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게시물 단축키 : [F2]유머랜덤 [F4]공포랜덤 [F8]전체랜덤 [F9]찐한짤랜덤

기묘한

유산으로 남긴 집

title: 금붕어1ss오공본드2016.02.12 03:22조회 수 1252추천 수 1댓글 1

    • 글자 크기


유산은 이승을 떠나는 사람이 필사(必死)의 마음을 담아, 의미있는 일을 하고자 후손에게 남기는 것이다.

죽는 이의 노고가 담겨 있기에 더욱 뜻이 깊고, 후손에게는 나름의 깨달음을 부여한다.



 어느 산골에 위치한 한 마을. 

이 마을의 집은 1층짜리 독채에 슬레이트 지붕을 한 낡은 집이 대부분이었다.

거주민들도 산골 밭에서 일하는 노인들이 대부분이었으므로 누구도 자신들의 집에 불만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모두들 저마다의 생계수단을 통해 소박하게 사는 맛을 아는 분들이었다.



 그런 마을에서도 특히 인기가 많은 분이 한 분 계셨다.

마을 제일 위쪽 산길에 사시는 나이 칠십에 박 할머니였다.

박 할머니는 마을 분들과 허물없이 지내고, 말 주변은 물론, 마음 씨가 친절하기도 하여, 마을 누구도 박 할머니를 싫어하지 않았다.

그 뿐이 아니라 박 할머니를 사모하는 할아버지들도 계셨다.

평소 채식을 즐겨하시는 박 할머니는 외모도 몹시 고우셨고, 말투도 나근나근하셨다. 그 점에 혼자사시는 할아버지들은 끌리신 거였다.



 한적한 시골 마을.

허름한 집들 사이를 왕래하며, 대화도 나누고, 먹을 것도 집에서 가져와 나눠먹는 박 할머니의 모습은 그 시골 마을의 활기를 불어주는 존재, 그 자체였다.



 물론 그런 박 할머니에게 걱정거리는 있었다.


본인에게는 자식이 두 명 있었는데, 첫째 딸은 수도 서울에서 큰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고, 둘째 아들은 읍내에서 결혼해서 보일러 공으로 일하다가 2년 전에 암에 걸려 1년 간 암투병을 하다 죽고 말았다.

아들의 죽음을 박 할머니는 진즉에 받아들였다.

박 할머니의 걱정거리는 아들의 죽음이 아니라, 아들이 죽고 남은 며느리와 손자, 손녀였다.



 며느리는 아들이 암투병 중에도 옆에서 지극정성으로 자신의 아들을 돌봤으며, 그러는 동안에도 박 할머니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주려고 매일 같이 찾아와 이야기 상대도 되어주고, 음식도 같이 해 먹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들이 허망하게 죽고 난 뒤, 막대한 병원비와 막막한 생계 문제가 며느리와 손자, 손녀에게 닥쳐왔다.

며느리는 결국 낮에는 읍내 식당에서 설거지를, 밤에는 목욕탕 청소를 하며, 고된 하루를 보내고 있었고,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손자와 손녀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어머니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애를 쓰고 있었다.


그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박 할머니는 첫째 딸에게 연락하여, 돈을 좀 며느리에게 보내달라고 하였으나, 첫째 딸은 그간 밀렸던 막대한 병원비에서 절반만을 내주었다. 


 모두 내줄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었지만, 첫째 딸은 그러지 않았다.

동생이 죽었다면, 올케는 남이나 다름없었고, 머지않아 재혼이라도 한다면 더더욱 도울 이유가 없었다.


'애초에 그렇게 돈이 필요하다면, 남자를 찾아서 재혼이라도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라고 첫째 딸은 생각했지만, 박 할머니와 며느리는 그 사실을 전혀 알 지 못해서, 그저 그게 첫째 딸의 최선이라고만 생각해 고맙다고 했다.


그러니 며느리의 어려운 살림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그렇게 힘들어하는 며느리와 손자, 손녀가 박 할머니의 유일한 걱정거리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박 할머니는 첫째 딸에게 전화하여 용돈을 달라고 한 뒤, 그 돈에서 생활비를 빼고 몽땅 시멘트를 구입했다.

이어 박 할머니는 시장에서 내다판 나물 값으로 빨간색 벽돌 몇 장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동네 할아버지들에게 자기 집의 벽이 너무 낡고 허름해서, 벽을 벽돌로 고쳐서 다시 지으려고 하니, 그 방법을 알려달라고 물었다.

박 할머니를 마음에 두고 있던 할아버지들은 기겁을 하며, 박 할머니 대신에 자신들이 나서서 고쳐주겠다고 했다.

