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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 누나 이야기.txt(15)

익명_47ae902018.10.26 10:06조회 수 12385추천 수 2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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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편의 오류를 바로 잡아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지구 자전방향의 오류을 지적해주신 분들. 감사.) 

 

시작보다 끝내기가 정말 어렵네요.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글을 이해해주시는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긴말 하지 않고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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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도착지에 가까워지며 성층권에서 대류권으로 내려오고 구름 아래로 하강하며 지표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하면 기장이 도착지의 날씨나 시간을 알려주는 방송을 합니다. 그리고 음악을 틀으며 승객들의 잠을 깨우고 분위기를 환기 시키지요.

 

저는 이 분위기를 참 좋아합니다.

 

 

도착하는 곳이 집이건 외지건 잘 도착했다는 안도감, 여행은 여행대로의 기대감, 집이면 집으로서의 편안함이 섞여 마음을 동하게 합니다. 

 

 

비행 내내 혼자 감상에 젖어 비운의 왕자놀이 유행가 가사를 마음속으로 몇 곡이나 써대면서 이제 안책임님을 보낼 수 있다고 난 이제 괜찮다고 널 멀리서 지켜보며 응원하겠다고 속에서 울고 웃으며 10시간의 비행을 마쳤습니다.

 

 

공항에 도착해서 비행기에 내리자 입국 수속을 하러가는 통로에 수트 케이스를 옆에 두고 안책임님이 서 있었습니다. 어느새 후디와 트레이닝복 차림과  운동화에 안경까지 쓰고 있습니다. 표정은 훨씬 나아 보입니다.

 

나: "잘 쉬셨어요? 맛있는거 주던가요?"

 

안: "... 고마워요"

 

깊고 맑은 눈이 반짝입니다.

 

엄청 복잡한 마음을 담은 저 눈.

 

 

 

나: "다행이네요. 인천에서는 쓰러질 듯 했는데."

 

안: "맞아요. 아까는 너무 아파서 진짜 쓰러지는 줄 알았어요. 원래 잘 안아픈데 갑자기 아파서 당황했네요."

 

나: "라면 드셨어요? 내가 라면 먹으라고 그랬는데."

 

안: (웃음) "사실... 열시간 비행중에 한 일곱시간은 잤어요. 식사도 내리기 전에 주는거 하나만 겨우 먹는 둥 마는둥...."

 

나: "으악. 내내 잤다고요?"

 

 

아니. 비즈니스 클래스에서 잠만 자다 오다니..

 

 

 

안: "덕분에 정말 잘 잤어요. 비행기 타기 전날 밤 잠도 거의 못 자고 아침부터 소화도 안되고.. 생리 마지막날인데 몸은 엄청 무겁고.. 진짜 공항에 억지로 왔어요. "

 

나: "아이고.."

 

안: "비행기 타자마자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물 달라 해서 약먹고 비행기 뜨기도 전에 안대 쓴다음 그대로 꿀잠... "

 

 

네. 그런거 같아요. 사람이 완전히 변해있...

 

 

안: "정말 미안하고 고마워요. 비즈니스 클래스 티켓 산 거는.. 아니죠? 회사가 사줄리는.... 혹시 산거면 어떡해...아니면 마일리지 쓴거에요?"

 

나: "산거면 뭐 해줄건데요. 비스니스 클래스는 와인 리스트도 따로 있다던데.."

 

안: "손책임님은 앞으로 많이 탈거에요. 지겹도록. 그리 되기를 바래줄게요."

 

두 손을 잡고 기도하는 시늉을 하며 눈을 반짝이는 안책임님을 보고 있노라니 좌석 양보하기를 잘 한 것 같습니다.

 

 

 

 

 

저는 손짓으로 움직이자고 재촉했습니다. 빨리 입국 수속을 하고 짐을 찾아 다시 부치고 편하게 이야기하고 싶어졌습니다.

 

비행기를 탈 때만 해도 대화를 끌어 나가기 어렵게 분위기가 무거웠는데 어느새 우리는 다시 나란히 걷고 있었습니다. 입국 심사를 위한 줄에도 나란히 서 있었습니다.

 

 

나: "근데 어디 가세요? LA에 누구 만나러 가세요?"

 

안: "출장 간다니까요. ** 전시회."

 

나: "응? 아까 출장이라고 안했잖아요. 그리고 출장자 명단에도 없었는데"

 

안: "아까 출장이라고 했어요. 안했나? 아무튼.. 사정은 복잡한데 아무튼 가요. 가는거 결정된지 며칠 안되어서 그럴지도.."

 

 

기분이 묘합니다.

 

같이 출장을 간다니.

 

 

 

한참 만날 때 같이 출장 갈일 없을까. 어떻게 일을 만들 수 없을까 상상만 해본 적이 있었는데 헤어지고 나서 진짜 가게 되다니. 그것도 같은 비행기에 단 둘이.

