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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그저 아이들이 다 그렇듯, 치과를 무서워하는 줄만 알았지요.

굴요긔2017.04.13 17:54조회 수 644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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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 아이들이 다 그렇듯, 치과를 무서워하는 줄만 알았지요. "
 
진료용 소파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던 사내가 허공으로 음성을 퍼트렸다. 
근처에 하얀 가운의 상담의가 가만히 그 말을 듣고 있었다.
 
" 그런데... 정말로 치과가 무서운 곳이었는지는 몰랐습니다. 그 의사 새끼가 그렇게 똘아이였을 줄이야? 일부러 남의 치아를 엉망으로 만드는 취미를, 선생님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
" 일부러요? "
" 네. 제 딸에게 일부러 이빨 사이를 벌리고 어긋나게 하는 교정을 하고 있었더군요. 멀쩡한 생니를 뽑으면서까지 말입니다. "
" 허.. 그게 사실입니까? "
" 사실이지요. 너무 늦게 알아낸 사실이지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치과 가기 싫어하는 딸을 나무라기만 했으니, 얼마나 멍청한 아비입니까? "
" 허참 믿을 수가 없는 얘기군요.. "
 
사내는 한숨을 쉬고는, 한동안 말없이 천장을 바라보았다. 
상담의는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 ...사실 저는 분노조절 장애가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아내에게 원망도 많이 듣고, 이혼 당할 뻔도 했지요. "
" 네에.. "
 
사내는 다시 한동안 뜸을 들이다가, 책을 읽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 그 치과의사가 퇴근하는 지하 주차장에 숨어 있다가, 차에 타려는 그를 뒤에서 덮칩니다. 가볍게 소리는 지르지만,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기에 필사적이진 않죠. 그때 저는 식칼을 얼굴에 베이도록 들이밀고 조용히 따라올 것을 요구합니다. 그제야 겁에 질린 그는 순순히 제 차로 끌려와 줍니다. 허튼짓을 못하도록 뒷자리에 눕힌 상태에서 꽁꽁 동여맵니다. 특히 입을 단단히 막는데, 영화에서처럼 어설프게 테이프를 감아서는 효과가 없으므로 여러 번 두껍게, 피가 통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감아줍니다. "
 
" 무슨... "
 
상담의의 얼굴이 살짝 굳지만, 사내는 무시하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 이만하면 됐다 싶을 때 저는 차를 출발시키고, 미리 봐 두었던 재개발 지역의 빈집으로 향합니다. 장판이 다 뜯어져 차가운 돌바닥에 그를 던져놓고, 준비해간 가방에서 도구들을 꺼냅니다. 망치, 송곳, 톱, 끌... 사실 공구함에서 아무렇게나 집어온 것들입니다. 구체적인 계획이 없단 얘기지요. "
" 저기 지금... "
 
" 그래도 한 가지, 신경 써서 챙겨왔던 뺀치를 먼저 빼 듭니다. 그의 얼굴에 감았던 테이프를 커터칼로 막 뜯어낸 다음, 이빨을 하나씩 뽑아냅니다. 그는 죽으라고 비명을 지르지만, 주변에 들을만한 사람은 없습니다. "
" 저기 환자분...! "
 
" 저항하는 사람에게서 이빨을 강제로 뽑는 것은 꽤나 힘든 일입니다. 거기서 저는 지쳐버렸고, 이렇다 할 아이디어 없이 그냥 망치와 쇠말뚝을 집어 듭니다. 말뚝을 내려쳐 구멍을 뚫기도 하고, 말뚝 없이 망치로만 내려치기도 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휘두릅니다. 그가 비명을 지를 힘도 없어질 때쯤, 마지막으로 심장을 노리고 말뚝을 박습니다. 위치를 못 맞춰서 여러 번 박았기에 구멍이 예쁘게 나지는 못합니다. "
" 지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
 
상담의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목소리가 높아지지만, 사내는 무덤덤한 말투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 심장을 뚫린 그는 결국 죽음에 이르렀고, 저는 누구든 볼 테면 보라고 뒤처리조차 하지 않고 돌아섭니다- "
" 아니 그러니까-, "
 
" -라고, 꿈을 꾸었습니다. "
" 예?? "
 
자신을 보며 빙긋 웃는 사내의 모습에, 상담의의 얼굴이 황당해졌다.
 
" 그러니까... 꿈이라고요? "
" 네. 제게 정신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 걸까요? "
" 아... 아~ 그러니까, 제 소견으로는..음.. "
 
상담의는 허탈한 얼굴로 할 말을 뒤적거렸다. 눈앞의 사내가 그냥 돌아이인 줄만 알고 따로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그 치과의사를 미워하는 마음이 그런 꿈으로 이어진 게 아닐까 싶은- "
" 그 치과의사 하니까 말입니다. "
 
사내는 다시 상담의의 말을 끊었다.
 
" 그 치과를 소개해준 사람이 바로 선생님입니다. "
" 네?! "
 
깜짝 놀라는 상담의! 
 
" 제가요?! 그게 무슨?! "
" 사실, 선생님께서는 제 가족과 인연이 많습니다. 제 분노조절 장애 때문에 힘들어 하는 아내에게 정신과에 가보라고 권했었는데...그게 선생님 이십니다. 그때 선생님께 그 치과를 추천받았다고 하더군요. 선생님의 동생분이 운영하신다고? "
" 예?! 아니, 네?! 그런?! "
 
상담의는 혼란에 빠졌다! 자신의 동생이 그런 똘아이 치과의사라고? 믿을 수 없었다!
 
한데 그때, 진료실 문이 벌컥 열리며 새파랗게 질린 얼굴의 간호사가 외쳤다!
 
" 서, 선생님! 집에서 전화가 왔는데, 동생분께서 돌아가셨다고...! "
" 뭐라고?! "
 
깜짝 놀랐다가 순간, 경악하며 사내를 돌아보는 상담의!
 
사내는 무덤덤하게 천장을 바라보며 허공으로 음성을 퍼트렸다.
 
 
" 그저 사람들이 다 그렇듯, 정신과 상담을 무서워하는 줄만 알았지요. "
 
" !! "
 
상담의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자신이 진료를 핑계로 저질렀던 숱한 성추행들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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