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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밀봉

클라우드92019.09.06 15:59조회 수 868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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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0대의 회사원이다
 
이 일에 휘말리기 전까진 착한 아내와, 세살난 귀여운 딸을 둔 평범하지만 행복한 가장에 불과했다
 
 
 
1999년 10월 19일 화요일 P. M 6시 30분 
 
나의 유일한 취미는 희귀한 서적을 모으는 일이다. 
 
나는 술도 잘 못 마시고 담배도 피우지 않는 고리타분한 사람이다. 
 
대신 용돈을 모아 헌 책방에서 절판된 책들을 구하는 것이 나의 즐거움이었다. 
 
그 날도 조금 일찍 퇴근해서 단골로 가는 책방에 들렸다. 
 
주인 아저씨는 단골인 내가 들리면 따로 모아둔 책들을 보여주곤 했다. 
 
그 날도 그랬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어, 오랫만이구만.... 요새 바쁜 모양인가 보지?" 
 
"먹고사는 일이 다 그렇지요... 뭐. 근데 뭐 좋은 것 좀 들어 왔어요?" 
 
"거기 그 쪽을 뒤져보게나... 몇 권 새로 들여다 놓은 것이 있을 테니...." 
 
나는 아저씨가 가리킨 곳으로 갔다. 
 
책들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발등에 책 하나가 떨어졌다. 
 
"아야" 
 
나는 발을 움켜잡으며 그 책을 주었다. 
 
새 책 같았는데 뒤적거리니 내용은 오래 된 듯 싶었다. 
 
'책 주인이 잘 보관했나 보지? 거의 새 책 같은데.... 30년도 넘은 책이잖아? 제목이..... 
 
음 [밀봉 - 자신의 운명을 훔쳐보는 자에 대한 저주]? 제목 한 번 특이하다.....' 
 
나는 그 책을 집었다. 
 
"아저씨 이거는 뭐예요?" 
 
"..... 어디 보자..... 글쎄 무더기로 가져 온 것 중에 하나라.... 왜 맘에 드나? 내 그럼 싸게 해 줌세." 
 
"으음..... 네 이 걸로 주세요..." 
 
나는 그 책에 끌렸다. 그것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리라... 
 
기묘한 제목에 대한 호기심이랄까.... 
 
아저씨가 책을 싸 주는 동안 나는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다가 아저씨가 건낼 때야 정신을 차렸다. 
 
"안녕히 계세요." 
 
"그려, 잘 가게.... 고맙네." 
 
 
 
1999년 10월 19일 화요일 P. M 7시 10분 
 
나는 얼른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거의 집에 다다랐을 무렵, 나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집에 가면 또 딸아이가 달라붙어 책 보기가 어렵겠지? 게다가 오늘은 대 청소를 한다고 했으니 거들라 할지도 모르고....' 
 
나는 생각 끝에 집 근처의 찻집으로 들어갔다. 
 
어두 침침한 구석으로 자리 를 잡은 나는 커피를 한 잔 시키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 어 난데, 나 좀 늦을 꺼 같아.... 갑자기 일이 생겨서 말이야.... 저녁? 차려 놔. 될 수 있는 대로 금방 들어 갈 테니.... 어 알았어."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여유 있게 책을 폈다. 
 
별 다른 내용은 아니었다. 
 
무속 신앙에 대한 책인데 무당들이 점을 보는 법이나 굿, 그리고 점괘가 어떻게 맞아 떨어 졌는 지에 대한 예를 열거한 책이었다. 
 
대충 흩어보던 중거의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랐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 이제 나의 이야기는 끝이 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본 당신의 미래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 곳에 당신의 사주, 그러니까 생년, 월, 일, 시를 적어 주십시오. 
 
저의 점은 단 한번도 틀린 적이 없습니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생년: 생월: 생일: 생시:
 
(단, 정확히 쓰셔야 합니다.) 
 
자, 이제 다음의 밀봉된 페이지를 뜯어보십시오......' 
 
엥? 뭐지? 나는 좀 놀랐다. 무슨 잡지에서나 보던 서비스 페이지인가?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재미 삼아 사주를 써넣었다. 
 
그리고 밀봉된 페이지를 뜯었다. 거기에는...... 
 
'......당신의 미래는 이러합니다. 당신은 1999년 11월 2일 오후 11시 30분 아내와 딸을 죽이고 자살하게 됩니다......' 
 
헉, 나는 너무나 놀랐다. 말도 안되.... 내가 왜 그런 미 친 짓을 한단 말인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절대로. 
 
하지만...... 단 한번도 틀린 적이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책을 떨어 뜨렷다...... 
 
 
 
1999년 10월 20일 수요일 A. M 9시 30분 
 
나는 평상시대로 출근을 했다. 하지만 어제의 그 막막함은 지워 지지 않았다. 
 
그래, 그냥 장난일 꺼야.... 이런 생각도 들고 그래도 만에 하나 그것이 정말이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옆에서 잠들어 있던 아내와 아이를보니 더욱 심난해 졌다...... 
 
회사에서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나는 다시 그 책을 살펴보았다. 
 
