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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촉수

title: 이뻥아이돌공작2015.03.08 18:23조회 수 1129추천 수 1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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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수









촉수가 생겼다. 대체 언제부터 자신의 가슴팍에 이런게 생긴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S씨가 그 존재를 눈치챈 건 지금 이 순간이었다. 가슴팍, 굳이 말하자면 명치 부분이다. 딱 잘라서 크기를 이야기하기엔 조금 애매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참으로 기괴한 일이다.


자신의 가슴팍에 눈에 보이지 않는 촉수가 생겼다는 걸 알아챈 S씨는 상당한 충격에 빠졌다. 당장 병원에 가야하나 하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지만 막상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의사 앞에서 우물쭈물 할 자신을 생각하니 또 그럴 수 없었다. 애당초 이걸 뭐라고 설명한단 말인가.


어느 날 눈치챘는데, 제 명치 앞에 촉수가 생겼어요!


믿어주긴 커녕 정신병자 취급을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만져보게 하면 어떻냐고? 말도 마라, 그럴 수도 없다. 촉수의 주인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S 자신이 만질 수 없었으니까. 분명 무언가가 있다고 느껴지는 그 부분에 손을 가져다대도 그냥 휙 하고 지나갈 뿐이다.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상황이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어쩌면 지금 자신이 미쳐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분명 그곳에 있다.


피부 감각의 끝에 위치한 그곳에, 지금 분명 촉수가 달려있었다. 보이지 않는 그 기괴한 것이 요동치는 게 느껴진다. 이건 분명 존재한다. 지금 여기 S씨의 가슴팍 언저리에서. 하지만 그가 아무리 소리쳐도 세상 사람들은 그의 기분을 알 수 없었다. 말도 안되잖는가. 그들은 애당초 자신의 가슴 앞에서, 또 다른 자신의 신체가 움직이는 감각을 전혀 느껴본 적이 없을 것이다. 말로 표현하라고 해도 표현할 수 없을 게 분명하다.


S씨 역시 이런 상황이 되기전까진 다른 사람들과 똑같았으니까. 가슴 앞에 팔 같은 게 하나 늘어나서 움직이는 감각 따윈 생전 처음 겪어보는 일이다. 팔 두개, 다리 두개, 중요한 부분 한개. 그 감각을 제외하고, 한번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신체가 움직이는 감각 따윈,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겠지.


S씨는 절망에 빠졌다.


하물며 눈에 보이기만 했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었을 텐데. 아니, 혹은 이게 눈에 보였다면 곧바로 괴물 취급을 당하며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짤렸을지도 모른다. 그 다음 미스터리를 찾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몇 번 번쩍 뜨고 곧바로 국가나 단체의 손에 악마라며 살인 청부를 받았을지도 모르지.


어떡한담.


S씨는 보이지 않는 자신의 촉수를 바라보았다.



그가 집에서 남몰래 보던 19금 만화나 야동에서 나올 법한 그 촉수가 실제로 생겨버린 것이다.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S씨의 생활은 평소와 다름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욱 편했을지도 모른다. 일단 그동안 알아낸 사실 중 하나는, 이 촉수라는 건 살아있다는 것. 그리고 외부에서의 접촉은 불가하지만 촉수 스스로가 원하는 접촉한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기괴하고 기분나쁘지 않는가? 자신의 신체에 달려있는 이 촉수가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움직인다는 게. 


S씨 자신도 그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땐 놀라서 기절할 뻔 했다. 칼로 잘라보려고도 마음먹었지만 역시 촉수는 칼날을 가볍게 통과했다. 외부에서의 접촉은 불가한다. 하지만 촉수 자신이 만지고 싶은 것, 혹은 건드리고 싶은 것들은 만질 수 있었다. 촉수 스스로가 흐물흐물 움직여 물건에 손을 대는 것이다. 손을 댄다고 해야하는 건가? 촉수를 댄다.


