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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 누나 이야기.txt (12)

익명_20c8de2018.09.01 19:38조회 수 20945추천 수 1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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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연재 진도도 느리고 내용의 진도(?)도 느려서 죄송합니다.

많이 시원해지지 않았습니까? 제가 연재를 시작할 때 월드컵이 한창이었고 그땐 이렇게 여름을 내내 이 이야기를 쓰면서 보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었는데 9월을 넘기게 되었네요.


그나저나.

엠팍 외에도 여기저기 퍼졌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아이고... ;;;;;;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닌데. 진짜. ㅜㅜ





이번 주는 너무 바빠서 글 쓰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바쁘고 컨디션도 안 좋으니 제가 봐도 글이 재미없어지고 진부해져서 괴롭습니다 ;;;
(오탈자가 있을 수 있으니 발견시 바로 잡아 주시길)

아참. 이번 화 완결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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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 되었고 봄이라 부르는 계절이 왔습니다.

이 해에도 황사+먼지가 기승을 부렸고 누런 무언가가 하늘을 덮은 위성사진을 보면서 모두들 옆 나라를 욕하기에 바쁩니다.


안책임님의 딸은 병원에서 3월을 맞았습니다. 유치원이 아닌 어린이집을 다녔으니 새로운 학기라는 개념은 없었을지라도 어린 나이에 병원에 머문다는 것은 꽤 괴로운 일임에 틀림없겠지요.

딸아이가 병원에 입원을 한 동안 안책임님은 연차를 털어넣어 병원에 머무려 했지만 부서와 회사의 배려로 일주일에 이틀만 반나절 나오고 나머지를 모두 재택근무 형식으로 처리했습니다.

처음엔 회사에서 저런식으로 배려를 다해주나 했는데 알고보니 안책임님은 노트북을 들고와서 병원에서 진짜 원격 '업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짧은 시간만 친정 엄마와 가족, 조카가 잠깐 병원에 있었을 뿐 안책임님은 병원에서 태반을 먹고 자고 하는 딱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너무 어려서 낯선 간병인을 쓸 수 없었겠지요. 


아이가 다친 날.
병원에 내려주고 나서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서 주차를 하고 응급실에 조금 머물렀는데 도움은 안되고 오히려 방해만 되는 것 같아 저녁에 집에 온 후 사흘이 지나서나 볼 수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좀 정신차린 목소리로 통화를 합니다.



나: "괜찮아요? 딸애.. 그리고 안책임님도"

안: "네. 괜찮아요. 이 정도면... 괜찮은거지.. 애들은 빨리 낫는데요. 큰 수술이 필요한 중상은 아니니까."

나: "이따 갈 때 뭐 좀 사다드릴까요? 아이 먹을거나 뭐든.."

안: "글쎄요. 뭐 생각 나는게 잘 없네요. 안 사오셔도 되어요. 병원에서 식사는 어찌 다 해결이 되니까.."


저런 대답이 올 줄 알았습니다.

퇴근길에 백화점 식품 매장을 가니 요즘 별의 별 맛있고 비싸고 양적은 것들을 많이 팝니다.

이름을 읽기에도 힘든 무슨 파리에서 왔다는 프랑스 제과 매장에서 
정말 내가 먹을거라면 눈꼽만치 살까 말까한 마카롱을 무려 여섯개에 이만 사천원을 쓰고 

젤라또 아이스크림과 콜드브루잉 더치 커피따위를 샀습니다. 


내가 좋아하긴 하는가보다... 
이게 돈이 얼마야.. 

이런거 한 번 못 사볼 월급은 아니었지만 가격이 좀 아찔하긴 합니다. 한 입먹고 없어질 것들. 뭐 어차피 모든 음식이 다 먹고 없어질 거지. 뭐.

요즘 잘나간다는 디저트들을 막 사서 병원으로 출발했습니다.





혹시 아이를 만나서 인사라도 할까 생각했는데 역시 무리무리. 심지어 도착한 시간은 이미 애가 잠든 시간이라 아이의 병동이 있는 층의 한 쪽 휴게 공간에서 안책임님을 만났습니다.

