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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늙은 개에 대한 고찰

title: 금붕어1ss오공본드2015.01.06 08:20조회 수 2009추천 수 1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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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대 공게를 보고 할머님과 큰아버지의 일화가 생각나 두분이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몇시간에 걸쳐


소설화 해봤습니다.좀 많이 길어서 4편으로 나누어 다이렉트로 올립니다.


뼈대는 100% 실화이되 대화나 지명 이름은 픽션&가명입니다.





늙은 개에 대한 고찰(1)


혹시 댁에 개 키우시고 계시나요?

키우고 계시다면 얼마나 오래 키우고 계신가요?

아마 보통 3~6년 정도가 대부분일거라 생각합니다.

뭐 기르기에 따라서 도중 병에 걸려 죽을 수도 또 차에 치여 죽을 수도 있고 아니면 

집을 뛰쳐 나가거나 때론 키우기 귀찮아서 버리기도 하지요. 동물 중에서 가장 호강하면서

반면에 또 가장 천대 받는 동물이 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제 개인적인 소견입니다. 개의 평균 수명은 7~10년이라더군요. 물론 건강한 개에 한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13~5년 까지 장수(?)한 개들도 간혹 드물게 있지만요.


혹시 이런 옛말 아시나요? “개가 10년을 살면 여우가 된다.” 재밌는 말이죠?

여우가 된다? 여기서 지칭하는 여우는 단순히 동물로써의 여우가 아니라

약삭 빠르고 꾀가 많은 사람을 흔히 “여우“라고 칭하잖아요?

또는 우리나라 전설이나 구전동화에서 나오는 온갖 요술을 부리고 사람에게

해를 주는 구미호라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제가 하려는 얘기는 10년 정도 개를 키워 보신 분들은 공감 하시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전 10년 정도 산 개를 두 번 키워 봤습니다.(둘 다 믹스 견 이었습니다.) 그들의 일상적인 행동은 하릴없이 엎드려서 앞발을 모으고 턱을 괸 다음 느긋이 한 곳을 응시를 합니다.

때론 아무 소리도 안 나는데 귀를 쫑긋 세우기도 하구요.

허공을 향해서 짖는가 하면 으르렁 거리기도 하지요. 뭐 이 정돈 하룻 강아지도 가끔 하는 행동입니다. 


단순히 사람이 자기(개) 주위에서 어떤 행동을 할 때 어린 개들은 호기심과 불안함의 눈빛을 띠는 반면 늙은 개들의 눈빛은 순전히 제 생각입니다만 그게 무슨 행동인지 다 아는 듯한 눈빛과 저 행동의 의미를 생각하는 눈빛이랄까요? 


때론 뒤통수가 간질거려 뒤를 돌아보면 나를 빤히 쳐다 보다 눈이 마주치면 능글맞게 슬며시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아 버리기도 하죠. 또 어떤 날은 가족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무심코 주위를 보면 좀 전까지 제집에서 자고 있던 개가 어느 새 소리 없이 와선 우리 가족의 옆에 엎드려서 귀를 쫑긋 거리며 듣고 있을 때도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너무 예민할 수도, 크게 확대 해석하는 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그 장면이 생생한 기억 중에 하나가 밤에 오줌이 마려워 밖에 나왔다가 어둠 속에서 늙은 개가 담벼락을 향해 움직이지도 않고 한곳만을 응시한 채 경계 자세를 풀지 않고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불러도 들은 채도 안하고 말이죠. 다른 개들은 저들끼리 뛰놀고 난리 부르스를 추는데 말이죠. 혹시 뭐가 있나하고 담 밑을 살펴도 보고 또 담 뒤에 누가 서있나 하고 나가 봤는데 아무것도 없이 조용하기만 해서 순간 소름이 끼쳐 미친듯이 집으로 뛰어 들어 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녀석은 그 날 뭘 보았던 걸까요? 동물이나 사람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 녀석은 안타깝지만 몇 달 뒤

개장수 한테 팔려 갔습니다. 신기한건 다른 개들은 있는 힘껏 저항을 했지만 그 녀석은 아무 저항도 없이 개장 안으로 들어가더군요. 녀석은 실려 가면서 개장 안에서 나를 계속 쳐다 보고 있었습니다. 그 눈빛이란.., 제 얘기를 못 믿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10년 이상 개를 키워 보신 분들은 공감하시는 부분이 많으실 겁니다. 아마도.., 

저도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할머니에게 중학교 때 이 얘기를 듣기 전까지는..,




1963년 7월 강원도 횡성군 운내면 작은 시골 마을


“어이~ 영식엄마! 여기 막걸리 어여 가서 한 사발 좀 더 받아와!”


“아이구 그만들 좀 자셔요! 벌써 세 주전자 드셨잖아요.”


“아 이 사람아! 네 명이서 한 주전자씩은 먹어야 될 거 아냐? 딴소리 말고 어여 갔다와”


“으이구 저놈의 술 주전자 갖다 버리든지 해야지 원..,진짜 마지막이에요!”


“재수씨 이거 귀찮게 해서 미안합니다. 우리가 5년만에 모이는 거다 보니 얘기가 길어지네요. 딱 한 사발씩만 하고 일어날게요.”


“그래요 재수씨 오늘만 이해해주세요.”


“제가 술들 드시는 것 땜에 이러는 거 아니잖아요. 꼭지가 돌 때 까지들 드시니까 그러죠.”


“뭔 말이 그리 많아? 가져 오라면 가져 올 것이지!”


“알았어요. 알았어!”



엄마는 체념을 했는지 주전자를 들고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양조장으로 향했다.


“깜둥아. 오늘은 아저씨가 기분이 좋으신가 보다 그치? 친구 분들을 몇 년만에 만나셨는데 

반가우시겠지.., 뭐? 오늘 내 생일인데 안 서운하냐고? 나는 괜찮아. 그래도 미역국은 먹었잖니, 물론 내 손으로 끓인 거지만.., 그렇게 무심한 양반은 아니었는데 크게 아픈 뒤론 술만 저렇게 매일 드시니.., 하아~ 내가 지금 개 한테 무슨 소릴 한담.“



깜둥이는 우리 집에서 11년째 동고동락(?) 하며 장수중인 믹스견이다. 몸집은 믹스견치곤 커서 동네 개들 중에 당할 개가 없었다. 허나 요즘은 늙어서 힘이 없는지 동네 개들과도 어울리지 않고 주로(?) 사람들과 어울린다. 지금은 엄마가 양조장 가는 길에 운동도 하고 동네 순찰도 할 겸 겸사겸사 따라 나선 참인 모양이다.


