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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할머니의 일기

title: 투츠키7엉덩일흔드록봐2018.08.07 17:20조회 수 871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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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일기 

 


나는 어릴 적부터 할머니를 너무너무 좋아해서 갓 철이 들었을 때부터 할머니 집에 자주 놀러가곤 했다.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기에 혼자 살고 있던 할머니는 나를 유일하게 남은 혈육이라 생각했는지 굉장히 예뻐해 주셨다.

하지만 시어머니를 유독 싫어했던 어머니는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단 한 번도 할머니를 만나러 간 적이 없었다.


실은 어머니는 '엄마'로써 그렇게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최근에 알게 된 일이지만, 어머니는 원래 술집에 나가는 여자였고, 손님으로 만났던 아버지와 계획에 없는나를 임신하는 바람에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아버지와 결혼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술만 마시면 "너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됐다"느니 "네가 나를 망쳐놨다"느니 "너같은건 죽어버리는게 좋겠다"는 등 저주를 퍼붓곤 했다.

그래서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주말은 꼭 할머니 집에 가서 지냈다.

친구도 별로 없던 내게 할머니는 유일한 내 편이었다.


믿음이 깊었던 할머니는 매주 일요일 오전에 신사에 기도하러 다녔는데,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자신이 가장 아끼는 하나밖에 없는 손녀를 데려갔다.

매주 일요일마다 따분한 기도를 함께 해야하는 일은 어린 내가 싫어할법도 한 일이었지만, 나는 할머니가 해 준 맛있는 아침밥을 먹고, 작고 따뜻한 손을 잡고 마을의 예쁜 신사에 가는 것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좋았다.

내가 아무 생각없이 편할 수 있는 사랑하는 할머니와 나만의 소중한 시간이었다.

할머니는 항상 신주 앞에 서서 손을 곱게 모으고 깊이 절을 하면서 꽤 긴 시간동안 기도를 했다.


어린 아이가 기도를 해 봐야 얼마나 하겠는가, 나는 할머니보다 훨씬 빨리 끝내곤 신사 주변을 돌아다니거나 했는데, 그러면서도 신기했던 것은 할머니가 그 긴 시간동안 기도하면서 단 한 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는 점이다.


기도가 끝나고 집에가는 길에 할머니에게 뭘 그렇게 기도했느냐고 물으면, 할머니는 한 없이 인자한 웃음을 지은 채, "그건 우리 손녀가 크면 알게 될 거란다"고 말하곤 무슨 기도인지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할머니는 그렇게 모르는척 했지만, 나는 할머니가 나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어릴적부터 기가 약해서인지 귀신이 잘 들렀다.

나를 재앙이라고 생각하면서 낳은 어머니의 사념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거의 매일 밤 나는 가위에 눌리느라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푹 자본 적이 없었다.


가위 뿐만이 아니라 자다가 내 손으로 끈을 내 목에 걸고 있거나, 배를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에 밤 새 몸부림치거나, 여튼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이상한 일은 다 나에게 일어났다.

부모라고는 어머니밖에 없었기에 그 일을 어머니에게 말을 했지만, 어머니는 내 인생을 이렇게 망친 네년이 그 정도로 힘들어하느냐며, 네년이 더 불행해 졌으면 했는데 그것 참 잘 됐다고 말했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서는 이런 일들이 훨씬 많아지고 악질적이 되었다.

1년 새에 교통사고가 3번이나 났고, 수업중에 발작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밥을 먹을 때에는 항상 벌레를 먹고있다는 환각이 보여 밥 한술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도저히 정상적으로 학교에 계속 다닐 수가 없어서 결국 학교도 나가지 않게 되었다.

어머니가 일을 나가고 집에 혼자가 될 때, 항상 할머니가 찾아와서 나를 돌봐 주었다.

매일매일 토하고 거식증을 보이다 또 과식증에 걸리기도 하고, 항상 불안정했던 내가 자살 미수까지 해 가며 힘들어 할 때에 할머니는 항상 내 손을 꼭 잡고 나를 달랬다.

가끔 제 정신이 돌아왔을 때에 옆에 할머니가 있는걸 발견하면, 그 순간만이 내 인생에 유일하게 따뜻한 순간이었다.

나를 저주하는 어머니로부터 지켜주는 유일한 사람은 할머니였다.

 

내가 16살이 된 날, 그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내가 미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나는 집을 나와 할머니 집에서 씻지도 않고 할머니의 옷가지를 껴안고 몇날며칠을 울고만 있었다.

할머니 냄새를 맡고 흔적을 찾을때마다 할머니의 인자한 미소가 떠올랐다. 할머니의 따뜻한 손길이 떠올랐다.


그런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2주가 지났을 때, 내 몸에 이상한 일이 생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이상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다.

가위도 더 이상 눌리지 않았고 주변에서 일어나던 기괴한 일들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내 사정을 잘 아는 친구에게 이 사실을 말했더니, 할머니가 수호령이 돼서 너를 지켜주는게 아니냐며 마치 제 일처럼 신나했다.


할머니는 돌아가셨어도 내 곁에서 나를 지켜주시는구나라는 생각에 나는 용기가 솟아 올랐고, 내 삶은 180도 바뀌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1년이 지나고, 못 다녔던 학교를 다시 다니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도 시작했다.

친구가 많아졌고 나는 이전엔 상상할 수도 없을만큼 밝게 변했다.

어머니가 술에 취해 내게 저주를 퍼부어도 할머니가 함께 있다는 생각에 하나도 서럽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항상 할머니와 함께 했고 고등학교까지 졸업했다.

할머니의 수호령과 함께 전혀 달라진 나는 공부도 곧잘 했고, 나는 할머니 집 근처에 있는 대학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할 수 있었다.


나는 성인이 됐기 때문에 불편한 어머니를 떠나 할머니 집에서 혼자 살며 대학에 다니기로 했다.

가끔 할머니가 그리워질 때면 찾아와서 청소도 하고 이것 저것 손질을 하긴 했지만 몇 년이나 비어있던 집은 손 볼 곳이 꽤 많았다.

내 짐을 가지고 와서 정리를 하다 할머니 옷장 깊숙히 있던 보따리 하나를 발견했다.

낡은 노트꾸러미였다.


첫번째 노트를 펼쳐 내용을 보니 할머니의 일기였다.

그날 그날 무엇을 먹었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바른 글씨로 또박또박 적어 놓은 것이, 꼼꼼했던 할머니를 느낄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노트를 몇 권째 읽어 가면서 할머니와의 추억 하나하나가 떠올랐다.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보따리 가장 밑에 있는 노트의 표지를 본 순간 나는 소리내어 꺽꺽 울 수 밖에 없었다.

표지엔 할머니 특유의 예쁜 글씨로 내 이름이 씌어 있었다.

가장 소중한 손녀딸에 관한 일기만 특별히 따로 쓰신 것 같았다.

한참을 노트를 끌어안고 울다가 겨우 진정하곤 떨리는 손으로 첫 페이지를 넘겼다.

 

 

 

이 년은 며느리년이 바람을 피워 만들어온 애다.
이 년이 생겨서 내 아들이 자살을 했다.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럽게 죽여버리고 싶다.

 

 

 

눈물이 쏙 들어갔다.


그 다음 페이지부터는 매주 일요일 날짜가 적혀 있었다.

그 내용을 본 순간 토악질이 나왔다.


00월 00일 일요일
오늘은 신사에 가서 이 년 배에 바늘로 수 십번 찌르는 고통을 달라고 기도했다.


00월 00일 일요일
오늘은 신사에 가서 이 년이 평생 벌레만 먹고 살게 해달라고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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