 

 

입국심사를 간단히 거치고 짐을 찾아 다시 보냅니다. (아시겠지만.. 미국은 경유지에서 짐 찾아야 함) 

 

샌프란시스코에서 엘에이 까지는 겨우 한시간 반 비행이지만 공항에서 세시간을 놀다가게 생겼습니다.

 

자연스럽게.

그냥 같이 있게 되어버렸습니다.

 

 

 

안: "나.. 배고픈데 뭐 같이 먹지 않을래요? 샌드위치라도."

 

나: "네. 뭐라도 먹어요. 근데 진짜 별로 안 먹었나보네...."

 

안: "처음에는 자느라. 그리고 잠깨서는 소화 안될까봐 조금 먹다 말았는데 지금 엄청 배고파요. "

 

나: "저는 그냥 뭐 마실게요. 어디든 가요."

 

살아나긴 날아난 모양. 비즈니스 클래스 음식을 마다하다가 비행기 내려서는 배고프다고 하다니..

 

 

 

순간 옆에 서서 같이 걸어가는데

 

또 그 향기가 저를 휘감습니다.

 

 

아 혼미해지면 안돼. 정신차려 정신차려.

 

 

 

우리는 국제선 터미널에서 나와 다른 터미널로 이동하는 기차를 탔습니다. 어느새 안책임님의 짐은 제가 끌고 다니 있었고 손을 잡지 않은 것 빼고는 한두달 전으로 돌아간 것과 비슷했습니다.

 

복잡한 공항검색을 거치고 다시 터미널로 들어와서야 샌드위치 가게를 찾아 들어왔습니다. 벌써 진이 다 빠집니다. 이러니까 다들 직항 타려고 하지... 

 

비즈니스를 못 타서... 는 아니고 오랜 비행이 그래도 불편했는지 조금 피곤합니다. 한국이면 그래. 잘 때지. 지금.

 

뭐든 먹자해서 바로 보이는 샌드위치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미국에서 샌드위치 주문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데 점원 앞에서  익숙하게 영어로 주문하는 안책임님을 또 넋놓고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참 싱숭생숭합니다.

 

아 이 매력적인 사람. 하지만 내 것이 아닌사람. 

근데 왜 이렇게 익숙하게 또 같이 있는 건가.

 

 

그렇다고 

 

우리 왜 같이 있어요?    

다시 만날 것도 아닌데!

 

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고.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불편하지만 불편하지 않은 

지금 이대로 있으면 했습니다.

 

 

 

배고프지는 않았지만 저도 어떻게 샌드위치를 주문해가지고는  아이스티 두잔을 들고 둘이 좁게 앉을 수 있는 테이블에 마주 앉았습니다. 테이블이 너무 작아서 이 시끄러운 공항에서도 얼굴을 코앞에 두니 이야기에 집중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샌드위치를 덥석덥석 맛있게 먹는 안책임님을 두고 소화 안되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어떻게 지내셨어요. 전 잘 지내요. 

 

내용은 없지만 불편한 맥락의 이야기들...

그냥 피하고 싶었습니다.

 

 

 

나: "저 이 출장가고 두 주후에 일본가면 이 프로그램 끝이에요."

 

안: "와아 벌써 그렇게 되었나. "

 

나: "원래 반 년인데 두 달을 더했으니까.. 진짜 많이 다니긴 했네요. "

 

안: "이제 뭐해요 그럼? 부서 복귀하나?"

 

나: "그렇지 않을까요? 뭐 달리 생각 나는게 없어서.."

 

안: "이거 양성 프로그램 아니에요? 미국 보내고 그렇지 않을까? 글로벌 MBA니 이런거 보내주고 나중에 막 임원시켜주고..."

 

나: "에이. 아니에요. 저 그런 급 아니에요."

 

 

안책임님이 MBA이야기를 꺼내니 마음 한 켠이 쿵. 합니다.

 

저 먼 기억 어딘가에 생생히 살아있는 느낌들.

 

그 기억을 상기하자 순간 스팀팩이라도 맞은 듯 아드레날린이 확 돌면서 피곤이 싹 가십니다.  머리 속에서 그때의 기억이 한번 돌고 갔다는 걸 몰랐겠지요. 그때 나를 안아주던 그 풍경이 뇌에서 빠르게 신경들을 자극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안책임님은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고 있었습니다.

 

 

그냥 불편한 이야기는 말자.

 

이제 와서 그 밤에 왜 그랬냐고 이야기한들 무슨 의미가 있으며 나는 이해는 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지내는 이야기는 옆으로 치워 놓은 채

회사이야기를 조금 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조금 하다가

 

다음 비행기 시간이 되어 다시 비행기를 타러 갔습니다.

 

 

 

사귈 때도 서너 시간을 내내 같이 있던 적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 정작 헤어지고 나니 이런 시간이 주어지는 아이러니에 마음이 불편합니다. 더구나 만리 타국에서 누구의 시선도 불편할 것 없는 이 완벽한 타인으로 존재하는 이곳에서 우리는 연인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옛날에 이런 시간이 주어졌던들 무엇이 바뀌었을 까요.