그리고 약간이지만 촉수가 건드리는 물건에 대한 감촉이 S씨에게도 느껴졌다. 일단은 내 신체라는 건가. 게다가 이것 역시 조금이지만 촉수는 S씨의 생각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만원 지하철에서 앞자리에 서있는 잘빠진 여대생의 엉덩이 쪽으로 향하려는 촉수의 감각을 느끼며, 절대 그러지 말라고 머릿속으로 소리치자, 촉수는 기죽은 강아지처럼 꺠갱 거리며 다시 그의 가슴팍으로 돌아왔다.


생각해보면 왜 그러라고 했는지 잘 이해가 가질 않는다. 어짜피 그래도 촉수는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으며 만져지지도 않는데 그냥 한번 만져보라고 할 걸 그랬다. 얼굴도 예뻤는데. 만약 그랬다간 S씨가 보았던 19금 촉수물에서나 등장할 법한 음란한 상황이 그의 눈 앞에서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하물며 그 여성을 능욕하는 그 촉수가 자신의 것이라니! 실로 감탄을 표하고 싶은 마음이다.


쩝, 하고 입맛을 다시며 침대에 누운 S씨는 멍하니 자신의 가슴팍 앞에 나있을 촉수를 바라보았다. 그래봤자 그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거기 있을거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정말이지, 왜 이놈은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난거지?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뭘 잘못했던가? 아니, 어쩌면 다른 사람들도 이걸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S씨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렸을 떄 다들 한번쯤은 해봤을 거다. 철학적인 사고라 해야할까, 단순한 중2병이라고 해야할까. 자신을 제외한 이 세상 사람들이 전부 로봇이라거나, 자신에게만 보이는 특별한 존재가 있다고 믿는다거나 하는 것들. 이 경우엔 반대로 모든 사람들이 자신처럼 촉수를 달고 있지만 다들 서로 모르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웃음지었다. 그리고 책상 위에 올려져있던 커피를 들고 오라고 촉수에게 명령를 내렸다.


그러자 보이지 않는 촉수는 천천히 커피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이내 가만히 올려져있던 커피잔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광경이다. 자신의 가슴에 촉수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폴터가이스트 현상이라며 잔뜩 소리쳤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며 촉수에게서 커피를 받아든 뒤 한 모금을 들이마셨다. 


이 촉수는 무슨 색일까? 그가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봤던 것들처럼 붉거나 분홍빛이겠지? 아마 붉은색일거라고 생각한다. 크기는 어느 정도나 되려나. 끝 부분은 날카로울까? 만져보고 싶었지만 이 촉수 녀석이 허락하지 않는 지 만져지지 않았다. 마치 그곳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훅 지나갈 뿐. 커피를 가져오는 건 하면서 만져보겠다는 건 안된다니, 거 참 괴상한 녀석일세.


촉수는 일단 어느 정도 S씨의 의지에 따른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해야할까, 조금 불쾌한 느낌이지만.


언젠가는 이 녀석이 내 눈 앞에 보이게 될 날이 올까? 아니, 애당초 그것 역시 이 녀석 스스로가 그럴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일단은 살아있는 것 같으니까. 시간이 흐르면 이 녀석이 내게 마음을 열고 만지게 해주고, 보이게도 해줄 지 모른다. 내 몸에 난 생명체가 나를 거부한다니, 기묘한 일이다. 약간이지만 애완동물을 기르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정신이 어지럽다. 아무래도 술을 너무 과하게 마신 듯 싶다. 속이 울렁거리고 토악질을 해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젠장, 간만에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나니까 너무 반가워서 그만. 그렇게 술이 센 체질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는데, 적당히 마실 걸 그랬다. 이럴때야 말로 이 촉수가 내 발을 대신해 집까지 총총 걸어가주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에도 불구하고 촉수는 매정하게 내 가슴 앞에서 이리저리 흐물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젠장, 도움 안되는 녀석.