신기하게도 마지막 페이지는 다시 밀봉되어 있고 사주를 적어 넣은 곳도 비어 있었다. 
 
나는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건 단지 장난일 거야, 사람을 놀라게 하려고 말이야...' 
 
그때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총무실의 민 혜주씨가 들어왔다. 
 
"한 대리님, 상무님이 찾으세요." 
 
"어, 그래? 알았어." 
 
"저 여기서 기다릴 께요. 이거 확인 받을 것이 있어서요." 
 
"음,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오도록 하지......" 
 
 
 
1999년 10월 20일 수요일 A. M 10시 
 
나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만 민 혜주씨가 그 책을 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뛰어 들어가 그 책을 빼앗았다. 
 
혜주씨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설마..... 밀봉된 페이지를 열었나?!" 
 
"저는.... 그냥 운세풀이 같은 것인 줄 알고..." 
 
"....... 뭐라고 쓰여 있었지?" 
 
"1999년 11월 7일 새벽 4시 교통사고로 죽는다 고요..." 
 
우리는 둘 다 주저앉았다. 나는 어제 있었던 일을 말해 주었다. 
 
"...그...그럼 대리님도?" 
 
"..... 어때? 이거 믿겨지나?!"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만에 하나 이것이 사실이면 우리는 둘 다 죽는다 고요....." 
 
".... 실은 나도 어쩌면 좋을 지 모르겠어....." 
 
점심시간에 우리는 만났다. 그러나 둘 다 식욕이 없었기에 가까운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저도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요. 우선 이 책의 출처에 대해 알아보는 게 어때요?" 
 
"출처?!" 
 
"네, 그렇게 추적해 보면 이 책을 쓴 사람도 알 수 있게 될 꺼고 이게 만약 진실이라 해도 그 사람은 해결책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 좋은 생각이야. 나는 오늘 저녁에 그 책방에 다시 가 볼께." 
 
"저는 시립 도서관에 가서 찾아볼 께요. 하다 못해 신문이나 자료라도 뒤져보면 출판사라도 알 수 있겠죠...." 
 
 
 
1999년 10월 20일 수요일 P. M 7시 5분 
 
"아니, 어제도 오더니 또 왔나?" 
 
"아니... 저 실은 여쭈어 볼 말이 있어서요...." 
 
나는 지금까지 일어난 이야기를 말했다. 아저씨는 이맛살을 찌푸리고 듣고있었다. 
 
"믿기지 않네 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끔찍한 일이군...." 
 
"어떻게든 막아야 해요... 안되면 전 그 전날 자살하겠습니다. 아내와 제 딸을 어떻게 제 손으로 죽인단 말입니까...." 
 
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아저씨는 나를 달랬다. 
 
"미안하네... 내가 제대로 된 것만 팔았어도.... 하지만 그 책을 가져온 사람은 뜨내기야. 
 
한 번씩 불쑥 나타나서 책을 팔고 가기 때문에 나도 아는 것이 없네 만...." 
 
더 이상 알아 낼 것은 없었다. 나는 눈물을 닦고 일어났다. 아저씨는 나를 배웅했다. 
 
"질 나쁜 장난 일수도 있다네. 나도 백방으로 알아 볼 테니 연락처나 두고가게나." 
 
아저씨에게 명함을 내민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혜주씨에게 연락을 했다 
 
"여보세요" 
 
"어, 혜주씨. 뭐 좀 알아냈나?" 
 
"여기는 그런 책이 없어요. 신문이나 기록에도 그런 것은 없구요...." 
 
"큰일이군...." 
 
 
 
1999년 10월 23일 토요일 P. M 6시 55분 
 
"3일 동안 알아 볼 만큼 알아보았어요. 이번 것도 실패라면....." 
 
"그래도 포기하면 안돼. 혜주씨는 젊고 나는 가족을 지켜야 하니까...." 
 
우리는 별별 방법을 동원해서 책의 근원을 알아보려 애를 썼지만 허사였다. 
 
나는 생각 끝에 대학 때의 은사님께 조언을 구하기로 했다. 
 
나는 국문학과출신으로 내가 고서를 모으게 된 것도 그 교수님의 영향이었다. 
 
"유지범 교수님 안녕하셨어요?" 
 
"아니 한 군, 오랜만이야. 기다리고 있었네....." 
 
늦게까지 연구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던 교수님은 여전히 정정하셨다. 
 
내가 학교 다닐 때보다는 많이 늙으셨지만..... 
 
그때의 나는 어지간히 교수님의 속을 썩혀 드리곤 했지만 늘 나를 감싸주시던 분이었다. 
 
나는 교수님께 지금까지의 사정 이야기를 다 말씀 드렸다. 
 
"...... 그게 사실이라면..... 내 생각인데 그 책 어떤 주술서 같은 것인가?" 
 
"여기 가지고 왔습니다만....." 
 
교수님은 그 책을 면밀히 살펴보셨다. 
 
"호오.... 정말 드문 것이군." 
 
"뭔가 아시겠어요?" 
 
"이건 말일세..... 신내림을 받거나 몸에 귀신이 든 사람들이..... 오 이게 바로 그 밀봉된 페이지인가?" 
 