 

 

경유편은 둘다 이코노미였지만 좌석이 좀 떨어져 있었고 굳이 붙어앉으려고 하진 않아서 또 따로 가게 되었고 저는 좌석에서 책을 보는둥 마는 둥 하다 그대로 짧은 잠이 들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안책임님은 고새 또 옷을 갈아 입었습니다. 인천에서 입었던 옷을 입고 있었고 간단히 화장도 좀 한 모양입니다.  짐찾는 곳으로 가니 캐러셀이 벌써 돌며 짐을 토해 냅니다. 안책임님은 짐을 부치지 않았지만 그래도 옆에 있어주었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지나도 제 짐은 안나왔고 결국 마지막 짐을 다 찾아가고 캐러셀은 멈추고 저와 안책임님만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이런 적은 처음이어서 당황스러웠습니다.

 

 

나: "아... 짐이 안 왔나봐요.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뭐가 잘 못된 모양인데.."

 

안: "저기 항공사 카운터 가서 이야기해보세요. 최소한 딴 비행기에 태운건지 안 태운건지라도 알아야지..."

 

나: "아... 머리 아프네..."

 

 

항공사 카운터 터벅터벅 걸어가긴 했는데. 솔직히 안책임님 앞에서 영어하기가 싫었습니다. 그냥 짐이 안 왔어. 어딨어. 하면 되니 얼레벌레 영어로 할 수 있을 것 같긴했는데 괜히 안책임님이 신경이 쓰였습니다.

 

직원에게 짐이 없다고 하자 직원은 짐 드랍할 때 받은 태그를 보여달라고 합니다. 

 

 

어... 태그가 없다... 

여권에 껴 두었는데..

 

 

몇페이지 되지도 않는 여권을 추르륵 뒤지고 허둥지둥 주머니에 가방에 난리 법석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백인 아줌마 직원은 그 모습을 한심한 듯, 하지만 익숙한 듯  쳐다보고 있었고 저는 당황하여 찾은 곳을 또 찾고 뒤지고를 반복했습니다.

 

 

갑자기 땀이 납니다.

 

나: "아.. 어디갔지.."

 

안: "같이 찾아 줘요?"

 

나: "아니에요. 제가 찾을게요..."

 

 

생각하다보니..

 

아. 인천에서 비행기 타기 직전에 안책임님에게 황급히 보딩패스를 안겨주고 뒤도 안돌아보고 간다는게 그 사이 뭔가 흘린 것 같습니다.

 

 

 

직원: (영어로) "클레임 태그 없으면 안돼. 그거 꼭 있어야 돼-"

 

(--죄송합니다. 여기에  영어로 쓸 수는 없...--)

 

 

나: "아. 티켓하고 같이 둔 것 같은데..."

 

안: "보딩패스에 붙어있나?" 

 

제가 아까 주었던 티켓을 보지만 없습니다. 순간 안책임님도 뭔가 꺠달은 듯 합니다. 내가 성급하게 티켓을. 그러니까 멋있는 척 해볼라고 휙 주고 난 자리에 흘린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도 뭔가 책임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 듯

 

자신이 나서더니

직원을 앞에두고 또 후루룩 영어를 쏟아냅니다. 

 

 

분명히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찾아서 다시 잘 부쳤다. 태그 없으면 어려운 것 맞지만 그래도 트래킹 되지 않니. 좀 해줘. 응? 우리 짐 없으면 안돼. 없어도 찾을 수 있잖아. 응?  나 니가 할 수 있는 거 알아. 오 그건 그렇고 너 오늘 하고 온 목걸이 이쁘다....

 

 

딱 들어도 

적당한 레벨의 부탁과 적당한 레벨의 권리에 대한 요구. 

그리고 영혼없지만 그냥 미국애들끼리 보통 하는 칭찬.

  

 

직원은 한숨을 팍 쉬더니 '원래 안돼... '라고 하고 보딩패스를 달라 합니다. 한두군데 전화를 하고 컴퓨터에서 이것저것 입력을 하더니 제 짐의 위치를 찾았나 봅니다.

 

직원: (역시 영어로) "니 짐은 라스베가스에 있어. 미안."

 

나: "아니 왜 거기에 있어! 내 짐에 LAX 라고 딱 써 있는 태그를 달았는데!"

 

직원:  "미안. 너 호텔 주소 적어주면  보내줄게. 아마 내일은 가겠지."

 

 

 

미국인 특유의 '미안해. 근데 내가 해줄 수 있는건 여기까지.'...

   

짐은 홀랑 안 오고 숄더백에 (쓰잘데 없는 여자 화장품이나 있는) 면세점 쇼핑백을 든 꼴이 참 말이 아닙니다. 회사 일행이라도 있었으면 난처했을 뻔 했겠지만 만약 직항으로 왔으면 이런 일도 없었겠지요.

