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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중독 -1-

title: 풍산개안동참품생고기2016.03.18 03:48조회 수 1361추천 수 2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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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많이 길어요

 

워낙 유명하고 재밋게 봣던 스래딕인데 괴갤에 검색해도 안나와서 올려요

 

스래딕 내용 다 짜르고 스레주글만 거의 따온겁니당

 

 

 

1 이름 : 이름없음 ◆cP8KtJ8bf2 : 2012/11/05 15:03:55 ID:KrIAJtb20rg
과거형이고 이미 끝난 이야기다.
꿈에 관한 이야기니이고 과거형이라 인증은 불가능한 게 많지만
그냥.. 모쪼록 재미로 읽어줬으면 해.

 

2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5:04:41 ID:KrIAJtb20rg
2년 전이었다.
난 평소에도 루시드 드림을 잘 꾸는 편이었는데..
아마 여름이었던 걸로 기억해.
이래저래 힘든 일이 많았고, 그래서 그런지 유독 꿈을 많이 꿨던 것 같다.

 

3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5:05:27 ID:KrIAJtb20rg
대부분은 별 의미 없는 개꿈이었지만
딱 한번 정말 현실과 분간이 가지 않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

 

4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5:09:37 ID:KrIAJtb20rg
아주 아름다운 섬이었다.
무인도 같았는데, 작았지만 정말 아름다운 섬이었고
여자가 두 명 남자가 한 명 있었어.

 

5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5:10:58 ID:KrIAJtb20rg
그 세 사람의 이름은 지금까지도 기억나.
여자는 레이, 세이. 남자는 진.
판소같은 이름이지만 뭐 어때. 꿈이잖아.
레이랑 세이는 자매 같았다. 셋다 생긴건 한국스러웠는데..

 

6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5:11:52 ID:KrIAJtb20rg
어쨌든, 세 사람은 꿈속에서 날 무척 반겼다.
꿈에서도 나는 무척 의아해서 여긴 어디냐 물었던 것 같아.
아마 답변은 이제 곧 만들어질 도시라고 했나. 섬 이름도 없다고.

 

7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5:14:03 ID:KrIAJtb20rg
그러면서 내 이름을 묻더니, 섬 이름을 지어달래.
난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어.
한참 고민하다가 지은 이름은 스카이블루였다. 하늘색.
바다랑 하늘 빛깔이 예뻤거든. 지금 생각하면 참 네이밍 센스 없다 싶지만.
어쨌든 세 사람은 동의했고. 섬 이름은 스카이블루가 됐어.

 

8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5:14:45 ID:KrIAJtb20rg
그렇게 섬 이름을 짓고 팻말을 세우고, 씨앗을 조금 뿌리다가
끝난 것 같아. 그날 꿈은.
난 이게 뭔 개꿈이냐 ㅋㅋㅋ 하면서 그냥 쿨하게 잊어버렸지.

 

9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5:19:09 ID:KrIAJtb20rg
그런데 며칠 뒤에 같은 꿈을 꿨어.
세 사람은 나를 반겼고. 섬 이름은 여전히 스카이블루였어.
밭을 일구었는지, 밭이 생겨나 있었고 허술하긴 하지만 집도 있었어.
난 신기해서 우와. 하고 있는데 진이 진짜 진지돋는 얼굴로 나한테 왔었다.

 

10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5:20:42 ID:KrIAJtb20rg
아마 했던말은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도시를 만드는 데 필요하다고 도와달라는 말이었던 것 같다.
나는 섬이 꽤 맘에 들기도 했고 꿈치고 현실감이 너무 넘쳐서(바람 부는거, 날씨 변화까지 느껴질 정도) 그러마고 했다.

 

12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5:22:00 ID:KrIAJtb20rg
그 뒤로 나는 꽤 자주자주 그 섬의 꿈을 꾸었다.
레이, 세이, 진은 매번 그곳에 있었어.
나는 섬에서 낚시를 하거나, 나뭇가지를 꺾거나, 허드렛일을 돕고... 뭐 그 정도였지. 그래도 꿈을 매번 꿀 때마다 보금자리가 발전되는 게 신기했어. 게임하는 기분이었거든.

 

13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5:23:05 ID:KrIAJtb20rg
한번 꿈을 꿀 때, 최고 길면 3일. 보통은 반나절만에 깼어. (물론 꿈 속 시간 기준으로)
하루하루 사는게 재밌어졌지. 솔직히 학교 학원 집 학교 학원 집이었는데 진짜 엄청난 활력소가 생긴 셈이니까.

 

14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5:24:35 ID:KrIAJtb20rg
그렇게 한달쯤 지났었나. 스카이블루 섬은 사람이 살 만한 곳이 됐다.
번듯한 나무집에 양 몇마리가 있고 밭도 있고. 물고기도 잡아다 훈제로 구워먹는 그런 곳이 된거야.
하지만 세 사람은 별로 만족하지 않는 것 같았어.

 

17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5:26:02 ID:KrIAJtb20rg
이유를 물어봤던 것 같아. 별로 기쁘지 않냐고.
좋기는 한데, 사람이 나 말고는 한 명도 오질 않아서 그게 마음에 걸린다는 답을 들었던 것 같다.
난 반쯤은 호기심에, 별 기대도 안하고 물어봤어. 나는 어떻게 여기에 왔을까요 라고.

