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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그날의 카메라

익명할거임2020.07.27 07:35조회 수 477추천 수 1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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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에 접어들며 가장 먼저 생각난 단어는 ‘힐링’ 이다.
 그만큼 내 육체와 정신은 지쳐 있었다.
20대 초에 꿈을 꾸며 노력하던 지난 날의 모든 노력들이 허사로 돌아가게 되고 그냥 물처럼 흐르는대로 살다보니 이도저도 아닌 인생을 살게 되었다.

  

후회도 한다.
 차라리 그때 못해본걸 하고 싶었던 것을 다 해볼걸.. 하고 말이다.
 이따금 어른들이 ‘그때로 돌아간다면 정말 모든 해보면서 즐길거야.’ 라는 말이 서서히 와닿는 시점이 바로 나이가 든 것을 간접적으로 느껴지게 한다.
 

  

씁쓸하다.
 이미 사회에서 자리를 잡은 동창들이나 자기가 꿈꿔 왔던 일들을 하며 즐겁게 지내는 동창들을 보고 있자면 자괴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 자괴감을 조금이나마 덜고자 작은 취미 하나를 시작했다.
 바로 사진을 찍는 일이다.
 요즘 말로는 포토그래퍼인지 머시긴지 하는 것 같던데 아직 그것까진 갈 단계가 아니라 애매한 부분이지만 뭐 취미가 지속되면 그게 경력이 되고 언젠간 빛을 발하지 않겠는가?

  

가끔 사진 전시회에 걸린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당최 어떤게 좋은건지 뭐가 유명한건지 알 수 없는 눈을 가진 나지만 그래도 사진을 찍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고 가볍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비싼 카메라는 우선 피하기로 했다.
 절대적으로 취미가 되어야 한다.
 이걸로 일상에 지장이 있거나 압박감을 받아서는 안되니까. 적당한 가격으로 구매하기 위해 여러 중고 사이트를 돌아다녔고 마침 동네에 괜찮은 매물 하나가 나왔다.

  

적당히 모델명을 검색한 뒤 카페에 질문을 올리고 구입 허락을 받자마자 바로 구매를 했다.

  

“네. 잘 쓰세요.”

  

선한 인상으로 웃음을 지으며 사라지는 판매자를 보며 내 손에 들린 작은 무게에 뭔가가 이뤄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서둘러 카메라를 챙기고 걸음을 뗀다.
 우선은 가까운 곳 아무데나 이동해 카메라를 이곳저곳 만지며 초점을 조절한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신호등이며 커다란 고층 빌딩에서 열심히 야근을 하는 사람들. 환한 라이트를 빛내며 서있는 자동차들. 

  

하나하나 카메라에 담는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전해지는 왠지 모를 감각은 괜히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하나하나 사진에 풍경들을 담고 있을 때였다.
 

 

“어..?”

  

렌즈에 검은색 뭔가가 묻었는지 어느 부분이 유독 까맣다.
 카메라를 들어 렌즈를 보니 아무것도 묻어있지 않은 상태였다.
 이상해서 다시 한 번 카메라를 들어 거리를 보니 검은 색의 짙은 무언가가 어느 한 사람의 머리위로 붙어 있는게 보였다.

  

“저게 뭐지?”

  

수 많은 사람들 가운데 유독 한 사람 머리 위에 기생하듯 붙어 있는 검은 물체. 

  

“이상하데.”

  

저런것을 듣지도 보지도 했기에 단순한 호기심으로 그 사람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인적이 드문 고가도로로 향하는 사람. 차근하게 그 사람을 따라가니 어느 한 지점에서 망설이듯 갈등하는 듯한 사람의 표정이 보였다.
 

  

예감이 좋지 않다.
 아무래도 뭔 일이 날 것만 같다.
 그 사람은 고가도로 옆 작은 길목에서 몇 번이고 망설이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그리고 난 무의식적으로 그 사람을 카메라 앵글에 담기 시작했다.
 

  

왠지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 사람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이걸로 인해 나의 데뷔작이 나온다면 그걸로 좋은 것 아니겠는가. 최근에 알게된 어떤 사진 찍는 사람도 우연한 계기로 찍은 한 장의 사진으로 인해 신인 사진 작가로 데뷔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 그 사람이 나보다 잘난 것 하나 없는데 그저 천운이 따라 작가로 데뷔하게 된 것 뿐이다.
 나라고 그 사람과 다를 것 없으니..

  

빠-앙.

  

고막을 찢는 듯한 경적 소리에 화들짝 놀라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찰나의 순간 고가도로로 뛰어드는데에는 정말 순간이었다.
 난 그것을 놓칠 수 없었다.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고 그 사람이 사라지는데에는 찰나였다.
 

  

쿠웅. 쿵- 쿠웅-

  

도로가 아수라장이 되는 것은 당연했다.
 그야 한 사람이 죽었으니까.. 순간 씁쓸하고 더러운 기분이 들었다.
 난 저 사람을 구할 수 있었을까? 처음 저 사람을 보자마자 따스하게 말을 건넸더라면 자살은 막을 수 있진 않았을까. 

  

그러면서 어떤 사진이 찍혔는지 확인을 하는 내 자신의 욕구가 무서웠다.
 

  

“뭐야.. 이거.”