 

 

저는 그냥 오케이... 하면서 한숨쉬면서 호텔 주소와 제 이메일, 전화번호를 적고 떠나려고 하는데 안책임님이 직원을 붙잡고 말을 계속 합니다.

 

 

(직원에게) 내일은 오는 거 맞아? 라스베가스에서 바로 페덱스같은걸로 다시 이리로 부치면 오늘 밤에도 오는거 아니야? 담당자 전화번호 줘. 대표번호 말고. 한번에 연결되는거. 

 

(나에게) 책임님. 현지 전화번호 다시 확인해 봐요.  전화되나 확인도 해봐요. 심카드 껴도 안되는 때 많잖아요.. 아까 전화도 해 봤나? 음. 오케이. 되네. 

 

(직원에게) 그리고 오버나이트 키트 같은거 없어? 당장 씻고 뭐 갈아입는 거 그런거 있지 않아? 이 사람 어쩌라고. 세수도 못하고 열다섯시간 왔다고.  그리고 오늘 이 사람 뭐 사야하잖아. 바우처 같은거 있잖아. 돈 얼마 쓸 수 있는거. 그거 줘. 몇 십불이라도 줘. 보상금 말고. 그건 따로 신청할꺼야. 지금 옷 사야 해....

 

 

후두둑 쏟아내는 영어를 또 넋놓고 보고 있는 저도 참 웃깁니다. 주위에 영어 하는 사람 천지이고 심지어 원어민도 많은데 안책임의 영어는 그냥 넋놓고 듣고 싶습니다.

 

 

사무실로 들어간 직원이 서바이벌 키트를 들고 나옵니다. 이것저것 이름쓰고 싸인하고 한 다음 이제 불쌍한 몰골로 자동차를 렌트하러 갑니다.

 

 

 

안: "아휴. 왜 짐이 없어졌대... 그나저나 꼭 달라고 해야 이런걸  준다니까..."

 

안책임님이 같이 여행다니면 

정말 편할 것 같습니다.

 

 

나: "뭐 어쩌겠어요. 내가 비행기에 직접 실을 수도 없는 일이고.. 어떻게 하루 버텨보죠 뭐. 그건 그렇고 호텔 어디세요? 차는 어떻게 해요?"

 

 

안: "나 렌트 예약했어요. 호텔은 ***인데.. "

 

나: "엇. 거긴 어디지. 회사 사람들 다 @@@이던데.. 왜 혼자 거기 계세요?"

 

안: "회사에서 해준건데.. 난 따로 인가 보죠 뭐. 책임님도 렌트했죠? 같이 차 찾으러 가요."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졌습니다. 

 

아. 면허증...

 

 

 

나: "국제 운전 면허증이 수트 케이스에 있어요.."

 

안: "아니 왜 그걸 거기에 넣어요!"

 

나: "어제야 생각나서 갑자기 만들고 어쩌다보니 짐싸다가 거기에..."

 

안: "어휴... "

 

뭔가 곰곰히 생각하더니.

 

 

 

안: "캘리포니아는 국제운전면허증 어차피 안 통해요. 한국 면허증은 있어요?"

 

나: "네 지갑에..."

 

안: "그럼 그걸로 빌려요. 캘리포니아 경찰은 어차피 국제 면허증은 안봐요. 렌트카 회사에 한번 이야기해봐요. 난 될거 같은데..."

 

나: "국제 운전면허증도 없이 미국에서 운전을 한다고요? 그게 돼요?"

 

안: "될거에요. 믿어봐요!"

 

 

반신반의하면서 렌트카 픽업하는 곳으로 갔는데 면허증 주세요. 말에 국제면허증은 없고 이거요 하면서 한국 면허증을 줬더니 이것만 보고 진짜 국제 면허증없이 차를 빌려주었습니다! 헐.. 

 

 

와. 진짜.

안책임님만 따라다니면 다 해결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

 

여행지에서 길을 잃고 표류하는 나를 구해준 여신과도 같았습니다.

 

 

 

렌트카에서 차를 찾자 또 뭘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반년동안 열 몇번을 해외를 다녔는데 갑자기 해외 처음 나가 본 바보가 된 느낌입니다.

 

이상하게. 안책임님이 옆에 있으니까 더 바보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뭐라 할 말이 없어서.. 

 

그럼 여기서 헤어지나? 내일 전시장에서 봐요? 저녁먹어요? 차라도 한 잔?

 

머리속에서 이래저래 생각이 스치고 있는 중에.

 

 

 

안: "짐 속에 뭐 있었어요? 최악에 경우 내일도 짐이 안온다. 하면 문제 있는거 없어요?"

 

나: "아...놋북같은건 여기에 있고..  일단 구두가 거기있고 옷이랑..  뭐 있더라..."

 

안: "키트 꺼내봐요. 뭐 있나."

 

항공사에서 준 키트를 보니 세면도구랑 반팔 티셔츠 따위 들어 있었습니다.

 

 

안: "아무 도움도 안되겠네.. 비누 샴푸 칫솔같은건 호텔에도 있는건데. 면도기 이거 쓸 만 한거에요?"