“엄마아~ 나 오늘 산수 88점 맞았어!! 엄..,마”


“영도, 이노무 새끼! 영미 깬다고 호들갑 떨지 말랬잖아! 그리고 학교 갔다 왔으면 다녀왔다고 인사부터 하랬지? 이 애비가 그리 가르치던?”


“네..,학교 다녀왔습니다.”


“그래. 엄마 좀 있으면 올 거야. 얼른 씻고 엄마 오면 밥 달라고 해.”


“아, 그만 나무래 이 사람아. 애 기 죽게.., 아이고~ 우리 영도 5년 동안 많이 컸네? 아저씨 모르겠어? 세봉이 아저씨잖아. 하긴 5년이 넘었으니, 참 세월 빠르구만. 그나저나 우리 영도 까까 사먹으라고 용돈 좀 줘야지. 어디보자. 옳거니~ 여기 100원(옛 화폐 단위입니다.)있네. 영도야! 이걸로 까까 사먹어라. 응?”


“아 이 사람아 애 버릇 나빠지게, 그냥 넣어둬~.”


“또 언제 볼지 모르는데 그럼 쓰나~”


“영도 뭐하냐? 아저씨가 용돈 주시잖아. 어여 와서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야지!”


“감사합니다.”


“그래 영도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네~”



영도는 2남1녀중 둘째로 지금 초등학교(그 당시는 초등학교)3학년이다.

기분이 좋아진 영도는 얼른 방으로 뛰어 들어가 돈을 빨간 돼지 저금통에 집어넣었다.

좀 있으려니 밖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렸고 이내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영도 왔니? 오늘 산수 시험 잘 봤구?”


“응! 88점 맞았어!”


“아이구~ 우리 영도 잘했네~ 오늘은 계란 후라이 해줘야 겠네?”


“와아~ 근데 엄마. 오늘 엄마 생일 맞지?” 


“왜? 우리 영도가 엄마 선물이라도 줄려고?”


“선물은 못 준비 했고..,쪽! 뽀뽀~”


“에구~ 이쁜 내 새끼~ 어쩜 이리 뽀뽀가 달까~”



엄마는 아빠에게 가졌던 서운한 맘이 영도의 뽀뽀로

모두 풀리는 듯 하신지 입가에 행복한 미소를 그리셨다.


“영식아! 깜둥이 밥 좀 줄래?”


“네!”


나는 2남1녀중 첫째로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고 현재 이 얘기의 1인칭 해설의 주인공이다. 그건 그렇고 깜둥이의 저녁은 늘 내가 챙겨 주었다.


“깜둥아! 어디 있니? 밥 먹자~ 깜둥아~”


몇 달 전까진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나도 꼬리를 있는 대로 흔들며 쫒아 다니던 

녀석이었다. 하지만 이젠 늙었는지 좀 처럼 그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녀석은 마당에 있는 평상 밑에서 기어 나와 힘 없이 꼬리를 흔들었다. 요즘은 제집을 놔두고 여기서 정을 붙이고 사는 모양이었다.


“깜둥아. 어디 아프니? 요즘 왜 이리 힘이 없는 거야?”


“그 놈에 **끼 죽기 전에 잡아 먹어야겠다. 죽으면 피 빼기도 힘드니..,”



아빠가 마루에서 담배를 피시다가 나를 보고 말씀하셨다.


“아부지~ 그래도 우리하고 11년을 같이 살았는데.., 가족이나 다름 없잖아요? 영도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시면서..,”


“아까 친구들 왔을 때 얘기 다 끝냈다. 일주일 뒤에 가족 동반으로 놀러 갈 때 잡기로.., 그리 알고 있어.”


“그래도..,”


“영도는 걱정할 거 없다. 내가 새끼 한 마리 얻어다 줄라니까,”


“네..,”


“에구 에구구~ 이놈의 다리는 갈수록 말을 안 듣네. 잘라버리든가 해야지 원~”


“아부지도 참~ 빨리 나으셔야죠.”


“좀처럼 안 낳으니까 하는 소리다. 이래서 인간구실이나 하겠냐? 너도 얼른 들어가 자거라. 내일 주번이라면서.”


“네, 주무세요!” 



아버지는 3년 전 밤에 술을 잔뜩 드시고는 논물을 대고 오시다가 발을 헛딛으셔서 제방 밑으로 떨어지셨다.

그 후유증으로 다리 한쪽을 심하게 져시게 됐고 지금까지 일도 변변히 못하신다. 그 이유로 엄마가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시다. 그나저나 깜둥이를 잡아 드신다니 문득 깜둥이가 불쌍해졌다.


“휴우..,우리 깜둥이 어쩌면 좋니..,?!”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깜둥이는 아버지가 들어가신 안방을 보고 코를 씰룩이며 낮게 으르렁 거리고 있었다. 마치 그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이.., 가족에겐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지금껏 없었기에 더욱 소름이 끼쳤다. 거기다 요즘은 매사에 늘 힘이 없었기에 더욱 놀란 것이다. 아마 이때부터 인가보다. 깜둥이의 행동을 유심히 보게 된 게..,


“엄마! 깜둥이 진짜 잡아먹어? 응?”


“그래. 아빠가 친구 분들 하고 그렇게 얘기하셨다니 어쩔 수 없지..,”


아침부터 영도는 누구한테 얘기를 들었는지 엄마를 붙잡고 울먹거렸다.


“영도야 대신 아빠가 귀여운 강아지 갖다 주신데.”


“싫어! 깜둥이 죽이지 마~ 으앙~”


“얘도 참 아빠 일어나시면 혼나려고 아침부터 울고 그러니?”


