 같은 대기.

그 선배는 틀렸다.

방에는 여자귀신 두 명‘만’이 아니었다.

 

내 집 공기로 선배 집에서 느껴봤던 기분을 받게 되다니.

처음 그녀는 새로운 집에 대한 탐색전을 펼쳤나 보다. 삼사일간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나 또한, 뭔가 기분이 이상하긴 한데 꼬집어 정체를 말할 수 없는 불쾌감만 가졌다.

일주일여가 가까이 되자 그녀는 정체를 드러내고 싶었나 보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킥킥하는 여자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웃음소리는 기이하게 멀었다.

그게 아니라면

 

기이하게 가깝던지.

 

처음 그 소리가 들렸을 때 ‘옆집 소리가 넘어오나?’ 생각을 했다. 방음이 꽤나 잘돼 있는 아파트라고 생각 했는데, 여자 웃음소리조차 막아 내지 못한다니. 일견 실소가 났다.

 

또, 킥킥 소리가 나자.

그게 아니다.

옆집이라고 다음에는 소리가 너무 가깝다. 수마가 몰려오던 머릿속에 얼음물을 끼얹은 듯 확 얼어붙었다.

이상하리만큼 가깝다.

 

공포감에 몸이 얼어붙었다. 눈을 댕그랗게 뜨고 방을 쳐다보고 있자니 십분 이십분의 시간이 흘러갔다. 이건 뭔가 이상하다. 눈을 한번 감았다 뜨니 십 분이, 또 다시 한번 감았다 뜨니 십 분이 훌쩍 지나가 버린 느낌이다.

 

킥킥,

온 몸에 피가 거꾸로 역류 했다. 소리 발신지는

침대 밑 이었다.

 

벌떡 일어나 뛰어 다니며 온 집에 불을 켰다.

 

그녀는 정체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싶어 했다. 그렇다고 정면으로 모습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소름끼치는 웃음소리만으로 괴롭혀 오던 그녀는 어느 날 정체를 드러냈다.

 

어느 날 머리를 감고 화장실과 드레스 룸의 불을 끄고 침대 끝자락에 앉아 있는데, 드레스 룸 안에 분명 누군가 있었다. 드레스 룸 시공간이 기묘하게 뒤틀려 보이기 시작 했다.

저기가 갑자기 왜 저래? 생각하며 뚫어져라 보고 있다가 드레스 룸 문 사이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빨간 눈과 눈이 마주쳤다.

국도에 서있던 그녀가 나를 따라 오다니. 상상 할 수도 없었다.

그 날 차에서 내려 그 자리를 맴돌았다거나, 무엇을 주워 온다거나 만지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나를 따라 온 거지?

 

가끔 그녀를 나를 만졌다.

힘들게 힘들게 잠이 들라 치면, 아주 차갑고 축축한 누군가 손이 내 발목을 스윽 하고.

 

한참을 시달리다 고양이를 데려 오기도 했다. 고양이가 귀신으로부터 나를 지켜준다거나 귀신을 쫒아줄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만 작은 생명체 하나라도 더 있으면 약간 안심이 되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품에 안고 왔다. 자그마한 페르시안 친칠라는 내 품에 안겨 고물거리며 냐옹, 귀여운 애교를 부렸다.

 

집에 온 첫날부터 녀석은 하악질을 했다. 어느 순간에 거실 허공에 대고, 어느 순간에 화장실에 대고, 어느 순간에 침대 밑으로. 하악질을 할때마다 등과 꼬리를 곧추세우고 전력을 다해 하악질을 해대던 녀석은 어느날 퇴근하고 집에 오니 사라져 있었다.

도대체 17층, 온 창문이 꽁꽁 닫혀 있는 집에서 녀석이 어떻게 탈출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온 집안과 아파트 단지를 새벽 까지 이잡듯 찾아 헤맸지만 녀석의 흔적은 찾을수 없었다.

 


 

 

 

4.