지쳐보이지만 
무너지지 않는 사람.
단단함을 잃지 않는사람.

저는 만나면 막 저에게 와락 안기고 울고 뭐 그럴줄 알았는데 담담히 만나 희미하게 웃으며 일자로 된 벤치에 앉았습니다.



무심히 틀어진 티비와 촛점잃은 눈으로 그걸 보는 몇몇 보호자.

가라앉은 병원 분위기와는 괴리가 너무 큰 티비속 예능 프로그램.

어지러운 자막과 과장된 연예인들의 몸짓 박장대소. 

모자를 눌러쓰고 구석에서 핸드폰에 집중하는 어떤 엄마.

복도를 바삐 움직이는 간호사와 당직 의사.

저멀리 잠을 못자고 우는 어린 환자.




안: "이거 엄청 비싸던데. 이런 걸 다 사오셨네..."

나: "네. 비싸더라고요. 솔직히.. 사고 나서 알았어요. 근데 이미 포장하고 있는걸 물를 수가.. (웃음)"

안: "하나 먹어 볼까요. 같이 하나 먹어요."



작은 마카롱 하나들더니 냄새를 한번 맡아보고는 진짜 조금 베어 먹고 오물오물 먹습니다. 씹는 것인지 녹여 먹는 것인지 모르게 한참을 오물거리고 커피를 따라 한 모금 먹습니다.


안: "옛날에. 한 십 몇년 되었나. 유럽 여행을 갔는데 파리 드골 공항에 마카롱 집이 있는거에요. 유명한 거라고 해서 하나 사서 먹는데. 파리에서도 비싸긴 하더라. 얼마인지 기억은 잘 안나지만.. 아무튼."

또 한입 진짜 작게 베어먹고 또 오물오물.

안: "딱 하나 먹었는데 무슨 장미 향이 막 나는 거에요. 내가 막 베르사유 궁전에 간거같아. 일정이 꼬여서 파리에 며칠 못있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 직전에 마카롱을 딱 하나 먹었는데."

또 한입. 그리고 커피 한 모금.

안: "그게 나에게 파리 여행의 완성이었어요. 이걸로 파리는 됐어! 같은 느낌으로. 근데 이거 그때랑 맛이 비슷하네요."

나: "그건지도 몰라요. 파리에서 왔다고 선전하던데.."



비싸게 사온 걸 잘 먹어 주고 또 그 것에 의미 부여를 하는 것 만큼 고마운 건 없지요.

엄마가 데이트하고 있는 와중에 애가 다쳤으니 혹시 자책을 하고 있나 싶어 마음이 어떤가 물어보고 싶은데 그런 깊은 대화로 쉽게 분위기가 옮겨지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듣지는 않겠지만 주위에 사람도 조금 있었고 티비 소리에 좀 부산 스러운 감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잠깐 티비로 시선을 옮겨 요즘은 쟤가 뜨네. 요즘은 뭐가 재미있다더라. 그래도 유재석이 건재하네 따위 이야기를 잠깐 하다가 안책임님에게 전화가 와서 대화가 끊겼습니다.


짧은 대화. 네. 네. 이십분 정도요? 네. 제가 로비로 갈게요.
아마 미리 예견된 통화인 듯. 


안: "책임님. 저 손님이 와요. 오래 못 봐서 미안해요."

나: "아.. 아이 할머니가 오시나 봐요? 어머님. 하시는 걸 보니..."


엄마가 아니라 어머님이라 하는데 좀 놀랍긴 합니다. 
원래 그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혼도 했는데.


안: "아.. 네. 아이 할머니가 애한테 끔찍하시거든요. (한숨)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낮에는 혹시 우리집이랑 마주칠까 싶어서 일부러 저녁에 오신다는 거 같고. 애는 어차피 자는데."

손에 들고 있던 남은 마카롱을 입에 넣어 씹고 나서.