"네.... 근데 그 사람들이 뭐요?" 
 
"어디 보자.... 사주를 적어 넣으라고..... 나도 한번 써넣어 볼까?" 
 
교수님은 책상 위의 펜을 집으셨다. 
 
"안 되요. 저희는 그것 때문에....." 
 
"허허 젊은 사람들이 겁이 많구만..... 이건 단지 주술의 한 형식일 뿐이라네...자 보게나...." 
 
교수님은 빈칸에 교수님의 사주를 써넣으시더니 밀봉된 페이지를 여셨다. 
 
"어디 나의 미래도 한번 볼까? 어디..... '음 당신은 1999년 10월 23일 7시 30분 심장마비로 죽게..... 됩니...다?!'" 
 
오 맙소사, 시계 바늘이 그 시간 7시 30분을 가리켰다. 순간 교수님은 가슴팍을 움켜쥐시고 바닥에 쓰러 지셨다. 
 
"교수님!!!" 
 
"까악!!" 
 
"혜주씨, 빨리 사람들을..... 아니 구급차를....." 
 
나는 교수님을 일으키려 했다. 교수님은 나의 팔에 매달리시더니 말씀 하셨다. 
 
".....한..군... 나....난 .....틀린.... 거 같네...... 내.... 말을 ..... 
 
잘 .....듣게..... 그... 책은 ..... 예전....에 귀신.....이나 잡신.....을 
 
밀....봉....하는 ....책....이라....네.....그..러니.....으.....윽......" 
 
"교수님. 정신 차리세요. 제발......" 
 
 
 
1999년 10월 23일 토요일 P. M 11시 40분 
 
혜주씨와 나는 시체 영안 소를 나왔다. 
 
경찰에게 시달린 우리는 녹초가 되어있었다. 
 
사인은 심장 마비..... 우리는 그 책의 영통(?)함에 할 말을 잊었다. 
 
"..... 이제 어쩌면 좋지요?" 
 
"글쎄, 교수님 말씀에 의하면 귀신을 가두는 책이라니... 무속 신앙 쪽을 뒤지면 뭔가 나오지 않을까?" 
 
"..... 그 점괘는 사실이었어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흑" 
 
갑자기 혜주씨가 울기 시작했다. 나도 울음이 터져 나올 꺼 같았지만 꾹 참고 혜주씨를 달랬다. 
 
"울지마.... 다 잘되겠지....." 
 
"울지 말라고요? 이게 다 누구 탓인데요? 대리님이 그 책을 사지만 않았어도 아니 회사에 들고 오지만 않았어도...." 
 
"그게 왜 내 탓인가? 그게 혜주씨의 운명이 라잖아.... 나도 이젠 모르겠어...." 
 
나는 화를 내고 돌아섰다. 그리고 집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으려 했다. 
 
"..... 대리님,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그만 화를 내서....." 
 
혜주씨가 나를 잡았다. 
 
"아니야... 혜주씨 말이 옳아. 내가 괜히 이상한 책을 구하는 바람에... " 
 
"아니에요. 대리님 말대로 그런 운명이었다면 어떻게 손도 못 써보고 죽을 뻔했잖아요? 아까는 겁이 나서 그만 화를 냈지만..." 
 
혜주씨 말이 옳다. 우리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면 손 한번 쓰지 못하고 앉아서 죽었을 것이다.. 그 말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1999년 10월 25일 월요일 P. M 8시 
 
교수님의 영안 소에 와 있었다.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정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나 때문에 가신 듯한 교수님을 모른 척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동♥♥석들(미창, 종학, 성호 등)과 술을 좀 마시고 고스톱을 좀 치고 있을 때였다. 
 
얼마간의 돈을 잃은 나는 담배를 물고 나왔다. 그때 핸드폰이울렸다. 
 
"여보세요" 
 
"날세. 책방 영감일세." 
 
"아저씨가 웬일이세요?" 
 
그러고 보니 시끌법썩한 소리가 들려 왔다. 
 
".... 가만히 좀 있어... 아 자네한테 한 소리가 아니고.... 하여튼 빨리 우리가게로 와 보게나. 그 책을 판 사람을 잡아 놨다네... 얼른 오게."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나는 혜주씨에게 연락을 한 뒤 서점으로 달려갔다. 
 
 
 
1999년 10월 25일 월요일 P. M 8시 50분 
 
나는 미친듯이 뛰어 서점에 도착했다. 
 
이 앞까지는 택시를 타고 왔는데 차가 밀리자 뛰는 것이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헉헉 아저씨... 그 사람 어디 있어요?" 
 
아저씨가 어떤 남자를 거의 껴 안다시피 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마흔 살 가량의 체구가 작은 남자로 눈초리가 야비하고 무섭게 생긴 사람이었다. 
 
책방아저씨가 그 남자의 거의 두 배쯤 되는 덩치였지만 심하게 저항을 하고 있었다. 
 
"이것 봐요. 당신이 여기에 판 책 어디서 난 거예요?" 
 
그때 혜주씨도 도착을 했다. 대충 상황 판단을 했는지 문을 잠갔다. 
 
