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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단편] 그대의 향기

패륜난도토레스2024.03.09 18:04조회 수 28추천 수 2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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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붉은 벽돌 무당집 '아진유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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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향기

 

 

 

어릴 적부터 나는 냄새라는 것에 민감했다.  

 

길을 지나갈 때 가게에서 풍기는 순대국 냄새에도 기겁을 하고 토기를 참아야 했고  

 

돼지고기 같은 것들은 아예 입에도 대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난 채식을 하게 되었고  

 

어느 사이엔가 식탁에는 고기 반찬이 올라오지 않게 되어 오빠의 불만이 하늘을 찔렀었다.  

 

하지만 고기 냄새만 올라오면 식탁의 근처에도 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식구들은 고기를 먹을라치면 나를 두고 외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장이라든지 매운탕 같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은 비위가 상하지 않을 정도의 향기를 가진 일부의 음식들뿐이었다.  

 

솔직히 냄새 때문에 불편했던 것은 비단 음식만이 아니었다.  

 

길거리에 널려 있다시피 한 한약방이나 고깃집 앞을 지나지 못해 빙빙 돌아다니기 일수였고  

 

남자들의 담배냄새도 역하긴 마찬가지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담배 향이 섞인 사람의 냄새가 싫었다.  

 

정말인지 엄청나게 발달한 이 후각은 사람 특유의 냄새까지 일일이 구분할 수 있어서  

 

주변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는 눈감고서도 알 수 있었다.


그런 능력이라면 좋은 게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실상 가장 불편했던 것은 바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었다.  

 

학교 다닐 적에 운동장에서 뛰어다니다 들어온 남자애들을 역겹다는 표정으로 바라봐서

 

내 소문은 그다지 좋지 않았었다.  

 

하지만 싫은데 어쩌라는 건지.  

 

그 땀 냄새는 정말 생각만 해도 토할 것 같았다.  

 

거기다 몰래 담배를 피우는 녀석들은 말 할 가치도 없었다.  

 

근처에만 가도 풍기는 그 냄새.  

 

그것은 단순한 땀 냄새나 약한 악취 따위가 아니었다.  

 

은근하게 풍기는 사람의 냄새가 너무도 싫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향은 모두 틀렸지만 싫은 것은 다를 것도 없이 똑같았다.  

 

덕분에 내 인간관계는 엉망이었다.  

 

친구도, 연인도 만들 수가 없었다.  

 

그 안에서 풍기는 지독한 살내음은 어째서 향수가 발명된 건지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 냄새를 감추기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뿌릴 수 있으리라.


어쨌거나 그런 이유에서 나는 향수라는 물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자연의 향기라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독특했다.  

 

신선한 바람에 실려오는 꽃향기라던가 물내음은 그대로 사람의 향기에 덮어씌우고 싶을 정도로 잔잔했다.  

 

물론 향수는 원초적인 자연의 향과는 달랐지만 뭐라 해도 사람의 냄새보다는 나았다.  

 

알콜과 억지로 뽑아낸 몇 가지의 에센스를 섞으면 그 지독한 냄새를 가릴 수 있다.  

 

거기다 나에게는 천부적인 후각이 있었다.  

 

그것은 향수업계에서 일찍이 듣지도, 보지도 못한 굉장한 것이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찾아간 유명 향수 회사에서의 면접 때  

 

아직 출시하지도 않은 향수에 섞인 에센스와 오일을 전부 알아 맞췄다.  

 

물론 전문적인 용어는 아니었지만 정확히 어떤 향인지 맞춰내는 나에게 그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 면접은 내 일생의 커다란 전환점이었다.  

 

나는 단 시간에 전문적인 향수를 만드는 가장 감각적인 배합을 터득했다.  

 

그리고 업계에서 몇 십 년을 몸담았던 선배들보다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물론 내가 만든 향수 또한 거침없이 팔려 나가서, 말 그대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거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온갖 향기 속에 파묻힌 상태로 돈과 명예를 한꺼번에 움켜쥔 것이다.  

 

무언가를 요구할 수 있는 위치에까지 올랐을 때 나는 회사에 혼자 일 할 수 있는 작업장을 만들어 달라고 말했고  

 

내가 다른 곳으로 옮길까 노심초사했던 그들은 아무 반문 없이 빠르게 일을 처리해 주었다.  

 

그 것은 벌써 2년 전의 일이었고 나는 나만의 작업장을 가진 이후에 더더욱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게 되었다.  

