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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해안초소와 할매스님 이야기

title: 양포켓몬자연보호2019.12.02 15:00조회 수 1626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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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해안초소와 할매스님 이야기 1

 

 

이야기에 앞서, 

 

1. 인물과 사건 자체는 100% 실제이다. 

 

2. 이 이야기는 당시에 보안대에서 조사 끝에 미결로 끝난 사건인 만큼 실명이나 날짜를 밝힐 수 없음을 알린다.

 

3. 이야기 전개를 위해 약간의 소설적 윤색을 더했다. 

 

 

4. 용어 설명

 

 

* 소초 (小哨): 적은 인원으로 중요 도로나 지점의 경계 임무를 맡은 부대. 

 

* 초소 (哨所): 보초를 서는 장소. 

 

* bmnt : before morning natural twlight

 

해상박명초(海上薄明初) 해상에 해가, 즉 동이 트는 것을 말함. 

 

일출 이전-48분의 시각. 일출시간이 오전 6시이면  오전 5시 12분이 bmnt.

 

* eent : end evening natural twlight

 

 

해상박명종 (海上薄溟終) 어둠이 해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말함.

 

즉 노을이 완전히 없어지는 시각. 흔히 "땅거미가 완전히 졌다" 라는 시각. 

 

군사용어로 eent+48분, 즉 일몰 이후 48분까지 아직 밝다. 일몰이 오후7시이면 7시 48분까지 밝다는 것.

 

 

===============================================================================

 

스무 명 남짓한 인원이 지붕에 흙 덮인 소초에서 바다만 바라보고 몇 달을 보내야 하는 어느 여름의 일이었다. 

 

그 해 여름에는 유난히 비가 많이 와서 해안 생활이 더욱 짜증나고 무료했다. 

 

낮에는 해안선 점검 및 자체활동으로 보내고 야간에는 해강안 근무를 해야 했는데 

 

우리는 체질상 예비대 생활을 선호했으므로 어찌 보면 낭만적인 해안 생활이 지겹기도 했다. 

 

우리는 근육과 정신이 나태해지면 예비대로 복귀했을 때 처음 한 달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알고 있었으므로 

 

선임하사님이나 신임 소대장님을 꼬드겨 철책 안으로 들어가 수영을 하기도 하고 

 

오침 시간을 이용해 간단히 군장을 꾸려 꽤 멀리까지 방황(?)하기도 했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철수한 후 이른 아침 해안선을 따라 구보하기도 했는데 근육이 풀리는 것을 막기 위해 

 

각종 방법을 강구하던 대원들 사이에 금기를 깨자고 하는 의견이 나온 것은 그 해 늦여름도 다 가던 9월초였다.

 

 

원래 철책이라고 하는 곳은 여러분도 알다시피 징크스, 금기, 괴담, 전설 등이 횡행하는 곳인지라 

 

별의별 말들이 많은 곳이다. 우리가 있던 00도 앞도 그랬는데 해마다 총기 사고가 나서 인명이 죽어 나가곤 했는데 

 

들리는 말에 전임 중대장은 흩어져 있는 병력의 효과적인 지휘를 위한 방편으로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 소초 뒷산에 있던 조그만 암자에서 고사를 지냈다고 했다. 

 

각 소대의 고참병과 선임하사관, 소대장 등을 대동하고 고사를 지낸 후 반나절만에 돌아온 중대장이 말했다는 내용은,

 

 

"뒷산 암자에 있는 영험한 할머니 스님의 말씀이 그 부대 사람들이 야생동물을 하도 많이 죽여 

 

 불상사가 잦은 것이니 앞으로는 절대로 야생동물을 죽이지 말고 이 산에도 들어오지 말라" 는 것이었다.

 

 

 

당시에 신병이었던 대원이 소대의 최고참이었으므로 그 일은 비교적 상세히 전해지고 있었고 

 

선임하사님은 아침 구보시 그 산쪽으로 향하는 것을 금지시키고 있었다.

 

식사 당번(아무나)과 당직병, 그 밖에 몇을 빼면 구보인원은 보통 16명 내외였는데 그날 아침에는 모두들 들떠있었다. 

 

선임하사님과 소대장님은 피곤하실테니 쉬시라고 하고 최고참병 3명은 북어포에 넘어가 건물 뒤로 사라졌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상병 선에서 일을 꾸몄다. 

 

병장 초와 상병 일병 그리고 막내에 초임 하사관 둘. 

 

우리는 며칠 전부터 계획했던 대로 처음엔 둑방을 향해 구보하다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급히 방향을 꺽어 뒷산을 향해 뛰었다. 

 

조그만 오르막길을 숨차게 올라 '00암'이라 쓰여진 조악한 팻말을 보았고 

 

조금 더 올라가니 일반 가정집 같은 조그만 암자가 나왔다. 

 

우리는 공터에서 10월에 이동할 예비대를 떠올리며 장난스럽게 피티도 하고 스트레칭도 하며 왁자하게 떠들었는데 

 

갑자기 조용해지길래 뒤를 돌아보았더니 추녀 아래로 늙은 할머니 스님이 무표정하게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상병 말이었던 내가 우물쭈물하는 초임분대장을 뒤로 하고 앞으로 나섰다.

 

 

"할머니, 아..참.. 스님. 저희는 저기 아래 군인입니다"

 

".........."

