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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테두리 없는 거울> 계단의 하나코 - 完

여고생너무해ᕙ(•̀‸•́‶)ᕗ2017.03.31 10:32조회 수 472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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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재는 출판사 아르테의 협찬으로 진행됩니다.


계단의 하나코 - 프롤로그
계단의 하나코 - 1
계단의 하나코 - 2
계단의 하나코 - 3
계단의 하나코 - 4
계단의 하나코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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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를 생각했다.
왜 지금 하나코가 아이카와 앞에 나타나야 하는가? 괴담에서는 분명히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다.
어이가 없다.
헛웃음이 나오려 한다.
하지만 소리 내서 웃지는 못했다.
그럴 필연성도 없을뿐더러 이유도 모르겠다.
당장이라도 따지고 싶은 충동이 요동쳤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을까? 어쨌든 그녀는 한 번도 핵심을 말하지 않았다.
음악실에는 대체 무엇이 기다릴까? 그곳에…… 내가 가도 될까?


“음악실에는 편지만 놓고 왔어?”


앞서 걸어가는 지사코에게 물었다.
계단이 끝났다.
3층에 도착한 지사코가 아이카와를 쳐다봤다.
한 걸음이라도 좋으니 지사코와 거리를 두고 싶었다.
지사코의 새하얀 피부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냉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손대면 화상을 입는 드라이아이스 같은 하얀 냉기.


“아까 이야기는 농담이 아니야. 편지는 이미 애들이 발견했을지도 몰라.”

“……안에 넣었으니까 괜찮을 거예요. 그대로 있기를 빌어야죠.”

“안에?”


상자, 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 순간 또다시 등 근육이 뻣뻣해졌다.

하나코의 상자.


“편지는 안에 넣었어요.”


그 말만 하고 얼굴을 휙 돌려 앞을 향했다.
아이카와를 두고 음악실로 걸어가더니 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봤다.
손으로 이마를 가리며 말했다.


열어주세요.


“편지는 음악실 책장 위에 있어요.”

“……알았어.”


체구가 자그마한데 과연 책장에 손이 닿을까? 내려주세요. 자신에게 명령하리란 걸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목이 졸리는 느낌이다.
손을 뻗어서 내리는 것도 과연 받은거라고 할 수 있는가? 하나코가 상자를 줘도 받으면 안 된다.
열쇠를 꽂았다.
땀범벅인 손에 금속 냄새가 밸 것 같다.
긴장해서 어정쩡한 동작으로 열쇠를 돌렸다.
찰칵하는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문을 열었다.


“고맙습니다.


문 앞에 선 아이카와의 옆을 지사코가 지나갈 때 눈을 감았다.
교실 안의 광경을 보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지사코가 상자를 내려달라고 해도 절대 그 말을 따르지 않겠다.
아무것도 보지 않겠다.
그녀가 주는 상자를 받아서는 안 된다.
너무나 어이없고 비현실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받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지사코가 책장 앞에서 서성이는 기척이 느껴졌지만 아이카와를 부르지는 않았다.
아무 말 없이, 미리 작정한 것처럼 교실 구석에 있는 의자를 갖고 와서는 능숙하게 의자 위에 올라가 손을 뻗었다.
그 순간이 아주 길게 느껴졌다.
드디어 지사코가 말했다.


“있어요!”


그 목소리에 아이카와는 얼굴을 들고 말았다.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들었다가 당황해서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시야에 뭔가가 들어왔다.
깜짝 놀라 또다시 얼굴을 들었다.


노란색.


순간적으로 감전사…… 억지로 갖다 붙인 아이들의 발상이 머리를 스쳤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맥이 풀렸다.
어깨에서 힘이 빠지고 한숨이 나왔다.


“대체 뭘 하는 거지?” 혼잣말을 했다.


“편지는 있어?”

“있어요. 여기 끼어 있네요. 아, 다행이다.
무사히 찾았어요.”


지사코는 두꺼운 노란색 책 속에서 편지처럼 보이는 접힌 종이를 꺼내 들었다.
책 제목은 『모모』였다.
지사코가 책 속에 편지를 돌려놓았다.