 

나: "뭐 그냥 하루는 쓰겠는데.. 옷이 문제긴 하네요."

 

안: "되도록이면 그냥 다 사세요. 내일 이거 입고 전시장 갈 수는 없지 않아요? 미국에서 제일 싼게 옷인데.."

 

나: "아.. 어디로 가야하나.."

 

안: "호텔 근처 어디 쇼핑몰이나. 모르겠으면 월마트나 타겟이런데 검색해보세요."

 

 

 

렌트카 오피스의 북적이는 분위기에서 저는 검색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땀이 나고 피곤이 몰려오고 뭔가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사고가 잘 안됩니다.

 

 

급기야...

 

나: "책임님... 같이 가주세요. 그리고 어디 갈지 잘 모르겠어요."

 

최대한 불쌍한 얼굴로 부탁했습니다.

 

안: (한숨) "전화기 줘봐요."

 

 

 

 

구글맵에서 이것저것 검색해 넣더니 주소하나를 보여줍니다.

 

안: "여기 찍고 가요. 좀만 더 늦으면 길막혀요. LA근방이 얼마나 난리인데. 빨리 가요 빨리. 나도 여기 찍고 갈게요."

 

차라리 차가 하나였으면 좋을텐데. 아무튼 안책임님이 찍어준 주소로 차를 몰고 공항을 빠져나갔습니다. 안책임님 아니었으면..  공항에서 바보같이 인터넷만 검색하며 어찌할 줄 모르고 있을 뻔했습니다.

 

 

안책임님은 도착하자 마자 저에게 생각나는대로 필요한거나 짐가방에 있던걸 불러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전화기에 하나하나 다 받아 적고는 제 팔을 붙잡고는 카트를 빼서 끌고 들어갑니다. 빨리 가요. 빨리. 하면서.

 

 

그 넓은 마트를 안책임님은 와 본 것일까요. 살 것이 많지는 않았지만 후닥닥 쇼핑을 하더니 맥주도 집고 물도 큰 페트 두 개를 삽니다. 

 

안: "호텔에 물 돈주고 사먹기 아까우니까... 그리고 맥주는 나 먹을거에요. 나 사줄거죠? 손책임님도 맥주좀 살래요. 그냥 여섯개짜리 식스팩 같이 하나 사요."

 

 

그리고 재빨리 옆에 옷가게로 운전해서 이동해서는 이 브랜드가 옷 좋고 싸다며 셔츠와 바지 하나 사랍니다. 저는 아내 따라 쇼핑하듯 별 저항없이 줄래줄래 따라가 비싸지 않은 셔츠 면바지를 몇개 입어보고는 순식간에 하나 사서 나왔습니다.

 

 

진짜 부부같다.

여행온 것도 아니고 어디 미국에서 사는 부부같다. 

이렇게 생필품 쇼핑하고 바로 입을 싼 옷 하나 사고..

입은거 봐주고 좀 길다 접어야겠다 이야기해주고...

 

기분이 너무 묘한데 안책임님은 아는 듯 모르는 듯 절 이리저리 끌고다니고 쇼핑을 마쳤습니다.

 

 

 

안: "호텔 들어가서 첵인하고 지금 입은 옷은 바로 빨래 맡겨요. 짐이란게 오면 다행인데 혹시 모르니까..."

 

나: "안책임님 아니었으면 바보같이 어디 전화만 하고 있고 지금도 공항에서 어쩌지어쩌지 이러고 있었을거 같아요."

 

안: "출장 처음 온 사람도 아니고 미국 많이 와본 사람이 왜 그래요."

 

그러게요. 저도 이상해요.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나: "어떻게 그렇게 여길 잘 아세요?"

 

안: "살았었으니까..."

 

나: "아! 그렇...."

 

 

 

아..

그래. 미국 생활.

별로 행복하지 않았었다는 안책임님의 미국 생활.

 

데이트할 때 생각보다 미국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았는데.

정작 우리는 지금 미국에 같이 있다.

 

 

 

어색한 침묵이 약간 흐른 후.

 

이야기를 그리로는 진행하고 싶지 않아 화제를 돌렸습니다.

 

 

나: "법인 총괄 VP(상무)가 이번 출장팀 밥산다고 하는데 안가세요?"

 

안: "난 명단에도 없을텐데. 안갈래요. 손책임님 가세요. 내일이 전시인데 술 많이 안 먹을거에요. 요즘 같은 때에.."

 

나: "한식당 아니래요. 그리고 운전하는데요 뭐. 무슨 엄청 좋은 스테이크집이라는데. 하긴 미리 예약한다고 인원 체크하긴 하더라.."

 

안: "난 욕조에 물받아놓고 맥주 마시고 호텔방에서 뒹굴거리며 티비볼거에요. 그거 하고 싶어서 출장왔어요."

 

 

 

그냥.

어떻게 오게되었는지.

애는 누가 보는지.

무슨 일 하는지.

