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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양기가 많은 체질

형슈뉴2014.08.30 04:43조회 수 4931추천 수 7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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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고2 때 겪었던 이야기를 써 보려고 합니다.

경험담이긴 하지만 겪은 이야기처럼 늘어놓는 건 자신이 없으니 소설씩으로 쓰겠습니다.

이놈이 개구라를 치고 있구나, 하셔도 좋고 믿어 주셔도 좋습니다.

그저 여러분의 심심한 밤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기 보다는 저도 괴담게시판에 뭘 써 보고 싶었네요.

괴담게시판에 처음 왔을 때부터 이 이야길 써 봐야겠다 생각했는데 귀찮다고 미루고 미루다 보니 이렇게 됐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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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2학년. 그것은 정말로 애매한 시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1학년 때의 압박감과 열정도 희미해지고, 3학년의 쫓기는 듯한 긴박감도 만들어지지 않은 때.


그렇게 시기가 시기다 보니, 훗날을 위해 공부를 하는 친구들보다는 학교와 선생님, 그리고 부모님의 눈을 피해 밖에서 놀러다니는 친구들이 더 많았다.

물론 그 중에는 나 역시 껴 있었고, 남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놀지는 않았던 것 같다.


처음에는 그냥 남들처럼 야자나 주말자습을 빠져나와 피시방이나 당구장, 노래방에 가는 정도였다.

사실, 정작 나가서 노는 것보다는 학교의 규칙을 어기고 밖으로 도망쳐 나온다는 그 스릴이 더 즐거웠던 것 같다.

그렇다 보니, 점점 그냥 나가서 노는 걸로는 만족이 되지 않았다.


공부를 해야 할 고등학생이라는 신분을 떠안고 있었지만 그렇게 내 가슴속에는 점점 답답함과 욕구불만이 쌓여갔다.

그리고 그것이 터져나온 건 여름방학 때. 시작은 친구와의 시덥잖은 농담에서 비롯되었다.



 우리 학교는, 방학중에도 물론 등교를 하기는 했으나 점심 때까지 수업을 듣고 여섯시까지 자습을 하고 나면 전원이 하교했다.

범생이 친구들은 하교 후에도 독서실에 가서 공부를 하곤 했지만 그런 친구들은 극소수였고, 보통 하교후에는 다같이 모여서 놀기에 바빴다.


내 경우에도 학교를 마친 뒤엔 친구들과 시내에 모여 여기저기를 들리며 놀았다.

물론, 집에는 친구들과 도서관에라도 갔다가 들어가겠다는 거짓말을 하고서였다.

그러다 어느날은, 우리 부모님께서 급한 사정으로 집을 비우시게 되어 가장 친한 불알친구를 데리고 우리집에서 놀게 됐다.


사실 우리집에서 논다고 해 봐야 할 것은 없었다.

누나가 하나 있긴 했으나 대학을 서울로 가서 집에 누나의 물건은 거의 없어서, 우리집에는 컴퓨터가 한 대밖에 없었기에 같이 컴퓨터를 하며 놀 수도 없었다.

요즘은 많이 흔해진 비디오 게임기도 우리집엔 없었다.

그래서 우리 둘이서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쇼파에 드러누워 티비를 보는 것 뿐이었다.


티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보니, 여름철이어선지 납량특집 방송이나 호러 프로그램, 공포영화들이 많이 보였다.

그러다가 채널이 멈춘 곳은, 흉가 체험을 소재로 한 호러 프로그램이었다.

그렇게 한참동안 무당이 흉가 안을 돌아다니며 떠들고 다니는 걸 보고 있던 친구가 말했다.



 "야씨, 저거 개구라 치고 있네. 나도 돈 주면 저렇게 할 수 있다. 귀신 있다고 떠들믄서 소설 써서 주깨면 되는 거 아니가."



솔직히 나 역시 그 프로그램을 보며 조금의 진실성도 느끼지 못했기에 친구의 말이 마냥 헛소리로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친구의 말을 예쁘게 받아 주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나는 친구에게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해 봐라. 옘병, 막상 가면 오줌 지릴 놈이 개소리하고 앉았노."


 "뭐, 가 볼래?"



뜬금없이 진지하게 이야기를 꺼내오는 친구에게 나는 픽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내가 왜 가노, 등신아. 니가 가야지."



이게 또 여름에 더위를 먹었는지 헛소리를 하는 구나, 그 정도로만 생각했던 나는 그 뒤에 나온 친구의 말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와? 쫄았나. 진짜 가 보자니까."


 "……미친놈아 어디 가게? 우리 동네에 그런 데 있나?"


 "뭘 우리 동네에서만 찾노. 좀만 나오면 깔리고 널린 게 흉간데."



