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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 누나 이야기.txt (9)

익명_d2cbe22018.09.01 19:37조회 수 19731추천 수 1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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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9편을 쓰고 있습니다. 욕심없이 써야 되는데 욕심이 생기고 글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걸 또 읽어주시고 계시니 부끄럽기만 하네요.

 

 

 

주구장창 길지 않을 것입니다.

끝이 보입니다.

 

(그리고 이번편은 조금 짧습니다. 이해부탁드립니다.)

----

 

 

 

전 항상 내가 더 좋아하는 연애를 해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더 좋아하는 연애. 그러니까 매달리는 연애는 사실 항상 키가 저에게 있다는 생각(혹은 착각)을 했었습니다.

 

좋아하는 마음도 제꺼, 헤어지는 마음도 제꺼.

 

하다 못해 차여서 혼자 꺼이꺼이 울며 매달리는 마음도 제꺼니까요 .

 

 

바로 전의 연애가 헤어지고 도로 만나고를 반복하며 비로소 '내가 더 좋아하는 연애'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끝은 깔끔(하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마음에 남은 것이 없어서 허무하기도 했습니다. 

 

원래 연애란 이렇게 끝이 없어야 좋은 것 같기도 하지만서도요...

 

 

 

 

안책임님의 뜻밖의 고백. 고백이라기 보다도 그냥 감정의 내뱉음. 은 이 연애아닌 연애의 키가 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걸 너무 늦게 깨달은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저는 안책임님에게 좋아하는 감정만 가지고 있을 뿐 딱히 준 것이 없었는데 안책임님은 제가 필요할 때마다 당신을 나에게 주어 왔으니까요.

 

 

 

설마 좋아하는 감정이겠어. 나를 불쌍해 하는 감정이지. 

 

라고 생각해 온 것 아니었을까요...

 

 

 

 

 

혼란의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새벽에 메시지가 와있었습니다.

 

안: [["집으로 오라 해 놓고 이렇게 가게 해서 미안해요. 애 방에 들어가면서 전화기라도 들고 들어갔어야 하는데... 난처하게 만들어서 정말 미안해요. 잘 들어가셨어요?"]]

 

내가 듣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라

어제 우리가 나누고 난데없이 끌어안게 된 일인데.

왜 미안하다 이야기부터...

 

 

 

나: [["네. 바로 빠져 나올 수 없을거 같아서. 조용히 나갔어요. 현관 문 소리 안 들렸나요? 애기가 누가 온 거 알면 싫어했을텐데..."]]

 

안: [["모르는 거 같았어요. 무슨 무서운 꿈을 꾸었는지 훌쩍훌쩍 울고 잠을 계속 못 이루더라고요."]]

 

나: [["아.. 어제 식탁에 있는거라도 좀 치우려고 했는데 소리 날 까봐 그냥 나왔어요.." ]]

 

 

 

이 겉도는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야 한다.

 

 

나: [["저기.. 우리 할 이야기가 많은데. 언제 만날 수 있죠?" ]]

 

 

안: [["저 진짜 바보 같은 이야기라는거 아는데...."]]

 

 

이제 알 것 같다. 이건 부탁이다 또.

 

 

 

안: [["다음주 추석 연휴때 하루 저희 집에 와서 뭐 좀 도와 주실래요?"]]

 

 

집에서? 전구 갈아야 하나요? 컴퓨터 고치나요?

 

 

나: [["아..언제요? 추석 당일이랑 전날은 안될 것 같고.. 다른 날은 뭐 없어요."]]

 

 

네. 절 갖다 쓰세요. 제발.. 

제가 뭘 해드릴때가 이상하게 전 마음이 제일 좋네요.

 

 

친구들과 하루 캠핑 계획을 잡아 놓았는데 전 이미 마음으로 그 계획을 지웠습니다.

 

지금 캠핑 따위가 문제인가..

 

 

 

안: [["그럼 연휴 마지막 전날에 저희 집에 좀 와 주실래요. 밥도 먹고 그래요. 그 날. "]]

 

 

 

도와달라는건 핑계로 하루 집에 놀자는 건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애는 어디 친척들과 놀러 보낼 거 같고.

 

집 비웠으니 밥먹고 영화보고 놀자는 건가.

