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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 누나 이야기.txt (11)

익명_ca173f2018.09.01 19:38조회 수 25346추천 수 1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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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내용 추가]제가 아래 댓글에 12편을 즐겨주시길! 한건 '11편'의 오타였습니다.다음 편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시는 것 같아서 알려드립니다.
너무 쓸 시간이 없어서 쓰고나서 한번 읽어보지도 않고 올리는 바람에 오타와 비문, 내용의 꼬임이 있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양한 댓글과 피드백 모두 감사합니다. 다양한 생각들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 충분히 이해합니다. ---

지난 편에서 제 지인이 알아 버리고 말았다고 했는데요. 전 이 친구의 불펜 아이디를 모릅니다. 심지어 불펜 아이디가 있는 지도 잘 모르겠네요.

처음 쓰기 시작할 때는 가볍게 쓰려고 했기 때문에 문체도 서술의 시각도 좀 가벼웠는데 읽는 분들이 감당이 안되게 많아지고 예상하지 못하게 연재가 길어지면서 처음과는 좀 바뀌었습니다 (제가 완전 아마추어라는 증거).

드라마화를 말씀해 주시는 분도 있고 편하게 술술 읽혀 좋다는 분도 계십니다.

드라마화는 줄거리 자체를 그리고 저의 극작 능력을 떠나서 생각하더라도 워낙 등장인물이 적어서 드라마 거리로는 아니지 않을까 합니다. 드라마가 되려면 "주요 등장인물"이 그래도 한 넷은 되어야 되는거 아닌가요? : )


많은 분들의 특히 30-40대의 감성이 잘 터치되어서 잘 읽었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모두들 그렇게 끝까지 즐겨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11편 시작합니다.

----


한 달에 한 두번 정도 부모님집에 형 식구들이 오는 것에 맞추어 저도 같이 가서 식사를 합니다. 

보통 주말에 시간 맞추기 때문에 가끔 약속이 겹치면 가기 싫을 때도 있지요. 가봐야 조카들과 놀아주거나 부모님 잔소리만 듣다 오긴 하지만 아버지가 가족 모임에는 반드시 오라 엄하게 하시기 때문에 왠만하면 식사가 잡힐 때는 약속을 안 만드려고 노력합니다.



12월의 어느 주말 저녁.

형과 조카들과 여느 가족 식사 때처럼 모여서 식사를 했습니다. 형수가 출장이라 자리를 비운 것. 그리고 아버지께서 약속있으시다고 일찍 나가신 것 빼고요.



형: "야. 너 요즘 누구 만나냐? 애 엄마가 어디 삼성동 식당에서 너랑 어떤 여자랑 밥먹는거 봤다는데."

나: "무슨 초딩같은 소릴. 밥 먹으면 다 사귀나? 형도 아재 다됬구나. 밥먹는거 보고 사귀냐고 하다니."

형: "내가 아니라 네 형수가 봤다니까. 되게 이쁘다고 그러던데. 누구냐? 뭐 하는 분이야? "

엄마: "얘가 누굴 만난다고? 누구야? 응? 좀 이야기좀 듣자."

나: "아이고 아니에요. 그냥 친구에요. 친구랑 밥도 못 먹나."


엄마: "그래? 대학교 친구야? 어디서 만난 친구야? 응?"

나: "아 쫌. 엄마."

형: "야. 친구 이야기라도 해봐라. 뭐 결혼하라는 것도 아닌데. "


엄마: "너 혹시 그때 백화점에서 만난 애 데리고 나온 회사 사람이니? 그 여자 되게 분위기 있고 이쁘긴 하던데. 근데. 너 자꾸 엄마 이상한 생각 하게 하지 말어. "

형: "너 불륜에 휘말렸냐? 결혼한 사람이야? 너 그렇게 용기있었어? 헐."

나: "결혼 한 사람 아니야! 결혼 했던 사람이야."



앗.

대형 실수.

왜 난 미끼를 물고 답을 한 건가.


형: "야! 너 진짜야? 미쳤... 뭐야 너!"

엄마: "이혼한 사람이야? 너 진짜 만나는거야? 진짜야? 너 옛날에 무슨 이혼한 여자 뭐 이런 이야기 할때 이상하더니. 아이고..."




빨리 수습해야 한다.




나: "아! 진짜! 아니야! 회사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이혼한 사람이라고! 그리고 밥 안 먹었다고!"

앗. 두 가지 질문에 모두 부정을 하다 보니 
꼬여버렸다.



엄마: "엄마가 이혼한 사람에게 편견은 없는데.. 그냥 편하고 안전한 결혼해. 그런거 하지 말고... 아빠 아시면.. 상상도 못한다. 야."



대충 어떻게 수습하고 집에 오는데 마음이 불편합니다.