안: "책임님. 병원에는 가족들이 자주 와서 책임님 오셔도 제가 잘 못 만날 지도 몰라요. 터 놓고 이야기하자면. 가족들에게 요즘 누구 만난다고 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요. 그래도 오늘 와 주셔서 고마워요. 그리고 마카롱 너무 고마워요. 잠깐 동안 되게 행복했어요. "

그러면서 마카롱 하나를 집어 주머니에 쏙 넣어주었습니다. 

안: "비싸다고 하나도 안 먹었죠? 가면서 하나 드세요. 비싸면 아까우니까 자기가 먹어야지."


할머니에 대해, 이혼 후에 전남편 식구들과의 관계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자리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 그냥 말없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향하는 복도에서 회사 이야기를 잠깐 하면서 급기야 힘든 내색을 했습니다.

안: "주위에 아빠의 육아 도움이 거의 없이 애 혼자 키우다시피 하는 엄마들 있으니까. 나도 그냥 그렇게 키우면 되겠다 싶었는데. 이런 일이 생기면 되게 버겁네요."

공감하고 싶어도.
딱히 할 말이 없어 해 줄말이 없는 육아 이야기.

나: "힘드시겠어요."



전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이야기라도. 들으면 위로가 되는 걸까요? 

도리어 제 삼자같은 위로 아닌가요? 


이걸 해결해 주려면. 

일 안하고 금전으로 다 커버 가능한 재력
건강한 친정 엄마
든든한 남편

이 아니면 해결이 안되는 거 아닐까요?


든든한 남편.
든든한 남편.

을 속으로 생각하며 엘리베이터에서 잠깐 손을 잡았습니다.


나: "마음은 괜찮으세요?"

안: "솔직히 말해서. 엄마가 남자랑 데이트하고 있는데 애가 다친건데 괜찮을리가요. 책임님 앞에서 막 이런말해서 미안해요. "

앞뒤 다 잘라먹고 드라마 대사같은 질문을 했지만 콩떡같이 알아먹어 고맙습니다.



병원 로비에서 헤어지면서 한 번 안아주고 싶어 타이밍만 보고 있었는데 로비로 들어서는 코너를 돌자마자 저 멀리에 노년의 여성이 회전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이 보입니다.

그러자 황급히 거리를 둡니다.


저도 상황을 직감하고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다른 방향으로 성큼성큼 앞서 걸어 나갔습니다. 주차장으로 내려가던 걸음을 멈추고 호기심에 로비 구석에서 조금 지켜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냥 바이바이도 못하고 헤어진 것이 못내 아쉬워서 그리고 혹시 안책임님도 그걸 아쉬워할까봐 멀리에서 좀 앉아 있어보기로 했습니다.


키가 자그마하지만 세련된 할머니는 안책임님을 보고 손을 잡아주고 팔을 쓰다듬어 주면서 로비에 서서 한참을 이야기합니다. 이혼한 시댁의 관계가 저럴 것 같지 않은데 신기했습니다. 몇 마디 이야기를 하다가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걸 보니 아마 아이를 보러 올라가는 듯 합니다.


집에 가려다가 더 기다리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끝내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무슨 이야기하셨어요? 시댁이랑 어떻게 잘 지내세요?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자 할머니와 함께 안책임님이 내려오고 또 로비에서 조금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러다 할머니가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어 안책임님에게 쥐어주는데 안책임님이 손을 내저으며 사양하다 몇번을 옥신각신하고 결국 꾸벅 인사하고 받습니다. 아마 아이 치료비에 보태라고 줬겠지요. 


할머니를 밖에서 배웅하고 안책임님은 다시 엘리베이터로 걸음을 옮깁니다. 저는 뛰어가서 붙잡고 물어보고 마저 인사하고 싶었지만 그냥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우리 만남이 불륜도 아닐진데.

왜 그리 신경쓰고 밖에서 보기에 내외하는 사이여야 하는지.




이 모든 것이 '결혼'을 하기 전까지는 해결되기 어려울 거라는 결론을 내버리고 달디 단 마카롱을 운전하면서 으적으적 먹으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우 달어. 집에 우유라도 하나 사놓을껄.

맥주캔 하나를 따서 들이켰지만 단맛이 입안에 남아있습니다. 비싼거라 그런가 맛이 오래 가네....