 

냄새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외출하는 것은 오로지 가족들을 만날 때뿐이었다.


그 날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외출 준비를 하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다시는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아무리 나라 해도 지독한 외로움에서는 벗어 날 수는 없었다.  

 

직장 동료들은 사람을 가까이 하지 않은 채로 높은 자리에 올라선 나를 달가워하지 않았고,  

 

나아가서는 따로 작업실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반갑게 수긍할 정도의 불편한 존재로 인식했다.  

 

애초에 말했듯이 나에겐 친구도, 연인도 없었다.  

 

난 누가 봐도 일찍 성공한 편에 속했지만 그에 비해 사교성은 현저하게 떨어졌다.  

 

바깥 세상에서 느껴지는 혐오감이나 불쾌감보다 훨씬 강한 외로움이란 감정에서  

 

날 끄집어 내 줄 수 있는 사람은 불행하게도 식구들뿐이었던 것이다.  

 

망설이고 망설이다 어쩔 수 없이 문을 여는 것은 오로지 앞으로의 기나긴 고독을 잠시나마 달래기 위한 임시 방편이었다.

 

거리는 한 차례 비가 쏟아진 후였다. 다행이었다.  

 

대기 속의 사람들의 냄새는 빗줄기에 씻겨 내려 아스팔트 위를 흐르는 중이었고  

 

무엇보다 비가 오면 사람들은 밖에 잘 나서지 않는다.  

 

덕분에 조금은 나아진 기분으로 거리를 걸었다.

 

 

내가 그를 느낀 것은 집을 나서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굉장히 달콤하고 신선한 향기가 갑자기 코를 찔러 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을 때 후두둑 떨어지는 빗줄기는 강해져 있었고  

 

비 때문에 흐린 시야 사이로 바로 앞을 걷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평범하다 못해 눈에 뜨이지 않을 정도의 남자였지만 나는 분명하게 느꼈다.  

 

주변에는 그 외에는 아무도 없었고 이 독특한 향기는 비의 냄새와는 확연하게 틀렸다.  

 

저 남자에게서 나는 향기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나도 모르게 그의 뒤를 쫓고 있었다.


처음 맡아보는 향이었다. 뭔가를 잔뜩 섞어 놓은 향수에 가려진 향은 절대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하게 인간 본연의 냄새였다.  

 

신기하게도 그것은 여타 다른 사람들의 냄새처럼 날 강한 혐오감으로 던져 넣지 않았다.  

 

오히려 저절로 끌리는 신비한 종류의 것이었다.  

 

인공적이지 않은 순수한 에센스.  

 

살짝 달콤하기까지 한 그 것은 직접 만들어 온갖 찬사를 받았던 어떤 향수보다 뛰어났다.


처음에는 일정 거리를 두고 그를 쫓았지만 가까이에서 풍기는 향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유혹적이어서,  

 

어느새 그의 뒤에 바짝 붙어 있었다.  

 

그는 내 미행같지 않은 미행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해서 걸었다.  

 

주변을 미처 살필 여유가 없었지만 그는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변두리의 어느 막힌 골목에서 그가 멈춰 섰다!

 

 

"왜 따라오시는 거죠."


목소리는 탁했고 우울감과 상실감마저 느껴질 정도로 낮았다.  

 

신경이 곤두서 있지 않았다면 들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갑작스런 질문에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우물거렸다.  

 

내가 대답이 없자 그가 몸을 돌렸다. 내내 뒷모습만 보아왔던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매우 평범한 얼굴,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여자들의 호감을 살 만한 외모는 결단코 아니었다.  

 

그저 그런 외향. 바싹 마른 몸은 말라비틀어진 북어와 얼추 닮아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어느새 비는 그쳐 있었고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기는 더욱 강렬해져 있었다.  

 

그를 잡아야만 해.  

 

나는 숨을 두 번 들이쉬고 눈을 꼭 감았다.


"…저, 저기. 연락처 좀 알고 싶은데요."


나는 자신이 없었다.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은 내 생에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고,  

 

더군다나 그는 일면안식조차 없는 사람이었다.  

 

아, 정말인지 바보 같은 짓을. 하지만 저 남자라면 평생을 같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혐오감도 가지지 않은 채로 달콤한 향에 취해서 그렇게.  

 

처음 본 남자에게 안정을 찾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나는 절박했다.  