집에서는 점점 이혼하고 애도 있는 여자랑 만난다는 이야기는 애초에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른 것 같습니다. 

형은 의사인데 수련의를 마치자 마자 동료와 결혼을 하는 통에 마흔의 나이에 벌써 초등 아들을 둘씩이나 두었고 형수는 그새 교수가 되었습니다. 

일찍 결혼한 것 빼고는 큰 문제 없이 심지어 사회적으로 아들 부부가 모두 성공했으니 부모님의 기준이 제법 높아져 버렸습니다. 대단한 집안까지는 아니어도 아마도 비슷한 중산층의 집안은 기대하고 계시겠지요.



안책임님 정도면.

진짜 훌륭한데. 

이쁘고 똑똑하고 학벌 좋고.




나이가 나보다 많다는 것과

이혼을 한 것과

애가 있다는 것이 

조금 흠이 될지 모르지만...



아 그러고 보니.

집안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구나.






아직도 모르는게 너무 많구나.







달력이 몇장 남지 않은 12월.

그 전해의 이맘 때를 생각하면 일 년이란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났나 싶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기를 좀 써둘껄. 하다못해 혼자 보는 블로그 같은거라도 할 껄 하는 생각이 듭니다.



크리스마스에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으리란 기대와는 달리 안책임님은 친정쪽 식구들과 연말에 휴가를 몰아 써서 긴 여행을 떠났고 저도 친구 한 명과 짧게 일본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총각이지만 아저씨 둘이 비행기 타고 나란히 여행가니 사실 이상할 것도 없는데 그림이 좋아보이진 않았습니다. 우리가 미주나 유럽으로 갔으면 게이커플이라고 했을거야.. 하면서. 맛있는 것도 먹고 재미는 있었지만 다시는 이렇게 오지는 말자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서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교토에서 편지쓰기를 좋아하는 안책임님이 생각나서 일본 종이로 된 편지지 여러장와 얼굴기름 찍어내는 미용 종이같은 것을 샀습니다. 같이 있던 친구는 별 희안한 걸 산다는 핀잔을 주었지만 전 좋아할 만한 선물이라고 생각했고 아니나 다를까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 사람에 대해서 내가 잘 안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습니다.





또 해가 바뀌고.

우리는 한 살을 더 먹었습니다.





여전히 저녁 시간에 데이트는 잘 못해도 퇴근 후에 집 앞에서 조금씩 보는 것은 훨씬 자유로워 졌습니다. 

안책임님이 조금 일찍 퇴근하고 제가 조금 늦게 해서 집 앞으로 가면 애 재우고 나와서 조카가 집에 있을 때 한 두시간 정도는 볼 수 있었습니다. 


조카아이에게 '고모 운동좀 하러 나갈게-' 하면 조카는 애가 깨나 안깨나 보면 될 뿐이었고 제법 쿨한 젊은이라 고모가 뭐하는지 시시콜콜 관심갖고 그러진 않은 듯했습니다.

안책임님네 아파트 상가의 어느 커피집에서 우리는 그렇게 늦은 저녁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수다를 떠는 아줌마들과 이어폰을 꼽고 공부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길게 허락되지 않은 시간을 보냅니다.




안책임님의 옛날 이야기를 좀 듣고 싶어졌습니다.

나: "옛날에 나이트 많이 다니시고 그랬어요?"

안: "아이고 그때 나이트 이야길 괜히 했네. 아니에요. 솔직히 손에 꼽아요. 그냥 우리 세대에 워낙 상징적이어서 그런 이야기 했었지..."

나: "전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생활이 그리 화려하진 않았던거 같아요. 솔직히 말하자면 되게 찌질했던거 같아요."



대학생활이 나쁘진 않았지만.

이상하게 온갖 흑역사부터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나: "솔직히... 안책임님을 더 일찍 만나면 어땠을까 상상해본 적이 있어요. 예를 들면 한 십년 전이면 어떨까. 십 오년 전이면 어떨까."


안: "십오년 전이라.. 음. 난 그 때. 꽤 재수없는 아이였을 듯. "

나: "네? 왜요?"

안: "나 잘나고 이쁜 줄 알고 살던 때 아니었을까. 물론 대놓고 그렇진 않았지만 그때 했던 생각들은 참 부끄러웠던거 같아. 세상도 너무 몰랐고. 뭐 스무살 갓 넘었을 때 다 그렇지 싶기도 하고."

나: "전.. 진짜 별로였던거 같아요. 지금이야 돈도 벌고 해서 옷도 잘 입으려 하지만 그땐 옷도 정말 후지게 입고 다녔고. 집도 좀 힘든 때라 돈 쓰는 것도 너무 힘들었고...."



지금이야 살만해졌지만 IMF가 생각 안날수가 없었습니다. 

기억 안나십니까? IMF.




