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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뫼비우스의 군생활

title: 다이아10개나는굿이다2015.06.02 10:25조회 수 1308추천 수 1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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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초 겨울 무렵 한동안 자동차 서비스 센터에서 일을 배우다 입대를 했던 때였다. 

당시 나는 맞후임과 1년 넘게 차이 나는 한마디로 제대로 꼬인 군번이었다. 

덕분에 365일 걸레만 빨다보니 주부습진이 걸릴 정도였다. 


우리 부대는 시내에서 산속으로 1시간은 차를 타고 들어와야 하는 영외부대였다. 

부대는 입구에서 부대 건물로 연결된 길쭉한 S자 도로가 보이고 도로 좌측엔 PX와 식당 

우측엔 자그마한 연병장이 있었으며 연병장 중간에 사열대, 그리고 사열대 뒤에 3층짜리 부대 건물이 있었다. 

다른 부대에 비해선 굉장히 작은 부대였다. 


그러나 워낙 산속이다 보니 

여름이면 산 깊숙이에서만 볼 수 있는 별의별 잡초가 기어 올라오고 

겨울이면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극한의 추위가 찾아오는 지옥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맘에 안 들었던 점은 산지다보니 작업 할 곳 투성이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중대 막내였던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선임들과 작업을 나갔었는데 꼬인 군번 덕에 

주로 작업준비, 작업보조, 뒷정리와 같이 시덥잖지만 굉장히 힘든 일만 맡았다. 

그리고 눈치가 없었던 탓인지 매번 선임들에게 욕과 갈굼을 먹고 심할 때는 폭력을 당하기도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나는 소위 폐급이라고 불리던 병사였다. 


그렇게 바보 취급을 받던 당시 내겐 같은 소대이자 같이 작업을 나가던 선임, 일병 A가 있었다. 

내게 밥 먹듯이 폭언을 하던 다른 선임들과는 달리 그는 나를 항상 살갑게 대해주었다. 

게다가 A는 우리 소대 안에서 소위 S급이라고 불릴 정도로 군 생활을 잘하는 선임이었다. 

그렇게 뛰어난 선임이 날 챙겨준다는 사실은 군생활에 큰 보탬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A 선임을 포함한 다른 몇 명의 선임들과 함께 작업을 하던 중 

흡연하고 싶다는 선임들 덕분에 잠시 쉬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비 흡연자인 우리 둘은 다른 선임들이 담배를 피러 간 동안 그저 풀 위에 앉아 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선임 A가 다짜고짜 이상한 이야길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제 슬슬 말할 때가 된 것 같네.” 

“무슨 말 말씀이십니까?” 

“사실 말야, 내 군생활 이번이 10번째다.” 

“10번 말씀이십니까..? 죄송한데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니까 이 ** 같은 군생활을 10번째 하고 있다고” 

“아 그렇습니까..? 슬프실 것 같습니다” 

“새끼 또 영혼 없이 말하는거 봐. 지금 나 진지해 임마” 

“죄송합니다. 장난이신 줄 알았습니다.” 

“우선 알아둬라. 근무 때 더 얘기해줄테니까” 


선임 A가 처음 그 얘기를 꺼냈을 때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다. 

군 생활이 10번째라는 건 현재 20년 가까이 군복무를 하고 있다는 건데, 

그의 말대로라면 20대 중반이었던 그가 5살 때 입대를 했다는 게 된다. 

말도 안되는 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저 별난 장난이겠지 라고만 생각했다. 

오히려 갈굼보다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그 일을 잊은 며칠 후 나는 그와 함께 야간 근무를 서게 되었다. 

초소는 새벽에만 느낄 수 있는 고요함 속에서 귀뚜라미 소리와 잔잔한 바람소리만 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그 고요함을 깨뜨렸다. 

“야. 엊그제 내가 한 얘기 기억 나지?” 

“어떤 얘기 말씀이십니까?” 

“내가 이 짓 10번째 하고 있다는 얘기.” 

“아.. 혹시 장난치셨던 거 말씀이십니까?” 

“무슨 벌써 기억이 안나? 하긴 매번 그랬으니까” 


이상하게도 그는 내게 얘기를 꺼낸 게 마치 처음이 아니라는 듯 이야기했다. 

또한 너무나 진지한 태도였기에 이번엔 장난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A 일병님. 장난치시는 게 아니라면 지금 무슨 말씀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선 믿고 안 믿고는 너한테 맡길 테니까 한번 들어봐.” 


“난 사실 이 군 생활을 10번째 되풀이 하고 있어. 

그니까 여태까지 훈련소부터 전역 때까지 군 생활을 9번이나 반복했다 이거야. 

연수로 따지면 어느덧 20년이지. **..” 


“물론 지금 속으로 코웃음 칠 수도 있어. 근데 나는 얼마나 어이없었겠냐? 