그제야 친구 녀석이 진심이라는 걸 깨달은 나는 거부감이 들면서도 일면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야기로만 들어 봤던 흉가 체험. 인터넷과 티비에선 귀신이 씌이고 뭐고 하는 얘기를 수도 없이 봐 왔지만, 실제로 그렇게 됐다는 사람을 만난 적은 없었다.

나도 내심 그게 다 헛소문에 거짓말이 아닐까 생각하곤 했었는데, 그 호기심을 친구가 찌른 것이다.

결국 나는 친구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마 가 보자 그럼."


 "길게 끌 거 없이 이번 주 주말로 땡기자. 1박 2일로."



친구는 이미 의욕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나 역시 기대감에 들떠 이번 주말에 바로 가 버리자는 친구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님께는 친구들과 주말에 독서실에 가겠다고 이야기하고서, 나는 담력체험을 할 준비를 했다.


장소를 정하는 데에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 동네에서 가까운 흉가 중 가장 이름이 있는 곳은 영덕 흉가였기에, 우리는 별 고민 없이 그곳으로 장소를 정했다.


그나마 가깝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금방 갔다올 거리도 아니었다. 1박 2일로 다녀 오려면 일찍 가야하지 않겠느냐고 친구에게 얘기를 꺼냈지만, 친구는 어차피 핵심은 밤이라며 느긋하게 가도 괜찮다고 대답하였다. 핵심은 밤. 그 장난 섞인 말에 괜히 소름이 돋았다.



 인터넷에서 흉가를 찾아 오는 타지 사람들을 현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야길 들은 적이 있었기에, 나는 주민들에게 길을 물어 가는 것은 애초부터 계획에 제외하고 있던 터였다.

그리고 그때는 이제 막 스마트폰이 나타나던 시기였기에, 우리 둘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다행히 그것에 대비하여 미리 조사를 해 왔기 때문에, 우리는 인터넷에서 알아 봤던 장사 해수욕장까지만 길을 물어가며 도착했고, 그곳에서 언덕 위를 살피다 보니 흉가는 금새 찾을 수 있었다. 의외로 차가 많이 지나다니는 도로 옆에 있었고, 흉가 맞은편에는 웬 펜션도 하나 있는 것이 보였다.

흉가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을 노리고 만든 펜션이라는 게 우리의 눈에도 훤히 보였다.


그렇게 흉가에 도착했던 시간이 7시를 약간 넘은 시간이었고, 때가 여름이었던지라 아직 하늘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우리는 밤에 어디 쳐박지나 말자는 생각으로 간단히 흉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흉가의 옆엔 웬 컨테이너가 있었고, 컨테이너에는 무슨 보살이라는 종이딱지와 매직으로 쓴 접근금지라는 경고가 보였다. 친구와 나는 무속인의 허세일 뿐이라며 비웃고는 컨테이너 옆 흉가쪽을 둘러보았다.

화장실로 쓰였던 걸로 추정되는 하얗고 작은 건물이 하나 있고, 그 옆에 본 건물이 보였다.

우리가 올라오던 길목에는 좀 트이고 수도가 설치된 시설이 있었는데, 나중에 찾아본 바로는 샤워장이라고 했다.


당시엔 그 흉가가 원래 뭐하는 건물이었는지는 조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상하게 분리된 건물의 구조에 의아하기만 했다. 뭔 집이었길래 화장실이 떨어져 있고 샤워장도 따로 있을까. 그 집이 원래 횟집이었다는 건 흉가에 다녀온 뒤에 알 수 있었다.


우리는 괜히 지나가는 차들이 의식되어 조금 구석진 곳에서 이야기를 하고 휴대폰을 만지며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9시 정도가 되자 하늘은 완전히 어두컴컴해졌다.

우리는 흥분된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흉가쪽을 향해 걸어갔다. 워낙 유명한 흉가다 보니 다른 사람이 오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다행히 그날 그곳에 찾아온 사람은 우리 둘 뿐인 듯 했다.


해가 완전히 진 뒤에 다시 마주한 흉가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한껏 음산해진 그 모습에 친구는 감탄하며 말했다.



 "와, 밤에 보니까 진짜 디지네."



평소 같았으면 겁을 먹었냐며 놀려댔을 테지만, 그 분위기에 압도된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기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막상 밤늦은 시간에 이런 곳에 들어가자니 조금 꺼려지기도 했으나, 나 혼자가 아니라 친구가 옆에 있다고 생각하니 괜히 어깨에 힘도 들어가고, 그다지 무섭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원래가 겁이 별로 없는 타입이었고, 옆에 누군가가 있으면 뭘 보아도 무섭게 느껴지지 않던 내 성격이 그 과감함에 한 몫을 했을 것이다.

나는 친구가 망설이고 있는 틈에 흉가의 문 안으로 당차게 발을 들였다.



