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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교정판] 마가수산

갠차나여?2015.09.07 18:07조회 수 875추천 수 1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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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터덜터덜, 슬리퍼 신은 발을 바닥에 끌며 시장으로 향하는 느릿한 걸음걸이 한 명. 
공설시장에 오신 걸 환영한다는 문구가 적힌 간판이 시장을 찾는 누군가를 반기고 있었지만 
오일장 기간이 아닌지라 시장은 썰렁하기만 했다. 

콩국에 우뭇가사리를 넣어 한 그릇씩 파는 아주머니, 
배추 겉잎을 정리한 부속물을 빗자루로 쓸어내는 채소 가게 아저씨, 
안 팔리는 튀김 위 파리를 쫓는 할머니. 

평소보다 더 가라앉은 분위기는 오고 가는 사람들이 지갑 열기를 꺼리게 하고 있다. 
오늘의 시장은 평소보다 일찍 저물어버렸지만, 곧 오일장이 열리면 밀물처럼 되살아날 것이므로 
상인들은 무덤덤하게 파라솔을 거두고들 있다. 
그 와중에 멈춰있는 한 여자의 두 발 대신 눈동자가 이리저리 구르고 있다. 

' 뭐 살지 정하고 나올 걸 그랬나, 막상 오니까 별생각 없네…. 그냥 라면이나 먹을까. ' 

동네에 산 지는 오래되었지만 부모님이 귀농하신 뒤에야 시장에 와서 장을 보게 된 예지는 
입맛 없는 저녁을 뭐로 때울까 하는 소소한 궁리를 하며 한참을 고심했다. 

' 살 빼려면 치킨은 참아야겠고…. 있는 반찬이래 봐야 그 나물에 그 밥이라 질리고…. 아~ 엄마밥이 좋았어. ' 

시장 꼬마족발이 눈앞에 아른아른 거리고, 
조금만 걸어가면 나올 왕만두가 머릿속에서 모락모락, 

' 참자! 내년 여름을 생각해! 먹어봤자 다 살이야 살! 물도 조심해서 마실 판에 무슨 생각하는 거야. '

결국 유혹을 떨쳐낸 예지가 군침을 급히 집어삼키며 한 바퀴 돌아온 시장을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올 때와 달리 잡생각을 떨치기 위해 성큼성큼 걸어가던 예지는 늘 봐오던 곳이지만 여전히 이질적인 그림을 
보며 잠시 걸음을 늦췄다. 

' ... 여긴 볼 때마다 기분 이상해…. ' 

어둑어둑해진 저녁을 밝히기엔 밝기가 한참이나 모자란 작달막한 전구 몇 개가 희미하게 비추고 있는 가게. 
색이 몹시 바랜 간판엔 '마가수산'이란 네 글자가 투박하게 적혀있다. 
그 흔한 전화번호 하나 적혀있지 않다. 
검녹색 물곰팡이가 두껍게 피어오른 수조가 밖에 너저분하게 널려있고, 
가게 내벽으론 끈끈한 점액질이 소나무 송진처럼 주룩주룩 흘러내리고 있는데,

자세히 보면 벽도 온전한 벽이 아니라 생고기로 반죽한 듯한 두께와 질감을 가지고 있었다. 
물곰팡이와 비릿한 내장이 섞인 냄새는 차라리 냄새에 빨리 익숙해지는 편이 더 자유로워지는 방법이었고, 
그런데도 끝까지 익숙해지지 않는 게 있다면 수조마다 가득 들어찬 이름 모를 해산물들이었다. 
가시가 15cm는 넘게 뻗어나온 줄무늬 물고기들은 서로를 찌를 때마다 경련하며 몸싸움을 벌이느라 수조가 찰랑거리고, 
저마다 색이 다른 군소들은 거품 발생기 옆에 껌딱지처럼 한데 달라붙어 거대한 한 마리의 군소 덩어리를 이루고 있었다. 
그 외에도 등이 Z자로 굽은 물고기는 선두에 선 한 마리를 따라 줄줄이 수조 안을 맴돌고, 
지네처럼 다리가 많이 자란 갑각류들은 바닥에 가라앉은 죽은 물고기를 뜯느라 그 수많은 다리가 정신없이 춤추고 있었다. 

' 으…. 완전 극혐~ 저걸 진짜 사 먹는 사람들이 있나? 가게도 어둡고…. 상품도 이상하고…. ' 

느려졌던 발걸음을 더 빨리 재촉하며 예지는 마가수산 앞을 벗어났다. 
자취하느라 스스로 장을 보게 되면서부터 매번 보게 되는 수상한 해산물 가게. 
예지가 가장 장을 보기 좋은 길목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어서 굳이 쉬운 길을 놔두고 멀리 돌아가지 않으면 
어쨌든 한 번은 지나가게 돼 있는 위치였기에 올 때 언짢게 여기면서도 한 번도 피해 본 적은 없었다. 