 

20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5:28:56 ID:KrIAJtb20rg
나는 아 그렇구나.하고 그냥 넘겼지
사실 그때쯤 되어선 이미 내가 어떻게 그곳의 꿈을 계속 꾸는지
어떻게 꿈이 계속 이어지는지 같은건 관심이 없었어
아니 관심을 가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만큼 재밌었으니까.

 

21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5:30:20 ID:KrIAJtb20rg
그때 현실의 시간은 여름방학이 될 쯤이었다.
일단 세 사람과 나는 계속해서 섬을 개척했어. 이미 네 명이서 살기엔 충분하고도 남았지만 더 올 사람을 대비한 거지.

 

22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5:31:24 ID:KrIAJtb20rg
그리고 정말 거짓말처럼 다른 사람이 뚝 떨어졌어.
진짜 말 그대로 뚝 떨어졌다.
여느 날처럼 꿈을 꾸고 섬에서 앉아 쉬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해변 위로 뚝 떨어진 거야. 진짜 소설처럼.

 

24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5:32:27 ID:KrIAJtb20rg
꿈이라 그런지 엄청 높은 데서 떨어졌는데도 전혀 안 다쳤더라고.
젊은 남자였어. 이름이. 아마 현수였던가 현서였던가;; 그랬을 거야.

 

25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5:33:25 ID:KrIAJtb20rg
내가 그랬듯이 이 남자도 굉장히 황당하고 혼란스러운 눈치였다.
레이, 세이, 진은 엄청 반갑게 남자를 맞이했어.

 

26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5:35:02 ID:KrIAJtb20rg
난 그쯤 해서 이게 진짜 꿈인지 다른 세상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가 됐지.
무엇보다 이 현수라는 남자는 완벽하게 한국 사람 같았다.
어디 사는지, 연락처는 무엇인지, 직업은 뭐인지는 물어보지도 못했지만.
아, 자기 입으로 대학원생이라고 한 것만 들었다.

 

27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5:36:54 ID:KrIAJtb20rg
세 사람은 무척 기뻐했어. 드디어 사람이 오기 시작했다면서.
현수라는 남자를 극진히 대접한 세 사람은 나한테 했던 말을 비슷하게 했다
이러이러한 곳을 만들고 있으니 조금 도와주지 않겠느냐고
남자는 자기가 왜 그래야 하냐고 물었던 것 같다.
세 사람은 당황한 것 같았지만, 조금만 도와주면 언제든지 이곳에 와서 쉬어도 된다고 했던것 같다.

 

29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5:37:49 ID:KrIAJtb20rg
결국 현수도 그러겠다고 했어.
그리고 네 명이서 여름 내내 거진 섬 전체를 개척한 것 같다.
정말 작은 섬이였으니까.

 

30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5:38:57 ID:KrIAJtb20rg
개척이라고 해봐야 집을 지어놓고 동물을 기를 수 있게 마당도 만들어 놓고.... 길도 터놓고.. 그 정도였던 거 같아.
나는 그 꿈을 꾸기 전까지만 해도 매우 늦게 자는 타입이었는데
여름방학이 끝날 때쯤 해서는 10시가 되면 칼같이 잠자리에 들었다.
꿈을 꾸고 싶었으니까.
채팅도 온라인게임도 하지 않게 됐어.
꿈이 더 재밌고 실감 넘쳤으니까.

 

31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5:39:47 ID:Qm0GcyWpU+c
그럼 꿈에 중독되고있는거네

 

32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5:41:26 ID:KrIAJtb20rg
>>31 그래서 스레 제목도 저렇지.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일상 생활에 큰 지장은 없었어.
그냥 일찍, 좀 많이 자는 정도. 오히려 수면 부족이 해소되어서 낮에 더 쌩쌩해졌어. 꿈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걸 생각하면 의아한 일이지만..
어쨌든, 섬은 계속 개척되었고, 두 명의 사람이 더 떨어졌다.
여자 둘이었다 이번엔.

 

35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5:43:17 ID:KrIAJtb20rg
어려 보였어. 10대 초반? 초등학생으로 보였던 것 같아.
이름은 지희, 연희. 내 친구랑 이름이 같은 아이가 하나 있어서 금방 기억했지. 귀엽게 생긴 애들이었어.
난 유독 그 애들한테 눈이 가서 정말 잘 해줬던 것 같아. 얘기도 많이 하고 먹을 것도 많이 주고. 집에 자주 찾아가고.

 

36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5:44:56 ID:KrIAJtb20rg
뭔가 이상하다는 걸 자각한 건 그쯤부터였다.
나는 그 애들한테 과일이나 꿀, 주먹밥 같은걸 주면서 머리를 쓰다듬고
"아우 요 찹쌀떡 같은 녀석들~" 하고 장난스럽게 말하는 버릇이 있었어.