“근데 엄마 깜둥이 어디 갔어요? 꼭두새벽부터 안보이네.”


“글쎼? 요즘은 어디 나가지도 않더니만 눈치 채고 도망친 거 아니니? 개가 10년을 살면 여우가 된다던데..,”


“엄마도 참~”


“아침부터 집이 왜 이리 시끄러워?”


“아부지 일어나셨어요?”


“오냐~ 영도 저 놈은 아침부터 왜 질질 짜?”


“깜둥이 잡는 다니 그러잖아요. 애가 저리 좋아하는데, 차라리 한 마리 사서 잡는 게 어때요?”


“거 여편네가 아침부터 잔소리는, 어차피 얼마 살지도 못 할 거 죽기 전에 잡아먹는다는데

뭐가 문제야? 최영도!“


“네...흑! 흑!”


“사내자식이 그리 눈물이 많으면 큰 일 못한다고 아빠가 말했지?


“네..흑!”


“뚝 그쳐! 아빠가 대신 이쁜 강아지 갖다 줄 테니, 알았지?”


“네..,”


“그나저나 이 **끼! 어디 갔어?”


“몰라요. 아침부터 마실 갔는지 안보이네요. 왜요?”


“아니 어제 밤에 목이 말라 자리끼(잘 때 머리 맡에 두는 물) 마시려고 일어 났는데

**끼가 마루 위에서 자는지 방문 앞에서 있더라니까.“


“저도 선잠이 들다가 봤는데..,그게 깜둥이였어요.? 달이 훤해서 그런지 방문(이때 당시는 시골의 거의 모든 방문이 창호지로 발라져 있어 달이 훤히 뜨면 그 형체가 그림자극처럼 비춰졌습니다.) 앞에 뭔 그림자가 비춘다 싶더니만. 안 그러던 놈이 왜 그러지? 진짜 여우가 됐나?”


“아 헛소리 그만하고 밥이나 차려! 여우는 무슨 똥개 주제에,”



첨엔 웃어 넘겼지만 어제 깜둥이의 어제 행동과 두 분의 말이 이상하게 맘에 걸렸다. 혹시 몰라 녀석을 찾아 동네를 한 바퀴 돌아 볼 요량으로 평소 등교 시간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평소 깜둥이가 자주 가는 곳부터 돌아 봤으나 쉽게 눈에 띄진 않았다.


“정말 알아들은 걸까? 아니야. 개 주제에 어떻게.., 근데 어젠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안방 앞엔 무슨 일로?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는데..,진짜 여우가 된 건가?“


11년 동안 키우면서 그런 일이 한번 도 없었기에 더욱 꺼림직 했다. 온갖 이런 저런 잡생각을 하면서 옥수수 밭 옆을 지날 때였다.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서 반사적으로 돌아보니.., 깜둥이 녀석이 꼬리를 힘차게 흔들며 나에게 다가왔다.


“아유 깜짝이야! 그럼 그렇지 네 까짓 게 알아듣기는 무슨, 아무 생각 없이 놀고 있었구만. 크크~ 어디서 놀았냐? 흙투성이가 되가지곤”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녀석은 웬일로 힘이 넘쳤는지 어디서 흙장난을 하고 온 모양이었다. 그런 천연덕스런 모습에 6일 뒤면 죽는다고 생각하니 좀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조금만 놀고 집에 들어가서 밥 먹어라. 다른 데로 새지 말고~ 아~너는 좋겠다! 매일 놀고 먹으니, 뭐 그것도 며칠 안 남았지만.., 그럼 이 형님은 학교 간다~“


나는 쓸데없이 괜히 신경 썼다고 생각하며 학교 길을 재촉했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그런 내 뒷모습을 보며 한참 꼬리를 흔들다가 옥수수 밭으로 조용히 다시 사라지는 그 놈의 꿍꿍이를.., 



바로 2편으로..,


“어이! 영식엄마!~”

“네, 왜요?”

“내 고무신 어디다 놨어?”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당신이 벗어 놨으면 당신이 알지.”

“거 이상하네.”

“없어요? 그럼 일단 다른 거 신으세요. 한 켤레 또 있잖아요.”

“그것도 없다니까 그러네.”

“그것도요? 무슨 조화지. 이게?”

“깜둥이 새끼가 그런 거 아니야?”

“걔가 11년 동안 한번이라도 그런 짓 하는 거 봤어요?”

“그럼 누가 가져 갔냐고? 맞다! 그 거지 새끼가 그런 거 아니야?”

“누구요? 다리 밑에 그 ***요?”

“그래 저번에도 박영감 집에서 옷 훔치다가 걸려서 죽도록 맞았잖아. 맞아 그놈이야. 네 이놈을 그냥!” 

“애먼 사람 잡지 말고 더 찾아봐요. 난 빨래하는 중이니..,”


그날 저녁 학교를 파하고 돌아온 나는 깜둥이의 일 따윈 잊어버리고 영도와 함께 족대(물고기 잡는 망)를 들고 냇가로 달려갔다.

“에이~ 오늘은 잘 안 잡힌다. 형”

“그러네. 오늘은 그만 갈까? 그래도 아부지 매운탕거리는 되겠다.”

“형! 깜둥이 잡으면 형은 먹을 거야? 난 안 먹을래.”

“흠~ 글쎄? 헤~뭐 일단 먹어보고.., 어? 저기 저 개 깜둥이 아니냐?”

“어디? 진짜네 저기서 뭐하지? 깜둥아!~”


녀석은 우리가 기르는 고추밭 쪽을 불러도 꿈쩍도 않고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자 그제야 꼬리를 흔들며 아는 척을 했다. 아니 마지못해 흔드는 게 맞다고 할까? 아무튼 나는 그렇게 느꼈다. 녀석은 꼬리를 흔들면서도 시선만은 고추밭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거기에 뭐가 있기에 그런지 자세히 보니 아버지가 아픈 다리를 이끌고 잡초를 뽑고 계셨다. 그래서 아버지를 따라 온줄 알았다. 그땐 말이다.

“아부지!~ 몸도 안 좋으시면서 무슨 일을 하신다고 그러세요?”