쿨럭, 쿨럭, 
예지의 목덜미 뒤에 들려오는 기침 소리는 마가수산 아저씨의 것이었다. 
얼굴에 따개비와 같이 딱딱해 보이는 검버섯이 피어있는 사람으로 늘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 
언제 해가 이렇게 저물었을까, 
결국 장은 보지도 못한 채 배만 쫄쫄 굶긴 셈이 되었다고 불평하며 예지는 서둘러 시장으로부터 멀어져갔다. 


2. 
" 이게 계집애 사는 집이야, 머슴 사는 집이야? 살아생전에 청소기 한 번을 안 돌려요, 
시집갈 년이 혼자 사는 살림 하나 못 해서 어떡할래? 응? " 

" 아, 엄마! 놔둬! 청소할 거라니까? 아, 공부하느라 좀 놔뒀다가 한 번에 치우면 되는 거지, 안 치울 것도 아닌데! " 

" 네 오빠는 친구랑 둘이 사는 기숙사 방도 지가 나서서 깔~끔하게 정리해놨더라, 네 오빠는 학교 다닐 때 
빨래도 개 놓고 그랬는데 너희는 어떻게 남매가 오빠는 부지런하고 여동생이 게으르냐? 나와봐! 소파 닦게! " 

" 오빠 기숙사는 좁고 우리 집은 옛날에 다 같이 살던 집이라 넓으니까 그렇지! 내가 집에 온종일 있어? 
아야, 아야, 왜 때려! " 

" 철 좀 들어라, 철 좀! 으이구 이 철없는 걸 어느 집 아들이 데려가겠냐! 생각만 해도 고생길이 훤하네! " 

" 아 청소한다니깐? 엄마 잔소리하러 왔어? " 

" 시끄러어어! 파전 해먹게 가서 쪽파하고 조갯살 좀 사와! 너 파전 먹고 싶다며. " 

" 어? 파전? 진짜? 우와! 대박, 대박이다! 음…. 있잖아. 엄마아- " 

" 왜! " 

" 돈 좀. 헤헤…. " 

청소기 소리보다 시끄러운 야단을 맞으며 겨우 얻어낸 엄마 지갑을 들고 시장으로 가는 예지의 발걸음이 
뜻밖에 들떠 보였다. 투닥거려도 오랜만에 본 엄마가 좋았고 더군다나 좋아하는 엄마표 파전까지 맘껏 먹을 생각을 하니 
그 날만큼은 다이어트는 안중에도 없었다. 

ㅡ 

' 아…. 오늘 정기휴일이지 참. ' 

시장 안에 있는 애용하는 마트가 정기휴일인 걸 확인하자 계획을 다시 세워야 했다. 

' 그냥 요 주위에서 다 사지 뭐…. 쪽파. 조갯살. 할머니들이 파시던데. ' 

예지는 마트 대신 주위를 돌며 할머니들이 길에 내어놓고 파는 채소를 사기로 했다. 
마침 쪽파를 가득 담아놓고 파는 할머니가 계셨기에 파전 해먹을 만큼의 쪽파를 사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조갯살을 파는 할머니가 보이질 않았다. 

" 원래 조개 가져오시는 할머니 계시지 않아요? " 

" 그 아줌마 발목 아파서 못 나와, 아마 아직 병원에 있을건디…. 수산집이면 마가 가야겠구먼. " 

예지가 할머니 소식에 잠시 안타까워하는 사이 언뜻 할머니 입을 스쳐 지나간 단어…. 

' 마가…? 마가수산? 거기는 좀…. ' 

"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할머니. 안녕히 계세요. " 

... 마가수산이라, 
예지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 한 번도 사서 먹어 본 적 없는데. 멀리 떨어진 대형할인점으로 갈까? 근데 파전 하나 해먹으려고 옆 동네 가는 건…. 
어차피 집 가는 길이면 쭉 가다 보면 지나칠 마가수산인데.. 그래, 어차피 조개가 다 같은 조개지, 
먹고 죽을 조개를 팔겠냐? 입속에 들어가면 똑같다고! ' 

같은 시장 안에 있는 마가수산은 문 닫은 마트로부터 그리 멀지 않았다. 

" 저어…. 저기요? " 

잡음만 나오는 라디오를 옆에 놔둔 채, 
축축이 젖은 신문을 보고 있던 마가수산 주인은 신문을 천천히 내리더니 예지와 시선을 마주했다. 
따개비같이 생긴 회색 돌기가 얼굴에 다닥다닥,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무리였다. 
누구라도 그 앞에 서면 한 개, 두 개, 몇 개인지 맘 속으로 세어보겠지. 

" 예에. " 

입천장에도 뭔가 잔뜩 돋아나서 소리를 잡아먹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무겁고 불투명한 목소리. 