 

37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5:46:23 ID:KrIAJtb20rg
하루는 집 앞 슈퍼에서 같은 아파트 아주머니를 만났다.
근데 아주머니 딸이 딱 지희, 연희같았어.
귀여워서 사탕이나 하나 사주는데, 나도 모르게 꿈속의 버릇이 나왔다.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저 대사를 했어. 어투도 표정도 똑같이.
참고로 꿈을 꾸기 전엔 없던 버릇이었어.

 

38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5:47:01 ID:KrIAJtb20rg
그걸 깨달은 건 집에 돌아와서였다.
꿈 속에서 생긴 버릇대로 현실에서도 고스란히 행동한다는 게....
말이 되나 싶었지.

 

39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5:48:16 ID:KrIAJtb20rg
하지만 되게 사소했기 때문에 뭐 아무려면 어때? 하고 넘어갔다.
근데 이게 문제였지.
꿈을 처음 꿀 때에는 꿈속의 나와 현실의 내가 완전히 똑같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꿈속의 내가 현실의 나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거든.

 

40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5:48:27 ID:Qm0GcyWpU+c
루시드드림을 그때는 잘 이해를 못한거야?

 

41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5:50:02 ID:KrIAJtb20rg
일단 외모는 그대로였지만, 버릇 같은 게 조금 변했다.
현실에서는 다리를 떠는 버릇이 있지만 꿈 속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게 됐다던가..
현실에서는 장애물이 나오면 돌아서 가지만 꿈 속에서는 뛰어넘는다거나.
무엇보다, 현실보다 꿈 속에서는 몸이 훨씬 가벼웠고 민첩했다.
이게 꿈에 중독된 결정적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해.

 

42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5:51:05 ID:KrIAJtb20rg
>>40 응. 그리고 일반적인 루시드드림과 섬 꿈은 뭐랄까 좀 다른 점이 있었어.
난 섬 꿈을 꿀때 이것이 꿈이라는 것은 자각해. 하지만 마음대로 깨기도 쉽지가 않고, 그렇다고 가위를 눌리는 것 같진 않거든.
그리고 분명히 내 꿈일 텐데도 불구하고 마음대로 하늘을 날거나 없는 걸 창조한다던가 하는건 불가능했어. 어째서인지 꿈속의 나는 그걸 매우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43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5:52:30 ID:KrIAJtb20rg
꿈 속에서는 가볍게 날듯이 뛰어다니며 사냥을 하고
헤엄을 치고...그러는데
현실로 돌아오면 젖은 솜처럼 몸이 무거웠다. 둔하고.
예를 들면 꿈에서는 좀 높은 절벽에서 뛰어내려도 가뿐하고 멀쩡하게 착지했지만, 현실에서는 조금높은 계단에서 뛰어내리려 해도 무섭고, 뛰어내려도 발목이 아프거나 넘어지고... 그런 차이.

 

44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5:53:22 ID:KrIAJtb20rg
물론 실제적으로 건강에 이상이 온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지.
그만큼 꿈속에서의 내 몸상태는 환상적이었고
물리법칙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것 같아.
꿈이니까 당연한 것이었겠지만.

 

47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5:59:02 ID:KrIAJtb20rg
스카이블루 섬은 날로날로 활기차지고 있었다.
사람이 많아졌는데, 하나같이 행복해하고 있었어.
서로가 도우면서 즐겁게 살고 있었어.
낮이면 일을 하다가 한가롭게 낚시를 가기도 하고
할 일이 없다 싶으면 다같이 모여서 밥도 먹고 생선도 굽고 새를 잡기도 하고...

 

48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6:00:35 ID:KrIAJtb20rg
사방치기라던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고전적인 놀이도 했어.
힘든 것도 걱정할 것도 없었다. 식량도 물도.. 모든 게 넘쳐났어.
싸울 일도 없었고.
공부에 지친 나에게 그곳은 마약 같은 낙원이었어.

 

49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6:02:05 ID:KrIAJtb20rg
그쯤 해서 나는 학교에 지각하는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했어.
꿈을 꾸고 싶어서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났어.
심한 날은 몸이 아프다면서 정규수업만 끝마치고 바로 집에 와서, 저녁도 안 먹고 바로 잠들어서 다음날 낮에서야 일어난 적도 있어. (물론 주말)
시간으로 치면 12시간이 훨씬 넘는 시간을 잠만 잔거야.

 

50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6:03:00 ID:KrIAJtb20rg
물론 섬의 꿈을 매일 꾸지는 못했어.
자주 꾸면 이틀에 한번. 보통 일주일에 두세번 꼴.
꿈을 꾸지 못한 날은 하루종일 우울했어.
하지만 스카이블루 섬에 있을 땐 정말 좋았다.

 

51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6:04:52 ID:KrIAJtb20rg
그러다 사고가 났다.
그렇게 잠을 많이 잤는데도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졸았던 날이었어.
우리 교실은 3층에 있었는데, 건물 밖에서 누가 날 불렀다.
난 졸음이 채 깨지 않은 채로 창문을 열고 날 부른 친구를 보았고
정말 당연하다는 듯이 창문을 훌쩍 넘어갔다.
잘못됐다는 걸 깨달은 건 이미 몸이 창밖을 넘어간 뒤였어.