"그 책 말이에요..." 
 
"몰라. 왜들 이러는 거야? 생사람을 잡고 말이야. 자꾸 이러면 당신들 다 고소 할 꺼야" 
 
갑자기 혜주씨가 그 남자의 뺨을 때렸다. 
 
"야 지금 나는 차에 박혀 죽고 이 사람은 지 식구들 다 죽이고 지도 죽는다는데 고소 따위 무서워 할 꺼 같아? 
 
나 이제 죽는 거 안 무서워. 어차피 죽을 꺼 너 같은 자식 하나 못 없앨 꺼 같아?" 
 
그 말을 들은 남자는 조용해 졌다. 우리는 그 사람을 달래기도 하고 화를내기도-이건 주로 혜주씨가 했지만 -하면서 그 사람을 설득했다. 
 
그 사람은 정말 어렵게 입을 열었다. 
 
대충 이런 얘기였는데 가족들이 산골이나 외딴 시골을 돌면서 가보로 내려오거나 하는 값진 고서들을 훔쳐내 판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장물을 판 것을 알려져 처벌을 받을 까봐 그렇게 겁을 낸 것이었다. 
 
우리는 그 책의 출처만 알면 모든 것을 눈감아 주고 사례도 하겠다고 했다. 
 
나와 혜주씨는 지갑을 털어 가지고 있던 돈 23만원을 꺼내 건냈다. 그는 한참 망설이더니 그 책을 훔쳐 온 곳을 말했다. 
 
 
 
1999년 10월 26일 화요일 A. M 10시 45분 
 
우리는 어제 그가 말해준 XX시로 향하는 고속버스 안에 있었다. 
 
둘이 휴가를 내고 말이다. 
 
"그 사람이 말해준 곳이 아니면 어쩌죠?" 
 
"아니 내 생각에는 제대로 가르쳐 준 거 같아. 그 책에 보면 이 지방 사투리가 간간이 나오더라구..... " 
 
그가 가르쳐 준 마을은 너무 멀었다. 
 
우리는 5시간도 넘게 고속 버스를 타고 그 마을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기다렸다. 
 
하지만 그 곳은 하루에 버스가 두 번밖에 가지않는 외진 곳이었다. 
 
두 번째 버스는 오후 7시 차였다. 우리는 대충 요기를 하고 차에 올랐다. 차는 비포장 길을 구비 구비 한 시간도 넘게 달렸다. 
 
 
 
1999년 10월 26일 화요일 P. M 8시 30분 
 
도착하고 나니 이미 날은 저물어 있었다. 
 
작은 동네로 집들이 일고 여덟 채 정도 밖에 없어 보였다. 우리는 그 중 가장 가까운 집으로 갔다. 
 
"...... 계세요?" 
 
"누구슈?" 
 
"저.... 이 동네에 볼일이 있어 서울에서 내려 왔거든요. 날이 저물어서 그런데 하룻밤에 재워 주시겠어요? 민박 비는 드리겠습니다." 
 
혜주씨가 조리 있게 또박또박 말했다. 그러자 늙수그레한 아주머니가 말했다. 
 
"하룻밤 재워주는 걸로 무신 돈을 받고 그런다요... 야박시럽게... 자 들어오슈... 그래, 저녁밥은 먹었고?" 
 
좋은 분 같았다. 나는 이 아주머니에게 이 책 이야기를 물어보기로 했다. 
 
" 저 아주머니.... 이 책 어느 댁 것인지 아시겠어요?" 
 
"무신 책?...... 에그머니!!" 
 
그 아주머니는 너무 놀라 뒤로 주저앉았다. 
 
"시상에.... 그 무서운 것을 다시 가지고 오다니....." 
 
아주머니는 주저앉아 벌벌 떨더니 뭐라뭐라 중얼댔다. 아주머니의 비명에 동네사람들이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무신 일이다요?" 
 
"뭔 일 있는감?" 
 
사람들이 나오자 아주머니가 말했다. 
 
"시상에.... 이 객지에서 온 사람들이 그 죽은 서산 댁 책을 가지고 왔시유." 
 
그 말에 사람들은 웅성대기 시작했다. 나는 그 책을 내밀며 물었다. 
 
"아저씨, 아세요? 아시면 저희 좀 도와주세요...." 
 
"난 암 것도 몰러...." 
 
모여들었던 사람들은 다들 자기네 집으로 돌아가 대문을 '쾅' 닫아 버렸다. 
 
처음의 그 아주머니까지도..... 
 
우리는 그 마을 한 복판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마냥 서 있었다. 
 
 
 
1999년 10월 26일 화요일 P. M 9시 45분 
 
바람도 차고 배도고파왔다. 
 
우리는 이 집 저 집 문을 두드리고 다녔지만 아무도 내다보지 않았다. 
 
혜주씨는 막막한지 어느 집 처마 밑에 앉았다. 
 
"이제 어쩌면 좋아요?" 
 
"글쎄....." 
 
나는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 불을 켜는 순간 우리 옆에 누군가 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누...누구세요?" 
 
