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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두려움을 먹는 귀신

title: 팝콘팽귄이리듐2019.01.05 19:47조회 수 1216추천 수 2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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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당감동에 사는 제도영군이 겪은 실제 경험담입니다.

 

8살 소년의 성장통(成長痛)은 공포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매일같이 성격차이로 다투었다.

두 사람은 매일 서로에게 분노를 겨누었다.

어렸던 나는 둘의 싸움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 분노가 뒤섞인 욕설...

그것을 들을 때마다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쿵쾅거림 때문에

동심과 정서 같은 것은 무참히 부서졌다.

 

참다못해 둘의 싸움을 말려보려고 112에 전화를 걸었다.

결국 순경 몇 명이 찾아와서 현관문을 두드렸고

둘은 이야기를 하다가 언성이 높아졌다며 사과했다.

그렇게 순경을 보내고 기분좋게 마무리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표정이 싹 바뀐 아버지는 나의 뺨을 인정사정없이 내려쳤다.

부모를 신고하는 자식이 세상에 어디 있냐며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어머니는 냉소적인 표정을 지으며 도움도 안 되는 짓을 했다며

어두운 방 안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 잠깐 동안 조용했던 집은 다시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런 밤을 지새우고 나면 아침은 늘 몽롱한 상태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 의미가 없어지고

그러다보면 학습 능력은 자연스레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하필이면 담임선생님도 마녀(魔女)같은 사람을 만나서

준비물이라도 챙겨오지 않는 날이면 면박은 주기 일쑤였다.

특히 그녀는 새빨간 매니큐어가 발라진 긴 손톱으로

나의 허벅지나 옆구리를 어찌나 세게 꼬집는지,

단 1분도 안 되는 시간이지만 지옥 같았다.

늘 그 사람에게 나 같은 아이는 문제아였고 싹수가 노란 떡잎이었다.

 

하교 시간이 다가올 때면 마음이 조마조마해졌다.

집으로 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전날 부모님의 심한 다툼 때문에

발걸음도 집으로 가는 길을 허락하지 않았다.

몇 번의 고민 끝에,

결국 집 반대편으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굽은 길이 나오면 굽은 길로 걸었고 오르막길이 나오면 쉬지 않고 계속 올랐다.

용케도 한 언덕의 꼭대기까지 당도했다. 그곳에서 한 폐허와 마주하게 되었다.

그런데 대다수 허물은 집들이 태반이었고

사방이 콘크리트 더미와 철근들이 여기저기 버려져 있었다.

길을 잘못 들었다는 생각에 다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언덕 아래를 보자 마음이 편해졌다.

온 동네가 한 눈에 모두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보면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고 신비한 곳인데

왜 그 속에서 있는 우리집은 매일같이 폭력이 난무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한참을 멍하게 마을 구경을 하다가

하늘에서 빗방울 몇 개가 떨어지는 것을 맞았다.

우산이 없었기 때문에 당황하며 서둘러 언덕을 내려가려 했다.

그런데 내려가는 길목 한복판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네다섯 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검은 옷을 입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비를 막아주려고 책가방을 아이 머리 위로 올렸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아이의 부모님을 찾았으나,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빗방울은 더욱 거세게 내렸다.

아이에게 부모님이 어디계시냐며 물었지만 고개만 숙일 뿐 말이 없었다.

제발 아무나 지나가길 소망했다. 그러나 이상하게 아무도 없었다.

폐건물에 들어가 있자며 아이의 팔을 잡아당겼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야, 이러다가 감기 걸린디.. 빨리 들어가자.”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를 한참 바라보다가 문득 얼굴이 궁금해서 눈을 마주치려고 했다.

그런데 아이가 피식피식 웃으며 어깨를 들썩이는 것이었다.

 

“오빠야, 내 얼굴이 그리 궁금하나?”

 

말을 할 줄 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서 뒷걸음질을 쳤다.

아이는 그런 모습이 우스꽝스러운지 고개를 숙인채로 웃어댔다.

그런데 아이의 웃음소리가 참으로 괴이(怪異)했다.

남자의 목소리와 여자의 목소리가 섞인 듯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몹시 낯이 익어서 불안했다.

아이는 히죽히죽 웃으며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순간 아이의 얼굴을 보고 동공이 아플 만큼 흔들렸다.