 

52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6:06:24 ID:KrIAJtb20rg
다행스럽게도 그렇게 높지 않은 높이인데다가 화단에 떨어져서 그랬는지
목숨에 지장이 생길정도로 다치진 않았지만, 다리뼈에 금이 가고 말았어.
병원에 입원하고 나서야 난 알 수 있었어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내가 또 꿈속의 버릇대로 행동했다는 걸.
꿈속에서 나는 그렇게 훌쩍훌쩍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고 장애물을 넘어도
전혀 다치질 않았었으니까.

 

53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6:08:38 ID:KrIAJtb20rg
그쯤해서 정신을 차렸어야 했다.
근데 난 정신을 못 차리고 병원에서도 내내 잠만 잤어
잠이 안 와도 어떻게든 잠들려고 누워 있었지.

 

56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6:09:43 ID:KrIAJtb20rg
다리뼈는 금방 붙었지만
학교로 돌아가니 나에 대해 온갖 소문이 퍼져 있었다.
창문으로 뛰어내린 게 투신자살 시도였다느니
친구 머리위로 떨어져서 같이 죽으려고 하는 거였다느니..
정말 말도 안되는 억측이 난무했는데.. 다 해명할 능력도 없었을뿐더러
나는 그쯤해선 이미 현실에 별 의미를 두고 있지 않았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58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6:11:27 ID:KrIAJtb20rg
내가 별 말도 하지 않고
성격도 음침해져 버린 데다가 (만사에 의미를 두지 않았으니..)
틈만 나면 잠을 자느라 연락도 잘 안 받고 하니까
친구들도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갔다
그래도 나는 꿈을 꾸는 것만 마냥 좋아서 잠을 잤지.

 

59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6:14:14 ID:KrIAJtb20rg
이젠 수면이 충분한 걸 넘어가서 수면과다였지.
항상 멍한 상태였고, 잘 움직이지도 먹지도 않고 잠만 자서
체중이 줄었어. 물론 근육이 빠진 거라 체력은 훨씬 낮아졌고..
성적은 말할 것도 없었지. 모의에서 확 떨어졌던 걸로 기억한다.
선생이 불러서 무슨 일 있냐고 물어봤을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나는 잠을 잤다. 현실이 비참해질수록 꿈의 내가 그리웠어.

 

60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6:14:59 ID:Qm0GcyWpU+c
꿈이 마약이 된거야?

 

61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6:15:35 ID:KrIAJtb20rg
꿈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현실 생각이 잘 나질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곳에 온 사람들이 현실의 이야기를 이상할 정도로
하지 않았던 것도, 나처럼 현실의 기억이 잘 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
사람들은 점점 더 많아져서, 섬이 비좁아질 지경이 되었다.

 

62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6:17:00 ID:KrIAJtb20rg
>>60 마약이었다. 인위적으로 누가 이 현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정말 무서운 마약이 될 거라고 생각해. 지금도.

레이와 세이, 진이 사람들을 불러놓고 말했던 것 같다.
섬이 좁아졌으니, 새 땅을 찾아야 한다고. 물론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63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6:19:25 ID:KrIAJtb20rg
하지만 땅을 찾는 방법이라는 게 정말 기괴했다.
바닷속에 있는 여분의 섬을 떠오르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게 가능해?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긴 스카이블루 섬이니까. 라는 생각 하나로 스스로 설득되었다.
더욱 놀라웠던 건, 섬을 떠오르게 하는 방법이었다.

 

65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6:20:28 ID:KrIAJtb20rg
물과 성질이 잘 맞는 사람이 간원을 하면 물과 소통하게 되어
길을 낼 수 있고, 땅과 성질이 잘 맞는 사람이 간청하여 섬을 떠오르게
한다는... 정말 지극히 판타지적인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현실감각이 제로에 가까웠기에...
다들 너무나 쉬울 정도로 수긍했다.
그리고 물길을 내는 사람으로, 내가 선택되었다.

 

66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6:21:55 ID:KrIAJtb20rg
이 때문에 나는 현실 감각을 더욱 잃고 말았지.
꿈과 현실이 너무나 비교되었기 때문에.
무언가 유용한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선택되었고, 그로 인해
기대를 받고 인정을 받고 대접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짜릿한 일인지 아는 사람은 이해할 거야.

 

68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6:28:13 ID:KrIAJtb20rg
현실의 나는 그저 비루하고 찌질한 은따가 되어있었는데
섬에서의 나는 땅을 띄울 수 있는 유일한 능력자로써 대접을 받았어
여기서 차라리 내가 물길을 내는 데 실패했다면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겠지만...
너무나 어이없게도, 1시간도 지나지 않아 물길이 거짓말처럼 열렸다.
물이 양옆으로 갈라지면서 섬이 드러난 거지.

 

70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6:29:26 ID:KrIAJtb20rg
이어서 땅을 띄우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고
거짓말처럼 섬이 우뚝 솟아올라 붙었다.
그 때의 희열은 지금도 잊지 못해. 현실이 꿈이고, 사실 현실이
스카이블루 섬의 내가 아닐까 했을 정도로 생생해.

