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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복불복 세상의 운수 좋은 날

굴요긔2017.04.13 17:59조회 수 553추천 수 1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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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씨는 복불복을 참 좋아했었다.
 
그런 도박성이 인생에 큰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고 믿었기에, 세상 모든 것들이 복불복으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운이야말로, 이 계급사회에서 공평하게 적용되는 유일한 것이라 여겼다.
과연 A 씨는 운이 좋았는지, 어느 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A 씨가 바라본 거울 속 자신과 똑같이 생긴 B의 말에 의하면,
 
[ 난 평행우주의 당신이야! 외모부터 직업, 인간관계까지 당신과 모두 똑같지만, 내가 사는 이 세계는 모든 것이 복불복으로 이루어져 있지. 만약 당신이 원한다면, 나와 세계를 바꾸지 않겠어? ]
 
A 씨는 마다치 않았다. 그는 복권 한 장을 사도, 자신은 당첨될 거란 막연한 믿음이 있었던 사람이었다. 
어차피 그는 지금의 세상에 큰 미련도 없었고, 복불복의 세계라면 자신의 인생이 지금보다 더욱 흥미롭고 윤택해질 거라 믿었기에, 흔쾌히 손을 마주하고 거울 속으로 통과했다.
 
이후, 실제로 A 씨가 경험하게 된 복불복의 세계는 정말로 놀라웠다. 웬만한 모든 '사건'이 복불복이었다.
운이 없어 손해를 보는 날도 있었지만, 운이 좋아 크게 이익을 얻은 날도 많았다. 과연 체감상 더 나아졌는지 나빠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격차에서 오는 긴장감이 A 씨의 인생에 활력을 불어 넣어준 건 사실이었다.
 
지금부터 소개할 이 이야기는, 그런 세상에서 A 씨가 경험한 어느 운수 좋은 날의 이야기다.
 
 
아침 출근길의 A 씨는,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카드를 내밀었다가, 결제창의 주사위가 6이 뜨면서 무료 복불복에 당첨되었다.
 
" 오! 공짜로 기름이 만땅이라니! 오늘은 운수가 좋은데? "
 
싱글벙글 웃던 A 씨는, 회사에 도착해 출근 카드를 찍으며 또 웃게 되었다.
 
" 더블 6! 이게 얼마만의 퇴근 복불복 당첨이야?! 오 이런! 정말 운수가 좋잖아! "
 
아침 9시 퇴근에 신이 나서 차를 몰고 가던 A 씨는 그만, 교통 단속에 걸리게 되었다.
 
" 신호위반 하셨습니다. "
" 으~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
" 안 됩니다. "
 
단호하게 고개를 흔든 경찰은, A 씨에게 주사위와 판을 내밀었다. 
A 씨는 손안의 주사위를 흔들며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 그래, 오늘은 운수가 좋은 날이니까! 운수 좋은 날! "
 
곧, 주사위가 A 씨의 손을 떠나 판 위를 구르고, 그 숫자는-
 
" 6! 좋았어! "
" 안전 운전하십시오-! "
 
주사위를 확인한 경찰은 꾸벅 인사하며 A 씨를 그냥 보내주었다.
다시 기분이 좋아진 A 씨는 치과로 차를 돌렸다. 이렇게 시간이 났을 때 미뤘던 충치 치료를 할 셈이었다.
그곳에서도 A 씨는 주사위를 잡게 되었다.
 
" 아말감부터 금까지... "
 
조금 신중해진 A 씨는, 긴장한 얼굴로 주사위를 굴렸다. 한데, 운수 좋은 A 씨는 이번에도 6을 잡아내었다!
 
" 오오! 금이다! "
 
레진 정도를 예상했던 A 씨는, 이 맛에 복불복을 한다며 밝게 웃었다.
 
치과 치료를 끝내고 곧장 집으로 향한 A 씨. 아무도 없이 비어있는 집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지만,
 
" 아! 동창회랬지... 하여간 이 여편네는 무슨 맨날 동창회야?! 이것도 복불복으로 봐야 하나? 쩝... "
 
혼자 밥을 차려 먹기가 귀찮아진 A 씨는, 중국집에 전화를 걸어 볶음밥을 주문했다.
 