 

 

대답도 않고 있는 그 할머니는 아무리 봐도 나이와 성별을 알 수 없는 묘한 인상이었다.

 

 

 

"물 좀 마시고 가겠습니다.... 아... 그리고 혹시 장교분이 와서 물으면 죄송하지만 우리 얘기를 안 했으면...."

 

"........."

 

 

머쓱해서 돌아온 우리는 왕복 8킬로 남짓한 그 암자가 구보 코스로 너무 좋고 

 

경치도 맘에 들고 공터도 좋고 약수 맛도 일품이어서 그 뒤로 틈나면 가게 되었고 

 

붙임성 좋던 소대 막내 놈은 무뚝뚝한 그 할머니 스님과 제법 농담도 주고 받게 되었다. 

 

이러한 우리 행동은 사실 다음 달이면 이동할 것을 전제로 했기에 부담이 없었고 일체 암자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기로 한 것이었다.

 

한 번은 공터 구석에 있는 굵은 벚나무에 개인로프를 걸어놓고 매달리기를 하며 

 

막내와 할머니스님(우리는 모두 그렇게 불렀었다)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막내는 경상도의 두메에서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입대했으므로 

 

이마 위에 몇 개 붙어있는 머리카락을 제외하고는 민둥산인 모습이 시골소년 모습 그대로였다. 

 

두 사람의 대화는 정겨운 할머니와 손자 그대로였다.

 

 

"할머니스님은 이 곳에서 언제부터 사셨습니까?"

 

 

녀석은 신병 특유의 기합이 바짝 들어 다까를 구사했다.

 

 

"꽤 되었지..."

 

 

할머니 스님은 이제 막 싹이 나는 이른 배추를 매만지고 있었다.

 

 

"혼자서 뭘 드시고 사십니까?"

 

"이 것... 저 것..."

 

 

쉰 목소리의 다까식 말투와 전혀 감정이 배제된 듯한 말투가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할머니스님의 연세를 도무지 감잡지 못하겠습니다"

 

"그래? ....... 흐 허 헐 헐헐...."

 

 

옆에서 듣던 나는 그 웃음이 왠지 자의적이란 생각이 들면서 이유도 없이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었다.

 

 

10월 중순이 되자 우리는 싸리 작업도 나가고 부대 이동을 위해 바빠졌다. 

 

일병 선에서는 벌써 예비대 공포증에 시달렸고 해안에서 실무에 처음 배치된 신병들은 

 

예비대의 각종 훈련들에 대해 막연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우리 소대의 막내는 막내 특유의 어눌함과 우울함에서 벗어나 활기차고 즐겁게 생활했다. 

 

모두들 의아해 했지만 친할머니 같은 스님 덕에 그러려니 할 뿐 아무도 드러내 놓고 묻지는 않았다. 

 

부대 이동을 사흘 앞두고 근처에 타군이 훈련을 나와 있으니 접촉을 금하고 

 

아침 구보시 복장 단정히 하고 군기 유지하라는 중대장님의 전통을 소대장님은 누누이 강조했다. 

 

사실 소대 단위로 생활하다 보니 아침 구보시 복장은 우리가 봐도 가관이었다. 

 

흰 런닝을 민소매로 만들어 뒤에 해골 그림을 그린 놈에 철모 카바를 벗겨 쓰고 월남전 흉내를 낸 놈, 

 

윗통을 벗은 놈 등에 군가는 듣기에 거북살스런 사가에 머리털은 위쪽에 몇 개 있을 뿐 거의 삭발이었으니....

 

어쨌든 우리는 오랜만에 위장 티에 카키 팬티로 통일하고 열까지 맞추어 정식 군가를 부르며 아침 구보를 나섰다. 

 

해안에서의 아침 구보는 오늘이 마지막이다. 내일은 짐을 싸야 하기 때문이다.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길을 꺾어 암자로 향했다. 

 

마지막이라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막내는 오늘 따라 표정이 좀 어두운 듯 했다. 

 

그 날 일병오장(일병최고참)이었던 두꺼비는 부두어귀에서 빨간 천을 구해와 길게 찢어 머리띠를 만들었다. 

 

철책에 붙이는 각종 팻말을 도맡아 만들던 두꺼비는 그 날도 솜씨를 발휘해 

 

노란 문양이 선명한 머리띠를 여러 개 만들어 졸병 선에서 착용하게 했다. 

 

 

'얼룩무늬 반짝이며, 정글을 간다 ~  월 - 남에 하늘아래 메아리치던 ~ ! ....  '

 

 

산자락에서 아침을 맞는 저쪽 육군병사들이 새까만 위장얼굴로 고개를 들어 우리를 본다. 

 

군가 소리는 더욱 커졌다. 

 

타군과 조우한 후 무사하려면 구보 속도는 무한정 빠르게, 목소리는 무한정 크게 내야 한다. 

 

숨이 턱에 차고 단내가 나지만 상병 선에서 분위기를 이끌며 독촉한다. 

 

고참이 쳐지면 그 고참은 인정받지 못하고 졸병이 쳐지면 그 졸병은 거의 죽음이다. 

 

이건 완전히 교육훈련 수준이다. 타군이 훈련 나온 것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점점 머리띠가 우리를 짓누른다.,...

 

 

암자에 도착해서 간단히 피티를 끝내고 10분간 쉬어 시간을 가졌다. 