“아~이놈아 계속 움직거려야 빨리 낳지.”

“제가 모레 방학하면 다 해놓을 테니까 그만하세요.”

“그렇지 않아도 그만 일어날 참이었다. 가자!”

“근데 깜둥이 데려 오셨어요?”

“그놈이 언제 날 따라다니는 거 봤냐? 어디 깜둥이가 있다고 그래?”

“저기..,어? 그 새 어디로 갔지?”

“그나저나 영식아, 아빠가 오늘 니 운동화 좀 신었다. 니가 아끼는 건데..,”

“에이~ 그깟 운동화 신으시면 어떻다고 그러세요?”

“아~ 글쎄 아빠 고무신 두 켤레가 감쪽같이 없어 졌지 뭐냐. 그 *** 짓도 아니고 
어찌 된 영문인지.., 혹시 영도 니가 엿하고 바꿔 먹은 거 아니지?“

“아빠 전 그런 짓 안 해요.”

“그렇지? 우리 영돈 아빠 무서운 줄 아니까, 까짓 거 다시 사면 된 다만 영 찝찝해서 원~”

“그나저나 깜둥이 녀석이 왜 이리 신경 쓰이지? 아까도 그렇고.., 에이~내가 너무 민감한 거야. 그냥 지나가다 쥐나 그런 걸 본 거겠지.”

“영식아! 뭐해 멍하니 서서. 얼렁 와”

“네! 아부지 가요!”

그렇게 3일이 지났다. 어제 우리 학교는 여름방학을 했고 모레면 아빠 친구 분들 가족들과 놀러가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즉 깜둥이 녀석이 살날이 이틀 밖에 안 남았다는 말도 되겠지. 그 안에 깜둥이 녀석이 특이한 행동을 한번 한 적이 있었다. 그제 늦은 밤 문창호를 손가락으로 뚫고 달빛 아래서의 녀석의 행동을 지켜본 적이 있었는데 난 아직도 그때 그 녀석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틀 전 밤...,우리 집은 “ㄷ”자 형태로 되어 있고 가운데 마당이 있는 구조였다. 맞은 편엔 안방이 있고 가운데 코너엔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님이 쓰시던 방이 지금은 빈방인 채로 있고 안방과 마주보는 이방을 영도와 내가 쓰고 있었다. 그러니 마당 평상을 집으로 쓰는 녀석을 관찰하기엔 아주 적당한 장소란 말씀. 게다가 오늘은 너무 더워선지 아빠와 엄마 영미 세 사람이 자는 안방은 활짝 열려 있었다. 여차하면 뛰어나가려고 옆에 몽둥이도 하나 준비해 놓은 참이다. 녀석이 우리 가족에게 뭔 짓을 할지도 모르니까.., 

은근한 긴장감 때문인지 정신은 더 없이 맑았다. 이 때는 내가 왜 저런 늙은 개 한 마리 땜에 이런 유치한 장난을 하고 있는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처음엔 녀석은 자고 있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나도 슬슬 눈꺼풀이 무거워 질 때쯤 조용히 일어서는 녀석을 보자 순간 잠이 싹 달아났다. 녀석은 평상 아래에서 나와선 주위를 한번 휙 살피더니 이내 능숙하게 안방 마루로 뛰어 올랐다. 아주 조용하게..,

안방에선 지금 무슨 일이 일어 날 지도 모르는데 아빠는 코까지 골고 주무시고 계셨다. 방 문턱에 다리 까지 올리시고 말이다. 누군 너무 긴장이 돼서 손에 땀이 흥건한데..,
녀석은 별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다. 아빠를 빤히 내려다 볼 뿐. 일단은 부모님이 며칠 전에 보신 그림자는 녀석이었다는 게 확실해진 셈이다.
그렇게 30분쯤 흘렀을까? 녀석이 뭔 생각을 했는지 집 밖으로 조용히 나가는 것이 아닌가?
궁금해서 따라가 볼까 하다가 녀석이 눈치를 챌까 봐 그만두고 기다려 보기로 했다.

“녀석이 어딜 뭐 하러 간 걸까?”

“깨갱깨갱~”

“앗! 나 잠들었던 건가?”

깜둥이의 처절한 울음소리에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이노무 **끼가 뒤질 날이 다가오니 아주 미쳤지 엉?”

“영식아빠 그만해요. 개 죽겠어요.”

“죽으라지. 어차피 모레면 죽을 텐데”

“아부지 왜 그러세요?”


나는 어리둥절해서 아빠에게 물었다.

“이 마루에 발자국 좀 봐봐. 이 놈이 밤새 어디서 뒹굴었는지 맨 흙 투성이야. 마루가”

“근데 옆에 그건 뭐에요?”

“이거? 무슨 나무껍질 같은데? 하여튼 곱게 죽이진 않을 라니까 저놈에 **끼”

“아! 그새 뭔 일이 있었던 거지? 아 씨~왜 거기서 잠이 드냐고. 젠장.”

마루를 보니 개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었다. 뭔가 분주해 보이는 발자국처럼 보였다.
거기다 나무껍질이라니.., 나무껍질을 무슨 용도로 쓰려고 했을까? 그것은 길쭉하게 생긴 모양으로 얼핏 보면 하얀 허리띠처럼 보였다. 도무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녀석은 이미 밖으로 몸을 빼낸 뒤였다.
아직 동이 트기 전이라 조금 더 자고 일어나서 생각해 보기로 하고 방안에 들어가서 눈을 붙였다.


곧 3편으로~




“영식아~그만 일어나야지. 얘가 웬일로 늦잠을 다 자? 엄마랑 밭일 좀 같이 가게 그만 일어나.”

“우웅~ 네 일어났어요.”

벌써 8시15분을 넘어 서고 있었다. 어제 한 세 시간 그 녀석 땜에 잠을 못 잤더니 늦잠을 잔 모양이다. 평소엔 7시 전에 눈이 떠졌었는데.., 여하튼 모레 낮이면 그놈은 “꽥“이니까 흐흐흐.., 하아~ 내가 어쩌다 이리 잔인해졌지? 며칠 전만 해도 엄청 불쌍해 했는데..,

“엄마! 깜둥이 들어 왔어요?”