 "뭐하노, 빨리 온나."



내 재촉에 친구는 오기가 생겼는지 성큼성큼 발을 내딛어 집 안으로 들어왔다.

처음에는 그 으스스함에 짓눌려 손전등을 이리저리 비추기만 하며 선뜻 깊숙히 들어가기가 힘들었으나, 곧 적응이 되자 우리는 정말 놀러온 것처럼 집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나무계단, 창문에 적힌 살벌한 경고문, 부서진 문 너머로 보이는 수많은 달마도와 널부러진 이불들, 집 여기저기에 붙어 있는 넝마가 된 부적들.

그리고 수풀이나 담쟁이들이 잔뜩 들어닥친 복도 등등이 이곳이 흉가라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게 해 줬으나 그 외엔 마땅히 다른 것을 보거나 느낄 순 없었다.



 "야, 뭔 쌀독이나 거울 같은 건 절대로 건들지 말라드라. 니는 꼭 건드려래이."


 "지랄, 니한테 던질 거다."



우리는 서로 시덥잖은 소리를 던지며 장난을 쳤다. 물론 진짜로 그럴 용기는 없었지만.

게다가 그 집에는 쌀독은 커녕 그 흔한 거울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집주인이 다 치우고 간 건지, 여기서 살았다고 하는 무속인이 다 치워둔 건지는 모르겠으나 생활의 흔적이 느껴지는 물건은 그 엉망진창인 방 외에는 거의 없었다.

슬슬 흉가 탐험도 지겨워지기 시작한 우리는 가장 나중으로 미뤄 두었던 지하실로 향했다.

지하실 입구에는 온갖 낙서가 적혀 있었다. 제일 눈에 띄었던 살려줘라고 적힌 빨갛고 큰 글자는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지하실의 분위기는 지금껏 우리가 둘러봤던 흉가 지상과는 차원이 달랐다. 맞은편의 펜션이 내뿜는 불빛과 이따금씩 지나가는 차량이 비춰 주는 짧은 빛이 들어오던 지상과는 달리, 그곳은 아무런 빛도 들어오지 않았다.

계단을 내려가는 발걸음이 자꾸만 느려졌다. 지하 1층에 완전히 내려오고는 인터넷에서 보았던, 바닥에 고인 썩은 물을 조심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막상 내려오고 나니 또 별 거 아니란 생각이 들어 나는 친구에게 장난을 치며 무속인 흉내를 냈다.



 "예, 이쪽에 영가가 있습니다. 하나, 둘, 셋. 세 명의 영가가 있네요."


 "푸하하, 미친 놈. 그러다 귀신 씌인다."


 "아주 슬픈 눈을 하고 있어요. 한이 맺힌 듯한……. 그런 눈입니다."



오기 전에 티비로 무속인의 모습을 보며 장난스럽게 이야기했던 '나도 저럴 수 있겠다'라는 말이 떠올라 했던 것이었다. 친구의 웃음소리가 지하실에 쩌렁쩌렁 울렸다.

지하실의 썩은 물을 밟고 싶지는 않았기에, 우리는 계단 끄트머리에서 지하실을 이리저리 비추고 둘러본 뒤 다시 계단을 타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생각보다 싱겁게 느껴진 흉가 체험에 우리는 서로의 담력을 과시하며 심야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별 의미도 없는, 바보같다고도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뭔가 해낸 것 같은 성취감도 느껴졌다. 혹시나 그날 밤 꿈에서 귀신이 보인다거나 혹은 가위가 눌리지는 않을까 생각이 들었지만, 평생 살면서 가위 한 번 눌려본 적 없던 나는 그날 집에 도착한 늦은 새벽녘에도 조용히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다음날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 보니 친구도 별 다른 기색 없이 잠을 잘 잤다고 했다.

역시 흉가에 다녀와서 귀신을 보니 매일 가위에 눌리니 하는 건 다 거짓말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러다 내가 문제를 깨달은 것은 그 다음주였다.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과 당구를 치던 날이었다. 흉가를 함께 갔던 친구와는 다른 친구들과 시내에 함께 가서 시간을 때우는 중이었다.

그렇게 당구를 치며 잡담을 하던 도중에 들은 이야기가 시작이었다.



 "야씨, 요즘 학교에서 하도 까이다 보니까 잘 때마다 가위 눌리고 지랄이다."



한 녀석이 삑사리를 내고는 변명처럼 중얼거린 말이었다. 나는 이놈이 괜히 쪽팔려서 헛소릴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다른 친구 녀석이 맞장구치며 말했다.



 "아, 나도. 맨날 머리 풀어헤친 년이 목조르고 그러더라. 존나 무섭다, 진짜."


 "진짜? 나도 머리 헝크러진 여자가 목조르는데."