  

카메라에 담긴 것은 그 사람이 도로에 뛰어든게 아니라 밀쳐진 것이었다.
 예의 그 검은 물체에 의해서 말이다.
 명백한 살인이고 억울한 죽음이지만 그것을 증명해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카메라를 들어 아수라장이 된 곳을 바라보니 그 검은 물체가 둥둥 떠다니며 이젠 시체로 변한 사람 위에서 곡예를 부리듯 이리저리로 움직♥♥ 시작했다.
 그러자 시체에서 하얀 색의 연기가 피어 올랐고 검은 물체는 그것을 잽싸게 낚아채 없애버렸다.
 

  

그 광경이 너무나 이상하고 더러운 기분이 들어 절로 욕이 나왔다.
 

  

“시팔..”

  

내 욕을 들었을까? 검은 물체가 순간 내 쪽으로 날아오는 것은 단순한 착각이었을까. 놀라서 두 눈을 감으니 다행히 앵글에는 아무것도 잡히지가 않았다.
 서둘러 카메라를 챙기고서 원래 가던 길로 돌아왔다.
 

  

많은 인파 속에서 걸어가며 카메라를 다시 한 번 살폈다.
 혹 그 판매자는 이런 일을 알고 있는걸까? 노파심에 판매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 저 방금 구매자인데.”

“아~ 예. 무슨 일이라도 있으세요?”

  

그 말에 난 조금 망설였다.
 이걸 사실대로 말해야 하는건지.. 짧은 고민 속에 난 조금 우회하는 쪽을 택했다.

  

“저.. 이 카메라 파신 이유가 뭐에요?”

“네?”

“그냥 궁금해서요. 정가보다 조금 싸게 파신 것 같던데.”

“아~ 그래야 빨리 팔리잖아요.”

  

어찌보면 당연한 말이었다.
 하지만 내가 듣고 싶은 답은 이게 아니었다.
 

  

“할 말 없으시면 이만..”

“아, 예.”

  

바보같이 난 하고싶은 말을 꺼내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신호등 앞에서 무심결에 커다란 전광판을 보니 고가도로에서 누군가 자살했다는 뉴스가 방영되고 있었다.
 세상 일 참 빠르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이것도 사진으로 남기고자 카메라를 들었다.
 

  

조심스레 카메라 앵글을 맞추는데 다시 검은 색의 무언가가 슥 하고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순간 문제의 그것이라고 알아챈 나는 카메라를 이리저리 돌려 검은 물체를 찾아내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워낙 빠른 속도로 지나간터라 보이지가 않았다.
 나는 조금 걷기로 했다.
 왠지 이 근방에서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디간거야.. 제길.”

  

허탈한 마음에 당장 눈 앞에 있는 밴치에 앉아 있으니 운이 좋았는지 검은 물체가 커다란 트럭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예감이 좋지 않다.
 서둘러 카메라를 들어 트럭을 앵글에 담았고 거기에는 검은 물체가 트럭 앞좌석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연기처럼 마침내 모든 공간을 차지한 검은 물체는 그대로 트럭을 운전하듯이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고 곧 엄청난 가속도를 내며 많은 차들을 쳐내며 나아갔다.
 그 뒤로는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왜 이런 헛것이 보이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지루하고 따분한 일상 속에서 살던 내게 주는 하나의 작은 전환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쩌면 저 검은 물체는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일수도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찍었던 사진들을 확인하기 위해 파일들을 뒤적거리는 순간..

  

“허억..”

  

사고가 있었던 장소와 자살을 한 사람. 그리고 문제의 트럭 사진이 모두 검은 색으로 뒤덮여 있는 상태였다.
 문제는 그 검은 색 안에서 웃고 있는 검은 얼굴이 보였는데 입만 보여서 그게 정확하게 어떤 얼굴인진 알 수 없었다.
 

  

나는 당장 카메라를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도저히 이 카메라를 온전히 들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제길.. 제기랄.”

  

길바닥 얕게 자란 풀 숲에 그 카메라를 처박듯이 던져 버리곤 빠르게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거기에 꼴아 박은 돈이 아쉽긴 하지만 이 더럽고 끔찍한 기분을 우선 날리고 싶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는데 누군가가 나를 불러 세웠다.

  

“저, 저기요!”

  

회사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헐레벌떡 뛰어오며 나를 세웠다.
 

  

“저요?”

  

라고 물으며 남자를 보니 한 손에는 그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어떻게 저걸? 분명 저걸 버렸을 때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이, 이거 당신꺼 맞죠?”

  

숨을 헐떡이며 카메라를 가리키는 남자를 보며 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망설였다.
 내거라고 하면 다시 저 카메라가 내게 돌아올텐데..

  

“아.. 그. 저기 카메라요. 바꾸려고 그냥 버린거에요.”

  

어줍잖은 변명에 속아줄지 작은 기대를 하며 던져본 말에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렇게 상태가 좋은데.. 버리신다구요?”

“아, 예. 손에 맞지 않아서요. 하하.”

  

내 말에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잠시 보더니 이내 말했다.

  

“그럼.. 이거 제가 가져도 되나요?”

“그러세요.”

  

바라던 바다.
 그렇게 서둘러 대화를 끊고 돌아서려는데 남자가 다시 불러세웠다.

  

“이상한데.. 잠시만요!”

“왜요.”

  

남자는 조금 끈덕진 기질이 있는 것 같다.
 조금 퉁명스럽게 말해서 남자를 떼어내려는데..

  

“어? 이상하다.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나와 카메라를 번갈아 보더니 다시 카메라를 들어 나를 보며 말했다.

  

“그쪽.. 머리 위에 검은 물체가 지금 보이거든요? 근데 왜 카메라를 떼면 그게 안 보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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