“아까 들어와서 밥 먹고 또 나가던데? 근데 왜?”

“아니에요. 불쌍한 놈이 밥이라도 먹었나 해서요.”

“그러게 말이다. 왜 안하던 짓을 다 하는지.., 죽기 싫어서 그럴 거야. 그 순한 놈이..,”

“그럴까요?”

“뭔 말이 그러니? 그럼 미쳐서 그렇다는 거야?”

“그게 아니고 혹시 모르잖아요? 엄마 말대로 진짜 여우가 돼서 자기가 죽기 전에 우리 가족한테 해꼬지 하려고 하는지. 사실 내가 얘기를 안했지만..,“

“얘는 애도 아니고 그 우스갯소리를 믿는 거야? 등치만 산만했지 아직 애구나? 우리 큰아들.”


뭐 누가 내말을 믿어 줄 거라 애초에 생각도 안했다. 내가 눈을 치켜 뜨고 지켜보는 수 밖에..,

“영식아!”

“네?”

“니가 집에 좀 갔다 와야겠다.” 

“엥? 집에 안가구요?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인데..,”

“이 고랑 하나 남았는데 마저 끝내 놔야지.”

“칫! 뭐 가져와요?”

“응 비닐 찢긴 거 손 좀 보게 비닐 한 타래만 가져와”

“네..,”

나는 늦게 까지 일하시는 엄마 때문에 투덜대며 집으로 향했다.
집에 이르러 우연히 집 뒷산 주위를 어슬렁대는 깜둥이를 보았다.
순간 “아차” 싶었다. 내가 일하느라 저놈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근데 저 놈이 뭐하느라 저기서 서성대지?” 

나는 최대한 몸을 낮추고 놈을 주시했다.
놈은 무슨 생각인지 큰 밤나무 주위를 천천히 살피 듯 빙빙 돌고 있었다. 

“뭐야? 저놈 뭐 하는 짓이야?”

궁금증은 점점 커져 갔다. 한 3분정도 그렇게 놈의 행동을 살폈나 보다.
마침내 놈이 본격적인 행동을 시작했다. 밤나무 기둥을 물어 뜯기 시작하는 것 이었다.
놈이 한 곳 만을 계속 물어 뜯자 나무 표면이 떨어져 나갔다. 

“뜯기 좋은 부분을 고르려고 빙빙 돌았구나,“

문득 놈이 늙긴 늙었나 보다 라고 생각을 했다.. 녀석과의 거리가 50미터 정도 되기는 했지만 전 같으면 내가 여기서 보고 있다는 것 정도는 금방 알아 챘을 것이다. 그래도 방심할 수는 없었다. 놈은 시각과 청각은 노쇠 했지만 머릿속만은 평범한 늙은 개라고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놈은 겉껍질을 벗겨내자 이번엔 안에 하얗고 연한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앞발을 들고 꼿꼿이 서서 최대한 높은 곳부터 벗긴 껍질을 천천히 끊어지지 않게 벗겨내고 있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었다.

“아차! 엄마 심부름.., 에이~몰라.”

엄마의 심부름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나의 오감에 육감을 더한 모든 감각은 저 놈에게 쏠려 있었다.
놈은 대략 어른 키만큼의 껍질을 벗기자 그 껍질을 물고 산 밑에 맞닿아 있는 우리 집 담 쪽으로 향했다. 

“맞다! 그쪽 담 밑엔 작은 개구멍이 있었지.”

아마 집으로 가져 가려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도 안방 마루에다 껍질을 가져다 놓은 게 기억이 났다. 그걸로 뭔 짓을 하려고 했을까? 저번엔 아빠한테 걸려 두들겨 맞았었지만..., 이제 알게 될 것이다. 놈의 진짜 꿍꿍이를!

나는 소리가 나지 않게 고무신을 벗고 도둑발로 조심조심 걸어서 길가 쪽의 집 담장으로 접근했다. 담장 너머로 집안을 보니 평상에서 타이밍 좋게 아빠가 술을 거하게 드시고 코를 골며 주무시고 계셨다. 놈에겐 최고의 기회(?)인 것이다. 근데 놈이 보이지 않았다.

“뭐야? 이놈 어디로 갔지? 안 들어왔나?”

놈이 나무껍질을 뜯어 물고 집 쪽으로 가는 걸 봤기에 의아함이 들었다.
“그냥 들어 갈까?”라고 생각하고 담장에서 돌아 서려는데 놈이 나타났다.

“드디어(?) 왔구나. 이놈! 뭔 짓을 하건 니 맘대로 안 될 것이다.”

나는 낡았지만 낫 하날 들고 있었다. 고랑에 칠 비닐을 밭 길이에 맞게 자르려고 밭에서 들고 온 것이다. 여차 하면 담을 넘어 들어가서 요절을 낼 참이다.
놈은 그 때처럼 집을 한번 휙 살피고는 평상으로 다가갔다.

“역시 놈은 아버질 노리고 있었구나.”

나는 낫을 든 오른 손에 힘을 주었다. 지금 들어가서 놈을 칠 수도 있지만 놈의 속셈을 알아야 했다. 약간 위험의 부담은 있지만.., (“아부지 죄송해요..”)
놈은 나무껍질을 물고 조심히 그리고 가뿐히 평상으로 뛰어 올랐다. 11년이나 산 개라고 믿겨지지 않는 유연하고 재빠른 몸놀림 이었다. 더위와 긴장감으로 인해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땀이 흘러 눈에 들어가 닦으려고 손을 올리다가 그만 낫이 담장에 부딪치고 말았다. 

“이크! 큰일 났다.”

놈이 움찔했다. 나는 재빠르게 고개를 숙였다. 

“봤을까? 들켰겠지? 아아~ 안 되는데..,”

잠시 후 조심히 고개를 들었다.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어 집 안을 살폈다.
어라? 놈이 없었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 봐도 놈이 안보였다. 당황해서 고개를 바짝 세우고 집 안을 살피다가 밑을 보게 됐는데
순간 너무 놀라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놈이 담 아래서 꼬리를 흔들며 나를 올려다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아주 해맑게..,
나는 담을 돌아 조심히 집으로 들어갔다. 놈이 친절하게도 대문까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여전히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으으.., 소름끼치는 놈! 역시 이놈은 여우구나!”