왜냐하면 아이의 얼굴은 매일 어머니와 싸우고

나에게 폭력과 욕설을 일삼던 아버지였기 때문이었다.

아이의 몸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버지의 얼굴이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전갈의 독에 급소를 찔린 먹이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야이 씨이발꺼, 부모를 경찰에 신고하는 자식새끼가 어디 있어? 낄낄낄낄...”

 

아이는 목을 쭉 빼며 아버지의 얼굴을 나에게 가까이 댔다.

비에 젖은 긴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아버지의 얼굴은

평소 나를 때릴 때처럼 인상을 찡그렸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자갈밭이 늪처럼 발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가방도 던져놓고 엉금엉금 기어서 애를 썼다.

 

“야이 씨이발꺼, 부모를 경찰에 신고하는 자식새끼가 어디 있냔 말이다.

이 좀만 한 새끼가 콱 죽을라고? 마, 일로 와, 안와? 낄낄낄낄...”

 

목소리도 소름끼치도록 아버지와 똑같았다.

자갈밭을 포복 하듯 기었지만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 했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두려움에 귀를 막고 눈을 감았다.

더욱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그것의 손이 나의 발목을 ‘턱’하고 붙잡았다.

놀란 마음에 뒤를 돌아봤다.

 

분명 조금 전까지 어린 아이의 모습이었는데

키와 덩치가 나보다 커져 있었다.

여전히 그것은 아버지의 얼굴을 하고 있었고 눈이 마주치자

일부러 겁을 주려는 듯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그것의 표정에 숨통이 조일 만큼 무서워서 울음을 터트렸다.

서러움에 자갈을 비롯하여 돌멩이들을 잡아 세게 던졌다.

그 중에 꽤 큰 돌멩이가 그것의 이마에 정통으로 맞았다.

 

이마에서 검은 피가 순식간에 쏟아졌고 엄청 고통스러운지 울부짖었다.

미약하지만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큰 돌멩이를 움켜쥐고 머리를 향해 던졌다.

정확하게 머리에 맞자, 요란한 울음소리를 낸 뒤 겁을 먹었는지 수그러들었다.

나는 재빨리 일어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리막을 달렸다.

 

“으아악... 감히 어린놈의 새끼가 버릇없이 아버지를 돌로 찍어?

오늘 네놈 가만히 안 둔다... 콱 지기삔다.”

 

뒤에서 녀석이 아버지를 흉내 내는 소리가 들렸다.

검은색 피를 철철 흘리며 비 오는 내리막으로 나를 쫓아왔다.

헐레벌떡 뛰어 내려와서 곧장 큰길을 향해 달렸다.

다행히 거리에는 사람들 몇몇이 지나다녔다.

안도의 한 숨을 쉬며 가장 먼저 눈에 보인 사람에게 달려갔다.

 

“저.. 저기 아줌마, 저.. 저기에 누가 저를 쫓아와요.

이.. 이상한 사람이 저를 계.. 계속 쫓아와요. 무서워요...”

 

다급한 마음에 마구 손가락으로 그것이 따라오는 방향을 가리켰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아줌마는 그래도 걱정스러운 마음에 내가 손짓하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트럭 뒤편에서 멈췄다. 한 동안 그곳을 응시했다.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트럭 뒤로 들어갔다.

 

“꺄아악!!!!!!”

 

무엇을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아줌마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비명을 질렀다.

우산도 버리고 질색을 하며 어디론가 도망갔다. 느낌이 썩 좋지 않았다.

도움을 청하려고 했더니, 지나가는 사람이 하나 없었다.

무작정 앞을 향해서 달렸다. 녀석이 뒤에서 따라 오는 것이 느껴졌다.

필사적으로 팔을 흔들었고 발을 굴렸다. 하지만 나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뒤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도영이 너 이 새끼, 니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맨날 엄마 말도 안 듣는 새끼가 말이야... 쌍놈의 새끼야, 거기 안서?

너 거기 안서면 엄마 죽어버릴 거야, 엄마 죽는 꼴 볼래?”

 

돌아보고 싶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위태로운 어조에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리고 곧 후회했다. 녀석에게 속은 것이었다.

녀석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졌다.

무엇보다 어머니의 얼굴을 하며 미친 듯이 비웃고 있었다.

순식간에 다가온 그것은 어머니처럼 눈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쯧쯧쯧쯧... 쓸모없는 새끼...