봄날은 집안의 "자리 들어올 때 만나! 지가 노총각 될줄 모르고 저러네." 같은 여자 소개 파상 공세가 계속 되었습니다. 대충 일이 바쁘다 핑계를 대거나 "엄마! 결혼하면 나 집 해줄 수 있어?" 따위의 농반진반하는 후레자식같은 드립을 치며 넘겨 왔습니다.


안책임님네는 아이가 퇴원을 하면서 조카애의 엄마. 즉 사촌 올케 언니가 올라와서 잠시 같이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다친 것을 조카에게 책임을 돌리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조카와 그 엄마는 도의적인 책임을 느끼고 있었고 애가 다친 이후로 조카가 애 보는 걸 좀 부담스러워하는 것도 같아 새 학기에 애를 챙긴답시고 올케 언니가 올라와서 애를 좀 봐 주기로 했다고 합니다.


안책임님은 올케 언니가 있어서 처음엔 좀 부담될거라 생각했는데 집에 식구가 있어 복작거리고 밥도 해주고 집에 가면 맞아주는 사람이 있어서 좋은 모양입니다. 애를 대학생까지 둘 키운 큰 언니가 집에 있어 주니 마음도 안정되는 것 같고 아이도 숙모를 잘 따른다 하니 다행이었습니다.


무언가가 금이 가 불안한 상태가 되지 않을까 했던 걱정은

적어도 제가 보기엔 

오히려 전보다 안정되어 보이는 상태로 변했습니다. 



꽃구경이라도 가자는 말은 또 말만 오가다 그냥 흩어지는 약속아닌 약속이 되어버리는 와중에 꽃이 막 피기 시작합니다. 그에 맞추어 알 수없이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만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고 우리는 어른이며 이제 조금 있으면 안책임님은 마흔이 되고 저도 마흔이 가까워지고 있고.


이 금쪽같이 좋은 시기에.

젊은 애들 썸만도 못한 반 쪽 짜리 데이트를 하고
손잡고 아가페스러운 뽀뽀만 하고
결혼은 언제 하나... 


하긴 하나? 




아무리 서른이 넘어 만났어도 안책임님이 가끔은 연상이라는 점이 상기되고 또 누나같을 때도 없지 않아 있어서 제가 막 앞으로 우리 어떻게 하면 좋겠다. 어찌 하자. 이렇게 말을 못한 것도 있고 결정적으로 제가 그렇게 앞서가며 손 붙잡고 끌고가는 성격도 아니어서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봄날.

다음날 출장이 예정되어 있고 열흘이나 나갔다 오게 되어서 저녁이라도 꼭 먹자고 했지만 둘다 야근을 하다 식사다운 식사를 못하고 말았습니다. 

딸애는 얼집에서 올케언니가 픽업해서 일찍 집에 갔고 회사 근처에서 대충 샌드위치따위를 먹고 제가 집에 안책임님을 데려다 주게 되었습니다.



봄비가 부슬부슬 내려

황사와 건조한 공기로 지친 땅을 어루던 저녁.


아파트 건물에 옆편 주차장에 차를 대어 놓고 이야기를 좀 하다 가기로 했습니다.


안: "정종같은거 따뜻하게 데워먹고 그러고 싶은 저녁이네요. 비도 부슬부슬 오고."


분위기가 부드러워지는 것 같아 갑작스런 회심의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나: "저희 집에 안 가실래요? 더 늦게 들어가도 되면."

안: "집에요? 출장짐 다 쌌어요?"

나: "에. 출장 한두번 가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내일 오후 비행기여서 오전에 회사 안 오고 공항간다고 해 놓았어요."




아아. 고민한다! 고민!


하지만.

안: "진짜 그러고 싶은데. 너무 갑작스레 늦긴 좀 그러네요. 올케 언니에게 좀 눈치 보여요."


실망.
좀 졸.라볼까 하는데 이야기를 잇습니다.


안: "조카애도 여름에 또 어디 외국 간다 해서 아예 입주 아줌마를 쓸까 생각도 하고 있는데 이제 다큰 마당에 입주 아줌마는 아닌가 싶기도 하고. 복잡하네요."

