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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대화

title: 아이돌의젖홍길동2018.12.22 10:17조회 수 1046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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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학생 때 겪은 일이다. 

당시에는 그리 무섭지 않았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이상한 일이었달까. 

중학교 2학년 2학기, 급성 맹장염으로 응급실에 실려갔다. 

 

딱 중간고사 직전이었기에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새벽녘에 복통을 느껴, 그대로 구급차에 실려갔다. 

바로 입원하고 수술을 준비했지. 

 

수술은 다음날 일정이 잡혔기에, 나는 진통제를 먹고 병실에 누워있었다. 

병실은 6인실로 꽤 컸지만, 입원환자는 나와 옆에 있는 사람 뿐이었다. 

저녁이 되서 일을 마친 어머니가 갈아입을 옷이랑 이런저런 것들을 가지고 문병을 오셨다. 

 

한동안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예순 정도 되어보이는 할머니가 병실에 들어오셨다. 

아마 옆에 있는 사람을 병문안하러 온 듯 했다. 

어머니는 [지금부터 일주일 정도 신세질 것 같습니다.] 하고 인사를 건네셨다. 

 

할머니도 [젊으니까 금새 나을 거에요. 우리야말로 잘 부탁합니다.] 라고 미소지어 주셨다. 

분위기가 참 좋은 분이었다. 

할머니는 옆 사람 침대 커튼을 열고 들어가, 1시간 가량 이야기하더니 돌아가셨다. 

 

곧 면회시간이 끝나 어머니도 집으로 돌아가셨다. 

그날 밤, 나는 다음날 수술 받을 생각에 걱정이 되서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러자 뒤척이는 소리를 들었는지, 옆 침대에서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이야, 이 병실에 누가 입원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네. 여기서 몇달간 혼자 있어서 정말 심심했다네. 왜 입원한건가?} 

소리를 들어보니 아무래도 아까 할머니의 부군 되시는 분 같았다. 

상냥한 목소리였다. 

 

[맹장염이에요. 새벽에 갑자기 배가 아파져서... 곧 시험인데 큰일났지 뭐에요.] 

나는 학교 이야기와 동아리 이야기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어머니가 집에 가셔서 불안했기에, 더욱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도 있고,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너무나 상냥했기에 이야기를 술술 털어놓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웃으면서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젊은 건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거야. 큰 병이 아니라서 다행이구나.] 

나는 실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할아버지의 입원 이유를 여쭤봤다. 

 

[이제 아픈 곳이 너무 많아서 어디가 안 좋다고 말하기도 힘들구나. 아마 얼마 못 버티겠지만 나는 괜찮아. 아마 퇴원하지 못하고 이대로 여기서 떠나겠지만 말이야.] 

온몸에 병이 퍼져있는 듯 했고, 오래 이야기하고 있으니 확실히 괴로운 기색이 목소리에서 묻어나셨다. 

나는 갑자기 슬퍼져 말했다. 

 

[그렇지 않아요. 저는 먼저 퇴원하겠지만 병문안도 올게요. 언젠가 분명 건강해지셔서 퇴원하실거에요.] 

스스로 아파보니 마음이 약해진다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할아버지가 힘을 내셨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할아버지는 웃으면서 내게 고맙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수술을 받았다. 

전신마취였기에 그 후 반나절 동안 잠에 빠져있었다. 

눈을 뜨니 이미 저녁이었고, 침대 옆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앉아계셨다. 

 

앞으로 1주일 정도 입원한 후, 경과가 좋으면 퇴원할 거라고 하셨다. 

그런데 옆 침대에 할아버지가 안 계셨다. 

다른 병실로 옮기셨나 싶어, 퇴원하는 날 인사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경과는 예상보다 순조로워, 닷새 정도 있다 퇴원하게 되었다. 

내가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할머니가 병실로 들어오셨다. 

나는 할아버지는 어디로 병실을 옮기셨나 물어보려 했다. 

 

하지만 눈물이 그렁그렁한 할머니의 눈을 보고 당황했다. 

할머니는 내게 편지를 건네주셨다. 

[그 사람이 편지를 썼어요. 건네주는 게 늦어져서 미안해요.] 

 

거기에는 "마지막 밤, 혼자가 아니라서 즐거웠네. 고마워. 부디 건강하게 살아주게나." 라고 적혀있었다. 

약간 삐뚤빼뚤한 글씨로. 

할아버지는 내가 수술을 받고 있던 도중,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지셔서 그대로 숨을 거두셨던 것이다. 

 

나는 울면서 할머니에게 말씀드렸다. 

[저도 그날 밤 할아버지와 이야기할 수 있어서 안심할 수 있었어요. 불안했지만 할아버지는 정말 상냥하게 이야기해 주셨으니까요.] 

그러자 할머니는 이상하다는 듯한 얼굴을 하셨다. 

 

할아버지는 목에 종양이 생겨 수술을 하다 성대를 다쳐, 이야기는 커녕 소리조차 못 내는 상태였다는 것이었다. 

마지막 편지는 죽기 전날 밤, 스스로 임종이 가깝다는 걸 느끼고 썼을 거라는데... 

지금도 나는 그날 밤 할아버지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곤 한다. 

 

그건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기묘하다고 생각하지만, 할아버지의 상냥한 목소리는 평생 잊지 않을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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