 

옛날에 "지금 집 비었어! ㅋㅋㅋ" 하는 옛날옛날 대학 때 만난 여친 생각이 나서 실소가 나왔습니다. 서른 다섯에 집 비었다고 오라는 건가.

 

우리집은 맨날 비어 있는데...

 

아 우리집에 불러야겠다. 언젠가.

 

 

아까의 고민, 부담, 복잡함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다시 만날 생각에 그냥 좋은 마음만 남기기로 합니다. 고민해봐야 되는 것도 없는데.

 

 

 

 

 

추석 연휴

 

삼십대 총각을 향한 명절 주제는 단 한번의 예외도 없이 결혼이었습니다.

 

어딜가도 

 

결혼 안하니. 누구 소개시켜 줄까. 만나는 사람이 왜없어. 그 나이에. 혼자 살려고 하니. 에이 요즘 마흔 가까워야 결혼한다는데. 쟤가 얼마나 신나겠어 요즘. 아니야 결혼을 해야 안정을 찾지. 

 

저는 가만히 있는데 옆에서 모두들 신났습니다.  그래도 감사해요. 번듯하게 직장이라도 다니고 있으니... 일자리도 없었으면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감사합니다. 

 

 

친구들에게는 개욕을 먹으면서 집안 일이 있다는 뻥을 치고  회비에 비싼 술 하나를 더해서 한 친구 손에 들려보내는걸로 대충 떼우며 전 안책임님 집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냥 맑은 정신으로. 어떤 기대 없이.

 

 

 

 

 

어딜 가자는 건 아닌 거 같아 일부러 청바지에 면 티 적당한거 입고 안책임님네 아파트에 도착하고 전화하자 올라오기 전에 박스테입 하나만 사다 달라 합니다.

 

?? 이사가나? 짐정리??

 

 

그 문제의 편의점에서 청테잎을 하나 사서 올라가자.... 집안이 짐과 박스로 난리입니다.

 

검은색 삼선 츄리닝에 회색 후드티를 입은 안책임님이 나옵니다.

 

 

안: "아. 오셨네요...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일이 커졌....어요..."

 

나: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인가요. 이사가세요? 그건 아닌거 같고..."

 

안: "방을 하나 대대적으로 정리하면서 집안을 다 바꾸려고...."

 

나: "딸애는요?"

 

안: "친정 식구들이랑 어디 놀러갔어요. 아침부터 걔 데려다놓고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일이 크네요..."

 

 

 

 

딸애는 없지만.

 

뭔가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로맨스를 벌일만한 환경이 아닙니다.

 

방 셋이 모두 박스가 널부러져 벌려져 있고 가구 위치는 바꾸다 말았고 -분명 혼자하다가 포기한 느낌- 환기를 위해 창이란 창은 모두 열어 놓았으니 여기서 무슨 로맨스가..

 

 

 

나: "일단 전 뭘 할까요.."

 

안: "저 장에 있는거 다 빼서 아래로 내리는데... 제가 노란색 포스트잇 붙인건 버리는거 파란색 포스트잇 붙인건 이 박스에.. 그리고 이건 여기... 나머진 옆의 장에... 그리고 그 장은 그 담에 아파트 앞에 내 놓을거고요. 그다음에.. 일단 이것부터... 같이 해주세요."

 

 

뭔가 난리인 듯 한데 그래도 일 시키기 편하게 정리는 잘 되어 있습니다. 일일히 하나하나 물어보지 않아도 바로 할 수 있도록, 그리고 본인도 미리 판단 해놓고 빨리 할 수 있도록 뭔가 많은 표시를 해 놓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이 집안의 속속들이를 다 알게 생겼습니다.

 

 

 

 

보통 이런건 잘 안 알리고 숨기지 않나. 

 

좋은 것만 보이려 하지 않나.

 

참. 특이한 사람.

 

 

 

 

 

순간 저희 집이 생각났습니다. 

 

전 지금 절대 안책임님을 부르지 못할 것 같습니다.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챙피한 물건들... 

 

정리되지 않은 옷장.

 

 

 

 

나: "갑자기 정리는 왜 하세요? 너무 대대적인 정리인데.."

