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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오는 군인

앙기모찌주는나무2018.05.23 19:11조회 수 1639추천 수 3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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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제가 군 복무할 무렵 이야기입니다.

 


저는 가평에 있는 부대에서 복무했었습니다. 

 


이 사건은 제가 일병 5호봉이던 시절, 탄약고 경계초소근무를 서던 전번초 근무자, 후임 김일병에게 일어난 사건입니다. 

 

 

 


[야, 일어나. 근무 가야지.] 

 


김일병은 불침번 근무자이자 고참인 신상병이 깨워 잠에서 일어났답니다. 

 


밖에서는 비 내리는 소리가 유난히 시끄러웠었 날이었지요. 

 

 

 


근무 시간은 새벽 2시부터 4시까지. 

 


가장 피곤하고 졸린 시간대. 

 


네 소대가 번갈아가며 한달에 1번씩 서는 탄약고 근무였습니다.

 

 

 


탄약고는 언덕쪽에 위치해 있었기에 투입시간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야 했죠.

 


그런 탓에 다들 탄약고 근무를 서는 날이면 매우 싫어했었습니다. 

 


거기다 비까지 오는 날이니, 그야말로 최악의 근무였습니다. 

 

 

 


김일병은 서둘러 환복을 하고, 단독군장을 차고 방탄헬멧을 쓴 뒤, 행정반에 가서 시건된 총기를 꺼내고, 대검을 받은 뒤 보고를 했습니다.

 


[당직사관님. 보고드립니다. 탄약고 근무 투입하겠습니다.]

 


[그래, 잘 다녀와라.]

 

 

 


졸고 있다 막 잠에서 깬 당직사관은 졸음이 덜 깬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대대 실장에게 보고 후, 팀장에게 공포탄을 받아 검사 후 출발을 했습니다. 

 


비오는 날이면 우비를 써야하는데, 김일병은 계급에서 밀리다보니 찢어진 우비를 받았더랍니다. 

 

 

 


그걸 쓰고 가니 비는 새고 옷은 젖어, 잠이 금세 확 깼다네요. 

 


그렇게 올라올라 탄약고에 도착해, 근무에 투입했습니다. 

 


고참과 같이 서는 근무.

 

 

 


고참은 초소 안에 들어가 쉬고, 짬이 안되는 후임은 밖에 서서 감시하는 당연스러운 전개로 흘러갔습니다. 

 


십분, 삼십분, 한시간... 

 


시간은 흘러가고, 김일병은 그저 멍하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탄약고 언덕길을 보고 있었답니다. 

 

 

 


그렇게 2시간 근무 중 1시간 20분 가량이 흘렀을 때, 김일병은 그 언덕길에서 보면 안될 것을 보고 말았습니다.

 


비가 흘러내리는 언덕을, 무언가가 꾸물꾸물거리며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찰박... 스윽... 찰박... 스윽... 찰박... 스윽...]

 

 

 


웅덩이를 짚는 짙은 소리와, 무엇인가 끌고 오는 소리. 

 


그렇습니다. 

 


그것은 기어오고 있던 것이었죠. 

 

 

 


김일병은 이때부터 온몸에 소름이 돋고 등골이 오싹해짐과 동시에, 제대로 된 사고가 마비됐다고 합니다.

 


극도의 공포와 마주치면 비명조차 지를 수 없다고들 하죠. 

 


입도 마비되어, 같이 근무 들어온 염상병을 부를 수도 없었다고 합니다. 

 

 

 


숨넘어갈 것 같은 목소리로 졸고 있는지 자고 있는지, 초소 안 기둥에 기대어 있을 염상병을 불렀지만, 들리지 않는지 그 상태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는 사이 그 소리는 더욱 크게 들리오고, 기어오는 것은 언덕길 중간에 파놓은 배수로를 지나오고 있었습니다. 

 


[철벅... 스윽... 철벅... 스윽... 철벅... 스윽...] 

 

 

 


짙게 들리는 물을 짚는 소리와 더불어, 그것의 형체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낡은 군복을 입고 있는 군인이었습니다.

 


허리 아래부분은 날아간건지 절단된건지 없었고, 찢어진 상의 옷가지만 끌려오고 있었다고 합니다.

 

 

 


비오는 날, 검은 형체가 기이한 소리를 내며 기어오고 있는 것만으로도 졸도할 지경인데, 김일병을 더 미치게 만든건 그것의 얼굴이었습니다.

 


두 눈구멍은 뻥 뚫려 눈알은 보이지 않고, 턱은 찢어져 간신히 붙어있는 채 덜렁거리고 있었답니다. 

 


그런 녀석이 말라 비틀어진 팔로 기어오는 모습을 보니, 완전히 정신이 나갈만도 하죠.

 

 

 


김일병은 자기도 모르게 공포탄 장전을 하고. 비명을 지르며 한발을 쏜 뒤 기절했다고 합니다. 

 


이후 총소리를 듣고서야 잠에서 깬 염상병의 긴급보고로, 거품 물고 실신한 김일병이 대대 팀장 및 오분대기조에게 실려 내려왔습니다. 

 


그 탓에 당시 졸고 있던 염상병은 진급이 누락당했고요. 

 

 

 


김일병은 쓰러진 이유를 대대 실장 및 대대장, 중대장, 주임 원사, 탄약관에게 죄다 보고했지만, 군대라는 곳이 어디 귀신봤다고 넘어가주는 동네겠습니까.

 


결국 군의관에게 "정신착란으로 인한 극도의 공포에 의한 발포" 라는 길고 얼토당토않은 판정을 받고 나서, 휴가도 잘리고 진급도 누락당하더군요.

 


하지만 제가 이 이야기의 진상을 알게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습니다.

 

 

 


염상병도 전역을 하고, 저와 김일병 모두 상병 계급장을 달고나서야 이야기 해주더군요. 

 


[김상병님, 제가 그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응? 뭔데?]

 

 

 


김일병이 공포탄을 쏜 이유가 따로 있었던 겁니다. 

 


그 기어오는 질척한 소리가 가까워 올수록, 목소리가 들리더랍니다. 

 


처음엔 [....줘 ...놔줘...] 하고 들렸는데, 얼굴이 보일 정도로 가까이 오니 겨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쏴줘" 라고 하고 있었습니다.]

 


[뭐?] 

 


[그러니까. 그 낡은 군복을 입고 기어오는 게 낮은 목소리로 "쏴줘" 라고 하더란 말입니다.]

 

 

 


아마 6.25 전쟁 당시, 폭격으로 하반신을 잃고 숨을 거둔 군인의 혼령이었을까요.

 


이유를 알고나니 마음이 착잡해지더군요.

 


6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그 아픈 몸을 이끌고 기어다니며 자신을 고통에서 해방시켜줄 누군가를 찾아다니는 군인의 혼령이라니. 

 

 

 


군 복무하는 도중, 전쟁의 참혹함을 다시금 뼈에 새겼던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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