어째 사는데 도움도 안 되니? 너 같은 게 태어나서 짜증나... 낄낄낄...

그냥 너랑 나랑 같이 죽자.. 낄낄낄..

아니, 너만 죽을레? 낄낄낄...”

 

평소에 어머니가 아버지와 다투고 나면 나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것이 희롱하는 줄도 모르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려댔다.

녀석은 내가 두려움과 공포심을 느낄수록 몸집이 커지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서너 살로 보였던 여자아이였지만

어느 덧 농구선수처럼 거대해져서 도망가기도 어려웠다.

 

그것은 끊임없이 겁을 줬다.

자신의 얼굴을 바꾸어가며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투는 모습을 재연했고

그토록 싫어하던 담임선생님의 얼굴로 변해서 면박을 주기도 했다.

 

“이 쓰레기 새끼야, 낄낄낄...

아주 너 같은 새끼는 글러 먹었어, 크면 뻔하지... 낄낄낄...

차라리 죽어버려라, 죽어버려...”

 

담임선생님이었던 얼굴이 다시 고양이처럼 변했다.

마치 사람의 얼굴과 뒤섞인 얼굴은 흉측했고 요괴처럼 보였다.

 

“낄낄낄... 가정교육도 못 배운 새끼가 학교에서 무얼 배우냐?

떡잎부터 노란 쓰레기 새끼... 그냥 죽어라, 아니 이 몸이 죽여줄까? 낄낄낄...”

 

그것은 날카롭게 손톱을 내밀고 나를 향해 ‘휙’하고 덤벼들었다.

요망한 것이 가슴팍에 손톱을 들이밀자, 결국 나는 혼절(昏?)해버렸다.

이후,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정신이 들었을 때, 좁은 사무실 안의 낡은 소파에 누워져 있었다.

누구의 것인지 모르겠지만 옷도 갈아입혀져 있었고

무엇보다 따뜻한 군용 담요가 몸을 덮어주었다.

 

“오, 일어났나? 어데 아픈 데는 없고?”

 

신문을 보던 60대 노인이 안경을 콧등까지 내리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노인은 정신이 없어서 이곳저곳 두리번대는 나에게

따뜻한 코코아 한잔을 건네었다.

 

“걱정마라, 여기는 갱비실이다, 갱비실...

큰일 날 뻔 했데이, 비 오는데 길에 쓰러져 있어서 깜짝 놀랐다 아이가?”

 

희한하게도 낯선 곳이었지만 노인의 친절함 때문인지 불편하지 않았다.

다만 자고 일어나서 그런 것인지, 부끄러움 때문인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노인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창밖을 지긋이 바라봤다.

 

“타다다닥... 철커덩”

 

경박스러운 발걸음 소리가 나더니 이내 경비실 문이 활짝 열렸다.

 

“할배, 빵이랑 과자 사왔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같은 반 친구인 원일이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사실 친구라고 하기도 뭣한 것이 녀석도 아웃사이더라서 함께 놀지 않았다.

다만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싸움을 잘해서 아이들이 괴롭히지 않았고

마귀 같은 선생님도 녀석의 저돌적인 성격에 혀를 내둘렀다.

 

“여어~ 또영이... 몸은 좀 괜찮나? 아나, 빵이랑 우유 무라.”

 

그날 알게 되었지만 노인은 원일이의 할아버지였다.

본인이 사는 아파트에서 경비 일을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매우 따뜻하게 대했다.

사람다운 대우를 받아본지 얼마만인지, 기분이 설레는 것처럼 이상했다.

 

그렇게 빵과 우유를 한참을 먹다가 시계를 보니 오후 5시였다.

순간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에게 혼날 것 같아서 재빨리 일어나서 인사를 하고 나가려는데

할아버지와 원일이가 내 팔을 붙잡았다.

 

“에헤이, 에헤이... 으데가노 또영이?

와이리 급하노... 요오 앉아봐라. 앉아봐...”

 

원일이는 할아버지 같은 말투로

이렇게 늦게 집에 가면 분명 어머니께 혼날 것이라고 했다.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전화를 해준다며 집 전화번호를 가르쳐달라고 했다.

흔쾌히 번호를 알려주자 할아버지는 당장 우리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네... 안녕하세요. 저는 도영이랑 같은 반 친구 원일이 할아비입니다.