 

오빠는 이미 결혼을 해서 자주 보기 힘든 상태였고 부모님은 연세가 많으셨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오빠를 만날 일은 더욱 줄어 들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나는 이 구역질나는 세상에서 혼자 견뎌야 했다.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은 싫었다.  

 

나도 나의 반려자를 만나 평생을 동고동락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문제는 구역질나는 냄새가 나지 않는 사람을 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찾아내고야 말았다. 아니, 냄새가 나지 않는 것도 감지덕지인데  

 

오히려 그는 천연의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이건 필연이다. 절대로 포기 할 수 없어.


남자는 말이 없었다.  

 

살짝 눈을 뜨고 보니 이상하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거절의 말은 없었다.  

 

그저 가만히 보고 있을 따름이다.  

 

나는 그가 거절할 까봐 마음이 불안해져서 쓸 데 없는 말을 덧붙이고 있었다.


"저 원래 이런 여자 아니에요. 그 쪽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래요. 연락처…."

 

"전 휴대폰이 없습니다."


간결하게 흘러나온 말에 힘이 쭉 빠졌다.  

 

요즘 세상에 휴대폰이 없다는 것으로 핑계를 대다니.  

 

거절의 방법이 너무도 구차하다고 생각되었지만 뭐라 할 말은 없었다.


"그러니 그 쪽 연락처를 주시면 연락 드리죠."


사실 난 그가 연락처를 주지 않으면 끝까지 따라 갈 생각이었다.  

 

그랬기에 그의 말에 반색하며 빠르게 명함을 꺼내 건넸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저 대사조차 거절의 말로 생각하는 것이 정확했지만  

 

나는 그런 연애의 이야기를 많이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잔뜩 흥분해 있었다.  

 

그는 명함을 받아들고 한참을 내려다보다가 아무 대꾸도 없이 자리를 떠났다.


그 날 식구들은 보지 못했다.  

 

주변에 베인 그 향기를 잊고 싶지 않아서 바로 집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서 연락은 오지 않았다. 나이도 사는 곳도 심지어 이름조차 몰랐다.  

 

아, 나는 결국 거절당한 것인가.  

 

두 번 다시 느낄 수 없는 그 향이 계속해서 코를 간지럽히는 것 같았다.  

 

사실 그의 얼굴이라던가 배경 같은 것은 전혀 관계가 없었기에  

 

연락만 와 준다면 하고 생각했었지만 일주일쯤 지났을 무렵에는 기대감 따윈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그 향기만이 머리 속을 빙글빙글 맴돌았다.  

 

 

이틀이 더 지났을 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은 나는 「저기. 」하는 탁한 목소리에 그를 금방 기억해 냈다.


"아, 그 때 그 분! 기다렸어요. 정말로!"

 

「 그러셨나요. 」


그러고선 그는 말을 하지 않았다.  

 

말수가 적은 타입인 듯 했다.  

 

나는 최대한 즐거운 화제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는 그 뒤로도 두 세 마디를 더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통화는 3분도 채 되지 않았지만 나는 전화를 끊기 전에 만남을 제안했다.  

 

그는 「네.」하는 짧은 한마디를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었을 때 내 심장은 고동치고 있었다.  

 

두근거리는 탓에 향수를 제대로 배합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것이 내가 가장 잘하는 유일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뭘 입어야 할 지, 화장은 어떻게 해야 할 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맙소사. 이것이 인생의 첫 데이트라는 것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승진은 말수가 적었다.  

 

외향적이지도, 사교적이지도 않았다.  

 

키는 컸지만 그의 등은 언제나 구부정해서 장점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옷차림도 언제나 평범 그 이상을 넘지 못했고 비쩍 마른 몸에 걸쳐진 옷은 허수아비의 그것도 같았다.  

 

특별히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특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은 무섭기까지 했지만 난 그를 너무도 사랑했다.  

 

정확히는 그의 향기를 사랑하는 것이다.


나는 그와 계속해서 만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그와의 재미없고 건조한 데이트도 내 쪽에서 몇 번이고 제안했다.  

 

그 끝은 그가 나에게 데이트 신청을 먼저 할 때까지였다.  

 

그 때까지 나는 그에 대해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정말로는 궁금하지 않았다.  

 

난 그저 그의 향기에 취해 있으면 그만이었다.  

 

만나면 그의얼굴을 정신 없이 들여다 보며 숨을 들이쉬기에 바빴다.  

