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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 누나 이야기.txt (7)

익명_bf61c62018.09.01 19:37조회 수 25305추천 수 1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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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의 업데이트가 많이 늦었습니다. 5일 등판을 약속했는데 7일이 넘은 것 같습니다.

화요일에 끝내고 점심께 올리려고 했는데 노회찬 의원 부고를 듣고 영 마음이 안 생겨서 매조짓지 못하고 시간이 그냥 흘렀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쭉 써야 좋은데 짬 나는 대로 쓰다보니 호흡도 잘 안맞고 오류도 생기고 제 기억도 자꾸 헛갈리게 되곤 합니다.

 

읽어주시는 여러분께 그저 감사드리며.

 

넓은 아량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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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힘든 이유로 전 해가 짧은 걸 꼽습니다. 암만 일찍 퇴근 해도 해가 져 있으면 일찍 집에 가는 것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녁을 먹으러 갈때 해가 떠있으면 회사에 있어도 좀 마음이 나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에겐 겨울이 좀 힘듭니다. 

 

 

안책임님과 저 사이에 있는 강을 발견한 기분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서로 멀리 있다가  어딘가에 있다는 것만 알고 발걸음을 옮겼지만 어디 있는지 몰라 한참을 헤멨습니다. 그리고 겨우 어디있는지 알아 내고 다가갔지만 건널 수 없는 선을 발견했습니다.

 

안책임님도 저도. 똑같이 그 선을 발견하고 깨달은 것 같습니다.

이 선을 넘고 나면  저 큰 강을 건너야 한다. 아주 험난한.

 

그래서. 아마 용기란 말을 쓰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그 선을 넘지 않은 채로 

가만히 서서 겨우내를 지났습니다. 

 

 

우리는 전과 같이 간간히 점심을 먹고 아주 드물게 커피를 마셨으며 메시지를 보내고 살았습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진짜 그 선을 알고 딱 거기에 서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하루는 사무실에서 야근하고 있는데 안책임님이 다급하게 자기 자리에서 노트북좀 가져다 달라고 합니다.  집에서 마무리 할 일이 있었는데 그냥 퇴근해버렸다며 자리 옆자리 사람에게 이야기해 놓았다고 내가 가면 가방 채로 줄거라 해서 그걸 들고 또 집에 가서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문앞에서 가방만 주고 후딱 나오긴 했는데 그 뒤로 심부름으로 밤에 두어번 가게 됩니다. 한번은 근방에 일이 있어 갔다가 그냥 생각났다며 메세지를 보냈더니 난데없이 애기 먹을 우유가 떨어졌다며 나가 사올 수가 없다고 해서 우유를 사다 준 일도 있었습니다. 동네서 우유를 사 들고 갔더니 하는 말이

 

 

 

 

안: "잠깐 들어와서 주스라도 마시고 갈래요?"

 

나: "네? 지금 들어가도 돼요? 오늘도 애 없어요?"

 

안: "애 지금 방에서 자요. 막 잠들어서 꽤 깊게 잘 거에요. 잠깐 뭐라도 마시고 가요."

 

 

 

 

 

이건.. 진짜 주스 마시고 가라는 말...

 

그녀의 말에는 아무런 에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어떤 기대나 착각도 없이 들어가서 주스를 얻어 마시고 몇마디 대화를 나누고 나옵니다. 지난 연말의 초대 이후로 어색함도 없지만 또 더 이상의 아슬아슬한 선 넘기도 없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진짜 오피스 누이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어느날.

 

지인이 후배라며 여자를 소개해주기로 하여 약속을 잡고 퇴근 후에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셔츠도 좋은 것 입고 평소엔 주로 렌즈를 끼다가 안경도 꼈습니다. 회사 책상에 넣어둔 좋은 향수도 뿌리고 사무실을 나서서 회사 로비로 내려가는 순간.

 

역시 퇴근길이었던 안책임님을 만났습니다.    

 

안: "엇 손책임님. 오늘 안경도 끼셨네요. 오늘 되게 뭔가 샤방하고 귀염하고 그러네요."

 

나: "아.. 안경이야 가끔 회사 끼고 왔는걸요. 퇴근하세요?"

 

안: "네. 약속있나보네요. 오늘 뭔가 꾸민티가 단단히 나는데"

 

나: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아.. 네. "

 

안: "자세히는 안 물어볼게요. 나중에 이야기해주세요- 아무튼 오늘 되게 멋져 보여요."

 

 

 

오늘 누구 만나요? 여자 만나요? 이런 식으로 물어봤으면 난 뭐라고 대답했을까...

 

 

 

아마 눈치빠른 안책임님은 아셨겠지요. 그래서 저렇게 이야기했을 겁니다. 어떤 마음일까요. 진짜 내가 멋져보였던 걸까요. 날 배려핸다고 저렇게 에둘러서 이야기한 걸까요. 

 

 

 

 

그리고 안책임님이 지나간 자리엔 또 그 절 혼미하게 하는 향기가 남아 제 발을 못떼게 합니다.

 

분자의 확산에 따라 또 그 냄새가 없어질 때까지 마지막 냄새의 한줌 티끌까지 코로 모으고 말겠다는 의지로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서 있었습니다.

 

같은 온도에서 기체 분자의 운동에너지는 기체의 종류에 상관없이 동일하다고 그레이엄이 그랬다지만. 아닙니다. 틀렸습니다. 안책임님의 향기는 달라요. 

 

 

 

난 당신을 잊을 수 있을까.

 

이건.

단순히 샴푸냄새가 아니다. 

 

당신의 냄새. 