 

71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6:32:13 ID:KrIAJtb20rg
이어 다른 여러 능력자들이 간원했고
며칠 만에 섬은 풀이 자라나고 울창해졌고, 또 며칠이 지나니 어디선가 새들까지 날아왔어. 한 달 정도가 지나자 기존의 스카이블루 섬과 완전히 똑같은 환경이 되어 있었지.
그리고 우리는 새로 온 사람들과 함께 그 곳을 또다시 살기 좋게 꾸몄다.

 

72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6:35:08 ID:KrIAJtb20rg
사람들은 각자 다른 간원의 능력이 있었어.
누군가는 풀을 자라게 하고 누군가는 흙이 불어나게 했어.
또 누군가는 짐승을 다룰 줄 알았고.. 그런 식이었지.
두 번째 섬은 스카이그린이라고 이름이 붙었어. 녹색 숲이 예뻤거든.

 

73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6:36:40 ID:KrIAJtb20rg
이쯤 해서 나는 엄마의 수면유도제에 손을 댔다.
정말 하면 안 되는 짓인 줄 알았지만.. 꿈에 대한 갈망이 너무 심했어.
어차피 잠은 어느 정도 자고 나면.. 그 다음부턴 졸리질 않앗으니까.
주말만 되면 몰래 수면유도제를 먹고 거의 하루 종일 잠을 잤다.
부모님은 맞벌이였기 때문에 내가 약에 손을 댄 걸 한참이나 몰랐어.

 

76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6:40:43 ID:KrIAJtb20rg
꿈 속에서 나는 간원의 능력을 이용해 물을 가지고 노는 경지에 이르러 있었어. 물을 가지고 꽃을 피우는 모습을 표현한다던가....
정말 환상이었다. 현실에서는 꿈도 못 꿀 일들이 ... 그 섬에서는 진짜 현실 그 자체였어. 소설, 게임, 드라마 따위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78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6:42:32 ID:KrIAJtb20rg
사람들은 조금씩이긴 하지만 꾸준히 와서 더욱더 많아졌다.
우리는 매일같이 고기와 생선, 밭에서 기른 야채를 먹고
물에서 헤엄치고 새에게 말을 가르치고, 개를 훈련시키며
그렇게 놀았다. 그러다가 필요성이 생기면 다시 다른 사람이 살 집을 만들었다. 이상할 정도로 음식도 맛이 있었어. 꿈이라 그랬겠지만.
현실에선 밥맛조차 없을 지경.

 

81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6:44:44 ID:KrIAJtb20rg

정말 내가원하는 낙원 그 자체가 그곳에 있었다.
복슬복슬한 양들을 베고 한가로이 멍때리거나
새 깃털을 만지작거리며 논다거나... 비가 오면 아무 걱정 없이 땅에 떨어지는 비를 구경하며 담소를 나눴다.
꿈에서 지내는 기간이 차츰 늘어나서, 4일 5일.. 최장 7일까지 되었다.
물론 수면유도제의 영향이었다.

 

83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6:46:20 ID:KrIAJtb20rg

몸은 형편없이 망가져서 이젠 길 가다가 힘이 없어서
픽 주저앉을 정도가 되었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어디 아프냐고 물어볼
정도로 안색도 나빠졌고.. 엄마가 내 모습과 줄어든 약을 보고 날 의심하기 시작했다.

 

84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6:48:23 ID:KrIAJtb20rg
엄마와 아빠가 날 추궁했지만
난 사실대로 말할 생각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점점 대담해져서 2~3일치 수면유도제를 한꺼번에 훔쳐다가 숨겨놓고 먹기도 했고.. 학교에서 감기약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수면유도제를 먹고
오후 시간 내내 자기도 했어.

 

86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6:50:00 ID:KrIAJtb20rg
결국 엄마가 일의 심각성을 눈치챘는지
약을 치워버렸다. 아마 내가 모르는 곳에 숨기셨던 것 같은데
나는 꿈을 못 꾸게 되니 금단증상에 괴로워서 미칠 것 같았어.
현실에서 깨어있는 1분 1초가, 몸이 무겁고, 나른하고, 아무것도 못하는 무력감이 너무 생생해서 짜증이 났어.

 

88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6:52:42 ID:KrIAJtb20rg

게다가 이젠 몸이 너무 안 좋으니까
제대로 정신을 차리려고 해도 잘 안 되었지.
체력도 약해질 대로 약해져서 조금만 움직여도 힘들어 죽을 지경이었고..
공부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지. 그 해 2학기 기말고사에서 나는 진짜
평균점수가 수직으로 하락했다.

 

89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6:54:41 ID:KrIAJtb20rg
내 성적표를 본 아빠는 크게 분노하셨고
엄마는 나보고 병원에 가자고 했다.
하지만 그 때 내가 한 말은 오로지 하나였다.
요새 좀 피곤해서 그래. 많이 자면 괜찮을 거야. 불면증이라서 잠을 제대로 못 자.
엄마는 그걸 그대로 믿으셨다..

 

91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6:57:51 ID:KrIAJtb20rg
엄마는 몸에 좋다는 보약이나 영양 보충제 같은 걸 나에게 먹이셨다.
그래도 별 차도는 없었지. 내가 잘 먹질 않았거든.
잠을 너무 많이 잔다고 하면, 불면증이라 자도 자도 얕은잠이라 피곤해, 라는 식으로 변명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겨울 방학 때, 나는 좀 멀리 있는 마트에 일이 있어 다녀오다가
쓰러졌어.