집 한 쪽 벽의 구석을 할아버지들이 젊은 적 기술을 총동원하여 낡은 시멘트벽이 아닌, 빨간색 벽돌 벽으로 만들어 주셨다.



 시장에서 돌아올 때면 돈이 되는 대로 벽돌, 첫째 딸이 준 용돈으로는 시멘트,


 그런 식으로 박 할머니는 자신의 낡은 집의 벽을 빨간색 벽돌 벽으로 조금씩 바꾸어 갔다.


1년이 다 되어 가 추석 명절이 되어, 박 할머니가 살던 집은 예쁘장한 빨간색 벽돌집으로 변해있었다.

지붕은 슬레이트 지붕이고, 집 내부는 예전과 마찬 가지로 허름했지만, 겉모습만큼은 놀랄 정도로 깔끔하고 예쁜 집이 되었다.


가족들이 다 같이 보내는 추석이지만, 첫째 딸은 바쁘다며 집에 오지 않았다. 대신 평소 주던 용돈보다 많은 돈을 통장으로 붙여줬다.

반면에 며느리와 손자, 손녀는 슈퍼에서 파는 값싼 오렌지 주스 두 병만 들고 찾아왔다.

박 할머니는 그럼에도 그 값싼 오렌지 주스를 금괴 짝이라도 받은 듯이 기뻐하시며, 며느리와 손자, 손녀를 환영해주었다.


 

 "아가."



 박 할머니가 그 날 밤에 먼저 잠이든 손자와 손녀 몰래 며느리에게 말했다.



 "너 이 집 가져라."

 "예?"

 "너도 알다시피 내가 돈도 많이 없고, 가진 거라고는 이 낡은 집과 이 집이 지어진 작은 땅밖에 없잖니? 판다고 해도 딱히 돈도 안 되고..."



 박 할머니의 생각은 이랬다.

 자신이 죽고 난 뒤에 이 집과 땅을 며느리에게 줄 생각이었는데, 부동산에 알아보니 집과 땅의 가격이 너무 턱없이 낮았다.

그래서 값은 낮아도, 조금이라도 예쁜 모습의 집을 주고 싶어서, 나름의 리모델링을 시작하신 거였다.

며느리는 이에 눈물을 흘리며 어머님 감사합니다만 연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박 할머니의 집 리모델링은 그 후에도 끝나지 않았다.

천장의 슬레이트 지붕도 예쁘장한 새 골판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꾸었다.

동네 이웃들의 도움이 컸다.

박 할머니의 계획을 알게 된 동네 할머니들도 벽돌이나 시멘트를 조금씩 사서, 박 할머니에게 지원해주었다.

그렇게 새해가 설날 즈음에는 천장은 물론, 내부도 깔끔하게 새 단장할 수 있었다. 누렇게 물든 벽지 대신에 새하얀 벽지가 붙어졌고, 창문도 새 창문을 달았다.


 

 그렇게 박 할머니의 집은 동네에서 가장 예쁜 집이 되었고, 처음 보는 사람은 부잣집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 모습이 심히 좋았다.



 새해 설날.

 드디어 첫째 딸의 가족과 둘째 아들의 며느리 가족이 모두 박 할머니의 집에 모였다.

 며느리 가족은 박 할머니의 리모델링 계획을 알고 있었기에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지만, 첫째 딸은 이런 상황을 전혀 몰랐기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후, 박 할머니가 집과 땅을 며느리에게 줄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된 첫째 딸은 박 할머니와 몇 차례 논쟁을 펼쳤지만, 원래 집과 땅의 가치가 낮은 탓에 첫째 딸은 큰 인심이라도 쓰듯이 박 할머니의 의사를 따르기로 이내 결정했다.



 박 할머니는 집에 이어서, 집을 두른 허름한 담장을 반듯한 새 담장으로 바꾸고, 흙으로만 덮여있던 마당도 자갈을 깔아 깔끔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모든 걸 꾸미는 데 2년 가까이 걸렸고, 그리고 나서야 박 할머니는 비로소 며느리와 손자, 손녀를 불러서 같이 살았다.



 그러다 1년도 되지 않아 박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저녁에 식사를 하시고, 평소보다 피곤해하시며 일찍 잠이 드시고는 그대로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셨다.

분명 자신의 하나뿐인 걱정거리가 풀렸다는 확신을 가지시고 돌아가셨으리라.

그 얼굴은 절대로 죽은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단지 기분 좋은 꿈을 꾸는 사람의 그것이었다.



 박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유언에 따라 집과 땅의 명의 변경을 며느리 앞으로 하려던 시기였다.

 문제가 생겼다.