 

일부러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회사일에 전력을 다하던 사람.

 

올만하니까 왔겠지.

 

 

 

호텔에 첵인하고 바로 저녁자리로 이동해 회사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짐이 안와서 고생한 이야기를 무용담을 하듯 늘어 놓으며 즐겁게 식사를 하고 모르던 사람들과 인사를 했습니다. 전시때문에 며칠 전에 온 사람도 있고 어제 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안책임님 팀에서는 온 사람이 없었습니다. 

 

 

호텔로 가서 긴 하루를 마무리하며 씻고 안책임님과 샀던 맥주를 따서 마시며 안책임님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나: [["오늘 덕분에 이렇게 호텔방에 새 옷입고 누워 있습니다."]]

 

그리고 한참 뒤. 

저도 불을 끄고 눕자 그제사 메시지가 날아왔습니다.

 

안: [["good night."]]

 

 

 

 

아침에 일어나 항공사에 전화해서 제 짐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호텔에서 간단한 아침을 먹었습니다. 비즈니스 출장이라 해도 미국 서부이니 포멀한 옷은 없어도 면바지 스니커즈정도는 이해되는 것 같아 별 고민없이 입고 나섰습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썸녀 아가씨에게 전화를 한다는 것이 정신이 없어 간단히 안부 메세지만 남겼습니다. 

 

호텔 로비에서 같이 태우고 가기로 한 몇몇 회사 사람을 데리고 전시장으로 갔습니다. 처음엔 이런거 다니는 것이 설렜는데 많이 다니니 이젠 느낌이 없습니다. 배부른 소리지요. (이 글을 쓰는 시점엔 매우 그립습니다. 좋은 시절.. )

 

오전에 기조 연설 듣고 낮에 재빨리 다니며 오후에 이른바 고위임원이 올때 다닐 곳을 미리 찍어 달라는 부탁을 받아서 후루룩 다녔습니다. 

 

등록하는 데스크에서부터 안책임님을 찾아 두리번 거렸지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혼자 다니는 것이 그리 외롭진 않았지만 안책임님이 문득 보고 싶었습니다. 왜 하필이면 출장을 같이오게 되었고 이렇게 엮인 걸까. 

 

보고싶은 마음에 불편한 마음이 섞였습니다.

 

 

이래저래 부지런히 다니고 적고해서 임원 수행진에게 필요한 내용을 보내고 나니 오후가 되어서 주최측에서 주는 커피를 들고 전시장 구석 벤치에서 퍼져 앉아있으려니 피로가 몰려 옵니다. 그 때 메시지가 하나 날아왔습니다.

 

 

안: [["많이 보셨어요? 이번에도 참관하러 온거죠? 파트너쪽 일도 하세요?"]]

 

나: [["파트너는 내일 만나고 오늘은 그냥 다녔어요. 벌써 피곤하네요. 어디 계세요?"]]

 

안: [["2층 EAST라고 되어 있는데. 잠깐 보실래요?"]]

 

나: [["네 그리로 갈게요. ]]

 

 

 

가벼운 단화에 어제와 같은 바지 좀 더 발랄한 블라우스 그리고 노트북 백팩.

 

한국 사람들은 이런데도 꼬박꼬박 정장입고 오는 사람 많은데 이렇게 나타나니 무슨 교포 같아 보입니다.

 

 

나: "왔다갔다 하면 한 번은 마주칠 줄 알았는데.. "

 

안: "워낙 넓으니까.. 나 사실 오전엔 밍기적거리고 점심부터 와 있었어요." 

 

니: "무슨 일로 오신거에요? 전시도 아니고 커뮤니케이션도 아니고. 참관인거에요? "

 

안: "굳이 이야기하자면 임원 대타 참관. 나 근데 여기서 한 10분만 뭐 좀 할게요." 

 

 

 

노트북을 펴더니 보아하니 회사일입니다. 문서 몇 개를 보고 메일 두어개 를 쓰더니 "에잉 모르겠다"하더니 덮어버립니다. 

 

안: "갑자기 온거라 백업을 제대로 안하고 와서 걱정이네요. 민폐네..." 

 

나: "와서는 그럼 관람만 하시면 돼요?"

 

안: "보고서 써야죠.  팀에 관련된거 중심으로 보겠지 뭐. 그나저나 짐은 왔어요?"

 

나: "오후에 호텔로 갖다 준다 했으니 지금 왔겠네요."

 

 

 

안 본데 있으면 같이 다니자는 말이 안떨어집니다. 저녁 약속도 말이 안 나옵니다. 헤어진 마당에 같이 있고 싶다는 감정이 한심하기도 했고 자꾸 이야기하다가는 다시 만나자는 말을 하게 될것 같기도 했고 그리고 거절당하는 상상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오후 시간을 보내고 저녁무렵이 되어 첫날을 정리하고 회사 사람들끼리 저녁을 먹네 이러고 있을 무렵 전략팀의 모 선임이 보고서좀 써서 급 되는대로 보내달라는 요청을 보내왔습니다. 