 

안: "남편이 그동안 몇번 왔다 갔는데.. 짐은 당최 가져갈 생각을 안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이 집에 미련이 있어서 그러나. 아니면 그래도 같이 살려는 마음을 못내 안 버렸나 하면서 저도 마음이 좀 그랬는데..."

 

 

그러면서 목장갑 한 켤레을 건넵니다.

 

 

 

안: "다칠수도 있으니까 이것부터 끼시고..."

 

 

이것도 당신의 매력. 목장갑도 준비해놓고.

 

 

 

 

안: "이야기들어보니 순전히 귀찮아서더라고요. 얼마전에 이메일로 내가 다 버린다고 했더니 또 그러라고... "

 

박스에 테이핑을 해서 밑을 단단히 해서 열어 놓습니다.

 

 

안: "왜 나한테 이런 일을 시키냐고 막 화를 낼까 하다가 그래도 아이 아빠인데 싶어서 이 정도는 내가 해주자 생각했어요. 첨엔 사람써서 다 갖다 버리려고 했는데 중요해 보이는건 시댁에 보내고 또 내 물건도 섞여 있고 해서.. 내가 직접하려고 했는데."

 

 

 

나:  (버리는 걸로 표시된걸 박스에 넣으면서) "이걸 어떻게 직접해요. 하이고.."

 

안: "그니까요.. 내가 날 이렇게 몰라.... 그리고 이 참에 책임님이랑 시간도 좀 보내고 싶고.... 좀 뻔뻔하지만...."

 

 

 

아. 당신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아는구나... 불르면 좋다고 올 줄...

 

 

책을 박스에 넣고 옮기고 장을 들어내고 책상과 각종 가구를 옮겼습니다. 생각보다 일이 많습니다. 남자 한명 정도 더 있으면 빨리 할텐데. 하지만 지금 둘만 있는게 좋습니다. 아니 생각해 보니 사람 하나 써서 빨리 끝내고 둘만 조용히 있는게 더 좋은....지도.

 

방 하나만 정리하면 될 줄 알았는데 아이 방도 침실도 난리입니다.

 

방에서 나오는 옷가지가 몇 박스인지 모르겠습니다.

 

나: "이 옷들 다 버리시는 거에요?"

 

안: "버리는 건 아니고. 어디 기부형식으로 보내요. 거기서 팔거나 옷을 리폼하거나 어디 못사는 나라 보낸데요. "

 

 

애 옷에 남자 옷에 여자 옷에..

 

 

 

 

안책임님이 자켓을 하나 들면서.

 

안: "으으. 이거 아깝다. 아까워. 이거 얼만지 한번 맞춰 보실래요?"

 

나: "음.. 30만원?"

 

안: "10만원이라고 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옷 좀 사보긴 했나보네요. 정답은.. 50만원. 한 8년 정도 된건가. 싱글 때 돈 잘 쓰고 다닐때 생각없이 산건데.. 너무 유행이 지나서 이제 입을 수가 없네요. 그래도 어떻게 리폼해서 입어볼까. 천은 좋은데..."

 

나: "헉 50만원 짜리 옷을 버리긴 좀 아깝네요."

 

안: "근데.. 지금 여기서 또 아깝다고 붙잡고 있으면. 못 버릴거에요. 입지도 못하고. 이런 옷이랑 물건이 하나 두 개가 아닌데.. 오늘이 그런 날인거 같아요. 버리는 날. 옛날 일 생각 안하는 날."

 

 

 

저희 집에도 골동품같은 옷과 물건들이 길을 잃고 어딘가 쌓여 있지요.

 

저도 어지간히 못 버리는데... 여친들에게서 받은 것들부터 좀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책임님은..

 

지난 결혼생활 애써 지우고 비우려는 듯.

 

지금 뭔가 더 오버해가며 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점심께가 되자 밥을 시켜 먹잡니다.

 

나: "어우 일할땐 쭝국집 아닌가요. 전 짜장면 사실 땡기는데."

 

안: "아 그럴까요. 이삿짐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리고 소주도 한잔 먹을까요?"

 

 

소주? 응?

 

 

안: "아하하. 저 귀여운 벙찌는 표정. 그냥 언젠가 영화 보는데 이삿짐 막 옮기고 중간에 짜장면 시켜먹으면서 소주 한잔 먹는게 그렇게 맛있어 보이더라고요. 그냥 한번 해보고 싶어서..."