 

허락을 받은 막내는 할머니스님을 만나려고 암자로 들어갔다. 

 

예비대로 가야 하니까 인사라도 하려나 보다 여겼다. 

 

대열을 갖추고 복귀하려고 할 때까지 막내가 나오지 않자 두꺼비는 일병오장의 임무상 막내를 챙기러 암자로 들어갔고 

 

곧이어 누구 목소리인지 구별이 안되는 격앙된 목소리가 뒤섞여 암자에서 들렸으며 욕설도 들린 것 같았다. 

 

우리는 모두 암자 쪽을 주시했고 상병선에 한 두 명이 튀어 올라갔다.

 

 

 

두 명이 쪽문 앞에 다다랐을 때 문이 열리며 막내와 두꺼비가 나오고 할머니 스님이 뒤따라 나왔다. 

 

모두가 상기된 얼굴이었으며 할머니 스님은 매우 침통한 표정이었다. 

 

할머니 스님의 얼굴에서 표정의 변화를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전혀 예전 같은 느낌이 아니었다. 

 

표정에서 매우 힘이 전해지는 이상한 느낌이었다. 

 

평온했던 할머니의 얼굴에서 힘을 느꼈을 때의 이상한 기분은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메스꺼움으로 다가왔다.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 고참들과 분대장은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대원들을 정리해 복귀했고 

 

다시 단내 나는 구보로 위장얼굴들의 시선을 통과하여 소초로 돌아왔을 때는 

 

모두가 사소했던 말다툼 쯤으로 여기고 부대 이동을 위해 부산하게 움직였다. 

 

나는 두꺼비와 막내를 조용한 곳으로 불러냈다. 

 

조금 망설이다가 막내의 신병이라는 입장을 고려해 돌려보내고 

 

두꺼비에게 당시의 상황을 물었다. 

 

 

두꺼비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이상한 부분이 많았다. 

 

두 사람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흥분해 있었고 막내는 답답하다는 투였고 

 

할머니 스님은 굉장히 화가 나서 알아들을 수 없는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고 했다. 

 

평소와 너무 다른 할머니 스님의 태도와 도대체 막내는 뭐 때문에 답답하다는 말인가?

 

 

모두들 정신없이 바쁜 부대 이동 준비중이었고 간부들 몰래 구보장소를 암자로 했기에 떠들고 다닐 일도 못되었다. 

 

그러나 나는 너무나 궁금했다. 

 

평소 의구심이 일 정도로 특이한 분위기였던 할머니 스님의 정체도 궁금했고 

 

더욱이 화난 표정에서 느껴지던 알 수 없는 메스꺼움은 그 불행한 사건을 예감하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물론 그 때는 몰랐지만. . . . . 

 

 

 

사건은 부대 이동이 계획되었던 날의 새벽에 일어났다.

 

막내가 없어진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위치 확인 불능이었으며 쉽게 말하면 탈영이었다. 

 

새벽근무교대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실탄을 수령하지 않아서 당직병이 찾아보았는데 

 

내무실은 물론 소초 내 어디에도 없었다는 것이다. 

 

bmnt (위쪽 용어설명 참조)가 지나고 전원철수를 할 무렵 본부중대로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중대장님이 들이닥쳤다. 

 

오랜 세월이 훌쩍 지난 일이라 기억을 되살리며 조심스레 쓰다보니 

 

중대장님께 보고는 누가 했는지, 암자 쪽으로 아침 구보한 것은 어떻게 아셨는지 잘 알 수가 없다. 

 

또 시간대별로 숨막히는 전개 상황을 그대로 되살릴 수 없음이 아쉽지만 그날 아침은 정말 폭풍의 아침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만 이동하는 것이 아니고 수십 군데로 흩어져 있던 대대병력이 예비대로 집결하고 

 

예비대의 병력은 다시 수십 개의 단위로 쪼개져 동시에 우리가 비운 자리로 들어와야 했기에 

 

그 날 아침은 막내의 사건이 없었어도 정신없이 돌아가야 할 판인데 탈영사건이 터졌으니...  

 

 

 

부대 이동은 연기되었다. 분대장을 통해 전해듣기로는 6시간 정도 사건을 은폐하고 자체적으로 찾아본 다음 

 

상부에 보고하려 했으나, 아침을 먹은 후 이동을 시작하여 점심은 예비대에서 먹고 

 

저녁 식사 전까지 예비대 입교를 완료하는 것이 계획인지라 중대장님 입장에서도 매우 난감해 했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상부에 보고가 되었고 이삿짐들이 산처럼 쌓인 소초 앞마당으로 보안대 지프가 들어온 것은 

 

우리가 아침 식사를 마친 직후였다. 

 

 

나이가 들어보이는 중사 한 명과 사복 한 명이 내렸다. 

 

그들이 중대장님과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모른다. 

 

그들은 돌아갔고 중대장님은 각 소대원들을 최소 인원만 남기고 모두 우리 소초로 집결시켰다. 

 

외곽은 벌써 검문이 실시되고 인근 부대에 협조도 끝났다고 했다. 

 

소초를 둘러싼 야산과 근처 포도밭 등을 자체적으로 수색하기로 결정이 난 듯 했다.

 

각 소대의 고참들은 투덜거렸다. 

 

작년 11월 사격교육기간에 갑자기 사라진 태권도 교관 때문에 교육을 중단하고 사흘 밤낮을 헤매던 기억이 떠올랐으리라. 