그 둘은 깜짝 놀라며 서로 그 여자의 인상착의를 이야기했다. 산발이 된 긴 머리 외에는 얼굴이 보이지 않았으나, 길게 늘어진 혀와 드문드문 더러운 때가 탄 흰 원피스라는 옷차림이 서로 일치했다.

처음엔 둘이 짜고 나를 놀려먹으려나 보다, 하고 생각을 했다. 상상이 갈 정도로 섬짓한 그 인상착의를 내게 슬쩍 들려 주며 꿈에서 그 여자를 보기라도 하라는 식의 장난이라고.


그러나 분위기를 보니 그런 게 아니었다. 그 두 놈은 정말로 놀라고 있었다.

이야기를 듣자 하니, 둘 다 그 주 월요일부터 그렇게 가위를 눌렸다고 했다.

둘이 어디 흉가라도 다녀왔냐고 묻는 순간에 내가 다녀왔던 영덕 흉가가 떠올랐다.

하지만 곧 그 두 녀석과의 연관성을 찾지 못하였기에 기억에서 지워 버렸다.


두 친구는 잠시 가위를 누르는 그 귀신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곧 다시 당구를 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 이야기에 대해 잊어가다가, 그 주 금요일에 여자친구를 만나 시내로 나갔다.

우리 학교는 남고였고, 여자친구의 학교는 조금 떨어진 여고였기에 시간을 미리 정해 두고 주기적으로 시내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는 형식이었다.

물론, 여자친구 학교도 저녁무렵이 되면 학생들을 하교시키기 때문에 친구들이랑 시내에서 놀고 있다 보면 마주치는 경우도 잦았다.

그러나 그럴 때는 보통 서로의 친구들을 배려해서 인사만 나누고 따로 다니기 일쑤였기에, 그렇게 만나서 같이 있는 시간은 꽤 중요하게 여겼다.


그 주 화요일에 만난 뒤로 일주일도 안 됐는데 부쩍 헬쑥해진 것이 확연히 보여, 나는 걱정스레 여자친구에게 내가 물었다.



 "니 다이어트 하나?"


 "아니."



여자친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다이어트도 아닌데 눈에 띄게 헬쑥해진 그 모습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근데 왜 그렇게 힘도 없고 헬쑥해지고 그렇노."


 "요즘 가위 눌려서……. 아, 진짜 잠을 못 자겠다. 밤에 잠 자기도 무서워."



여자친구의 그 말에 바로 친구들의 이야기를 떠올리지는 못했다. 처음엔 그저 밤마다 가위에 시달린다는 여자친구의 이야기에 걱정이 됐을 뿐이었다.

여자친구는 평소에 먹던 커피 대신 주문한 복숭아티를 마시며 말을 이었다.



 "진짜 징그럽다니까. 막 혀 무지 길게 나온 여자가 막 목 조르면서 뭐라 화내는데 말은 안 나오고 눈도 안 감아지고……."



그 말에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디서 들어 본 묘사였다.

그제야 나는 친구들이 얘기했던 그 여자를 떠올려냈다.



 "막 머리 산발이고 허연 원피스 입고?"


 "어! 어떻게 알았어?"


 "그 막 원피스에 때도 타 있고 그런 여자?"


 "응, 맞아맞아. 와, 진짜 어떻게 알았어?"



깜짝 놀라며 신기해하는 여자친구의 반응과는 달리 나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왜 내 친구들과 여자친구가 밤마다 가위를 눌리며 같은 여자를 보는 걸까.

그 친구들과 여자친구 사이에 접점이라고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나였다





왜 정작 흉가에 다녀온 나는 아무런 이상 없이 일상처럼 지내고 있는데, 내 가까운 사람들이 귀신을 보고 가위를 눌릴까. 그런 고민을 하며 흉가를 같이 다녀온 그 친구에게 문자로 혹시 가위 눌리고 그런 건 없냐고 물어 봤지만, 그 친구는 여전히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답했다.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그저 우연일 거라 생각하며 일주일을 보냈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갈수록 가위에 눌리는 친구가 하나둘씩 늘기 시작했고, 여자친구는 점점 더 힘들어했다.

상황은 나아질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여자친구를 데리고 무속인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무속인을 무시하고 깔보며 흉가에 다녀오기까지 했으나, 이런 일이 막상 닥치고 나니 자연스레 그쪽에 의지하게 됐다.

아직 어린 고등학생 커플이 무당을 찾아가는 건 흔한 일은 아닐 것이었다. 그런 일을 부모님께 말씀 드리기에도 꺼려졌고, 부모님도 내가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이 가위에 눌린다고 이야기를 해 봐야 이해해 주시지 않을 것이었다.


사기로 등쳐먹는 무당들도 많다는 걸 입소문으로 많이 들어 봤었기에 나는 인터넷을 뒤져가며 우리 지역 내에서 이름 있는 무속인을 찾았다.