음악실 문을 닫고 계단으로 돌아오는 동안 지사코와 아이카와는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핵심적인 부분은 절대로 언급하지 않는다는 불문율.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러 먼저 폭발한 사람은 역시 아이카와였다.


“……왜 이런 짓을 하지?”


그 목소리에 지사코가 얼굴을 들었다.
책을 한 손에 든 채 되물었다.


“이런 짓이라니요?”

“하나코 흉내를 내서 날 겁주고 싶었던 거야?”

“흉내요?”


고개를 든 얼굴에선 평소에 보이던 그녀 특유의 쾌활함이 사라졌다.
느긋한 척하는 태도에 피가 머리로 솟구쳤다.


“대체 너 왜 그래? 오늘 정말 이상해.”

“그런가요?”

“그런가요, 라니. 시치미 떼지 마.”


목소리가 황량하다.
지사코가 웃었다.
마치 아이카와와 주고 받기라도 하듯 경쾌한 목소리로.


“선배, 왜 그러세요? 오늘 좀 이상하네요.”

“아오이 사유리한테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괜히 애먼 사람한테 생트집 잡지 마.”


지사코가 웃음을 뚝 멈췄다.
 


“생트집이라고요?”


차분한 목소리다.


“사유리한테는 아무 말도 듣지 못했어요. 아까 말했잖아요.”

“이제 이런 장난 그만해. 무슨 증거라도 있어? 사람을 떠보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목소리가 분노로 부르르 떨렸다.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아오이 사유리는 말을 잘 들었다.
절대로 버림받지 않겠다며 필사적인 눈빛으로 아이카와를 바라봤다.
소리도 크게 내지 않고, 등을 둥글게 말면서.


“하나코가 대체 뭔데! 내가 유령과 만나야 할 이유 따윈 전혀 없다고! 게다가 지사코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다니, 스스로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런 규칙은 일곱 가지 불가사의 중에도 없을 거 아냐?”

“선배.”


지사코가 말했다.
무섭고 조용하며 투명한, 전자음 느낌의 목소리다.
그녀의 원래 목소리가 아닌 것 같다.
그 소리가 목에서 나온 소리인지 순간적으로 알 수 없었다.
그녀가 웃었다.
윤기 나고 붉은 입술을 옆으로 쭉 늘이고 눈은 반달 모양을 한 채. 전자음 같은 목소리가 더욱 어리게 변해간다.
해가 기울었다.
복도가 어두워지고 마치 구름에 덮인 것처럼 색을 잃었다.
그 순간 소름이 확 끼쳤다.


“사유리는 나한테 이걸 줬어.”


손에 든 책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제 목소리는 완전히 소녀의 목소리다.
대체 어디서 그런 소리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그 아이는 내가 원하는 걸 줬어. 나도 뭔가를 주려고 했는데, 뭘 원하는지 묻기도 전에 사라져버렸어. 난 전부 다 봤어.”


고개를 크게 한 바퀴 돌리더니 층계참을 가리켰다.
엉겁결에 얼굴을 마주친 아이카와에게 ‘그녀’가 말했다.


“사유리는 도망갔어. 아이카와 히데키 선생한테서, 필사적으로 도망갔어.”

“시끄러워!”

“여기서 떠밀렸어! 그래서 죽은 거야!”

“그만두지 못해!”


고함치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피하지도 않았다.
아이카와에게 붙잡힌 몸은 그의 손에 이끌려 마구 흔들렸다.
하지만 얼굴은 여전히 웃고 있다.


“……아, 선생님.”


더 이상 아이카와 선배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녀의 입에서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계속 흘러나온다.


“하나코랑 아무 상관없어? 정말이야? 부른 적도 없어?”


볼이 씰룩거리더니 그녀의 목소리 톤이 히스테릭하게 올라간다.


“나의 불가사의를, 선생님은 몰랐나봐.”


그녀를 흔드는 손을 멈췄다.
기침 소리 같은 격렬한 웃음소리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하나코와 만나고 싶으면 하나코가 사는 계단을 진심을 다해 열심히 청소할 것.”


