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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병때 있었던 일 -1~6-

title: 양포켓몬자연보호2016.10.25 17:09조회 수 294추천 수 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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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무렵. 난 입대를 했다. 

친구들을 하나둘씩 보내고나니 왠지 모를 초조함을 

못 이겨 지원한 것이 더 컸는지도 모른다. 

그 초조함이 조금 길었던 탓일까. 22살이라는 

나이에 난 입대를 하게 되었고, 그곳에서는 생각보다 

내 ‘나이가 많다.’ 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306보충대를 거쳐 3사단 백골 훈련병으로 가게 되었다. 

남들은 가기 힘들다는 강원도로 간다는게 썩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아직 자대 배정이 남아 있기에 조금은 참기로 했다. 

분명 좋은 지역으로 자대 배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진 않았다. 





 



아무리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는 하나 군대는 군대였다. 

생전 처음 겪는 구속된 생활이나 여러 가지 서툰 동작으로 

배우던 제식까지. 군대는 내게 많은 시련을 주었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의 장이기도 했다.



 



1주차가 막 지났을 무렵이었다. 어리바리한 훈련병 

시절을 정신 없이 보내고 있을 때, 

조교가 생활관으로 들어왔다.



 



“....”



 



왁자지껄하던 분위기도 금세 조용해진다. 

그리곤 무거운 분위기로 변해버리곤 한다. 조교는 조용히 

생활관에 있는 훈련병들을 훑어 보고는 입을 열었다.



 



“주목.”



“주목!”



 



우리 모두가 기계처럼 같은 단어를 외쳤다. 

조교는 특유의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생활관 가운데에 

있는 좁은 통로로 가볍게 걸어오기 시작했다.



 



“니네 몇 주 됐지?”



“....”



 



질문에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우리들은 그 

물음에 답하지 못했다. 조교는 곧 눈알만을 굴리고 

있는 훈련병을 건드렸다.



 



“105번 훈련병 이창훈!”



“몇 주 됐냐고.”



“이제 2주차입니다!”



“그래.”



 



조교는 뒷짐을 지며 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슬슬 니들도 적응하고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



“그래. 안그래? 이새끼들이.. 아침 안먹었냐? 함 굴러볼까?”



“아입니다!”



 



얼차려라는 말에 우리들은 죽기 살기로 대답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이런 땡볕 아래 받는 얼차려는 

죽어도 피하고 싶었다. 



 



“그래. 그러니까 대답 좀 잘해라. 

나 혼자 말하는거 같잖냐. 어?”





“알겠습니다!”





“이제 다음주부터 2주차다. 맞나?”



“예!”



“그래서 말인데 이제 니들도 근무를 세울까 한다.”



“....”



 



근무라는 말에 우리들은 쉽게 답하지 못했다. 

어느 누구 하나 반가워하는 기색이 없었지만 

조교는 개의치 않는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들에겐 

선택권이란 것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근무는 두 가지다. 몇가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불침번이다. 뭐라고?”



“불침번입니다!”



“다음은 경계근무다. 뭐?”



“경계근무입니다!”



 



조교의 저런 점이 가장 싫었다. 항상 말을 하고 

확인차 묻는데 그 때마다 대답하는 

우리들의 목은 혹사를 당해야만 했다. 



이미 동기들 사이에서도 가장 꺼려하는 조교중 하나가 

바로 눈 앞에서 왔다갔다를 반복하고 있는 김상병이다.



 



“순서는 이미 다 짜져 있다. 이제부터는 

돌아가면서 근무를 서게 될거다. 오늘부터 

당장 시작할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고. 

교육은 근무 들어가기 전에 간단히 해주겠다. 

어차피 조교들이랑 같이 근무 설테니까 모르는거 있으면 

그때마다 물어보고. 괜히 나중에 물어봤는데 모른다고 

대답했다가 나 열받게 하지마라. 알겠냐?”







“예!”



 



조교는 특유의 거만한 표정으로 우리들을 

한번 훑어 보고는 나가버렸다. 덜컥. 문이 닫히는 것을 

확인한 우리들은 저마다 약속이라도 한 듯 한숨을 푸욱 쉬었다.



 



“아, __ X됐네..”



 



내 옆 동기인 김상수가 투덜거렸다. 

그러자 그 옆 박혁도 거들었다.



 



“그러게.. 아 훈련병때는 근무 안선다고 했는데 뭐냐.”



 



그런 둘의 투덜거림을 보자니 왠지 동생 같이 느껴졌다. 

집에 있는 동생도 분명 저런 식으로 투덜거릴테지.



 



“이미 정해졌다는데 어떡하냐. 그냥 해야지 뭐.”



 



내 말에 상수가 다시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형은 참 여유롭네요.”



 



상수는 20살이다. 같은 동기끼리는 반말을 쓰라고 

조교가 강조한 적이 있지만 조교들이 없을 땐 

나름대로 대우를 해주곤 한다. 이 생활관에는 

나 말고도 28살이라는 노령의 형도 있어서 훈련병들끼리 

있을 땐 그 형이 최고의 대우를 받곤 했다.



 



“자대가기 전에 교육받는거라고 생각해야지 뭐. 

가서 안털릴려면 잘 배워야 할 것 같다.”



 



내 말에 혁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형 말이 맞아. 우리 지금 군가도 못 외웠잖아. 

자대가면 군가 시킨댄다. 너 십대 군가는 다 외웠냐?”



 



그 말에 상수는 인상을 찡그렸다.



 



“아 진짜 나 외우는거 조카 못한단 말야. 

제식도 진짜 간신히 익혀가고 있구만 신발..”



“킥킥. 야, 그러다가 너 조카 갈굼당한다.”



“신경꺼라. 에효.. 그나저나 형. 아까 조교가 

차례대로라고 했잖아요.

그 럼 우리 둘이 일빠일 것 같은데요?”



“응? 그러네.”



 



그 말대로다. 생활관 처음 침상에 위치한 나와 상수. 

이인일개조로 근무를 선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집합 5분전.]



 



집합을 알리는 방송 목소리. 우리들은 크게 복창한 뒤 

서둘러 CS 복을 챙겨입기 시작했다.



 



***



 



“니들 역할은 동기들이 잘 자고 있는지 

확인하고 온도 확인하면 된다. 그렇다고 단순히 

확인만 하는게 아니라 불침번의 역할은 본래 적들이 

침투하면 한 명은 지휘통제실이나 행정반에 알리는 

역을 하고 다른 한 명은 동기들. 





그러니까 부대원들을 깨우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까 니들이 졸거나 한눈 팔면 어떻게 되겠어. 

적군이 와서 니들 목 다 따겠어. 안 따겠어.”



 



나와 상수는 조교의 열렬한 교육을 받은 뒤 

초번초 근무를 서게 되었다. 근무 시간은 1시간 30분으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우리 생활관의 위치는 일층 제일 끝 쪽이었는데 밖으로 

통해 있는 유리문과 아주 가까웠다.



 



“그럼 근무 잘서고. 난 행정반에서 대기할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말해. 근무시간 다 되면 다음 근무자들 

깨워서 나한테 보고하고. 알겠냐?”







“예.”



 



그렇게 말한 조교는 행정반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와 상수는 멀어지기 시작하는 조교의 뒷모습을 보며 

생활관 문 상단에 있는 창문을 힐끔 바라보았다.



 



“저 새끼들 안자네..”



 



모두가 수다 삼매경이었다. 젊은 혈기를 주체하기 

힘든 모양이다. 하지만 저번에도 시끄럽게 굴다가 

단체 기합을 받은적이 있기에 나와 상수는 적당히 문을 

두드리기로 했다. 효과는 바로 전해졌다. 

곧 모두 조용해졌고 곧 코를 골기 시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휴..”



 



안도의 숨을 내쉬며 다른 쪽 생활관 문 앞에서 

근무를 서고 있는 훈련병들을 힐끗 보고는 내 옆에서 

가만히 서있는 상수에게 물었다.



 



“야, 상수야.”



“....”



“야 김상수.”



“....”



 



이상하다. 평소 내 말을 무시하던 놈이 아닌데.. 

왜 이러지? 상수는 멍하니 바깥을 통하는 유리문을 

보고 있었는데 아무런 표정도 읽을 수 없는 

무표정의 상태였다. 왜 이런거지? 첫 근무라서 얼어버린건가? 

아님 긴장한건가?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며 

상수의 어깨를 흔들자.



 



“헉!”



 



상수가 헛바람을 들이키며 유리문에서 빠르게 

물러나기 시작했다. 탁탁탁. 허겁지겁 물러나는 상수는 

곧 뒤로 엉덩방아를 찧고는 겁에 질린 얼굴로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혀, 형!”



“..왜. 왜 그래?”



 



처음 보는 상수의 얼굴이다. 단순하고 불평이 많은 

놈이었지만 언제나 밝은 놈이었다. 

대체 뭘 봤길래 저렇게 놀라는 것일까.



 



“저, 저기.. 저기.. 저기..!”



 



연신 손가락질을 하며 유리문 밖을 가리키는 상수. 

대체 뭐가 있길래 저렇게 놀라는거야? 상수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예상대로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그저 어두운 밤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바깥 풍경이 전부였다.



 



“야, 상수야. 너 괜찮냐?”