 

 

선임: [["책임님. 전시회 어떠십니까. 키노트랑 주요 전시 보고서 써서 한국시간으로 오늘까지 보내주실수 있을까요?"]]

 

나: [["아니 무슨 요청을 지금해요. 보통 전시 끝내고 한꺼번에 보냈는데 왜 갑자기 그래요. "]]

 

선임: [["진짜 죄송해요. 내일 **보고에 이 전시회에서 나온거랑 껴서 같이 올린다고 해서요. 실제 간 사람이 쓴거 기반으로 해야 되서 그런가봐요. "]]

 

나: [["아 그럼 미리 말을 하던가. 지금 어떻게 보내요."]]

 

선임: [["지금 한국시간 아침이니까 거기 저녁에 좀.. 써주시면 안될까요. 갑자기 요청해서 죄송합니다..."]]

 

나: [["아 몰라. 난 막 써서 보낼거니까 알아서 컬러링해요."]]

 

선임: [["넵넵. 건강히 계시다 오세요!"]]

 

 

메세지로 까칠하게 하긴 했는데 뭐 이친구도 위에서 하라니까 이러겠지 생각하니까 얼른 써서 보내야 하긴 했습니다. 회삿돈으로 오긴 왔으니 하긴 해야겠는데 귀찮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합니다. 어제 메모로 적은 거에 살을 붙이면 되겠다.. 하고 있는데 또 메세지가 옵니다.

 

 

선임: [["책임님. 여기 지금 오전 아홉시인데요. 열두시까지 가능할까요. 진짜 죄송해요. 점심때 패키징해서 서면으로 먼저 올린다고 해서.."]]

 

나: [["그렇게 요청하는게 어딨어요! 여기 상황이 어떤지도 모르고. "]]

 

선임: [["진짜 죄송해요. ㅜㅜ"]]

 

 

세시간 안에 쓰라고... 

 

 

 

솔직히 쓰라면 못 쓸 것도 없는데 갑자기 쓰라니까 좀 짜증이 납니다. 그러다가 안책임님 생각이 났습니다. 

 

 

안책임님도 보고서 써 놓은게 있을텐데. 좀 도와달라고 해야겠다... 

 

며칠 전이었다면 생각도 못할 일이었는데 여기에 와서 도로 가까워졌다는 생각에, 혹은 착각에 챙피한 줄도 모르고 별의별 부탁을 다 하고 있었습니다. 

 

밥먹자는 말은 못해도 이런건 왠지 부탁할 수 있을거 같았습니다.

 

 

 

 

나: [["책임님. 전시 보고서 좀 쓴거 있으세요?"]]

 

안: [["대충.. 정리는 안되어 있는데. 왜요? 필요해요? "]]

 

나: [["혹시 공유좀 해주실 수 있어요? 전략팀에서 갑자기 써서 달라는데 제가 써 놓은게 별로 없어서..."]]

 

안: [["그 쪽은 왜 일처리가 그모양이래..  저도 정리는 안해놔서 바로 보낼 건 없어요. 그럼 어디 만날데 없나? "]]

 

나: [["어디 인터넷 되는데서 뵈어요. 커피숍이나.. 여기 안이면 더 좋은데..]]

 

안: [["1층에 비즈니스룸이 있던데 거기서 십오분 후에 봐요. 씨유순!"]]

 

 

 

흔쾌히 도와주겠다는 안책임님이 백만원군 같았습니다. 둘이 만나 테이블에 노트북을 나란히 펴 놓고 저는 눈만 껌뻑이고 있는데 안책임님은 앉자마자 일사천리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안: "대충 프레임은 잡아 놓았나요? 무슨 말 쓸지."

 

나: "머릿속에 와꾸는 만들어 놓긴 했는데..."

 

안: (갑자기 정색) "와꾸는 나쁜 말이래요. 쓰지 마세요. 아무튼."

 

중간중간에 전화기를 보며 메세지를 보내는 걸 보니 원래 약속이 있던 것 같습니다. 미안하다는 말도 못하고 그냥 가라고 해야하나 있는데 너무 몰입해서 일을 하고 있어서 그대로 있었습니다.

 

몰입해서 일하는 모습을 보다가 너무 옆에 붙어 있으려니 어깨가 부딛치고 팔이 닿습니다. 눈길이 블라우스 사이로 자꾸 가면서 옛날에 있었던 스킨쉽들이 자꾸 생각납니다. 

 

옛날에 이렇게 출장을 같이 왔다면 아마... 같이 잤겠지? 별의별 생각을 하며 자꾸 일 생각은 안하고 몸과 옛날 기억에만 몰입하기 시작해서 일부러 조금 떨어져 앉았습니다. 

 

 

정신차려. 정신차려..

 

 

 

콜라를 들이키고 정신을 차리고 나니

폭풍처럼 써내려가는 안책임님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저도 명색이 과장급인데 이렇게 옆에 배우듯 앉아 있는 것도 부끄러웠지만 그걸 따질게 아니었습니다.

