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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커튼이 쳐진 고시원 1

title: 연예인1오바쟁이2019.01.22 13:04조회 수 4922추천 수 3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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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죠?
 
춥네요.......
 
몸도 춥고, 배도 춥고 방도 춥도 옆구리도 춥고......
 
낮에 잠깐 틈이 나서 밀게에 작은 아버지 군 생활 짧은 웃긴 썰을 풀었는 데,
 
공게에 암것도 안하구 자려니 왠지 고준희 놔두고 딴 여자 만난 기분...ㅋㅋㅋㅋㅋㅋㅋㅋ
 
일단 경험담은 쓰기 시작 하면 시간 많~~~~이 걸리니  오늘은 그냥 소소하게 글 하나 퍼 올께요.
 
혹 공게에 공개된 글인지 치밀(?)하게 검색 까지 해 봤는데 없는 글이라....
 
전 잼나게 읽은 거라...
 
안 보신분 킬링타임용으로 보세요.
 
전 주말이나 경험담 쓰러 또 올께요~~~~~
 
굿  밤!!~~~~~
 
 
 
웃대의 안영준님 글 입니다.
 
 
 
(1) 입 실





내가 신림동에 있는 S고시원에 들어간 것은 7월 말이었다.
 
사시 2차 불합격 결과가 나오고 몇 달을 방황하다가 -너무나 흔한 말이지만-올해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택한 고시원 행이었다.
 
 낙방하고 난 뒤 몇 달을 위로주랍시고 술에 절어 지냈더니 돈이 모자라서 애지중지하던 깁슨 레스폴 커스텀 기타까지 팔아야했다.
 
H대학 보컬그룹에서 기타를 칠 때 5달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돈으로 산 보물 1호였다. 그것을 낙원상가의 중고매장에 헐값으
 
로 넘기며 생각했다. 반드시 올해 합격해서 첫 검사월급을 룸살롱 호스티스 가슴골이 아니라 이놈을 다시 사는데 써야겠다고. 




신림동에 널리고 널린 고시원 중에서 특별히 S고시원을 택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우연히 보게 된 주간 '고시소식'에 매년 너덧명의 고시합격자를 배출
 
해 내는 이른바 '명당'으로 소개된 곳 이었던 것이다. 너덧명이라고 하면 잘 실감이 나지 않지만 전체 수용인원이 50명이 고작인 작은 고시원에서 너덧
 
명이면 거의 10%에 육박하는 놀라운 합격률이었다.
 
보통 고시원 쪽방이 한쪽 면에 10개씩 늘어서 있으니까 매년 그 중 한 방에는 '축 합격' 플랭카드가
 
붙는다는 뜻이다.
 
 
 
10연발 권총에(그런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랜덤으로 총알을 한발 넣어보자.
 
그걸 머리에 대고 쏘면 1억을 준다고 해도 진심으로 선뜻 응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10%라는 수치는 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 




"방이 다 찼는데요. 방학시즌인데다 '고시소식'에 나오면서 진짜 순식간에 꽉 찼다니까요.
 
 지금 예약하셔도 두 달은 기다리셔야 해요" 

눈이 반쯤 감긴 총무가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말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앞 이빨이 툭 튀어나온 마른 남자였는데 벌써부터 훌떡 벗겨진 이마에는 벌건 반점이 일장기처럼 찍혀있었다.
 
아마 뼈 밖에 없는 팔뚝에도 같은 문양이 찍혀있을 것이다.
 
 두툼한 헌법책은 책상 뒤쪽에 마련된 간이침대에 있었으니 용도를 알만 했다.
 
고시원 총무를 몇 년쯤 하다보면 누워서 공부를 할 수 있는 내공이 생기나 보다. 

"어제 전화 드렸을 땐 방 하나가 남았다고 하셨잖아요?" 

내가 따지듯이 묻자 총무는 아아..그거요 하면서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제가 잠이 덜 깨서..잘못 말씀 드렸어요. 원래 그 방은 비어있는 방인데.." 

"원래 비어있는 방이요?" 

어이가 없었다. 비워두기 위해서 있는 방이라니. 

"그게 사정이 좀 있어요. 실생들 불만이 유난히 자주 들어오는 방이라서 작년 가을 이후로 가끔 청소 할 때 빼놓곤 잠가두고 있거든요." 

총무가 이제 잠이 깨는지 발음이 좀 또렷해졌다. 튀어나온 앞니로 아랫입술을 잘근 잘근 씹으며 잘도 지껄여댄다. 