제가 대응하기 힘든 아이 이야기. 육아 이야기가 오간 후에.



나: "이제 주말에 시간 잘 못 내시..겠죠? 그냥 아이 데리고 공원 한번 같이 가실래요?"

에라 모르겠다. 그냥 애까지 같이 데이트 하자. 


안: "아. 가능한 건지 잘 모르겠다. " (웃음) 



윈도우에 떨어지는 빗방울만 보며 잠시의 침묵하다가.
손을 잡았습니다.


나: "가끔.. 고등학생 연애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안: "왜요?.. 하긴. 무슨 말인지 알겠다. (한숨)"

나: "부모님 눈치보고 시간 없고 막 둘이 다니기엔 또 자유롭지 않고 뭐 그런.."


고등학교때 연애도 못해봤으면서.. 


안: "그러네요. 고등학생 연애같네. 밥도 맨날 샌드위치나 먹고."



그리고 복잡한 생각이 담겨 있는 희미한 웃음.

미소라고 하기엔 그렇게 밝지 않고 무표정이라고 하기엔 분명 색깔이 있고

쓸쓸하진 않지만 
깊은 생각에서 나오는 감정이라 
무어라 말하기 힘든


그런 희미한 웃음을 짓고

몸을 제 쪽으로 돌리더니 다른 한 손으로 제 다리를 쓰다듬자 

그동안 참고 밀린 리비도가 반응을 하며 베이지 면바지 아래가 솟아 오르고 말았습니다. 부끄럽다 생각이 조금 들었다가 연인 사이에 부끄러울 것도 없고 쪽팔리지만 지금 내 상태가 이래! 라고 대신 말해주는 것 같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난 이렇게 건강하고 젊은 사람이라구요.


손이 얼굴에 닿고 몸이 기울어 가까이에 오자 또다시 그 복잡한 향기가 확 다가 옵니다. 오랫동안 목말랐던 느낌. 지난 2년여간 한사람을 흠모해 오면서 나를 안아주고 위로해왔던 그 향기와 냄새.


운전석으로 넘어와 달라는 신호로 좌석을 뒤로 밀자 얇은 가디건을 벗어 시트에 떨어트리고 조수석에서 넘어와 제 다리 위에 비스듬히 앉았습니다. 


제 오른팔에 안책임님의 두 다리의 무릎과 허벅지가 닿고 왼팔로 몸을 안고 있고 안책임님은 옆으로 저에게 완전히 기대어 있는 상태로 한참을 서로의 몸을 안아주고 숨소리를 들었습니다.


분위기를 깨서라도 뒷좌석으로 옮겨야 하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는 불편한 자세로 입을 맞추고 계속 옷위로 손을 계속 쓸고 있던 그 때.



여름 장마같았던 비

때때로 빗방울에 꽃잎이 묻어 차창에 붙고

가로등이 닿지 않는 구석의 주차장에서 

서로가 내뿜는 입김과 열기가 

쉴새없이 비를 맞는 차가운 창과 만나 이슬점 이하로 수증기가 냉각되어 이슬로 맺혔을 때.



비로 어둠으로 빗소리로 
차창에 가득 서린 김으로 

차 밖의 세상과 단절되었다고 느꼈을 때



오른손이 블라우스 속을 타고 들어가 속옷의 후크를 풀고 

사랑과 평화와 위로외에 아무런 공격적인 속성도 가지고 있지 않은 가슴에 닿아

우리를 다시 
몇만 광년 떨어진 
백색 왜성과 블랙홀로 이루어진 저 멀리 우주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분리된 시공간을 경험하자
리비도는 용기를 얻어 손이 허리 아래로 내려가
힙에 닿았고 허벅지를 쓸며 옆으로 타고 들어가

다리와 다리 사이. 가장 민감한 곳에 닿았습니다.


내 손의 느낌이 
이 단단히 두꺼운 청바지 너머의 피부와 살과 뼈에 닿는 걸까.

청바지 재봉선 위로 움직이는 손가락들이 
애정의 느낌으로 전달되는건가.

