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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배우 다정의 기구한 삶

익명_8610e62016.11.03 23:47조회 수 4201추천 수 9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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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는 아니지만 가끔 작년사진 올라오는데 볼때마다 그때생각나고 기분도안좋고 대인기피증이야 내가 뭐 사람별로 안좋아해서 더그런것도 있지만 어쨋든 나는 이제 그쪽계열이랑 관계도없고 더는 그런쪽으로 안갈거라서 글쓴다 웃대는 내가 아는사람이 하길래 뭔가해서 들어가봤다가 내코드랑 맞아서 시작햇다

최근사진 한장 인증하고 저번달에 이거때매쓴 내인생얘기쓸테니까 읽을사람은 읽고 귀찮은사람은 읽지말고 스트레스받아서 다크가 저만치내려왓다



/길다/



나는 어릴때부터 자살에 대해서 줄곧생각해왔다. 지금도 여전히 그 생각이 자리잡는다는건 문제일까 아닐까.

자살은 다시 삶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는 원동력이 되기도한다. 나도 그거 하나로 지금까지 살아있는거같다. 정말 죽고싶었을때 그리고 그런상태에서 정말 죽겠다싶었을때 나는 진짜 죽어도좋겠다 라는 생각을했다. 빠른치료로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기도하지만 살아있다는것에 너무 자괴감을 느꼈던 날이기도했다. 어차피 죽을거 해보고싶은거하면서 살자라는 마인드를 확고히 가지게 됐지만 그게 몇년이되고 더이상 하고싶은것없이 삶을 연명해나가야한다는 책임감이 생겼을 때 느꼈던 자살충동에 대해서는 지금 죽을거면 그냥 걱정없이 편하게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생각한 자본주의의 문제에 대해서 나는 당연히 이 시대와 이 나라에서 태어났으니까 그게 당연한것이라 여기고 내가 내삶을 개척하고 살아나가야한다 능력을 키워야한다 라고 굳게 믿고있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자본주의는 누구나 알듯이 빈부격차를 만들어내고 계속되는 빈부격차는 세대에서 크게 역전되지않는다. 




나는 학생때 내 사정을 아는 친구들마저 불쌍해하는 흙수저였기도했고 가정의 환경마저 좋지않았다. 

내가 8살정도였을때는 엄마아빠가 그릇을 던지며 항상 싸웠고 일주일에 몇번씩은 누구랑 살거냐고 나한테 선택을 강요했다. 나는 진지하게 누구와 살아야 내가 더 나은 삶을 살수있을까 생각했던 아이였다. 엄마는 항상 내앞에서 울고있었고 아빠욕을했다. 

초등학생 고학년때 결국 엄마가 집을 1년동안 나갔고 나는 이혼서류에 도장찍힌것을봤었는데 은연중에 알고는있었지만 내눈앞x던 서류는 조금더 충격이었고 아빠의 휴대폰에서 엄마에게 가장잔인하게죽을수있는10가지를 보내며 엄마를 저주하는 문자를 보낸 기록을 보았다. 아빠를 아빠라고 생각할수없었다. 친하지도않았고 내가 성장하던시절 내가 자고있는줄알았던 아빠가 내몸을 만졌을때 그 촉감이 나에게 너무 기분나쁘게 다가온것 또한 이유가될수있었다. 

같이 살던 할머니는 동생만 챙기고 나에게는 항상 구박을 하면서 내가 태어난것에 대한 비난을 했다. 

학교생활도 만족스럽지못했다. 

지금생각해보면 애착이없었던 나는 다른곳에서도 애착을 찾으려했지만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찾을수없었기때문에 혼자 어딘가 빠져있을때를 찾았던거같다. 그래서 당시에 하루에 컴퓨터를 많이했던거같다. 길게할때는 하루 18시간 30분은 했던거같다. 팔에 칼을대는버릇도 그때들었다. 정확한 계기는모르겠지만 그냥 피라는것에 우와 했던듯. 그러다보니까 어떻게 학교담임선생님이 집나간엄마를 눈치채고 어떻게어떻게 엄마가 들어왔다. 

중학교 올라가서는 심리검사에 자살고위험군 컴퓨터과중독? 이런게 나오니까 나는 그때 그런 사람은 대다수라고 생각했던것과 달리 한반에 2명정도 나오길래 다들 감정을 숨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왜 숨기는지 이해를 못했다. 