 

그 때 나는 졸병이었다. 

 

헬기까지 동원해 확성 기를 매달고 탈영자 모친의 육성을 틀어놓던 기억이 선명한 작전이었다. 

 

결국 추위에 찌든 채로 고구마 몇 개를 손에 쥐고 바위 밑에서 시체로 발견되면서 작전은 막을 내렸었다. 

 

총부리를 쳐들고 전우를 쫒는 악몽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모두가 단독무장에 병기 들고 출발하려는데 중대장이 나와 두꺼비를 불렀다.

 

 

 

 

노련한 중대장님은 사병들의 조직 속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터였다. 

 

은근한 압력을 가하거나 반대로 회유가 필요할 때는 병장 중고참을, 

 

내부사정을 파악할 때는 일병 오장과 상병 오장을 불러 보면 거의 빠삭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냥 직접적으로 굴려버릴 때가 훨씬 많았지만 상황이 상황인만큼 신중을 기하는 눈치였다. 

 

중대장은 조용하지만 위압적인 목소리로 암자 구보에 대해서 물었고 주동자가 나라는 것도 이미 파악했다고 했다. 

 

상병 오장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중대장님이 이런 인간적인 말투를 구사하는 것이 매우 낯설었으므로 두꺼비와 나는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나와 두꺼비를 상대로 막내의 탈영에 대한 별다른 정보를 얻어내지 못한 중대장님은 

 

암자구보에 대한 책임에 몇 가지 죄목을 더 붙여 탈영자 수색에서 우리를 열외시켰고 우리는 사색이 되어 버렸다. 

 

해안 주둔시 근무나 작업에서 열외되는 경우는 휴가와 기합 딱 두 가지였다. 

 

그런 상황에서 휴가는 상상할 수 없었으니 남은 것은 기합뿐이었다.

 

 

 

해안 소초간의 간격은 약 3km 쯤인데 2소대를 거쳐 3소대까지 왕복하면 약 12km 였다. 

 

군기 교육대에 보내지 않는 조건으로 모든 근무와 작업에서 열외시키며 일주일을 뛰게 하는 이 기합은 

 

완전무장에 각 소대의 확인 도장을 받으며 하루에 3회를 시켰다. 

 

물론 시간은 충분히 주었지만 약간의 옵션 메뉴(판쵸구간 적용, 식사시간 단축, 새 워커 적용 등)만 추가하면 

 

고통이 몇 배로 불어나므로 무사히 마쳤다는 것만으로도 인근 대대까지 소문이 났었다. 

 

그 해 초여름에 수통에 술을 넣어 다니던 전라도 출신의 한 고참이 그 기합을 받던 몰골은 떠올리기도 끔찍할 정도였다. 

 

대원들이 모두 야산으로 흩어질 때 두꺼비와 나는 무장을 말았다.

 

(당시만 해도 배낭식 군장은 큰 훈련 때만 나왔음) 비누칠한 보급양말, 길이 잘든 워커, 사각 면팬티 등 

 

무장구보에 적합한 것들을 두꺼비가 챙겨왔고 탄창낭에는 수건과 초컬릿

 

(이 때 효과를 실감하여 제대 후에도 등산갈 때 반드시 챙김)을 양쪽에 나누어 넣었다.

 

주위의 무수한 동정의 눈길을 받으며 중대장님께 신고하고 일주일간의 지옥의 구보를 출발했다. 

 

 

첫째 날과 마지막 날이 가장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우리는 천천히 뛰었다. 

 

칠면초(염분이 강한 갯벌에서 자라는 거칠고 붉은 풀-염생식물-)가 널려있는 아득한 간척지를 통과해 

 

2소대 소초가 올려다 보이는 000초소를 지날 때까지 우리는 아무 말도 안 했다. 

 

2소대에서 도장을 찍고 3소대로 향했다. 

 

외로운 섬 00도가 바싹 다가왔다가 천천히 멀어진다. 

 

바다가 강처럼 느껴진다.  

 

000초소를 지나면 가파른 고개다. 

 

넙적다리가 당겨오고 입안의 침이 끈적거린다. 

 

높다란 주간초소에서 3소대 체질선임이 후임을 시켜 엉덩이를 까고 우리를 놀린다. 젠장....

 

3소대 소초는 대원들이 수색작업에 동원되고 분대장이 남아서 책임지고 있었다. 

 

그는 부산사람이었는데 나와는 입대 동기다. (드물게 병과 하사관의 입대날짜가 겹친다 하후1**기) 

 

반색을 하며 냉수를 퍼 준다. 반환점 도장을 찍을 때 시간을 좀 여유있게 해달라는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돌아올 때  2소대를 지나자 두꺼비가 쳐지기 시작했다. 

 

놈의 체격은 나보다 훨씬 좋았지만 구보는 잘 못했다. 

 

눈치를 챈 내가 웃으며 '10분간 쉬어'를 결정했다. 

 

칠면초를 뜯어다 질퍽한 갯벌 위에 깔고 무장과 병기를 내려놓았다. 

 

멀리 00도 옆으로 고깃배가 물거품을 내며 지나갔다. 

 

두꺼비가 총열 덮개를 분리하더니 안쪽에 납작하게 붙여놓았던 담배 한 개를 권한다. 

 

그 분위기에도 챙겨오다니.....기진 맥진한 상태인데도 기합 든 녀석의 모습이 맘에 들었다. 

