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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야간산행

도네이션2020.08.24 17:33조회 수 812추천 수 1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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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같이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합니다. 

이런 사회적 연기는 자신을 그럴듯한 이미지로 잘 포장시켜 주지만, 자신의 민낯이 드러날까 노심초사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고, 실수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이것은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이간질시킵니다.

때문에 웃고 싶을 때 웃지 못하고, 울고 싶을 때 울지 못하죠.

이러한 영혼 없는 연기가 계속될 때 그것에 대한 대가는 너무나도 가혹합니다.

피로감을 느끼게 되고 무기력해지며 침대에 쓰러져 잠만 자게 됩니다.

또다른 희망의 내일을 생각하기보다는 또다른 내일의 실수가 기다릴 것 같아 걱정합니다.

 

결국 반복되는 위선적인 삶에 지쳐 사람과의 관계를 끊기 시작합니다.

주변 일에 무관심해지고, 사람과의 만남이 없어집니다.

사소한 즐거움이 사라지고, 자극적인 것에 무뎌지며, 성취에 대한 기대가 사라집니다.

지루한 수요일 오후의 느낌처럼...하루하루가 감흥 없이 다가옵니다.

 

감정을 숨기고 살다보니 화를 내야할지 짜증을 내야할지 적절한 대처 방법을 찾지 못하고 괴로워합니다.

이 때문에 감정 조절을 못하여 지나치게 짜증을 내고 지나치게 화를 내며, 지나치게 거친 말을 내뱉습니다.

그 대상은 주로 나에게 희생적인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죠.

정신이 들면 바보스러운 자신을 질책하게 되고 또다시 깊은 절망과 후회에 빠집니다.

결국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혼자만의 안전한 공간에 있기로 합니다. 

그것만이 오로지 나 자신에게 평안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자신에게 평안을 가져다주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이러한 문제가 지속적으로 반복된다고 생각될 때...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에서 도움을 요청하기 보다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지 모릅니다.“

 

준호가 이 남자를 만난 것은 산의 중턱에 다다랐을 때였다.

 

이목구비를 뚜렷하게 볼 수는 없었지만, 준호와 비슷한 30대로 보이는 그 사람은 헤드랜턴이나 손전등도 비추지 않고 

오로지 달빛에 의존하며 발을 내딛고 있었다. 

이 곳 지형에 상당히 익숙한 사람인 것 같았다.

이러한 그의 행동에 방해가 될까봐 준호는 손전등을 바닥에 비춘 채 조용히 그의 뒤를 따랐다.

그 정체모를 남자는 계속해서 떠들어댔지만 이상하게도 준호는 그의 말을 멈추게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남자에게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서서히 몰려왔다.

가까스로 용기를 내어 준호는 입을 열었다.

 

“저에게 왜 그런 말을 하는거죠? 그리고...당신은 누굽니까?”

 

준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남자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가 멈춘 곳은 놀랍게도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었다.

남자는 준호를 등지고 절벽의 끝자락에 서서 다시 말을 이었다.

 

“이곳은 가끔 실족사가 발생하는 곳이죠.

물론 자의에 의한 죽음도 있구요.

누군가 추락하는 이를 목격해준다면 모를까 이런 곳에서 홀로 죽으면 시체를 수습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죠. 

누가 저 깊고 어두운 낭떠러지 끝자락을 살펴볼까요?

시체가 썩어 문드러져도 아무도 그 냄새조차 맡지 못합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딱 좋은 곳이죠.

더 이상 갈 곳이 없습니다.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한 걸음에 더 내딛으면 떨어질 것 같은 절벽의 끝에 서 있는 남자의 아슬아슬한 뒷모습에 준호는 덜컥 겁을 집어먹고 말았다.

 

“뭐...뭐하시는 거예요?”

 

준호의 물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남자는 시선을 전방에 고정한 채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나는 어려서부터 불행했습니다.

제가 세 살 때 나라가 부도 났다고 들었어요.

우리 집은 빚더미에 앉았고 설상가상으로 빚 독촉에 시달리던 아버지는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누나와 나를 먹여 살리느라 고생을 하셨죠.

어려운 집안 살림에 누나는 대학을 포기하고 취업을 선택했습니다.

쥐꼬리 같은 월급에도 누나는 돈을 모으는 재미에 푹 빠져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엄마가 고약한 병에 걸린 것입니다.

누나는 엄마 치료비로 모아둔 돈을 전부 날리고 말았습니다.

많은 돈이 치료에 들어갔지만, 엄마는 전혀 호전되지가 않았고 비싼 약값 만이 누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나는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세상 보란 듯이 잘 살아보자고 저하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누나에게 사랑하는 남자 친구가 있었습니다.

남자 친구와 사이는 괜찮았던 것 같은데 상대 집안에서 우리 집을 싫어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누나는 남자 친구와 헤어졌습니다.

그 뒤로 누나는 웃음을 잃어버렸습니다.“

 

“이..이봐요, 아저씨..”