 



얼른 상수에게 다가가 손을 뻗으려고 했지만 

상수는 강하게 내 손을 쳐내며 외쳤다.



 



“저, 저리가 이 새끼야! 이 신발.. 

저리가 저리 꺼져! 으아아아!”



 



그리곤 마치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처럼 

큰 소리를 지르며 행정반 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 소란에 놀란 다른 훈련병들이 머리를 살짝 내밀고 

상황 파악을 하기 시작했고, 행정반에서 튀어나온 조교들과 

간부는 상수에게 다가가 뭐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



 



대체 왜 저렇게 놀라는걸까. 

뭘 봤길래 상수는 저렇게..



 



딱.



 



“?”



 



뭔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온 것 같다. 

소리가 들리는 쪽. 그러니까 유리문 밖으로 고개를 돌리지 

예상대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뭐야..”



 



따닥. 딱. 다시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좌악. 

온 몸에 소름이 순식간에 돋아났다. 이대로 뒤를 돌아보면 

왠지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 더러운 예감이 

전신을 지배했다.



 



“....”



 



돌아보지 말자. 돌아보지 말자. 

그대로 난 생활관 문을 열었다. 왠지 이곳에 더 있다가는 

상수와 같은 꼴을 당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형. 무슨 일이에요?”



 



혁이가 졸린 눈을 부비며 나를 보며 서있었다. 

그 말에는 나도 자세히 답해줄 수 없었다. 아는 것도 없고 

보는 것도 없엇으니까. 다만 말할 수 있는 것은 상수가 

무언가를 봤다는 것이고 그 쇼크로 행정반까지 미친 듯이 

달려갔다는 점이다. 하지만 난 그것을 말하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왠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대신 난..



 



“모르겠다. 상수가.. 헛것을 봤나봐.”



“..그래요?”



 



 



***



 



 



“어제 김상수 훈련병의 말을 들었다.”



 



아침 점호시간. 우리 생활관만 열외가 된 상태였다. 

점호에 열외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조교가 말하며 

상수의 상태를 간단히 설명했다. 어젯밤. 



상수는 바로 행정반으로 뛰어갔고, 

그 즉시 발작을 일으켰다고 한다. 



 



상수는 무언가를 봤다고 주장하고는 있지만 

그것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설명할 수 없는 것.' 

이라고 했다고 했다. 일단은 근처에 있는 일동 병원에 

입원할 예정이라고 설명하고 있을 때 생활관 문이 열리며 

당직사관이 들어왔다.



 



“백골.”



 



조교의 경례를 가볍게 받은 당직사관은 

곧바로 나를 향해 오더니 손짓했다.



 



“잠깐 얘기 좀 하자.”



“98번 훈련병 오인한! 알겠습니다.”



“아, 슬리퍼 신고 나와.”



“예!”



 



허둥거리며 슬리퍼를 신고 생활관을 나서니 

당직사관이 행정반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그 뒤를 쫓아 행정반안으로 들어가니 

대대장과 주임원사가 나를 보고 있었다. 

군대에서 높은 계급의 사람을 보면 무조건 경례하라는 

아버지의 말대로 난 목청껏 경례를 했다.



 



“백! 골!”



“그래.”



 



대대장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앉으라고 말했다. 

어설픈 동작으로 배정된 자리에 앉으니 당직사관이 

탄산음료를 내밀었다.



 



“마셔.”



“....”



 



훈련 받는 동안 가장 땡기고 염원하던 것이 바로 콜라였다. 

이유는 정확히 몰랐지만 미치도록 탄산이 땡기던 날이 있었다. 

이런저런 감상에 젖어 있을 때 당직사관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려워하는 것으로 착각했는지 음료를 

내 앞에 내려놓았다.



 



“괜찮아. 마셔.”



“가, 감사합니다.”



 



촤악. 캔을 따고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특유의 맛에 

전율을 느끼고 있을 때 대대장이 조용히 물어왔다.



 



“어제 상수랑 같이 근무 섰다며?”



“큼.. 큼! 예. 그렇습니다.”



“초번초였다지?”



“예.”



 



대대장은 말 없이 턱을 매만지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뭘 봤다고 하진 않고?”



 



그 말에 어제 상수의 표정이 떠올랐다. 





‘저리가. 저리 꺼져! 이 신발.. 꺼지란 말야!’ 



그렇게 발작적으로 외치는 상수의 얼굴은 처음이었다. 

분명 뭔가를 봤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반응한 것이리라.



 



“당시 상수는 매우 흥분한 상태였습니다.”



“음..”



“뭘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다가가니 욕을 하면서 

저리가라고만 했습니다. 그리곤 바로 행정반으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다인가?”





“..예.”



 



딱. 따악. 순간 뭔가 부러지는 소리가 떠올랐다. 

곧 머릿속에 떠올린 것을 말하려 입을 열 때. 

이상하게도 말이 밖으로 튀어나오지가 않았다. 

이상했다. 왜 이런거지? 누가 날 막고 있기라도 한건가? 

당황하며 대대장과 주임원사 당직사관의 

얼굴을 한 번씩 훑어 볼 때.



 



“?”



 



당직사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생각하고 있는 것을 말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것처럼. 

먹이를 눈 앞에 둔 맹수의 눈빛처럼 나를 삼키려하고 있었다. 

아까 전. 친절한 목소리로 내게 음료를 건네주던 

그 사람이 맞는건가?



 



“....”



“알겠네. 상수는 지금 병원으로 출발한 상태야. 

그 외에 뭔가 생각나는 거라도 있으면 내게 알려주게나.”



“알겠습니다. 충성!”



 



경례를 하며 행정반에서 나올 때 

당직사관도 같이 따라나왔다. 다시 한 번 살벌한 

눈초리를 받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얼른 걸음을 옮기려 할 때.



 



“야.”



“98번 훈련병 오인한.”



 



어느새 무표정한 얼굴로 변한 당직사관이 

내게 걸어오며 말했다.



 



“너. 솔직히 말해야 돼. 진짜 아무것도 못봤어?”





“..못봤습니다.”



 



왜 자꾸 보지 못했냐고 캐묻는걸까. 

정말 뭐가 있기는 한걸까?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식으로 

집요하게 늘어질 리가 없다. 하지만 난 정말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거기에 맞는 답을 해줄 수는 없었다.



 



“정말입니다. 맹세합니다.”



“..알았다.”



“예.”



“근데 너.”



 



스윽. 내 어깨를 강하게 잡은 당직사관이 물었다.



 



“혹시 뭐라도 들었냐?”



“....”



 



딱. 딱. 잊을 수 없는 소리다. 뭔가가 부셔지는 

소리라고 해야 맞는건지. 뭔가 갈리는 

소리라고 해야 맞는건지 알 수 없었다. 짧은 순간이지만 

내 머뭇거림은 당직사관에겐 빌미가 되었다.



 



“들었지. 너 들었구나.”



 



빈틈을 캐치하기라도 한 듯 당직사관이 

내게 가까이 다가오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야 돼. 진짜. 

너 들었어 못들었어.”





“..들었습니다.”



 



마음 속에서는 부정하라고 말을 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입이 제멋대로였다. 내 답을 들은 당직사관은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무슨 소리였지.”



“..뭔가. 뭔가가 부숴지는 소리였습니다.”



“이 소리?”



 



딱.



 



“헉!”



 



너무도 흡사한 소리에 몸이 먼저 반응해버렸다. 

당직사관은 차분한 얼굴로 중지 손가락과 엄지를 교차시키며 

소리를 냈다. 딱. 딱.



 



“이 소리냐?”



“어, 어떻게..”



 



내 말에 당직사관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생각에 잠겨버렸다. 곰곰이 생각에 잠긴 그에게 

다가갈 수 없는 신분인 나로서는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곧 보이지 않는 한숨을 쉰 당직사관은 내게 손짓했다.



 



“따라와.”



 




“잘.. 못 들었습니다?”



 



당직사관에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난 그렇게 답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덕에 당직사관은 

주위를 살펴야 했고,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당직사관은 빠르게 말했다. 



 



“설명해줄게.”



 



그걸로 끝이었다. 당직사관은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점점 멀어져 가는 당직사관의 뒷모습을 보며 난 잠시 

고민에 빠졌지만 곧 따라가기로 했다. 





상수의 문제도 그랬지만 당직사관이 대체 뭘 알고 있는건지. 

뭘 알고 있길래 내게 이러는건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저벅. 저벅. 점호로 인해 텅 비어버린 복도에는 

둘만이 걷는 발소리만이 가득하다.







"빨리."



"예."







중앙 계단을 통해 이층으로 올라가는 당직사관을 따른다. 

이층은 조교들이 쓰는 생활관이라 올라가는 

것이 금기 되어있었는데.. 아무튼 사관의 뒤를 따르니 

훈련병 생활관에서는 볼 수 없었던 티비가 한 눈에 들어왔다. 





다른건 필요 없었다. 그저 세상과 소통을 해주고 걸그룹을 

마음껏 보여줄 수 있는 티비가 

내게 가장 커다랗게 다가왔다.







 



사관은 적당히 걸은 뒤 비어있는 생활관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들어와.”



 



서둘러 사관의 뒤를 따라 생활관 내부로 들어가니 

매우 작은 평수의 생활관이 눈에 들어왔다. 