내 생각으로는 완전 산골 깊숙히 자리하고 또 사람도 별로 없고 그럴 줄 알았는데, 용한 무당이라 그런지 순서를 기다리기까지 해야 했다.

또, 생각보다 멀리 있지는 않았다. 물론 도심지를 벗어난 곳에 있긴 했으나, 그렇게 구석진 곳에 있지는 않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었다. 우리 둘은 여름방학 말에 주는 일주일간의 진짜 방학에 놀러가기 위해 준비해 뒀던 돈을 쓰기로 했다.

그러나 그 돈을 쓸 일은 없었다.


전화로 예약을 했었고, 우리가 찾아가기로 한 날짜가 되어 그날 선생님께 잘 말씀을 드려서 부모님 몰래 학교를 쉬고서 여자친구와 함께 그곳을 찾아갔다.

그러나 그 집 안에 들어서기도 전에 집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복장을 보자마자 그 사람이 그 무당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다짜고짜 뺨을 맞았다.


어안이 벙벙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왜 맞았을까 싶었지만 무당이 갑자기 이렇게 나오니 겁이 나기도 했다. 여자친구는 무당이 내 뺨을 때리며 무섭게 나를 노려보자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니, 어디 큰일날라고 여까지 찾아오고 있노?"



무당이 내뱉은 첫마디였다. 전화로 예약할 땐 오라고 해 놓고는 막상 가려니 밖으로 뛰쳐나와 뺨을 때리며 그렇게 말하니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저, 예약하고 왔는데요……."



처음엔 내가 어린 학생이라, 어린 녀석이 어디 이런 곳을 찾아다니느냐는 소린 줄만 알았다. 사복을 입긴 했으나 우리 둘에게선 아직 어린 티가 확연히 드러났으니까.

그러나 그 다음 무당이 한 말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니, 어릴 때 부모님이 그런 거 안 알아 주더나? 니는 이런 곳에 함부로 오면 안 된다고."



무당은 나를 계속해서 무당집에서 먼 곳으로 데리고 나가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

무당은 화를 내며 내게 소리쳤다.



 "니는 양기가 넘칠만치 많아서 귀신 있는 곳에 함부로 오면 안 된다!"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어 일단 고개를 끄덕이만 했다. 여자친구는 화를 내는 무당에게 괜히 겁을 먹었는지 내 팔을 꽉 붙잡기 시작했다.



 "니가 무당집에 들어오면 거기 귀신들은 물론이고 장군님까지 자리를 비켜야 한단 말이다. 그게 그걸로 끝나는 줄 아나? 귀신들은 뭐 가만히 있는 줄 아나?"



그쯤되니 무당이 하고 있는 얘기가 조금씩 이해가 갔다. 요점은, 내가 양기가 많은 사람이라 무당집에 들어가면 그곳의 귀신들이 자리에서 쫓겨난다는 얘기였다.

무당이 화를 내며 집밖으로 뛰쳐나온 이유가 그것이었다.


무당은 내 여자친구를 흘끗 보고는 혀를 차며 내게 말했다.



 "근데 니가 멋대로 귀신 터에 기어들어가니까, 그 쫓겨났던 귀신이 니 주위사람한테 들러붙어서 해코지하는 거 아니가. 니한테는 못하니까."



갑자기 핵심을 찔러오는 무당의 말에 나는 당황하여 말을 하지 못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친구들과 여자친구는 괜찮을 것인지, 어떻게 해결할 방법은 없는지를 묻고 싶었으나 무당은 바로 말을 이으며 내게 윽박질렀다.



 "사내 귀신들은 원래부터 그 자리에서 마음잡고 나라 위해 죽었던 귀신들이라 니 쫓아서 따라오지는 않았다. 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당장에 니 죽이고 싶어하지만 니를 어찌 못하니까 그냥 참고 있는기라. 허지만 그 사내 귀신들 말고 거서 죽은 처녀 귀신이 니 뒤를 쫓아서 온 기다."



또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무당의 불친절한 일방적인 설명에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사내 귀신들은 뭐고 날 따라왔다는 처녀 귀신은 뭐란 말인가.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느껴졌으나, 내게 무당의 말을 끊고 자세히 물어 볼 용기는 없었다.


무당은 여전히 격양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니 쫓아 와서, 니가 만나서 살갑게 지내는 사람들만 골라가 밤마다 지랄을 해쌌는데, 니는 뭐 잘했다고 편하게 퍼질러 자고 있노. 그러고도 니가 사람이가!"



마치 자신이 해를 당한 것처럼 무당은 크게 화를 냈다. 내 탓에 내 친구들은 고생하고 있는데, 나는 그것도 모른 채 편하게 지내왔음을 꾸짖고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그제야 죄책감이 들어 눈을 내리깔았다.