 

극구 사양하는 녀석과 억지로 나누어 피웠다. 

 

초컬릿도 꺼내 먹으며 땀이 좀 사그러 들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일어나려고 할 때였다.

 

 

"저....  .저기 . . ."

 

 

그 동안 아무 말도 없던 두꺼비가 할 말이 있는 눈치였다. 

 

나는 녀석이 감히 천천히 뛰자는 말을 못해서 그러나 싶어서 복귀 시간이 충분하다고 말해주었다.

 

 

"그게 아니고... ..말임다 .. 그게.."

 

 

다른 게 있는 것 같았다.

 

 

"할머니 스님이 좀 이상한 것 같슴다."

 

". . . . . ?!"

 

 

나는 시계를 보았다. 

 

15분 이상 여유가 있었다. 얘기를 듣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놈에게서 들은 얘기는 의외의 내용이었다. 

 

막내하고 할머니 스님하고 언성을 높였던 날 쪽문으로 뛰어 들어갔던 두꺼비는 

 

할머니 스님이 막내에게 욕설을 하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고 했다. 

 

또 다시 속이 메스꺼워지는 것 같았다. 

 

두꺼비 놈이 내게 부탁을 하나 해도 되냐고 어렵게 물어왔다. 

 

일병이 상병 오장에게 부탁을 한다는 것은 당시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기에 

 

놈이 지금까지 10여km를  말없이 뛰면서 어떤 형태로든 번민이 있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두꺼비 놈의 부탁은 힘들더라도 오늘밤에 시간을 내 달라는 것이었다. 

 

그 암자로 가서 살펴볼 것이 있다고 했다. 

 

구보는 식사를 마치고 1시간의 휴식을 가진 후 시작해서 다음 식사 때까지 1회로 한정되어 있기에 

 

오후까지 2회를 마치고 저녁 식사를 끝내면 야간에는 좀 수월했다. 

 

우선 땀이 덜 났고 옥상에서 망원경으로 우리를 살필 수 없기에 

 

야간 근무 나온 각 초소에서 많은 보급(물, 초컬릿, 담배 등)을 받으며 뛸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마산출신 후임이 낮에 부두에서 자전거를 훔쳐와 평탄코스에 배치하여 야간에 사용한 것은 두고두고 전설이 되기도 했다. 

 

우리는 야간 구보 후 소대장님 신고를 마치고 수색여파로 어수선한 내무실로 들어가 막내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헌병대에서 수사관이 나와 소대원들을 대상으로 막내의 최근 동향을 개별심문 했는데 아무런 특이점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물론 암자에서 할머니 스님과 말다툼 한 얘기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고 했다.

 

 

우리는 근무에서 열외되어 있었으므로 야간에 빠져 나오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었다. 

 

밤 10시가 넘었을 때 두꺼비가 나를 깨웠다. 

 

온몸이 뻐근했지만 따라 나섰다. 

 

들킬 것을 우려해 구보코스를 비껴 올랐다. 

 

훈련 나왔던 육군 병사들은 보이지 않았다. 

 

암자 근처에 이르자 두꺼비는 미리 생각해 둔 듯이 어둠 속에서도 익숙하게 암자의 뒤편이 빤히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나를 인도했다. 

 

우리는 때아닌 매복자세로 쪽문과 뒤뜰을 살폈는데 두꺼비 놈의 말로는 분명히 뭔가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알 수 없는 호기심에 오긴 했지만 대체 뭘 알아내려고 이러고 있단 말인가. 

 

내심 내일의 구보가 걱정되었다. 

 

거의 한 시간 쯤 엎드려 있어도 아무런 징후가 없자 조바심이 난 내가 좀더 가까이 가 보자고 할 때였다. 

 

뒤쪽의 판자 문이 열리면서 누가 나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할머니 스님이었다. 

 

뭐라고 낮게 중얼거리는데 안에 누군가 있는 듯 했다. 

 

우리는 촉각을 곤두 세웠다. 

 

갑자기 어릴 적 과수원 서리를 할 때 기억이 났다. 

 

그러나 그 때와 전혀 다른 것이 있었다. 

 

삐죽이 열린 판자 문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받아 완연히 드러난 할머니스님의 모습이 자꾸만 역겨움을 느끼게 했고 

 

왠지 모를 불안감으로 입술이 마를 지경이었다. 그 때였다.

 

 

'어 !!! ? ........ 뭐야? 저거 !....'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소리를 낼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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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길어지니 보시는 분들의 편의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다음편에 계속.....

 

 

 

해병대 해안초소와 할매스님 이야기 2

 

 

어제, 오늘 지방에 다녀오느라 이제서야 자리에 앉았네요. 

 

밑에 1편에 이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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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스님은 판자 문을 등지고 암자의 뒤뜰에 소변을 보러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 . . . 

 

그런데, 할머니스님이 선 채로 바지춤을 내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오줌발을 내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믿어지지 않아서 자세히 살펴보았으나 분명히 할머니 스님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할머니 스님은 할머니가 아니었다. 

 

명치끝이 답답해지며 목젖이 근질근질 해졌다. 

 

쌓여있던 메스꺼움이 목울대를 넘어오는 것 같았다.  

 

두꺼비 놈은 의외로 담담한 것이 뭔가 짚이는 게 있었던 모양이었다. 