관물대의 수를 보아하니 4명에서 5명정도가 

지내보이는 것 같았다. 사관은 적당히 자리를 잡은 뒤 

앉으라고 말했고 나도 적당히 거리를 벌리고 앉아 

사관의 말을 기다렸다.





 



“..일단.”



 



사관은 입술을 달싹거리며 한숨을 길게 쉬었다.



 



“어제 상수가 겪은 일은 매 기수 마다 일어나는 일이다.”



“..예?”



 



사관의 말은 상당히 충격이었다. 그것이 내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저도 모르게 반문을 해버리고 말았다.



 



“죄, 죄송합니다.”



 



첫날 실수로 조교에게 반문을 했다가 죽어라 얼차려를 

받은 기억이 있던 터라 ‘예?’ 는 내 머릿속에서 지워야만 

하는 단어여야만 했다. 하지만 사관은 개의치 않는 듯 했다. 





그는 심각한 얼굴로 이어 말했다.



 



“저번 기수에도 그랬고. 저저번 기수에도 그랬어. 꽤..”



“....”



“오래된 일이지. 아마 니네 기수가 마지막일거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 부대는 없어질거야.”



“....”



 



그 정도로 훈련병들의 피해가 컸었나? 부대를 송두리째 

없앨 정도로? 어느새 사관은 담배를 꼬나 물었다. 

곧 깊게 담배를 빨아 연기를 뱉은 사관이 손을 내밀었다.



 



“펴.”



“....”



 



거절하기 힘든 담배의 유혹이었다. 1주일 동안 

생각하지 않고 잘 버티는가 싶었는데.. 

이런 내 머뭇거림을 읽기라도 한건지 사관은 막무가내로 

담배를 내 입에 물려주고는 불을 붙여주었다. 스읍. 

목구멍을 타고 폐로 가득 채워지는 익숙한 것에 

내 몸은 전율하고 있었다.



 



“죽을거야.”



 



그 말은 내 몸 전체를 오작동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콜록. 콜록. 목구멍에서 터져나오는 무언가를 간신히 

억누르며 기침을 했다. 눈가에는 금세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사관은 내 모습을 가만히 보더니 다시 담배를 물고는 말했다.



 



“그 놈. 상수 말이야. 죽을거라고.”



“..무슨?”



“꽤 심각한 문제야. 처음엔 그냥 자살로 치부해버렸는데 

이게 매 기수마다 훈련병들이 죽어가기 시작했단 말이지.”





 



아까운 담배가 타들어가는 것도 모른체 

난 사관의 말에 집중했다.



 



“처음엔 한 명. 그 다음 기수엔 두서명. 그 다음엔 

그의 배수가 죽어나갔다.”





“....”





“내가 이 부대에 처음 왔을 땐 세 명이 죽었었지.”





“당직사관님..”





“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알아낼 수 있었던건 말이다.”



 



바닥에 담배를 짓이긴 사관은 손가락을 내게 내밀며 소리를 냈다. 



딱. 따닥. 딱. 



사관은 내 눈을 가만히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이 소리가 들린다는거야. 부러지는 소리가 들린데.”



“....”



 



순간 어제의 더러운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생활관 문을 열기 직전의 그 기운. 뭔가가 분명히 존재하는 

그 기운이 내 몸을 감싸는 것 같았다.



 



“그리고..”



 



꿀꺽.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지금 이 순간에서는 

사관의 행동과 말 하나하나가 내겐 

깊숙이 박히기 시작했다.



 



“헛것을 보기 시작했지.”



“..헛것이라면?”





“글세.. 훈련병들 얘기가 다 달라서 뭐라고 하기가 좀 그렇군. 

하지만 어느 훈련병은 할머니가 보인다고 했고. 

어느 훈련병은 젊은 아가씨가. 

어느 훈련병은 아저씨가 보인다고 했어.”



 



사관의 말을 듣는 순간 난 원인 모를 공포에 휩싸였다. 

상수도 그럼 처음부터 그 소리를 들었다는건가? 

그래서 어제 불침번을 설 때 헛것을 본거고..



 



“그럼 상수도 그 소리를 들었다는겁니까?”



 



사관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난 모르지. 내가 볼 땐 처음에 그냥 단순한 환청이라고 

치부해버리다가 어제 일이 터진 것 같다.”





“..그럼 당직사관님 다음에는..”



 





사관은 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 다음은 네 차례일 확률이 높다. 

그래서 너에게 아까 그렇게 물어본거야. 나도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나는지 모르지만 내가 이 부대에 있는 한은 최대한 

훈련병들의 안전을 생각하기로 했다. 

그건 대대장님도 다르지 않아.”







“전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저도 그럼 헛것을 보게 되는 겁니까?”







“단정할 순 없지만 그럴 가능성이 크다. 해서 말인데.”





“....”





“너를 다른 훈련소로 전출 보낼까 한다.”



 



훈련병이라는 신분에 다른 곳으로 전출을 간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지 않나? 그 정도로 내 안위가 

위험에 처해 있는건가? 아니다. 나도 상수와 같은 일을 당할 수 있다. 

그러니 좋게 생각해야만 한다.



 



“바로 말입니까?”







“그래. 지금쯤 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일거야. 

최악의 경우 1주일이 뒤로 밀려날 수도 있지만 지금 네게 

중요한 것은 훈련소의 생활이 아니라 너의 목숨이다. 

이해하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 가자.”



 



사관은 자리에서 일어나 앞장서기 시작했다. 

그에 맞게 조교들도 하나둘씩 생활관 복도 쪽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점호가 끝난 모양이다. 모두 구보를 하고 

온 상태여서 그런지 얼굴들이 빨갛게 익어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사관이 말했다.



 



“얼른 가서 더블백에 짐 챙겨라. 그리고 여기 

중앙 계단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





“예.”



 



난 망설이지 않고 생활관으로 뛰어갔다. 

끝 쪽 자리에 위치한 생활관이 왜 이렇게 멀게 느껴지는건지..



 



“헉. 헉.”



 



생활관으로 들어와 관물대 앞에서 더블백에 미친 듯이 짐을 

처넣기 시작할 때 주위 훈련병들이 내게 몰려 들었다.



 



“형 무슨 일이야?”



“어디가?”



“상수는? 얘기 들었어?”



 



이런 저런 질문들이 내게 쏟아졌지만 

난 거기에 답해줄 수 없었다. 그저 이 부대를 한시라도 빨리. 

이 저주받은 곳을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렇게 빠르게 더블백에 짐을 꾸린 난 문득 옆 자리에 있어야할 

혁이가 보이지 않아 의아함이 생겼다.



 



“혁이는? 혁이 어딨어?”



 



내 말에 훈련병들은 모른다는 눈치로 고개를 저었고 

곧 한 명이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걔 아까 뛰다가 열외된 것 같던데? 

무슨 소리가 들린다고 하더라고.”





“..뭐?”



 



머릿속이 하얘졌다. 혁이마저? 

혁이도 그 소리를 들었다는건가?그럼 혁이 역시..



 



“혁이.. 혁이 어딨어?”





“몰라. 조교가 인솔해서 어디로 데리고 갔겠지. 

근데 왜?”



 



답답해졌다. 혁이를 내 눈앞에서 봐야. 멀쩡한 혁이를 

내 눈앞에서 봐야 마음이 안정될 것 같았다. 

모두가 멀뚱멀뚱하게 서있을 때 튀어나오는 대로 

말을 뱉어버렸다.



 



“야. 얼른 보고해. 혁이가 사라졌다고 보고하라고.”





“....”



 



하지만 모두가 내 말에 움직여주지 않았다. 

불길했다. 분명히 뭔가가 일어날 것만 같은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어제 생활관 문을 열 때, 

그 좁은 틈으로 무언가가 들어와 혁이에게 들러 붙은건가? 

사관이 말한 원인 모를 헛것이나 환청이 혁이에게..



 



딱. 따악.



 



“!!”



 



소리. 소리다.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오소소 날카로운 소름이 온 몸에서 돋아나기 시작했다. 

절로 떨리기 시작하는 몸을 간신히 추스르며 

더블백을 멜 때.



 



“어디가?”



 



한 명의 손길이 느껴졌다. 어깨에 가볍게 올려져 있는 손길. 

무심결에 뒤를 돌아보니 생전 처음보는 훈련병이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평범해 보이는 

얼굴이지만 어딘가 이상했다. 그리고 이 훈련병은 처음부터 

우리와 생활하고 있지 않았었다.



 



“누, 누구야! 너 누구야 신발.. 

신발! 누구냐고!”



 



발작적으로 그렇게 외친 것 같았다. 

난 얼른 더블벡을 양손으로 들어 훈련병에게 강하게 휘둘렀다. 

그리곤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중앙 계단 쪽으로 뛰어갔다. 





숨이 금세 턱끝까지 차오르고 다리가 아파왔지만 

뭔가 부러지는 소리는 끊어질 줄 몰랐다.



 



“으아아.. 으아아악!”



 



미치도록 무서웠다. 무섭고 무서워서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조금만 더 가면 사관이 내 앞에 있을 것이다. 

그럼 난 이 부대를 떠날 수 있을 것이고.. 

그럼 난 안전해질 수 있을 것이리라.