언젠가 엄마는 나를 정신과에 데려갔다. 근데 그때 느낌이 엄마가 타인에게 나를 설명할때 이상한아이로 만들면서 자신이 좋은엄마가 되려는 느낌이었다. 정말 내가 이상한아이가 된거같았다. 

수업시간에는 집중하지않았고 선생님들의 표적이 되었다. 

학교에서 어떤 언니를 좋아해본적도있었다. 한 4년갔다. 

좀지나서 중2때 버스기사를 하던아빠는 어떤부주의사고로인해 짤렸다. 뭐 법정가고 그랬던거같다. 아빠가 일을 할때는 엄마는 일하기싫다고 안해서 아빠가 한달에 140만원 정도 벌어오는걸로 4명이서 살아온거같다. 정확한 집사정은 잘모르겠지만 엄마는 자신이 힘들었던 삶에 대해서 아빠에게 보상받고싶어하는 사람이었던거같다. 아빠가 짤리고난후 방학때 택배를 하면서 나는 일을 도왔다. 그때는 잠깐 공부에 흥미가 생겨 좀 열심히 했다. 쨌든 다시 아빠가 중소기업에 들어가고 얼마지나지않아 바람이났고 엄마는 그걸알고 아빠를 비난하며 몰아갔다. 아빠는 엄마를 때렸다. 그러면서 두세달정도 밤에 서로 칼을 들고 위협을 하거나 물건을 때려부수거나 방에 엄마를 끌고들어가 나오면 엄마가 멍든얼굴로 있거나 동생과 내가 보란듯이 앞에서 싸우면서 누가잘못한거냐고 캐물었다. 아무감정도 없었고 제발 싸울거면 밖에서 싸워라고 시끄럽다고하고 그냥 컴퓨터했던 기억이난다. 그리고 두번째로 엄마가 집을 나갔다. 엄마랑 나는 밖에서 조금씩만났는데 이상한말밖에 안했다. 당시 내가 중3이었는데 뭐할말없냐길래 뭘말하냐니까 성폭행당한적있지않느냐 라던가 엄마는 아빠가없어서 외로워서 혼자 자위도 했다 라던가 뭐 등등. 그러고 집에가면 아빠는 나를 앉혀놓고 그 여자에 대해서 이야기하기시작했다. 나는 엄마를 사랑해서 결혼한게 아니라 해야되는줄알고 결혼했다고. 그리고 나는 지금만나는 그여자를 진짜 사랑한다고. 그여자도 사실 가정이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이해가 되는쪽은 사실 엄마가 아빠를 비합리적으로 닦달하는 모습을 더 많이봤기때문에 아빠쪽이 더 컸지만 둘다 이해가되긴했기때문에 아빠앞에서는 엄마편에서 말을하고 엄마앞에서는 아빠편에서 말을했다. 둘다 나에게 내가 얼마나 그새끼때문에 힘들었는지 모르겠냐고 넌 그년이 그새끼가 얼마나 나쁜년이고 나쁜놈인지 모른다고했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은 1도 보이지않았다. 그때는 내가 공부를 하고있을때였는데 나는 차라리 이혼을 해서 학교에서 한부모가정혜택을 받고싶었다. 겨우 설득해서 이혼접수를 하고 유예기간까지 끝났지만 결국 무산됐다. 

아빠는 내가 공부안할때는 요즘시대에 대학까지는 나와야한다라고 해놓고 공부를 시작하고 성적이 올라가고 등수가 오르니 대학안가면 안되겠냐고 나를 설득했다. 잠깐 악에 받쳤지만 금새 합리화하고 공부는 재미있어서하는거라고 혼자 생각했다. 

이혼유예기간이 끝나는날 다시 엄마아빠는 잘할거라고 합쳤지만 며칠이내 아빠가 그여자편을들면서 대학가에서 삼자대면을하며 소리치고 싸웠던 사건을 그날 둘이 나를 데리러와서는 웃으면서 얘기했다. 부모를 믿지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팔에 칼을 대지않은지 좀 됐을때 집에서는 정말 어이가 없는일이 엄마와 대화가 되지않아 서로의 갈등을 심화시켰고 엄마는 내앞에서는 비겁하게굴더니 나랑 말다툼이 생기면서 아빠가 들어오자 자신이 약자가된것처럼 굴며 내가 그렇게 행동했기때문에 나는 어쩔수없었다면서 아빠눈치를 보고는 나를 나쁜년으로 몰아갔다. 그 눈빛을 나는 아직도 잊을수가없다. 나를 딸로 생각하기보다 아빠에게 자신이 보호받기위해 나를 이용하며 눈치보며 만족감을 느끼는 그런 진짜 적이라고 해도 이상하지않을 눈빛이었다. 