박 할머니의 집이 있는 쪽 일부 그린벨트가 풀리면서, 근처 땅값이 치솟은 거였다.

골프장이 들어선다. 콘도가 들어선다. 말이 오가면서, 첫째 딸의 귀에도 그 소식이 닿았다.

박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명의는 아직 변경하지 않았다.


 그 틈을 노려 첫째 딸이 치고 들어왔다.

 변호사까지 고용하여 법을 들먹이며 정당성을 주장하는 첫째 딸 앞에, 어려운 살림 가운데 있는 며느리가 주장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첫째 딸이 쥐어준 적은 돈으로 다시 읍내 월셋집을 구해 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첫째 딸의 남편과 자식들은 반대했다.

 그럴 이유가 있느냐, 벌써 1년 가까이 그 집에 산 사람들이니 살 게 내버려두라. 우리는 벌이도 괜찮지 않느냐.

그런 양심의 호소를 했으나, 첫째 딸은 듣지도 않았다.



 "장모님이 평생을 사셨던 집이랑 땅인데, 그걸 팔려고?"

 "아니, 그래도 남한테 줄 수는 없잖아."

 "에이, 그러면 명의만 우리 걸로 하고 그냥 살게 내버려두지."

 "이제부터 내가 거기서 편하게 살면서 노년을 보내려고 그런다. 왜!"



 첫째 딸은 그렇게 주장하며, 젊은 아들에게 식당의 경영권을 넘겨주고, 남편과 함께 기어코 그 집에서 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집에서 살기 시작해 이틀도 안 되어 남편이 악몽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꿈의 내용은 생각도 나지 않지만, 밤중에 땀범벅이 되어 깨어나,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결국 남편은 자기 마음이 편치 않아서 이 집에서는 못 살겠다며 아내에게 그냥 서울로 가자고 권했다. 하지만 박 할머니의 첫째 딸은 듣지 않았고, 그 남편은 잠을 못자니 점점 사람이 초췌해져 가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혼자서 서울로 가버렸다.

반면에 첫째 딸은 우리 엄마 집에서 사는 건데 뭐가 불편하냐면서 큰소리를 떵떵치며 그 집을 계속해서 고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혼자 살기엔 불편할 텐데도 계속 그 집에서 살겠다고 고집을 부린 이유가 자기 엄마의 집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남편은 아내에 대한 미안함으로 인해, 아내에게 하루에도 두 번 이상 안부 전화를 했고, 그때마다 첫째 딸은 집이 좋아서 편하다며 웃어댔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났다.


전화 통화를 하는 아내의 목소리에서 평소의 활발함이 점점 줄어드는 걸 깨달은 그녀의 남편은, 그게 다 아내 혼자 그런 시골에 살고 있는 탓이라 여겨, 미안한 생각에 아들과 함께 차를 타고 다시 그 시골집으로 향했다.



 그 날 저녁이 되어 그 시골집에 도착한 남편과 아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예쁘던 집이 흉가와 다를 바 없는 몰골로 변해있었기 때문이었다.

시골 저녁의 붉은 하늘을 받으며, 산길 외진 곳에 위치한 그 벽돌집은 흡사 피가 집 이곳저곳에 흩뿌려진 것처럼 보였다. 창문은 깨져있었고, 마당에 놓인 자갈은 여기저기 흩어져서 맨바닥을 드러내놓고 있었으며, 잡초도 자라나 있었다.



 “아버지, 집이 상태가 왜 이래요?”

 “글쎄다. 한 달 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도둑이라도 든 거 아니에요?”

 “일단 네 엄마부터 찾자.”



 남편과 아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서둘러 집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안방에서 아내가 땅바닥에 일자로 똑바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부릅뜨고 입을 쩌억 벌린 상태로 억억 소리를 내고 있는 광경이 보였다.

똥오줌을 지렸는지, 역한 냄새가 다리 사이에서 풍겨져 나오고 있었고, 전신은 부들부들 떨면서도, 팔과 다리를 꼿꼿하게 뻗어 차렷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여, 여보!”

 “엄마!”



 남편과 아들이 안방으로 들어가자, 차렷 자세를 유지하고 있던 첫째 딸은 몸을 심하게 떨더니, 입에 거품을 물며 기절했다.

이후 119가 출동했고, 병원에서 박 할머니의 첫째 딸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요양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집에 상태가 이상했으므로 경찰에도 신고했지만 없어진 귀중품도 없었고, 첫째 딸이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탓에 수사는 그녀가 직접 집의 몰골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결론이 나버렸다.