나: "IMF 후에 집이 좀 어려워졌어요. 후에 대학은 어떻게 들어가긴 했는데 그 때 돈이 없으니까 너무 움츠러 들었던거 같아요. 근데 생각해보면 주위 친구들도 다 돈이 없었는데 왜 나만 유독 그랬을까... 내가 그냥 사람이 별론가봐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거짓말이었습니다.

제 주위에 다 돈이 없던 게 아니었어요. 
돈 잘 쓰고 옷 잘입고 다니는 친구들이 있었고 너무 부러웠었어요...




안: "난 그 때의 내가 너무 한심해서.. 지금의 내가 좋아요. 지금의 상황은 물론 마음에 안들지만... 그리고 ㅈ(한숨) 성숙한 내가 훨씬 좋아요. 아마 그때의 나를 손책임님이 만났다면 되게 싫어했을거에요."


나: "안그랬을 거 같아요.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을거 같네요."



그건 어느정도 사실이었습니다. 제가 이사때 본 안책임님의 젊은 시절 사진들은 너무 빛나고 화려해서 학번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저는 감히 좋아하지도 못했을 사람같았습니다.


나: "반대로 그때의 저는 보이지도 않으셨을거 같아요."

굳이 생각나는 비유를 하자면.

건축학 개론에 이제훈같은 애가 저였고

수지나 유연석같은 위치가 제가 생각한 안책임님과 (상상속에서의) 같이 다니던 그때의 친구들 아니었을까요.



안: "손책임님이 옛날에도 그대로라면. 난 좋아했을거 같아요. 발견할수만 있었다면."



에. 거짓말. 아니.. 전제가 틀렸어요. 전 옛날에 진짜 찌질했다니까요. (지금도.. 그런가.)



안: "난 사실 우리가 TF하기 전에 이미 손책임님을 알고 있었어요. 몰랐죠?"


에? 날? 그 전에 이미?




나: (황당해 하는 표정으로 ) " 그 전에 우리가 만난적이 있나요? 어 난 전혀 모르겠는데.."

안: "모르겠죠. 대화를 하거나 한건 아니니까..."


뒤이어 놀라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안: "우리가 TF하기 몇 개월 전에 일인데.. 회사 얼집 앞에 아니 맞은편에 샌드위치 가게 있잖아요. 언젠가 거기에 애랑 이른 아침에 샌드위치 한조각 먹이고 등원하려고 갔는데 다른 애들하고 엄마들도 있었어요. 거기 일찍 열어서 아침에 엄마들이 얼집 애들이 가끔 뭐 먹이고 등원시키고 그래요. 알죠?"

나: "아... 저 요즘도 일주일에 한번은 가죠."

제가 좋아하는 샌드위치 가게입니다.
옛날에 이쁜 알바도 있었는데...


안: "언젠가.. 주문하고 제 애는 옆에 두고 다른 엄마들이랑 이야기하며 있는데 잘 모르는 어린 애 하나가 의자 위로 올라가서 장난 치는데 그 엄마가 또 다른 엄마랑 이야기하느라 인지를 못하는 듯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다른 사람이랑 이야기하고 저희 애도 챙기고 하면서 틈틈히 곁눈으로 그 애를 보는데...."



왜 샌드위치집 이야기를 하며. 
왜 애 얘기를 하는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안: "그 옆 테이블에 손책임님이 커피랑 샌드위치 먹으면서 있었어요. 그 애를 가만히 보면서."

나: "네? 제가요? 근데요?"


안: "전 엄마라서 그런가. 그 눈빛을 알죠. 짜증나서 그러는건지 걱정되서 그러는건지. 손책임님이 먹던 샌드위치를 놓고 그 애만 가만히 보는거에요. 귀에 꼽혀 있는 이어폰을 빼 놓고"

나: "음. 기억에 전혀..."

안: "근데 그 애가 아니나 다를까 미끄러져서 넘어지는데 손책임님이 후닥닥 번개같이! 딱 애를 잡아채서 넘어지는 걸 잡고 너무 태연하게 애를 도로 앉혀 놓는거에요."



그런거 같기도 하고 제가 아닌것 같기도 하고..



안: "애 엄마는 전혀 눈치를 못챘는데. 손책임님이 아무렇지도 않게 애를 잡아서 앉히고 안전한 것 같아 보이자 도로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하는거 있죠. 전 그게 되게 멋있어 보였어요. 그리고. 참 좋은 사람이다. 라고 생각했었거든요. 누군지도 모른채. 우리 회사 사람인가 보다 정도."



병원일로 바쁜 형과 형수덕에 조카는 저희 집에서 자랐고 심지어 제가 본 적도 많이 있습니다. 유치원 선생님 처럼 귀여운 말투를 쓰거나 놀지는 못해도 애들 안전하게 보는 건 습관에 좀 배어있긴 했습니다.