그녀가 하얗게 탁해진 눈을 부릅뜨고 아이카와를 조소하듯이 응시했다.


“그래서 내가 왔지.”


그녀가 말했다.


“단순히 청소만 해서는 안 돼. 알겠어? 진심으로 열심히, 아주 절실하게, 도망칠 곳이 없는 절박한 심정으로 청소한 사람에게만 나는 나타나. 매일 선생님 때문에 벌벌 떨면서도 혼자서 쭈그리고 앉아 이곳을 닦던 아오이 사유리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아이카와는 눈을 떴다.
그녀의 목을 쥔 손에서 힘이 빠졌다.


“당신은 깨끗하게 청소했어.”


의지하던 힘을 잃은 그녀가 비틀거리며 아이카와를 응시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슬픈 눈빛이 아이카와에게 쏟아졌다.
아이카와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소름이 끼치고 몸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당신은 사유리의 피가 묻은 바닥을 원래대로 깨끗하게 해달라며 몇 번씩 쓸고 닦았잖아. 절실하게, 진심을 다해, 정말로 간절히.”


“난 그럴 생각이…….”


숨을 삼키고 머리를 두 손으로 감쌌다.
손에 든 금속 지휘봉이 계단을 굴러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그 아래에 있는 층계참을 봤다.
흘러나온 검붉은 피. 길고 긴 비명이 귓가에 되살아났다.
그럴 생각은 없었어.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없었다고. 바닥에 손을 짚고 계단을 보니 잔상이 겹쳐졌다.
뒤로 넘어진 몸.


하지만 나중에 날조된 기억일 뿐이다.
사실은 제대로 보지 못했다.
모든 건 순간적이고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정신을 차리고 내려다봤더니 층계참에 이미 그 아이가 쓰러져 있었다.
격렬하게 경련을 일으키며 몸을 좌우로 뒤틀더니 어이없을 만큼 갑작스럽게 경련이 멈췄다.
단지 그 광경을 봤을 뿐이다.


“고마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장의 고동이 더 빨라졌다.
뒤돌아보니 ‘그녀’가 창백한 얼굴에 서늘한 웃음을 띠고 서 있다.
그 얼굴이 서서히 아이카와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헉, 하는 짧은 소리가 아이카와의 목에서 새어 나왔다.
눈앞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이 어딘가 그날의 아오이 사유리와 닮았다.
소녀처럼 높은 목소리가 말했다.


“깨끗하게 해줘서. ……나한테 했던 말 기억해? 난 당신한테 물었어. 사유리가 왜 그런 일을 당한 거냐고. 당신은 말했지. 모른다고.”


심장이 요동치는 소리가 바로 가까이에서 들린다.

거짓말을 하면 저주를 받는다.


“그 말이 정말이라면 괜찮아. 당신이 정말로 모른다면, 그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면 말이야. 하지만 만약 알았다면.”


후후, 후후후후. 코와 입에서 거친 숨을 내뿜는 그녀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진다.


아, 아아.

아아, 선생님.

하나코가 내리는 벌은 무한 계단.

무릎에서 힘이 빠진다.

이제야 겨우 상황을 인식했다.
그녀가 말했다.
알고 있다고.

봤다고. 여기서 모든 걸…….


“사고……였잖아?”


아이카와의 목 안쪽에서 기침이 새어 나왔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자신이 듣기에도 격양되어 찢어진, 듣기 거북한 목소리다.
소리를 한번 내뱉으니 입을 다물 수가 없다.


그건 사고였잖아!


그녀의 웃음소리가 멈췄다.
속내를 알 수 없는 팽팽한 웃음만 띠고 있을 뿐이다.
무덤덤한 눈빛으로 아이카와를 바라보고 있다.


“얘.” 


그녀에게 다가가 팔을 붙잡았다.
소름 끼칠 만큼 차가워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애원하듯이 말했다.


“안다면, 다 봤다면 너도 알 거 아니야? 그건 사고였어. 나는 이야기를…… 이야기를 하려고 했을 뿐이야. 사유리가 잘못해서 떨어진 거야.”