 

당신에게서만 나고 나만 맡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참을 생각에서 헤메다가 겨우 빠져나가 약속장소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소개 받은 사람은 다섯 살이나 어리고 밝은 처자였습니다. 옷태가 빛이나고 피부가 하얗고 삶이 마냥 즐겁고 재미있는 젋은 여자. 

 

좋은 직장에서 괜찮은 봉급을 받아 부모 생활비나 대출의 압박없이 해외여행도 가고 친구들과 쇼핑도 다니고 저축도 적당히 하며 삶에 고민이 없는 여자.

 

신상 러닝화를 사서 꼬박꼬박 마라톤 대회에 나가고 팝스타가 오면 지체없이 십만원이 넘는 티켓을 사서 가는. 그냥 인생이 마냥 즐거운 여자. 

 

 

 

초면에 오빠 호칭을 허하였더니 오빠오빠 하면서 종알종알하면서 다음에 뭐 먹으러 가자느니 어디 가봤냐느니 아직 신청도 하지 않은 애프터를 벌써 그리고 있습니다.

 

 

 

아직은 잘 모르지만.

이쁘고. 집안 좋고. 마냥 밝고. 학벌 좋고. 구김없고. 외동딸에. 

 

 

우리 엄마가 딱 좋아할 스탈인데.

 

 

 

 

마다할 이유가 없는 여자인데.

 

 

 

속으로는. 안책임님도 이렇게 밝고 젊고 싱그러운 때가 있었을텐데. 이렇게 젊었을 때의 안책임님을 만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상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적당히 좋은 말을 하고 헤어지고. 소개한 지인에게 감사 전화를 한다음 조금 고민을 하다가 그냥 애프터 신청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젋고 종알종알 밝은 처자는 

 

[["오빠 엄청 귀엽네요 ㅋㅋ 난 아까 애프터 약속 이미 한 줄 알았는데 ㅋㅋ" ]]

 

 

 

모르겠다. 그냥 만나보자.

사귀자고 한 것도 아닌데.

 

그리고 안책임님에게서 한참 전에 소개팅 중에 온 문자를 이제 확인합니다.

 

 

 

 

 

[[책임님 오늘 되게 멋있네요. 설렐정도로.]]

 

 

 

 

 

 

 

 

 

 

봄이 되었습니다.

 

 

패딩 점퍼와 코트를 세탁소에 맡길까 말까 고민하는 달이 되었고 회사에서는 또 조직을 바꾸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네 이야기들이 나오는 시즌이 되었습니다.

 

 

 

 

하루는 부서장이 면담을 하자 하더니

 

부서장: "손책. 야 너 전에 GMAT 하다 이제 안하냐?"

 

나: "헉..... 어떻게 아셨어요?" 

 

부서장: "야 그런건 회사 모르게 알아서 하는거 기본 아니야? 됐고 요즘은 공부 안하는거 아는데... 너 회사 생활에서 승부 한번 걸어볼래?"

 

 

나: "아. 무슨 일을 시키시려고..."

 

부서장: "너 이름 걸고 과제 빌드 하나 해볼래? 내년 하반기 목표로 북미에서 파트너사랑 같이 사업하려고 하는데 비공개 공모한다고 전략팀에서 몇몇 부서에만 연락이 왔거든."

 

 

나: "제 이름 걸고요? 그럼 제가 메인 피엠하고 그러는 건가요? 제가 할 깜이 되는건지 잘.."

 

부서장: "야. 되니까 해보라는거지. 3분기에 이사회 보고하고 그때 결정한대. 딱 너 연차에 딱이야. 이거 되면 바로 북미 주재원에 주재원 끝나면 회사에서 보내주는 MBA하고 임원 트랙이야. 다 이런걸로 시작해. 자기 이름 걸로 성공하는 걸로.."

 

나: "아니 그럼 수석님이 하시지 저에게.."

 

부서장: "야! 내가 부서장인데 이거 할 연차가 한참 지났잖아! 그리고 널 이뻐하니까 추천하는거 아니야! 부서에 열명이 넘는데 너한테 하라고 하는건 다 이유가 있는거지. 밀어주겠다는데. 좀 알아들어라! "

 

 

 

 

 

 

 

누군가에게 인정 받는 것. 

 

회사에서 인정받으며 잘 나가는 것.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 부러움을 받는 것.

 

 

평소에 딱히 승진이나 임원을 부러워 해 본적이 없는데 이상하게 바로 위 부서장이 내가 널 인정하니까 추천한다. 해봐라. 하니까. 조금 마음이 뜁니다. 맨날 회사생활 개떡같다고 동기들과 욕하고 다녔는데 흠. 난 너희들과 달라. 라고 우스운 자부심마저 생깁니다.

 

 

 

일단 안책임님에게 알립니다.

 

나: [[책임님. 책임님. 저기 전략팀에서 하는 과제 공모 하라고 추천받았는데요. 저 이거 하는거 어떠세요? 하는거 맞는건가요?]]

 

안책임: [[ 아무한테나 오는 기회 아니잖아요. 멋지게 해보세요. 응원할게요. ]]

 

 

 

 

 

응원할게요.

 

복잡한 마음이 듭니다.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내가 기대한 답은 어이없게도 '그거 되면 많이 바쁜 거 아니에요?'또는 '과제 선정되면 미국가야 하는거 아니에요? 못보는건가요?' 라는 반문이 올줄 알았나 봅니다.

 

 

왜 난 계속 이런 생각만 하고 있는 건가.

 

이미 선이 그어졌는데.

 

 

 

 

 

 

다음날 부서장에게 하겠다고 이야기하고 과제 맨먼스를 조정해서 여기저기서 지원받아 시작합니다. 남자 넷 여자 둘. 

