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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끝나지 않는 지배 10부 (개정판)

title: 팝콘팽귄이리듐2019.01.05 19:41조회 수 473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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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모든 비극의 퍼즐이 맞춰졌다. 필시 이 상황을 일본인들이 안다면 희열과 통쾌함을 느낄 것이 틀림없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조선을 지배하기 위한 전략이 성공한 샘이다. 시나브로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서는 일본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태규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망령을 막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망령과 싸울 마땅한 대책이 없어서 고민의 연속이었다. 노승이 준 단검도 고작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 과거 아버지를 홀린 망령과의 싸움에서 남은 것이었다. 이것으로 신(神)에 가까워진 망령과 대적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복숭아나무로 깎은 보잘 것 없는 단검을 이리저리 보던 산호는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이보슈 김형, 정말 이걸 산에 기거하는 노승이 줬단 말이오? 태어나서 이렇게 신성한 기운이 감도는 목검은 처음 봤수다. 이런 건 당군 할아버지를 모시는 무당도, 백두산에서 백 년 동안 도를 닦은 도사님도 만들 수 없는 거요. 한 마디로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란 말이요. 어쩌면 노승을 찾는다면 망령을 막을 방도를 알 수 있지 않겠소?”

 

태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미 그곳을 수백 번 찾았지만, 노승은 물론이고 그가 기거했던 흔적은 하나 없었다. 7년 전, 스스로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연했기에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는 없고 울창한 나무와 이름 모를 풀들만 무성했다. 이후 눈앞에 놓인 비극을 매듭지어야 했기에 신통한 노인 찾기에만 매달릴 수 없었다.

 

산호는 노승이 보통 노인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7년 전에 노인을 만난 곳으로 가보자고 졸랐다. 태규에게 주어진 시간이 없었지만 간절한 마음에 둘은 밖으로 나가서 김주용이 살던 집터 뒷산으로 향했다. 여전히 사람들의 발자취가 닫지 않는 곳이라서 그런지, 험난한 길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오르면 오를수록 나무들이 가을이란 계절의 옷을 입어서 그런지 처한 상황과 맞지 않게 단풍(丹楓)이 아름다웠다. 거친 숨을 내쉬며 태규가 커다란 나무를 가리켰다.

 

“본래 저곳에 움막이 있었는데 말이야...”

 

그곳은 여전히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이 뻗어 있었다. 태규는 노인이 없다며 포기하고 그만 내려가자고 했다.

 

바로 그때...

 

산호가 사시나무 떨 듯 몸을 ‘부르르’ 떨어댔다. 그 역시도 무당이라서 그런 것일까, 어떤 기운을 느끼는 듯 했다. 잠시 후 1인 2역을 하듯 허공에 대고 누군가와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오래 된 나무 한 그루에 절을 올린 뒤, 정신이 나간 사람마냥 웃어댔다. 일반 사람들이 그런 산호를 보았다면 필히 미친놈이라고 손가락질을 했을 것이다.

 

“이보슈 김형, 내가 모시는 신(神)께서 말이요. 노승이 이 산 어딘가에 기거하고 있다고 하더이다. 그런데 김형이 만난 분이 누군 줄 아시우? 이름은 들어 보셨는지 모르겠네... 고운 최치원 선생이라고?”

 

최치원이라 하면 신라를 대표하는 비운의 천재로 희대의 문장가이자, 신라를 개혁시킬 인물이었다. 그러나 진골의 득세에 질린 나머지 모든 것을 버리고 산 속으로 잠적했다. 소문으로는 가야산인지, 지리산인지 알 수 없지만 신선이 되어 팔도를 유랑한다는 이야기는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었다.

 

두 사내는 한 시라도 급한 마음에 흩어져서 최치원을 찾기로 했다. 산호는 영험한 기운이 느껴진다며 산 위쪽으로 향했고, 태규는 산 아래로 향했다. 태규는 산호의 말대로 그렇게 대단한 분이라면 필시 망령을 없애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간절한 마음에 노승을 애타게 불렀다.

 

“스님, 스님, 저 김주용의 아들 김태규입니다. 제발 나타나 주십시오.”