"불만..이라니요..?" 

"별건 아니에요. 자꾸 옆방에서 소리가 들린다고 하고 문 앞에 사람이 자주 왔다 갔다 해서 집중이 안 된다고도 하구요.
 
원래 고시원이라는 데가 그렇잖아요. 방음도 잘 안되고 사람도 많고.."


"유독 그 방만 그런가요?"


"위치상 문제될 건 없어요. 세면실이나 휴게실하고도 떨어져 있구요. 아, 창가 쪽이라서 외부소음이 좀 있긴 해요.
 
창문이 상가 주차장이랑 면해있거든요. 그래도 심각할 정도는 아닌데...아무래도 방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유독
 
그 방에 들어오신 분들이 신경이 좀 예민하셨던 것 같아요.
 
아무튼 자꾸 불만이 들어오면 고시원 이미지도 있고 해서 아예 그 방은 접수를 받지 않고 있어요" 

"혹시 방 번호가 666호실 인가요? 1028호실이라던지" 

"246호실인데요" 

총무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거라면 별로 겁나지 않는 번호였다. 

"일단 보여주세요" 

"말씀드렸다시피 그 방은.." 

"보기만 할게요" 

총무는 만화에나 나올 듯한 표정으로 잠시 잉-하고 미간을 찡그리더니 열쇠꾸러미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라 오세요" 

총무가 앉아있던 책상에는 법전 대신 성경책이 놓여있었다. 




"여기에요" 

문을 열자 환한 햇살을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방안이 어두침침했다. 

"창가 방이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햇빛이 드는 쪽이라 낮에는 커튼을 쳐놔요." 

총무가 창가에 다가가서 검은 커튼을 좌우로 열어젖히자 비로소 방 안이 환해졌다.
 
그것은 차마 방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정도의 크기였다.
 
차라리 넓은 '관'이라고 부르는 편이 나았다. 내 키가 180을 넘지 않는 것이 이렇게 다행스러웠던 적도 없었다.
 
아마 그랬다면 정수리와 발바닥을 양쪽 벽에 딱 붙이고 잠을 자야할 판이었다.
 
1평 남짓한 공간에는 책상과 의자 그리고 발을 책상 밑 공간으로 넣어야 하는 침대 하나가 부피를 점유하고 있는 물체의 전부였다.
 
새로 도배했는지 벽지는 깨끗했다. 

"고시원생 중에는 낮밤을 거꾸로 사는 사람들이 많아서 커튼은 모두 검은색이에요. 뭐 처음엔 어둡네 음침하네들 하셔도 나중엔 적응하시더라구요" 

"검은 커튼이라..특이하군요." 

정말 먹물처럼 검은 커튼이었다.
 
검지와 엄지로 살짝 비벼보니 비단결같이 결이 촘촘하고 매끈한 질감이 느껴졌다.
 
 이정도 밀도로 직조되어 있으면 대낮에도 햇빛이 스며들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창문과 천장사이에 폭 10cm정도의 공간이 있어서 커튼의 끝은 그 속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았다.
 
커튼이 망가지거나 하면 도대체 어떤 식으로 교체하는 걸까. 

"이 방으로 하고 싶어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꼭 이 고시원에 들어오고 싶었고 남는 방은 이 방 하나뿐이었다. 

"허어 이거 참" 

총무가 또다시 앞 이빨로 아랫입술을 깨물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원장님께 말해보구요" 

총무는 어딘가로 전화를 하더니 잠시 후 나에게 '246'이라는 숫자가 적힌 작은 열쇠 하나를 주었다.
 
 '쓰셔도 된데요'라니. 싱거울 정도로 간단했다. 




S고시원은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의 2층에 위치해 있었다.
 
지하에는 찜질방이 있었고 1층에는 종합상가, 2층에는 고시원 및 병원이 있었다.
 
그 위로는 15층짜리 아파트단지가 수직으로 올라갔다.
 
특히 상가에 해당하는 1,2층의 면적이 넓어서 건물의 전체적인 모습은 시루떡 위에 전병을 포개어 놓은 듯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고시원 뒤쪽에는 건물주차장이 있었다.
 
 한쪽에 청소도구나 삽, 쓰레기수거 포대 등을 모아두는 컨테이너 창고가 있었고 담장을 따라 폭 1.5m정도의 작은 텃밭이 빙 둘러져 있었는데
 
그곳에는 누가 돌보고 있는지 상추나 호박 따위의 야채류가 자라고 있었다. 