 

할머니 스님, 아니 저 사내와 막내의 탈영과는 뭔가 연결 고리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심증을 굳힌 채 

 

우리는 일단 철수하기로 했다. 

 

소초 입구까지 와서 눈치를 보다가 두꺼비에게 입 단속을 시킨 후 근무 철수자들에 섞여 내무실로 들어갔다. 

 

기합기간 중 암암리에 조달된 술을 심야에 마시는 것은(물론 소량이었지만) 초급 분대장 이하 사병들 사이에 암묵적인 특권이었기에 

 

아무도 우리가 소초를 이탈했었다고 의심하지는 않았다.

 

 

 

다음날 밤은 지쳐서 도무지 일어날 수가 없었다. 

 

수색작전은 연일 계속 되었고 그 넓이를 더욱 넓혀 갔다. 

 

오히려 소초 근처는 조용해졌다. 

 

그 다음날 저녁 구보까지 마치고 나서 두꺼비와 나는 서로를 보며 깜짝 놀랐다. 

 

눈 밑이 쑥 들어가고 안색이 새까맣게 변했다.

 

 ibs 교육 2주차쯤 지났을 때 같았다. 

 

몸은 늘어지는데 머리 속이 자꾸만 암자로 향하고 있었다. 

 

밤이 이슥해서 말을 꺼내자 두꺼비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이 따라나섰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을 걸으며 구보의 고통이 끝나기 전에 암자의 의혹을 풀어야만 할 것 같은 이상한 의무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무모한 일이었다. 

 

젊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해석하고 있지만....

 

 

 

우리는 일단 전번에 엎드렸던 곳에 자리를 정했다. 

 

잠시 망설이다가 암자 가까이 붙어보기로 했다. 

 

만약 들키면 얼굴만 조심하고 무조건 사라져 개별적으로 복귀하기로 결정했다. 

 

굴뚝 옆에 붙어선 우리는 창문을 통해 들려오는 대화를 듣고 또 한 번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할머니 스님으로 알고 있던 그 사내는 암자 안에 여인을 감추어 놓고 있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사내의 목소리는 40대 중반 정도로 추정되었고 알 수 없는 메스꺼움의 정체도 풀리는 순간이었다. 

 

삭발에 특이한 외모를 가진 40대 중반 남자가 할머니 목소리로 말을 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인의 목소리는 매우 어리게 들렸는데 나이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문제는 둘의 대화 내용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둘의 관계가 평범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동거관계는 분명한데 사내의 말투는 여인을 핍박하는 분위기였고 

 

여인은 기가 죽어 있음이 역력히 드러남을 느낄 수 있었다. 

 

 

돌아오면서 나는 그 남자의 정체에 대해, 그저 어린 여인을 데려다 감추어 놓고 애정 행각을 벌이며 

 

중생을 우롱하는 돌팔이 까까중 정도로 일단락 지으려고 했었다. 

 

적어도 두꺼비 녀석이 막내의 소초 이탈 사실을 털어놓기 전까지는 그랬다. 

 

두꺼비의 말에 따르면 막내는 암자에 처음 구보갔던 뒤로 자꾸만 암자에 가보고 싶어했으며 

 

마음 좋은 일병 오장이었던 두꺼비는 아무도 몰래 막내의 암자행을 방조했었다는 것이다. 

 

두꺼비도 처음에는 어린 막내가 할머니 스님에게서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는 것쯤으로 여기고 

 

일병 오장으로서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었다고 했다. 

 

그러나 마지막 구보가 있기 전날 막내는 매우 초조해했고 

 

다음날 암자에서 말다툼을 직접 목격한 후에는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느꼈다고 했다. 

 

 

암자의 쪽문 안쪽은 가마솥과 양은냄비가 아궁이 위에 걸려있는 부엌이었는데 

 

막내는 부뚜막에 앉은 자세였고 할머니 스님은 구부리고 서서 막내의 옷섶을 움켜쥐고 욕설을 내뱉다가 

 

두꺼비가 뛰어들어갔을 때 황급히 놓았었다는 것이다. 

 

그 때 할머니 스님이 부엌에서 방 쪽으로 난 조그만 창호지 문 쪽을 흘낏거리며 뭔가 들킨 듯이 놀라던 것도 

 

방안에 있던 여인 때문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고 했다. 

 

 

막내에 대해 가장 잘 파악하고 있던 두꺼비는 아무리 생각해도 막내의 탈영 이유를 알 수 없어 고민하다가 

 

생각이 암자에 미치자 나에게 어려운 부탁을 하게된 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여인의 존재를 연결고리에 끼워넣지 않으면 안되게 된 것이다.

 

 

 

다음날 우리가 나흘째 구보를 끝내고 복귀했을 때 분대장은 탈영자 수색작전이 잠정 중단되었음을 말해 주었다. 

 

이미 위수지역을 벗어났거나 실종된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부대 이동문제도 맞물려 있어 오래 끌 수도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심신이 지칠대로 지친 상태에서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중대장님께 보고해서 암자를 수색해 보자고 할까 생각도 했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데다가 우선 수색하자는 마땅한 이유가 없었다. 

 

가짜 땡중이 여인과 사는 것을 군대서 상관할 일도 못될 것이고 

 

중대장을 대동하고 가서 할머니 스님의 아랫도리를 까보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만약 조사가 진행된다면 한밤중에 전방에서 소초를 이탈한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영창에 갈 것이다. 