 

 

참 별게 다 해보고 싶다.

 

나: "그래요. 근데 소주 먹으면 퍼져서 일 못하고 그럴수도 있는데"

 

안: "한 잔 씩만 먹어요. 나머진... 모르겠다. 냉장고에 뒀다 담에 먹고."

 

 

 

탕수육과 짜장면이 오고 안책임님이 나가서 음식을 받습니다.

 

나: "저 이 박스만 테이핑 하고 갈게요. "

 

안: "내가 비벼 놓을까요? 괜찮죠?"

 

나: "제가 비벼도 되는... 아니에요. 비벼주세요. "

 

 

 

해준다고 하면 또 해달라고 하는 것도 예의. 

 

그리고 비벼주는 것도 기분이 좋습니다. 

 

 

 

배달 온 소주 컵에 따라 한잔 씩 따르고 짠. 전 쓰디쓰게 한잔을 입에 털어 넣었습니다.

 

 

 

아뿔싸. 아껴 먹어야 하는데.

 

 

쓴 입을 달래려 애써 탕수육을 입에 밀어 넣는데 안책임님도 살짝 한입 마시고 아우써. 하면서 표정을 찡그립니다.

 

 

나: "근데. 이 방은 꽤 공간이 비는데 계속 서재로 쓰세요? "

 

안: "아.. 여기 누가 들어와요. 하숙 치려고."

 

나: "하숙이요? 대학생? 여긴 대학가도 아닌데?"

 

안: "반은 농담이고 반은 진담. 저희 사촌 오빠네 조카딸이 대학교 3학년인데 오빠네는 집이 대전이거든요. 작년까지 기숙사 살다가 기숙사 답답하다고 오피스텔 얻어 나왔는데 그 오피스텔에서 무슨 사건이 있었나봐요. 그래서 옮긴다 불안하다 난리를 피우다가"

 

 

안: (짜장면을 돌돌말아 한입 넣고) "내가 우리집 와 있으라 했어요. 그랬더니 오빠는 뭐 완전 고마워하지. 제가 걔 퍽 예뻐했거든요. 하숙비조로 얼마 준다고 하는데 솔직히 하숙비받는 것보다 사실 우리 애를 일주일에 한번 정도 저녁에 봐달라고 하려고요. 만약에 하숙비를 기어코 준다고 하면 내가 얘를 꼬셔서 알바로 애 보라고 하던가."

 

 

아...

그러면. 이 집에 전 이제 못 오겠네요.

 

 

나: "잘 됐네요! 조카애가 애 볼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어. 생각해보니 그럼 저녁에 만날 수도 있겠....

 

 

안: "미국에서는 뭐 아이 보는게 여자애들한테는 제일 흔한 알바니까. 이정도면 매우 건전하고 편한 알바 아닌가. 저도 애 보는 사람 구하는 것보다 친척이니까 훨씬 낫기도 하고.."

 

 

 

혼자 데이트도 하고 그러는 상상을 하는데.

 

어제의 불편한 감정이 갑자기 꿈틀댑니다.

 

나 이래도 되는건가.

 

아니 우리 이래도 되는건가.

 

내가 책임질 수 있는 건가.

 

하는...

 

 

 

소주 한 잔씩을 먹자던 다짐은 온데 간데 없이

 

전 석 잔을 먹었고 안책임님도 아우 소주가 엄청 달으네- 하면서 두 잔이나 먹었습니다.

 

 

 

 

술기운으로 일하던 옛날 농활이 생각납니다.

 

그래. 그 때 논주인 할아버지가 그러셨지. 오후엔 술기운으로 일하는 거라고. 

 

 

 

다 먹고 그릇을 정리한다음 제일 먼저 빈 책장을 옮겼습니다. 

어차피 부서져도 될 책장이라 대충 끌어내서 엘리베이터에만 태우면 된다 생각했는데 그래도 혼자 하기엔 쉽지는 않아 안책임님과 같이 옮겼습니다.