몸을 애써 비비며 침대에서 맨살이 닿은 것만큼 서로를 느끼려 애를 쓰고 민감하게 서로를 느낀다고 생각했을 때.




손이 애가 타도록 바지 위로 허벅지 안과 밖을 타고 다니자 

거친 숨소리 속에서 귀에 남기는 한 마디.




안: "이럴 줄 알았으면. 치마를 입고 올 껄."




어떻게 이 사람은 말 한마디로 

나의 뇌와 중추신경에서 타고 나온 말초신경까지
이렇게 자극할 수 있는 걸까.




그 말 한마디에 
전두엽에 백만 볼트의 전기가 흘렀던 것 같습니다.

그 전기로 인지 감각과 실행기억이 엄청난 대담함을 만들었고

그 대담함이

손이 바지의 단추에 가 풀어 지퍼를 내리려는 순간



제 손은 제지 당하고

아까 전두엽에서 번쩍했던 전기에 방출된 도파민에 미쳐서

손이 바지 속으로 집요하게 들어가 속옷에 닿자


손이 또다시 제지당하고


안: "미안. 여기서 옷을 벗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진지하고 분명한 신호.

이건 멈추어야 할 때.




무안해진 우리 둘은 잠시의 침묵으로
아직 백색왜성과 블랙홀 사이에서 

또다른 초신성을 찾아 헤메고 있을 무렵.



안책임님은 좌석을 뒤로 젖히더니

저의 무릎 위에 다리를 벌리고 무릎을 접고 앉아 

저를 안고 다시 입을 맞추었습니다.



사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차에서 무엇을 한다는 건 매우 불편한 일입니다.
특히 운전석에서는.


솔직한 심정으로는 몸을 돌려 내 위에 포개어 앉아 달라고. 뒤에서 안고 싶다고. 당신 힙에 내 아랫도리가 맞닿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하고 싶었는데 그런 음란한 요구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무언가 편하고 안정적이면서 자극할 수 있는 자세를 찾으려던 안책임님은 이내 포기하고 제 위에 가만히 안겨 있게 되었습니다.

그 좁은 운전석에서 
그냥 말없이 한참을 누워있지도, 앉아 있지도 않은 상태에서

풀어진 단추들. 헝클어진 옷사위. 
눅눅한 공기

말려 올라간 슬리브와 블라우스 사이에 보이는 살을 보면서



저 멀리 우주를 떠돌던 우리의 시공간을 서서히 지구로 돌리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터트려(?) 내었다면 순식간에 현자타임이 있을 수도 있는데 기분은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날아 여전히 우주를 떠도는 듯 천천히 지구로 서서히 귀환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행복감.




누가 보면 별거 아닌 스킨십에 
꿈을 꾸는 듯 깊은 행복감이 들었습니다.


계속 이렇게 우주를 날아다니면 좋겠다.



우리는 몸을 추스리기 시작했고 

안책임님이 부끄럽다 하여 제가 옆 좌석으로 옮겨 옷을 먼저 대충 수습하고 우산을 쓰고 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기분이 정말 이상했습니다. 여자들과 스킨십도 진하게 하고 자기도 하면서도 이런 알 수 없는 기분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하염없이 오는 비때문이었을까요. 그래서 정신을 차릴 수 없는 것이었을까요.


옷을 수습하고 작은 가방을 들고 나오자 우산 하나를 어깨를 안아 같이 쓰고 아파트 현관까지 걸었습니다.

나: "땀이 엄청 나버렸네요. 감기 걸리겠어요." 

안: "그러게요. 비맞은 것처럼 땀이 났네."



땀에 젖은 머리와 얼굴
그리고 애써 정리했지만 헝클어진 옷 매무새

갑자기 작년 여름부터 만나온 순간들이 스쳐나가면서

더없이 이 아름다운 사람과 꼭 같이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에 취해

저는 우주인 듯 꿈인 듯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현관을 몇걸음 앞에 두고 갑자기 말을 꺼내었습니다.






나: "우리. 결혼해요."






쿵.