그 전까지 나는 무당들이 하는 소리들은 뻔한 이야기들을 찔러가며 역으로 정보를 얻어 사람을 속이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나는 이 늙은 여자에게 내가 흉가에 다녀왔다는 것, 그리고 내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무당은 모든 걸 알고서 내게 화를 내고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이 상황이 내가 생각하던 것만큼 가벼운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자세한 사정은 아직 이해하지 못했으나, 내 잘못으로 내 주위사람에게 해를 끼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나는 무당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제, 제가 뭐 어떻게 해야 돼요?"


 "그래, 해결을 해도 니가 해야지. 니 친구들 중에서는 다른 무당도 찾아 가믄서 난리를 치고 있을랑가 모르겠는데, 가들이 그래 난리를 쳐 봐야 아무 소용 없다. 지들한테 원한이 있는 게 아니거든."



무당은 점점 내게 죄책감을 싣고 있었다. 네 실수를 확실히 느껴 보라는 듯, 내 잘못을 계속해서 들춰냈다.

나는 그에 따라 점점 마음이 조급해지고, 또 한면으로는 무거워져 갔다.



 "일단 니가 다시 그 집으로 찾아 들어가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참고 넘어갔던 다른 사내놈들까지 자리에서 일어날 수도 있으이까. 다만 그 집을 찾아가기는 해야 한다."



모순적인 그 말에 나는 당황하여 되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찾아는 가는데 찾아가면 안 된다고요?"


 "집 가까이는 가지 말란 소리다. 그 집 근처까지만 가면 된다. 거기까지 다시 찾아가는 최소한의 성의는 당연히 보여야 된다는 소리다."



우리 동네에서 굿이고 뭐고 해 봐야 소용이 없다는 뜻이었다. 영덕 흉가로 가되, 너무 가까이는 가지 말고 그 근처까지는 갈 것. 그것이 무당이 첫째로 내건 이야기였다.



 "니 생각에야 그냥 찾아가서 둘러보고 놀다 온 거겠지만 귀신들한테는 그게 아이다. 양기라는 기 애초에 살아 있는 기운이다. 죽어서 그 자리에 떠도는 아들한테 찾아가서 니 살아 있고 기운 팔팔하다고 자랑하듯이 들어가서 지들 자리를 잠시라도 빼앗아서 밀어내기까지 했으니 그건 그 집에서 다른 놈이 침을 뱉고 지랄을 하는 것보다 더 심한 기다."



무당의 설명에 뒷목이 뻣뻣하게 굳는 듯 했다. 그저 잠깐 들러서 돌아다녔을 뿐인 행동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되는 일이었다니.

그 설명을 듣기 전에는, 내가 지하실에서 했던 장난이 문제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 장난은, 나의 흉가 방문 자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나는 위험한 짓을 한 것이었다.


무당은 마구 혀를 차며 몇 분간 화를 낸 후에야 내게 내가 어찌 해야할지를 알려 주었다.



 "아까 말했던 대로 그 근처까지만 가기라. 그냥 그 집이 완전히 보일 정도까지만. 그 이상 가까이 가믄 안 된다."



상당히 두루뭉술한 말이었지만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때 같았으먼은 굿을 하면 좋겠지만은 그런 집에서는 굿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니 홀몸으로 사죄를 구해야 된다. 가까이 가서, 절을 하면서 니 진심으로 사죄를 해라."


 "절만 하면 되나요……?"


 "그냥 절이 아니다. 니 진심으로 큰 소리로 쩌렁쩌렁 울릴 맨치로 사죄의 말을 올리면서 수십 번이고 수백 번이고 절을 해야 한다. 머리를 바닥에 찧을 정도로 시게 절을 해야 할끼다."



무시무시한 말이었지만 나는 따지기는 커녕 아무런 거부감도 들지 않았다. 내 실수로 말미암아 생긴 내 잘못이니 당연히 해야 될 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일단 귀신에게 올리는 절이니 음식이랑 술도 있어야 할기다. 거창한 거 들고 갈 생각은 마라. 그냥 제삿상에 올리는 과일이랑 술만 가져가그라. 술잔도 들고 가서 기본적인 제사 흉내는 내고 온나. 그렇다고 향 피우고 초 키고 하라는 기 아니다. 그냥 과일이랑 술만 올리고 니 성의껏 절 드리고 오그라."



무당의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여자친구의 손을 꼭 붙잡았다.

무당은 이런 이야기를 해 준 이상 얼마가 됐던 복채를 받아야 한다고 했는데, 내 돈을 받는 것도 문제가 있다며 일단 여자친구에게서 대충 천 원 한 장을 받아갔다.