" 아…. 조갯살. 팔아요? 파전할 때 넣을 건데…. 홍합 같은 거요. "

" 기다리세요. " 

걱정이 되긴 했지만 어쨌든 조갯살을 팔아서 다행이라고 여기며 예지는 좁은 가게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는 
아저씨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천장에서 또옥~ 또옥~ 떨어지는 방울들이 물방울인지 뭔지는 몰라도 
그리 맑아 보이진 않았다. 괜히 왔나, 수조에 담긴 생물들은 거의 바뀌어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하나같이 수상한 
구석은 여전했다. 생선가게인지. 자연사 박물관인지 모를 이곳.

" 여기요. 이천원만 줘요. "

가게 안에서 플라스틱 바구니에 가득 담아나온 조갯살은 색깔이 몹시 붉었다. 
홍합의 붉은 색보다는 선지의 시뻘건 색에 가까웠다. 
언뜻 보면 생간을 갈아놓은 것 같은 외형이다…. 

" 아저씨, 이거 조갯살 맞아요? 이런 조개가 어딨어요. " 

" 조개 맞아요. 먹어보면 될 거 아닙니까. " 

" 이름이 뭔데요. " 

" 무당허파조개.. 제철이니 그냥 들고가 봐요. " 

" ... " 

먹어보면 될 거 아니냐는 말에 할 말이 없어진 예지는 구매를 미룰까 궁리하다 제철이란 말에 다시 마음을 굳혔다. 

" 그럼. 가져가 볼게요. 진짜로 먹어도 되는 거 맞죠? " 

" 예. " 

ㅡ 

" 이거 조개가 왜 이렇게 빨개? 너 이거 어디서 샀어? " 

" 어? 시장에 마트 있잖아. 거기서 샀는데, 왜…? " 

" 그래? 그 마트 원래 정기휴일 하는 날 아닌가? 열었나 보네? " 

" 응. 열었던데…? " 

" 나도 이 동네 안 사니까 헷갈리나 보다. 거기서 산 거면 수협 통해서 온 거니까 나쁜 건 아니겠다. 
파전해줄게, 엄마 청소하다 놔둔 거 마무리 좀 해놔. 그리고 좀 치우고 살고. 아빠도 네 걱정 많이 해. " 

" 나도 잘 치우고 산다니까. 이번에 좀 미뤄놓은 거야. " 

' 아. 거짓말해버렸다…. 마가수산에서 산 게 죄도 아닌데.. 내가 왜 그랬지.. ' 

왠지 모를 죄책감에 열지도 않은 마트에서 샀다고 거짓말을 해버린 예지는 불안한 마음으로 집 청소를 마무리했다. 
식탁에 앉아 김치전처럼 색이 붉게 나온 기묘한 파전을 마주하자 마음은 더욱 요동쳤다. 
하지만 엄마와 나란히 파전 한 개를 비우고나자 그 마음은 눈 녹듯이 사라져버렸다. 

" 와, 이 조개 왜 이렇게 맛있지? 정말 이천원치야? " 

" 응…. 엄마 하나 더 부쳐주라~ " 

그 날 예지와 엄마는 그 자리에서 무당허파조개를 넣은 파전을 모조리 부쳐 부침가루 한 팩을 모두 파전으로 먹어버렸다. 
그러고도 파전의 감칠맛에 입맛이 계속 짝짝 당길 정도였다. 
가는 엄마를 배웅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예지는 붉은 조개의 그윽한 맛을 머릿속으로 한참 곱씹었다.

' 아…. 손님이 없어 보여도 싸고 맛 좋은 걸 아는 단골들이 있는 모양이야. 
원래 시장 가게들이 다 그렇지. 그리고 내가 몰라서 그렇지, 바다에 해산물이 얼마나 많은데. 
쏙이나 망둥어 같은 거랑 비교해보면 크게 놀랄만한 해산물도 아닌 것 같고…. 나 혼자 겁 먹었던 거야. 
앞으론 가끔 시도해봐야겠다. ' 

그 뒤로 예지는 장을 볼 때마다 마가수산에 있는 해산물을 하나씩 먹어보기 시작했다. 
다리 많은 갑각류는 다리엔 살이 없었지만, 미리 다리를 모두 쳐내고 받아와서 찜통에 찌면 레스토랑에서 
맛본 게 고작이던 바닷가재와 견줄 만큼 풍부한 살맛이 일품이었다. 
얇은 껍질 안에는 새우처럼 살이 통통하게 들어차 있었다. 
생선들도 마찬가지로, 겉보기엔 심해어처럼 생겨 거부감이 들었지만, 막상 가시를 뽑고 살과 뼈만 발라내고 나면 
탕으로 먹어도 좋고 회로 먹어도 좋았다. 
무엇보다 활어회를 헐값에 먹을 수 있는 점은 예지를 점점 마가수산의 해물들에 다가서기 쉽게 해주었다. 

오색군소, 팔눈가오리, 미운털호래기.. 