나도 모르게 이 무거운 말을 

꿈에 취해 던지고 말았습니다.






멈춘 발걸음. 

아파트 1층 현관의 밝은 노란 불빛 아래 보이던 떨어지는 빗방울.

좁디 좁은 우산을 안책임님 위에 받쳐 제 어깨는 이미 비로 범벅이 되었고

안책임님도 한쪽 어깨가 젖어 속옷 끈이 보이던 그 풍경 속에서



한 마디를 더 했습니다.


나: "결혼해 주세요."





표정 변화없이 앞만 가만히 주시하던 안책임님이 절 돌아 봅니다.


그리고 빗방울인지 눈물인지 
눈에 무언가 맺히고 그것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을 때.


불안하게 떨리는 소리로 꺼낸 말.





안: "지금... 말하지 않았으면 했는데. 왜. 지금...."








다른 은하에서 초신성과 백색왜성따위 속에서 지구로 귀환하던 우주선은

갑자기 어떤 행성과 부딪혀 산산조각나 꿈에서 깨어납니다.





나 무슨 말을 한건가.

잘못한건가.





안책임님은 돌연 우산 밖으로 비를 맞으며 빠르게 걸어가 현관으로 들어가 버렸고

전 현관앞에서 우두커니 한참을 멍하게 서 있었습니다.




왜?

왜 화를 낸거지? 도대체 왜?





우산을 쓰고 한참을 서 있다가 차로 들어와 곰곰히 생각했습니다. 메시지를 보내야하나? 뭐라고 하지? 미안하다고? 왜? 결혼하자고 해서 미안해? 아니잖아? 지금 이야기해서? 프로포즈를 이따위로 해서?


프로포즈 이렇게 했다고 화낼 사람이 아니다. 

그냥 뭔가 감정선이 안 맞는데 나 혼자 헛소리...



이런 생각에 미치자 더 혼란스러웠습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결혼을 하자는 말을 듣고 싶은건 오히려 안책임님 아닌가. 그럼 내 잘못은 아닌거 아닌가.


전화기만 한참을 망연자실 바라보다가 

꾸벅 잠이 들었고 

깊은 새벽에 비가 잦아 들고서야 잠이 깨어

아무런 메세지와 전화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와 대충 옷만 갈아입고

아픈 머리를 부여 잡고 그냥 잠들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오후 1시까지는 공항에 도착해야 하는데 10시에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출장짐이야 대단한 것이 아니니 부지런히 싸면 못할 것도 없었지만 너무 엉망인 상태로 자고 일어나서 정신 차리기가 어려웠습니다.


수트케이스를 열고 부랴부랴 옷과 각종 생활용품을 던져 넣고 서랍에서 여권과 지갑등을 챙깁니다. 커피 한잔을 빨리 내려 마셔서 카페인으로 뇌를 억지로 깨워 마저 짐을 챙겼고 뭔가 없으면 현지에서 사면 되겠지 하며 짐가방을 들고 오피스텔을 뛰어 나와 택시를 타고 가까운 공항 버스 정류장까지 갔습니다.

여권이랑 전화기만 있으면 돼. 나머지는 어떻게든 다 해결돼..

하면서 버스에서 이동하면서 전화기로 모바일 첵인을 미리 하고 시간을 확인하던 중


해결하기 힘든. 빼 놓고 온 것이 생각나고 말았습니다.


노트북 컴퓨터.


집에 갈 수는 없어... 현지에서 어떻게든 되겠지 싶어 일단 공항에 도착하고 보딩 패스를 받아 보안 구역에 들어와서 보니 전화기 충전기도 안 들고 오는 등 짐 꾸린 상태가 엉망이었습니다. 


머리를 쥐어 뜯으며 

이번 출장은 망했다. 고생길이 훤하구나. 열흘짜리 출장 준비를 이런 식으로 하다니...

자책하면서 안책임님 생각을 했습니다.


왜 이 사람은 연락이 없나. 라고 생각한 순간 전화기를 어제 밤에 충전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전화기는 이미 꺼진 후 였습니다. 