다름이 아이고... 도영이가 마 정신없이 놀다보니까, 집에 전화도 못 드렸네요.

걱정하실까봐 이제야 전화 드리는데 죄송합니다.

도영이는 저녁까지 먹이고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혹시 걱정이 되시면 XXX아파트 3동 209호입니다. 한번 오시지요.”

 

혼나지 않게 집에 전화를 해준다면서 저녁까지 먹이겠다니 당황스러웠다.

무엇보다 집에서 절대 허락할 리가 없는데 흔쾌히 허락까지 받았다니 놀라웠다.

그러면서도 혹시 둘이 싸우느라 나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것이 아닌지 걱정됐다.

할아버지는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조심스럽게 나에게 물었다.

 

“도영아, 혹시... 여기 오기 전에 기억나나? 그... 시커먼 거... 말이다.”

 

할아버지의 말을 듣는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잠깐의 편안함 때문에 좀 전에 겪었던 일들을 잊은 것이었다.

무서웠던 조금 전의 일들이 연기처럼 떠올랐다.

검은 옷을 입은 그것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로 변한 것부터

담임선생님의 얼굴을 하며 나를 조롱하던 것을 잊을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온 몸이 부르르 떨려왔고 불안함이 밀려왔다.

할아버지는 그런 나에게 괜찮다며 토닥이셨다.

 

“도영아, 세상에는 사람이나 동물, 식물만 사는 게 아이데이.

믿을 수 없는 존재들이 곳곳에 있어요.

예를 들자면 도깨비나 귀신같은 것도 있기 마련이고 말이야.

그러니까 때론 사람을 해치는 나쁜 것들도 있고...

그 중에서 아주 영악한 것들은 사람의 두려움을 먹고 자라는 놈들이 있는데..

특히 사람의 약한 마음을 이용해서 결국 목숨을 빼앗아가기도 한단다.”

 

어렸지만 할아버지의 말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나 또한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도망치면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그것을 ‘그슨대’라고 불렀다.

 

“예전에 이 동네가 화장터라서 다른 동네보다 쪼매 귀신들이 많다.

화장터로 들어가는 시신들 전부가 순리대로 죽은 시신이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사정들이 생기는 법이지...

그래서 그 중에 몇몇은 원혼이 되는 경우도 있고

악귀가 되는 경우도 많이 생긴다.

특히 그슨대라도 되면 골치가 아픈 일 아이가?

그것들은 끝끝내 사람의 목숨을 끊어 놔야 직성이 풀린데이.”

 

그슨대라는 것은 살아생전에 조직폭력배나 연쇄살인범처럼 누군가를

고의적으로 해친 자들이 죽어서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그슨대에 대해서 매우 자세하게 아는 듯했다.

요즘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냐고들 하지만, 직접 겪어 본 나로서는

할아버지의 말이 진실 같았다.

 

“원일아, 니는 집에 할매보고 오늘 귀신 잡는다고

도목검(桃木劒) 꺼내고 부적 쓰게 준비 좀 해라고 전해라.

그라고 오늘 저녁은 통닭 한 마리 묵자.

배부르게 잘 먹어야, 든든하지...”

 

원일이는 통닭이라는 말에 신이 나서 뛰쳐나갔다.

겁에 잔득 질린 나에게는 조금만 기다리라며 자신과 함께 나가자고 했다.

할아버지는 잠시 자리에 앉아 조그마한 책을 꺼내더니 뭔가를 찾았다.

그러더니 한 숨을 쉬면서 책을 덮고 주문(呪文) 같은 것을 외웠다.

왠지 말을 걸면 실례일 것 같아서 그저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도영아... 그슨대는 오늘밤 니를 찾아 올 거다...

그래서 니를 차마 집에 보낼 수 없었다...

할아버지 이해 할 수 없겠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라.”

 

그리고 모든 이야기를 할아버지께 듣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그날도 어김없이 아파트 주위를 청소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아주머니가 겁에 질려서 살려달라며 온 동네를 시끄럽게 한 것이었다.

죽은 시어머니가 나타나서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눈을 보니 귀신에게 홀린 상태여서 일단 할아버지는 진정을 시켰다.

 

“보소, 아지메요. 죽은 시어머니를 어데서 봤습니까?”

