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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석회동굴

title: 풍산개안동참품생고기2016.03.18 03:45조회 수 1160추천 수 2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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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이야기다.

 

내 고향에는 작은 석회동굴이 있다.

 

논과 산 밖에 없는 촌구석이었기에, 마을 사람들도 그 석회동굴을 기반으로 관광사업을 일으키려 노력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자금 문제로 인해 반쯤 개발하다 그대로 방치하게 되었던 터였다.

 

뭐,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이런저런 복잡한 사정이 얽혀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방치되어 있던 석회동굴이, 사실은 좀 범상치 않은 곳이었다.

 

동굴이니 미로 같은 내부 구조는 당연한 것이지만, 그보다 특이한 건 입구에서 10m 정도 들어가면 나오는 넓은 공간이었다.

 

사방 25m 정도 되는 공간이 뻥 뚫려있고, 천장에 있는 둥근 구멍에서는 따스한 햇빛이 쏟아진다.

 

 

 

발밑을 흐르는 차가운 물은 그 빛을 반사해, 마치 사파이어처럼 푸르게, 반짝반짝 빛난다.

 

거기서 조금 더 들어가면 물이 1m 정도 고인 웅덩이도 있어서, 그 무렵 마을 아이들에게는 천연 물놀이장 겸 비밀기지로 애용되던 곳이었다.

 

물론 어른들은 석회동굴에 들어가면 안된다고 우리에게 훈계를 늘어놓았다.

 

 

 

하지만 아직 어렸던 우리들 중, 왜 석회동굴에서 놀면 안되는 건지 납득한 건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매일 같이 질리지도 않고 석회동굴에서 놀았다.

 

집에서 몰래 과자를 가져와 먹기도 하고, 반쯤 자기 방처럼 편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와 만난 것은 그런 일상이 이어지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마침 마을 최대 이벤트인 여름축제가 열린 날이었다.

 

그날만큼은 우리도 석회동굴이 아니라 축제가 열리는 신사에 모여, 어른들이 준비하는 걸 곁눈질하며 경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는 여름축제 준비를 하던 어른들 중 누군가를 따라왔던 듯 했다.

 

할일이 없는 나머지 그저 심심해서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있었고.

 

그는 우리가 놀고 있는 걸 한동안 바라만 보더니, 술래잡기를 하다 내가 술래가 되자 말을 걸어왔다.

 

 

 

[나도 끼워주지 않을래?]

 

[그건 괜찮은데, 너 누구야?]

 

시골에서는 좀체 보기 힘든 깔끔한 분위기를 한 소년을 보고, 나는 당황해 조금 뒷걸음질 쳤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그는 웃으며 간단히 자기소개를 했다.

 

[나는 K라고 해. 여름방학이라 할아버지댁에 놀러왔어.]

 

우리는 타지 사람인 K를 약간 경계했다.

 

 

 

하지만 K가 말해주는 도시 이야기는 재미있었고, 함께 노는 사이 곧 우리는 허물없는 친구가 되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한동안 마을에 머물거라는 K에게, [그럼 내일 우리 비밀기지에 너도 초대해줄게!] 라고 말했던 건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니었으리라.

 

 

그날 모인 건 친구 A, B, C, 그리고 나와 K까지 모두 5명이었다.

 

 

 

K는 우리에게 석회동굴 이야기를 듣자, 눈동자를 빛내며 [빨리 가보고 싶어!] 라며 우리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좁은 길을 지나, 예의 그 공터가 나오자 K는 흥분해 소리쳤다.

 

[우와, 대단해! 게임에 나오는 거 같아!]

 

 

 

그렇게 신나하는 모습을 보니, 우리도 왠지 모르게 의기양양해졌다.

 

K에게 안쪽에는 물웅덩이가 있다고 알려주자, K는 곧 가져온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푸르게 빛나는 웅덩이에 뛰어들었다.

 

우리도 뒤따라 들어가, 다들 물놀이장에 온 것처럼 물을 마구 뿌려대며 시간도 잊고 떠들며 놀았다.

 

 

 

한동안 즐겁게 놀고나니 배가 고파져, C랑 K는 남겨두고 나머지 셋이 집에 가 간식을 가져오기로 했다.