아빠는 그날 집을 다 초쳐놓고 동생도 때리길래 나는 악을 쓰면서 아빠를 노려봤다. 아빠가 눈안까냐길래 나를 죽일거면 지금죽이라고 했다. 아빠는 씩씩거리면서 나갔다. 살아있는것 자체가 지긋지긋했다. 다시 칼을들고 정말 충동적으로 아무생각없이 마구 팔에 흠을내며 휘둘렀는데 생각 이상으로 깊게파여서 피가 너무많이났다. 과다출혈로 쓰러질지경이었다. 진짜 죽는게 이런기분이구나를 잠시나마 느끼면서 죽어도좋을거같다고 생각했다. 

그날 응급실에서 팔을 꿰매고 20만원이나왔다. 그 날 또한 돈 관련된 문제로 다퉜기때문에 나는 이 집에서 애물단지라고 생각했다. 그이후로 집에서 잠을 자는것마저 다른집에서 몰래 자는거같았고 냉장고에서 뭘꺼내먹을때마다 도둑질하며 훔쳐먹는거같은 기분이들었다. 집에있는게 너무 불편하고 숨이 막혀왔다. 혼자살아야한다는 생각이 너무 절실했다. 그리고 어차피 언제죽을지도 모르는데 하고싶은걸하자 라는 생각도 강해졌다.

그때부터 나는 사회에 혼자나오려고 노력했다. 집안과 부딪히는 일이 적어졌고 삶의 만족도도 올라가고있었다. 그전까지 정말 너무 땅바닥이라고 느껴졌기때문에 조금만 내가 하고싶을걸해도 나는 너무 행복했다. 하지만 공부하던 내가 갑자기 일을하고 다른것을 하기시작하니 이젠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나를 비난의 대상으로 여기고 인문계였기때문에 니가 야자를 안하는것은 다른애들에게 피해를 끼치는것이다 라는 존나 이상한말을 해댔다. 내가 안하는것에 대해서 다른사람에게 피해가 간다는것은 그만큼 그아이들이 주체성이 없고 휘둘리기 쉽다고밖에 생각되지않았는데 그게 내 잘못인가 싶었다. 어쨌든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내가 나쁜아이라고 낙인을 계속해서 시켰고 어디 마음둘데도 없어서 자퇴를 결심했다. 그냥 내가 여기서 벗어나고 혼자살수있으려면 일을해야했다. 고3때 다시 대안학교를 들어가 자퇴는 하지않았지만 계속해서 일을했다. 학생인내가 할수있는건 알바밖에없었고 그래서 더 열심히했다. 하지만 거의 매일매일 하루를 알바로 보내는 삶은 몸을 축나게했고 정신마저 공허해졌다. 조금 쉬고싶었지만 쉬면 다음달 생활을 못할걸 알기때문에 묵묵히 일했다. 

그러다가 재미로 봤던 뮤지컬과 면접에 합격하고 그냥 그러려니하고있었는데 집에서 갑자기 학교를 보내줄수도 있다고했다. 껄끄럽긴했지만 갈수있으면 좋다라고하고 내가 20살이 되던해 알바를 그만두고 서울로갔다. 3주를 찜질방에서 생활을 하다가 학교에서도 나이와 권위만 내세우며 대화가 안통하는 관련없는 선배들이 나한테 자꾸 지랄을 해서 나도 할말하고 그냥 자퇴하고 내려왔다. 다시 알바를 했다. 돈이 생길것같아 학교를 보내줄수있다고했던 말은 동생이 학교폭력에 휘말렸을때 받을수있었던 보상금에 관한 문제였는데 같은 피해자부모가 사기를 친것이여서 4000이었던 빚이 1억정도가 되었다. 지금도 엄마아빠는 폰비를 못내서 다른명의로 휴대폰을 쓰고있다. 

그때쯤되니 정말 내가 뭘해야할지 감을 못잡았다. 다른애들은 대학을 가는데 나는 일을 해야하는 상황이었고 자리잡아야 내가 살아갈수있는 상황이었다. 그럴때 반사적으로 드는건 충동이다. 어차피 이렇게된거 지금해볼수있는거해보자 라는 마음은 어디서 파생된건지는 모르겠지만 몇년동안 그러다가 지금은 지쳐서 그런생각도 나지않는다. 