창문은 모두 건물 뒤쪽의 주차장을 면해 있는데 일렬로 쭉 늘어선 십여개의 창문에 모두 검은색 커튼이 쳐져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내 방 창문이 어디쯤일까 속으로 위치를 계산하며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커튼 사이로 둥글고 흰 물체가 불쑥 나타났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관리인 몰래 창문에서 담배를 피우는 고시생들의 얼굴이었다. 건물 내에서는 금연이었던 것이다. 

주차장을 한 바퀴 빙 둘러보고 막 2층 계단으로 올라가려는 순간 거무틔틔한 물체 2개가 내 발 앞을 쏜살같이 지나갔다.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둑고양이 한 쌍이었다.
 
둘 다 살이 뒤룩뒤룩 쪄서 거의 개만한 크기였다. 한 마리는 온몸이 새까맿고 다른 한 마리는 회색 바탕에 갈색 얼룩반점이 있었다.
 
놈들은 멀찍이 떨어져서 사람 같은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내가 쉿하고 발을 구르자 햐악-하는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지르고는 주차해 놓은 트럭 밑으로 느릿느릿 사라졌다. 




고시원 내부는 目자 구조로 되어있었다.
 
획 하나 하나가 방이 있는 공간이고 획과 획 사이가 통로에 해당되었다.
 
방의 갯수는 가로 맨 윗변에 창가가 있는 방이 10개, 그것과 좁은 통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방이 10개, 두번째 통로의 위쪽에 방 10개,
 
역시 통로를 마주보는 방 10개 그리고 맨 아랫쪽 통로의 위쪽에 방10개 이렇게 총 50개였다.
 
맨 마지막 변은 건물복도와 고시원을 경계 짓고 있는 벽이어서 방이 없었다.
 
내가 있는 246호는 맨 윗변 창가자리의 왼쪽에서부터 3번째 방에 해당되었다. 입구나 세면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어서 생활소음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운 위치였다. 

소음보다 더 신경쓰이는 것은 고시원 전체를 매케하게 뒤덮고 있는 독특한 향 냄새였다.
 
어쩌면 50명에 육박하는 남자들이 일제히 뿜어내는 노총각 특유의 냄새인지도 몰랐다.
 
쑥이 타는 것 같기도 하고 제사 향 같기도 한 그 냄새를 맡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정신이 몽롱해지고 온 몸에서 힘이 빠졌다. 




성인 남자가 혼자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건은 생각보다 많았다.
잠만 자고 밥은 밖에서 사먹으면 되니까 그저 이부자리나 들여놓으면 되겠지 하는 생각은 큰 오산이었다.
 
 당장 아침에 일어나서 씻으려면 샴푸, 비누, 치약, 칫솔이 필요했다.
 
 갈아입을 위아래 옷도 필요했고 옷이 있으면 그것을 담을 수납상자도 필요했다.
 
옷은 입으면 빨아야 한다.
 
세제는 개인부담이니 그것도 사야했다. 뿐만 아니라 세탁한 빨래를 넣고 다닐 빨래바구니와 건조대에 걸을 옷걸이도 필요했다.
 
벽에 수건이나 바지 따위를 걸 수 있는 간이고리도 샀다(뒷면을 라이터로 지져서 붙이는 방식이었는데 꽤 튼튼했다. 차마 고시원에서 망치를 휘두를 용기는 없었다) 옷 수납상자와 빨래 바구니 등은 둘 공간이 없어서 인터넷으로 주문한 조립식 선반에 두었다.
 
그밖에 공부에 필요한 온갖 문구류 따위를 사고 삐걱거리는 나무의자를 듀오백으로 바꾸고 나니 어느새 깁슨 기타를 판 돈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토록 아끼던 기타의 부속을 하나하나 뜯어서 치약이나 빨래바구니 따위와 바꾸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우울해졌다. 




인터넷 쇼핑은 여러모로 편리했다.
 
가격비교를 쉽게 할 수 있어서 손품만 팔면 시중가보다 훨씬 저렴하게 살 수 있었다.
 
요즘은 주문하고 다음날이면 배송이 되니 양손을 비닐봉지를 서너개씩 들고 시장을 돌아다닐 일도 없었다.
 
게다가 오프라인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기발하고 재미있는 물건들도 많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내 마음에 드는 것은 '프로젝션 알람시계'였다.
 
일반 자명종 시계와 달리 레이져 빔 같은 것을 벽에 쏴서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었는데 불을 끄면 붉은 빛으로 된 시간이 아주 선명하게 보였다.
 