 

후배 한두명 지도는 해 봤어도 이렇게 큰 조직을 이끄는 건 회사에서 처음입니다.

 

 

 

몇가지 후보 아이템은 이미 나와있었는데 아이디에이션 한다고 과제원을 모아 놓고 과제비에서 돈을 띠어 쥐어주고는 반나절동안 놀다 오라고 부탁했습니다. 

 

겜방에서 놀다 와도 좋은니 뭐라도 회사 밖에서 좀 건져 오라고...

 

황사에 별걸 다 시키네.. 투덜거리는 과제원들을 내보내고 혼자 명동으로 나서면서 생각했습니다.

 

 

 

 

 

이건. 지난 여름 안책임님을 처음 만날 날을 혼자 기념하는 것. (1화 참조)

 

똑같은 가게. 똑같은 커피집. 똑같은 주전부리 트럭들을 들러보며 추억했습니다.

 

 

 

그냥 이걸로. 한번 정리해보자. 내 마음을.

 

지난 10개월 행복했었습니다.

난 이번에 회사일로 하얗게 불태워서 당신을 잊어보겠어요.

 

 

 

 

처음으로 이름 걸고 해보니 무엇하나 허투루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희 부서에서도 몇 오고 다른 부서에서도 과제를 위해 함께 한 사람들인데 같이 성공해보자! 하는 믿음을 주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매일 야근을 했고 주말에도 일을 싸들고 집에 갔고 힘들 때면 미국 캘리포니아에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고 출장을 가는 상상을 했습니다. 혼자 상상으로 상무님! 하면서 절 부르는 장면을 그렸습니다. 성공 가도를 달리는 젊고 똑똑한 임원. 참 한심하게도.

 

 

 

그리고 미안하게도 소개팅 아가씨에게는 연락이 매우 뜸해지고 말았습니다.

 

 

 

인생은. 사실 그간 큰 도전이 없었습니다. 도전이 두려워서 딱 그만큼의 노력만 하고 살았고 운이 좋았고 배경도 도와주었습니다. 그래서 그정도로 노력하고도 적당히 잘 살 수 있었습니다. 고시도 하다가 금방 내려놨고 MBA도 순전히 안책임님때문에 시작한거였으니까요.

 

 

삼십줄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스스로 악착같이 해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시간을 쪼개어 썼고 해당 분야 공부에 매달리고 과제원들 관리하느라 감정 노동도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공부하고 노력했으면. 

진즉 뭐라도 되었을 걸.

 

인생이란 먼저 철드는 사람이 성공하는 거구나...

 

 

 

 

 

 

안책임님과는 잘 못 만났습니다. 중간에 응원의 메세지를 받았고 저는 고맙다는 말 외에 딱히 특별한 안부를 묻지 않았습니다.  

 

일부러 더 집중했고. 일부러 빛나는 미래를 상상했습니다.

 

 

 

잊어지는 듯 했습니다. 

 

 

 

 

 

....

 

 

 

 

그렇게 다섯달을 불꽃같이 보내고 맞이한 늦여름.

 

주말에 엄마가 외출했다가 넘어지면서 무릎을 크게 다치고 입원과 수술을 하면서 집안 분위기가 갑자기 침체가 되었습니다. 긴 재활을 필요로 할 것 같다고 했고 이제 아직 노인이라 부르기엔 젊다고 생각한 엄마가 전처럼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엄마를 포함한 식구 모두가 매우 우울해졌습니다. 

 

몇 달을 꿈 속에서 지냈는데 뭔가 한 대 얻어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우울해지지 않으려 애썼는데 여간 마음이 쓰이는 것이 큰 짐을 하나 얹은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전략팀과 그간 쿠킹해왔던 과제를 조율하며 발표날을 잡던 어느날.

 

부서장이 저와 전화를 하더니 하더니 전략팀과 연락해 왔다면서 같이 미팅을 하자고 합니다. 늘상 만나던 거라 별 생각이 없었는데 부서장 통해서 연락해 와서 좀 의아해 하기도 했습니다.

 

회의실에 들어가자 좀 무거운 분위기..

 

 

 

부서장: "어. 손책. 뭐 많이 뵙던 분들이지? 내가 소개할 필요 없지?"

 

나: "네. 안녕하세요. (전략팀 사람들에게) 자료 수정할거 있으면 저에게 직접 말씀하셔도 되는데..."

 

전략팀: "아.. 수고 참 많으십니다. 과제도 참신하고 준비도 잘 되는 것 같습니다."

 

나: "네.. 오늘 미팅 아젠다는 뭔가요? 이렇게 갑작스럽게. 저희 부서장까지 배석하시고..."

 

부서장: "어. 저기.. 손책. 너 과제랑 겹치는 과제가 있대. 너무 똑같다는데.. 너 파트너십쪽에 나**책임 알아? 같이 일한 적 있어? "

 

나: "아.. 알긴 아는데.. 얼마나 똑같길래요?"

 

 

불안한 마음이 듭니다.

 

 

전략팀: "손책임님. 처음에 여섯개 팀이 시작했고 지금 네개 과제가 파이널에 있는데 윗선에서 두개만 추려서 올리라고 하셔서요. 근데 그 중하나가 손책임님 과제랑 너무 똑같아서 하나 정리하면 좋겠습니다."

 

 

아....

그 나책임이라면 같은 TF멤버였다. TF종료 후에는 딱히 만난 적도 없는데.