 

나: "키노트(기조연설)는 어떻게 해요. 저 써 놓은게 있긴 한데.. 이걸로 되려나.."

 

안: "이건 기사에서 참조해서 우리가 살을 붙입시다. 미국 언론에서 다 취재해 갔으니까 누군가는 썼겠지. 요즘 또 블로거들이 얼마나 난리인데... 아참 사진 찍은거 있으면 이쪽 으로 옮겨 주세요. "

 

 

영자 기사를 쓱 읽으면서 종이에 몇가지 키워드를 옮겨 놓고 컴퓨터로 옮겨와 일필휘지로 써 내려가는게 고대 중국 전쟁터에서 장수가 무쌍을 벌이는 듯합니다.

 

어릴 때 동네 오락실에서 형들 오락하는 거 보듯 그냥 넋놓고 보고 있는데 동네 오락 고수 형이 필살기 알려주듯이 말을 하나 던집니다.

 

안: "자. 봐요. 이런건 그냥 안 쓰고 어노테이팅하듯 쓸게요. 그래야 내 의견과 스피커 말이 구분이 되지. 서식 복잡하게 하지 말고 그냥 탭만 넣어서...."

 

 

근 세시간동안 춤을 추듯 하는 고수의 아름다운 무쌍난무를 감상하고 마무리를 하는데 또 묘한 감상에 젖게 되었습니다. 

 

 

처음 TF에서 만나 옆자리에서 일 할 때가 어찌보면 가장 좋은 때가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매일 보고 바로 옆에서 이렇게 가까이 어깨를 대어 일을 하고 이야기를 했던 그 때.

 

 

 

 

그때로.

그때로라도 돌아갈 수 있다면.

 

아니 그냥 이렇게 누나로라도 남아서 같이 있을 수 있으면.

 

밖에서는 못 봐도 오피스에서라도 누나로 남아서 같이 있어 준다면.

 

결혼이 안된다면 연인이 안된다면.

 

 

 

오피스 남매라도 

어떻게 안될까. 

 

 

 

 

 

 

 

안: "책임님 메일로 보냈어요. 이름도 넣어두었으니까 그냥 재전송 해버려요. 난 여기에 내껄로 고칠테니까.. 어차피 난 내용도 좀 넣어야 하고. 귀찮긴 했지만 덕분에 한번에 털었네."

 

나: "책임님."

 

안: "왜요? 저녁 사게? 고맙지만 나 약속있어요 미안."

 

나: "아니 그것도 그렇고.."

 

안: "??"

 

 

잘 이야기해야하는데. 

말이 잘 안 만들어 집니다.

 

 

나: "우리. 다시 만날 수 없으면.."

 

안 :"...."

 

나: "누나동생으로라도 안돼요? 아니 그냥 친구어야 하나.."

 

 

순간 안책임님의 표정이 매우 안 좋습니다.

아 또 뭔가 잘못한거 같다.

 

 

 

안: "참... 답을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하시네요.."

 

나: "아니 왜 어려워..."

 

말을 하는 순간 안책임님이 노트북을 덮더니 전화기와 노트를 챙겨 가방에 넣고 일어섭니다.

 

안: "미안. 먼저 갈게요."

 

 

갑자기 등을 돌리고 나가버리는 안책임님.

그런데 손이 눈에 가 있었습니다.

 

어. 

혹시 울고 있나?

또 화났나?

 

 

아. 또 어색해져 버리고 말았다.

예전까지는 아니어도. 

어제. 오늘. 뭔가 다시 돌아온 것 같아서 좋았는데.

 

 

 

허망한 마음에 저도 노트북을 챙기고 일어서며 메세지를 하나 보냈습니다.

 

나: [["제가 이상한 말을 한 것 같네요. 미안해요. "]]

 

 

 

비내리던 날 밤이 오버랩되면서

또 내가 뭘 잘못했나 생각하면서 짜증이 확- 났습니다.

 

아유.. 됐다. 됐어.

내가 뭘 바라고 자꾸 감정을 닿게 하나.

 

 

시간이 지나도 답은 없었고 저는 회사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저녁 식사 자리를 알아 냈지만  너무 멀기도했고 귀찮아졌습니다.

 

그냥 근처 식당에서 피자 한판 사들고 호텔에 가서 맥주랑 먹고 이제사 배달 온 짐을 정리하며 농구를 보다 잠이 들었습니다.

 

 

 

그래.

아닌거야.

 

아닌거에 실마리라도 잡아보려고 애쓰는 마음을 발견하고 

애써 지우려고 노력했습니다. 

 

저 사람이 저렇게 아니라는데

그렇다고 내가 애써 끌어 오는 것도 아니면서

 

왜 난 이렇게 눈만 껌뻑이며 서 있나.

 

 

 

 

 

 

 

 

 

 

 

 

 

(계속 - 다음 편은 며칠 이내로 올리겠습니다. )



익명_47ae90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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