원하는 곳은 천장이고 벽이고 상관없이 시간을 표시할 수 있어서 자다가 핸드폰을 열지 않고도 바로 시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그것을 입구 쪽 선반 위에 놓아서 커튼에 투사되도록 해두었다.
 
그러니까 책상에서 내가 공부하다가 고개를 들면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바로 그 위치였다.
 
침대에서 머리를 그 반대쪽으로 놓고 자니까 그렇게 해야 누운 상태에서도 한눈에 시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날 대전에 있는 집에서 택배로 부쳐준 짐을 대충 정리하고나니 어느새 새벽 1시가 넘어있었다.
 
하루 종일 쇼핑을 다니고 이삿짐을 정리하느라 책은 한자도 들여다보지 못했다.
 
30분이라도 공부를 하려고 막 책상에 앉는데 누군가 노크를 했다. 이 시간에 누굴까.
 
의아해하며 문을 열어보니 서글서글해 보이는 인상의 키 큰 청년이 플라스틱 쟁반에 커피 2잔을 받쳐 들고 있었다.
 
 
순정만화 주인공처럼 긴 갈색머리에 크고 맑은 눈을 가진 선량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아직 안 주무셨네요. 235호에 사는 이창민이라고 합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늦은 시간에 실례가 아닌지 모르겠네요.
 
새로운 분이 오셨다길래 인사드리러 왔어요.
 
우리 고시원의 최대장점이 바로 가족적인 분위기이거든요. 혹시 커피 좋아하세요?” 

창민이라는 청년은 불쑥 커피잔을 내밀었다.
 
목소리가 이상하게 신경을 긁는 부자연스런 하이톤이었다. 남자가 억지로 여자 목소리를 흉내는 듯한.
 
평소 커피를 즐겨 마시지는 않았지만 손수 타온 커피를 거부할 수도 없었다.
 
나는 고개를 꾸벅하고 그가 내민 커피잔을 받아들었다. 일단 받아두었다가 나중에 싱크대에 쏟아버릴 생각이었다. 

“이게 바로 우리고시원 특유의 ‘총무실커피’입니다. 한번 드셔보세요.” 

후루룩.. 

“맛있네요” 

혀를 가져다 댄 것만으로도 덜척지근한 설탕기운이 느껴졌다. 끝맛은 약간 씁쓸했다. 

“후훗 제 별명이 고시원 미쓰리예요. 커피나 컵은 총무실에 항상 있으니까 언제든 타서 드시면 되요. 아님 말씀하시면 제가 타드릴게요.” 

창민은 여자같이 입을 손으로 가리고 웃었다.
 
말로만 듣던 게이인가? 왠지 모를 거리감이 느껴진다.
 
 나는 이 사람이 언제까지 여기서 비적대고 있을 생각인지 궁금해졌다.
 
 새벽 1시다. 다른 방에서 시끄럽다고 할까봐 아까부터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어떤 시험 준비하세요?” 

창민이 물었다. 

“사법고시준비하고 있어요.”
 


“와 어려운 거 하시네요. 저도 재작년까지 사시 준비하다가 도저히 가망이 안보여서 7급 공무원으로 바꿨어요.
 
저번 달에 서울시 일반행정직 시험을 봤는데, 정말 걱정이예요.
 
붙기만 한다면 정말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는 내 방문 기둥에 몸을 기댄 채 고시와 정치와의 관계, 경제, 사회문제까지 끊임없이 지껄여댔다.
 
그의 말을 듣고 있자면 그가 연거푸 시험에서 미끄러지는 이유에 그의 탓은 하나도 없어 보였다.
 
잘 되면 내 탓, 못 되면 사회 탓이라는 Looser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이 시간에 남의 방문 앞에 버티고 서서 수다를 떠는 것을
 
보면 예절에도 밝아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조금씩 짜증이 밀려왔지만 그냥 듣고 있기만 하기도 멋쩍어서 간간히 맞장구를 쳐주며 커피를 홀짝거렸다.
 
 아들 뒷바라지하느라 포장마차에서 고생하신다는 어머니의 감동적인 인생역정까지 말한 후에야 그의 수다는 끝이 났다.
 
그때쯤 커피와 함께 나의 인내심도 슬슬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거 첫날부터 제가 말이 너무 많았군요. 안 그래도 짐 정리하시느라 피곤하실 텐데.” 

사실 그 말은 30분 전에 나왔어야 했다.
 