 

준호는 남자의 말을 끊으려 했지만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누나는 틈만 나면 잠을 잤습니다. 

초점 잃은 눈동자는 항상 저를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감정 조절을 못하여 어느 날은 불같이 화를 냈다가, 어느 날은 미안하다며 제 앞에서 무릎을 꿇고 대성통곡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이런 일이 반복되던 어느 날...

누나는 수면제를 먹고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준호는 다시한번 남자의 말을 끊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다..당신 뭐하는 사람이야?”

 

“그 때까지만 해도 저는 아무 것도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한 때 내 영혼을 바쳐 사랑했던 여자가 달랑 편지 한 장 남기고 멀리 유학을 떠나버렸을 때...

저는 더 이상 그 어떤 희망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 때...저는 결심했습니다.”

 

남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준호가 소리쳤다.

 

“당신 누군데 내 얘기를 하고 있는거야!!!”

 

준호의 외침은 메아리가 되어 산능선을 떠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외침과 함께 준호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준호는 남자가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지만, 자신의 아픈 과거를 긁어내는 것만 같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준호의 움켜쥔 두 손이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러나 남자는 준호에게 등을 진 채, 절벽 앞에 펼쳐진 능선의 실루엣을 바라보며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다.

 

“산행을 하다보면 환청과 환각을 경험할 수 있죠. 

바로 저체온증 때문입니다. 

저체온증라고 해서 겨울에만 걸리는 게 아니죠. 

오늘 같은 한 여름 밤에도 비를 오랫동안 맞게 되거나 계곡 쪽에 고립되면 저체온증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상태를 보니 저체온증 같아 보이진 않네요. 

때문에 지금 당신이 보고 듣고 있는 모든 것들은 환청과 환각이 아닙니다. 

진짜인거죠.”

 

“이 새끼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거야!!!”

 

격분한 준호는 그 남자를 향해 쥐고 있던 손전등을 내리쳤다.

그러나 준호의 주먹과 손전등은 허공만을 가를 뿐이었다. 

순간, 쥐고 있던 손전등이 남자의 몸을 뚫고 절벽 아래로 떨어져버렸다.

몇 번의 부딪힘 소리와 함께 준호의 손전등은 깊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소스라치게 놀란 준호는 자신의 손을 한번 쳐다보더니 시선을 천천히 남자에게 돌렸다.

준호의 눈동자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남자는 게의치 않는 듯 여전히 등을 진 채 입을 열었다.

 

“내려가세요. 당신이 선택하려는 세상은 생각보다 재미있지 않습니다."

 

남자의 말에 덜컥 겁을 집어먹은 준호는 몇 발자국 뒷걸음질을 쳤다.

그제서야 남자는 몸을 돌려 준호를 쳐다보았다.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요?

당신은 아직 젊잖아요. 젊다는 것은 실패해도 된다는 말이예요. 

자책하지 말아요.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남자의 말에 준호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서러움에 북받친 준호의 흐느낌이 주변 산악지형으로 울려 퍼졌다.

 

“다시 시작하세요.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 개고, 양치하고, 아침을 꼭 챙겨 먹으세요.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며 사람들도 만나고, 유흥도 즐기세요.

밤늦게까지 TV를 보면서 아픈 과거의 기억에 빠지지 말고, 그날 있었던 즐거운 일만 생각하세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잠자리에 드세요.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닌 오직 당신만을 위해서요.”

 

남자의 말이 끝나고 몇 분이 지났을까 눈물이 마름을 느낀 준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 주변을 몇 번 손으로 훔치더니 준호는 입을 열었다.

 

“도대체 당신 누굽니까?”

 

준호의 말에 여전히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얼굴로 남자는 가벼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음....오랫동안 이곳을 지키고 있는 산신령이라고나 할까요?”

 

“나를 살려주었으니 무엇으로 답례를 해야 할까요?”

 

“경찰에 연락해서 이 절벽 아래 바위 틈 사이에 끼어있는 나를 찾아 주세요. 육신은 많이 훼손되었지만,

 방수 기능이 있는 가방 속에는 날 알아볼 수 있는 물건들이 아직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혹시 사람들이 저를 의심하면 어떡하죠?”

 

“의심?”

 

“당신을 죽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아...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런데 걱정하지 말아요. 그런 일은 없을 테니까

그리고 혹시 내 가족을 만나거든 미안하다고 전해 주시겠소?”

 

“그 정도야 뭐 어렵지 않죠.”

 

기묘한 기분에 사로잡힌 준호는 천천히 산 아래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산신령은 작아지는 준호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준호는 경찰에 신고를 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경찰에서 연락이 왔다.

 

“성준호 씨?”

 

“네”

 

“아직 DNA 대조가 남아있긴 한데, 25년 전 실종된 아버님을 찾은 것 같습니다.

 신분증과 가족사진이 들어있는 가방을 발견했어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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