여자친구는 옆에서 아무 말도 없이 내 팔만 붙들고 있다가, 무당이 등을 돌려 무당집을 향해 돌아가는 걸 본 뒤에야 내게 말을 꺼냈다.



 "갈 거야?"


 "그래야지……. 그래야 한다는데."


 "학교는 어쩌고?"


 "학교가 문제가. 니랑 아시끼들한테 해코지 한다 카는데."



여자친구는 걱정스러운 듯 이것저것을 물어 보았으나 나를 말리지는 않았다. 흉가에 들어가지는 않고서 사죄의 절만 올리고 오는 것이니 말릴 구실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매일 가위에 눌리는 공포도 나를 말리지 못하는 데에 한몫 했을 테고.


나는 부모님께는 또 다시 독서실에서 밤을 샌다고 거짓말을 했다. 처음 흉가에 갈 때는 의식하지 못했는데, 두 번째로 갈 때에는 부모님께 이렇게 거짓말을 하고서 흉가로 가서 내 잘못을 사죄 드리러 간다고 생각하니 부모님께 죄송스러웠고 가슴 깊숙이 죄책감이 피어올랐다.

다음날 아침, 나는 바로 영덕으로 향할 채비를 마쳤다. 학교에는 몸이 좀처럼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했다.

내가 아무리 선생님들과 친하게 지내고 꽤 신임을 얻으며 지내는 녀석이라지만, 이틀이나 연속으로 쉬게 되면 의심을 해서든 걱정을 해서든 학교에서는 집으로 전화를 해 볼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그런 것을 겁내서 주말로 시간을 더 미룰 수는 없었다.


과일은 아무데서나 사도 괜찮았지만, 미성년자가 술을 살 때에는 꽤 한정적인 조건이 붙었다.

아무리 제삿술을 산다고 해도, 일단 그게 다 청주다 보니 가까운 슈퍼에서는 모두 민증을 요구했다.

오늘이 제사라 심부름을 나온 것이라 해 봐도 넘어가 주진 않았다.

민증 검사를 하지 않고 술을 파는 곳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가 여는 그 작은 슈퍼는 아침 일찍 문을 열지 않았다.


결국 나는 오전 중의 시간을 모두 날려 버렸다.

사과 하나와 술, 종이컵을 사들고 버스에 타 영덕에 도착하고 나니, 시간은 저녁 때가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배가 고파왔지만, 그런 걸 챙기고 있을 시간적 여유도, 금전적 여유도, 심리적 여유도 없었다.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는, 흉가로 가는 버스와 길을 애써 떠올리며 간신히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해가 산머리에 걸쳐진 뒤였다.


나는 무턱대고 언덕을 올랐다. 건물이 완전히 보여야 한다고 했다.

정확한 거리의 기준이 없었기에, 나는 무당집에 가다가 무당이 뛰쳐나온 그 거리에서 조금 여유를 두는 식으로 거리를 정하였다.

흉가와는 조금 떨어진, 마당 바깥쪽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멈춰선 나는 가방을 열어 과일과 술, 종이컵을 꺼내고는 두 무릎을 땅에 대었다.


제사 때마다 아버지께서 하던 것을 봐 왔던 덕에 내가 뭘 해야할지 헷갈리지는 않았다.

다른 음식이나 초, 향 등 제대로 된 준비물이 전혀 없었기에 내가 챙겨야 할 것은 술이었다.

혼자서 종이컵에 술을 따라 세 번 돌린 뒤 사과 옆에 컵을 내려놓고서 절을 했다.

그리고 이마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한 나는 큰 소리로 소리쳤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용서해 달라느니 잘 모르고 그랬다느니 하는 다른 말들은 떠오르지도 않고, 그저 죄송하다는 말만 외쳐댔다. 한참을 그렇게 소리치다가 나는 시간이 꽤 지났음을 깨닫고는 종이컵에 담겨 있던 술을 주위에 뿌리고는 다시 술을 채우고 재차 머리를 바닥에 쳐박았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힘이 빠져 아까처럼 크게 소리를 치지는 못하고, 작은 목소리로 끊임없이 죄송하다는 말을 중얼였다.

생각이 날 때마다 술잔을 비우고 다시 채우며, 몇 시간인지도 모를 만큼 그렇게 바닥에 고개를 쳐박고 있었다.

그때 지나가던 많은 차 중에서는 나를 보고 귀신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술을 따를 때 외에는 거의 움직이지도 않으며 계속 그 상태로 시간을 지샜다.


어느덧 술병이 바닥을 보였을 때는 하늘에 푸르슴한 기운이 감돌며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마지막 술잔을 주위로 뿌린 나는 앞에 두었던 사과를 잘 보이지 않는 구석에 옮겨두고는 마지막으로 절을 두 번 하고서 언덕을 내려왔다.