 

“아뇨, 덕분에 재미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인사드릴게요. 그럼 이만.”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보험 설계사같이 끈덕지게 달라붙던 그를 돌려보내고 나자 갑자기 피로감이 확 밀려왔다.
 
커피를 마셨는데도 정신이 몽롱했다.
 
하긴 커피를 마시면 잠이 안 온다는 속설은 ‘커피를 마셨으니 잠이 안 올 것이다’라는 자기최면 때문이라는 기사를 어디선가 본 것 같다.
 
 나는 책상위에 엎드려 문제집에 얼굴을 쳐 박은 채 그대로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다음날 핸드폰 알람소리에 깨어나 보니 아침 8시 반이었다.
 
장작더미 위에서 자고 일어난 것처럼 허리랑 어깨가 쑤셨다.
 
오랜 시간 동안 무리한 자세로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잤기 때문이었다.
 
뇌가 지끈거리고 속이 울렁거린다.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꿈은 주로 시각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청각적인 이미지와 후각적인 이미지가 혼란스럽게 섞여 있었다.
 
 쿵쿵거리며 벽을 두드리는 소리, 도살장 짐승의 단말마 같은 사람의 비명소리. 수많은 사람들의 부산한 발자국소리. 알 수 없는 중얼거림.
 
그리고 말린 쑥 같은 이상한 향냄새와 비릿한 피냄새. 첫날이라 잠자리가 바뀌어서 그런지 정신 사나운 꿈이었다. 

기지개를 켜니 뭐가 손끝에 걸려서 바닥에 떨어졌다.
 
놀라서 반사적으로 받아 챘다. 어제 마시다 만 커피잔이었다.
 
흑갈색 커피찌꺼기가 바닥 가장자리의 오목한 모서리를 따라 젤리처럼 말라붙어있었다.
 
창민이라는 사람이 급하게 가느라고 가져가는 것도 잊어버렸던 것이다. 정말 정신없는 사람이었다.
 
총무실에서 가져온 거라고 했겠다? 나는 컵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도 꿈속의 불쾌한 소리들이 군화를 신은 채 온 집안을 헤집은 군인들처럼 나의 뇌 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총무는 침상에서 성경책을 배게 삼아 꿈속을 헤매고 있었다.
 
 도대체 이 사람은 밤에는 무엇을 하길래 낮에 이렇게 자는 것인지 궁금했다.
 
몇 번 본적은 없지만 볼 때마다 졸린 표정 아니면 엎드려 자는 모습이었다.
 
데스크에선 총무 대신 운동선수같이 어깨가 딱 벌어진 땅딸막한 남자가 대신 사무를 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커피잔을 돌려드리려고 왔는데요.” 

“아, 새로 오신 236호 최준영씨죠? 컵은 이리 주세요.” 

사내는 컵을 받더니 티슈를 정수기 온수에 적혀 익숙한 솜씨로 즉석 설거지를 했다.
 
이런 위생 상태로 관리되는 컵인 줄 알았으면 보약이라고 해도 아마 마시지 않았을 것이다


“저는 217호 강동윤이라고 해요. 보시다시피 총무가 시원찮아서 가끔 대신 일을 봐주고 있죠.
 
준영씨랑은 같은 통로에 있으니까 아마 자주 마주칠 겁니다.”


남자가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고 싱긋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엉겁결에 마주 쥔 사내의 손은 나무 등걸처럼 울퉁불퉁하고 거칠었다.
 
 바이스로 조이는 듯한 묵직한 악력이 느껴졌다. 

“와 운동하시나 봐요?” 

자세히 보니 동윤이라는 남자의 체격은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건장함을 훨씬 넘어서 있었다.
 
 키가 다소 작아서 그렇지 두툼한 가슴 근육 때문에 티셔츠가 터질듯이 긴장되어 있었고
 
셔츠 밖으로 드러난 팔뚝은 거의 내 허벅지랑 비슷할 정도로 우람했다.


“뭐, 공부하다보면 스트레스를 풀 곳이 운동밖에 없으까요. 어차피 경찰시험 보려면 실기시험도 대비해야 하구요.” 

“그 정도면 충분하신데요.”


“아직 멀었어요, 옆 건물에 T헬스장이라고 있는데 여기 고시원생이라고 하면 회비도 만원이나 할인 되요. 혹시 운동 좋아하시면 같이 하실래요?”


“아..아뇨 전 운동이라면 질색이라서요.”
 


이런 고릴라같은 놈과 같이 운동을 하다간 걸어 나오기도 힘들 것 같았다.
 