 



빠르게 뛰어가니 사관의 모습이 보였다. 

사관은 내 상태를 보고는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는지 

굳은 얼굴을 하고서는 손짓했다. 빨리 오라는 뜻인가. 





아니면 뒤에 무언가가 따라오고 있다는 것인가. 

하지만 어느 둘 중 하나라도 상관 없었다. 빠르게 사관 앞으로 

도착한 난 숨을 간신히 돌리며 사관에게 말했다.



 



“사, 사관님. 저.. 저기 생활관.. 

저 생활관에 있지.. 않습니까. 저..”



 



사관은 여전히 굳은 얼굴로 내가 달려온 곳을 

가만히 응시하고는 말했다.



 



“시작된 것 같구나. 어서 가자.”



 



사관의 말을 따라 중앙 현관 쪽으로 걸음을 옮기니 

익숙한 모습을 하고 있는 누군가가 우리를 보고 있었다.



 



“..혁아?”



 



혁이였다. 아침 점호를 나갈 때와 같은 복장으로 

나와 사관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사관님. 혁이가 있지 않습니까. 혁이가..”



 



얼른 혁이에게 다가가 데리고 가야한다는 일념 하나로 

빠르게 달려가려고 할 때, 사관의 우악스러운 손길이 

내 몸이 묶여 버렸다. 그 자리에 옴싹달싹 못하고 있을 때 

사관이 차분하게 말했다.



 



“잘 봐. 저게 니가 알던 그 박혁 훈련병이냐?”



 



그 말에 시야가 점차 또렷해 지기 시작했다. 

분명 평소와 다름 없는 혁이의 모습이었지만 

눈동자가 보이지 않았다. 마치 뭐라도 홀린 듯 

**처럼 입을 벌리고서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혁이의 

모습은 일주일 동안 봐오던 혁이의 모습이 아니었다.



 



“사, 사관님. 혁이가.. 혁이가.”



 



사관은 천천히 손에 힘을 빼며 걸어나갔다.



 



“여기서 기다려.”



 



그렇게 혁이를 향해 천천히 가는 사관의 모습을 보며 

부들거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을 때.



 



빠앙- 빵-



 



엄청난 클락션 소리가 내 귀를 강타했다. 

본능적으로 뭔가가 일어날 것을 예측한 난 혁이를 

향해 뛰기 시작했지만 그보다도 더 빠른 레토나의 속도는 

나의 바램을 무참히 짓밟아 버렸다.



 



콰앙! 포탄에 맞으면 저런 소리가 날까? 

듣기 싫은 소음 소리과 혁이의 몸은 그대로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혀, 혁아!”






사람이 죽는 것은 정말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다. 

사고가 일어나는 순간도..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는 순간도.. 

매 순간순간에 우리 사람들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오고가고를 

반복하는 것 같다. 





지금의 혁이가 그런 것처럼.



 



“혁아!”



 



혁이는 피하질 못했다. 사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더블백을 바닥에 팽개치고서 사관의 뒤를 빠르게 따르니, 

사열대 근처에 죽은 듯이 쓰러져 있는 혁이의 모습이 들어왔다. 

두근두근. 심장이 격하게 뛰기 시작했다. 다가가지 말라고 

머리가 말하고 있지만 이미 몸은 혁이를 향해 

뛰어가고 있는 상태였다.



 



“혁아! 혁아!”



 



혁이와 가까워진다. 그에 따라 

모습도 점차 또렷해진다.



 



“....”



 



혁이의 모습은 많이 달라져있었다. 

사지가 기괴한 각도로 꺾여 있는가 하면 수 많은 핏물들을 

입으로 게워내고 있었고, 끊임없이 발작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사관은 딱딱히 굳은 얼굴로 사열대 뒤쪽에 정차되어 있는 

레토나 쪽으로 빠르게 뛰어가며 외쳤다.



 



“너 이 새끼! 너 누구야!”



 



사관은 잔뜩 흥분해 있었다. 그는 날렵하고 거칠게 

레토나의 문을 열어제끼고는 운전자를 끌어냈는데, 

그 운전자는 나도 익히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김상병?”



 



항상 우리를 못살게 갈구며 얼차려를 부여하던 김상병이었다. 

왜 김상병이 저기에 타있는거지? 

어째서 김상병은 혁이를..



 



“김상병! 너 이새끼! 니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기나 해?!”



 



사관의 목소리가 연병장을 가득 메운다. 

그 소리가 워낙 컸던 탓일까. 아니면 혁이를 쳤다는 

사실을 깨달은 탓일까. 김상병은 두려움 가득한 눈빛으로 

사관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다.



 



“사, 사관님. 저.. 저 봤습니다!”



“..야.”



 



바짓가랑이에 매달린 김상병을 내치려는 사관은 곧 

들려오는 소리에 동상처럼 멈춰버렸다.



 



“상수.. 그 김상수 훈련병 말입니다! 그 놈이.. 

그 놈이 아까 왔습니다! 제, 제가! 이 두..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발작적으로 울부짖으며 눈물을 흘리는 김상병을 

보던 사관은 이를 악물고는 그와 눈높이를 맞추며 

낮게 중얼거렸다.



 



“너.. 진짜 거짓말이면 뒤질줄 알어라.”





“저, 정말입니다! 제가 왜..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어디야. 안내해.”



 



우직한 얼굴로 김상병을 잡아 끄는 사관. 

김상병은 눈물과 콧물 범벅이 된 얼굴로 허겁지겁 

앞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둘을 보며 

어찌해야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



 



“..혀..형..”



 



혁이의 목소리였다.



 



“혁아?”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간신히 

눈을 뜬 혁이가 애처롭게 날 올려다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는 거칠게 들끓는 피 때문에 

그 뒷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어떡해야 하지. 어떡해야..



 



쿨럭이며 내게 뭔가를 말하려는 혁이를 보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상체를 약간 들어주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아니다. 차라리 목을 조금만 들어주기로 할까. 

그럼 조금이나마 피를 뱉어낼 수 있을거야.



 



“괜찮아..?”



 



혁이에게 다가가 살짝 고개만 돌려주기로 했다. 

혁이는 한움큼의 피를 뱉고는 느릿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조.. 조심해..”



“..혁아.”



“빨리.. 빨리 도..망..”



 



혁이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렸다. 두 손에서 힘 없이 떨궈지는 고개의 

무게를 느끼며 도움을 청하기 위해 중앙현관을 바라보니 

아까 내게 말을 걸며 손을 뻗었던 훈련병이 

무표정한 얼굴로 날 보고 있었다.



 



“..이 빌어먹을 새끼..”



 



모든 것이 저 놈 때문이다. 

저 귀신 놈 때문에 상수와 혁이가.. 

그리고 나 까지도 위험에 처하게 생겨버렸다.



 



딱. 따악.



 



훈련병은 오묘한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그 자리에 서있었다. 하지만 곧 다가오는 수 

많은 조교들과 간부들에 의해 그 모습은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들 것 가져와!”







“앰블란스 대기 시켜! 바로 병원으로 간다!”



 



조교와 간부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곧 내게로 다가와 가볍게 안부를 물은 

그들은 혁이를 챙기기 시작했다. 재빠르게 들것에 실은 

그들은 곧 다가오는 앰블란스에 혁이를 조심스레 탑승시킨 뒤 

빠르게 출발해버렸다.



 



“....”



 



순식간에 점으로 사라진 앰블란스를 보며 

허망한 눈으로 양손을 바라보니 붉은 색 물감이라도 칠한 듯 

새빨갛고 낯선 내 손이 보였다. 전투복 역시 많이 물들여져 있었다. 





이게 바로 혁이 몸에서 나온건가. 사의 갈림길에서 헤매이고 

있는 혁이의 마지막 증거인건가.



 



정신이 들지 않았다. 제정신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간부와 조교들이 다가와 나를 추슬러주지 않았더라면 

난 그 자리에서 꼼짝도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곧 나를 이끌고 

중앙현관 쪽으로 걸어갔고, 

일부는 한쪽에 세워진 레토나로 다가갔다.



 



레토나 쪽으로 다가가는 두 명의 조교들을 보며 

문득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해서 바로 옆에서 날 부축하고 

있는 조교에게 물었다.



 



“고장 나지 않았는지 체크해야 합니다. 

저 레토나가 혁이를 치었습니다.”



 



내 말을 들은 조교는 곧 레토나 근처 조교들에게 





‘고장 났는지 확인해.’ 



라는 말을 건넸고 그들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심스럽게 레토나에 탑승했다. 

곧 조용히 레토나와 조교들의 상태를 살피니 둘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레토나를 운행하면서 

우리에게 말했다.



 



“멀쩡한데? 앞에 찌그러진 부분도 없어.”



“피도 묻어 있지 않아.”



“....”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럼 김상병도 홀린 상태로 레토나를 운전했다는건가? 

그럼 혁이를 저 거리까지 치고 나간 것은 대체 뭐란 말인가. 

레토나가 아니라면..



 



"...."







의문은 풀 수 없었다.



 



 



***



 



 



허망한 얼굴로 생활관으로 다시 복귀하니 

동기들이 걱정스런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2주차부터는 본격적으로 제식을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아무래도 부대 사정이 사정이다 보니 여러 가지로 

미뤄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전혀 기쁘지가 않았다. 