3. 
그러던 어느 날. 
간장 소스에 광대잡이새우 튀김을 맛있게 먹고서 만족감에 한 통 더 구매하고자 예지는 시장으로 향했다. 
이젠 다른 곳에 들릴 필요도 없이 마가수산부터 먼저 찍고 가는 게 순서였다. 

" ... 응? " 

아저씨가 계셔야 할 자리에 아저씨 대신 웬 커다란 굴이 있다고 생각했다. 

' 굴인가? 굴 아닌데? 팔다리가…. 으아! ' 

굴이 아니라, 꼬마 아이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몰라도…. 
석화 굴처럼 딱딱하고 군데군데 구멍이 송송 뚫린 각질로 전신이 뒤덮여있을 뿐. 
분명 아이다. 
껍질에 싸인 얼굴 사이로 움푹 들어간 구멍 속에 또렷이 보이는 두 눈동자와 눈을 마주치자 
예지는 실례인 줄도 잊은 채 '악' 소리를 내고야 말았다. 

" 아. 아니. 그게…. " 

아이에게 사과하기도 전에 예지의 기겁하는 소리를 들었는지 마가수산 가게 안에서 아저씨가 뛰어나와 
제법 굵어 보이는 몽둥이로 아이를 무섭게 두드려 패며 집안으로 쫓아냈다. 

" 우아앙! "

" 아저씨! 아이가 아파 보이는데 그렇게 세게 때리시면 어떡해요! " 

마가수산 아저씨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아이가 어두운 가게 안으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두들겨 패며 쫓았고, 
아이가 완전히 사라지자 천천히 걸어 나와 평소처럼 의자 앞에 앉았다. 

" 신경 쓰지 말지요…. 쟤는 내 아들인데. 볕을 쬐면 피부병이 심해져서…. 어쩔 수 없어요. 
어디 내놓고 길러도 욕 들을 게 뻔하고. 소리 지른 이유…. 그거 아니요? " 

예지는 정곡을 찔렸지만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라고 생각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 아니라곤 안 할게요, 제가 실수했어요! 하지만 사람들 반응이 그렇다고 아기를 집안에만 두면 앞으로가 
더 문제잖아요, 그리고 내 아들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때리면서 키우면 정서적으로 얼마나 안 좋겠어요? " 

" ... " 

묵묵히 들으며 아저씨는 한쪽 발로 귀찮다는 듯 발에 밟히는 무언가를 구석으로 쓸어내고 있었다. 
와자작, 와자작, 발에 챌 때마다 바스러지는 그건 아이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껍데기들. 


4. 
어제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자신보다 나이도 훨씬 많은 아저씨에게 훈계를 늘어놓은 걸 생각하면 
예지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 피부병에 걸린 아들이 세상으로부터 받을 고통을 염려하는 마음이 서툴러서 그럴 수도 있는 건데…. 
내가 너무 감정적으로만 끼어들었어. 누구보다도 가슴 아플 사람은 아버지 본인인데. 
그냥 광대잡이새우가 너무 맛있어서 한 통 더 사러 왔다고 둘러대면서 조심히 사과드리자. ' 

예지는 이미 집을 나와 아저씨께 사과할 겸 새우도 살 겸 마가수산 근처에 다가와 있었다. 
그러나 곧장 가면 도착인 마가수산 쪽이 아니라 시장 근처에 세워져 있던 자동차 뒤쪽에서 무언가 달려와 안겼다. 

" 앗, 너 왜 이래? 괜찮아? " 

자신의 허벅지에 얼굴을 비비며 흐느끼는 건 마가수산 집 아들이었다. 
군데군데 껍질이 깨지고 짓무른 살이 삐져나와 있는 모습이 몹시 흉했다. 

" 거기 있었구나! 요 새끼! " 

" 아저씨 그만 하세요! " 

사과하러 온 게 무색할 만큼 예지는 분노에 차있었다.
어떻게 사람이 자기 아들을 이렇게까지 막 대할 수 있는 거람, 

" 아가씨, 비켜! " 

" 못 비켜요. 왜 사람을 때리느냐고요! 무슨 잘못인데요! " 

" 비키라니까! 아가씨는 저 녀석을 몰라, 저거 사람새끼 아니야! " 

그 말에 예지는 더욱 이성을 잃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 어떻게 자기 아들 보고 사람새끼가 아니라고 그러세요! 아저씨 진짜 실망이에요! 
좋은 분이신 줄 알았는데…. 아무리 자기 자식이라도 막 대하는 거 아니에요! 절대 못 비켜요! " 

" 비켜, 나오고 있잖아! 흘러나온다고! " 

" 안 된다고요, 나쁜 인간 같으니- " 

마가수산 아저씨와 예지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 씨이, 씨.. 아저씨…. 아동학대는 엄연한 범죄에요. 경찰에 신고할 거에요. " 

" ... 아가씨. 그럼 저건. 누가 돌봐줄 건데? 죽이지도 살리지도 못하는…. 저걸…. " 

"…? " 