그때 마침 잠을 깬 총무가 본격적으로 대화에 가담할 기미가 보이길래 나는 소변이 급하다는 핑계로 황급히 총무실을 빠져나갔다.
 
정말이지 너무 가족적이어서 피곤한 사람들이었다.
 
총무실 옆의 현관에서 슬리퍼를 꿰차며 보니 흙 묻은 운동화 몇 켤레가 보였다.
 
 아직 물기도 마르지 않은 갈색 진흙이 밑창에 지저분하게 붙어있었다.
 
축구를 했는지 농구를 했는지 모르지만 저런 정도면 밖에서 털고 들어왔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언젠가 정신이 말짱한 상태의 총무에게 말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핑계가 아니라 정말로 요의가 밀려왔던 것이다. 




화장실은 충무실에서 나와 오른쪽 복도를 따라 쭉 올라가면 그 끝부분에 있었다.
 
나는 가운데 소변기 앞으로 가서 지퍼를 내렸다. 삑. 나의 움직임을 감지한 센서가 물을 한차례 흘려보낸다.
 
낡은 건물에 비해 화장실은 비교적 시설이 좋았다. 변기도 좌변기였고 소변기와 세면기에도 모두 센서가 달려있었다.
 
오줌이 방광을 거처 요도를 흐르는 느낌이 짜릿하다. 오줌 눌 때면 오래전에 끊었던 담배 생각이 날 때가 있다.
 
소변기 정면에는 ‘금연’이라고 써붙인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짓궂은 누군가가 그것을 라이터불로 이리 저리 지져놓아서 거무스름하게 탄 자국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을린 자국 하나 하나에 흡사 사람의 얼굴 처럼 눈,코,입에 해당하는 부위가 다른 곳보다 조금 더 검게 타 있었다.
 
물론 완전한 형상도 아니고 이리 저리 일그러진 모습이었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충분히 사람얼굴로도 보였다.
 
내 눈에는 그것이 왠지 지옥 불길 속에서 절규하는 사람들의 얼굴로 보였던 것이다. 

밤새 내 몸 속에 축적된 1리터에 가까운 더운 액체를 한꺼번에 덜어내고 나자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대충 소변의 물기를 털고 지퍼를 올리려는 순간, 바로 옆에 있는 소변기에서 삑. 소리가 나며 물이 흘렀다.
 
마치 그곳에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있는 것 처럼. 또다시 몸이 부르르 떨린다.
 
소변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다. 갑자기 주변의 공기가 2-3도는 내려간 것 처럼 서늘해졌다. 팔뚝이 솜털이 소소소소 일어나는 느낌이었다. 

‘오작동이겠지. 관리인에게 말해야겠어.’ 

가끔 센서가 고장나는 소변기가 있었다. 그런 소변기는 하루종일 물을 흘려보내 화장실 바닥을 흥건하게 만들곤 했다.
 
내 옆에 있는 소변기의 센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지퍼를 올리고 세면기 쪽으로 몸을 돌리자 등 뒤쪽에서 다시 쉬이-하고 물 내려가는 소리가 났다.
 
 나란히 있는 두 소변기에서 동시에 내려가는 소리였다.
 
 내 옆에 나란히 서 있던 무언가가 나를 따라오고 있다! 오전 9시다.
 
화장실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로 환했다. 귀를 기울여보면 잠에서 깨어나 활동을 게시하는 도시의 부산한 소리가 들려온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라니. 어린아이같은 생각이 파고들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장이 울렁거리는 이 느낌은 무엇이란 말인가. 어서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
 
나는 세면기로 달려갔다.
 
센서가 달린 수도꼭지가 내 손을 감지하고 차가운 물을 내보낸다.
 
 나는 신경질 적으로 손을 벅벅 씻었다.
 
 정신차리자. 아직 잠이 덜 깼으니 그렇지. 나는 양손을 모두어서 차가운 물을 한웅큼 받아 세수를 하기시작했다.
 
푸아- 푸아- 잡스러운 생각을 떨쳐낼 듯이 일부러 입으로 큰 소리를 내며 얼굴을 닦았다.
 
 이상하다. 분명히 얼굴을 닦는데 어느샌가 얼굴에 와 닿는 물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 지금까지 내가 뭘 닦고 있는 거지? 물기를 담은 양 손으로 가만히 얼굴을 더듬어보았다. 얼굴이 없다! 대신 차가운, 누군가의 손이 느껴진다.
 
마디가 없는, 가늘고 길죽한 손이었다. 번쩍.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정면의 거울에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내 얼굴이 보인다.
 