 

결혼하면. 이런 느낌일까요. 둘이 이렇게 힘쓰고 옮기고 청소하고 하는데 꼭 밤에 몸 섞지 않아도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남녀가 둘이 목장갑끼고 낑낑거리며 장을 내가는 모습은 

정말 누가 봐도 부부라 할만했습니다.

 

 

 

정말 좋아하니까 이런 느낌이 드는 걸까요.

아니면 보통의 연애감정과 달라서 그런걸까요.

 

 

 

 

안 책임님은 큰 서랍 하나를 탈탈 털며 박스에 차곡차곡 쌓아 넣고 있었습니다. 

 

안: "막 이렇게 쌓아도 되겠죠? 택배로 부치면 다 망가지려나.."

 

나: "가서 뽁뽁이라도 좀 사올까요?"

 

안: "아니에요. 그냥 대충 빈공간은 신문지 구겨 넣죠. 뭐. 이정도 신경써주는 것도 어딘데. 다 안 갖다 버리고.."

 

 

서랍속에서 남편 물건을 찾아서 정리하면서 무표정하게 박스에 넣는 안책임님이 신기합니다. 전 여친 물건 정리하는 것도 되게 신경 쓰이던데.

 

 

나: "근데 이거 남편 물건 보면 막 화나고 그러지 않으세요?"

 

안: "화는 이미 낼대로 다 냈고. 또 한 때는 좀 슬프기도 했는데 오히려 정이 좀 쉽게 떨어졌어요. 그 사람이 가만 있었으면 제가 정이 잘 안떨어졌을텐데 소셜 네트워크 하는 거 보고 있으면 정이 너무 쉽게 떨어지더라고요..."

 

 

 

 

네. 페이스북이 문젭니다. 트위터도 문제에요.

 

 

 

 

근데 정리하는 물건중에 눈에 띄는 물건이 있었습니다.

 

 

나: "엇.. 농구카드다! 이야 이게 언제 꺼야.."

 

안: "아.. 전남편이 농구 좋아했었는데 이런게 있는지 몰랐네요. 이야기 한 적이 있는것도 같고.. 책임님 가질래요?"

 

나: "에이.. 아무리 그래도 전남편 물건은 좀.. 이야 매직 존슨. 샤킬 오닐. 와아 이게 언제야.. 올드 스쿨이네.."

 

 

 

저도 한 때  NBA 키드로 살았는데 전남편이란 사람은 저보다 연식도 있고 해서 조금 세대가 좀 앞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컬렉션이 레어해보입니다.

 

마이클 조던 카드도 있고 데이비드 로빈슨 루키 카드도 있습니다. 무슨 세트를 완성한 거 같은데 91년 all-nba 팀 세트의 면면이 엄청 화려합니다. 마이클 조던에 드렉슬러, 칼 말론. 찰스 바클리.  캬아 드림팀 원이네..

 

 

안: "농구 좋아하시면 하나 가져가요. 다 가져가기 그러면 좋아하는 선수 가져가세요. 시댁에 보낼건데 제 생각엔 시댁에선 버릴 거 같아요. 그 집에도 딱히 둘 곳이 없다면.."

 

나: "어. 정말 그래도 돼요?"

 

 

전남편 물건 가져가라는 안책임님이나 그걸 좋다고 집어가는 저나. 참...

 

마이클 조던 카드 몇 장과 워리어스를 좋아하여 크리스 멀린, 팀 하더웨이 카드를 집었습니다. 미치 리치먼드는 없네요. RUN TMC 를 완성했어야 하는데. 

 

 

 

 

 

중간에 커피도 한잔씩 타 먹고 음악도 틀어 놓고 일하면서 재미있게 일했습니다. 

 

대충 버릴 것은 버리고 박스 테이핑도 하여 복도에 택배에서 픽업할 수 있게 쌓아 놓자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전 긴팔을 벗고속에 입은 반팔만 입은 채로 청소를 하자 안책임님도 땀이 너무 많아 났다면서 옷을 갈아입는다는게 브라탑에 헐렁한 티 한장 걸치고 나와서 청소기를 돌립니다.

 

 

아.. 왜 또 날 혼미하게 만들어...

 

 

또 상상 속에 빠지는 정신을 겨우 부여잡고  물걸레 청소기를 돌려 얼추 마무리하였습니다.