등 뒤에서 어느새 울음을 뚝 그친 아이를 보며 체념하듯 아저씨가 읊조리자 예지는 아저씨를 막은 자세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 갸아아-!! " 

깨져있던 껍질들이 완전히 흘러내리고, 
그 사이로 빠져나온 조갯살같이 붉은 덩어리가 흐물흐물 바닥에 무너져내려 있었다. 
공황에 빠져버린 정신을 붙잡을 순 없었지만, 그 와중에도 예지의 두 눈은 제 몫을 충실히 하고 있었다. 
꿈틀대는 붉은 살덩이 사이로 겨우 분간되는 녀석의 이목구비가 분명히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끅, 끄윽, 성대가 눌린 탓인지 작은 구멍으로 겨우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 

" 꺄아악! 싫어! " 

아저씨를 막던 자세에서 그대로 아저씨를 밀쳐내며 예지는 도망가버렸다. 
뒤를 돌아볼 겨를 따윈 없었고, 그 뒤로 꽤 오래 시장을 찾지 않다가 호기심에 조심히 들린 어느 날, 
마가수산은 통째로 사라져있었다. 


5. 
마가수산에 대한 기억은 좀처럼 잊히지는 않았지만 처음 받았던 충격은 갈수록 수그러들었다.
자신이 본 게 과연 제대로 본 것일까, 아저씨의 으름장 때문에 허상을 본 건 아닐까, 
그냥 각질이 심하게 벗겨진 아이를 본 걸 머릿속에서 제멋대로 쭈물거린 건 아닐까, 예지는 그럴 때마다 몇 번이고 후회했다. 
결국, 무례를 사과하지도 않았고, 부자에겐 상처만 주었을 테고, 아예 이사를 가버린 게 그 날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하지만 연락처 하나 없는 마가수산을 다시 찾을 기회란 없었고, 그렇게 한참 세월이 흘렀다. 

달력이 한 해…. 두 해…. 
갓 스무 살이던 예지가 서른 살을 넘길 때까지. 
집에선 혼기가 찰 대로 찬 예지에게 하루라도 빨리 신랑감을 잡아서 시집을 가라고 성화였고, 
예지 자신도 막연히 가겠거니 여기면서도 막상 인연은 닿지 않아 초조해 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주말이면 일주일간의 피로 때문에 데이트는커녕 외출도 자제한 채로 텔레비전 앞에서 리모컨만 
붙잡고 있는 게 고작이었다.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 사랑하는 우리 동네 자랑을 방방곡곡에 알리는 우리 채널 동네잔치 한마당! 오늘은 부산시 영도구의 한 마을이 
선정되었습니다, 부산 갈매기가 울어대는 태종대의 명소! 오늘의 동네를 소개합니다-! 

예능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볼 게 없다고 불평하며 혹시나 싶어 튼 정규방송에선 역시 재미없어 보이는 
향토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곧 채널을 돌릴 참이었지만 소파에 퍼져있던 예지를 벌떡 일으킨 건 
동네 소개 장면에 언뜻 스쳐 지나간 간판이었다. 

' 설마? ' 

눈을 크게 뜨면 시간이라도 돌릴 수 있을 마냥 뚫어지라고 텔레비전을 쳐다보는 예지의 눈이 그 상태에서 
다시 한 번 활짝 뜨였다. 

" 맞다! " 

마가수산의 간판이 확실했다, 
색 바랜 간판. MC가 방송을 진행하는 공터 멀리 보이는 마가수산 간판, 
그 아래 어지럽게 널린 수조는 확신을 가져다주었다. 
방송은 무난한 장기자랑과 만담이 이어져 크게 재밌는 건 되지 못 했지만 예지는 채널을 돌리지 않은 채 생각에 잠겼다. 
그 날의 끔찍한 이미지는…. 
자신이 만든 허상인가. 아니면 잊히지 않는 현실인가…?

꿀-꺽 

그러면서 동시에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원하는 건, 
무당허파조개의 달콤한 맛. 광대잡이새우의 부들부들한 살. 
지난 십 년간 어느 항구도시를 가도, 어느 마트 수산물코너를 가도 맛볼 수 없었던 마가수산만의 그 맛들…. 

꼴깍, 
그 집 애가 무슨 상관이야, 
내 애도 아니고 이제 내 결혼이 더 급한데, 
젊은 치기에 남의 제사상 위로 감 놔라 배 놔라 한 게 웃긴 거지, 
10년이 지났는데 날 알아볼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조용히 가서 해산물이나 사 먹지 뭐…. 
그 집 애도 그 뒤로 십 년 세월이 지났으니 이제 어엿한 청년이겠지… 
그때의 일로 서로 왈가왈부할 것도 없을 거야. 

다음 주말이 오자마자 예지는 곧장 부산으로 향했고, 
마치 장을 보던 옛날처럼 다른 곳에 들릴 필요도 없이 곧장 마가수산이 있는 동네로 향했다. 
방송에서 보이던 간판에 눈으로 확인되자 맞선을 보러 온 것도 아닌데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렇게까지 기뻐할 일인지 자신도 의아할 정도로. 