두려움에 휩싸인 두 눈을 바보처럼 부릅뜨고 있다. 뭐였지.
 
방금 느껴진 누군가의 손은. 단순한 착각이었나. 잠깐. 뭔가 이상하다. 내 머리의 정수리 한가운데가 불룩하게 부풀어 있었다.
 
 단순히 머리가 떠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내 머리위에 누군가의 머리를 포개어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천천히 상체를 숙여보았다.
 
정수리부분의 검은 부분이 점점 늘어난다! 마치 내 뒤에 나와 겹쳐서 서있던 누군가의 모습이 천천히 드러나듯!
 
조금 상체를 숙이자 마침내 내 뒤쪽에 있는 ‘그것’의 창백한 이마가 드러났다.
 
조금 더 고개를 숙인다.
 
그 밑으로 보이는 붉게 충혈된 눈! 나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휙 뒤를 돌아보았다. 없다.
 
아무도 없다. 밝은 화장실엔 나 뿐이다. 역시 신경과민이었다.
 
그 때, 아무도 없는 내 뒤쪽에서 삑. 하고 세면기의 센서가 작동하더니 물이 콸콸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도망치듯 화장실을 뛰쳐나왔다.
 
복도에 있는 사람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고시원이 있는 2층에는 미술학원도 있었다.
 
복도에는 미술학원 꼬마들이 그린 그림들이 쭉 전시되어 있었다.
 
아마도 솜씨자랑 겸 새로운 수강생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편이리라. 그림들의 소재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엄마 아빠와 손잡고 놀이공원에 간 그림(공작새가 거의 공룡크기 만하게 과장되어 있었다)
 
박터트리기를 하고 있는 학교 운동회, 소풍등이 크레파스로 천진난만하게 그려져 있었다.
 
어린아이들의 그림답게 사람의 비율도 제각각 이었고 원근법도 엉망이었다.
 
아빠의 키가 거의 2미터도 넘게 그려져 있기도 있고 위치상 멀리 있는 사람이 더 커보이기도 했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심리적인 크기를 도화지에 옮겨놓았을 것이다.
 
아빠라는 존재는 아이들에게 거인처럼 보일테니 그렇게 그렸을 테고 아이들에겐 원근법보다도 중요한 사람 순으로 크게 그리는 것 같았다.
 
색감도 독특했다. 사람의 얼굴을 분홍빛으로 칠한다든지, 태양을 파랗게 색칠한다든지 하는 식이었다.
 
그 중에서도 유독 한 그림이 나의 주의를 끌었다.
 
고시원이 있는 상가건물 전체를 묘사한 풍경화였는데 하늘에서 위로 내려다본 구도였다.
 
 헬기라도 동원하지 않는 이상 일반적으로 직접 관찰하고는 그릴 수 없는 각도였다.
 
보통 어린아이들은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정도면 탁월한 상상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
 
 건물 뒤쪽의 큰 가로수 옆에는 그림을 그린 본인으로 보이는 아이가 숨어있었는데 우스꽝스럽게도 가로수 보다도 더 크게 그려서 있었다.
 
 얼굴은 거의 모여라 꿈동산 수준, 저래서야 아이 뒤에 가로수가 숨는 편이 나을 듯 싶었다.
 
아이의 얼굴은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멜빵 청바지에 원색적인 빨간 운동화가 눈에 확 띄었다.
 
 어쨌든 아이는 화초만한 가로수 뒤에 숨어서 무언가를 훔쳐보고 있었다.
 
그것은 고시원건물 전체를 칭칭 휘감고 있는 듯한 거대한 뱀이었다.
 
 뱀이라기 보다는 용에 가까운 크기였는데 건물을 두세번 휘감고 있는 몸통은 온통 검은색이었다.
 
 특이한 것은 뱀의 얼굴이었다. 뱀의 대가리 대신 사람의 얼굴이 있었던 것이다.
 
눈을 하얗게 치켜뜨고 있는 여자의 얼굴이었는데 얼굴이 하늘빛에 가까운 푸른색으로 칠해져있었다.
 
입에서는 두갈래로 갈라진 검은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는데 서툴게 그려진 그림인데도 묘하게 두려움을 자극했다. 




혼자 생활하는데 있어 세탁은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다. 다음날 팬티바람으로 학원에 가고 싶지 않으면 밀린 빨랫감부터 해결해야했다.
 
고시원에 들어온 지 겨우 이틀째인데 내 방문 바로 위쪽에 있는 쇠로 된 옷걸이에는 벌써 3분의 1정도 빨랫감이 널려있었다.
 