그냥 습관적으로 애가 위험해 보여서 그랬을 텐데.



별 것 아닌데 안책임님은 제 얼굴이 그렇게 기억에 남았다 합니다.


안: "제가 사실 TF에 뽑혔을때 진짜 회사 그만두고 싶었을정도로 싫었는데. 손책임님 만나고. 아 이런 사람이랑은 좀 하고 싶다 생각했었어요. 그때 그 샌드위치집 일이 그렇게 기억에 남았나봐요. 그리고 좋은 사람일거라는 생각은 역시 맞았고."


전 애들을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안책임님이 오해하는 것 같아 '전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하려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좋은 기억을 굳이...

어쨌거나.
좋은 사람.

감사합니다.




겨울엔 안책임님의 조카가 방학이니 좀더 아이를 맡길 수 있으리라 기대는 조카가 무려 한달이나 배낭 여행을 떠나면서 또 훌훌 시간이 흘러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어쩌다 친정 찬스니 하는 식으로 쓰는 시간은 회사 회식에 쓰거나 급한 일을 처리해야하는 걸로 훌훌 날아가버리고 우리는 근 한달을 또 옛날처럼 회사에서나 겨우겨우 근근히 보고 늦은 밤에 집에 가서 주스나 조용히 마시고 나오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집에 가서도 애가 한 번 깬 경험때문인지 애가 자는동안 집에 몇번 갔지만 저도 몸에 손을 대지 않았고 안책임님도 따로 도발(?)하는 일은 없이 어른의 연애치고는 이상하리만치 건전한 나날들이 계속 되었지요. 

여전히 우리는 손을 잡고 포옹을 하고 입을 맞추기만 했습니다.





날씨가 갑자기 따뜻해진, 어느 늦겨울에서 초봄으로 넘어가던 날.


한번은 조카에게 늘 운동한다고 밤에 나오는 것이 무안했는지 진짜 둘이 아파트 주위를 뛰기로 하고 만났습니다.

저도 작정하고 트레이닝복과 운동화를 챙겨왔고 안책임님도 레깅스와 후디를 입고 나왔습니다.

아파트를 돌아 나가 한강까지. 워낙 잘 뛰는 사람이라 대충 한시간을 계획하고 뛰기로 합니다. 한 사십분여 뛰자 제가 오히려 벅차기 시작할 즈음.. 



안책임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듣던 음악이 멈추어 지고 황급히 이어폰을 떼고 숨을 고른다음 


안: "아.. 엄마인데..... 미안해요. 이거 좀 받을게요."

나: "저 딱 힘들었었어요. 쉴게요..."


전 옆에서 손에 무릎을 대고 어디 편의점에서 물이나 살까 싶어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바로 옆에서 통화하던 안책임님은 한두걸음 걸으며 전화를 하더니 어느덧 제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심각한 얼굴로 통화를 했습니다. 과히 좋은 내용은 아니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한 손을 이마에 얹었다 목에 대었다 불안한 기색이 보입니다.

전화를 끊고 오자


나: "어... 괜찮으세요? "

안: (한숨) "네. 뭐. 나이를 먹으니 이러저러 짐이 많네요."

나: "무슨 일인지 알려주시면 안돼요?"

안: "불편하고. 보이고 싶지 않고. 부끄러운 집안 일 이야기."


이쯤 되면 묻지 말라는 건데. 

알고 싶은 마음에. 알아야겠다는 고집에. 

저 정도면 알려줄 수 있는거 아닌가 싶어서 조금 매달려 보고 싶어졌습니다.


나: "저 정도면 좀 알려주셔도 되지 않겠어요? 제가 도움될 거라도 있을 수도 있고!"

안: (한숨) "돈 이야기. 됐어요?"



아..

돈 이야기 구나. 

맞다. 불편하고 부끄러운 이야기.




이렇게 까지 했는데 
여기서 물어보지 않는 것이 좋은 건지 
그래도 매달려서 알고 나서 위로라도 해주는 것이 좋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 "아.. 어.. 음.. ."

안: "이제 좀 걸어요. 집까지 걸어가면 딱 맞겠다."

뛰겠다는 의욕이 사라졌습니다.

안: "가는길에 뭐 보이면 우리 물이나 좀 사요. 땀이 식으면 약간 추울것 같기도 한데 걸음을 빨리 해요."

나: "돈. 필요.. 하시데요?"


애써 화제를 돌리는 걸 굳이 끌어 왔습니다. 

나 정도면. 나 정도면 알아도 되는거 아닌가 하는 마음에. 남자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는 해 줄수 있는거 하는 마음에.


안: "어..."



굳은 표정.

실수 했다.


나: "아니.. 아니에요. 집에 가요."