 

그러던 중 태규는 석양이 지는 나무 사이로 한 사내가 서있는 것을 목격했다. 마치 7년 전에 만난 노승의 뒷모습과 흡사했다. 기대에 부푼 마음에 그를 향해 조심조심 걸어갔다. 그런데 마치 누군가가 함정이라도 파놓은 것처럼 다리가 움푹 땅속으로 들어가더니 중심을 잃고 넘어지고 말았다. 가파른 경사를 따라 어디론가 굴러 떨어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 어디인지 모르는 곳에 덜렁 누워있었다. 일어나려고 했지만 다리가 부러졌는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큰 소리로 산호의 이름을 불렀지만 산호는 응답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일어나보려고 발버둥을 치려고 할 때였다.

 

의문의 사내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과거 노승의 모습과 흡사한 사내가 보였다. 노승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걱정을 앞섰다. 석양빛에 얼굴이 점점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서 상체를 일으켜 확인을 하는 순간, 당장 도망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것은 노승이 아니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는 해괴망측한 괴물 같은 것이었다. 4개의 붉은 눈이 각자 다르게 움직였고, 찢어진 입에서 나온 긴 혀는 걸쭉한 침을 줄줄 흘리며 요란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관절마다 문제가 생긴 것인지 힘을 줄수록 아파왔다. 괴상한 것이 다가오자 겁에 질려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느 덧 그것이 태규에게 얼굴을 들이 밀며 냄새를 맡아댔다.

 

“흐흐흐, 인간고기를 얼마 만에 먹는 것이고? 그것도 건장한 사내를 말이가...”

 

망령과 싸우기도 전에 자신이 먼저 죽임을 당할 것이라 생각하 태규는 자포자기(自暴自棄)의 심정으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걸 본 요망한 것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이윽고 태규의 살점을 베어 물려고 군침이 가득한 입을 벌리는 순간, 그것이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는지 주위를 마구 둘러봤다.

 

“이런 젠장...”

 

그것은 잡고 있던 태규의 팔을 뿌리치고 어디론가 도망가기 시작했다. 정말 순식간에 나무를 넘어 저 멀리 시야에서 사라졌다. 도대체 그것이 무엇 때문에 도망치듯 사라졌는지 주위를 둘러봤다. 태규의 동공이 커졌다. 눈앞에 노인이 나타나서 태규를 바라보고 있었다.

 

“스, 스님?!”

 

노승이 태규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왔다.

 

“처사님, 오랜만이구려. 이렇게 험한 산 속에는 무슨 일로 또 오셨습니까? 해가 떨어질 때 함부로 산에 들어오면 온갖 기괴한 것들이 사람을 해칠지도 모릅니다. 처사님은 참으로 운이 좋았소. 좀 전에 그것은 인간을 홀리게 만들어 잡아먹는 산요괴라오. 죽어가는 것들이 순리(順理)를 받아드리지 않고 억지로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결합한 것들이지요. 그것들은 인간고기를 매우 좋아 한다우. 가끔 산행을 하던 사람이 실종이 되면 그들의 짓이 칠 할이지요. 아주 위험했습니다.”

 

아찔한 경험에 태규의 몸에서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산요괴로부터 기사회생(起死回生)에 안도의 한 숨이 뿜어져 나왔다. 모든 기운이 빠지는 듯 했다. 하지만 노인을 찾았다는 생각에 이내 무리를 해서 일어나려고 했다.

 

“어허, 무리해서 움직이며 안 됩니다...”

 

노승은 태규의 발목과 무릎에 손을 댔다. 발목을 이리저리 돌릴 때마다 태규는 고통스러운지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뭔가가 잘못 되었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노인은 다리의 어떤 부분을 강하게 누르며 어긋난 뼈를 맞췄다. ‘우두둑’ 소리와 함께 태규의 비명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그제야 노승은 빙긋이 웃었다.

 

“이제 됐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움직일 수 없던 다리가 기적처럼 움직이며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신선의 신통함에 놀란 태규였다.

 

“스님...”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태규는 과거에 자신의 실수로 망령을 없애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눈물을 흘렸다.