천천히 다가간다, 
여전히 아저씨는 옛날처럼 의자에 앉아 축축이 젖은 신문을 들여다보고 있다. 
엇, 벌써 눈이 마주쳐버린다. 
아직 가게까진 멀었는데.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면 꽤 민망해질 것 같다. 

" 어? " 

하지만 영 개운하지 않은 전개가 이어졌다. 
예지를 보자마자 아저씨는 신문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곤 예지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거리는 그새 가까워져 아저씨의 얼굴에 있던 '따개비'들이 한 개 두 개 세는 수준을 넘어 
자기 아들처럼 얼굴을 온통 따닥따닥 뒤덮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제야 예지는 직감을 느꼈다, 뭔가 위험하다, 

" 학…. 하악…. " 

하필 하이힐을 신고 와서. 
아무리 용을 써도 자신을 쫓아오는 그와의 거리를 벌릴 수 없었다. 
점점 가까워졌고, 아저씨의 손이 결국 길바닥에 넘어져 발목을 감싸 쥐고 있는 예지의 어깨를 붙잡았다. 

" 아가씨, 아가씨 맞지? 자주 오던 그 아가씨지? " 

" ...아, 안녕하세요, 아저씨. " 

" 으후후. " 

" 잘…. 지내셨죠…? " 

" 잘 지내다마다. 이렇게 와주니 얼마나 반가워. " 

아저씨의 머리에서 줄줄 흐른 땀이 사다리 타기를 하듯 따개비 사이사이를 비집으며 흘렀다. 
땀방울은 턱 끝에 모여 예지의 하얀 발등 위로 똑똑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 그냥 가게에 계시지…. 굳이 왜. " 

" 반가워서 그래, 반가워서…. " 

"…. " 

" 어디 갈까 봐서…. " 

어디 갈까봐서?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아무리 반갑기로서니 싸우고 헤어진 단골손님이 어디로 가버릴까 봐 달려와서 붙잡을 이유가 뭔가, 
그러나 예지는 한편으론 마가수산의 해물 맛이 그리워 멀리서 부산까지 찾아온 자신은 그럼 뭐냐고 자신에게 반문했다. 
별거 아닌 거야. 마가수산에 대해 오해만 하고 사 먹을 생각을 못 했던 처음처럼…. 
별거 아닌 걸 의심하는 못된 버릇일 뿐…. 

아저씨는 예지가 도망가기라도 할 것처럼 손을 꼭 붙잡고 마가수산까지 걸어갔다.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면 쓸데없는 오해라도 할까 싶어 몇 번이고 예지가 손을 놓으려 했지만 
그럴 때면 더욱 깍지를 죄여오며 예지를 구속하려 들었다. 
결국, 예지가 마가수산에 도착하고도 한참이나 지나서야 깍지가 풀렸다. 

" 아가씨가 발을 다친 것 같던데…. 안에 들어가서 약이라도 바르는 게…. 멀리서 와줬는데 미안해서. " 

" 아뇨 아뇨, 괜찮아요. 조갯살이랑 새우 있으면 좀 사 가려고 왔어요. " 

" 그. 그래, 아가씨는 단골인 데다 오랜만에 왔으니 반가워서 얼마든지 줘야지, 가게 안에 가서 살아있는 놈들로 골라봐, 
집에 가서 먹으려면 싱싱한 걸 바로 가져가야 집에 갈 때까지 신선하지…. " 

" 냉동 있으면 아예 그걸로 주세요, 해동시킨 것도 괜찮던걸요. " 

" 멀리서 와줬는데 돈 받고 물건 주고 그걸로 보내면 심심하지, 우리 아들도 자네 많이 보고 싶어 해. "

" 걔가요? 어릴 때 잠시 본 건데…. " 

"아, 왜, 그 내가 잠시 미쳐서 애를 못살게 굴 적에 자네가 막아줬잖아, 그때 이후로 꼭 자네를 찾아. 
사실 그것 때문에라도 잠시 들러줬으면 하는 거야. 차라도 한잔하고. 응? " 

" 아, 아뇨, 싫어요. " 

" 그럼 물건 보러 들어가자고. " 

" 네? 아뇨, 그냥 여기서 받을게요. " 

" 어허, 그러지 말고, 응? 해산물은 다 챙겨줄 테니까, 안에 들어가서…. " 

" 아, 짜증 나네, 왜 이러세요! 비키세요, 저 갈래요. " 

" 그러지 마라니까! 차 마시면 나머지는 얼마든지 준다고! 여기까지 온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 

" 이거 놔요, 놔! 사람 살려! 사람 살려주세요! " 

약을 바르자는 둥, 차를 마시자는 둥, 온갖 핑계를 대며 자신을 가게 안으로 들이려 하는 술수에 
가게를 떠나려 하자 마가수산 주인은 예지를 힘으로 제압하려 들었다. 
이 남자가 자신을 겁탈하려는 걸까, 
예지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야속하게도 그 누구도 외침에 응답해주지 않았다. 