갑작스러운 전개에 아들은 물론 그녀의 남편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전화 통화를 할 때만 해도 멀쩡했던 아내가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장모님이 아내에게 천벌이라도 내리신 걸까?


 남편은 그런 생각을 하며, 박 할머니가 아꼈던 며느리 가족을 찾아가, 다시 그 집의 소유권을 가져가라고 하며, 아내가 했던 ♥♥적인 행위에 대해 사과했다.

그리고 박 할머니의 며느리 가족이 그 집에 다시 이사 오기 전에, 남편은 아내의 짐을 챙기기 위해 다시 그 집으로 향했다.

여전히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 집.


 남편은 들어가고 싶지 않았지만, 아내의 짐을 챙기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들어가야만 했다.

가구와 전자제품은 그대로 내버려두고, 옷가지와 아내의 중요물품 몇 가지만 서둘러 챙기던 그때, 남편의 눈에 안방 바닥에 놓인 아내의 다이어리가 들어왔다.

남편은 무심코 그 다이어리를 집어 펼쳐보았다.



 [남편이 악몽 때문에 더는 이 집에 못 있겠다며 혼자 서울로 가버렸다. 여기가 우리 엄마 집인데, 무슨 악몽 타령을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남편의 저런 행동을 보고 있자니 여간 실망스러운 게 아니다. 엄마도 속상해 하시겠다.]



 일기였다.

날짜는 적혀있지 않았지만, 내용은 분명 남편인 자신이 떠나고 나서 쓴 걸로 보였다.

아내는 원래 일기 같은 건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시골에 혼자 있다 보니 쓰게 된 모양이었다.

남편은 다음 장으로 넘겼다.



 [자꾸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계속 우리 엄마를 와서 찾는다. 돌아가신지 꽤 되었는데도 그 사실을 모르는 걸까? 그때마다 그 분들에게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말해야 하는 내 기분은 그야말로 참담하다. 엄마랑 친하게 지내셨던 분들에게 화를 낼 수도 없고.]



 또 다음 장으로 넘겼다.



 [또 오셨다. 그만들 하시라고 나도 모르게 화를 냈다. 아닌 게 아니라 분명 어제도 오셔서 내가 설명했는데도 또 오신 거다. 내가 이름은 몰라도 얼굴 하나는 똑바로 기억하는 사람이다. 분명 어제 왔던 할아버지가 맞는데, 또 왔다. 내가 화를 내니, 그 할아버지는 이상하네, 내가 봤는데, 이러면서 가셨다. 보긴 뭘 봐? 치매라도 걸리신 걸까?]



 [밤에 자는데, 어디선가 곡괭이질 하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고, 거실로 나가 현관문을 살짝 열어봤더니, 어떤 할머니가 우리집 마당에서 곡괭이질을 하며 자갈들을 치우고 있었다. 뭐야, 한밤중에, 너무 무서웠다. 지금도 무섭다.]



 [바쁘게 하루를 보내려고 대청소를 시작했다. 옷장 속 엄마의 낡은 옷들도 다 빨았다. 그러다 알게 된 사실인데, 그때 보았던 할머니의 옷차림이 우리 엄마가 가지고 있는 옷이랑 비슷하다.]



 [또 왔어. 또 곡괭이질 하고 있어.]



 [경찰에 신고하려고 그랬는데, 동네 할머니가 밤중에 우리 집 마당에다가 곡괭이질을 하고 간다고 신고하기가 뭐해서, 내 선에서 타이르려고 밤에 벼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창문이 깨졌다. 보니까 누가 마당에 있는 자갈을 던진 모양이었다. 무서워서 집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 해만 밝으면 경찰에 신고해야겠다.]



 동네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이 집으로 이렇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남편은 분노를 감추지 못하며,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다음 장으로 넘겼다.

글씨체가 급격하게 변해있었다.



 [엄마가 있어.]



 ?

다음 장으로 넘겼다.



 [계속 저 멀리서 엄마가 날 쳐다봐. 내가 마당에 있으면 저 멀리 길가에서. 내가 집 안에 있으면 마당 입구에 서서, 날 쳐다보고 계셔. 이게 무슨 의미지? 엄마하고 불러도 대답도 안 하시고. 내가 만나려고 다가가면, 계속 사라지셔.]



 [이젠 어제보다 더 가까이 와 계셔, 내가 안방에 있으면, 거실 문 너머에 서서 나를 바라보셔. 그런데 표정이 너무 무서워, 엄마가 아니야. 거실로 나가면, 마당에서 날 쳐다보시고, 마당으로 나가면, 집 안에서 날 쳐다보셔. 대체 왜 그러는 건데? 남편하고 통화 중에 이걸 말하려고 했는데, 그러면 내가 미친 사람 같아서 말할 수가 없었어. 엄마, 대체 왜 그래?]