나도 내가 왜 이 **을 계속 하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처음 되풀이 됐을 때가 기억나네. 그땐 그냥 꿈인 줄 알았어. 존나 *같은 꿈. 

근데 꿈이 아니었지. 그래서 3번째, 4번째 되풀이 됐을 땐 눈에 뵈는 게 없어지더라. 

그래서 부대에서 나가려고 정말 별에 별 짓을 다했어. 

탈영도 해보고 영창도 가보고 심지어 군사법원까지 들락날락했으니까 말야. 

근데 뭐가 어떻게 되던 간에 마지막엔 결국 부대로 복귀하게 되는거야. 

내가 이렇게 부대를 나가려고 하고 복귀하기 싫어 했던 이유가 뭐였냐면, 

항상 전역 날 여기서 시내로 나가는 부대 버스를 타다 사고를 당하고 

훈련소로 다시 돌아가기 때문이었어.” 


“그래서 이대론 안되겠다 싶어 부대버스를 안타고 그냥 걸어 나가보려고도 했었지. 

근데 절대 그렇게 안시켜주더라고. 워낙 산속이다 보니까 걸어서 내보냈다가 

사고라도 나면 부대 자체에서 골치 아프니까 말이야. 

간부들한테 사고 안날 거라고 괜찮을 거라고 호언장담을 하는데도 소용없었어. 

그래서 전역 날에 말 안하고 몰래 걸어서 나갔었는데 탈영으로 취급하드라. 

그래서 내가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해낸 게 부모님께 전역날 부대 근처 까지 태우러 와달라고 부탁 하는거였어. 

근데 막상 생각해보니까 결국 부모님 차로도 사고가 날 것 같아서 차마 오라고 말씀 못드리겠더라..” 


“그게 내가 지금까지 전역 날 부대 버스를 탈 수 밖에 없었던 이유야. 

그래서 버스를 탈 때마다 존나 미치고 팔짝뛰는 거지. 완전 눈 뜨고 코베이는 격이잖아. 

아니 아예 죽으면 또 몰라. 다시 훈련소로 돌아가버리니까 ** 돌겠는 거야. 

그래서 언제는 진짜 죽어버리려고도 했었어. 

근데 아무리 그래도 내 손으로 죽지는 못하겠더라고 

나도 참 용기가 없지. ** 같은 새끼.. 

그래서 이젠 그냥 주어진 삶대로 살려고. 

되풀이 되는 데는 뭔가 이유가 있지 않겠냐?” 


그의 말에 나는 믿기지가 않았다. 

아니 들으면서도 이런 쓸데없는 얘기를 왜 계속 하나 싶었다. 


“아 그렇습니까…….” 


“근데 너 그거 아냐? 내가 처음 군 생활 할 땐 얼마나 널 갈궜는지? 

오죽하면 네가 나 때문에 오줌까지 지려가면서 운 적도 있었다니까.” 

근데 이게 계속 되풀이되니까 스스로 반성이 되더라. 혹시 천벌이라도 받는 건가하고. 

그래서 내가 너는 물론이고 부대 사람들을 항상 잘 챙겨주고 도와주는 선임이 된거야.” 


“참고로 나도 니가 지금 내 얘기 못 믿는 거 알고 있니까 잘들어 둬. 

내일 오전에 군단장이 우리 부대 불시검문 하러 올 거야. 

사단장, 연대장도 모르는 건데 너만 알아 둬. 너도 이 짓거리 20년째 해보면 

날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기억이 안 날수가 없을거다." 


계속 한귀로 흘러 듣기에 그의 허언증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군대가 사람을 이렇게 미치게 만드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다음 날 오전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A 일병 말대로 우리 영외 부대에 군단장이 온 것이다. 


그 때 느꼈던 기분은 살면서 처음으로 느낀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설마 설마 했었다. 

‘그래. A가 개인적으로 군단장을 알았던 걸수도 있잖아…’ 


군단장을 맞이하기 위해 연병장으로 집합하며 마주친 A는 나를 보며 씩 웃었다. 

그리고 그는 내게 다가와 귓속말로 

“군단장이 휴가 하나 뿌릴 거야. 아마 군단장이 뭐 질문할건데 그때 손들고 “1978년”이라고 말해.” 라고 말했다. 


나는 여전히 믿을 수 없었지만 휴가라는 말에 혹시 하는 마음에 군단장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고 단상 위에 선 군단장은 정말 A의 말처럼 군단이 창시된 년도를 물어봤고 

나는 흥분감에 가득차 생각의 여지도 없이 손을 들고 “1978년”이라고 말했고 군단장 포상을 받았다. 


그렇게 나는 A 말을 믿게 되었다. 아니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파란만장한 A의 영화 같은 얘기에 매일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가 너무 안쓰럽고 불쌍하게 느껴졌다. 


‘군 생활을 10년이나 되풀이한다고? 도대체 왜? 

만약 그가 되풀이를 막지 못한다면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그를 위해 많은 생각을 하던 중 한 가지 묘안이 떠올랐다. 