 

그런 나의 노력은 6개월 만에 결실을 맺었다.  

 

그와 정식으로 사귀는 것은 물론, 한 집에서 살게 된 것이다.  

 

살풋 잠이 든 나의 머리카락을 쓸어주는 손은 매일 밤 계속 되었다.  

 

그의 품에서 자고 난 아침에는 내 온 몸에 그의 향이 베어 있는 것 같아 상쾌했다.


승진은 간간히 자신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예상대로 그는 인기가 없는 타입이었다.  

 

좋아했던 여자는 있었던 것도 같았다.  

 

사귀었던 사람도 있었지만 나를 만나기 하루 전에 헤어졌다고 했다.  

 

분명한 것은 그가 나를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에게 하는 행동들이 조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단조로운 어투가 조금씩 사근히 변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를 만지는 손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그와 잠자리를 하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놀랍게도 그는 체취 뿐 아니라 땀 한 방울까지 달콤한 향기를 내뿜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향기가 천천히 사라지고 있는 것을 말이다.


어느 날인가 그와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좋지 못한 냄새가 났다. 나는 혹시나 해서 몸을 일으켰다.  

 

환기 때문에 창문을 열어 둔 것을 깜빡했다고 생각했지만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집 안에는 아직 시판 되지 않은 향수가 베어 다른 냄새는 찾을 수 없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식탁으로 돌아왔을 때야 그 냄새의 진원지를 알 수 있었다.  

 

세상에나, 언제나 달콤한 향기만을 내뿜을 것 같았던 승진에게서 미약한 악취가 나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래?"


그는 이상하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확실히 이상했을 것이다.  

 

난 그를 만날 때만큼은 한 번도 그런 표정을 지은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게선 인상을 찌푸릴 만한 냄새는 한 번도 풍기지 않았다.  

 

사실, 지금도 향기와 악취가 뒤섞여 있어 이정도지 다른 사람들과 같은 냄새가 났다면 당장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내가 먹은 것들을 치웠다. 그

 

에게는 입맛이 없다고 둘러댔다.  

 

아마도 그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와서 그러리라 생각했지만 내 생각은 틀렸다.  

 

그 역시 다른 사람들과 똑같았던 것이다.  

 

다음 날도 집에서는 미미한 악취가 공기를 휘감고 돌았다.  

 

나는 그의 향기가 사라지는 것이 두려웠다.  

 

애써 얼마 남지 않은 향기에 집중하며 그를 마주 하려 애썼지만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그 것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더 이상 그와 함께 할 수 없다.  

 

나는 그에게 헤어지자고 말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내가 사랑하는 향기는 이미 사라져 버렸는데 말이다.  

 

오, 맙소사.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잠시 고민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잠시였다. 단 이틀.  

 

그 사이에 그의 악취는 내가 집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번져 있었다.  

 

그리고 그 후 이틀은 집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그에게선 전화가 끊임없이 왔지만 난 받지 않았다.  

 

목소리에서조차 악취가 풍길 것 같아 두려웠던 것이다.


확인할 때마다 문자는 시시각각 변했다.  

 

처음엔 걱정하는 투였고 그 다음엔 화를 냈다가 마지막엔 애원하기 시작했다.  

 

그에게서 그런 문자가 들어온 것은 의외였다.  

 

그는 언제나 무뚝뚝한 편이었다. 나는 점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와 헤어질 수 있을까? 그는 나를 놓아 줄까? 하지만 오늘은 집에 들어가야 했다.  

 

집과 작업실은 함께 있었다. 난 일을 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그를 내보내야 했다.


집은 어두웠다.  

 

그는 나간 것일까? 하지만 안으로 들어서며 그가 안에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술 냄새와 그의 냄새가 뒤섞여 토할 것 같았다.  

 

나는 한껏 인상을 찌푸리고 자켓을 벗었다.


"승진씨. 어디 있어? 집에서 술 마시지 말라고 했잖아?"

 

"…대체 어디 갔다 오는 거야."


그의 목소리에 깃든 분노가 섬뜩할 정도였다.  

 

나는 일부러 태연을 가장하고 창문을 열었다.


"바빴어. 세상에, 집안 꼴이 이게 뭐야?"

 

"전화를 얼마나 한 줄 알아?"

 

"알아. 환기도 안 시키고, 불도 안 켜고. 향수도 하나도 안 뿌려 뒀잖아?"

 

"지금, 그런 애기 할 때야?!"