내가 아무리 잘못 알고 혼자 공상소설을 쓰고 있더라도 놈의 행동이 너무 소름이 안 끼치는가?
방금 전까지 은밀히 수상한 짓을 하던 놈이 나한테 들키자 안 하던 애교까지 떨면서 내 앞에 태연히 서있는 모습이라니.., 도저히 저 놈의 눈을 볼 수가 없었다. 내 생각을 읽힐까 싶어서 였다.

“맞다! 나무껍질!”

나는 비닐을 찾는 척 하며 집 구석 구석을 뒤졌다. 온 집을 다 뒤졌으나 끝내 나무껍질은 
나오지 않았다. 

“그새 어디다 숨긴 걸까?”

체념하고 비닐을 들고 밭으로 가려고 하다가 평상에서 주무시는 아버지를 보았다.
또 평상 밑에 엎드려서 나를 쳐다보는 놈을 번갈아 보다가 맘을 굳혔다. 엄마한텐 혼날 각오를 하고 평상에 걸터 앉았다. 이대로 그냥 밭으로 갔다간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냥 이 자리에서 당장 죽일 수도 있겠지만 아버지가 친구 분들과 약속한 것도 있어서 섣불리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뭐~ 내일이면 죽을 목숨이니 굳이 내 목숨(?)을 걸 필요 까지는 없었다. 30분후쯤 엄마가 영도와 영미를 업고 집으로 돌아 오셨다. 물론 욕을 바가지로 먹었지만 평상 밑에서 기어 나와 태연히 엄마를 맞이 하는 놈을 보자 안 가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으~ 소름끼치는 놈!”

오늘 밤도 역시 안방문은 열려 있었다. 영도 녀석이 잘 때 덥다고 우리 방문도 열고 자자고 졸라 댔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알다시피.., 하루만 놈을 막으면 놈은 끝이기 때문에 오늘 밤이 중요했다. 그래서 그런지 더욱 긴장이 되었다.

놈은 생각보다 빨리 움직였다. 10시가 조금 못 되서 몸을 일으키더니 안방 마루 밑으로 들어갔다.


마지막편으로~


마지막편입니다. 약간 깁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루 밑엔 왜 들어가지?“

의문은 금새 풀렸다. 놈이 마루 밑에서 물고 나온 건 다름 아닌 아까 숨겨 논 나무껍질 이었다.

“아~저기다 숨겨 놓았었구나... 젠장! 저 곳을 놓치다니”

지금 부터가 중요했다. 사방은 말 그대로 쥐죽은 듯 너무도 고요했다. 평소엔 다른 집 개들이 짖는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렸는데 오늘따라 개들 마저 조용했다. 아마 저놈이 조용히 거사를 치르려고 손을 써 놓지 않았나 싶다. 저놈에겐 오늘이 너무도 중요할 테니까, 물론 내겐 더욱이..., 놈은 껍질을 물고 마루 위로 능숙하고 조용히 뛰어 올랐다. 나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 순간, 갑자기 놈이 고개를 훽 돌려 내 쪽을 쳐다 보는 게 아닌가?
순간 너무 놀라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 헸다. 눈도 깜빡일 수도 없었다. 솔직히 너무 무서웠다. 놈이 꼭 귀신 같이 보였다. 아니 귀신 보다 더 무서웠다. 지금 순간엔.., 놈은 아직까지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까 저녁에 나한테 들킨 게 맘에 걸렸나 보다. 다행히 눈치는 못 챈 것 같았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물론 속으로.., 놈은 다시 고개를 아빠 한테로 돌렸다.
놈은 나무껍질을 아빠 옆에 평행으로 대 놓고 뭔가 이리저리 살피 고는 다시 거꾸로 돌려서 이리저리 대보고 한참 왔다 갔다 하더니 나무껍질을 물고 밖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빨리 결정을 내려야 했다. 녀석을 따라갈지 아니면 놈이 들어오길 기다렸다가 무작정 때려 죽여야 하는지.., 나는 결국 앞쪽을 택했고 맨발로 조용히 놈을 쫒았다. 손엔 몽둥이를 든채로.., 집밖에 나왔을 땐 놈은 이미 자취를 감춘 채였다. 난 곰곰이 생각을 했다. 놈이 어디로 갔을지..,

“맞다! 그 옥수수 밭! 거기가 분명해.”

난 옥수수 밭으로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걸어갔다. 옥수수 밭에 도착해서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사삭! 사사사삭!” 

옥수수 밭 뒤에서 수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놈이 분명했다. 내가 알기론 옥수수 밭 뒤엔 경작하지 않은 작은 텃밭이 있었다. 문제는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이다. 옥수수 밭을 통과해서 가면 바스락 소리가 크게 나서 들킬 우려가 크기 때문에 옥수수 밭을 우회해서 가기로 결정하고 조용조용 소리를 쫒아서 다가갔다.

드디어 텃밭이 보였다. 나는 최대한 풀에 가리게끔 낮게 엎드린 뒤 어둠에 눈이 익숙해 지려 노력했다. 뒤에 산이 가리고 있기에 달빛이 이곳 까지 미치지 못한 탓이었다. 마침내 어둠 속에서 뭔가가 눈에 띄었다. 어슴푸레한 어둠 아래서 그 놈은 주위엔 누가 있는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열심히 뭔가를 하고 있었다. 

어둠에 완전히 적응이 되고 다시 놈을 봤을 때 죽어라하고 땅을 파고 있는 게 아닌가? 첨엔 놈의 행동이 이해가 안 갔으나 그 옆에 있는 나무껍질을 보고서야 놈의 지금까지의 모든 수상한 행동을 짐작 할 수가 있었다. 

