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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잊을 수 없는 이야기

title: 병아리커피우유2016.04.24 08:18조회 수 1022추천 수 3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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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은 또 그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게는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였다.
살다보면 특히나 기억에 남는 일이 한 둘쯤 생기는 게 보통이다.
저녁에, 밥을 배부르게 먹고 술 한 잔이 생각나는 때가 오면 나도 모르게 주절거리고는 하는 이야기.




그래봤자 짝사랑하던 여자아이나 군대 경험담, 여행에서 봤던 풍경 등이 자주 읊는 레파토리의 대다수지만
동생은 달랐다.




동생은 어릴 때, 납치되어 죽을 뻔한 경험이 있다.
범인은 정신착란자였다.
피해망상에 조울증, 강박 증세에 과도한 가학성까지.
자신의 울분을 힘 없는 어린 아이에게 풀어내는 병신같은 놈이었다.




동생은 그놈으로부터 살아남았다.
평소 몸이 약해 자주 찾아가던 약국의 수납원이 동생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골목길에서 축 늘어진 동생의 몸을 받쳐든 남자가 익숙한 얼굴의 보호자가 아니라는 걸 알아챈 수납원은
꺼림칙한 느낌에 남자의 낡은 자동차 번호를 외워두었다.




남자가 죽인 아이만 여섯이었다.
우리가 기적적으로 멀쩡한 모습의 동생을 찾았을 때, 어머니는 동생의 손을 잡고 오열했다.
물론 손가락 하나 다치지 않은 채로 동생이 발견된 건 아니었다.
범인에 의해 뒷머리가 깨진 데다 원체 몸이 약한 아이다보니 마취약의 부작용으로 인해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다.




범인은 동생을 묶어 차갑고 컴컴한 골방에 가둬놓았다고 했다.
창문도 꼼꼼히 판자로 틀어막은 곳이라 희미한 빛의 번짐만이 낮과 밤의 경계를 갈랐다고.




그곳에서 정신을 차린 것이 동생이 자주 말하는 이야기의 시작이다.
동생은 자신이 납치 당한 그 범죄에 관해서는 그다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건 신문 기사만으로도 충분한 일이라고 PTSD를 걱정하는 내게 동생이 말했다.




동생이 언제나 말하고 싶어하는 내용은 그 골방에서 만난 신비한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꽁꽁 묶인 자신과는 다르게 자유롭게 이야기를 하고 허공을 떠다녔다는 아이들.
울지 말라고 다독여주고 신기한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노래를 흥얼거렸다는 아이들.
자신이 겁에 질리지 않고 어두운 방 안에서 싸늘한 공기를 견딜 수 있었던 건 다 그 친구들 덕분이라고
항상 동생은 그렇게 얘기를 끝맺고는 했다.




병상에서 조금이나마 상태가 호전된 동생이 범죄 현장에서 만난 친구들 이야기를 꺼내들었을 때
부모님은 심각하게 심도 깊은 정신과 치료를 동반해야하는 게 아닌지 두 분이서 고심하셨다.
더더군다나 동생은 살해 당한 다른 아이들의 사진을 봐야만 한다며 답지 않게 고집을 부렸고
처음 본 낯선 아이들의 사진을 가리키며 '봐! 내 말이 맞잖아!' 제 기억이 틀린 게 아니라 확신을 가지는 눈치였다.




어느 정도 시일이 흐르고 모든 게 다 제자리를 찾았을 때 동생은 상대 부모가 자신을 꺼리지 않는다면 찾아가
그 아이가 자신에게 어떤 힘을 줬는지 어떤 다정함을 보여줬는지 얘기하고 서로가 친구가 되었다 말하고는 했다.
모두가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가슴 아픈 한편, 위로를 받는 사람이 있었고 또 말 없이 눈물만 흘리는 사람도 몇 존재했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이후에도 동생은 과거를 되짚어보듯 한번씩 그 이야기를 읊조리고는 했다.
화두는 언제나 잊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동생은 불행한 일을 겪기는 했지만 바르게 자라주었고
동생이 그'이야기'를 꺼낼 때면 항상 창백해지던 부모님도 이제는
꿈 같은 동생의 이야기를 덤덤히 듣게 되었다.




이제는 수백번 들어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는
어릴 적의 동생을 곰곰히 떠올려 본다.
유달리 몸이 약해 밖에 나가지 못하고 책에 싸여 방 안에 앉아있던 어린 동생을.




어쩌면 동생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억울하게 죽은 아이들이 다른 친구의 목숨을 살리고자 영혼으로나마 떠돌았다고.
그 어둡고 싸늘한 골방에서
고통과 공포에 휩싸인 한 아이를 위해.




그래서 나는 동생과 달리 내가 아는 이야기를 남에게 말하지 않는다.
그 미친.놈이 어떤 의도에서든 베어낸 아이들의 머리를 전시하듯 골방에 매달아 놓았다고
형사들이 쑥덕이던, 신문에도 나오지 않았던 얘기.




캄캄한 방 안에서 창 위에 덧대어진 판자는 과연 얼마만큼의 빛을 통과시켰을까.




동생이 이야기를 꺼낼 때면 가슴 위로 어둠이 드리워지는 이 이야기가 바로 내가 아무에게도 꺼낼 수 없는 잊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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