지금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일과 크게 다친 혁이와 

일동 병원에 입원해 있을 상수..



 



“?!”



 



가만! 분명히 김상병은 상수를 봤다고 사관에게 말했었다. 

그럼 어디로 간거지? 둘은 어디로 가버린거지?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들어 얼른 생활관 밖으로 나오니 

고요한 복도만이 보일 뿐이었다. 저마다 생활관에서 

대기하고 있으라는 명령을 받은 것인지 아무도 복도를 

활보하고 있지 않았다.



 



난 빠르게 걷기로 했다. 

그리고 어제 사관과 얘기를 나누었던 

그 작은 생활관으로 가기로 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이라면 사관과 김상병 둘이서 얘기를 나누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서둘러 중앙 계단을 올라 생활관 쪽으로 걸음을 옮기니 

조교들이 의아한 눈빛으로 날 보는 것이 느껴졌다. 





거기에 일일이 답을 해주지 않고 오로지 

내 목적지를 위해 빠르게 걸었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눈에 익은 생활관 문이 보일 때 난 주저 없이 문을 열었다.



 



“....”



 



예상대로였다. 안에는 사관과 김상병이 앉아 있었는데, 

둘 모두 담배를 피고 있었는지 흰색의 진한 연기만이 생활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둘은 날 보아도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나 역시 경험자이고 목격자여서 그런 것일까.



 



“문 닫아라.”



 



무미건조한 투의 목소리. 그렇게 말한 사관은 

내게 담배를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입에 담배를 물고 불을 붙여주는 사관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한 뒤, 김상병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김상병은 영혼이라도 떠난 것처럼 생기가 없는 얼굴로 

반복된 동작으로 담배를 물고 연기를 내뱉기만 할 뿐이었다.



 



“..어떻게 된겁니까?”



 



내 말에 사관은 말 없이 담배를 물었고, 김상병은 

미세하게나마 어깨를 움찔거렸다. 

난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아까 분명히 들었습니다. 

상수가 부대에 다시 왔다고.. 사실입니까?”





“....”



 



김상병은 답을 하지 못했다. 

대신 사관이 나서며 말했다.



 



“그래. 김상병도 너와 비슷한 모양이다. 

조교가 홀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럼 그동안에는 훈련병들 상대로만 

그 증상이 나타난 겁니까?”







“그랬었지. 하지만 이번에는 조교마저도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어. 진작에 이 부대를 없앴어야 했는데..”



 



사관은 군화발로 담배를 지긋이 밟고는 말했다.



 



“어찌 됐든지 간에. 

너희 둘은 이 부대에서 당장 나가는게 낫겠다. 

그리고 대대장님도 방금 일을 보고 받았으니 분명 움직이실거야. 

일단은 너희 둘의 상태가 가장 심각하니.. 

이번엔 짐도 싸지말고 바로 떠나도록.”



 



사관은 내게 주어진 짧은 시간동안 일어난 일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듯 했다. 사관의 말대로 담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딱. 따악. 딱. 



부러지는 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



 



날카로운 감각이 피부 하나하나를 꿰뚫는 것 같았다. 

주와악. 오돌토돌한 소름이 온 몸을 지배하기 시작할 때 

김상병이 천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몸을 일으키는 

김상병의 상태는 한 눈에 보아도 뭔가가 이상했다. 



그것은 사관도 캐치한 모양인지 내게 물러나라는 손짓을 한 뒤, 

천천히 김상병 근처로 돌아 걷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군화소리가 고요한 생활관에서 

유독 크게 들리는 듯 했다. 그 소리가 __점이 되었을까. 

김상병의 고개가 순간적으로 올라갔고, 거기에는 익히 

봐오던 김상병의 얼굴이 아닌 혁이의 얼굴과 비슷한 것을 

띄고 있는 하나의 ‘귀신’ 이 서있었다.



 



“허억!”



 



헛바람을 들이키며 뒤로 물러날 때 김상병은 

내가 아닌 사관에게 달려들었다.



 



“죽어! 죽어어어엇!”



 



크게 뛰어올라 사관을 바닥에 눕히는데 성공한 김상병은 

곧 양손으로 사관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죽어! 키헤헤헤헤!”



 



굵은 침을 흘리며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는 그 모습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영락없는 귀신의 모습이었다.



 



“크, 큭!”



 



그 악력이 상당했는지 덩치가 우람한 사관도 

삐쩍마른 김상병 하나를 제대로 치워내지 못하고 있었다. 

발을 몇 번 튀기며 김상병을 떼어내려다가 실패한 사관은 

곧 내게 도움의 눈빛을 청했다.



 



“....”



 



그 눈빛을 모른척할 수 없었다. 사관이 죽어버리면 

바로 다음 타깃은 내가 될 것이 뻔했다. 길게 망설이지 않았다. 

얼른 김상병에게 달라 붙어 상체를 단단히 잡고 





떼어내려는 순간.



 



“넌 봐줄게.”



“?!”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단순히 귀로 전해지는 

소리가 아니라 마음 속에서 울리는 거대한 무언가였다.



 



“넌 봐줄테니 그대로 꺼져버려라. 

난 이 새끼만 죽이면 되니까.”





“....”



 



내게만 들리는 말인 듯 했다. 사관은 여전히 

곤혹스러운 얼굴로 나를 간절히 바라보고 있었고, 

김상병은 정체모를 소리와 웃음을 지으며 격렬하게 

사관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오, 오인한!”



 



간신히 말을 뱉은 사관의 목소리. 

난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








“젠장!”



 



그대로 몸을 내뺀다면 모든 것이 끝날테지만 이대로 

사관을 두고 가기에는 내 양심이 허락지 않았다.



 



“커, 컥!”



 



사관의 숨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하다. 

사관의 발이 격하게 움직이는 순간 나 역시 김상병의 

등뒤로 바짝 붙었다. 있는 힘껏 김상병의 허리를 

감싸 당기려고 할 때 낯선 시선이 느껴졌다.



 



“키히히히.”



 



목이 완전히 꺾인 상태의 김상병이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굵고 기다란 타액을 흘리며 나를 보고 웃는 모습은 

지옥에서나 볼법한 괴물과도 같았다. 





따닥. 



김상병의 얼굴이 

점차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 손 놔라.”





“크.. 크윽!”



 



낯설고 더러운 기운에 몸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시작한 일이다. 

이대로 손을 허무하게 놔버리면 사관의 목숨은 보장할 수 

없을 것이다. 딱. 따닥. 부러지는 소리. 김상병의 얼굴이 

점차 가까워질수록 그 소리는 점차 거세졌다.



 



“놓으라고. 새끼야.”



 



바로 지척까지 다가온 김상병의 얼굴. 

흰자만이 가득한 눈동자와 귀까지 찢어져 있는 거대한 입 

사이로 날름거리는 혓바닥. 그것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다. 

김상병이 아니었다. 딱. 

이제야 그 소리를 알게 되었다.



 



“큭..”



 



그것은 뼈가 부러지면서 나는 소리였다. 

지금의 김상병의 몸이 그렇듯 과도한 움직임을 취한 뒤 

항상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뼈가 부러지는 소리였던 것이다. 딱. 

서서히 다가오는 얼굴. 하지만 거기가 최고 거리였는지 

김상병의 얼굴은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후회할거야. 너. 후회한다. 기필코.. 후회할거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상병은 위아래로 천천히 움직이다 

순식간에 몸을 내쪽으로 돌려버렸다.



 



“!!”



 



그 결과 사관은 무사할 수 있었지만 거대하고 괴이한 힘은 

그대로 내게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키히히히. 키헤헤헤!”



 



목이 늘어날대로 늘어난 김상병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내 목은 단단히 조여지고 있었다.



 



“커, 컥! 컥!”



 



자유자재로 숨을 쉴 수 없다는 것이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은 몰랐다. 거기에 원인 모를 귀신에게 

그 공격을 당한다는 것은 여간 버티기 쉬운 것이 아니었다. 

난 최대한 벗어나기 위해 김상병의 복부에 강하게 발길질을 했지만 

뱃속에 뭐라도 넣은건지 거칠다 못해 딱딱했다.



 





“후회할거라고 했잖아. 킥.. 킥키키키키!”



 



어느새 다가온 김상병의 얼굴. 그 괴랄한 얼굴에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러버렸다.



 



“으.. 컥! 커억.. 으!”



 



하지만 목구멍이 조여질대로 조여진터라 

그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급박함을 느낄 때, 문득 머릿속으로 무언가가 

빠르게 지나가기 시작했다. 





매순간이 파노라마처럼 빛의 속도로 

머릿속에서 생성되고 있었다. 어릴적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했던 이런저런 일부터 생전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고백을하고 

시험을 망치고, 대학에 간신히 합격한 일들이 순식간에 나타났다가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끄.. 끅.”



 



죽는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높은 하이톤의 웃음 소리가 

서서히 희미하게 들릴 때 쯤이었다.



 



퍼억! 뭔가가 강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난 격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우드득. 그동안 참아왔었던 

폐가 살기 위해 맹렬히 움직이기라도 하듯 요상한 소리가 났다.



 



“허! 허억! 헉!”