일반알바를 그만두고 내가 학생때 궁금해하던 바 알바를 했다. 1층이 바였고 2층이 룸이었다. 사장말로는 1층일을 2층에서 공간만다르고 똑같은일이지만 시급은 차이가 많이난다고 하면서 선택은 니가 하는거라고 하면서 2층을 반강요했다. 2층에 올라갔다. 나는 당시 유흥문화에 대해서 아는것이 그렇게 많지않았기때문에 시키는대로했다. 초이스를 봤고 그냥 노래기계가 있는데서 같이 술을 마시며 얘기하고 노래부르는 곳이었다. 초이스가 안되면 그날 일당도 없었다. 난 일이라고 하면 뭐든 열심히했지만 그런일은 정해진 행동지침이 없었기때문에 나는 그일을하지만 일에 대한 감을 잡을수 없었고 평소에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쓰지않았지만 내가 아닌 어떤 한 유형의 느낌으로 그런 사람으로 나 자신이 그렇게 느껴질까봐 내가 없어질까봐 두려웠다. 하지만 그때쯤 교정을 시작했고 빚이 생기는걸 싫어하는 나는 교정비때문에라도 어떻게든 돈이있어야했기때문에 보다 살아남는것이 중요했다. 결국 한달정도 감을 잡았을때 잠깐 돈을 벌고 그만두겠다고 했지만 조금만 조금만 하면서 묶어놓은 돈으로 점점 출근을 강요하는 사장이랑 싸우고 돈은 버리고 나왔다. 그러고는 다시는 유흥일을 안하겠다고 본능적으로 느꼈고 몸과 정신이 피폐한 상태는 3달을 갔다. 

그 뒤 꾸준히 할수있는걸 찾다가 이때까지 힘든일만 해온거같아 사람이랑 친해질필요도 없고 일도 힘들지 않을 것 같은 마트알바를 했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 적을뿐이지 마주치는 손님수는 존나게 많았고 마트에 오는 사람들은 평소에 받는 화를 나한테 다 푸는거같았다. 조그만거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손님들의 감정이 매일 반복되다보니 나도 예민해지고 신경이 곤두서있는 상태였다. 당시에 몸도 많이 안좋았기때문에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고 몸이 부어서 제대로 서있을수도 없었다. 거기서는 매일 9시간을 일했는데 밥먹을때 잠깐빼고는 앉아있지못하게했다. 그때 같이일하는 언니가 있었는데 스폰이나 유흥에 대해서 언제한번 까내리는 식으로 말을 꺼낸적이있었는데 나는 당시 이성적으로 생각해지는게 불가한상태가되고 나는 이래도 저래도 혼자였기때문에 나를 합리화시키기 시작했다. 아 그런게있지 어차피 일이라면 나는 항상열심히하는데 나는 일하는만큼 내가 돈을 벌고싶다 같은시간을 일해도 돈을 많이 버는게 나한테 더 좋은거지않나 내가 매일 서있으면서 몸전체가 다 아픈데 그것보다 한곳만아픈게 낫지 라고 하면서 유흥알바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결국 마트알바를 그만두고 그쪽세계를 접했다. 

처음으로 먹고싶은걸 부담없이 사먹을수있었고 몸이 안아팠다. 나에대한 관리도 잘하게됐었고 돈에 대한 스트레스를 덜받았다. 하지만 사실이 아닌얘기를 하는것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나에게 가치관에 대한 혼란과 정신적스트레스는 일상생활조차 불편하게 만들었고 21일만에 그만두고 그냥 평범한일을 하는게 낫다고 생각했지만 자주 충동을 느꼈던 나는 어차피 이렇게 된거 끝까지 가보자라고 생각해서 서울도 잠깐갔다가 다시 대구에 내려와 처음보다 돈을 덜받으면서 비슷한일을 했다. 