 

94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7:02:55 ID:KrIAJtb20rg
정말 어지럽다가 갑자기 정신이 뚝 끊기고
일어나니까 병원이더라. 드라마 같은 상황이 코앞에 있었지.
원인은 큰 게 아니었어. 잘 먹지 않아서 생긴 영양실조였어.
나는 그때 하루에 한끼도 잘 안 챙겨먹고 잠만 잤거든.
며칠 동안 영양링거인가... 를 맞으면서 병원에 있던 것 같아.

 

95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17:04:01 ID:KrIAJtb20rg
그 때 내 키가 160cm였는데, 몸무게가 38kg까지 빠졌다면 이해가 가려나.
어쨌든 나는 병원에서 마음껏 잤다. 엄마가 오면 아직도 아프다는 식으로
서둘러 돌려보내고 잠만 잤어.
물론 꿈 속에서는 언제나 활발하고 능력있는 나로 살았고.

 

106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20:07:42 ID:KrIAJtb20rg
일단 병원에서 며칠 있다가 퇴원을 했어.
하지만 내 정신은 여전히 꿈에만 가 있었지.
엎친데 덮친격이라고 해야하나 꿈속의 남자랑 (위에 나 아들이라고 레스단 사람 있던데 나 여자다;) 그렇고 그런 관계가 시작됐으니까.
정신이 나간 거지.

 

108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20:09:41 ID:KrIAJtb20rg
꿈속의 남자는 호연이라는 이름이었다. 정호연. 이었던가, 그랬을 거다.
남자치고 아담한 키에 둥글둥글하게 생겼고.
새를 잘 길들이는 사람이었어. 나는 새를 무척 좋아했기에
자연스럽게 그 사람과 가까워졌다.

 

109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20:11:30 ID:KrIAJtb20rg
그 섬에는 일반적인 참새나 제비, 까치 같은 것도 있었지만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화려한 새들도 많았다.
진은 그 새들은 이 섬에만 있는 종류라고 했어. 하긴 다른 동식물도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게 많긴 했다.
나는 말을 잘 안듣는 새들을 그 사람에게 맡겨서 길들이면서 친해졌어. 얼마 안 가서 새를 양손에 하나씩 얹고 다정하게 얘기하는 사이가 됐지.

 

110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20:13:44 ID:KrIAJtb20rg
꿈의 사람들이 그렇듯 현실의 얘기는 하나도 하질 않았다.
아니, 사실 그 사람들이 진짜 현실의 사람인지 내 망상인지 알 수도 없었지.
그저 섬의 얘기를 했다. 섬의 새, 최초의 3인(레이 제이 진), 능력에 관한 이야기 등등. 할 얘기는 많았다.

 

111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20:15:32 ID:KrIAJtb20rg
위에 제이->세이;; 오타났다
아무튼 우린 자연스럽게 스킨십도 하는 사이까지 발전했다.
그 때의 계절은 한겨울이었지만, 섬은 언제나 따뜻했다.
나와 꿈속의 그 남자처럼 사귀는 사이가 늘어나고도 있었고.

 

113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20:17:02 ID:KrIAJtb20rg
꿈속의 나는 누구에게도 꿀릴 게 없었어.
능력도 있었고, 인정도 받고 있었고, 사람들과 사이도 좋았으며
집도 식량도 풍부했다. 멋진 남자친구까지 있었다.
하루하루가 황홀했다. 깨어 있는 시간조차 꿈 속을 생각하며
멍하니 보내는 날이 많아졌어. 꿈 생각에 현실이 괴로운 것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114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20:19:16 ID:KrIAJtb20rg
물론 그러는 동안 현실의 나는 계속 나락으로 뒹굴고 있었지.
밥은 여전히 제대로 먹지도 않았고, 잠만 퍼질러자고,
공부는 하지도 않았고 잘 씻지도 않아 꾀죄죄했지.
하지만 꿈 속에서 지낼 수 있는 시간은 여전히 한계가 있었다.
4~5일 수준에서 절대 늘어나지 않았어. 섬에서도 하루종일 그사람과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나는 부족함을 느꼈지.

 

115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20:20:44 ID:KrIAJtb20rg
부족함은 곧 타는 것 같은 갈증이 되었어.
나는 현실에서 항상 꿈 속의 정호연과 꿈 속의 섬을 그리워하면서
1분조차 버티기 힘들어했어. 지옥이었지.
그러던 나는 정말 무슨 생각이었는지
인터넷으로 수면제를 대량 구하는 글을 여기저기에 뿌리고 다녔어.

 

116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20:21:54 ID:KrIAJtb20rg
맹세코, 절대 죽으려던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 때 현실의 나는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면
사망할 수 있다는, 너무나 간단한 사실조차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멍청해져 있었어.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이 사리분별을 전혀 못하는 것처럼.
운이 좋았는지 나빴는지 나는 몇 주 만에 수면제를 구할 수 있었어.