[ 볶음밥이요? 네네, 주사위 좀 굴려보시겠습니까? ]
" 아 예. "
 
곧, 스마트폰 화면에 뜬 주사위를 굴리는 A 씨. 놀랍게도,
 
" 또 6이야?? "
[ 업그레이드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A 씨는 이제, 기쁨을 넘어서 놀라움이 더 컸다. 이렇게까지 운이 좋은 날은 처음이었다.
볶음밥의 복불복이라고 해봐야, 올라간 계란이 두 배라는 것 정도였지만, 그것만으로도 A 씨는 감탄했다. 아예 없는 날도 있었지 않은가?
 
맛있게 볶음밥을 먹고, 소파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잔 A 씨. 피곤함이 꽤 쌓였었는지, 늦은 저녁에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하품하며 리모컨을 잡아 드는데,
 
" 응? "
 
건전지가 다 되었는지 작동을 하지 않았다. 몇 번을 '탁 탁' 치던 A 씨는 짜증을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벼운 옷차림에 지갑만 꺼내 들고 동네 슈퍼로 향하는 A 씨. 
가로등이 고장 난 놀이터 근처를 지나가던 그때, 
 
" 조용해! "
" ?! "
 
놀이터에서 칼을 든 괴한이 뛰쳐나와 A 씨의 앞을 막아섰다!
깜짝 놀라 소리도 못 지르는 A 씨를 놀이터로 끌고 가는 괴한. 산발의 머리와 붉게 충혈된 눈에서 위험성이 느껴졌다.
 
" 사, 살려주세요...! "
 
벌벌 떠는 A 씨에게 식칼을 들이민 괴한은,
 
" 씨뱔! 이 쓰레기 같은 세상! 난 이 사회에 복수할 거야! "
 
A 씨는 그게 왜 하필 나인지 어이가 없었지만, 감히 따지지도 못하고 살려달라고만 빌었다.
한데, 괴한은 식칼에 앞서 '주사위'를 하나 내밀었다.
 
" 어서 굴려! "
" 으으... "
 
이런 상황에서까지 주사위라니! 
A 씨의 손은 덜덜 떨렸지만, 눈을 질끈 감고 주사위를 굴렸다. 결과는-,
 
" 6! 6이다! "
 
하루 종일 운수가 좋았던 A 씨는, 이번에도 운수가 좋았다. 
괴한은 흠,
 
" 원래는 심장을 찌르려고 했는데, 종아리를 찔러야겠군! "
 
빠르게 종아리를 그어버리는 괴한!
 
" 끄악-! "
 
종아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하는 A 씨! 
괴한은 빠르게 도망가고, 남겨진 A 씨는 핸드폰을 꺼냈다.
 
" 으으...! "
 
얼른 119로 전화를 걸지만, 역시나.
 
[ 빠른 출동을 원하시면 주사위를 굴려주세요. ]
 
" 옘병! "
 
.
.
.
 
운수 좋게 응급실에 실려 온 A 씨. 다행히 상처가 깊지는 않았는지, 조금은 진정된 상태였다. 여유가 생기자 응급실의 난리 통이 눈에 들어왔다. 
구토하는 어린아이, 화상 자국을 보이며 울고 있는 여인. 술 냄새 풍기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아저씨.
그중에서도 가장 A 씨의 미간을 찌푸리게 한 건, 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로 하반신이 아작난 청년 배달원의 모습이었다.
 
" 어후야... "
 
미간을 찌푸리며 그 모습을 보던 A 씨에게, 간호사는 주사위를 건넸다.
얼떨떨한 얼굴로 주사위를 굴리는 A 씨. 과연, 이번에도 운수 좋은 A 씨는 6을 띄웠다.
 
" 지금 바로 치료하러 가실게요~ "
" 네? "
 
A 씨의 눈이 커졌다. 가장 늦게 들어왔던 자신이, 가장 먼저 치료를 받으러 가다니? 심지어 저런 청년보다도?
간호사에 의해 이동하던 A 씨는, 혼미한 상태의 청년과 눈이 마주치며 복잡한 얼굴이 되었다. 청년의 옆에 놓여있는 주사위의 눈금은 '1' 이었다.
 
" ... "
 
A 씨는 먼저 눈을 피했다.
 
.
.
.
 