 

손을 벌벌 떨면서 담벼락 뒤를 가리켰다.

아마도 아주머니는 나를 도와주려고 했던 그 분이 틀림없다.

나의 말을 듣고 트럭 뒤편으로 갔다가

그것이 구석에서 시어머니의 얼굴로 분명 위협을 했을 것이다.

분명 그녀의 공포를 먹이로 덩치가 커진 것이다.

 

할아버지는 불안한 마음에 당장 담벼락 뒤로 뛰쳐나왔다.

그런데 2미터가 훌쩍 넘는 시커먼 무언가가 나를 해치려고 달려들고 있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할아버지는 나를 구하기 위해

평소에 악귀를 내쫓는 부적에 불을 붙여서 그슨대를 향해 휘둘렀다.

비가 많이 내려서 불이 제대로 붙지 않아 부적의 기능을 제대로 못했지만

그것에게 충분히 위협이 되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그것은 나를 해쳤을 것이다.

다행히 나는 기절했지만 다친 곳이 없이 멀쩡했다.

그러나 그슨대는 한동안 할아버지를 노려보더니 빠른 속도로 언덕으로 올라갔다.

결국 나를 경비실로 데려온 할아버지는

손자인 원일이를 시켜서 입을 옷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하필 내가 원일이 친구였던 것이었다.

 

“도영아, 할배 말 잘들어레이...

그슨대는 이 할배가 잡아주거나, 없애 줄 수가 없어요.

아무리 찾아봐도 그슨대는 홀린 사람 본인이 두려움을 이겨내서

없애는 수밖에 없구나... 도영이 니가 그 귀신을 잡아야 해...

그래야 그것이 앞으로도 니 앞에 영영 나타나지 않을끼다...

이 할배가 도와줄테니 시키는대로 해야 한다. 할 수 있겠제?”

 

선뜻 말하지 못했다. 매우 무서웠다. 그것을 또 봐야 한다는 현실이 가혹했다.

하지만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은 그것 밖에 없다고 했다.

하기 싫어도 해야만 했다. 할아버지는 나의 두 어깨를 잡고 눈을 마주쳤다.

 

“도영아, 꼭 이겨 낼 수 있데이... 귀신 그거 아무것도 아이다.”

 

할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원일이 할머니가 계셨는데

처음 뵈었지만 매우 따뜻하게 맞이 해주셨다.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 양념치킨에서 닭다리를 꺼내어 손에 쥐어주셨다.

친할머니를 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계셨더라면 이런 예쁨을 받지 않았을까?

원일이 또한 매우 좋은 녀석으로 긴장한 나를 다독여 주었다.

괴팍한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재밌는 녀석이었고 이상하게 큰 의지가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긴장감이 돌았다.

할아버지는 집에 도착한 후 식사도 하지 않고 부적을 그렸다.

그리고 오래 된 책들을 뒤져가며 주문 같은 것을 외웠고

집안 곳곳에 부적을 붙였다. 꼭 홍콩영화에 나오는 강시선생 같았다.

본인만의 의식을 끝낸 할아버지는 자신에게 오라며 손짓을 했다.

 

“도영아, 곧 녀석이 이곳에 올 거다.

지금 니를 찾으러 온 동네를 뒤지고 있을 거야.

이제부터 니는 이 방에 혼자 들어가야 한다... 할 수 있겠제?”

 

할아버지는 나보고 미끼가 되라고 했다.

그리고 그슨대를 방 안으로 불러드려서 복숭아나무로 만든 목검을

그것의 가슴팍에 꽂으라고 했다.

반드시 그것이 가까이 다가 올 때 겁을 먹지 말고 냅다 꽂으라고 했다.

나의 두려움을 먹고 자란 녀석을 없애지 못한 다면

멀쩡한 사람을 해칠지도 모르는 노릇이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는 방 문 앞에 검은 커튼을 쳐서 나를 지켜보기로 했다.

안에서 거실을 볼 수 없었지만

거실에서는 방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 방은 평소 할아버지가 명상을 하는 곳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모든 창(窓)이 열린 베란다가 으스스한 공기를 방 안으로 들이고 있었다.

사방이 캄캄한 어둠 속에서 혼자 있다는 생각을 하니 정말 무서웠다.