겁에 질려 자신을 올려다본 아오이 사유리. 감정을 제어하지 못해 처음 사유리의 배를 걷어찼을 때는 속이 후련했다.
발달이 덜 된 가슴과 엉덩이를 만지면 사유리는 낮은 신음 소리를 냈다.
눈을 꾹 감고 아이카와의 손에 몸을 맡긴 채……. 그건 학대가 아니야. 사유리 역시 만져주는 걸 속으로 기뻐했을 거야. 그래서 순순히 받아들인 거야. 그날은 왜 갑자기 도망쳤을까? 그 점이 아이카와는 이해되지 않았다.
내달리던 사유리의 발이 엉켜서, 그래서…….


“내 탓이 아니야.”


침묵에 잠긴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갑자기 그녀의 얼굴과 오른손이 아이카와의 팔 안으로 파고들었다.
표정이 전혀 보이지 않게 된 바로 다음 순간, 어깨가 살며시 떨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주 미미하게. 그러더니 점점 발작을 일으키는 것처럼 거칠게.


대체 뭐지? 놀라서 얼굴을 들여다본 아이카와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그녀의 이마 위에 빨간 선이 그어져 있다.
마치 일그러진 흉터의 속살처럼. 그녀의 입술처럼 새빨갛고 선명한 한 줄기 선. 그녀가 웃고 있다.
눈을 깜빡이지 않고 부릅뜬 채, 천장을 쳐다보며 웃기 시작했다.
어깨의 떨림에 비례해 그녀의 목소리가 계단에 쏟아지듯이 퍼져나갔다.
공기가 나선형으로 소용돌이치는 것처럼 톤이 높고, 마치 노래라도 부르는 듯한 목소리다.


아하하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숨도 쉬지 않고 실성한 것처럼 웃는다.
부릅뜬 눈의 초점이 맞지 않는 것을 보고 아이카와는 거칠게 얼굴을 흔들며 소리쳤다.
이마에 보이는 상처가 무서웠다.
거짓말을 하면 저주를 받는다.
내 목소리가 들릴까? 이제 뒤로 물러날 수 없다.


“알겠어. 질문의 답을 바꿀게.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 아오이 사유리는 여기에 나랑 같이 있었고, 그러다 떨어졌어. ……내 말 좀 들어봐! 제발 부탁이니 들어보라고.”


품에 파고든 여자가 너무 무섭다.
단조롭게 소리를 토해내는 기계처럼 아이카와의 목소리를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는다.
머리가 움직이니 머리카락의 까슬까슬한 감촉이 팔에 닿았다.


“으악!”


아이카와는 소리를 지르며 그녀를 거칠게 내쳤다.
충격으로 그녀의 몸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래도 여전히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새하얀 목을 아이카와에게 드러낸 그녀의 손과 발이 버둥거렸다.
몸을 굴리며 완전히 까뒤집힌 눈이 아이카와를 찾아 움직인다.
그녀가 말했다.
바닥에서 아이카와를 올려다본 채.


아아. 아아, 말해버렸네.


무한 계단. 눈을 감고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도 없는 학교에 아이카와의 비명과 여자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웃음소리는 유리를 긁는 마찰음으로 변해갔다.
아이카와는 계단을 내려갔다.
머리를 마구 쥐어뜯었다.


2층으로 내려가 층계참을 지나 1층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계단 앞까지 왔다.
그녀의 웃음소리는 이제 상당히 멀어졌다.
눈을 꽉 감았다.


“와아아아아아……!”


고함을 지르며 단숨에 마지막 한 단을 향해 내려갔다.
머리 위에서 쏟아져 내리는 웃음소리. 


아하하하하하하, 아하 하하하하하. 


그 소리가 귀에서 멀어져가고……. 눈을 떴다.
멍하게 눈을 떴다.
아이카와는 숨을 멈췄다.
희미하게 들리던 매미의 쥐어짜는 소리가 그치고, 그 대신 총탄을 장전할 때 나는 딸깍 소리가 위에서 들렸다.
아주 기계적인 건조한 소리.


다시 한 번 목소리가 들렸다.
더 이상 웃지 않는다.


아아, 선배. 말해버렸네.

정면에, 계단.


-계단의 하나코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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