 

“한 시 빨리 망령을 처리했었어야 했지만 시디를 놓치는 바람에 결국 없애지 못 했습니다. 그리고 더욱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노승은 태규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가끔 시기란 중요한 법입니다. 특히 좋지 않은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시기는 더더욱 중요한 법이지요. 처사님의 머뭇거림이 일을 어렵게 만든 건 사실이비다. 망령의 힘은 하루하루 강해지지요. 처사님에게는 잠시의 시간일지 모르겠으나, 그것에게는 충분히 인간의 양기를 모을 수 있는 시간이지요. 허나 벌써 7년이 지난 일, 자신의 탓만 하기에는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혼자서 망령과 싸운다는 것은 한 인간이 짊어지기에 너무나 무거운 짐이지요.”

 

태규는 방법이 없겠냐며 노승에게 직접 구로다를 없애 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노승은 애써 젊은이의 눈을 피하며 석양이 지는 먼 곳을 바라봤다.

 

“나는 신선이오. 인간 세상에 참견하고 싶은 마음은 없소이다...”

 

태규는 노인에게 무릎을 꿇으며 제발 망령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해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노인은 그런 태규의 손을 뿌리쳤다.

 

“꼭 그렇게 망령을 없애야겠습니까? 이 세상에는 그것 말고도 수많은 망령들이 세상에 미련을 못 버리고 있지요. 하지만 그들이 세상을 혼란에 빠트려도 처사님의 삶과 무관하다고 생각됩니다만... 오히려 부귀영화를 누렸으면 누렸지 손해 볼 건 없지 않습니까?”

 

이전과는 다른 노인의 모습에 혼란이 온 태규는 깊은 충격을 받았다. 머릿속을 크게 맞은 것처럼 저절로 눈이 감길 지경이었다. 하지만 치밀어 오르는 화가 지팡이가 된 듯 휘청거리는 태규를 버티게 했다.

 

“스님,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민족의 피를 빨아 먹고 부귀영화를 누린들 마음 속 양심이 외면하겠습니까? 누군가의 고통과 아픔이 스스로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은 정말 잔인한 일입니다. 시대가 변했습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는 시대에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를 희생시키다니요. 저는 용납 할 수 없습니다. 노승께서 도와주지 않는다면 아버지로부터 시작 된 비극을 저 혼자서라도 막겠습니다.”

 

노승에게 큰 실망을 한 태규는 분했지만 어떻게든 혼자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비록 자신을 도와주진 않았지만 구해준 감사의 인사를 하고 산호를 찾으려고 했다.

 

“구해주신 것은 감사합니다. 은혜는 망령과의 싸움에서 살아 있다면 반드시 갚겠습니다. 허나 신선께서는 앞으로 도를 닦는데 더욱 정진하시어 세상을 보는 안목을 높이시길 바랍니다.”

 

노승은 자신에게 단단히 화가 난 태규의 팔을 덥석 잡았다.

 

“처사님, 참으로 비극적인 운명을 타고 나셨소. 염치란 것이 생기면 사는 것이 불편한 법이지요. 편하게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데 그것으로부터 독립하여 시대의 정의를 증명한다는 것은 외로운 싸움입니다. 당신을 직접 도와드릴 수는 없소. 인간의 실수는 인간이 매듭을 지어야 하는 법, 나 같이 인간도 아니고 신도 아닌 자가 개입하면 나 역시 이상한 권력이 되어 속세에 도태 될 것이 분명하오.”

 

노승은 품속에서 꽤 기다란 칼을 하나 꺼내어 태규에게 주었다. 칼집에는 누런색 부적들이 둘러싸여 있었고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가벼웠다.

 

“귀절(鬼折)이라는 칼입니다. 오로지 귀신에게만 상처를 주는 신비한 검이지요. 망령과 싸움에서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이요. 다만 처사님, 이 싸움에서 승리한다고 해서 앞으로 미래가 희망의 빛으로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태규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노승에게 물었다.

 

“끝나지 않는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은 한 개인의 노력으로 이루어 질 수 없는 법... 많은 사람들이 한 마음이 되어 더러움에 얼룩진 권력의 횡포에 싸워야만 비로소 끝이 나는 것이오.”

 

그리고 노승은 태규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건투를 빈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출처 짱공유 백도씨끓는물 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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