 

 

 

 

전략팀: "손책임님. 정말 죄송한데 나책임님쪽이 과제 제안도 빨랐고 저희에게 자료 보내온 것도 빨랐습니다. 손책임님께서 그쪽 자료를 보거나 베꼈다는 말은 절대 아니고요... 저희로서는 교통정리를 하긴 해야하는데 이럴 땐 그냥 기준을 정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나: "하아.... 그럼 과제 접으라는 말씀이신가요? 아니 무슨 이제와서.. 자료 처음 보신 것도 아니면서 지금에 와서 같네 어쩌네 말씀 하시면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피가 거꾸로 솟습니다.

 

 

부서장: "그래도 전략팀에서 너 고과는 따로 준대. 나도 충분히 감안해 둘게. "

 

 

부서장이 야속합니다. 아니 같이 싸워줘야지. 이 양반아.

 

 

전략팀: "나책임님쪽도 미팅을 잡긴하는데 손책임님과 만나고 결과 낸후에 만날겁니다. 근데 만약 손책임님이 다른 과제와 만나서 이야기하고 결정하신다면 결정을 제가 못하고 더 위로 올라가게 됩니다. 그럼 좀 피곤해집니다..."

 

 

 

아니 피곤한게 너네지. 나냐..

 

넉달의 시간이 아깝다기 보다는. 일단 과제원들에게 할 말이 떠오르질 않았고 제 딱한 인생에 화가 났으며 나책임이란 작자가 분명이 우리 자료를 미리 보거나 빼간게 틀림 없다고 생각하자 미칠듯한 분노에 휩싸였습니다.

 

   

 

전략팀 사람들을 인사 후 무심하게 회의실을 떠났고 부서장은 절 붙잡고 설득을 합니다.

 

야. 회사 생활 나처럼 이십년 하면 더 웃긴일도 많아. 너 이거 아무것도 아니야. 잘린 것도 아닌데. 야. 이게 만약 해고 통보였어봐. 난 입사하고 내 선배들 우루루 잘리는 거 보면서 시작했어...

하자고 한 입장에서 나도 미안한데. 그냥 사회생활 이런거라 생각하고 또 다른 일 하자. 응? 너무 실망말고...

 

 

 

그래요. 수석님.

그래도 날 위로한답시고 앉아 있는 당신이 고맙네요. 딱히 위로는 안되지만. 고맙긴 합니다.

당신 책임은 아니니까요. 

 

 

 

 

 

자리로 돌아와서 허무하게 앉아있는데 일단 다른 과제원들에게 할 말이 없습니다. 한숨만 쉬면서 분노를 애써 삭이고 있는데 

 

부서장: "야 그냥 나갔다 와. 아니. 그냥 퇴근해. 어디 사우나 가서 몸 좀 담가. 당구라도 치던지. 그냥 좀 나갔다 와. 내 법카라도 줄까? 맛있는거라도 먹을래?"

 

나: "어딜 갑니까. 제가 지금.. "

 

부서장: "야. 그럼 일할거야? 무슨 일을 해? 내가 너네 과제원들 얼굴 보면 이야기해줄게. 잘."

 

 

나: "제가 이야기해야지 됐습니다. 아무말 마세요."

 

 

 

 

나책임에게 어떻게 된거냐고 따지려고 전화했는데 받지를 않습니다. 일부러 안 받는다고 생각하자 더 분노가 치밉니다. 잇색들 날 먹일려고. 뭐 이양반 자료가 나랑 왜 비슷하다는거지.

 

 

분노. 분노. 분노. 실망. 실망. 실망.

 

 

 

 

몇 년 지난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분노와 실망이 쌓인 감정을 어찌할 줄 몰라 사무실을 멤돌던 때.

 

 

 

그래. 안책임님에게 이야기하자.

내 이 슬픈 처지를 털어놓고 위로를 받자. 지금의 이 감정을 누구에게. 누구에게 말한단 말이냐.

 

 

 

 

메세지를 보냈습니다. [[사무실에 계세요?]]

 

답이 없습니다. 읽었다는 표시도 한참 뜨지 않습니다. 오후 네 시. 해는 중천에 있는데 사무실을 나가 술이라도 먹으려 했는데 한 낮에 술파는데도 없습니다. 뙤약볕의 매미소리에 사실 술 생각도 없습니다. 

 

 

 

갈 데가 없었습니다.

 

 

편의점에 들어가 담배 한 갑과 라이터를 삽니다. 아 또....

 

흡연실에 가서 일단 두 대를 폈습니다. 오랜만에 피는 담배라 그런지 어질어질합니다.

 

별로 위로가 안됩니다.

 

 

 

 

 

집에나 갈까.

 

지금 집에 가면 뭐하나. 오랜만에 게임이라도 할까. 아니면 야구 동영상이 볼까. 아니면 진짜 야구를 볼까. 아 날은 진짜 왜 이리 더워. 회사에 도로 들어가서 전략팀이랑 만날까. 내가 갱판치고 그러면 감사팀에서 오고 그러나. 그러면 걔네도 손해겠지.

 

분노와 원망에 이젠 상상까지.

 

 

 

왜 안책임님에게선 연락이 없냐.

 

그래 끝났지 뭐. 나도 연락이 없었으니까. 염치 없다. 네가 뭐라고.

 

이제 와서 연락을 하나. 그래서 뭐 해달라고 할건데. 안아달라고 하면 안아주나. 몇 달씩 연락도 제대로 안하다가.. 찌질하다. 찌질해. 

 

 

 

나이트라도 가서 술먹고 춤추고 원나잇하는 그런 흥정망청함이 간절했습니다. 친구들에게 술이나 먹자고 몇몇 연락을 했는데 휴가다 뭐다 되는 녀석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후 다섯시. 급기야 회사를 나서서 근처 패밀리 레스토랑에 들어가 맥주에 나초 하나 시켜서 바에서 먹었습니다. 바텐더에게 말이라도 걸까 하는데 생각한 '바' 분위기도 아닙니다. 바텐더는 맥주를 따라 주더니 주방에 가서 요리 보조만 합니다.