운수 좋은 A 씨의 상처는 심하지 않아, 바로 퇴원이 가능한 정도였다.
택시를 타고 먼 거리를 왔음에도 기본요금만 결제한 A 씨는,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아내를 찾았다.
하지만 역시나, 아까부터 전화를 받지 않던 아내는 집안에 없었다. 
 
인상을 찌푸린 A 씨는 다시 또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을 걸고서야 겨우 연결이 되는 통화,
 
[ 으~음~ 여보세요오? 여보야~? ]
" 이런...! "
 
아내는 이미 만취 상태였다. A 씨의 짜증 난 다그침에도 횡설수설 대던 아내는 곧,
 
[ 여보~ 주사위 굴려봐! ]
 
A 씨의 핸드폰 화면에 주사위가 띄워졌다. 
 
" ... "
 
일그러진 얼굴의 A 씨가 주사위를 굴리자, 눈금은 역시 6!
수화기 너머로, 누군가에게 떠들어대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어머 6이네~! 자기야~ 안 되겠어! 오늘은 키스까지만 해야겠다~ ]
 
깔깔거리며 끊어지는 통화. 
딱딱하게 굳은 A 씨는, 전화를 다시 걸진 않았다. 마치 이미 알고 있었던 불편한 진실과 마주한 사람처럼 말이다. 
그래도 오늘은 A 씨의 운수가 좋아서 아내가 키스만 한다지 않는가? 
 
" ... "
 
한쪽 발을 조금 절면서, 소파로 가 앉는 A 씨. 
아무 말 없이, 주머니에서 꺼낸 건전지의 포장을 벗겼다. 리모컨의 헌 건전지를 빼내고 새 건전지로 교체하려던 그때-,
 
' 띠리리링~ 띠링~ '
 
직장 상사의 전화가 도착했다.
 
" 예 여보세요? "
[ 어~ 자네. 오늘 회사에서 안 보이더군? 복불복이 좋았나 본데. ]
" 아, 뭐 예에... "
 
이런저런 얘기로 조금 뜸을 들이던 상사는, 본론을 꺼냈다.
 
[ 이번에 회사에서 구조조정 복불복을 했는데, 자네가 명단에 들어갔지 뭔가? 내일 회사에서 퇴직금 복불복이 있을 예정이니까 나를 찾아오게. 자네는 운이 좋으니까 많이 받을 수 있을 게야. ]
" ... "
 
전화가 끊어지고, A 씨는 말없이 건전지 교체를 마무리했다. TV를 켜보지는 않았다. 건전지를 바꿔도 안 켜질까 봐 겁이 났다. 처음부터 건전지 문제가 아니었을까 봐 그랬다.
 
A 씨는 TV를 켜보는 대신, 식칼을 들고 사회로 나가는 대신, 서랍을 열어 밧줄을 꺼냈다. 
덜덜 저는 발로 탁자 위에 올라가, 밧줄을 천장에 단단히 매었다.
 
" ... "
 
눈앞의 올가미를 말없이 바라보던 A 씨는, 목을 매달고 탁자를 박찼다!
 
" 억! 우윽..! 켁..! 우우욱..! "
 
순식간에 얼굴이 달아오르며 괴롭게 발버둥 치는 A 씨!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눈이 점점 뒤집어졌다!
하얗게 사라져가는 A 씨의 의식 속에서-,
 
 
주사위 하나가 빙글빙글 돌았다.
 
 
" 욱! 우욱!! "
 
눈을 부릅뜨고 안 된다며 고개를 젓는 A 씨! 
끝내 빙글빙글 돌다가 멈춰서는 주사위의 눈금은, 운수가 좋게도 6이었다.
 
' 쿠당탕-! '
 
천장의 밧줄이 끊어지며, 바닥으로 낙하하는 A 씨.
 
" 커억! 허억 허억 허억 허억... "
 
A 씨는 이번에도 운수가 좋아, 목숨을 건졌다. 그로서는 벌써 3번째 자살 실패였다.
 
" ... "
 
바닥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A 씨는, 뜬금없이 거울 너머로 건너간 B가 떠올랐다.
 
" 그놈은 벌써 죽었겠구나... 빌어먹을 재수 좋은 새끼...! "
 
A 씨는 운수가 너무 좋았다. 운수가 너무 좋아, 오늘도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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