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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title: 그랜드마스터 딱2개ILOVEMUSIC2015.11.11 15:56조회 수 1054추천 수 3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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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제가 직접 겪은 실화입니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그 당시 내가 살던 동네는 2년 쯤 전에 지어진 신식 아파트였다. 집값도 비싸고 새로 생겨서 그런지, 다른 곳에서는 우리 동네를 부자동네라고 불렀다. 이 아파트 단지는 산을 깎아서 만들었는데, 그래서 다른 동네에 비해 높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 동네에서 도로를 따라 내려오면 중간에 단독주택이 많이 지어져 있는 동네가 하나 더 있었는데, 그 동네가 진짜 부자동네였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엄청나게 고급스럽고 세련된 주택들이 한가득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 동네의 한가운데는 내가 여태껏 본 교회들 중에서 가장 큰 교회가 하나 있었다. 다른 건물들보다 좀 더 고지대에 있었고, 한쪽 유리에만 스테인드글라스로 꾸며져 있고 반대쪽 창에는 아무것도 없는 교회였다. 내가 그렇게 많은 교회를 돌아다녀본 건 아니지만, 내가 본 교회 중에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는 교회는 여기뿐이었다. 교회가 정말 컸는데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저 밤에 누가 켰는지 교회 전체에 밝게 불이 켜져 있곤 했고, 그럴 때마다 스테인드글라스로 꾸며져 있는 벽으로 알록달록한 빛이 새어나와 있었다. 어쨌거나, 그 교회에 들어가는 사람이나 거기서 나오는 사람을 본 적은 없었고, 또 본 사람도 없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 무척이나 철이 없었다. 한창 공부해야 할 시기에 질 나쁜 친구들을 사귄 탓에 담배, 술 등을 고등학교 때 배웠다. 그 날도 야간자율학습을 빼먹고 3명의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러 학교 근처 아파트 단지로 넘어왔었다. 부모님이 정말 엄하셔서 12시가 넘기 전까지 집에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내가 친구들과 함께 일탈의 짜릿함을 느낄 수 있는 건 야자시간 뿐이었다. 그날도 이 근방에 사는 친구들이 교복을 갈아입고 나와 술을 사왔다. 나를 비롯해 몇몇 교복을 입은 친구들 때문에 술집으로 들어갈 수 없었기에 우리는 아무도 없는 공원 벤치에서 난장을 깠다. 그 당시에 나는 소주를 싫어해서 KGB랑 크루저를 7~8병 땄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술을 잘 마시긴 하는데 내 간이 잘 안 받쳐주는 것 같다. 소주 반 병만 마셔도 얼굴이 한여름 수박마냥 빨개진다. 게다가 술 맛도 별로 안 나고 음료수처럼 달달하고 톡 쏘는 맛에 빨리, 많이 마시다 보니 어느 새 심장은 세차게 뛰고 얼굴은 터질 듯이 붉어졌었다. 11시 30분쯤에 친구들과 헤어져 집으로 왔다.

새로 지은 아파트라 그런지 버스 정류장이 동네 밑에 있어서 집까지 오려면 버스에서 내려서도 한참 걸어 올라가야 했다. 아무리 도수가 적다지만 맥주를 7~8병 깐 데다가, 소주랑 섞어먹고 했던 차라 얼굴이 발갛고, 쌀쌀한 가을밤인데도 더웠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술도 깰 겸 해서 혼자 아파트 단지 밑에 단독주택 동네를 한 번 돌고 가기로 했다. 그물망처럼 길이 나있고, 길 사이사이에 주택이 지어져 있는 구도였다. 나는 이집 저집 구경하며 점차 마을 중앙으로 향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나는 인적 드문 커다란 교회에 도달했다. 계단을 올라가 홀로 교회 앞 잔디 마당에 오줌을 싸면서 담배를 태우다 문득 교회 안이 궁금해졌다. 평소에 무서운 이야깃거리를 좋아하긴 하지만 평소 교회 가까이 갈 기회가 없었던 터라 더욱 더 궁금했다. 마당에서 좀 더 안으로 들어가자 남쪽을 향하고 있는 교회 출입구가 나왔다. 계단이 많았다. 가파르고 높은 계단 때문에 교회 내부는 잘 안보였다. 건물을 한 바퀴 빙 둘러보기로 했다. 왼쪽으로 돌아가다 보니 저기 좀 떨어진 곳에 여러 색의 빛이 보였다. 교회 내부의 빛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투과하여 바닥의 잔디를 비추고 있었다. 