"나는 이 동네 사람일세.... 오늘 하루는 우리 집에서 자게 나..." 
 
자세히 보니 허리가 굽은 할머니였다. 우리는 고개를 숙여 감사하고는 할머니를 쫓아갔다. 
 
달랑 방 하나인 집이었지만 그래도 방이 커서 3사람이 충분히 잘 만 했다. 
 
우리는 할머니가 차려준-달랑 된장 찌개 하나에 김치가 다였지만- 늦은 저녁 밥상을 정말 맛있게 비웠다. 
 
"잘 먹었습니다." 
 
".... 젊은 사람들이 어쩌다가 그 책을 구하게 되었나?" 
 
우리가 묻지도 않았는 데 할머니가 먼저 책 이야기를 꺼내셨다. 
 
우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말씀 드렸다. 
 
"...... 그랬구만....." 
 
"어떻게 방법이 없겠습니까? 그리고 서산 댁 책이라는 건 무슨 소리입니까?" 
 
"이제 나는 늙었으니 뭐가 무섭겠나.... 난 자손도 없으니 상관할 게 없지.... 
 
나도 그 점괘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 지는 모르지만 그 책이 만들어지게 된 거는 안 다네...." 
 
할머니는 한숨을 쉬셨다. 우리는 할머니의 눈치만을 보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못 낳는다네.... 그래서 소박을 맞았지... 혼자서 고향집에 돌아와 살게 되었는데 옆집에 열 두 살 먹은 기집애가 있었지... 
 
귀엽고 이쁜 기집애로, 엄마가 일찍 죽어서 병든 아버지랑 둘이 살았다네... 그래서 그런지 나를 잘 따랐지. 
 
나도 아이가 없으니 그 애를 예뻐했고. 그런데 어느 날 그 아버지가 재혼을 했다네.... 그게 비극이지..." 
 
혜주씨와 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옛날 얘기에 나오는 계모들처럼 그 기집애의 새 엄마란 사람도 모진 사람이었지.... 그 애를 몹시도 구박 했다네. 
 
얼마나 무섭게 굴었던지 그 애는 새엄마 목소리만 들려도 자다가 벌떡 일어나곤 했지. 
 
얼마 후 아버지가 죽고나자, 그 새엄마는 더욱 아이를 학대했지." 
 
할머니는 늙어서 짓물러진 눈에 고인 눈물을 닦아냈다. 
 
"보다 못한 나는 그 아이를 데리고 도망이라도 가야겠다고 생각했네. 
 
그 애 가 마음 기댈 곳이라고는 나 밖에 없었거든. 
 
처음에는 그 새엄마라는 사람-그 여자가 바로 서산 댁일세- 에게 그 애를 달라고 해 봤지만 돈이라도 두둑이 주기 전에는 어림도 없는 얘기였네.
 
게다가 그 서산 댁은 아이를 부려먹는 것만으로는 돈이 별로 되지 못했는지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 냈지...." 
 
"그게 뭔 데요. 할머니?" 
 
궁금한 듯 혜주 씨가 물었다. 
 
"그건 ... 그 꼬마를 무당으로 만들 생각을 한 거지.... 애기 무당이라면 복채도 많이 받는 다고 들었던 모양이야... 어릴수록 말이지. 
 
그래서 억지로 그 애한테 내림굿을 받게 하려 했지.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아이를 데리고 도망가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기로 했네. 
 
하지만 그 전날 그 새엄마는 아이를 가두어 놓아 성공할 수 없었지. 
 
그래서 나는 굿을 받고 나면 감시가 소홀해 질꺼라 생각했기에 아이에게도 그렇게 말을 해 놓았네.... 
 
그런데 일은 그 내림 굿 때 터진 거야.... 
 
큰무당이 와서 작두로 계단을 만들어 놓고 굿을 했지. 그 애는 겨우겨우 작두 꼭대기까지 올라갔지만..... 
 
그만 너무나 큰 신이라 그 꼬마가 감당 할 수 없었지. 
 
그 애는 순간 신을 놓쳤는데 그때 작두에서 굴러 떨어 졌다네. 
 
얼마나 날을 잘 세워 놓았는지..... 그 애는 목, 손발, 배, 어디한 군데 성한데 없이 다 베어져 죽었던 게지.... 얼마나 끔찍했던지.... " 
 
나는 숨을 삼켰다. 혜주 씨는 그 장면을 상상했는지 얼굴빛이 창백해 졌다. 
 
"그 애는 그렇게 죽었다네... 하지만 그 애 몸에 들어간 신은 아이를 놓아주지 않았지... 그래서 아이의 혼은 세상을 떠돌게 된 거야. 
 
특히 그 새엄마에게 많이 나타났지. 죽을 때 모습 그대로에 흰옷을 입고 손에는 방울과 부채를 든 채, 피를 흘리며 말일세.... 
 
공포에 떨던 새엄마는 그 큰무당과 상의해서 그 애를 그 책 안에 가 두었다네.... 그 애는 그 안에서 아직도 외로이 점을 치고 있는 거지....." 
 
"근데 왜 점괘가 그렇게 나쁘지요? 세 사람이 이 시기에 다 죽게 되어 있다는게 이상하지 않아요?" 
 