바로 전역 날, 부대 버스에 사고가 나지 않도록 정비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그가 놓여진 뫼비우스의 군생활을 막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하는 방법은 어떻습니까?” 

“너 이 새끼. 역시 똑같이 말하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가 10번째라고 했냐. 안했냐. 너한테 그 말을 지금 6번째 들었어. 

내가 너한테 처음 되풀이를 말한 게 5번째 때부터였으니까. 이번이 6번째 맞을 거다. 

그래서 우리 같이 매번 부대버스 정비했었잖아 인마.” 

“아……. 그렇습니까.” 

“나도 처음엔 너가 밖에서 차 정비좀 하다 왔다고 해서 

이번엔 탈출할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결국 안됐었어. 

어떻게 6번째가 돼도 변함이 없냐. 변함이.” 

“크.. 그럼 다음으로 제가 무슨 말 할지 아시겠습니다..?” 

“그건 몰라. 주된 얘기는 똑같아도 상황이 살짝 살짝 바뀌니까. 

이야기는 6번째 들었어도 장소는 매번 달라. 그래서 새로운 삶이다 생각하면서 긍정적으로 살고 있다. 

어쨌든 복무기간에만 갇혀있지, 사실 전화로 부모님이랑 매일 통화할 수 있고 휴가 나가면 부모님은 

물론 친구들 이랑도 만날 수 있으니까. 대신 아쉬운 건, 차라리 군대가 아니라 

그냥 사회생활 2년이 계속 되풀이 됐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럼 자유라도 있잖아.” 


굉장히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난 그냥 그를 위로해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점은 그가 유독 나한테만 비밀을 털어놓은 이유기도 했다. 


“근데 내가 왜 너한테만 말해왔는지 아냐? 아무도 안 믿어줬어. 

밖에 사람들은 부대 안에 뭔 일이 있는지 모르니까 내가 되풀이를 입증할 수 있는 상황을 

말해줘도 믿는 사람이 한명도 없고, 부대 안에선 말해도 믿는 새끼들은 있었지만 

사실 너처럼 심적으로 위안이 되는 애는 없었걸랑.” 


그렇게 점점 A 전역은 다가왔고 결국 그의 전역 날이 됐다. 

하지만 전역 날까지 그의 되풀이를 미리 막도록 도울 방법은 마땅히 없었다. 


“걱정하지마 인마. 물론 나도 되풀이가 이번을 마지막으로 끝나면 좋겠지만, 

설사 11번째 군생활이 시작된다 하더라도 부대엔 날 위로 해주는 네가 있을테니까 버틸만 할거야” 


그의 기묘한 인사를 듣고 나는 그에게 진심이 담긴 마지막 부탁을 했다. 

A에겐 벌써 7번째나 하는 부대버스 정비였겠지만, 나는 처음이니 분명 예전과 다를 거라고. 

정말 이번 되풀이를 마지막으로 끝내줄테니 제발 같이 버스를 확인해보자고 말했다. 


“새끼. 변함이 없다. 역시, 살면서 너처럼 참 인정 많은 놈은 처음이다.” 

그는 내 간곡한 부탁에 감동한 듯 보였다. 


다행히 그가 전역할 당시에 나는 거의 연대 왕고였기 때문에 수송대 허락 없이도 

버스를 내 정비 실력을 가지고 맘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어차피 차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내가 밖에서 배웠던 실력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가 버스를 확인해본 결과 차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도대체 왜 부대버스를 타다 사고가 나게 되는 건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차는 멀쩡했다. 다행이었다. 


그래서 나는 엔진을 일부러 고장 내 뜨렸다. 

그가 7번 째 군복무를 되풀이 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가 내게 했던 말이 기억난다. 

“근데 너 그거 아냐? 내가 처음 군 생활 할 땐 얼마나 널 갈궜는지? 

오죽하면 네가 나 때문에 오줌까지 지려가면서 운 적도 있었다니까.” 


그도 결국 다른 선임들과 마찬가지로 날 괴롭혔던 악마새끼였다. 

어차피 전역하면 날 괴롭힌 선임 새끼들마다 찾아 가서 찢어 발기려고 

생각했었는데 일이 하나 줄었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런 악랄한 놈에게 죽음과 동시에 군 생활 되풀이라는 

최고의 징벌이 내려질 거라고 생각하니 온몸에 희열이 느껴 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그에게 되풀이를 안겨준 버스 사고는 

모두 내 작품이었을 것이다. 아마 그의 괴롭힘에 못이긴 탓이었겠지. 

아니면 지금처럼 그의 악랄함을 깨달았거나. 


어찌 됐든 이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이다. 

그가 무슨 발악을 하던 결국 그와 제일 가까이 있는 

내가 계속해서 되풀이를 선물하고 있는 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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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이야기 (by 나는굿이다) [번역] 요리사 (by 나는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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