약 2미터 정도의 높이에서 방을 가로지르는 튼튼한 쇠봉이었다.


"빨래는 밖에 있는 건조대에 거셔도 되구요, 수건이나 속옷 같은 건 방에 있는 쇠봉에 거세요.
 
특히 여름이라 수건이 모자라서 다른 사람이 막 가져다 쓰기도 하거든요" 
 

첫날 총무가 세탁기 사용법을 가르쳐주며 한 말이었다. 

"혹시 자다가 쇠봉이 머리 위로 떨어지면 어떡하죠?" 

"그거 꽤 튼튼한 거에요. 고시원 자체가 옛날 건물이라 벽이 요즘 고시원같이 합판이나 석고보드가 아니라 벽돌로 되어있거든요.
 
쇠봉도 건물 지을 때부터 벽속에 묻혀 있던 거라 사람이 매달려도 끄떡없구요. 어떤 사람은 아침마다 턱걸이를 하기도 하더라구요.
 
시끄럽다고 신고가 들어와서 그만두기는 했지만요" 

나는 그 튼튼하다는 쇠봉을 올려다보며 빨래바구니를 들고 방문을 나섰다. 




세탁실로 가려면 내 방문을 나와 양쪽으로 마주 본 문이 쭉 늘어서 있는 좁은 통로를 지나야 했다.
 
귀신이 밤마다 방문을 하나하나 두드리고 다닌다는 괴담이 딱 어울릴만한 그런 구조였다.
 
 여름에는 대개 반쯤 문을 열고 생활해서인지 방마다 발이나 천이 쳐져 있었다.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였다. 방 번호를 외우기 힘드니까 편의상 천에 그려진 그림으로 호칭을 대신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를테면 ‘태극기방’ ‘비치타월방’ 이런 식이었다. 내 방은 일명 ‘스파이더맨 방’이었다.
 
 문가리개로 쓰는 대형비치타월에 스파이더맨 캐릭터가 그려져있었던 것이다. 

복도를 지나가면서 옆방을 슬쩍 보았다. 문은 닫혀있었지만 문 위쪽 좁은 창을 통해 불이 켜져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궁금했다. 바로 옆방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번도 얼굴을 보지 못했다. 




세탁실에 들어서자 눅눅한 증기가 확 얼굴을 덥친다. 샤워실과 공용이라 누군가 더운 물로 샤워를 하고 있었다.
 
샤워기 쪽에 쳐진 간이 커튼 밑으로 남자의 두 발이 보였다.
 
그 밑에서 붉은 피가 물에 섞여 아메바처럼 꿈틀거리며 타일 골을 헤치고 흘러내렸다.
 
'어디 다쳤나?' 커튼 뒤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서있는 남자의 그림자가 비쳐보였다.
 
낮은 톤으로 뭐라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걱정되긴 했지만 뭐라 말을 붙이기도 어색했다. 나는 샤워실 구석진 곳에 있는 세탁기를 열고 그동안 쌓인 세탁물을 쏟아부었다. 세탁기는 자동으로 설정되어있어서 세제를 뿌리고 '작동' 버튼만 누르면 끝이었다. 버튼을 꾹꾹 누르고 손을 털자 세탁기는 주책맞은 아줌마처럼 몸을 실룩거리며 빨래를 돌렸다. 

세탁기에 표시된 남은 시간38분이었다. 스터디 자료나 정리하고 오면 딱 맞을 시간이었다.
 
막 세탁실을 나서는 순간 어디선가 ‘어서 나가!’하고 버럭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났다.
 
아니, 차라리 느낌이랄까? 귀를 통해서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머릿속으로 누군가의 목소리를 상상할 때 느껴지는 그런 목소리였다.
 
 퍼뜩 놀라서 다시 들어가 보았다. 내가 거칠게 문을 연 반동 때문이었는지 샤워커튼이 약간 펄럭였다,
 
그런데 그곳에 있어야 할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맨발로 샤워실로 뛰어 들어가 커튼을 젖혀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이럴수가, 아까 그 사람은 어디로 사라진 거지? 벌써나갔나? 아주 잠깐 사이였는데..' 발에 뭔가 뜨듯한 기운이 느껴진다.
 
희미한 핏줄기가 내 새끼발가락을 휘어 감고 배수구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머리카락과 오물로 막힌 배수구에는 아직 붉은 기운이 엷은 띠를 이루며 불길한 구름처럼 맴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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