"젊은 아가씨는 무당에 대해 너무 모르는구먼..... 
 
무당의 본업은 굿일세... 그러니 점괘가 나빠야 사람들이 굿을 할 것이 아닌가... 그 애는 빈틈없는 무당이 된 거지..... 
 
하지만 그 어린것이 그 안에서 이승을 뜨지도 못하고 갇혀서 사람들이 써주는 사주로 점을 치고 있다고 생각하니.... 다 내 탓이구먼." 
 
 
 
1999년 10월 27일 수요일 A. M 1시 
 
".... 이제 어쩌면 좋지요?" 
 
혜주 씨와 나는 할머니가 잠든 틈을 타 밖으로 나왔다. 
 
"그렇다고 그 꼬마에게 굿을 받을 수도 없잖아요? 그 책에는 굿하는 페이지는 없는데....." 
 
"그 애를 가두었다는 큰무당에게 가보자구.... 그 아이를 가둘 정도면 그 아이의 저주쯤이야 풀 수 있지 않을까?" 
 
 
 
1999년 10월 27일 수요일 A. M 9시 
 
"잘 묵었습니다." 
 
"만일 오늘 안으로 일이 안 끝나면 다시 오게나....." 
 
우리는 할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아랫마을로 내려갔다. 할머니가 알려준 대로 한참을 헤매다 보니 산으로 들어가는 곳에 작은 사당이 있었다. 
 
"계십니까?" 
 
".... 콜록콜록.... 게 누구요?" 
 
"저..... 알아 볼 것이 있어서...." 
 
늙고 초췌한 한 남자가 나왔다. 박수였구나.... 난 무당이래서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 남자는 노골적으로 적대감이 빛나는 눈을 하고 있었다. 
 
"저.... 이 책을 아시나요?" 
 
성질 급한 혜주씨가 책을 내밀었다. 그는 놀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으나 금새 얼굴 색을 바꾸었다. 
 
"난 모르는 일이요. 그러니 돌아들 가시오." 
 
나는 그 사내의 팔을 잡았다. 
 
"잠시만요, 그러지 마시고 저희 말 좀 들어보세요." 
 
"난 모른다지 않소?" 
 
"놔주세요. 한 대리님. 모른 다잖아요." 
 
"혜주씨...." 
 
"대신 돌아가는 길에 면사무소에 들려 저 아저씨 사주를 알아내서 여기에 적어봐요. 무슨 일이 생기나..." 
 
"뭐라구?" 
 
그 남자는 갑자기 얼굴이 창백해 졌다. 
 
"그 .... 그 것은..... 안 될 말이요." 
 
"어머, 이것에 대해 모르신 다며 써넣던지 말던지 무슨 상관이세요?" 
 
"알았소. 내 아는 것은 다 말할 테니.... 우선 들어들 오시오..." 
 
신발을 벗는데 혜주씨가 웃으며 속삭였다. 
 
"저 아저씨 무지 단순하죠? 면사무소에 가서 무슨 수를 써도 생, 년, 월은 알아내도 시는 모를텐데...그죠?" 
 
나는 씩 웃으며 들어갔다. 작
 
은 토담집으로 흙벽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짚을 꼬아 만든 방석을 내민 남자는 곰방대에 불을 붙여 물었다. 
 
나와 혜주씨는 번갈아 가며 사정 이야기를 했다. 
 
그는 이야기 내내 눈을 감고 듣기만했다. 
 
우리가 이야기를 마치자 그제서야 감았던 눈을 떴다. 
 
"그래서 나한테 원하는 것이 뭐요?" 
 
"이 점괘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까? 어떤 방법이라 도요." 
 
"한 신이 내린 점은 그 신만이 어찌 할 수 있소. 그러니 나는 어떻게 할 수가 없구료...." 
 
그러자 혜주씨가 말했다. 
 
"그럼 그 죽은 아이 귀신이라도 불러주세요. 그 아이가 한 일이니 그 아이가 해결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건......" 
 
"이 책 안에 그 아이가 들어 있다면서요.... 돈이 얼마가 들던 좋으니 불러주세요....." 
 
갑자기 남자의 눈이 탐욕스럽게 빛났다. 
 
"얼마가 들던?" 
 
"네, 얼마가 들던 지요. 아저씨가 넣었으니 불러낼 수도 있잖아요?" 
 
그는 망설이는 눈치였다. 한참을 그러더니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안 되겠소.... 그리고 그 아이와 신을 책 안에 가둔 것은 내가 아니라 우리 어머니 였소....." 
 
"네? 아저씨의 어머니?" 
 
우리는 혼란에 빠졌다. 셋 다 침묵에 젖어 있는데 갑자기 혜주씨가 입을 열었다. 
 
"아저씨는 불러 낼 수 있어요? 없어요?" 
 
"불러 낼 수는 있지만......" 
 
"불러만 내 달라니까요. 그 다음은 우리가 알아서 한다는데 왜 망설이세요? 혹시 그 아이를 불러내서는 안 될 이유라도 있나보죠?" 
 