잔디 위에 뭔가가 있었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어른 발 한 쪽 정도 크기의 회색 무언가가 놓여 있었다. 수분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바싹 말라 있었다. 아무리 교회 빛이 밝았다곤 하지만 유리창을 통해 나온 데다 색깔도 여러 색이 겹쳐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왼쪽으로 좀 더 돌아가니 북쪽을 향하고 있는 교회 뒤쪽이 나왔다. 정체 모를 포대자루들이 대여섯 벽에 기대어져 있었다. 계단 너머 저 뒤에는 주택가와 아파트들의 불빛이 보였다.

마지막 동쪽을 향한 교회 옆면으로 갔다. 반대쪽 유리창과 달리 스테인드글라스도 없고, 교회 내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위치였다. 항상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기만 했지, 이렇게 가까이서 보긴 처음이었다. 무심코 안을 쳐다봤다. 



…없는 게 없었다. 비둘기부터 시작해서 들고양이, 강아지는 수도 없이 많았고 쥐나 뱀, 고라니와 멧돼지도 있었다. 교회 내부에 신도들이 앉도록 길게 만들어진 의자도 없고, 목사님들이 성경을 놓고 복음을 전파하는 강단도 없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목상같은 것도 없었다. 단지 가운데에 큰 테이블과 벽에 가지런히 박혀 있는 동물의 시체 여럿뿐이었다. 테이블 끝에서는 어떤 동물의 것인지 모를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바닥엔 이미 피가 흥건했다. 바닥에 놓인 양동이에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피가 넘실대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별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징그러움 3에 신기함 7 정도의 감정이었다. 

교회 벽 방문이 열리고 앞치마와 고무장갑에 장화를 신은 중년 남자가 들어왔다. 그 남자를 보고 딱 떠오른 생각이, 옛날에 소나 돼지, 닭 등을 잡아 고기로 만드는 사람을 백정이라고 했던가, 그 백정이 떠올랐다. 정육점 아저씨같은 이미지였다. 남색인가 아무튼 어두운 톤의 긴 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원래 색보다 더 진한 얼룩들이 옷에 묻어 있었다. 그게 피라는 건 누가 봐도 뻔했다.

이런 광경들을 보고 내가 떠올린 생각은 ‘아, 무섭다’ 가 아니라 ‘무슨 교회가 이래?’ 라는 생각이었다. 그 남자는 중앙 탁자 위에 널브러져있는 고양인지 갠지, 아무튼 동물에게로 다가갔다. 피를 빼는 것처럼 보였다. 그 땐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겁도 없이 한참을 넋놓고 바라보던 나는 순간 정신을 차리고 교회를 나왔다. 

집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다 생각하니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무슨 교회에서 그런 일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거기 죽어있던(내가 보기엔 그랬다) 동물들도 다 길거리에서 데려온 것 같았다. 보양식을 만드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자니 고양이로 보양식을 만든다는 얘긴 한 번도 못 들어본 것 같다. 5분 쯤 걷다 무엇에 홀린 건지 다시 교회로 발걸음을 돌렸다. 

조금 걸었을까? 저만치서 어떤 남자가 이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나를 스쳐 지나갔다. 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피냄새같았다. 그 남자였다. 돌아보니 그 남자는 나는 안중에도 없는 듯 앞으로 걸어갔다. 기분이 꺼림칙해진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그냥 집 쪽으로 다시 방향을 돌려 걸었다. 50걸음 쯤 떨어진 채로 그 남자와 나는 계속 걸었다. 동네 앞 갈림길에서 그 남자는 왼쪽으로 틀어 내려갔고, 나는 오른쪽으로 올라갔다.

집에 오니 아버지께서 엄한 표정으로 거실 소파에 앉아계셨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반이었다. 평소 이 시간대라면 업무로 인해 깊이 잠드실 분인데...

혼나면서도 그 남자와 그 교회에 대한 생각이 가시질 않았다. 그 날 나는 1시간가량 꾸중을 듣고 나서야 잠들 수 있었다. 술 냄새도 제법 많이 났을 텐데 그 얘기는 하지 않으셨다. 

그 후로 약 2개월간 무슨 이유에선지 나는 감기몸살 등으로 잔병치레를 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발령 때문에 좀 떨어진 시골로 이사를 갔다가 2년이 지나 다시 이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아직도 그 교회에는 가보지 않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그 일을 생각하면 이따금씩 섬뜩해져, 밤에 혼자 컴퓨터를 하다가도 창문 쪽을 힐끔힐끔 쳐다보곤 한다. 몇 년이 더 지났지만 그 피와 그 시체, 그 남자는 아직도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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