 

집에 들렀다 다시 동굴에 모이기까지는 그로부터 20분 정도가 걸렸던 것 같다.

 

나는 칼피스를 물통에 담고, 과자를 챙겨서 A, B랑 같이 동굴로 향했다.

 

 

 

그리고 셋이서 동굴 안에 들어갔는데...

 

거기 있어야 할 C와 K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처음에는 C와 K가 같이 장난을 치려 숨어있는 거라고 생각해 바위 뒤나 안쪽 깊은 구멍을 들여다보기도 했지만, 두 사람의 기척조차 느껴지질 않았다.

 

 

 

슬슬 초조해져 뭔가 위험한 일이라도 일어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무렵, 방금 전까지 우리가 헤엄쳤던 물웅덩이 표면에, 작은 거품들이 보글보글 올라오기 시작했다.

 

A와 B도 그걸 알아차렸고,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멍하니 그 거품을 바라보았다.

 

한동안 그 거품을 바라보고 있자, 서서히 거품은 작아지더니 이윽고 사라졌다.

 

 

 

도대체 뭔가 싶은 생각에, 친구들과 눈을 마주친다.

 

그 순간, 방금 전 거품이 올라왔던 곳에서 축구공 같은 둥근 물체가 소리 없이 떠올랐다.

 

순간 얼어붙었지만, 곧 그게 축구공이 아니라, 사람 머리라는 걸 알아차렸다.

 

 

 

본 적 있는 그 긴 머리는, 틀림없이 도시에서 왔던 그 소년, K였다.

 

[야, K! 너 괜찮아?]

 

[C가 안 보여! 너 혹시 C 어디 갔는지 알아?]

 

 

 

[우선 이리로 좀 나와봐!]

 

우리는 K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물에 떠오른 그 머리는, 좀처럼 우리 쪽을 보려하지 않는다.

 

 

 

그러자 A는 화가 치밀었는지, [야, 너 무시하지 말라고!] 라며 소리를 지르고 수면에 떠오른 머리를 향해 작은 돌을 던졌다.

 

[야, 기다려!]

 

[뭐하는 짓이야!]

 

 

 

돌을 던지기 직전, 나와 B가 A에게 외쳤지만 A를 막을 수는 없었다.

 

돌은 곧바로 날아가, 작은 소리를 내고 수면에 떨어졌다.

 

다행히 돌이 머리에 맞지는 않았지만, 꽤 근처에 떨어진 탓에 물이 튀었다.

 

 

 

[위험하잖아!]

 

[맞으면 어쩌려고 그래!]

 

우리가 A를 질책하자, A는 낙담한 듯한 모습으로 [그치만...] 이라고 중얼거렸다.

 

 

 

문득 수면 쪽을 보자, 분명 거기에 있던 머리가 어느새인가 사라진 후였다.

 

[야, 저기...!]

 

내가 소리를 내려던 순간, 안쪽으로 이어진 석회동굴 안에서 [자박... 자박...]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젖은 장화를 신고 걷는 듯한 소리가, 동굴 벽에 울리며 들려왔다.

 

작은 소리였기에, 말다툼을 하고 있던 A와 B는 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듯 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소리가 들려오는 안쪽 어두운 구멍에서 눈을 뗄 수가 없어 나는 무의식 중에 조금씩 뒷걸음질쳤다.

 

 

 

그러는 사이 A랑 B도 내 모습이 이상한 걸 깨달았는지, 마치 얼싸안는 것처럼 서로를 부여잡고 소리 나는 쪽을 보고 있었다.

 

안쪽으로 이어진 길에서는 [자박... 자박...] 하는 기분 나쁜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서서히 가까워지는 것인지 소리도 점점 커진다.

 

 

 

큰소리를 지르며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소리를 지르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것도 못할 일이었다.

 

어느새 우리는 물가에 몰려 있었다.

 

[자박... 자박...] 하는 소리는 더욱 가까워온다.

 

 

 

그리고 그 순간, 물에 젖은 바위 때문에 미끄러져 B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우리는 [도망치자!] 라고 외치며 온힘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오는 안쪽 구멍 반대편, 출구를 향해.

 

 

 

한눈도 안 팔고, 정신없이 달려 출구까지는 얼마 안 남았을 무렵.