 

영범 형은 하루가 다르게 말라 갔다. 얼굴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살가죽이 말라 뼈에 붙어 가는 모습은 췌장암에 걸려 세상을 떠났던 고모부 모습과 닮아 있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서서히 형의 신체에 영향을 끼칠수록 형은 삶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

 

수금이 안 된 거래처를 돌며 악다구니를 써 악착같이 받아 냈고 (수금이 안돼도 술 한 잔하고 허허 거리며 돌아오던 과거 모습과는 완연히 달랐다) 육개월후 공사일도 수주를 했다.

 

“형, 이제 좀 집에서 쉬는 게 어때요?”

 

나는 그렇게 말했다.

“쉬면 어떡하냐?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지” 형은 그렇게 말하며 사람 좋게 웃었다.

하긴, 암선고를 받기 몇 개월 전만 해도 이제 사는 게 좀 필 것 같다. 나도 노년에는 팔자피고 살아봐야 하지 않겠냐며 말했던 시기였다.

 

“내가 있잖냐, 너도 알겠지만 내 삶이 얼마나 스펙타클 했냐. 우리 애들 좋은 옷 못 입히고 해외여행 한번 못시키고 이날 이때까지 살다, 이제 좀 햇볕이 드나 싶었는데 이렇게 됐네. 다른 건 몰라도 내 갈 때까지 신세진 사람들한테 해줄 수 있는 만큼 하고 가야지.


나는 그때 혹시 형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어이없는 생각을 했다. 이미 얼굴로 길게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를 보았으면서 말이다.

 

한 달 후 형의 사망통보를 받았을 때 나는 앓아누워 있었다.

이유 없이 몸에 열이 나기 시작하더니 온 전신이 아팠다. 불청객의 여자귀신 때문에 시시때때로 시달렸기 때문에 체력이 바닥을 치고 있을 때 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는 적극적으로 어필하기 시작 했다. 샤워를 하며 머리를 감다 눈을 뜨면 앞에서 웃고 있었고, 잠을 자다 침대에서 눈을 뜨면 코앞에 둥둥 뜬 채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날이 잦았다.

그날은 몸이 너무 아파 회사에 통보를 하고 집에 누워 있던 날 이었다.

 

정확히 오전 열시에 카톡으로 문자가 왔다.

 

“**야 그동안 너 한테도 신세 많이 졌다. 신세 갚지도 못하고 가네. 미안하다.”

 

나는 잠들어 있느라 그 톡을 못 봤다. 잠이 깬건 열두 시경 친구 녀석 전화 소리 때문 이었다.

 

“형 갔다.” 녀석은 짧게 말했다. 아, 그래. 말을 하고 움직이려니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정말 거짓말처럼 꼼짝할 수 없었다. 온몸은 신열로 덮여 있었고 목이 아파 마른침조차 삼키지 못했다. 카톡에 미확인 메시지가 떠 있었는데 그 메시지는 영범 형이 보낸 문자 이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장례식장에 얼굴을 비추지 못했다. 훗날 친구 녀석들은 영범형 장례식장에 내가 나타나지 않은게 최대 이슈 였다고 한다. 종범이 아버지 가셨을 때도 모든 절차는 내가 다 처리 했었으니까.

 

 

 

5.

 

아픈 건 별개 문제였다. 즈음에 나는 현실적인 시공간이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 땀을 흘리며 끙끙 거리다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아파트앞 에 서 있었다.

 

쨍쨍 맑은 햇살에, 적당히 기분 좋은 산들 바람도.

 

나온 김에 마실거나 좀 사가야 걷다. 마트에 가서 물을 집어 들고 돈을 치렀는데,

다시 나는 침대에 있다.

꿈 이었나? 하는 순간 다시 아파트 앞에 서있다. 꿈과 현실의 나선형 경계를 지나는데 어느 지점이 꿈이고 어느 지점이 현실인지 도무지 분간되지 않았다.

목이 말라 부엌으로 나가면 꿈에 샀던 그 물이 까만 비닐봉지 안에 든 채 식탁에 놓여 있었다.

너무 두려운 기분에 눈물을 흘렸는데 아파트 앞을 엉엉 울며 걷다 정신을 차리면 침대에서 엉엉 울고 있었고 도대체 어디가 어디냐 라는 심정에 정신을 차려보면 계속 아파트앞 도로를 걷고 있었다. 미궁에 빠진 현실에 괴로워 할수록 침대 밑 여자 웃음소리가 크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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