 

 

 

 

결혼한 전 여친 생각도 나고 소개팅녀도 생각납니다. 

 

안책임님에게 또 메시지 하나 보냈지만 여전히 읽히지 않는 상태.

 

 

 

마음 한구석엔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고 또 알수 없는 배신감에 마음이 영 안좋습니다.

내 마음이 좁은가보다... 이러고 하염없이 바 위에 티비만 멍청히 바라보고 있는 와중에..

 

 

 

 

 

드디어 오는 메시지.

 

안: [[아. 정말 미안해요. 이제사 확인했네요..  저기 저 지금 나와 있어요. ]]

 

나: [[회사로 들어오세요? 혹시. 잠깐이라도 볼 시간 나세요?]]

 

안: [[근데 회사에는 애만 픽업해서 바로 집에 가는데. 볼 시간이 날 지 잘 모르겠어요. 죄송한데.. 잠깐 기다릴 수 있어요? 금방 제가 전화할게요.]]

 

 

 

서너달을 거의 못 봤는데. 메시지 하나에 마음이 바삐 움직이는 모습. 고맙다.

 

 

 

 

 

일단 레스토랑을 나섰습니다. 

 

 

 

대로의 뒷골목 한켠에서 담배를 또 뭅니다. 

 

회사를 그만둘까. 그리고 성공을 해야 이것들 내가 복수를 하는데...

 

 

 

 

 

 

 

그 순간 안책임님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안: "책임님! 과제 결과 나왔어요? 아니면... 그냥?"

 

나: "과제는.. 완전히 안된건 아닌데. 안될거 같아요."

 

안: "음....... 얼굴 봐야..겠죠? 뭔가 이야기 하고 싶은거죠?"

 

 

보고 싶은 겁니다.  보고 싶은거죠? 라고 물어봐 주시지...

 

 

 

 

 

나: "네... 근데.. 시간 내기 어려..우시죠?."

 

안: "나 지금 애 데리고 이제 집에 가는데.. 혹시 한 시간 정도 후에 저희 집쪽으로 올 수 있어요? 내가 가야하는 것 같은데 오라 해서 미안해요."

 

 

 

그래. 주스 한 잔 이라도 얻어먹자. 

아 근데 애기 자려면 한참 남은거 아닌가.

 

아 모르겠다. 오라면 난 갈 뿐..

 

 

 

 

시간이 지나 이제 해가 지려합니다. 여름의 지는 해가 만드는 노란 빛을 보며 터덜터덜 지하철을 타고 걷고 걸어 안책임님 댁 아파트에 도착했습니다.

 

 

아파트에 왔는데 기다리겠노라고 메시지를 보내자 금방 답이 옵니다. 놀이터 근처 벤치에 앉아 있으라고. 금방 나간다고.. 

 

 

 

 

오랜만에 만난 안책임님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린넨소재 흰색 블라우스에 베이지 칠부바지. 그런데 크록스 슬리퍼. 그리고 작은 장바구니. 

 

퇴근 후 옷도 안갈아입고 뛰어 나온 듯 합니다. 

 

 

 

여전히 예쁘고 아름다우시군요. 당신은.

 

언발란스한 크록스 신발마저 귀엽습니다.

 

 

 

 

 

 

나: "죄송해요. 저녁에 막 시간 내달라고 해서."

 

안: "아니에요. 괜찮아요. 오랜만에 보자고 해서 고마웠어요."

 

뭔가 데자부가 생각나는 말이었지만 일단 대화를 이어나갑니다.

 

 

 

 

나: "어.. 머리도 자르셨네요.  머리 자르니까 되게 달라보이네요. 어떻게 지내셨어요?"

 

안: "머리 한지 좀 되었는데... 내 이야기를 하자면 너무 길고.. 또 내 이야기를 하려고 나온건 아니니까 다음에 이야기 할게요. 무슨 일 있죠?"

 

 

 

 

난 당신의 현명함을 사모한다.

어디부터 이야기 할지 몰라 안부부터 묻는 나의 마음을 바로 알아 봅니다.

 

 

안: "아이고...담배냄새.. 담배도 피웠어요? 세상에..."

 

그리고 곧 측은한 눈빛..

 

 

 

나: "... 근데 집에 아이는 어떻게 하고.."

 

안: "지금 이모가 계세요. 잠깐 뭐 좀 사온다고 하고 애기 놓아두고 얼른 나왔어요. 저기.. 요 앞에 마트로 좀 이동하면서 이야기 해요. 미안."

 

그러면서 작은 장바구니를 보여주고 발걸음을 옮깁니다.

 

어차피 해가 아직 다 지지않은 놀이터와 주변은 몇몇 아이들과 그 부모들이 오가고 있었고 어른 남녀가 앉아서 편하게 이야기하기엔 어차피 어려운 분위기이긴 했습니다.

 

 

 

 

천천히 걸으며 저는 그간의 이야기를 두서 없이 막 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의 전략팀과 만난 일. 그리고 갑자기 과제 초기로 가서 세팅하고 시작하던 일. 사람을 모으던 일. 다시 지난 주말로 건너가서 엄마가 다치시던 일. 서사도 없이 그렇다고 인과도 없이 다소의 흥분 상태에서 주절주절 감정이 흐르는 대로 말을 합니다.