 [더 가까이 오셨어, 이젠 나랑 계속 다섯 걸음 차이를 두고 계셔.]



 [자고 일어났더니 옆에 계셔. 아직도. 지금도. 말을 걸어도 대답도 없이 무서운 얼굴로 나를 계속 쳐다보셔. 엄마?]



 [엄마, 왜 내 옆에 붙어 계셔요. 말씀 좀 하세요. 무서워요. 나는 이제 엄마를 보지 않으려고 해요. 일부러 엄마 눈을 피해서, 엄마가 안 보이는 척 하고 있어요, 엄마, 무서워요.]



 [엄마의 얼굴이 점점 내 앞으로 오는 것 같아. 어제는 엄마의 얼굴이 내 얼굴 옆에 있어서 앞만 바라보면 안 보였는데, 이제는 앞만 바라봐도 엄마의 두 눈이 보여. 엄마, 나 지금 쓰고 있는 거 안 보여요? 무서워요. 무서워요.]



 그리고 다음 장.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면 우리가 왔을 때 아내는?”



 남편의 생각이 거기까지 도달하자, 남편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며 급히 그 집을 빠져나와 서울로 도망치듯이 가버렸다.



 나중에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그 집에서 살게 된 며느리는 진실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못된 첫째 딸에게 겁을 주기 위해, 할아버지들과 할머니들이 합심하여 골탕을 먹일 생각으로 계속 찾아가 박 할머니가 돌아가셨는지 묻고, 마당을 파헤치고, 창문을 깼다고 말이다.

그러면 지레 겁을 먹거나, 불편해서라도 그 집에서 나가 살 줄 알았다고.

다만, 왜 파헤쳐진 마당을 그대로 놔두거나, 깨진 창문을 갈지 않았는지, 경찰에 신고는 왜 안 했는지 전혀 모른다고들 하셨다.

어찌됐든 그 집에서 살게 된 며느리와 손자, 손녀는 행복하게 잘 살았다.

힘든 세월을 보낸 끝에, 빚도 다 갚았고.

박 할머니의 손자는 곧 결혼도 한다.

박 할머니가 첫째 딸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였는지 알 지 못해도, 손자는 환하게 웃으며 자신을 맞이해주던 박 할머니의 고운 모습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루리웹 레이몬드j파웰 님 글



    • 글자 크기
로쿠로쿠비 (ろく-ろくび, 轆轤首) / 누케쿠비 (抜け首) (by 호로로) 콩나물 팔던 여인의 죽음 (by 나는굿이다)
댓글 1

댓글 달기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조회 수 추천 수
333 기묘한 심해 탐사 일지(초스압) title: 연예인13발기찬하루 1128 3
332 기묘한 (사진주의)아는형이 폐가에서 인증샷 찍었는데 뭔가 이상한거 찍 title: 연예인13발기찬하루 1296 0
331 기묘한 [BGM] 올리비아 메이블의 죽음 title: 연예인13발기찬하루 879 0
330 기묘한 과부 거미 1부 title: 연예인13발기찬하루 922 1
329 기묘한 과부 거미 2부 title: 연예인13발기찬하루 628 0
328 기묘한 성인 사이트2 title: 그랜드마스터 딱2개ILOVEMUSIC 3027 4
327 기묘한 귀신과 함께하는 게임 『위자보드』3 title: 풍산개안동참품생고기 1030 1
326 기묘한 산신의 연꽃1 title: 병아리커피우유 1422 4
325 기묘한 소설ㅡ인육1 title: 병아리커피우유 2307 2
324 기묘한 살충1 title: 병아리커피우유 1074 2
323 기묘한 바나나 할머니2 title: 병아리커피우유 1288 3
322 기묘한 공동묘지1 title: 병아리커피우유 992 2
321 기묘한 동물괴담-아버지가 들려주신 이야기1 title: 병아리커피우유 1567 2
320 기묘한 로쿠로쿠비 (ろく-ろくび, 轆轤首) / 누케쿠비 (抜け首) 호로로 1385 1
기묘한 유산으로 남긴 집1 title: 금붕어1ss오공본드 1252 1
318 기묘한 콩나물 팔던 여인의 죽음 title: 다이아10개나는굿이다 1253 0
317 기묘한 용한 점쟁이1 title: 병아리커피우유 2984 3
316 기묘한 의사놀이 title: 병아리커피우유 1236 3
315 기묘한 네잎클로버 title: 병아리커피우유 940 1
314 기묘한 팔척님(고전) title: 병아리커피우유 959 1
첨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