" 놔! 놔~! 개새끼야, 놓으라고! " 

" 아가씨, 착하잖아, 아가씨 착하잖아, 우리 아들 걱정도 해주고, 착한 처자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걔가 자네를 찾더라니까, 응? " 

" 씨발놈아, 놓으라고, 악! 악! " 

" 나, 나 이제 애 안 때려, 그냥 다- 받아들였어, 뭔지 모르겠지? 설명할게, 다 설명할 테니까 
그냥 조용히 따라 들어가자고! " 

" 개자식아, 이거 놔! " 

" 우리 아들한테 시집와, 가게도 물려주고, 예쁘게 여기마, 응? 아가~ 우리 새아가! " 

예지가 아무리 거세게 저항해봐도 무리였다. 
오히려 마가수산 주인의 얼굴을 긁으려다 딱딱한 따개비 때문에 날아가버린 예지의 손톱만이 핏자국과 함께 바닥에 남고, 
두 사람의 그림자는 마가수산의 어둠 속으로 파고들어 갔다.
바깥세상엔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 아악 - 엄마아. 엄마! 살려줘…. 살려줘. " 

" 아가, 이제 새아가라고 부르마, 다 괜찮아진다, 응? " 

손톱 몇 개를 잃은 예지의 나머지 손톱이 바닥과 마찰하며 끌려가길 거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닥에 넘어진 예지의 한 쪽 종아리를 붙잡고 온 힘을 실어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주인의 고집도 완강했다. 
예지의 손톱이 빠각, 빠각, 하나씩 부러질 때마다 한 움큼씩 어둠이 조여왔다. 

" 엄마아, 엄마아아! " 

" 새아가. 그것도 다 한때야, 나도 그 마음을 안다! " 

모두 뽑혀버린 손톱, 그 두 손이 저마다 바닥에 피로 흥건한 오선지를 그리며 생지옥을 연주하고 있다. 
예지의 비명이 오선지에 쓰인 대로 지옥을 노래하고 있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예지의 종아리를 지휘봉처럼 붙잡은 주인이 지옥 연주회의 마에스트로가 되어 그녀를 부린다. 

"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 

" 아가, 왜 내 마음을 몰라주느냐…. 널 해하려는 게 아니야, 우리 식구가 되는 것뿐이다, 
싫을 줄도 다 안다, 나도 이해한다, 응? " 

" 놔주세요…. 저 집에 보내주세요. 가고 싶어요…. 보내주세요…. " 

" ... " 

어르고 달래던 노인의 얼굴에 핏줄이 굵게 돋아났다. 
예지의 눈물 맺힌 눈동자가 더욱 겁에 질린 채 흔들리고, 
곧 두 사람이 한 데 뒹굴기 시작했다. 

" 개 같은 년아, 이쯤 말해줬으면 알아 처먹어라, 안 죽인다고! 그냥 몸만 와, 몸만! 
곱게 알아듣질 못해, 어어어! 이이익- " 

" 끼야아아으으아아으ㅡ, 으으으으- 으흐흐ㅡ으 " 

" 씨-바아알 " 

" 아아악, 아으으윽 " 

주인의 주먹이 예지를 몇 번이고 내리쳤지만, 예지도 물러서지 않았다. 
예지의 발길질도 주인의 눈두덩이를 강타했고 몇 번이고 주인을 넘어뜨려 그 위에 올라타기도 했다. 
하지만 손톱을 모조리 잃은 채 피를 쏟고 있는 예지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는 모양으로,
주인의 일방적인 구타가 이어지더니 산 송장이 되다시피 한 예지가 축 늘어졌다. 

" 후우. 후우. 에이씨. 그러게…. 오라고 할 때 조용히 네 하고 왔으면 이럴 일이 없잖아, 
새아가, 왜 이렇게 말이 안 통하느냐. 너마저도 이 집 년놈들이랑 똑같냐? 사람 새끼가 아니라 그냥 생선 대가리야? " 

" 우.. 으.. " 

시간이 갈수록 예지의 얼굴이 퉁퉁 부어오르고 있다. 
막심한 고통 속에서 예지는 얼른 시집가라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굴을 간신히 떠올렸다. 
그 와중에도 그리움을 느끼자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걸 느끼며.

" 헉. 헉. " 

주인은 이 방에서 저 방을 왔다 갔다 하더니, 자신의 얼굴에 연고를 대충 펴 바른 뒤 수산물 포장에 쓰는 
팽팽한 끈을 가져와 예지의 손과 발을 수갑 채우듯 꽁꽁 싸맸다. 

