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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남기는 메세지

title: 아이돌의젖홍길동2018.12.22 10:15조회 수 618추천 수 1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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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처음 만난 건 네가 다섯 살일 때였지.
너는 가족들이 있는 미니밴을 떠났고, 호기심을 가득 담은 너의 검은 눈동자, 온 방향으로 흩어진 모랫빛 머릿결을 본 그 순간 나는 다시 살아난 기분이 들었어.
처음엔 이 낡은 농가에 생긴 변화가 낯설었지.
나는 네게 겁을 주려고, 나무 뒤에서 네게 돌멩이를 던지고 위협적으로 나뭇가지를 흔들었어.
하지만 넌 신경도 쓰지 않고 강가의 진흙에서 놀고, 느린 강물 속에서 헤엄쳤지.
네 엄마는 네가 물고기처럼 헤엄쳤다고 하지만, 난 백조에 가까웠다고 생각해.
널 좋아하게 되면서, 나는 언제부턴가 네 방문만을 기다리게 됐어.
물론 좋은 기억만 있었던 건 아니야.
어느 겨울, 너는 꽁꽁 언 강에서 미끄러져 다리가 부러졌지.

 

그때 난 정말로 너를 일으켜 언덕 위의 그 낡은 농가로 데려다주고 싶었어.
하지만 그 순간에도 난 간섭해서도, 내게 정해진 영역을 벗어나서도 안된다는 걸 알고있었지.

 

네 엄마가 널 발견할 때까지 너는 몇 시간동안 소리를 질렀고, 난 그걸 지켜볼 수 밖에 없었어.
한동안은 네가 이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온 세상에 봄이 왔을 때, 깁스를 벗어던진 네가 돌아왔어.
걸을 땐 조금 불안하지만, 강가에서 다시 돌을 줍는 네 모습을 보고 얼마나 안심했는지 몰라.
그날 넌 좀 재밌어 보이는 걸 찾았지.

네게 그건 이상하게 생긴 돌 조각이었지만, 나에게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물건이었어.
그건 네가 처음으로 발견한 내 뼈였으니까.

 

다시 여름이 됐을 때, 난 강가에서 몇 시간이고 물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널 발견했어.
  너는 고민에 잠긴 것 같았고, 나도 그랬지.
널 바라보면 슬퍼서 마음이 아파졌어.
그리고 가을이 됐을 때 난 널 보는 걸 그만뒀어.
거의 한 달 동안이나.
네가 다시 돌아왔을 땐, 뭔가가 바뀌어 있었어.
곱슬머리는 잘려 사라지고, 넌 풀을 먹인 교복을 입고 있었지.
그리고 네 오른쪽 눈은 멍이 들어 있었어.

 

네가 농가와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난 외톨이가 됐어.
가끔 네가 주운 내 손가락 뼈를 생각하면서, 네가 안전하다는 걸 알고 웃었어.
마지막으로 눈이 왔던 어느 늦은 겨울 날, 스케이트 한 켤레를 든 너는 종종걸음으로 강변에 내려왔지.
얼음을 가로지르며 8자로 자취를 남기면서, 너는 추위에 온기를 빼앗기는 걸 느꼈어.

그때 넌 잘 몰랐지, 네가 나에게 온기를 돌려주고 있다는 걸 말야.

 

그 일은 삼월에 일어났어.
네가 강가에 다른 남자아이를 데려온 날.
나는 네가 특별한 장소를 공유할 수 있는, 확실하게 신뢰하는 친구가 생긴 거라고 생각했어.
내 생각은 거의 맞았지.
친구라는 부분 빼고 말야.
그는 그 이상의 존재였어.
난 알게됐어.
네가 오래된 플라타너스 곁에서 키스할때 네 눈이 얼마나 반짝이는지, 네 미소가 얼마나 환해질 수 있는지 말이야.
내 마음은 솟구쳐 올랐어.
모든 것들은 떨어지기 전에 솟구치는 법이지.