놈이 나무껍질을 벗겨서 아빠 옆에 대 본건 키를 재기 위해서였고 지금 땅을 파는 건 분명히 아빠 키에 맞게 땅을 파기 위해서이다. 아마도 그 다음엔 아빠를 죽인 다음 끌어다 묻으려고 했겠지? 아빠가 아무리 왜소하고 마르고 몸이 불편하다 해도 네 까짓 늙은 개 새끼가.., 어이가 없고 분노가 치밀었다. 그와 동시에 소름이 끼쳐서 순간 한기가 몸을 훑고 지나갔다.

“저 놈이 진짜 우리하고 11년이나 같이 산 그 개가 맞아”

광기를 띠며 땅을 파고 있는 놈의 얼굴이 흡사 귀신같아 보였다. 놈은 아직도 나의 존재도 모른 채 열심히 땅을 파고 있었다. 더 볼 것도 없었다. 몽둥이를 들고 놈을 향해 달려 나갔다. 놈도 갑작스런 소리에 놀랐는지 재빨리 뒤를 돌아 경계 자세를 취했다. 마침내 그 놈 앞에 이르러서 몽둥이를 위로 힘껏 치켜 들었다. 

“넌 이제 죽었다. 미친 **끼!

막 내려 치려는 순간 놈이 무슨 생각에선지 배를 까뒤집고 벌렁 눕는 것이 아닌가?
어이가 없어서 순간 멈칫했다. 복종의 표시였다. 그 순간에 그런 생각까지 하다니 더더욱 요사스러워 보였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퍽!!”
“캥..,!“

정확히 머리를 겨냥한 단 한방에 놈은 나가 떨어졌고 쓰러져서 허공을 향해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그렇게도 더 살고 싶냐? 엉?” 

그 당시엔 나도 광기를 드러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니 그게 맞다. 그렇지 않고는 그런 대담하고 잔인한 행동을 할 용기가 없었을 테니까.., 놈의 입에선 검붉은 피가 계속해서 흘러 나왔다. 누운 채 계속 발버둥을 치면서.., 나는 마무리로 놈의 머리를 다시 가격했다. 놈은 천천히 몸을 추욱~ 늘어뜨렸고 이내 잠잠해 졌다. 모든 게 끝난 것이다.

일이 이렇게 끝나니 왠지 모를 허탈감이 밀려 왔다. 생각보다 쉽게 끝나서 그런가?.., 놈은 생각 보다 무거웠다. 덩치가 큰 건 알고 있었지만 왠만한 어린아이 보다 더 무거운 듯했다. 이런 놈이 자는 동안 먼저 공격을 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아빠는? 또 내가 이 놈을 의심 안했다면? 아무튼 놈은 집에선 도망가 버린 걸로 되겠지? 저런 놈은 먹어도 왠지 찝찝할 것 같았다. 놈을 자기가 파다 만 구덩이에 끌어다 던지고 흙을 덮어 버렸다. 

“이거야 말로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판 격이군..,”

녀석을 묻은 구덩이를 티 안 나게 하기 위해 발로 다지다가 바로 옆에 덮은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흙구덩이를 발견 했다. 은근히 뭐가 나올까 긴장하며 파보니 어이없게도 아빠의 신발이었다. 아마 아빠를 못 나가게 하고 혼자 계실 때 일을 벌이려고 했나보다. 신발을 집어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물론 신발은 근처 둠벙(논에 물을 대기 위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작은 저수지)에서 싹싹 씻어서 말이다. 

예상대로 다음 날 아침에 한바탕 소동이 났다. 어떻게 신발이 돌아와 있는지.., 그리고 있어야 할 깜둥이가 없어져서.., 흐흐~ 입이 근질 거렸으나 시치미를 떼고 모른 척을 했다. 물론 놀러 갈 때 깜둥이는 없었다. 대신 동네에서 토실한 놈을 한 마리 사서 3가족들이 포식을 했다. 하지만 나는 무슨 이유에 선지 그 이후로 개고기를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 이유 모를 구역질이 났기 때문이다. 

그 후에 두 달이 지났고 점차 깜둥이의 일이 잊혀져 갈 때 쯤 우연히 마루 밑을 청소 하다가 길고 짧은 나무껍질 5개를 발견했다. 가만 보니 각각 우리 가족 키에 거의 맞았다. 등 뒤가 서늘했다. 놈은 우리 가족 전체를 노렸던 것이다. 헌데 뭔가 이상했다. 아빠 것은 밭에 그때 밭에 버려 졌을 텐데 5개라니... 4개라면 몰라도 말이다. 이상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 일이 지난 지 두 달이 지났는데 나무껍질은 어제 벗겨 낸 것처럼 물기가 묻어나는 것이었다. 전혀 마르지도 않고 말이다. 하지만 놈은 이미 죽었다. 아마도 마루 밑에 습기 때문에 그 형태와 수분이 유지 되었다라고 생각했다.

이미 놈은 죽었으니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일주일이 흐른 어느 날 밤 나는 늦게까지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다. 옆에서 곤히 자던 영도가 자다가 화장실을 간다며 나갔다가 숨이 넘어갈 듯이 다시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형! 형! 깜둥이야. 깜둥이가 돌아왔어!”

“뭔 소리야? 깜둥이는 이미..,,”


가족들은 아직 깜둥이가 죽은 지 몰랐다. 도망쳤다고 알고 있다. 더욱이 내가 죽였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그 놈이 한 짓을 말해도 믿어줄리 만무했지만..,

“우리 깜둥이가 다시 돌아 왔다구! 히히~”

“영도야 잘못 본 게 아니니?”

“아니라니까 얼른 나와 봐! 형”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영도를 따라 밖으로 뛰어 나갔다. 밖을 한참 둘러 봤으나 밖엔 개미새끼 한마리 보이지 않았다.

“어~? 분명히 여기 앉아서 우리 방을 보고 있었는데..,”

“영도 니가 너무 깜둥이가 보고 싶어서 헛것을 본거든가 동네 개를 잘못 본건가보다. 곰순이가 들으면 서운하겠는데?”


곰순이는 깜둥이가 집에서 없어진 뒤 일주일 후쯤 아빠가 아랫마을 친구 분한테 싸게 주고 기르기 시작한 2년 된 도사견이었다. 뭐 도사견이 다 그렇지만 워낙 덩치가 커서 그런지 둔하고 게을러서 지금 이 소란에도 제집에서 나오지도 않고 자빠져 있는 모양이다, 물론 영도는 눈길도 안 준다.