 

우리는 세번째 충격을 받았다.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지저로부터 울리는 듯한 신음소리가, 출입구 부근에서 들려왔던 것이다.

 

이젠 출구로 도망칠 수도 없다.

 

안으로 들어가자니 그런 기분 나쁜 곳에 다시 가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오금이 저리고 허리가 아파, 힘없이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제 끝이다...

 

본능적으로 공포를 피할 생각이었을까, 나는 꽉 눈을 감았다.

 

 

 

곧이어 머리를 바위로 얻어맏은 것 같은 충격이 느껴졌다.

 

눈 안쪽에서는 별이 빛난다.

 

귀신한테 맞았어!

 

 

 

귀신은 사람을 때릴 수 있구나...

 

공포 때문에 나는 이상한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사라졌던 C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야, 괜찮아?]

 

[어...?]

 

나와 A, B는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C와, 머리끝까지 화가 난 B네 아버지랑 C네 아버지가 있었다.

 

그 세 사람은 멍하니 있는 우리를 내버려두고, 셋이서 말하기 시작했다.

 

[이 멍청한 자식아! 여기는 들어오지 말라고 그렇게 말을 해도 못 알아먹냐!]

 

 

 

화를 잔뜩 내는 C네 아버지와 달리, B네 아버지는 C에게 물었다.

 

[C! 여기서 놀던 건 이녀석들 뿐이냐?]

 

[아뇨... 한명 더, 도시에서 온 K가...]

 

 

 

[뭐? K라고? 어느 집 아이야, 그건!]

 

[그게... 분명 저 쪽 할아버지네 집 손자라고...]

 

하지만 C의 이야기를 들은 아저씨들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서로 얼굴을 마주봤다.

 

 

 

[그 집 할아버지는 얼마 전에 입원해서 그 집에는 아무도 없는데...]

 

우리는 할 말을 잃었다.

 

그럼 우리는 도대체 누구랑 놀았다는 것인가.

 

 

 

[우선 우리가 좀 찾아보고 갈테니, 너희는 집에 가거라.]

 

의문의 답을 찾을 시간도 없이, 우리는 B네 아버지 등쌀에 떠밀려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와서는 뭘 할 기력도 없어, 그저 에어콘을 틀어놓고 멍하니 누워 있었다.

 

 

 

아버지가 집에 돌아온 건 해질녘이었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서 내 방에 뛰어들어온 아버지는, [이 바보같은 놈!] 이라고 소리치며 나를 때렸다.

 

평상시에는 온후한 아버지에게 맞은 것에 놀라, 나는 아픈 줄도 몰랐다.

 

 

 

멍하니 아버지를 올려보고 있자, 아버지는 한숨을 쉬고 조용히 말하기 시작했다.

 

[저긴 말이다, 예로부터 그리 좋은 소문이 있는 곳이 아니었어. 사람이 사라지거나 상처를 입는다는 이야기도 많았고. 개발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마을에서는 반대했지만 시에서 억지로 밀어붙인거고.]

 

몰랐던 이야기였다.

 

 

 

[그래서 착공은 하게 됐지만 아니나 다를까 사고가 계속 일어났지. 그래서 개발도 중단된거야. 너희들이 같이 놀았다는 아이가 누구인지는 아버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는 그 석회동굴에 들어가지 말거라. 더 이상 아버지를 걱정시키지 말아줘.]

 

진지한 아버지의 모습에, 나는 어딘지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두 번 다시 그 동굴에 가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건 A, B, C도 마찬가지였던지, 우리는 그 사건 이후 석회동굴 이야기는 입에도 담지 않게 되었다.

 

 

 

사라진 소년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 그 할아버지네 집에서 살았던 흔적이 없었고, 결국 우리가 집단으로 환상이라도 본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어른이 된 후, 술자리에서 동네 어르신들에게 은근슬쩍 그 동굴에 관해 물어본 적이 있었지만, 천연 감옥으로 썼다는 이야기나 전쟁 중에 방공호였다는 등 이런저런 이야기만 있을 뿐 무엇이 진상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두 번 다시 그 동굴에 들어가지 않을 생각이다.

 

그 [자박... 자박...] 하는 소리를 듣고 싶지도 않을 뿐더러...

 

왠지 그 동굴 안에서, K가 아직도 그 때 그 모습 그대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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