그가 소리를 질렀고 고개를 돌린 나는 그제야 그를 똑바로 바라 볼 수 있었다.  

 

그는 소주 병을 손에 들고 있었고 주변에도 굴러다니는 병들이 상당했다.  

 

그는 상당히 취해 있는 상태였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나도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꼴도 보기 싫어진 사람이 화를 내는 것은 누구라도 참기 어려운 일이다.


"왜 화를 내고 그래?! 나 피곤해. 일하고 왔잖아! 승진씨는 일도 하지 않고 집에만 있으면서 환기 하나 제대로 못 시켜?!"

 

"지금 말 다했어?"


그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는 단단히 화가 나 있었고 나는 그를 일 분 일 초도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는 내가 말한 대로 일하지 않고 있었다. 사람이란 참으로 간사하다.  

 

그가 처음 왔을 때는 그 정도는 문제가 아니었다.  

 

살아있는 향기.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뭐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가 쓰레기 같은 냄새를 퍼트리기 시작하며 전혀 개의치 않았던  

 

그의 모든 면들이 눈에 가시처럼 다가왔다.  

 

그의 자존심이 무너지거나 말거나 이젠 아무 상관 없었다.


"그래. 말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펀펀 놀기만 할 거야?  

 

자기가 나한테 해 준 게 뭐냐구! 난 이제 자기 얼굴만 봐도 구역질이 나!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 자기랑 더는 못 살겠어!" 

 

"뭐?"


그는 반문하고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그에게 헌신적이었다. 일을 하지 않아도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오히려 같이 살 것을 제안한 내가 더는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걸 믿을 수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유는 핑계에 불가했지만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는 건 진심이었다.  

 

그 진심을 그도 읽은 것이 분명했다. 그는 당황한 얼굴로 소리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마! 네가 어떻게!"

 

"말이 왜 안 돼?! 난 이제 승진씨 정말 싫어! 정이 뚝 떨어졌…!"


난 말을 끝 낼 수 없었다. 그가 내 뺨을 때린 것이다. 정적이 흘렀다. 뺨이 화끈거렸다.  

 

그는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손을 뒤로 감추며 나에게 다가왔다.


"미,미안해. 서영아. 내가 너 사랑하는 거 알잖아. 너도, 나 사랑한다고 했잖아. 일 구할게."

 

"지금 와서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사람 말 못 알아듣니?! 이승진! 당장 나가!"


버럭 소리를 지르는 나에게 그는 뭐라 계속 말을 걸었다.  

 

그건 분명한 애원이었지만 나는 더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그의 팔을 붙잡고 돌려 문 쪽으로 마구 밀어내며 더럽고 역겹다고 소리쳤다.  

 

그가 계속해서 내 이름을 불렀지만 난 이 거대한 쓰레기를 치우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리고 문을 열려는 순간 난 억센 손에 끌려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악!"


그는 역시 남자였다.  

 

그것도 만취한 상태의.  

 

이성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모를 상태에서 그의 자존심을 박박 긁어댄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내가 뭘 알겠는가? 나는 인간 관계에 있어서는 제대로 배운 것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그는 강한 힘으로 내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쇼파 쪽으로 질질 끌어갔다.  

 

놔?! 놓으라니까?! 발버둥 쳐봤지만 힘으로 이길 수 없었다.  

 

그는 거칠게 날 던져 버리고선 위에 타고 올랐다.  

 

새까만 어둠을 배경으로 한 채 그의 눈동자가 번뜩거리는 것만이 보인다.


"아악! 승진씨! 왜 이래! 놔, 이거!"

 

"너도…똑같아."


말하는 그의 눈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느새 눈물이 흐르는 것이 느껴진다.  

 

그의 뼈마디만 남은 손이 내 목덜미를 쥐고 눌러왔다.  

 

숨이 막힌다. 세상에, 이 남자는 정말로 날 죽일 생각인 것이다.  

 

나는 한 손으로 그의 손을 쥐어 잡았다.  

 

죽고 싶지 않아! 하지만 그의 손은 쉽게 펴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강한 힘으로 압박해 왔다.  

 

단순한 술기운일 것이다.

 

조금이라도 이성이 돌아온다면 이 무서운 짓을 그만 둘 것이다.  

 

그가 정신을 차리게 하기 위해 나는 필사적으로 말을 걸었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단단히 막혀버린 숨구멍으로는 켁켁거리는 숨조차 내어 뱉을 수가 없다.