그럴 때 마다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할아버지가 주신 목검이 가지 말라는 듯 나의 몸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나는 베란다 창틀에 앉아 조용히 숨을 죽이며 밖을 봤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문을 열어놔서 그런지 빗방울이 방 안까지 튀었다.

한 동안 그것을 멍하니 보고 있었는데 엄마가 ‘스윽’하고 지나가고 있었다.

 

“엄마?”

 

엄마를 알아보고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불렀지만,

나는 곧 깨닫고 말았다. 그곳이 2층이라는 것을 말이다.

엄마의 얼굴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엄마의 얼굴이 천천히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열린 창문을 통해 스멀스멀 기어들어왔다.

연체동물처럼 검은 옷을 입은 그것이 요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녀석의 몸집은 엄청나게 커져있었다.

여전히 나를 조롱하는 듯 야비한 표정을 지으며 비웃고 있었다.

그러나 이내 곧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겁을 주며 다가왔다.

 

무서운 마음에 눈을 질끈 감았다.

분명 할아버지가 코앞까지 오면 목검으로 찌르라고 했는데 차마 움직일 수 없었다.

녀석은 내 앞에서 엄마의 얼굴을 하며 혀를 마구 놀렸다.

보이지 않았지만 입을 쩍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도영아, 엄마야.... 어서 눈 떠봐...

너 그렇게 엄마 모르는 척 하면 엄마 확 죽어버린다?”

 

그렇게 오래 살지 않았지만

그 동안 엄마가 했던 말과 행동들이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났다.

아버지와 싸운 뒤 엄마는 늘 나에게 죽어버리고 싶다고 했다.

본인은 아버지가 지긋지긋하게 싫으니

말이나 행동 그 어떤 것도 닮지 말라고 매일 당부했다.

혹시나 그로 인해 엄마가 잘 못될까봐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자랄수록 얼굴이나 행동이 아버지와 닮을 수밖에 없었다.

웃는 모습이 닮아서 싫다고 하면 웃지 않았고

젓가락질이 아버지와 똑같다며 짜증이 난다고 하면 숟가락만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아버지가 있는 날이던 없는 날이던

죽고 싶다며 먼저 저 세상에 가면 안 되겠냐고 했다.

우는 날이 계속 잦아지고 힘들다며 같이 죽자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 눈빛이 곧 일을 저지를 것 같아서

방에 몰래 숨어들어서 어머니를 지켜 본 적도 있었다.

녀석이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어머니를 따라했다.

그래서 목검으로 찌를 생각도 못하고 결국 얼굴을 보고 말았다.

 

그것은 다시 한 번 담임선생님의 얼굴로 변해 나를 흘겨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이내 고양이 얼굴로 변해서 조롱하듯 괴상한 표정으로 겁을 줬다.

무서워서 다시 눈을 감고 말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앞이 캄캄했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스윽’하고 다가와서 나의 목에 손을 댔다.

 

“너 같은 쓰레기는 말이야, 아주 싹수부터 노랗기 때문에... 낄낄낄...

아주 목숨을 끊어 놔야해... 낄낄낄.. 알겠어?”

 

그것은 나의 목을 사정없이 졸랐다.

고통스러움에 눈을 떴을 때, 계속해서 나를 비웃고 있었다.

부모님의 얼굴로 변했다가,

평소 나를 괴롭히는 친구들의 얼굴로 변했다가,

마귀같은 담임선생님의 얼굴로 변했다.

멸시와 희롱이 뒤섞인 눈빛들이 꼭 현실에서 그들이 나에게 짓는 것과 똑같았다.

문득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녀석의 행위에 동조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슨대는 ‘옳거니’하며 더욱 강하게 내 목을 졸랐다.

 

“안 돼!!!”

 

방문에 설치되어 있던 검은 커튼이 열렸다.

정신을 잃어갈 때 즈음 눈을 떠보니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필사적으로 그슨대를 나에게서 때어내려고 했다.

 

“안 돼, 차라리 날 데려가... 이 귀신아.”

 

그때 갑자기 방과 베란다의 통로가 ‘탁’하고 닫혔다.

순식간에 창문에는 누군가가 부적을 붙여댔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실 같은 것을 그슨대의 몸 일부에 감았다.

녀석은 당황했는지 여기저기 나갈 곳을 찾기 위해 두리번 거렸다.

하지만 실 같은 것이 몸에 엉켜있어서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애써 탈출하려고 크나 큰 몸짓을 마구 흔들어 몸부림을 쳤다.