얻은 것 없이 우유부단함만 노출.



안: (한숨) "부끄러운 이야기를 묻는 심리. 또 그걸 말할까 망설이는 심리."

몇 걸음 걸은 뒤.

안: "옛날에 아빠가 은퇴하시고 사업을 하셨는데 이제 이걸 엄마가 정리하시는데 돈이 좀 필요하신가봐요. 엄청 큰 돈은 아닌데 또 융통하려니 수월하지 않은 모양이네요. 엄마는 지금 아파트가 이혼하고 내 이름으로 온 걸로 생각했대요. 담보 대출을 생각하신건데.. 딸 이름으로 될거라니까 왜 그랬냐고 옥신각신.. 아휴."

나: "얼마나 필요하시데요?"

안: "이 이야기는 그만해요. 별로 하고 싶진 않아요. "


여전히 굳은 표정. 

처음으로 매몰찬 감정을 담은 거절.


아마도 전 제 오피스텔을 월세로 돌려서라도 얼마라도 줄 생각도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좋았을까요? 

돈이라는 단어여서 아름답지 않은 거지.
정말 줄 생각하면 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안책임님도 알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저에게 부탁하면 제가 뭐라도 했으리란 걸. 

그걸 알기때문에.

그냥 끊어버린 것 아니었을까.




조금 가라 앉은 기분으로 헤어지고 집에 혼자 돌아오면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결혼할 사람이라면 나에게 이야기를 했을까. 나를 그만한 사람으로 보지는 않는 걸까.


복잡하고 이상한 책임감에 사로잡혀 주차만 하고 차에서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결혼을 한다면. 내가 이런 문제를 같이 끌어안고 고민하고 해결해 줄 수 있을까.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고 능력있는 남편이 되어 이런 문제들을 고민만하면 턱턱 해결해주는 사람으로 옆에 있을 수 있을까.



결혼을 해야겠다는 당위와
옆에 있어야겠다는 책임과
잘 해주고 싶다는 애정과
안고 싶다는 욕망.

그리고 이 상황을 모두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까지

복잡한 생각을 그냥 안고 겨우겨우 잠을 이루었습니다.



봄으로 흘러가는 그 사이의 시간에 .

전 집에서 하라는 소개들을 겨우 쳐내다가 엄마의 의심을 거두기 위해 누굴 만나기도 했습니다. 체면치레로 만난거라 한번 만나고 애프터 거절의 의사를 확실히 전달했고 상대방도 딱히 저를 마음에 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이 사실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기회를 놓치고 시간이 가버리고 불편한 사실을 숨긴채..


부드럽고 폭신한 봄이 오고 말았습니다.




모처럼 저녁 시간을 같이 쓰기로 한 봄 날.

저와 안책임님 모두 일이 마무리가 늦어 한참 늦은 저녁 식사만 겨우 하게 되었습니다. 둘다 배가 고프다고 동동거리며 회사를 뛰어나가 근처의 회전 초밥집에 가서 신나게 접시를 쌓으며 먹었습니다.



안: "아 많이 먹었다. 아직 딸애가 초밥 먹을 줄 모르는데 초밥 먹기 시작하면 밥값 많이 들겠죠? (웃음)"

나: "하하. 책임님 만큼 먹으면 많이 들겠죠."

안: "싼 것만 먹으라고 해야겠다. 하하"


옛날에 이런 드립을 치면 화를 내던 여친이 기억납니다.


겨울 내내 일도 좀 바빴고 맨날 반쪽짜리 데이트만 하는 것 같아 봄이 온 기념으로 시간을 내달라고 졸.라 봅니다.


나: "이렇게 만나는 것도 좋긴 한데. 주중에는 생각보다 잘 못보는 거 같아요. 언제 주말에 어디 드라이브라도 안 갈래요?"

안: "아. 내가 하려던 말인데! 조카가 요즘 시험기간이라 어떨지 모르겠는데 나도 애기 좀 맡기고 주말 시간을 쓰고 싶긴 했어요. 우리 어디갈까요?"

나: "청평이나 양평 이런데도 좋고. 아님 인천 공항옆에 해변도 의외로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저녁은 송도에서 먹고. 어때요?"


스마트 폰을 꺼내 검색하고 사진을 살펴봅니다. 사람들이 올린 블로그 글, 후기, 기사들을 서로 찾고 같이 보고 하던 중에 제가 찾은 글이 볼 거리가 많아 제 화면을 가운데 두고 같이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중간에 메시지가 왔습니다.



[[형: 동생아. 지난번에 너 형수가 소개해 준다는 사람 안 만날래? 엄마가 마음이 급한지 나한테 전화도 하고 그래서 니 형수가 소개 압박에 자꾸 난처해 하는 거 같다. 얼마나 엄마가 형수한테 이야기했으면 이러겠냐.. ]]



그리고.