"아니야. 그런 것은 없어." 
 
갑자기 사내가 마구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그가 그 아이와 무언가 연관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혜주씨가 말했다. 
 
"..... 말씀해 보세요..... 돈도 드리고 불러만 주시면 아저씨가 하자는 대로 할테니...." 
 
고함을 지르던 사내가 좀 잠잠해 졌다. 그리고 또 한 없이 곰방대를 물고있더니 어렵게 말을 꺼냈다. 
 
"....... 실은..... 아니 이 일은 그 계모와 우리 어머니가 한 것이지, 나는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이요...." 
 
"예, 그럼요 아저씨가 좋은 분이라는 것 첨부터 알고 있었어요." 
 
혜주씨는 남자의 비위를 맞추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때 나는 20대 초반이었소. 굿을 하다가 사고가 난 것은 할매한테 들어서안다고 했지?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소. 그 아이는 그 때 죽지 않았다오......" 
 
"에, 작두에 온 몸이 베어 죽었다고 들었습니다만...." 
 
"아니 죽지 않았소. 살아 있었지만 그 계모는 치료비가 아깝고 
 
살린다해도 신을 제대로 받지 못해 무당 노릇을 못 할 꺼 같자, 나에게 돈을 주면서 산 속에 버리라고 했소. 
 
나는 돈에 눈이 어두워 그 아이를 버리고 왔지만 그 애는 집으로 내려오곤 했던 거요.... 
 
마을 사람들은 아이가 죽었다고 알고들 있는데 아이가 나타나자 귀신이라고 생각한 거고 
 
그 계모는 귀찮아 질 꺼 같으니 나를 닦달해서 숨을 끊어 놓으라고 했지. 
 
하지만 난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더 깊이 버리고 오곤 한 거야.... 
 
그 애는 온 몸에 상처를 입고는 도움을 구하려고 산에서 내려오곤 했지만 하필이면 밤에 내려오곤 했지. 
 
사람들은 그때마다 그 애를 귀신 취급하며 피했어. 
 
그래서 그 아이는 죽으면서도 사람들에 대한 원한을 품고 죽은 거야..... 
 
그리고는 정말 귀신이 되어 나타났지만 우리 어머니가 책 안에 가두어 버리셨지. 
 
자기가 비참하게 죽어서 인지 그 아이는 책을 통해 점을 보는 사람마다 끔찍한 죽음을 점쳐 주곤 했어......." 
 
"세상에... 너무들 하셨군요." 
 
"............." 
 
또 다시 우리들은 말이 없었다. 뭐라 말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나는 말했다. 
 
".... 그 아이를 그 책에서 풀어 주어야 지요. 그렇게 죽은 것도 분할텐데 책에 갇혀 좋은 곳으로 가지 못한다면 그 아이는......." 
 
"..... 알았네......." 
 
 
 
1999년 10월 28일 A. M 12시 
 
우리는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공들여 상을 준비했다. 
 
그 사내는 불러내는 법은 알려주었지만 자신은 지은 죄 탓인지 못하겠다고 해서 우리가 스스로 하기로 한 것이다. 
 
할머니는 방에 계시기로 했다. 
 
연로하셔서 귀신을 보는 충격을 받으면 위험하실 까봐 설득을 했다. 
 
정갈한 물을 한 사발 떠놓고 우리는 닭의 목을 베었다. 
 
"꼬끼오" 
 
닭의 목에서 붉은 선혈이 땅을 적셨다. 
 
우리는 사내가 가르쳐준 주문 비슷한 것을 열심히 외웠다. 그리고 입에 쌀을 가득 물었다. 귀신과 직접 이야기를 하면 끌려간다기에..... 
 
갑자기 찬바람이 쌩 불었다. 우리는 찬기에 몸을 떨고 있는데 희뿌연 연기와 함께 흰 물체가 어른어른 나타났다. 
 
"나를 부른 사람들인가요?" 
 
그 아이였다. 내림 굿 때 입었다던 흰 치마 저고리를 입고 한 손에는 방울, 다른 손에는 부채를 쥐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온 그 애를 보고 나와 혜주씨는 비명이 터져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정말 피투성이 였던 것이다. 
 
얼굴만 해도 여기 저기 베여서-특히 이마는 뼈가 허옇게 보일 정도 였다.- 얼마나 참혹했던지...... 
 
"왜 나를 부르셨나요?" 
 
혜주씨는 책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 점괘가 적힌 곳을 펼쳤다. 
 
"오호... 점괘가 마음에 안 차시는 군요?" 
 
우리는 고개를 끄떡였다. 
 
"하지만 어쩌나.... 이미 정해진 운명인 것을요...." 
 
나는 그 애 앞에서 열심히 빌었다. 생각 끝에 지갑을 꺼내 아내와 아이의 사진을 보여 주었다. 아이는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 이 그림 안의 아이가 아저씨의 딸인가요?" 
 
나는 고개를 끄떡였다. 혜주씨는 옆에서 정말 열심히 고개를 조아리며 빌고있었다. 
 
"살려 달라고요?" 
 
우리는 둘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 준비 해둔 떡과 쌀, 고기 등을 꺼냈다. 
 