 

아파트 상가 지하의 동네마트에 이르자 음악과 시끄러운 호객 방송에 이야기가 잠깐 끊깁니다. 오늘 막 들어온 고등어가 얼마네. 수박 이제 마지막이네 거의 그냥 들고가는 거라네. 그 난리통에 이야기가 잘 이어 지지 않습니다.

 

 

 

 

 

안책임님은 되물음 없이. 추임새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맞추면서 듣기만 합니다. 그 와중에  1리터짜리 유기농 우유, 당근 몇 개, 치즈 한개, 두부 한 모를 넣습니다. 

 

마실 것좀 고르자고 해서 물 하나와 녹차 하나를 샀습니다.

 

그리고 조금 생각하더니 물티슈를 하나 사고 과일코너로 돌아가 과일담는 비닐을 두개 뜯고 그걸 겹치고 생선코너로 가서  얼음 한줌을 부탁하더니 담아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계산을 하고 물티슈 여러장을 뽑아 얼음이 담긴 비닐에 넣고 물도 조금 넣습니다.

 

 

 

장을 본 것은 십분이 채 안되는데 마트 밖으로 나오자 해가 졌고 아파트의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아이들은 다 들어갔고 학원을 오가는 중고생들과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아저씨만 간혹 보입니다. 

 

 

 

 

이제는..

 

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까 만난 그 자리에 앉자 안책임님은 잠깐만요. 하더니 아까의 그 비닐에서 물티슈를 꺼냅니다.

 

그리고. 

눈을 좀 감으라고 하더니

 

 

 

얼굴을 닦아 주기 시작했습니다.

 

 

 

 

 

안: "뭔가 몸에 막 열이 있고 화가 있고 그래 보여서.. 그리고 밖에 오래있어서 그런가. 지쳐 보여서요.."

 

냉기를 머금은 물티슈로 이마에서 시작하여 눈, 코, 볼, 귀 그리고 목을 여러장을 써 가며 닦습니다. 시원한 그 기운에 정말 화가 조금은 가라 앉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손을 달라 하고 손바닥과  손가락을 가락가락 닦기 시작합니다. 

 

 

 "마음같아서는 발도 닦아주고 싶지만. 그건 참을게요. "

 

 

 

 

이것을 난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무슨 단어가 이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까요.

 

따뜻함? 연민? 배려? 엄마 같음? 슬기로움?

 

 

나는 뭔지 잘 못 찾겠습니다. 그냥 당신의 이 모든 속성에 대해 깊이 흠모할 뿐입니다.

 

 

 

 

 

안: "이제. 쪼오금 살아난 것 같네요. 아깐. 좀 뭐랄까 꽤죄죄했는데."

 

나: "...제가 뭐길래 이렇게까지  해주시나요."

 

 

 

 

대답 대신 웃음. 

 

그리고 저는 아까보다는 훨씬 나은 마음으로 조곤조곤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마트에 들어가기 전에는 그냥 있었던 일을 두서없이 이야기하면서 내가 이정도로 속상해요. 라고 무턱대고 이야기했다면 지금은 제 마음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같은 TF였던 나책임에 대한 기억. 

키 크고 똑똑하고 분명하고 남자답고 리더십있고. 분명 그 결과물도 엄청 좋을 것 같은 생각.

 

그래서 그냥 전략팀에 들고가서 결과물로만 놓고 판단해 달라고 하지 못했던 마음.

 

열등감인가.

 

 

어쩌면.

진짜 일대일로 싸워서 지면 챙피함, 패배감이 싫어서 

이렇게 타의에 의해 그만두게 되면 핑계거리가 생기니까 마음속 깊숙히 안도했던 것이 아닐까.

 

젊은 시절에 뭐 해보겠다고 도전했던 것들.

끝까지 가지도 못하고 중도에 그만둔 것 보면 다 저런 심리가 아니었을까.

 

건곤일척으로 붙으면 질 것 같고

졌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그냥 내가 스스로 그만두면 적어도 진 건 아니니까.

 

소심한 마음. 우유부단함.

이것저것 다 갖으려다 다 놓친 기억들. 바보같은 선택들.

 

학교 다닐때 내내 괴롭게 했던

열등감. 자존감 문제.

 

 

 

 

 

과제로 시작한 이야기가 인생 이야기로 바뀌더니 

 

저는 점점 더 구덩이를 파고 들어갑니다.

 

 

듣고 있던 안책임님은 손도 잡아주고 팔도 쓸어주면서 그 눈빛은

아예 자리를 펴줄테니 여기서 퍼질러 앉아 얘 어디까지 절망하나 보자.. 싶은 모습이었습니다.

 

 

내 인생은 왜 그럴까요. 나는 왜 그럴까요. 

난 왜 이렇게 사람이 이모양일까요. 

 

 

 

길고 긴 이야기를 들은 안책임님은.

 

"손책임님. 그렇게 별로인 사람 아닌데...."

 

 

하더니 한숨을 깊이 쉬고 전화기를 켜서 시간을 확인하더니 전화를 합니다.

 

안: "이모. 저 조금만 있다 갈게요. 응..... 금방 가요. 아니 이 앞에서 누굴 갑자기 만나서. 네. 네. "

 

 

통화를 마치고.

 

제 손을 잡고 일으킵니다. 

 

안: "이 사람을 어쩐다.... 어디 데리고 갈 데도 없네.."

 

 

 

 

그리고 제 손을 끌고 아파트 현관으로 데리고 갑니다. 

 

 

어? 집에 갈 셈인가? 또 주스 주나? 삼계탕 끓여주나?

 

 

 

 

 

엘리베이터에 탄 우리는 안책임님 집인 9층에 내립니다.

 

그리고.