이 메시지를 안책임님과 제가 둘이 같이 보고 말았습니다.




황급히 팝업을 닫는 다는 것이 

엉뚱한 곳을 손가락으로 터치했고 도리어 팝업이 열려 메시지 앱이 열려 버렸습니다.




이런. 




서둘러 홈 버튼을 눌러 앱을 종료시키자 상황은 더 어색해져 버렸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하나.





일단 변명으로 시작.

아니면 잠깐만요. 하고 답장을 보내는 척 혹은 전화하는 척하며
같이 보던 핸드폰을 들고 나감.

아하하! 웃으며 뜨거운 녹차를 원샷.

아니면 주방에 여기 마구로 뱃살이요! 하면서 다먹은 마당에 다시 음식으로 화제를 전환.




아니다.

지금은. 상대방의 말과 반응을 기다릴 때다.

뭘 해도 내가 먼저 하면 망한다.





안책임님을 슬쩍 보자

안책임님도 아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것 같습니다.

녹차 티백이 담긴 컵에 뜨거운 물을 더 담아 티백을 위 아래로 담금질 합니다. 하지만 그 티백은 벌써 두어번은 우려 먹었습니다. 이미 그 컵에 담긴 물은 한 시간을 우려낸들 맹물에 가까울 것.



그 맹물에 가까운 녹차를 한 모금 호로록 마시더니

절 빤히 봅니다.




역시 보통 사람이 아니다.

난처한 상황. 평정을 잃어버린 감정.
먼저 말하는 사람이, 먼저 그 당황스러운 감정을 보이는 사람이 지는 것.




어색한 침묵이 약간 흐르고 
그 침묵과 적당한 소음, 그리고 몇 모금의 녹차가 어느정도 감정을 좀 추스렸다고 판단되었을 때

한 마디를 겨우 꺼내었습니다.

나: "어디 갈지는.. 제가 찾아 볼게요. 대충 인천이나 송도쪽 좋지 않을까요? 아까 본 글에서도..."

안: "네. 그래요. 어디든. 시간을 내는 것이 중요하지 어디냐는 덜 중요하니까..." 



우리는 점원을 불러 접시를 계산하게 했고 초밥값을 치른 후에 뭔가 약간 긴장된 분위기로 초밥집을 나섰습니다. 해결되지 않은 감정과 사건. 어떻게 해야할까요. 

화 낼 일은 아니지만
서운할 만한 일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누군가는 미안해 해야 하는 일



회사에서 안책임님은 차를 꺼내어왔고 제가 옆에 탔습니다. 집까지 같이 가고 집앞에서 내려 헤어지기로 했는데 타고 5분도 못가서 저도 모르게 그만 중간에 내리겠다고 하고 회사 근처의 지하철 역에서 내려버렸습니다.

그 어색함을 견디기 싫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차라리 화를 내던가 뭐라 언급하던가 하지 굳은 얼굴을 내내 유지하는 안책임님에게 제가 화가 난 것인지.



차에서 내리면서 전화할게요! 하는 말만 남기고 
차 문을 닫고 지하철역의 출구로 들어가고 나니

뭔가 단단히 잘 못한거 같습니다.

왜 그렇게 쪽팔리고 속 좁은 행동을 했을까.




보통 차에서 내려 혼자 갈게. 하는건 여자쪽이 하는 거 아니었나.

지금 일이 벌어진건 내 핸드폰. 메시지를 보낸건 우리 가족.

근데 난 왜 나도 모르게 말 한마디 남자답게 하지 못하고 그냥 인사를 하고 헤어진 것일까.



전화를 해도 안책임님은 받지 않았습니다. 조급한 마음에 택시를 타고 집에 갈까 고민을 하다가 더 꼴이 이상한 것 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지하철을 타지 않고 개찰구앞만 빙빙 돕니다. 

아 난 왜 이다지도 *신 같은가.


고민을 하다가 메시지를 보냅니다.

[[나: "책임님. 혹시... 화 나셨나요? "]]

답은 커녕 확인도 안 합니다.



[[나: "아까.. 메세지 보셨어요? 그거.. 그냥 엄마랑 형이랑 제가 말하지도 않았....."]]


네.
말이 길어지고 있어요. 전형적인 변명. 

하지만 이건 미안하다고 해도 이상하고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기엔 석연찮습니다.

위 메시지를 썼다 지웠다 반복하다가.

안책임님이 뭐라 하지 않는 이상 나도 할 말이 없다 싶어서 메세지를 보내지 못하고 그냥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새벽에 추운 눈이 떠져서 옷이라도 하나 껴입고 자려고 일어났는데 메시지가 와 있었습니다.

[[안: "전화도 하고 메시지도 보낸걸 한참 있다 봤어요. 전화기를 차에 두고 그냥 집에 올라가버리는 바람에..."]]