 

“도영아 빨리 찔러레이, 지금 안 찌르면 평생 못 찌른다...”

 

어머니가 괜찮다며 나를 일으켜 세웠다.

모처럼 느낀 어머니의 따뜻함에 용기를 내어 품속에서 목검을 빼내었다.

할아버지가 시킨 대로 그것의 가슴팍에 목검을 꽂으려는 순간,

 

“으헤헤헤... 야이 새끼야, 니가 자식새끼야?

감히 니가 이 아버지를 찌를라고? 낄낄길...

찌르기만 해봐라, 아주 네놈의 새끼를 아작을 내버릴 기다... 낄낄낄...”

 

그것은 아버지의 얼굴로 변해서 위협했다.

다시 눈을 질끈 감고 얼굴을 돌려버렸다.

그때 누군가가 내 손을 잡고 어깨를 감쌌다. 바로 아버지였다.

 

“도영아, 정신 똑바로 차려라. 진짜 아버지다...

그러니까 겁먹지 말고 할아버지가 시킨 대로 해보는 거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의 양옆에 있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목검을 빼어 들어 그것의 가슴팍에 세게 꽂았다.

그것은 엄청난 굉음을 지르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가는 실로 그것을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두었고

안주머니에서 부적을 꺼냈다. 할머니가 라이터에 불을 켠 뒤, 부적에 불을 붙였다.

그야말로 여러 명이 귀신하나를 잡기 위해 나선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까맣게 탄 부적의 재를 그것의 머리에 비비며 주문을 외웠다.

녀석은 원망스러운 눈으로 식식거리며 나를 흘겨봤지만

곧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안심이 되었는지 털썩 자리에 앉아서 한숨을 쉬었다.

 

“원일아 고마 베란다에서 나온나...”

 

그슨대가 도망이라도 칠까봐 원일이는 베란다 박스에 숨어 문을 닫았고

창에 부적을 붙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날 어머니와 아버지는 나를 안고 펑펑 울었다.

 

어김없이 내가 없던 시간에도 부모님은 싸우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내가 집에 올 시간이 지나자 불안함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때마침 원일이 할아버지가 전화를 주셨지만 당장 화를 내며 나를 보내라고 했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할 말만하고 끊어버리자, 당황 한 것이었다.

결국 부모님은 원일이 집을 찾아왔다.

사실 부모님이 할아버지에게 화를 내려고 했지만 정작 혼난 것은 부모님이었다.

할아버지는 도대체 아이를 어떻게 키웠으면

아이가 매순간 불안과 두려움에 떨고 있냐고 호통을 쳤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의 부모님은 자신들이 아무 잘못 없다고 했다.

답답한 마음에 할아버지는 한 숨을 쉬며 방 안에 있는 나를 가리켰다.

방에서 홀로 경계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부모님은 그런 나에게 다가가려고 했지만 할아버지가 막아섰다.

 

“잠시만 기다려 보이소.”

 

할아버지의 강경한 태도에 부모님들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슨대가 나타나자 부모님은 경악했다.

자신들의 얼굴을 하고 자신들이 평소에 쓰던 말로

자신의 아들을 협박하는 모습을 보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고 했다.

 

“저것은 그슨대라고 하는 귀신입니다.

인간의 두려움을 먹고 사는 악령(惡靈)같은 것이지요.

지금 보이는 것은 도영이가 두려워하는 것들을 녀석이 알고 겁을 주는 것입니다.

사실 도영이는 그슨대가 무서운 것보다

평소 당신들이 도영이에게 심어 놓은 공포심이 무서운 것이지요.

부모인 당신들 책임이 매우 큽니다...”

 

부모님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고 했다...

 

결국 나는 8살 성장통을 이겨내고 성장했다.

이후 할아버지가 써준 부적 때문인지 훈계 때문인지

부모님은 더 이상 싸우지 않게 되었고

우리집은 원일이 집안가 매우 친해져서 자주 왕래하는 사이가 되었다.

 

할아버지는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절대 입 밖으로 내지 말라고 했지만

누군가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지는 것은 괜찮다고 했다.

믿거나 말거나 방식의 이야기로 말이다...

 

두려움을 먹고 사는 귀신 完

 

출처 짱공유 백도씨끓는물 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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