 

소방문을 열고 나가더니 9층과 10층 사이의 계단으로 절 데리고 올라갑니다. 

 

 

 

 

 

 

저 너머 어느집에선가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티비 소리.

 

그리고 미세하게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소리. 또 어디선가 멈추는 소리 

"8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저 까마득한 아래층 어딘가 학원에서 돌아온 아이가 자전거의 킥스탠드를 차서 내리고 문앞에 대는 소리.

 

그리고 아파트 저 너머 대로에서 차가 지나가는 소리.

 

 

 

아파트의 작은 소음이 민감하고 분명하고 똑똑해 지는 공간.

 

 

 

 

 

장바구니를 옆에 가만히 내려 놓더니.

 

제 앞에 마주서서 두 손을 잡습니다.

 

 

 

 

 

나: "어.. 저기... 여기. 이래도 괜찮은가요."

 

안: "우리 앞집은 어제 이사가서 아직 안들어왔고 우리 윗집은 인테리어 공사중. 그리고 한 집은... 잘 몰라요. 누가 사는지도.. 노부부가 사는 것 같긴한데. 아무튼.. 여긴... (괜찮아요.)"

 

나: ".................."

 

 

 

 

 

무슨 말을 할지 몰라. 머뭇. 안아 달라고 해야하나. 

 

마음으로는. 안기고 싶다. 

 

 

 

 

 

 

 

안책임님은 거의 코가 닿을 듯이 가까이 눈을 마주보고 이야기합니다.

 

안: "멋있는 사람인데. 한구석에... 어두운 마음이 있네.. 그리고. 소심한 것이 아니라.... 음 . 그리고 마음이 작아서 그런것이 아니라 마음이 따뜻하니까 그런거에요."

 

 

나: "절 그렇게 봐 주는 사람은 책임님 밖에 없는 거 같아요."

 

안: "그럴리가요. 누가봐도. 멋있는 사람일텐데."

 

나: "...."

 

안: "말로는 위로가 안되는 모양이다. 그렇죠?"

 

 

 

 

 

 

잡았던 손을 놓더니 제 목 뒤와  볼에 손을 얹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살며시

 

 

 

입을 맞추어

 

키스.

 

 

 

 

이것은 위로의 감정인가 연민의 감정인가. 

아니면 사랑의 감정인가.

 

 

0.1초 스쳐가는 생각. 

저 멀리 들리는 엘리베이터 내리는 소리에 신경이 곤두서는 듯 하자.

 

안책임님은 얼굴에 있던 손을 목 뒤로 두르고 조금 더 깊게 입술을 포갭니다.

 

마치.

아무 걱정하지마. 지금 이곳은 넌 나에게만 집중하면 돼.

라고 하는 듯.

 

 

 

전 어찌할줄 몰라 손을 떨어 트려 놓거나 그저 안책임님의 팔꿈치만 살짝 잡거나 허리에 손이 닿을락 말락 있을 뿐이었습니다.

 

 

팔을 두르자 몸이 더 밀착합니다. 

여자의 가슴이 느껴지자 몸의 신경이 더욱 곤두섰습니다. 

 

 

 

옛 첫사랑부터 안책임님을 만나기 전까지의 모든 키스를 지울 수 있을 만큼의 강렬한 시간과 느낌.

 

 

 

 

안책임님은 팔을 풀고 제 허리를 두르더니 전 가만히 봅니다.

 

안: "표정이 그대로네요."

 

나: "네?... 기분이 훨씬 나은데요.. "

 

 

기분이 뭘 낫긴 뭘 나아. 단어 선택이 이상합니다. 

 

 

안: "서른이 넘으면 원래 사람은 말을 잘 안듣게 된다네요. 내가 아무리 당신은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다 흘러가는 말로 들릴 지도 몰라요.."

 

나: "제가 좋은 사람이라고 인정은 잘 안되지만 그냥 고마울 뿐이네요. 그렇게 알아주셔서."

 

안: "아니 그런거 말고요."

 

 

 

전 사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안책임님....

 

 

 

 

 

머리 위에 있는 복도 창문에서 근원을 알수 없는, 도시의 섞이고 복잡한 빛이 난간과 계단의 일부를 비추고

 

저 멀리 아래층에서 또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누군가 들어가고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 가운데서

 

 

 

그 순간.

 

 

 

안책임님은 계단 위로 한칸 올라서더니.

 

절 다시 끌어 안아 몸을 당깁니다. 그리고 제 팔을 잡아 허리를 감게 합니다.

 

 

 

길지 않으나 풍성한 머리를 어깨 뒤로 정리하더니

 

바지 속으로 넣은 블라우스를 밖으로 뺍니다.

 

 

 

 

그리고 

 

 

 

제 팔을 등 뒤의 블라우스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갑작스레.

 

너무나도 갑자기 벌어진 일.

 

 

 

 

그렇게 갑자기 밀고 들어온 손으로 느껴지는 

 

 

등의 부드러운 맨살.

 

 

 

 

손으로 느껴지는 감각을 간절하게 느끼려 눈을 감고 있는데

 

안책임님이 뭐라고 이야기합니다. 

 

아... 제가 너무 흥분해서 지금 아무것도 안들려요..

 

 

 

되묻기도 그래서 그냥 가만히 두손은 허리 뒤 등을 만지고 있고 머리는 어깨 위에 있는데.

 

 

 

 

안책임님이 제 귀에서 분명히.

 

다시 속삭이며 이야기 했습니다.

 

 

 

 

 

 

 

 

 

"풀어요"

 

 

 

 

 

 

 

 

!!!!!!!!!!!!!!!!!!!!!!!!!!!!!!