보낸 시간을 보니 새벽 1시 30분.

[[안: "서운한 마음이 안 든 건 아닌데. 그건 책임님 잘못이 아니니까. 책임님보고 어찌하라는 거 아니에요. 애처럼 화낸거 같이 보였다면 미안해요. 제가 혼자 생각하고 해결할게요. 주말에 어디 갈지 그리고 맛있는거 찾아 주세요. 굿나잇."]]



차라리 화를 냈으면 더 나았을것도 같습니다.

제 행동을 나무라거나 속이 좁다고 저를 욕했다면 차라리 편했을 것 같습니다.


답을 보내려다가 할말이 떠오르지 않아 "굿나잇"하고 짧게 보내고 너무 건조해 보여 이모티콘 하나 붙여서 보냈습니다. 


오피스텔 앞 도로는 새벽에 차 하나 없다가

저 멀리 오토바이 한대가 쌩하니 지나가고 
첫 차인듯한 시내버스가 요란한 엔진음과 함께 멀어집니다.

불편한 마음에 잠이 오지 않아 한참을 뒤척이다가 

컴퓨터를 켜서 아무 의미없는 웹서핑을 한 후에

형에게 메세지를 하나 보내고 도로 침대에 누워 몇 바퀴를 이리저리 구르다가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섰습니다.



드디어. 드라이브가기로 한 주말.

어이없게도 우리는 지난 추석이후 처음으로- 하루종일 짐 정리하며 일 한 이후로- 하루를 온전히 쓰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친정에 애를 맡기기로 했는데 여의치 않았는지 조카의 애기 좋아하는 친구까지 같이 와서 하루종일 같이 있기로 했고 일일히 옆에서 지켜봐야하는 나이는 지나서 아주 걱정되지는 않나 봅니다. 


며칠 전의 불편한 감정은 생각보다 만났더니 쉽게 잊어졌습니다.

가라앉아 버린건지 없어진 것인지 애써 무시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선글라스를 끼고 때때로 선루프도 연 채 우리는 신나게 고속도로를 쏘고 봄 해변을 걷고 맛있는 것도 먹을 생각으로 인천 공항 고속도로로 차를 몰았습니다.


안책임님은 얼마 전에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로 바꾸었다며 차 안에서 유튜브로 음악을 검색해서 틀기 시작합니다.


안: "이 노래 알아요? 크으 이거 내가 중학교 때 나온건데 지금 들으니 되게 촌스럽네."

나: "알죠. 이거 알이에프 아닌가요? 난 춤도 기억나는데. "


우리는 이런 대화를 하며 90년대를 추억하는 놀이를 하고 드라이브를 즐겼습니다. 어느덧 작년 출장길에 안책임님이 공항 전송해준 것이 기억납니다. 다음에는 공항에 여행으로 같이 오자 했는데 어떻게 같이 온단 말인가.

애까지 같이 여행 가자고 할까.

내가 가자고 하면 갈 수 는 있나.

오늘 어디.. 쉬다 가는 기회가 있을까.

이쯤 되면 안책임님도 생각하겠지. 

모텔같은데 싫은데. 차라리 우리집에 가자고 할까. 아 청소좀 잘 할껄...



머릿 속 한 부분으로는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우리는 어느덧 공항을 지나 영종도 옆의 해변가에 도착했습니다.


봄 바다


바람은 세지만 3월의 바람은 확실히 다릅니다. 이 바람에도 중국에서 보내는 흙먼지 금속 먼지가 있겠지만 알 수 없는 부드러움이 있어 도시에서 느껴지는 건조함과는 차원이 다른 봄을 주었습니다.

비치샌들을 가져왔어야 하는데... 
해변을 걷자고 하고 준비를 안한 우리의 무지를 탓하며 맨발에 썰물의 백사장을 걷자니 발이 제법 차갑습니다.

손을 잡다가 허리를 안고 걸었습니다. 백사장은 엄청 넓은데 사람이 별로 없어서 우리는 간간히 키스도 하고 번쩍 들어 빙빙도는 티비에 나오는 유치한 놀이도 하면서 평범한 여느 커플처럼 시간을 보냈습니다. 처음으로. 



바다를 걷다가 유명한 곳이라고 하는 데에서 밥을 먹고 좋은 카페를 찾아 책을 좀 읽기로 하고 푹신한 소파에 앉아 커피를 놓고 서로 기대어 앉았습니다. 안책임님은 읽을 책을 가지고 왔고 저는 까먹고 가져오지 않아 카페에 비치된 책을 좀 보다가 핸드폰도 보고 그러는 와중에.

이 시간이 얼마나 자주.
그리고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연애 애틋하고 좋긴 한데 우리는 나이를 계속 먹고 있고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나이를 먹을 수록 삶도 더욱 무거워 질테니까요.