 



바로 이어질지도 모르는 공격에 난 얼른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거기에는 어느새 멀쩡한 상태로 

서있는 사관이 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정신을 잃은건지 머리에 피를 심하게 흘리고 있는 

김상병이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



 



김상병과 사관을 번갈아 보다 문득 밀려오는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사, 사관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겁니까? 어떻게..”



 



사관은 말 없이 서있었다. 그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나에게 다가오며 손을 내밀었다. 그것은 구원의 손길과도 같았다. 

망설임 없이 사관의 손을 잡으며 일어나니 조금이나마 

심신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됐다. 일단 나가자.”



 



그렇게 말한 사관은 목 언저리를 쓰다듬었다. 

언뜻 보니 빨갛고 선명하게 나 있는 손자국이 을씨년스러웠다. 

나도 그와 같은 손자국을 갖게 된 것인가. 다시 한 번 바닥에서 

쓰러져 있는 김상병을 보며 사관에게 물었다.



 



“김상병은.. 김상병은 어떻게 합니까?”







“..몰라. 일단은 살고 봐야하지 않겠어? 움직여.”



 



지금으로서는 사관의 말이 최선이었다. 

한 발. 한 발 천천히 내딛으며 문 앞에 도착할 때. 

사관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사관님.”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는건가. 사관은 고개를 숙인 상태로 

어깨를 들썩거리고 있었다. 흐느끼고 있는건지 작은 울음소리를 

내고 있는 사관의 모습은 짧은 기간 동안 봐오던 사관이 아니었다. 





아무리 어른이라도. 많은 경험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도 사람이었다. 

사관은 두려움과 공포에 맞서 떨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사관님..”



 



하지만 일단은 나가야만 했다. 천천히 사관의 손을 잡고 

문고리를 돌릴 때. 문득 느껴지는 이질적인 힘에 

난 고개를 돌려야했다.



 



“키.. 키히히히.”



 



주루룩. 온 몸에 있는 땀구멍에서 땀들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좌르륵. 온 몸에 죽어가던 세포가 

순식간에 깨어나는 것 같았다.



 



“....”



 



무서웠다. 두려웠다. 미친 듯이 도망치고 싶었다. 

고개를 돌리기 싫었다. 하지만 그 끌어당기는 힘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해서 난 힘 없이 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아.. 아..”



 



나와는 머리 하나 차이가 나는 사관의 신장. 

그 끝에는 백색의 안광을 갖고 있는 귀신이 

커다랗게 웃고 있었다.



 



“후회할거라고 했잖아..”





“....”



 



어떤 말도 뱉을 수 없었다.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 

너무 놀라면 판단과 몸이 정지된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사관마저.. 사관마저 그렇게 홀린건가? 

이 귀신은 아무에게나 붙어 다닐 수 있는건가?



 



저벅. 사관이 한 발자국 다가왔다. 

그에 따라 입꼬리도 더욱 길게 찢어지기 시작했다. 





찌익. 찍. 살이 찢어지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은 

생각보다 곤욕이었다. 다시 한 발자국을 내딛을 때 사관의 

양쪽 입꼬리에는 대량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킥.. 킥킥킥! 키히히히! 키히히!”



 



커다랗게 입을 벌리며 사관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고개를 완전히 젖히고 온 몸을 양옆으로 사정없이 뒤흔드는 

그 모습은 내 인생에 지울 수 없는 괴기스러운 모습이었다.



 



“사.. 살려주세요.”



 



**처럼. 난 그렇게 말했다. 이건 본능이었다. 

살고자 하는 최소한의 본능이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내 말을 듣지 못했는지 사관은 연신 피를 흘리며 

발작적으로 웃고 있었다.



 



“키히히! 키히히힉!”



“사, 살려.. 제발.. 살려주세..”



 



내 말을 듣기라도 한건지 사관은 석상처럼 몸을 멈춘 뒤 

고개를 90도로 돌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왜 내 말을 듣지 않았어. 

후회할거라고.. 후회한다고 했잖아.”





“제발.. 제..”







“그때 넌 도망갔어야 했어. 

적어도 넌 봐줄 의향이 있었단 말이야.”



 



따닥. 딱. 다시 90도로 꺾인 사관의 목은 

완벽하게 돌아가 있었다. 뚝. 뚜욱. 굵은 타액과 붉은 혈액을 

번갈아 흘리는 사관은 실소를 지었다.



 



“인간이란 참..”





“....”





“간사하단 말이지.”



 



그렇게 말한 사관의 몸이 점차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에게는 죽음의 카운트다운이었다. 

점차 거리가 좁혀지는 나와 사관의 사이를 두고 

난 발작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 으아악!”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죽어라 

소리를 지르는 것 뿐이었다. **같이 그거 하나 뿐이었다. 





킬킬대는 사관의 웃음 소리를 들으며 

정신 없이 소리를 지르고 있을 때, 

바로 뒤에서 느껴지는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콰앙- 쾅-



 



진동은 점차 세졌다. 그리고 난 그것이 내 생명을 

구할 유일한 탈출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하앗!”



 



어떻게 그런 판단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난 사관의 몸을 최대한 강하게 차낸 뒤 문쪽으로 달라붙었다. 

그리고 있는 힘껏 문고리를 돌리니 미세하게나마 밝은 빛이 

온 몸으로 쏟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너.. 너! 너어!”



 



틀림없이 날 구해줄 빛이리라. 

난 마지막 남은 사력을 이용해 문을 강하게 열었고, 

곧 눈부신 빛이 내 전신을 감싸기 시작했다.



 



“!!”



 



눈부신 빛이 순식간에 사라지고나니, 

좀 전에 김상병과 사관을 찾기 위해 들어갔던 

그 생활관 앞이었다.



 



“....”



 



굳게 닫혀 있는 생활관 문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아났다. 얼른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탈영하는 신분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이 부대에서 떠나고만 싶었다.



 



“거기 훈련병.”



 



작은 소리에 미세하게 반응하는 

내 몸을 가까스로 달래며 소리가 난 곳을 보니 

한 조교가 나를 보며 서있었다. 조교는 심히 거슬린다는 

얼굴로 내게 다가오며 손짓했다.



 



“네가 왜 거깄냐? 어? 여기 올라오면 안된다는거 몰라?”



“....”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있었나. 악마 같이 보이던 조교가 내 눈앞에서 

보인다는 것이 이렇게 좋을 수가 있었나.



 



“근데 이 새끼가. 관등성명 안대냐? 

얼차려라도 받고 정신 차릴래? 어?”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관등성명 대라고 **. 관등성명!”





“98번 훈련병 오! 인! 한!”



 



**처럼. 관등성명을 대는 순간에 난 

어린아이처럼 울어버렸다. 바보처럼 울음을 터트리는 

나를 보며 조교는 약간 당황했는지 혀를 차며 말했다.



 



“미쳤냐? 빨리 안내려가? 

지금 제식 훈련 중인데 여기서 땡땡이를 까?”





“죄송합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행복했다. 

허겁지겁 눈물을 훔치며 중앙계단으로 내려가니 익숙한..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사람의 뒷모습이 거대하게 확대되었다.



 



“!!”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 거대하고 우람한 체구를 가진 

사관이 어째서 저 자리에 있는 것일까. 



다시 나를 공격해오려는 것은 아닐까. 

사관 역시 귀신에 홀리지 않았었나?



 



“....”



 



머릿속에서 세포들이 맹렬하게 움직이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내 시선을 느낀건지 사관이 뒤를 돌아봤다.



 



“읍..”



 



천천히 뒤를 돌아보는 그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난 조금씩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몸이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다.



 



“왜 그래?”



 



완벽히 모습을 보인 사관은 평소와 같은 모습이었다. 

다행이라고 해야하는건지 불안하다고 해야하는건지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었지만 아직 사관이 내게 해를 

가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들지 않았다.



 



“....”



 



이런 내 낌새를 알아차렸는지 사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천천히 내게 다가왔고, 난 자동적으로 

뒷걸음질 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뒤로 한계단 한계단을 

올라가고 있을 때 사관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어서 전출가야지. 밖에 레토나 대기시켜놨다. 

김상병 그 놈 말은 다 뻥이었어.”





“..사관님.”



 



내 말에 사관은 걸음을 멈추고는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사관에게 사실대로 말한다면 내 말을 믿어줄까. 

그건 아니라고 오해한거라고 말할 확률이 높다.



 



“....”



 



가만히 생각하자. 단순히 귀신에 홀린 거라면 

위층에서 본 사관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사관과는 다를 것이다. 



어떻게 하면 사관이 정상인지 확인할 수 있을까. 

그 귀신은 어디든지 이동이 가능하고 원하는 사람에게 

붙어있는 것이 가능하다면.. 

이 부대 내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뭐해? 빨리 가야 한다니까. 너 지금 위험하다고 

임마. 대대장님도 최종결정을 내렸어. 

현 시간부로 이 부대는 폐쇄할거라고. 

위에서 반대한다고 해도 책임지고 부대에 남아 있는 

인원들을 모두 빼낼거라고.”





“..사실입니까?”





“그렇다니까.”



 



사관은 더 이상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대신 그는 뒤쪽에 주차되어 있는 레토나를 가리켰다.



 



“....”



 



하지만 아직 의심을 지울 수는 없었다. 