 

기합을 받고 있는 상태였기에 더더욱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날 밤 발바닥의 물집을 손보고 있는데 초번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대원들이 

 

내일은 마무리를 하고 모레 예비대로 이동하기로 결정 났다고 전해주었다. 

 

이왕 갈거면 구보기간 채우기 전에 이동할 것이지 꽉 채우고 갈건 뭐냐며 너스레를 떠는데 

 

내일은 인근 마을 이장님과 부대와 협조가 필요한 어촌계장님, 부녀회장님 등이 먹거리를 준비해 와서 일종의 부대 위문을 온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사실 이같은 일은 관례화 되어있어서 해마다 이삿짐을 쌓아놓은 조그만 연병장에서 

 

주계(취사)의 테이블을 꺼내 늘어놓고 작은 파티(꼭 파티라고 불렀었다. 소대파티. 중대파티, 대대파티 등)를 여는 것이다.

 

 

다음날 닷새째 구보를 시작하려고 나설 때 내빈 자격으로 오신 중대장님께서 

 

부대 이동이 너희를 살렸다며 이틀 더 남은 구보를 면제해 준다고 하셨다. 

 

뛸 듯이 기뻐하고도 남음이 있어야 할 텐데 구보를 마감하는 중대장신고를 하면서도 뒤끝이 찌부둥한 것이 영 시원치 않았다. 

 

초가을 햇살이 소초 뒷덜미를 나른하게 만들 때쯤 위문단이 왁자하게 들이닥쳤다. 

 

우리는 차광커튼을 걷고 아이들처럼 창에 매달려 그들 손에 들린 음식에 광분했다. 

 

나와 두꺼비가 소란스런 대원들 겨드랑이 사이로 동시에 눈길이 마주친 것은 

 

위문단 속에 끼어 자애로운 할머니 스님의 표정으로 나타난 그 사내를 본 직후였다.

 

 

 

우리는 곧바로 소대장 벙커(전방에선 소대장실을 그렇게 불렀다)로 뛰었다. 

 

마음이 다급했다. 

 

행사 절차를 메모하고 있던 소대장님께 우리 발바닥을 들어 보여주었다. 

 

더이상 말이 필요없었다. 

 

움푹 들어간 눈, 된장국 끓는 모습의 물집이 겹쳐 굳은 발바닥. 

 

소대장님은 군말 없이 우리를 위문 행사에서 열외시켜 주었다. 

 

대신 옥상이든 뒤쪽 논이든 싸이드(짱박히다와 비슷)까고 있으라고 했다. 

 

세 시간 남짓한 시간이 생겼다. 절호의 기회였다! 

 

말을 안 해도 두꺼비는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좀 무모한 짓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내일 이동하면 그만이라고 애써 다짐했다.

 

 

 

우리의 두 다리는 기합주간을 거치면서 이미 예비대의 다리가 되어 있었다. 

 

암자까지 순식간에 갔다오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악기충천으로 뛰었다. 

 

암자 근처에서 잠시 동정을 살피다가 두꺼비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두꺼비를 들여보낸 것은 여러 가지를 감안한 나의 판단이었다. 

 

적당한 곳을 골라 사주경계를 하며 두꺼비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생각을 가다듬었다. 

 

만약 막내의 실종이 이 암자와 관련 있다면 두꺼비가 가져올 일말의 단서는 여러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사내의 정체를 눈치챈 막내와의 다툼 중 우발적 살인? 

 

여인의 존재가 알려지는 게 두려운 나머지 계획적 살인? 

 

아니면 막내 놈이 너무나 고달픈 나머지(우리부대의 졸병생활은 정말 힘들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암자의 사내에게 은닉을 부탁?.....

 

 

어쨌든 여인은 무언가를 알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열쇠를 쥐고 있을 것만 같았다. 

 

 

차 한 잔 마실 정도의 시간도 안되어 두꺼비가 암자 뒤의 쪽문으로 살며시 나오는 게 보였다. 

 

생각보다 여유 있는 복귀 시간을 확인하고 숲 속에 녀석을 끌어 앉혔다. 

 

궁금해서 조급증이 날 정도였다.

 

 

 

" 야. 야 뭐라고 물어 봤냐?. 뭐 건진 건 있냐?"

 

"그게.... 말임다..."

 

 

 

녀석은 대답대신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내게 건넸다.

 

 

 

"야! 이거?.. 그 때 그거 아냐?"

 

 

녀석이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보며 대답했다.

 

 

"넵, 그렇슴다. 기념으로 받았담다."

 

 

두꺼비가 내민 것은 우리가 얼마 전 구보할 때 머리에 둘렀던 머리띠였다.

 

녀석이 여인에게서 들은 것을 조합해 분석해 보았다. 

 

우연히 앳된 여인을 보게된 막내는 어린 마음에 끌렸던 모양이었다. 

 

상황이 끝까지 할머니인 척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가 부엌에서의 욕설이 있던 날이었다. 

 

부대 이동을 앞두고 속이 탄 막내 놈이 사건이 있던 날 새벽에 소초를 이탈하여 암자를 찾았던 것 같다. 

 

담담히 머리띠를 건네 준 것으로 보아 여인은 그 뒤의 일은 모르는 것 같았다. 

 

돌아오면서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헌병대의 조사에서 암자는 완전히 배제되어 있었다. 