아, 이렇게 죽을 수는 없었다.  

 

한 손으로 목을 움켜쥔 채로 다른 손으로 바닥을 마구 긁듯이 더듬는 순간에 매끄러운 것이 손에 잡혔다.  

 

나는 그 것을 쥐자마자 그의 머리를 후려쳤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그가 머리를 움켜쥐었다.  

 

있는 대로 숨을 몰아쉬며 나는 한 번 더 그의 머리를 쳤다. 파작, 거리는 소리. 바닥으로 피가 튀었다.  

 

그를 친 물건은 방금 전까지 마시고 있었을 소주병이었다.  

 

내 손에 남아 있는 것은 부서져 날카로운 이를 드러낸 병의 목이었다.  

 

그는 머리를 부여 잡고 있었고 아픈 신음을 내뱉었다.  

 

이어 고개를 든 그의 눈. 나는 한 번도 그렇게 무서운 눈을 본 기억이 없었다.  

 

피가 얼굴을 가득 뒤덮은 채로 그가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죽여 버리겠어. 그 말이 진심임은 바보라 할 지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성큼성큼 나에게로 다가왔고 나는 뒤로 물러나며 손에 쥔 것에 힘을 주었다.  

 

아, 이제 정말 방법이 없었다. 죽지 않으려면 죽이는 수 밖에.


그 뒤에는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격렬한 몸싸움이 이어졌다.  

 

그도, 나도 필사적으로 서로를 죽이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나는 손에 든 병 조각으로 그를 찌르려고 했고 그는 그 행동을 저지하며 동시에 위협했다.  

 

오, 세상에. 사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하지만 그렇게나 끔찍한 것을 기억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의 가슴에 그 녹색의 병을 꽃았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실수이건 우연이건 나는 그를 찔렀고, 그는 증오가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눕듯이 쓰러졌다.


잠시 손을 바라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가 죽었는지 확인해야 했다.  

 

죽지 않았다면 경찰에 신고할 생각이었다. 이 것은 정당방위였다.  

 

그가 먼저 나를 죽이려고 했다는 걸 안다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정말로 죽지 않았다면, 하는 생각이 들자 오히려 무서워졌다.  

 

그가 공포영화의 살인마들처럼 내가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는 분명히 나를 죽일 것이다.  

 

나는 주저하며 그에게 아주 천천히 다가섰다.  

 

거리를 두고 발로 그를 툭툭 걷어차 본다.  

 

그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앉아서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의 죽음을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래야만 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뻗어 그의 목덜미에 가져다 대보았다.  

 

조금의 맥박도 잡히지 않았지만 나는 재차 그의 손목을 확인했고 마지막으로 코에 손을 대어 숨이 나오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죽었다.  

 

 

"아아."


나는 사람을 죽인 것이다.  

 

잠시였지만 평생을 생각했던 사람을 말이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이유였긴 했지만 어쨌거나 지금 나는 그의 시체를 앞에 두고 있었다.  

 

나는 풀썩 주저 앉아 그의 얼굴을 망연자실 바라보았다.

 

대체 나는 무슨 짓을 한 거지.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멍하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향기가 다시 나기 전까지 말이다.


"…."


분명하게 나고 있었다.  

 

그를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그 향기가.  

 

설마 그가 죽어서 나는 향기일까?

 

나는 두려움도 잊고 그의 몸에 코를 묻고 킁킁댔다.  

 

하지만 그에게선 아무 향기도 나지 않았다.  

 

심지어는 그를 끔찍하게 혐오스런 존재로 바꿔놓은 악취조차도 말이다!  

 

죽은 사람에게서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하지만 이 냄새는 도대체 어디서 나는 거지?  

 

나는 몸을 일으켜 집안 구석구석을 살폈지만 어디에서도 그 향기의 진원지는 찾을 수 없었다.  

 

나는 곰곰히 생각했지만 도대체 찾을 수가 없는 향기 때문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대체 어디서…."


나도 모르게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는 순간이었다.  

 

코를 확 찌르는 향기. 그것은 나에게서 나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숨을 멈췄다.  

 

굉장히 무서운 현실 앞에 도달한 것이다.  

 

지금 나에게서 나는 향기는 그와 같은 향기.  

 

그렇다면 그도 역시…!

 

 

 

 

 

- 당신을 만나기 하루 전에 헤어졌어. 아주 깨끗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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