 

 

 

내가 잘 못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자신이 없어 풀지는 못하고 손만 가만히 브래지어 끈에 올려 놓았는데 다시 이야기 합니다.

 

 

 

 

 

"풀 줄... 알죠? 내가 풀지 않아도 되죠?"

 

 

 

내가 감히.

 

감히.

 

나에게 여신과도 같은 당신의 가슴에.

 

 

우리가 처음 볼때 이후로 그렇게 흠모해 오던. 

 

하지만 감히 불순한 마음을 떠올리기도 어려웠던.....

 

 

 

 

 

 

심장은 몸에 퍼져 있는 혈관에 새로운 피를 전력을 다해 펌프질을 해 댔고

그 덕에 나는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이건 진짜군요. 터질 것같은 맥박이 지금의 나를. 당신의 맨살에 손을 올리고 속옷을 풀려고 하는 나를 증명해 주는군요. 진짜여서 감사합니다.

 

 

 

 

 

손을 더듬어 브래지어를 풀고 등을 조금 스다듬었습니다. 

 

 

올림픽 결승에 선 긴장감과 흥분이 아마 이정도 일까.

 

 

 

안책임님은 다시 제 눈을 한참 가만히 보더니

 

"정말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지금 이 순간 뿐 아니라. 당신의 인생이. 그 다친 옛날의 마음들이"

 

 

하더니

 

제 오른손을 잡아 블라우스의 앞을 조금 올려 넣게 하더니 자신의 손을 제 손 위에 얹어.

 

 

 

 

배의 맨살을 쓸고 지나 올라가

 

 

 

 

 

 

 

가슴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입맞춤.

 

 

 

 

 

 

 

 

......................

 

 

 

난.

 

지금.

 

 

당신을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

 

내 인생을. 걸 수 있을 것 같다. 정말로.

 

 

 

예수님께서 세상 모든이들을 죄로부터 구원하셨다면.

 

 

지금 안책임님은.

나의 이 비루한 인생을 지금 구원해 내었습니다.

 

 

 

 

 

 

 

 

 

손 위로 느껴지는 가슴끝의 딱딱한 감촉.

 

조금 손에 힘을 주자 쥐어지는 질량의 느낌.

 

 

 

 

 

내 몸의 모든 교감신경을 통해 부신 수질에서 아드레날린이 폭발적으로 방출합니다.

 

뇌에서 시작되는 모든 신경의 말단들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고 외치는 느낌.

 

 

 

전 그 때 십수년 전에 고등학교 물리 II시간에 배웠던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바로 이해해 냈습니다.

 

우리의 시공간은 그 때 분명 다르게 갔습니다.

우리의 시간은 분명 느렸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게 있다가

 

입술이 떨어지고 저도 슬며시 가슴에서 손이 내려왔습니다.

 

 

 

 

안책임님은 제 머리를 한번 쓸어주고 잠시 후 뒤로 돌아서더니.

 

"이것좀 다시 채워 줄래요. 아무데나 그냥 적당히 걸리게 해 주세요"

 

 

 

 

아.. 이건 처음 해보는 것 같다.

 

 

나: "어... 된 것 같아요..."

 

안: "잠깐만 눈 감아줄래요."

 

 

 

부시럭부시럭 옷이 정리되는 소리 .

 

안: "이제 눈 뜨세요"

 

 

 

그리고는 섬세하게 내 옷도 정리해 줍니다.

 

 

 

안: "이제.. 표정이 이제 변했네요. (미소) "

 

나: "아... 네.. "

 

 

이럴 때는 뭐라고 해야 하는 건가요.

 

 

안: "긴 말 안할게요. 이제. 들어갈게요."

 

나: "......... 고맙습니다. 아니. 적당한 말이....... 떠오르질 않네요."

 

 

 

그때 사랑한다고 했어야 하는 걸까요.

 

 

 

 

 

 

 

중간층에서 안책임님이 집에 들어가는 걸 멀찍이 확인하고 한 층 올라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습니다.

 

 

흥분 상태라고 해야할까. 아니면 뭔가 깨어난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정말로 아까의 분노와 실망과 인생의 자책이 모두 사라지고 그 자리에 감사, 사랑, 의지 같은 걸로 채워진 느낌이었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회사 인트라넷에 접속해 전략팀에 메일을 썼습니다.

 

충분히 입장을 이해하며 나책임님 과제가 잘되도록 지원하겠다고 쓰고 부서장과 나책임과 모든 관련자들을 참조에 넣었습니다.

 

무서운 속도로 자료를 정리해서 또 다른 메일 하나 더 쓰고 인트라넷을 껐습니다.

 

병원의 엄마에게 안부전화를 했고 아버지에게도 따로 전화를 했습니다. 밤에 갑자기 부산스레 주방을 정리하고 쓰레기를 버렸습니다.

 

 

 

집안 정리가 끝나고.

컴퓨터를 멍하게 한참 보다가.

 

 

 

 

야구 동영상 폴더를.

 

모두 지웠습니다.

 

 

 

 

 

 

오늘 내 평생 받을 위로를 모두 받은 듯.

 

이제 화면 너머의 일본 아가씨들을 통한 위로 없이도

 

살아 갈 수 있을 것 같은 충만함에 쌓였습니다.

 

 

 

 

 

 

그리고.

 

안책임님이 용기를 내어 나를 위로해 주었 듯.

 

나도 용기를 내어 그 험난한 강을 헤쳐 보기로 했습니다.

 

 

오늘 그 용기를 충분히 받았습니다.

 

아니 평생을 살아갈 용기를 얻은 느낌이었습니다.

 

 

 

 

 

(계속..)



익명_bf61c6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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