 

 

마지막 쓰레기 봉투를 내다 버리고 올라와서 세수를 하고 손을 씻고 둘이 소파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늦은 오후의 지는 햇빛이 길게 마루 구석에 들어오고 일을 마무리했다는 나른함과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이 묘하게 어울립니다. 엇. 이건 배철수의 음악캠프 시그널인데...

 

 

 

정말 행복했습니다.

 

결혼하고 집 이사하고 정리하면 딱 이런 기분이겠지. 정말 행복하다. 이런 사람과 결혼해서 살면. 세상에 아무런 질투가 없겠다. 나보다 행복한 사람이 없을거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 사람이 옆에만 있다면.

 

 

 

 

어느덧 관계에 대한 고민과 불안은 같이 있는 시간이 멀리 밀어냈고 좋은 생각 행복한 마음만 남았습니다.

 

 

 

 

 

그래. 사귀자고 그러자. 

 

아니 이미 사귀는건가? 요즘 말로 아직 썸인가. 굳이 사귀자고 해야하는 건가?

 

그래도 사귀는거 서로 공인해야지. 

 

 

 

이런 생각으로 한참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는데.

 

 

 

안: "아이고. 이제 친정 가봐야겠어요. 같이 저녁 먹기로 해서. 미안해요. 저녁까지 일한다고 했어야 하는데... 같이 저녁먹어야 하는데 너무 미안해요. 짜장면에 이렇게 하루종일 일을 시키고.."

 

 

나: "아니에요. 저도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농구 카드도 생기고.. ㅎㅎ "

 

 

그리고.. 안책임님을 더 알게 된 것 같아요. 

 

 

안: "음.. 지금 같이 나갈래요? 술 먹은거 괜찮겠죠? 한 여섯시간 지난건데"

 

나: "에이 한 병씩 먹은 것도 아닌데요 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좀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우리. 이제 또 언제보나요. 사귀는거면 자꾸 보자고 이제 연락해도 되는거죠.. 라는 생각만 하다가

 

아무래도 사귀자고 해야겠습니다.

 

어차피 좋아하는 감정까지 확인한 이상.

 

사귀자는 말은 내가 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용기를 내어. 우리 사귀어요. 라고 말하려 하는데.

 

 

 

 

 

 

안: "우리. 데이트해요."

 

 

 

 

데이트? 

 

이거 참 옛날 말이다. 데이트.

 

 

나: "어. 좋죠! 데이트! 그래요. 영화도 보고 막 밥도 먹고 그래요!"

 

안: "이제 저녁에 좀 시간도 날 수 있으니까요."

 

나: "아.. 오늘 제가 일한게 다 의미가 있는 셈이네요!"

 

안: "그래서 부른건 아니지만. . 아무튼. 고마웠어요. 오늘. 맨날 고맙다는 말만 하고 사네요."

 

 

 

 

 

하더니 

 

곧 도착한 엘리베이터에서 저를 안아 주었습니다.

 

 

 

 

그 짧은 순간 방금 얼굴에 있던 비누 냄새와 원래의 안책임님에게서 나는 깊은 향기가 또 잠시의 천국을 만들고....

 

그 찰나의 천국 속에서 안책임님에게 있던 무언가가 나에게 전해지는 이 상태는 아아... 배우면서 내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시험에 나오면 그냥 틀려도 상관없던 슈레딩거 방정식으로 설명되는 것이었군요. 

 

 

 

 

그냥 그 포옹으로.

 

심지어 키스도 없었던 포옹으로 

 

금방 또 설레게 하는 당신.

 

 

 

 

 

 

지난 일 년 간.

 

보통의 관계였으면 

 

더 진한 스킨쉽으로 

사랑 고백으로 

다툼으로 

현실의 계산으로  

 

감정의 물살을 쉼없이 탔을텐데

 

 

 

 

나는 안책임님에게서 

 

아직도 

 

안아줌에 

손에 꼽는 키스에도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마냥 설레임만 남아 있습니다.

 

 

 

안책임님이 없이 나만 남으면 만남이 지속될 수 있는건지 불안해지고

 

같이 있으면 그냥 마냥 행복하기만 합니다.

 

 

 

더 자주 만나야겠습니다.

 

불안을 잊을 수 있도록.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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