매일매일이 허무했고 내가 살아갈 어떠한 이유나 목표가 필요했다. 그리고 나는 그 당시밖에 할수없었던 생각에 기반해 많은사람들이 나를 알게되면 금전적가치가 올라갈것이라고 멋대로 판단해버렸다. 내가 평범한삶을 살고싶다면 절대하지못했을 내 가치를 내리는 방송도 10일 정도했고 영상을 찍는 다른곳과 연락이 닿아 섣불리 계약도했다. 처음에 얼굴노출안하는 조건으로 혼자 영상하나를 찍었다. 하지만 영화쪽으로 갈수있는 선택지가 주어지는 상황처럼 보였고 그뒤에 영화계약도 있었기때문에 영화쪽으로 갈수있으면 나도 이상한영상은 찍고싶지않은게 당연하게 드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할수있으면 영화쪽으로 가려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지만 회사사정이 안좋다며 야한영상3개만 더찍자는 회사입장을 들으면서 여기 있다가는 내가 왠지 이용만 당하는 태세가 벌어질거같아 정신을 차렸을때 내려왔다. 

자기들 교육비 숙소비 미리준돈 다 내놓으라고 자기들도 손해 감수하고 책정한거라면서 150을 내놓으라는데 일커지는게싫고 빨리 회사랑 연을 끊고싶었기때문에 그때 전재산이 170이었는데 150을 줬다. 그 이후로 연락됐던 사람들이랑 얘기했을때 아무도 교육비 숙소비 안줘도됐다는 얘기만 주구장창들었다. 

그때 나는 정말 너무 지쳐서 다시는 힘이 안날거같고 일도 못해서 안해버렸다. 아예 일벌릴 일을 만들지않았다. 내 의욕과 충동이 항상 나를 좌절하는 상태로 만드는것은 나에게있어서 나를 처참하게 만드는 잔인한느낌이었다. 

두달정도 뒤에 어떠한 계기가 생겨 다시 일반 알바를 시작했다. 지쳤던 나는 있는그대로 행동했고 누구에게도 잘보이려 애쓰지도않았다. 상대방에게 별로 관심이없었다. 오면 오는대로 가면 가는대로 좋으면 좋은대로 그냥 나대로 행동했다. 그곳에서 서로에게 어필이되어 만난사람이있었는데 그냥 나는 그 자체로 만족했다. 그때 애착에 대한 관심을 가질때라 그냥 나는 니가 어떤사람이든 너를 떠나진않아 그래도 나는니옆에계속있을게 이런생각으로 그사람을 만나다보니 점점 친해지고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만나고있다. 난 걔랑있으면 친하고 편해서 계속 오래보고싶고 같이살면좋겠다 라고 생각하는데 내 삶이 다시 팍팍해지고 매일 일만하고 희망없는 삶을 살아가다보니 마음에 여유가없어지고 요새는 나하나 챙기기도 너무 어려워졌다. 지금 만나는 사람의 주위사람이 나에대해 가지는 느낌에 대해서 걔가 느낄 감정이나 상황자체가 그냥 미안하고 내가 옆에있어도 되는가 이런생각이 요새 자주 머리를 헤집어놓는다. 

이상한생각들로 여유가없으니 친했던사람에게도 친하게 대할수가없다. 내인생이 속상하고 서러웠는데 어제는 걔가 나를 토닥하니까 감정에 북받쳐서 울어버렸다.




내 과거는 언제봐도 다사다난하고 스펙타클한거같다.


누구나 유년시절은 가정에서 시작된다. 자본주의사회가 계속되서 빈부격차가 커졌을때 나는 가난한집에서 태어났는데 그만큼 나는 볼수있는것들이나 접할수있는 것들이 많이 없었고 좋은것들에 익숙해지지 못하니 능력은 내가 보이는것에 한해서만 쓸수있었고 내가 아이였을때 보고 느꼈던 세상의 감정이 그대로 내안에 구축돼 그 데이터를 기준으로 보통 세상을 바라보게된다. 자신이 옳고 그른 판단을 잘해서 건강한쪽으로 생각하게되지않는이상. 그리고 어른이되면 그걸 자신의 능력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게된다. 자본주의는 능력중심사회인데 그 능력은 세대를 타고 물려줄수있는것들이 되어버리고 그걸 유지하기위해 모두는 이기적으로 안간힘을 쓴다. 그러다보니 밑에 깔린 사람들은 그것을 받들지않으면 성장도 아닌 삶을 유지도 할수없는 어떠한것이 만들어지는거고 나는 그게 사회가됐다고 본다. 자신이 금전적으로 여유있게 살아온사람들은 없는 사람들의 생활이나 방식을 이해하지못하고 겉돈다. 그리고 자기와 같은사람들끼리 이해가되니 만나고 부류가 그렇게 나눠지는거같다. 나는 죽음에 좀더 가까워지고싶다.






요약은 그냥 이제 나를 좀나두시오
...
익명_8610e6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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