 

117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20:22:53 ID:KrIAJtb20rg
잠만 자느라 쓰지도 않고 고스란히 모여 있던 용돈을 모아서
정말 많은 웃돈을 준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까워 미칠 지경이었지만.
나는 그걸 아껴서 조금씩 먹어 자는 시간을 찔끔찔끔 늘려나갔어.
행복했지만 깰 때마다 아쉬운건 어쩔 수가 없었지.

 

118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20:25:15 ID:KrIAJtb20rg
그러다가 어느 날, 3일 연속으로 꿈을 꾸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어.
사실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었지만.. 나는 미칠 지경이 되었지.
꿈을 꾸고 싶어서 수면제를 먹고 잠들어도 이상하게 꿈을 꿀 수가 없었어.
히스테리를 부리던 나는 정말 아무 생각없이
남아있던 수면제를 미친 듯이 먹었다. 기절할 때까지 먹었던 것 같아.

 

119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20:26:22 ID:KrIAJtb20rg
현실 일은 생각하지도 않고 섬의 일상을 즐기고 있었는데
레이가 나를 자신의 집으로 불렀다.
안에는 세이와 진도 있었어.
세 사람은 심각한 표정으로 여기에 너무 오래 있는다면서 나를 나무랐다.
나는 겁이 났지만 애써 태연한 척 할 일은 다 한다 말했어.

 

121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20:27:27 ID:KrIAJtb20rg
그런데 갑자기 진이 화를 냈어.
화를 내는건 처음 봤기에 정말 깜짝 놀랐지.
진은 내가 지금 죽을 위기에 처해 있다면서
몸이 너무 약해져서 꿈에 진입하기도 힘들어진 거라 말했다.

 

124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20:31:30 ID:KrIAJtb20rg
나는 그저 멍하니 듣고만 있었다.
이어서 진은 이 곳은 쉬다 가라고 만들어진 곳이지
환락에 젖어 살으라고 만들어진 곳이 아니라는 식으로
나를 무진장 혼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세이가 내 눈을 양손으로 감겼어.
눈을 떴을땐 또 병원이었지.

 

125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20:32:56 ID:KrIAJtb20rg

병원에선 가족들의 말을 토대로
내가 자살시도를 했다고 판정했어.
난 아니라고 말할 기력도 없어서 그냥 있었지.

 

126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20:34:09 ID:KrIAJtb20rg
아까 위에서 38kg까지 빠졌다고 했었지.
병원에 입원하고 위세척을 받고 이런저런 부가적인 치료까지
받고 나서.. 퇴원한 내 몸무게는 34kg이었다.
사람이 아니었지. 정말 뼈만 남아서 걸어다녔으니까.
거식증 환자로 보일 정도였다.

 

128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20:35:07 ID:KrIAJtb20rg
다행인지 불행인지 꿈을 꾸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나는 건강을 조금이나마 챙겼고. 몸무게는 40kg까지 회복됐어.
40킬로를 넘어가니까 다시 꿈을 꾸게 되더라고.
섬에 다시 갔을 때, 날 가장 먼저 맞이한 건 진이였어.

 

130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20:36:53 ID:KrIAJtb20rg
진은 그전에 볼 수 없었던 진지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이런 식이면 너를 추방할 수밖에 없다고.
그게 가능한지조차 판단이 제대로 서질 않았지만, 어째선지 정말로 그럴 것 같았어. 그건 정말 두려웠기에 앞으로는 몸을 잘 챙기겠노라 했지.

 

131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20:38:45 ID:KrIAJtb20rg
하지만 말뿐이었어. 한번 마약과 같은 꿈에 중독되어 버린 난
혼자서는 절대 그 상태를 헤어나올 수가 없었어.
스스로도 알고 있었지.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빠져나올 수 없다는 걸.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누가 믿어 주겠어?
중독될 게 없어서 꿈에 중독된다고. 같은꿈을 꾸는데 항상 이어지고, 그것이 낙원이라는 걸. 그래서 중독될 수밖에 없다는 걸
이런 이야기를 누가 믿어 주겠냐고.

 

133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20:40:44 ID:KrIAJtb20rg
절망스러웠지. 그러면서도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어.
꿈을 꿀 수 있는 최소한의 건강 상태만 유지했어. 하루에 조금씩 한 끼만이라도 먹어서 38kg 미만으로는 절대 체중이 내려가지 않게 했어.
그래봤자 꾀죄죄한 해골인 건 똑같았지만..
스카이블루 섬에서의 연애와 생활은 그런 건 상관하지 않게 했다.

 

134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20:41:54 ID:KrIAJtb20rg

나는 호연에게 내가 진에게서 들었던 말과
며칠동안 섬에 못 왔던 이유를 말해주었어.
호연은 슬프게, 자신도 어쩔땐 아주 꿈 속에서 살고 싶다고 그랬지.
알 수 없는 유대감이 들었지.
근데 그 유대감이 걱정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어.

 

135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20:43:10 ID:KrIAJtb20rg
정호연이 그런 생각을 했고, 나는 그런 생각을 하다 못해 중독자가 되었어.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이라고 다를 게 없겠다는 결론이 나오는 거지.
공포가 엄습했어. 만약 이 사실을 진과 레이, 세이가 안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하고.
모두를 추방해 버리는 게 아닐까 하고.