아. 어떻게든 연락을 하고 가야하는데. 
이러고 그냥 비행기 타면 안되는데.

초조한 마음에 게이트 앞에서 성격 좋아보이는 아저씨의 핸드폰을 빌려 안책임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역시나 받지 않았고.


전 그냥 비행기를 허무하게 타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불편한 마음으로 
불안한 마음으로 
비행기 탄 것도 처음.





안책임님 걱정에
노트북도 없이 출장지 법인과 파트너에 가서 처리할 업무 걱정에 

비행기에서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밥을 먹는 둥 마는둥
영화도 보다 말다 반복하다가

피곤을 가득 안고 비행기에서 내렸습니다.



출장지 공항에 내리자마자 식사 약속을 해서 충전기를 (돈 아깝지만) 급하게 사고 약속 장소로 택시를 타고 이동해 대충대충 약속을 넘기고 호텔로 쓰러져 들어와서 충전을 했지만 전화기는 충전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 진짜. 왜 이러니...


호텔 로비의 비즈니스룸에서 컴퓨터를 켰지만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습니다.

법인에 회사 인트라넷에 들어갈 수 있는 노트북을 빌려달라 부탁을 했고 차마 회사 메일로 안책임님에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기는 싫었습니다. 회사메일 빼고는 안책임님 이메일 하나 모르고 살았다니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렇다고 잘도착했다고 회사메일에 건조하게 쓰기도 그렇고 해서 한참을 고민만 하다가 아무것도 못하고 일단 전화기만 켜지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나가서 충전기를 또 하나 샀습니다.


또 충전 안됨. 전화기는 고장난 것 같습니다.




출장일정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전시회에서 파트너들과 미팅을 여러개 잡았고 현지 법인과 이를 준비했어야 하는데 제가 노트북을 안가져오는 바람에 여러가지로 꼬이고 말았습니다. 대형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깔끔하게 할 수 있는 일을 몸과 마음이 모두 고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안책임님에게 연락하는 것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제가 혼자 쓸 수 있는 노트북을 며칠이 지나서야 구할 수 있었고 (차라리 처음에 살 껄. 우리나라보다 싼데.) 메세지 PC 버전을 깔고 로긴을 하고 나서야 소셜 세상으로 들어 올 수 있었습니다.

고민고민 하다가 메세지를 보냈습니다.



[[나: "저 잘 도착했어요. 우여곡절이 있어서 연락이 이렇게 늦고 말았네요." ]]


한국 시간은 낮인데 답이 없습니다. 읽었다는 표시도 없습니다.
또 고민고민.

[[나: "떠나기 전날 말을 너무 갑작스럽게 해서 미안해요. "]]


'근데 왜 미안한건지 모르겠어요.'와 '화 많이 나셨어요?'를 붙이고 싶었는데 경험상 여자들이 들으면 안 좋아할 말. 심지어 안책임님도 안 좋아할거 같아서 차마 붙이지를 못했습니다.

몇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답이 없자

[[나: "뭐라도 답좀 해주세요. 살아있으면. " ]]

라고 보내고 말았습니다.




이번에는 
이전에 출장과는 달리 낮에도 긴장하고 밤에는 자료 만들고 한국과 연락이 오가느라 쉴수가 없었습니다. 

하루하루 피곤하고 안책임님은 연락이 없고 난 조금 잘 못한것도 같지만 왜 화가 난 것인지 알 수가 없고.


일주일이 지나자 드디어 메시지가 왔습니다.

[[안: "돌아와서 이야기해요. 연락 못한거 미안해요."]]






안도감이 들 줄 알았는데.
서운한 감정이 조금 들었습니다.


분명하고 꼬이지 않고 슬기롭고 현명해서 좋아했던 사람인데

그 때의 안책임님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시차때문에 불면의 밤은 계속 되었고

외국나가서도 잘 먹는 편인데 이번에는 입맛이 없었고

하루 종일 영어하느라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하루가 끝나면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는데 
들은 말과 한 말을 저녁내내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하필 이럴 때.

안책임님은 날 괴롭게 하고 있었습니다.

(계속...)



익명_20c8de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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