주먹을 강하게 쥐고 사관을 가만히 보고 있을 때 

수 많은 발소리가 오른쪽 복도 쪽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곧 많은 훈련병들이 더블백을 맨 상태로 계단 쪽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사실이었다. 훈련병들 모두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계단을 향해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그 중에는 

익히 알고 있는 생활관 동기들도 섞여 있었다.



 



“아, 알겠습니다.”



 



길게 망설이지 않았다. 서둘러 계단을 

내려와 사관 앞에 서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몸 조심하십시오.”



 



내 말에 사관은 말 없이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훈련병들 사이에 껴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뭔가가 이상했다. 

뭔가가 불길했다. 이렇게 수 많은 인원들이 이동을 하는데 

교통 수단이라고 달랑 레토나 한 대라는 것이 의아했다.



 



“뭐지..”



 



훈련병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이동하고 있을 때.



 



딱. 따악. 딱. 딱. 딱. 딱. 딱. 딱.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수십번도 넘게 들려오는 소리. 어서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빨리 이곳에서 나가고 싶었다.



 



“?”



 



하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어느새 일제히 멈춘 

훈련병들의 시선이 내게 모아졌기 때문이었다. 







딱. 딱. 딱. 딱. 따악.



 



훈련병들의 입가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키히히히히.



 



듣기 싫은 웃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여기저기를 둘러봐도 같은 얼굴의 훈련병들이 

나를 보며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소리는 커지고 커져 

이내 내 머리와 몸을 뒤흔들었다. 힘이 점차 빠진다. 

제대로 서 있을수가 없다.



 



“아.. 아.”



 



다리에 힘이 풀리고 몸이 뉘어진다. 





키히힉힉힉힉. 





끔찍한 웃음소리를 내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훈련병들. 

이렇게 죽는건가. 이런 식으로 나도 미쳐가는건가. 







"...."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



 



“....”



 



자연스레 눈이 떠졌다. 몸을 일으키고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있는 곳이 병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민간병원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누워있는 환자들과 

가끔 돌아다니는 간부들을 보아하니 군병원이 분명해보였다.



 



지잉- 귀가 아파왔다. 뾰족한 무언가가 달팽이관을 

이리저리 헤집어 놓는 것 같은 더러운 기분이다.



 



“크..”



 



꽤 고통스럽다. 양손을 대고 귀 언저리 부근을 

이리저리 문질러댔다. 그게 그나마 효과가 있었는지 

약간은 고통이 가시기 시작했다.



 



“후..”



 



다시 누워서 가만히 천장을 바라본다. 

분명 무슨 일이 있었던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 

내가 이 자리에 있을 리가 없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건가? 

어떤 충격을 받은 건가?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났냐?”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사관이 씁쓸히 웃고 있었다. 그는 목 주위에 군용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그러자 잊을 수 없는 잊기 힘든 웃음소리와 

얼굴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부르르. 

온 몸이 저절로 떨려왔다.



 



“커, 컥!”



 



숨을 쉬기 힘들었다. 뇌를 뒤흔드는 격한 공포에 

내 몸은 이리저리 떨리기 시작했다. 발작이었다. 

내가 발작을 일으킨다는 것도 그렇지만 발작이 

일어나는 동안에 주변 환경이 뚜렷하게 보이고 

인식된다는 것이 놀라웠다. 분명 난 **처럼 몸을 떨고 있는데.. 

어째서 다른 감각들은 멀쩡한걸까. 



 



“야! 오인한! 야 임마!”



 



사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꽤나 당황한 듯 했다. 

어깨 부근에 든든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따스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점차 공포도 사그러들었다.



 



“하..아.. 하아..”



 



몸이 점차 안정되기 시작했다.



 



“사관님..”



 



왜 상수가 그렇게 질색하면서 도망갔는지. 

왜 혁이가 나를 보며 도망가라고 했는지. 왜 김상병이 

그렇게 ** 같은 얼굴로 질질 짰는지.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나 역시 그들과 같은 전철을 밟고 있었다.



 



“사관님.. 무서워요. 무섭습니다. 크흑.. 큭!”



 



어린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내 생에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리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난 많이 길게 울었다. 그 옆에서 사관은 묵묵히 나를 다듬어주었고 

어느 정도 내가 진정이 되었을 때 말했다.



 



“일단.. 네게 말할 것이 있다.”



“....”



 



사관은 꽤나 망설이는 듯 했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내 시선을 제대로 못 보는 것이 

뭔가 숨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난 캐물을 수 없었다. 

이 이상 어떤 충격도 받고 싶지 않았다. 

당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



 



사관은 무겁게 숨을 내쉰 뒤, 내게 물었다.



 



“들을거냐?”



“....”



 



궁금해졌다. 내 자신의 상태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주제에 사관의 다음 말이 기다려졌다. 

설령 그것이 내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 줄지 몰랐지만..



 



“예.”



“김상병.. 그 놈 죽었어.”



“....”



 



그건 별로 슬프지 않은 일이었다. 

애초에 김상병과는 별로 왕래도 없었고 그와의 유대는 

그리 깊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의외긴 했다. 

그래도 가장 상태가 나아보였는데..



 



“또.”



“....”



 



또 있단건가?



 



“그.. 박혁 훈련병도 죽었다.”



“..그렇습니까.”



 



예상은 하고 있었다. 마지막 피로 범벅이 되어 있던 

혁이의 모습에서는 살아날 희망조차 보이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나를 보고 도망치라고 말하던.. 

혁이의 걱정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씁쓸했다. 마음이 아팠다.



 



“사관님.”



“그래.”



“..어째서. 어째서.. 우리들인 겁니까? 

왜 우리가 이런 꼴을 당해야 합니까. 왜.. 왜.. 

그 부대는 진작에 없애지 않은 겁니까?”



 



설움이 받쳐 올라왔다. 당장에 사관의 멱살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고 싶었지만 따지고 보면 그의 잘못도 아니었다. 

단순히 그는 이 곳에 전출을 명 받은 것이었고, 

죽어나가는 훈련병들을 본 죄 밖에 없었다.



 



사관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나도 너처럼 그리 생각 안한줄 아냐? 

처음엔 나도 무서웠어. 미치도록 무서웠지. 

훈련병들이 죽어나가는데 내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어. 

그리고 그걸 묵시하는 대대장도. 

그 위에 있는 사단장도 원망스러웠다.”





“....”





“그래서 내 직접 가서 대면했다. 부대를 없애자고. 

더 이상 훈련병들의 죽음이 늘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지. 그들도 군인 이전에 한 가정의 

귀한 아들이고 미래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인재이니까.”



 



사관은 주먹을 쥐며 이어 말했다.



 



“허나 내 부탁은 거절됐다. 

유가족들에겐 적당히 위로금을 줘서 달래자고 

말을 하는 대대장과 사단장의 모습을 보며 난 질려버렸어. 

그들은 훈련병의 목숨보다 부대가 갖고 있는 명예가 

실추되지는 않을까. 걱정했지. 자신의 앞날이 두려웠던거야. 

진급을 못할까봐. 평생 군인에서 썩어온 자신의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부정될까봐. 불명예 전역을 하게 될까봐 두려웠던거지.”







“사관님..”







“그 후. 나 역시 다른 부대로 발령 받게 되었다. 

강제적으로 말야. 하지만 난 거부했지. 거부하면서 말했어. 

내 기필코 훈련병들의 죽음의 원인을 밝혀내겠다고. 

밝혀내서 이 부대를 끝까지 존속시키겠다고 말야. 

하지만 그것도 처음이지.. 그게 반복되고 점차 횟수가 

늘어날수록 난 지쳐만 갔다.”



 



사관은 무겁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할 수 있는건 없었다. 그리고 네게 해줄 것도..”



 



사관에겐 나 역시 해줄 말이 없었다. 원인 모를 현상에 

대비하고 준비하는 것처럼 무모한 일이 어디있을까. 

난 그에게 더 이상 어떤 것도 묻지 않기로 했다. 대신에.



 



“사관님.”



“..어.”



“상수는.. 상수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내 말에 사관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턱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내게 말했다.



 



“걸을 수 있겠냐.”



“..예.”



 



침대에서 내려오니 생각보다 가벼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슬리퍼를 신은 뒤 사관의 뒤를 따라나서니 

복도 끝 쪽에 있는 테라스 쪽으로 걸어가는 사관이 보였다. 

잠시 반대편 복도를 보니 중앙 쪽으로 나있는 조금 큰 홀이 있었고 

그 반대편으로는 이곳과 같은 복도가 있었다.



 



짧게 주위를 본 뒤, 사관의 뒤를 따라나서니 

테라스 쪽에서 담배를 물고 있는 사관이 보였다. 

사관은 말 없이 내게 담배를 내밀었다.



 



치칙. 불을 붙여준 사관은 길게 연기를 내뱉고는 말했다.



 



“그놈은 살아있어.”



“..상수가 말입니까?”



 



따지고 보면 상수가 가장 초기였다. 어째서 다른 사람들보다.. 

혹 일찍 병원에 이동되어서 그런건가?



 



“그래. 근데.. 그 놈.”



“?”



 



후우. 연기를 뱉는건지 한숨을 뱉는건지 

모를 사관이 말했다.



 



“귀를 망가트렸다.”