또 이런 생각에 잠겨.

이건 나의 용기 문제인가. 
아니면 현실의 문제인가. 

지난 반년여간 계속 반복되는 물음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는 와중에 



책을 읽고 있는 안책임님을 보자 또 이런 생각이 사라지고 어쩌면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싶기만 했습니다. 

어깨에 있던 손으로 머리를 가만히 귀 뒤로 넘겨주고 어깨아래로 떨어트려 허리까지 내렸습니다. 허리를 안던 손으로 배를 쓰다듬다가 두 손으로 아예 안기 시작했고 안책임님의 머리를 가지런히 옆으로 밀어 뒷목에 키스를 하고 어깨에 기대었습니다. 

구석자리라 해도 사람이 있는 카페에서 이러는 절 밀어내지 않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이상한 용기가 생겨 손으로 가슴을 슬쩍 대기도 하며 스킨십의 강도를 높여가던 중...




안책임님에게 온 전화.




분위기는 깨졌지만 저는 안고 있던 손을 풀지 않았고 안책임님은 어. 왠일이지 하면서 전화를 들었습니다. 조카였습니다. 


얘가 문자를 하면 했지 전화를 할 애가 아닌데.
왜 전화를 했지.

하는 불안한 말.


안: "응. 지연아... 어! 뭐라고? 어디서? 어! "


표정이 완전히 변했고 
저는 안았던 손과 팔을 풀고 허리를 세워 바로 앉았습니다. 



안: "계속 울어? 어... 그래. 지연아 잘들어. 괜찮아. 우는 건 괜찮은거야. 울음 그치고 나서 토하거나 불러도 반응이 없는지 봐. 앞으로 계속. "

안: "고모가 일단 가는데 좀 걸릴거야. 응.. 한시간 즈음. 빨리 갈게. 네가 병원에 데리고 가. 차 주인인한테 병원으로 가자고 해. 지금 당장. 영동 세브란스로 가. 어딘지 알지? 거기 고모 친구있어. 전화 해 놓을거야. 일단 주위에 경비 아저씨에게 도움을 부탁해. 지혈을 해야할텐데.. 고모가 여기저기 전화 할게. 니가 감당할수 없을거 같으면 119로 전화해. 일단 지혈부터 해. 경비실에 구급약이나 비슷한거라도 있을거야. 아니면 친구에게 잠깐 애와 있으라고 하고 니가 집에 뛰어 올라가던지. 아. 아니다 상가에 약국에 가. 그게 더 빠르겠다. 약사 아줌마가 잘 도와줄거야. 넌 빨리 뛰어 가고 차주인 바꿔줘. 잠깐!"

또 한손으로 이마를 만집니다.




표정은 긴장이 역력한데 말은 매우 차분합니다. 
애를 보던 조카를 책망하는 말 하나 없이

안: "지연아. 잘들어. 괜찮은거야. 알았지? 당황하지 말고. 애가 울면 괜찮은거야. 이제 차 주인좀 바꿔줄래."


사고를 낸 차주인으로 보이는 사람과 통화를 하는데 놀랍도록 냉정합니다. 긴 말 하지 않고 병원으로 갈 것과 차주인 번호만 빠르게 묻고 끊었습니다.


전화를 끊은 안책임님은 


안: "애가 다쳤대요. 빨리 가야겠어요. "





나: "어디가요? 많이 다쳤나요?"

황급히 일어서 차로 뛰어갑니다.

안: "조카가 데리고 나가서 자전거를 같이 탔는데 차랑 부딪히면서 크게 넘어졌고 어디에 부딪혔는지 찔렸는지.. 찢어졌는지 피가 많이 나나봐요. 피가 너무 많이 나서 조카애가 패닉인거 같아요. 어디가 부러진건가. 머리는 괜찮은건가. 아 어떡하지."

뛰어가면서 여기저기 전화를 합니다. 많이 다친 모양입니다.


인천공항 고속도로를 내달리는데 안책임님은 여기저기 전화하고 받고 텍스트를 보내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때때로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아무말도 안하고 있다가 전화가 오면 또 전화를 받고 전화를 하고. 또 얼굴을 감싸쥐고 있다가 전화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요.

자책일까요.



애가 다치는 순간 엄마는 데이트를 하고 있었고 남자는 엄마의 몸에 손을 대고 있었고.
아마 전화가 안 왔다면 좀 더 진한 스킨쉽을 했을거라 생각에 미치니


안책임님이 더 자책하고 있을 것 같았습니다.


무슨 위로를 할 수 있을까요?



무거운 침묵 속에서

운전을 한 이후로 가장 빠르게 서울을 향해 달렸습니다. 


(계속....)



익명_ca173f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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