 

140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20:44:43 ID:KrIAJtb20rg
하지만 적어도 꿈 속에서의 나는 놀랍도록 이성적이었고
꽤나 좋은 판단력을 가지고 있었어.
섣불리 행동하는 건 오히려 진을 자극할지도 몰랐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이런 말을 조금씩 해주기로 했어.
진이 모두 쫓아내기 전에 적당히 자제하자고.

 

142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20:46:34 ID:KrIAJtb20rg

그렇게 조금씩 말을 흘리면서 느낀건 내 염려가 사실이라는 것이었다.
이미 스카이블루 쪽 사람들은 조금씩 의존/중독 증세를 보이고 있었어.
나처럼 심각한 사람은 그 때까진 없는 것 같았지만.. 모르지. 현실의 생각을 거의 하지 않게 되는 마법같은 섬의 특징상 말을 못 한 걸지도.
스카이그린 쪽은 최근에 생긴 섬이라 그런지 상태가 상대적으로 양호했던 것으로 기억해.

 

145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20:48:14 ID:KrIAJtb20rg

나는 어떻게든 진, 레이, 세이를 속이기 위해 절제와 협조를 요구했어.
사람들은 신기할 정도로 쉽게 동의했고.
처음에는 잘 되는 것 같았어. 일단 나조차도 수면시간을 조금 줄였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안 보이는 시간이 늘어나서 나는 잘 되어가는구나 싶었다.

 

148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20:49:58 ID:KrIAJtb20rg

하지만 문제가 있었어. 금단증상이었어.
분명 섬의 꿈 자체는 몸에 이렇다 할 영향을 주지 않지만
정신적으로는 정말 심각한 마약이었지. 잠을 자는 시간이 줄었으니, 자연히 현실에서 깨어 있는 시간이 늘어났는데 그걸 버티기가 힘들었어.
공부를 해보려고도 했고 운동을 해보려고도 했는데.. 정말
하루 종일 꿈 속의 생각 때문에 괴로워서 미칠 지경이 되었다.

 

149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20:51:34 ID:KrIAJtb20rg
꿈 속의 지위, 능력, 건강, 재물... 모든 것이 현실보다 훨씬 우월했어.
나는 수면제로 병원에 실려간 전적이 있어서, 이번에는 그렇게는 되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고 버텼어.

 

151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20:54:49 ID:KrIAJtb20rg
하지만 결국 2주를 채 넘기지 못했던 것 같다.
엄마한테 거짓말을 쳐서 수면유도제를 받아내어 먹고 잠이 들었어.
그간 참고 참았던 것만큼 즐기고 있는데
다시금 진이 나를 불렀다. 이번에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있었어.

 

154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20:56:23 ID:KrIAJtb20rg
진은 나에게 벽력같이 화를 냈다.
나는 할 말이 없어서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었어.
세이는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라는 식으로 우울해했고.
세 사람은 내가 중독 증세를 보일때부터 이런 현상을 예견했던 것 같았어.
나와 같이 불려온 사람들은 경중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전부 섬 꿈에 중독되어 버린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정호연도 있었어.

 

157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20:59:06 ID:KrIAJtb20rg
아마 정호연이 진에게 말했던 것 같아.
그렇게 중독이 문제라면, 차라리 현실에서 죽어서
완전히 이곳의 주민이 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섬뜩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공감이 갔다.
하지만 이번엔 세 사람 모두가 정말, 무섭게 화를 냈다.
뭘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158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21:00:08 ID:KrIAJtb20rg
그 다음 레이가 한 말은 정말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기억한다.
이곳이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완벽한 낙원이 될 수 있는거라고.
이곳이 현실이 된다면 낙원이 절대 성립될 수 없다고.
지금은 어렴풋이 이해가 가지만, 그때에는 전혀 공감할 수가 없었다.

 

160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21:02:33 ID:KrIAJtb20rg
어쨌든, 진은 우리 모두를 한 달 동안 추방시킨다고 했다.
나는 올 것이 왔구나 라는 생각에 그저 벌벌 떨고만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 벌떡 일어났다. 비장한 표정으로 그 사람은
그렇다면 자살을 해서라도 강제로 이곳의 주민이 되겠다고 했어.
깜짝 놀랄만한 소리였지.
하지만 죽으면 꿈을 꿀 수가 없잖아.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는데, 이미 다들 제정신이 아니었었지.

 

162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21:04:17 ID:KrIAJtb20rg
진은 정말 화가 났는지 그 자리에서 우리를 전부 추방시켜버렸다.
눈앞이 까매지고 일어났을 땐 내 방.
그리고 정말로, 다른 꿈을 꿔도 섬 꿈은 절대로 꿀 수가 없었어 당분간은.

 

164 이름 : 이름없음 : 2012/11/05 21:05:46 ID:KrIAJtb20rg
그 한 달 동안의 생활은 정말이지 처참 그 자체였다.
히스테리와 짜증을 부리고, 폭식과 거식을 반복했고
수면제를 먹고 이틀 내내 잔 적도 있었다.
해가 지나서 새 학기가 시작될 때가 다가왔지만 나는 여전히
비쩍 마르고 지저분하고 신경질적이고 공부도 하지 않는...
그런 여학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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