"굿을 해 달라는 건가요?" 
 
우리는 또 고개를 끄떡였다. 
 
"하지만 난 사람들이 싫어요. 좋은 사람이 한 명도 없잖아요? 당신들도 필시 그런 사람일텐데.... 내가 왜 당신들을 살려야 해요?" 
 
그 애는 울먹♥♥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겪은 너무나 큰 고통이 이 아이의마음을 난도질 한 것이다. 
 
나는 아이가 딱한 생각이 들어 책을 집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만질 수 없지만 그 아이라고 생각하고 책을 다독 거렸다. 
 
그러자 그 아이는 눈물을 훔치며 나를 바라보았다. 
 
"아저씨?!" 
 
옆에서 같이 훌쩍이던 혜주씨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핸드백을 열었다. 
 
그리고 일회용 반창고랑 연고 등을 꺼내기 시작했다. 
 
"언니.... 그게 뭐예요?" 
 
혜주씨는 반창고를 뜯고 연고를 짜 가며 손짓 발짓으로 아이에게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아이는 그 광경이 재미있었던지 꺄르륵 웃음을 터뜨렸다. 
 
"이걸 상처에 바르라고요? 이거 약이군요?" 
 
혜주씨는 고개를 끄떡였다. 
 
하지만 웃음도 잠시 아이의 얼굴은 다시 시무룩해지더니 이내 심술궂은 표정이 되어 있었다. 
 
"싫어요. 당신들을 살려 주지 않을래요.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은 알지만....." 
 
우리는 난감했다. 어떻게든 아이의 마음을 바꾸어 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그럴 수록 아이의 얼굴은 더욱 고집스럽게 변해 갔다. 
 
"싫다니까요. 좋은 사람들이니 데려갈래요. 나는 몹시 외로워요..." 
 
갑자기 방문이 활짝 열리더니 할머니가 뛰쳐나오셨다. 
 
"윤숙아, 나 알아 보겠어? 나 옆집 수원댁이여....." 
 
아이는 천천히 몸을 돌려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아.... 줌마?!" 
 
"그려. 나여. 이게 얼마 만이여......" 
 
"근데 왜 이렇게 늙었어?" 
 
"니 그렇게 가고 내 무슨 낙으로 살았것냐..... 이것아 얼마나 원통했으면 죽어서도 쉬지도 못하고......" 
 
"아줌마. 새엄마는?" 
 
" 그 나쁜 년은 여기 없어. 아마 어디 가서 뒤졌을께야....그러니까 이젠 점같은 거 안 봐도 되여...." 
 
"...................." 
 
"이것아, 괜히 성한 사람들 잡지 말고 나랑 가자.... 내 그때 널 데리고 도망만 갔더라도 
 
니 이 꼴 안 되고 좋은 데 시집가서 얼라들 많이 낳으며 잘 살수도 있었는디...." 
 
할머니는 연신 눈물을 훔쳐냈다. 아이는 그럼 할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고있었다. 
 
"아줌마, 진짜 나랑 갈 꺼야?" 
 
"그려, 난 살만큼 살았고 더 산다해도 무슨 부귀 영화를 보겄냐.... 그러니 냉큼 나 데리고 가아....." 
 
아이는 한참을 망설이는 거 같더니 이내 얼굴이 밝아 졌다. 
 
"그럼 아줌마가 내 엄마가 되는 거지?" 
 
"그려 그려, 한 평생 살면서 없던 이쁜 딸내미 죽어서야 갖게 되는 구먼.... 어여 가아...." 
 
 
 
1999년 10월 28일 A. M 6시 25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리는 마당에 널 부려져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대청마루에 누운 채로 숨이 끊어져 계셨는데 참으로 보기 좋은 웃음을 지으신 채 가셨다. 
 
우리는 마을 사람들을 불러다가 할머니의 염 준비를 했는데 혜주씨가 몸소 하겠다고 나섰다. 
 
우리는 가지고 온 돈을 모두 털어 잘 보내드리려고 애를 썼다. 
 
신기한 것은 일어나 보니 그 책이 사라지고 없었다. 이제 우리는 그 점괘에서 벗어난 것이다....... 
 
 
 
 
 
 
 
 
........ 하지만 그들은 예정된 시간에 죽었다........ 
 
 
 
1999년 11월 3일자 XX일보 사회면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가장, 딸과 아내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 
 
 
 
1999년 11월 8일자 XX일보 사회면 
 
'어제 새벽 20대 여인 뺑소니 차에 치어 숨져.........' 
 
 
 
 
 
 
 
 
 
 
 
 
 
 
 
 
 
 
 
......... 당신이 지금까지 읽으신 책이 위에서 죽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책입니다. 이제 나의 이야기는 끝이 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본 당신의 미래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 곳에 당신의 사주, 그러니까 생년, 월, 일, 시를 적어주십시오. 
 
저의 점은 단 한번도 틀린 적이 없습니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생년:  생월:  생일:  생시: 
 
(단, 정확히 쓰셔야 합니다.) 
 
자, 이제 다음의 밀봉된 페이지를 뜯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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