“힝~ 깜둥이 맞았는데 잉잉~”

영도가 깜둥이를 잊지 못 하는 건 무리도 아니었다. 영도가 태어난 지 두 달 후쯤에 새끼인 깜둥이를 아빠가 데려 왔고 둘은 이 집에서 형제처럼 같이 컸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날 밤 해프닝은 말 그대로 그냥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다음 날 아침 나는 학교 등굣길에 옥수수 밭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어제 밤 일이 좀 꺼림직 해서 확인을 하려고 말이다. 아침이긴 하지만 안개가 자욱이 내려앉은 옥수수 밭은 왠지 으스스했다. 마른 옥수수 잎들이 살랑 바람에 서로 부딪쳐서 “차라락 차라락” 듣기 싫은 소리를
냈다. 옥수수 대를 헤치고 그 곳에 이르러 그 곳을 확인 했을 때 난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어,어떻게 이런 일이..,”

놀라움과 두려움 때문에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움직일 수 없었다. 
땅은 파헤쳐져 있었고 놈의 시체는 그 안에 없었다. 파헤친 흙을 보니 꽤 오래 된 듯 누렇게 말라 있었다. 산 짐승이 파헤친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지만 마루 밑에 벗긴지 얼마 안 되는 나무껍질들도 그렇고 영도가 밤에 본 것도 있으니 분명히 놈은..,

“놈은 그때 죽지 않았어. 아아.., 어떻게 이런 일이”

순간 놈이 근처에서 날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미친 듯이 뛰어 그곳을 벗어났고 정신을 차렸을 땐 학교 정문이었다.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는데 몸은 계속 떨려왔다. 결국 나는 조퇴를 했고 아무 것도 먹을 수 없었다. 밤이 되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 때의 용기는 더 이상 나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너무도 두려워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두려움에 떨기만 했을 뿐..,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놈은 나타나지 않았다. 가을이라 밤 공기가 차가워 안방문은 굳게 닫혀 있었기에 조금 안심은 됐지만 여전히 근 한 달 동안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그 후 조금씩 경계심이 풀어 질 때쯤의 일이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 왔을 때 마당 구석에 곰순이 집 앞에서 영도가 주저 앉아 악을 쓰며 울고 있었다.

“왜 울어 영도야? 곰순이가 물었니?”

“흐앙~ 곰순이가...,안에...,”

“뭐? 곰순이가 왜?”


나는 놀라서 곰순이 집으로 달려가서 조심히 안을 들여다 보았다. 
안에는 어두워서 잘 안보였으나 곰순이가 무언가를 먹는지 “아드득~쩝쩝!” 소리가 났다. 첨엔 곰순이에게 뭔 일이 있나하고 걱정을 했다. 다행히 그건 아닌가 보다.
나는 궁금해서 놈을 강제로 끌어내고 안을 들여다 보았는데 그만 너무 놀라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안에 깜둥이가 눈을 부릅 뜨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놀라서 뒷 걸음 치다가 옆에 세워져 있던 가래(밭을 가는 도구)를 가져다가 놈을 끌어 내려고 안을 긁어내니 뭔가 검은 물체가 떼구르르 굴러 나왔다. 

‘악~!

너무도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것은 놀랍게도 깜둥이의 머리였다.

“뭐,뭐야!!”

영도는 놀랐는지 악을 쓰며 더 크게 울어댔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영도를 방으로 들여 보냈다. 크게 심호흡을 한 후 가만히 안을 더 긁어내니 곰순이가 뜯어 먹었는지 여기저기 처참하게 뜯긴 깜둥이의 몸뚱이가 나왔다. 뜯기고 잘리었지만 전에 비해 몸은 많이 야위어 있었다. 아마 끼니도 잘 못 챙긴 듯 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놈의 공포에서 완전히 벗어났으니 말이다. 놈의 머리를 다시 보니 눈을 부릅 뜬 채 고통스럽게 죽은 듯 했다. 
아마도 밤 늦게 집에 숨어든 녀석이 곰순이의 존재를 모르고 곰순이집 근처에 갔다가 곰순이에게 물려 죽은 게 아닌가 싶다. 곰순이에겐 그저 자기 영역을 침범한 침입자였을 테니까..,

그 날 엄마와 아빠가 밭일을 마치시고 돌아오신 후 놈의 시체를 보여드렸다. 물론 엄마와 아빠는 무척 놀라셔서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하셨다. 나는 두 분이 믿건 말건 그간의 놈에 대해 상세히 말씀을 드렸다. 아빠는 술을 드시며 아무 말씀이 없으셨고 엄마 역시 놀라서 그러신지 아무 말씀 없이 내말을 듣고만 계셨다.

“옛날 말이 틀린 게 하나 없구나. 우스개 소리로만 여겼는데..,”

“그래 영철이 니가 그간 고생이 많았겠다. 고생했다. 정말 다 컸구나. 가족도 지킬 줄 알고” 


내 이야기가 끝난 후 아빠는 나를 격려하셨고 엄마는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셨다.

“뭘요. 이만 하길 다행이죠! 그나저나 곰순이 저놈이 그래도 제 밥값은 했네요.”

“그놈은 내다팔아야겠다.”

“왜요?”

“지 동족을 잡아먹은 개야. 어리고 힘 약한 영미나 영도한테 위험할지 몰라. 암튼 그렇게 알아.” 

“네. 그러세요.”

가만 생각해 보니 아빠 말씀이 맞는 듯 했다. 게다가 곰순이가 10년을 넘긴다면? 깜둥이 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뭐 이제 2살이긴 하지만.., 게다가 멍청하고 말이다. 나는 그이후로 지금까지 기르던 개가 5년 정도 되면 다른 사람한테 줘버리거나 팔아버린다. 다소 섭섭할지라도.., 여우가 되기 전에 말이다. 
여러분도 10년 넘게 키운 개가 집에 있다면 주의 깊게 살펴 보시길.., 특히 모두 잠든 늦은 밤에는 더욱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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