어찌저찌 집에 도착한 뒤 S씨는 씻지도 않고 침대로 몸을 날렸다. 몸이 무겁고 정신이 어지럽다. 가만히 누워있음에도 불구하고 방 안이 흔들거리는 느낌이다. 서서히 몸에 힘이 풀렸고, 그의 의식이 멀어지려던 순간이었다.


“어?”


보였다.


너무 갑작스럽고 어이없는 일이지만, 문득 자신의 가슴팍에 위치한 그 촉수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순간 술이 확 깬다. 그는 누운 그 상태 그대로 자신의 촉수를 살폈다. 지난 한 달동안 자신과 동거동락했던 그 촉수의 모습을 빠짐없이 살피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촉수의 외형보단 일단 의문이 먼저 들어오는 게 당연했다. 갑자기 이게 왜 보이는 거지? 술을 마시고 나면 보이는 녀석인가? 아니, 그럴리가. 너무 취해서 헛것이 보이는 건가? 그래, 그럴지도 몰라.


어쩌면 이 녀석이 드디어 내게 마음을 연 건가?


날 주인으로 인정한 건가?


그런 의문이 든 다음엔 녀석의 외형에 대한 생각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단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녀석은 하얗다. 야동에서 봤던 것처럼 붉고 매끈거리지는 않고, 군데군데 갈라져있었다. 게다가 크다. 그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훨씬 크다. 이렇게 보고 있으니 내 방의 절반이 녀석의 몸체로 꽉 차있었다. 지금까지 이러고 있었던 건가? 척 보기만해도 무거울 것 같다. 신체에 달려있었기 때문에 무게를 느끼지 못했을 뿐인 듯 싶다. 


이제는 끝부분을 확인하자. 그렇게 생각하며 허공에 떠있는 수많은 녀석의 몸뚱아리를 쭈욱 훑어가며 끝부분을 찾아 시선을 돌리던 중이었다.


“어?”


허공에서 둥둥, 흐물흐물 떠다니고 있던 녀석의 몸체가 문득 S씨를 향해 떨어졌다. 일순간이지만 위기감이 없었다. 당연하다. 지금까지 이 촉수는 자신에게 접촉을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만져본 적도 없으니 무게를 느껴봤을리도 없다. 하지만 그런 안일한 생각은 촉수의 몸뚱아리가 그의 몸에 단 순간, 갈비뼈가 뿌드득하고 부서지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확 깨져버리고 말았다.


믿을 수 없는 무게와 동시에 고통이 밀려온다. 비명을 내지르고 싶었지만 촉수가 목과 배를 누르고 있어서 그런지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끄으, 하는 신음만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을 뿐. 어떻게 쇼크사 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엄청난 고통이다. 침대 속으로, 바닥으로 파묻힐 것만 같다. 그는 잔뜩 망가진 얼굴로, 두 눈을 간신히 움직여 자신을 깔아뭉개고 있는 촉수를 바라보았다.


왜 이러는 거야?!


갑자기 왜 이러는 거냐고!


내 가슴팍에서 살고있던 괴물 주제에 갑자기 주인에게 뭐하는 짓이야?!


그렇게 생각했지만 촉수는 그의 몸에서 비켜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숨이 막혀오기 시작한다. 호흡이 멈추고 점점 새빨개지는 그의 입에서 울컥, 하고 핏줄기가 흘러나온다. 만약 지금 이 촉수가 그의 몸 위에서 일어난다면 더욱 더 많은 양의 피가 쏟아질테지만, 녀석은 비키려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천천히 촉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극심한 고통에 신음을 내지르며 앞을 바라보던 도중, 그가 드디어 촉수의 끝부분과 만나게 되었다. 그의 눈동자가 크게 떠진다. 이윽고 후회와 동시에 분노가 밀려오기 시작한다. 이 녀석이 살아있는 생명체였다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어떻게든 녀석을 떼어내려고 노력했어야 했나. 


녀석이 촉수가 아니라 아주 큰 뱀의 몸뚱아리 였다는 사실을 알아 챈 순간, 이미 S씨의 머리통은 자신의 가슴팍에 달려있는 뱀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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