 

네가 그와 키스한걸 네 아버지가 알게 됐을 때, 네가 자기가 생각했던 그런 네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을 때, 그는 널 때렸어.
  너는 강가로 뛰어와서, 주먹으로 아무거나 내리쳤지.
네 코는 피투성이였어.
그리고 그 피는 낙엽에 떨어졌지.

 

너는 남자아이를 사랑한 소년이었어.
그리고 그게 남들이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었지.

어느 여름 아침 네가 강가에 왔을 때, 행복해서가 아니라는 걸 알았어.
두려움과 슬픔, 절망을 내비치고 있었으니까.
너는 손을 떨며, 머릿속은 혼란스러운 채 강가에 서있었지.
그리고 처음으로, 난 너를 만졌어.

어깨에 가볍게 손을 댔을 뿐이지만 넌 나를 찾아 주변을 둘러봤지.
나를 통과해 바라보았지만.
너와 나는 닮았어.
  사람들은 우리를 통과해 버리니까.

 

6년 후, 강에 발을 담그고 거친 바위 표면을 뛰어다니는 널 봤어.
그때의 접촉 이후로 넌 많이 성장했지.
너 자신을 사랑하고, 살기위해 필요한 일들을 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말이야.
그게 진정한 네 모습이 아닐지라도.
넌 이제 내 뼈들을 많이 찾아냈고, 고맙게도 그것들이 뭔지도 모르면서 잘 보관해줬어.

하지만 네가 내 부서진 정강이 조각을 찾아낸 그 날, 넌 이게 단순한 돌 조각이 아니란 걸 알게됐지.
넌 그걸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떠났어.

 

그 삽은 네게는 무거웠을거야.
넌 네가 자라온 장소에 놀랐지.
웃고, 울고, 살아가고 사랑했던.
그리고 넌 그곳을 갈아엎었어.

 

내 남은 뼈들을 찾기 전에 너는 강둑을 둘로 나눴어.
대략 1세기 전, 사랑하지 말아야 할 사람을 사랑해 살해당했을 때 내가 버려진 얕은 무덤에서.
  네가 배척당하고, 상처받은 것 처럼, 나도 그랬어.

어쨌든, 네가 내 뼈들을 찾아 조심스럽게 챙겨줬을 때, 난 너와 함께 한 내 시간들이 거의 끝나간다는 걸 깨달았어.
그리고 난 지금까지 슬펐던 만큼 행복해졌어.
나는 떠났지만, 널 절대 잊지 않았지.

 

몇 년 마다 난 널 확인해보고 있어.
넌 이제 좀 나이가 들어 50대가 됐지.
넌 그때 강변에서 키스했던 소년과 결혼했고, 네 눈동자는 아직도 그가 말할 때마다 빛나.
네게는 너의 사랑스러운 영혼과 매력적인 재치를 꼭 닮은 두 딸과 한 아들이 있지.
매년, 나는 너와 보내는 시간을 점점 줄여나가고 있고, 네게 있어 나와 함께했던 기억은 이제 흐릿하다는 걸 알아.
하지만 오늘 난 네가 너의 아이들에게 내 이야기를 해주는 걸 들었어.
  내가 언제나 그곳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것과, 내가 얼마나 널 바라보고 있었는지, 그리고 내가 쉴 수 있도록 내 뼈를 안치할 장소를 어떻게 알 수 있었는지.

 

그날 밤 난 강으로 돌아갔어.
난 오래된 플라타너스 둥치에 앉아, 손가락으로 진흙에 8자 모양을 그렸어.
이게 마지막이라는 걸 알았지.
언젠가 늙고 지친 네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둘러쌓인 채 이 세상을 뒤로 할 준비를 마칠 때 까지 말이야.

그리고 아마, 만약일 뿐이지만, 우린 그 곳에서 만날 수 있을거야.
나의 죽음과 너의 삶이 아름답게 얽혀있는 그 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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