이걸로 된 걸까, 아니면 부족한 걸까. 부족하다면 얼마나 더 와야 하는 걸까. 하지만 안 올 수도 없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언덕을 내려와 휴대폰을 열어 보니 수십 통의 부재전화와 문자가 와 있었다. 어머니였다. 늦은 밤에도 부재전화는 꾸준히 기록돼 있었다.


학교에서 연락을 했던 모양이었다. 밤새 연락도 안 되고 소재도 알 수 없는 아들 걱정에 밤을 지샜을 어머니 생각에 다시 고개가 푹 숙여졌다.

지금 들어간다는 문자를 보내고서 버스에 올라탔다. 좌석에 앉자마자 전신의 피로가 나를 깔아뭉개듯 쏟아지며 금새 잠에 빠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이미 우리 시에 도착한 뒤였다. 불러도 깨지 않는 나를 버스 기사분이 흔들어 깨우고 나서야 겨우 눈을 뜰 수 있었다.

눈을 뜨고 있기가 힘들었다. 단 하루를 지샜을 뿐인데도 너무나 피곤했다.

온 몸의 뼈가 녹슨 쇳덩이가 된 것처럼 삐걱거렸다. 등이 쑤셔오고 팔이 아파왔다.

종일 바닥에 대고 있느라 까지고 피가 나는 무릎과 손바닥, 이마보다도 그게 더 고통스러웠다.


집에 도착하자 마자 보인 것은 거실에서 화가 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어머니였다.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어머니는 나보다도 더 피곤해 보였다.



 "어디 갔다 왔노."



평소와는 달리 조금 쉰 듯한 목소리로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어제랑 그저께 학교 안 갔었나."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잠시 말씀이 없으시다가 곧 다시 입을 여셨다.



 "뭐 때문에 그랬는데."


 "그냥……. 제가 잘못한 게 있어서 제가 수습했어야 됐어요. 죄송해요, 엄마."



그 말을 들은 어머니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죄책감에 짓눌려 질식할 것만 같았다.



 "엄마한테 말하고 가면 안 됐나? 꼭 그래 억지로 둘러대고 엄마 모르게 가야 됐나?"


 "……죄송해요."



어머니에게도, 입에 붙은 듯한 그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한참을 말씀이 없으시더니, 뺨 위에 흐르던 눈물을 훔쳐내시며 고개를 돌리고는 말씀하셨다.



 "씻고 들어가서 자라."



나는 아무런 말씀도 드리지 못했다. 그저 어머니 말씀대로 몸을 씻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전날 아침에 헐레벌떡 뛰쳐나올 때는 엉망진창이었던 이불이 평소처럼 깔끔하게 정리돼 있는 걸 보자니 또 어머니께 죄송스러워졌다.

그러나 극도의 피곤함은 그 죄송스러움도 무색하게 곧바로 나를 잠에 빠지게 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한 일은,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가위에 눌리진 않았는지 물어 보는 것이었다.

전날에 한 일 덕인 것인지 여자친구가 날 안심시키려고 한 거짓말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때 여자친구는 가위에 눌리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학교에 가서도 나는 친구들에게 전날 밤에 가위에 눌렸느냐고 물어 보았다.

다들 가위에 눌리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그 처녀귀신을 꿈에서 봤다는 친구가 하나 있긴 했으나, 가위에 눌리지는 않았다.


내가 흉가에 재차 찾아간 것이 전날 저녁때부터였고, 그 자리를 뜬 게 그날 새벽이었기에 당장에 효과가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날부터는 그 여자에게 가위를 눌리는 친구는 없었다.

간혹 가위에 눌렸다고 이야기하는 친구가 있긴 했으나, 원래부터 가위에 잘 눌리는 친구였고, 그때 목을 졸라댔다던 그 여자는 나오지 않고 그저 평범히 몸이 굳어서 움직이지 않는 가위였다고 했다.


다행히 한 번에 용서를 받아낸 건지 잘 해결되긴 했으나, 아직도 가끔 그때의 그 난리와 고생이 떠오르곤 한다.

그저 장난일 뿐인 작은 행동이 내가 아닌 내 주윗사람들에게 해를 끼친다. 지금 생각해 봐도 내가 고생하는 것보다 훨씬 끔찍한 일이다.


내 경우엔 그 정도가 심한 편이지만, 귀신이나 그런 면 쪽으로 전혀 관련이 없다 할 체질인 사람은 어딜 가나 많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체질이라고 해서, 흉가라던지 묘지 같은 곳에서 함부로 찾아가 괜한 짓을 하는 것을 나는 추천하지 않는다.

본인은 그런 것에 면역이 있을지 몰라도, 귀신이 해코지를 할 수 있는 건 자기 자신 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꼭 알아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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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하면 추천창 뜸


출처 : 루리웹 민현아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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