 

무슨 빌미로 종결되어가는 수사에 암자를 끌어들인단 말인가.

 

 

 

우리가 복귀했을 때는 위문잔치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얼큰해져서 평소의 모습에서 벗어나 반말로 마구 떠들어댔고 

 

졸병들은 파티 후의 집합에 대비해(모든 행사 후에는 항상 집합) 뒷정리를 빠르게 해 나가고 있었다. 

 

얼렁뚱땅 뒤섞여 움직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한 쪽이 시끄러워졌다. 두꺼비였다. 

 

암자에서 돌아올 때부터 침통한 표정이었던 녀석이 좀 불안해 보이기는 했었지만 

 

인자하게 음식을 정리하던 할머니 스님의 멱살을 움켜잡고 폭발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우선 다급해진 것은 나 자신이었다. 

 

사건 전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영창을 면치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여러 사람의 손에 짓눌려 제압당한 두꺼비와 본색을 들킨 사내가 어정쩡하게 서있는, 

 

족구장보다 조금 더 큰 소초 앞마당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헌병대에서 득달같이 달려왔을 때 오후 한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두꺼비는 나에 대해서 일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이 부분에서 나는 비겁했다. 

 

내 인생에서 호적등록에 빨간 줄은 면했어도 양심에 붉은 줄은 면치 못할 것이라는 것을 나는 인정한다. 

 

 

암자에 대한 수사 결과, 예상대로 그 사내는 전과자였고 

 

그 여인과는 치정관계에 있었으며 

 

여인의 진술에 의해 막내와 그 여인 사이에 애정이 싹텄음도 밝혀졌다. 

 

그러나 사내가 막내를 어찌했다는 법적 증거는 없었으며 

 

현행법상 사내의 죄목은 일종의 가짜 중 행세를 한 민생사기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두꺼비는 수사 과정에 중 암자의 잿더미에서(암자는 아궁이에 불때는 부엌이었음) 발견된 워커(군화) 뭉치를 지목했고 

 

사내는 근처에 훈련 나온 육군 병사들이 버리고 간 것들을 주워모아 화력으로 사용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사실 그 워커 조각들은 모두 육군용 군화들이었다. 

 

그 외에는 아무런 증거도 발견되지 못한 채 두꺼비는 소초 이탈, 영내소란, 대민폭행, 무고죄 등으로 15일 영창을 갔다. 

 

그나마 중대장님의 진정서로 감면된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부대 이동을 했고 예비대 정비가 완료되고 기초체력 향상기간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꼰뽕(일명 더블백)을 메고 초췌한 모습으로 두꺼비가 돌아왔다. 

 

내가 따로 불러 위로하는 자리에서 두꺼비는 위문 잔치가 있었던 날 암자에서 돌아오면서 까발릴 결심을 굳혔으며 

 

나에게 상의도 없이 결행한 점을 오히려 용서해 달라고 했다. 할 말이 없었다. 

 

그 때 녀석이 한 말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때 암자에서 발견된 타다 남은 워커 중에서 막내의 *반짝이 워커*를 분명히 보았슴다. 

 

 주장해봐야 증거도 되기 어렵고 괜히 나만 더 불리해질 것 같아서 그냥 있었슴다. 

 

 막내 새끼만 불쌍한 검다....... 어린 새끼가 얼마나 외로웠으면...... 그 여잘 찾아 갔겠슴까?...."

 

 

두꺼비는 목이 메는지 말끝을 맺지 못했었다.

 

그 해, 유난히 커 보이는 미류나무들이 넓디넓은 예비대 연병장 가에 늘어서서 늦가을 바람에 잎을 떨구고 있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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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 워커*

 

세무워커가 낡아서 못 신게 되면 발등과 뒤축 부분에 가죽 넓이만큼 구두약을 진하게 발라 광을 낸 후 

 

정글화처럼 만들어 졸병 선에서 신곤 했는데 우리는 그걸 반짝이라고 불렀다. 

 

일병 오장은 소대원 전체의 워커를 식별할 수 있는 위치였다. 

 

매일 소대원들의 워커 손질을 책임졌으므로...

 

 

 

* 필자의 변 *

 

 

제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서둘러 마감하다 보니 끝에 와서는 건조한 서술형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원래 계획에는 기괴스런 할머니 스님의 살인 장면과 아궁이에 시체를 넣는 나레이션이 있었으나 제외했고, 

 

수사의 급반전 상황들 묘사와 쓸쓸하고도 멋진 뒷마무리를 못해서 개인적으로 좀 아쉽긴 합니다.

 

 

 

* 두꺼비는 경남에서 조그만 사업을 하며 성공했고 

 

  만약 그가 영창생활이 원인이 되어 현재 불우하다면  제가 뻔뻔스럽게 이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입니다. *

 

 

 

출처 : 짱공유닷컴 ... 소주정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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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2.3 12:56
  • 2019.12.3 15:10

    이 소설은 앞되가 맞지 않는다

    결국 추위에 찌든 채로 고구마 몇 개를 손에 쥐고 바위 밑에서 시체로 발견되면서 작전은 막을 내렸었다

    중간에 이런 대목이 있는데

    막내를 원래 계획에는 기괴스런 할머니 스님의 살인 장면과 아궁이에 시체를 넣는 나레이션이 있었으나 제외했고

    마지막에 이 말은 또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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