" 이렇게까지 해야겠냐, 아가! " 

" ... " 

생선이라도 된 마냥 예지는 축 늘어져 있었다. 
숨은 붙어있고 의식도 있지만 자아를 통째로 상실해버린 듯이. 
풀려버린 동공은 천장을 향하고 있다. 
몇 번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점액질의 벽이 꿈틀거리고 있다. 
자신의 눈이 이상한 걸까, 아니다, 벽이 이상한 게 맞다, 
이 모든 게 현실이다. 
그 모든 추악했던 모습들을 포함해서. 

" ... 아가, 벽을 보고 있는 거야? 이 벽은 그냥 벽이 아니야. 
내 마누라야. 네 시어머니 되는 셈이다. 꿈틀거리지? 맞아. 꿈틀대는 거. " 

그 말에 응답하듯 천장에선 비릿한 물이 또옥 또옥 한 방울씩 군데군데 떨어졌다. 

" 아가. 나를 원망하겠지만…. 나도 얼떨결에 이런 식으로 장가를 왔다. 물론 원망했다! 
나뿐만이냐! 둘 사이에 낳은 아들놈도 원망스러웠고! 볕을 볼 수 없는 저주에 걸려버렸어. 
아들 역시 두말할 필요도 없다…. 다 죽여버릴까? 살아있는 벽이 되어버린 아내도, 점점 아내를 닮아가는 아들 녀석도 
모조리 죽여버리고 나도 자살해버릴까 수백 번 생각해봤다! 하지만…. 기왕 아들까지 낳은 거.
나도 손주 정도는 볼 수 있는 거 아니냐? 응? 이제 원망은 그만하고 아들내미 결혼시키고 행복한 삼대를 꾸리고 싶구나, 
아가. 그러니까…. 아들 하나만 낳아다오. 우리 행복하게 살자꾸나…. " 

또옥! 
예지의 뺨에 떨어진 한 방울이 주르르 굴러 예지의 입술 안으로 스며들었다. 


7. 
주인은 팔다리가 묶인 예지를 돼지고기 옮기듯 어두운 방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끈적거리는 바닥에 온통 비벼진 예지는 축축하고, 비릿한 냄새를 풍겼다. 
물곰팡이와, 썩은 내장 냄새를 풍기는 점액질 덩어리가 부드러운 머릿결에 잔뜩 붙어 덩어리진 채로…. 
그 모습이 그녀가 은연중에 고대하던 결혼식이 될 줄이야…. " 

" 우우웃-. " 

방구석에 짐짝처럼 놓여있던 커다란 껍데기가 우는 소리를 내며 들썩였다. 

" 얘야, 맞다, 네 마누라 될 사람이다! 조금만 기다려라! " 

병아리가 태어나며 달걀을 쪼듯 껍데기가 속에서부터 다그닥, 다그닥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주인은 망치를 가져와 껍데기를 깨부수기 시작했고, 역한 가스가 연기처럼 피어오른 뒤 살덩이가 꿈틀거리며 
속에서 흘러나왔다. 

" 여보, 뭐라고 말 좀 해보시오, 우리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는 거요…! " 

주인의 살짝 흥분한 혼잣말과 동시에 축축하고 차갑고 끈적거리는, 
흡사 커다랗고 길쭉한 민달팽이을 닮은 촉수가 예지의 허벅지를 감아오고 있었다. 

" ... 히이이익! " 

그 서늘함이 가라앉아있던 예지의 자아를 깨운 듯했다, 

" 이거 뭐야, 치워! 저리 가! 저리 가! 엄마아 엄마 " 

" 아가! 놀라지 마라! 우리 집이야, 안심하거라! " 

" 으흐허엉, 어어흑 " 

묶인 손발이 아무리 춤을 춰도 벗어날 순 없었다. 
미끈거리는 감촉이 어느덧 담쟁이덩굴처럼 예지의 전신을 휘감아 조여오고 있었다. 

" 와아아악!! " 

그게 마지막으로, 
신랑 측 사람들의 축복 아래, 신부에게 신랑이 입장했다. 
축복 속의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 아가! 고맙다! 정말 고마워! 나는 계속 두려웠다, 
송두리째 뺏겨버린 내 삶이 저주로 끝나버릴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아니야, 내 아내를 사랑하고, 내 아들을 사랑하고, 
아들이 사랑하는 며느리와 함께 귀여운 손주 손녀까지 볼 수 있다면! 
더 바라는 건 없다, 행복한 가족을 이루는 거야! 행복하게 살자 우리 식구! 으히히! " 

ㅡ 


자신과 연결된 무언가가 부르르 떠는 경련이 한참을 이어지고, 
예지는 뱃속이 묵직해지는 걸 느끼자 눈앞이 깜깜해져 간다. 
그 앞에 웃고 있는 얼굴이 하나. 희미한 눈코입이 둘…. 그리고 천장의 벽에 스르르 나타나는 것까지 셋…. 
몹시 기대하듯 활짝 웃으며 예지를 쳐다보고 있다. 
그들의 핏줄을 이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ㅡ 마가수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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