“..잘 못들었습니다?”





“귀 말야. 자신의 귀를.. 후벼팠어.”





“..예?”



 



사관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꽤 독한 놈이야. 하지만 결과를 봐. 아직도 살아있잖아. 

아무래도 청각을 봉인하는게 답인 것 같다.”





“....”





“그 부러진다는 소리. 그 소리가 들리고 난 뒤, 헛것을 보잖아. 

그게 정확히 실체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소리만 

안들리면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것 같다.”







“..귀마개를 해도 소용 없다는 겁니까?”





 



내 말에 사관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글세.. 내가 직접 겪어보지 않았으니 모르겠다. 

하지만 상수 그놈도 이런저런 방법을 다 써봤을테고,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이 그거였기 때문에 

그 방법을 선택한게 아닐까 싶다.”







“사관님. 그럼 저 역시..”



 





사관의 말대로라면. 상수처럼 살아남으려면 

나 역시 청력을 버려야하는건가? 그럼 상수는? 

지금 상수는 어디있는거지?



 



“상수는 어디있습니까?”



“내일 퇴원한다.”



“....”



 



사관은 담배를 끄며 복도를 가리켰다.



 



“한층 더 올라가봐. 305호다.”



“..감사합니다.”



 



서둘러 담배를 끈 뒤, 중앙 홀쪽으로 걸어갔다. 

홀에는 의자들이 나란히 정렬되어 있었는데 병사들의 

가족들인지 민간인들이 앉아 있었다. 





3층이라고 했지. 바로 위로 향하는 계단을 통해 

3층으로 올라간 뒤 305호로 표시된 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고요한 복도에는 내가 내는 발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



 



이따금씩 문틈으로는 곤히 자고 있는 병사들과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다른 가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짧은 감상이 끝나고 305호로 도착하니 생각보다 

적은 침대 수가 보였다. 양쪽으로 한 대씩 있는 침대.. 

이런 넓은 공간에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운용을 하고 있다니..



 



천천히 안으로 들어가니 왼쪽에 익히 알고 있는.. 

그리고 보고 싶었던 상수가 앉아 있었다. 그 반대편에는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병사가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상수야.”



 



상수는 독서중이었다. 편안한 표정으로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던 그는 내가 지척에 다가옴에도 

느끼지 못했는지 책장을 넘기기만 할 뿐이었다.



 



“..상수야.”



 



아. 상수는 청력을..



 



“형?”



 



상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상수야.”



 



상수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양쪽 귀에는 흰 색의 붕대 같은 것이 감겨져 있었는데 

사관의 말대로 청력을 버린 것 같아 보였다.



 



“....”



 



상수에게 말 없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상수 역시 내 손을 잡고는 ‘앉아.’ 라고 말했다. 

보조 의자를 끌어당겨 상수 옆에 앉으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떤 말을 하기가 어려웠기도 했고 훈련병들의 죽음이나 

내가 겪었던 일들을 말하는 것이 껄끄러웠다.



 



“힘들었지 형.”



 



상수는 그렇게 말했다. 힘 없이 웃고 있는 상수의 

얼굴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새어 나왔다. 

얼른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닦고 있을 때 아래쪽에서 

흰색의 무언가가 내 품으로 들어왔다.



 



“?”



 



그것은 작은 쪽지였다. 꼬깃하게 간신히.. 

아주 빠르게 접혀져 있는 것 같은 쪽지를 보며 왠지 

여기서 읽으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확히 뭔지 알수는 없었지만 상수는 

분명 내게 뭔가를 전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얼른 그것을 상의 주머니에 넣고는 눈물을 닦았다.



 



“..형.”



 



상수는 힘 없이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



 



그 단어와 표정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는 것 같았다. 

상수는 나보다 더 힘들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나 역시 그럴 것이다. 난 어떤 말도 상수에게 할수가 없었다. 



단순히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단어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난 이런 현실을. 이 복잡하고 개같은 일이 왜 내게서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건강해라.”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었다. 

상수와 마지막으로 손을 잡고 병실을 나서니 사관이 

나를 보며 서있었다. 










“얘기는 잘 했고?”



 





사관이 상수를 가만히 보며 말했다.



 



“예.”



 



상수는 나와 사관을 번갈아 보더니 곧 누워버렸다. 

원래 저런 놈이 아니었는데.. 여러 일을 당하면서 많이 

소극적으로 변한 것 같았다. 사관은 곧 내 어깨를 가볍게 

잡고는 걷기 시작했다.



 



“그래.. 상수랑 넌 의가사제대 할거야.”



“..제대 말입니까?”



 



사관은 난처한 듯 웃었다.



 



“너네들이 겪은 일에 대한 보상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겠지만 일단 그런 쪽으로 가게 됐다. 

너도 나가는 즉시 정신과 쪽 다니면서 치료를 받도록 해라.”





“..그럼 사관님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내 물음에 사관은 씁쓸한 얼굴로 답했다.



 



“글세.. 어떻게든 되겠지.”



“....”



 



이런저런 얘기를 한 끝에 병동 일층에 다다른 

우리들은 자판기에서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태웠다. 

필요한 얘기를 제외하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이런 현실을 받아 들이기엔 내게 시간이 필요했다.



 



“잘 지내고. 이번주내로 발령 조치가 날거다. 

아마 그 전에 들릴지도 모르겠다.”







“..감사합니다. 잘 지내십시오.”





“그래.”



 



덤덤히 말하며 걸어나가는 사관의 모습을 보며 

왠지 모를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딱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었지만 왠지 사관도 우리들과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됐다. 



곁에서 죽어나가는 훈련병들과 고통에 시달리며 

미치기 시작하는 훈련병들을 볼 때마다 과연 그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복무를 이어갈 수 있었을까. 

어쩌면 사관 역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 하지는 않을까. 



 



“....”



 



이젠 완전히 사라진 사관의 모습을 뒤로하며 병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상수가 아까 전에 건넸던 쪽지를 조심스레 펴보았다. 

상수 녀석.. 그냥 그 자리에서 말하면 될 것이지. 

왜.. 잔뜩 구겨진 쪽지를 조심스레 펴보니 생각보다 

빼곡이 적혀진 글씨들이 보였다.



 



[형이 이리로 올 줄 알았어. 왜냐면.. 

첫날 내가 그 망할 것을 볼 때, 그놈은 나보다 형을 

더 흥미롭게 보고 있었거든. 그러다가 재수없게 나와 눈이 

마주쳐버렸지 뭐야. 그 때 난 잊을 수가 없었어. 

그 부러지는 소리.. 온 몸을 옥죄는 더러운 공포감. 

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지.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그 소리는 더욱 커졌어. 거세졌지. 그래서 난 결심을 했어. 

소리를 차단하면.. 아예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상태가 되면 

그 망할 놈도 보이지 않을거라고 하지만.. 형. 그건 아니었어.]



 



아니라고? 

그럼 사관이 말한게 진실이 아니란 말인가? 

상수는.. 그럼 지금의 상수는?



 



[그놈은 내게 말했어. 넌 댓가를 치뤘으니 놔주겠다고. 

그래서 그 뒤로 난 평온해질 수 있었던거야. 

소리가 원인은 아니야. 비록 난 평생 **처럼 살아야겠지만.. 

그래도 목숨은 건질 수 있었지. 그리고 형. 그놈은 내게 또 말했어. 

형이 후회할 짓을 했다고.. 그래서 자기는 생각을 바꿨대.]



 



상수는 해방된게 아니었다. 상수가 말하는 ‘그놈.’ 

즉 귀신은 그동안 상수와 소통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가 끝이다. 어째서. 왜 다음이 없는거지? 

아직 공간은 충분한데..



 



끼릭.



 



“!!”



 



뭔가가 갈리는 소리. 그것은 문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워낙 긴장한 탓에 헛바람을 들이키며 고개를 드니 

상수가 나를 보며 서있었다.



 



“사, 상수야.”



“....”



 



상수는 말 없이 서있었다. 감정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하지만 상수가 갖고 있는 날카로운 메스는 강한 무언가를 

발산하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난 알 수 있었다. 





상수에게 귀신이 들렸다고. 이젠 완벽히 상수에 몸에 

귀신이 빙의한거라고.



 



저벅. 저벅. 맨발의 상수가 천천히 내게 걸어왔다. 

이대로 있다가는 꼼짝없이 당할 것 같은 더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한 때는 친하게 지냈었던 훈련 동기였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오늘은 그저 내 목숨을 위협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상수야. 정신차려.”



 



그래도 최대한 평온을 유지해야 했다. 

언제 몸에 발작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정말 낭패다. 난 최대한 침대에서 조심스레 

내려와 상수와 적당한 거리를 벌렸다.



 



“?”



 



그런 우리들의 이상한 기류를 읽은 건지 병실에 있던 

3~4명의 환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저씨. 위험하게 그거 왜 들고 있어요.”



 



그 중 상수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던 환자가 

조심스럽게 상수에게 접근했다.



 



“아, 가지마세요! 가지마!”



 



내 말에 환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게 웃으며 말했다.



 



“이 아저씨. 나 못 찔러요. 겁 많은 아저씨..?”



 



그는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복부에 깊게 박혀진 

메스를 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서서히 젓기 

시작하더니 힘 없이 바닥에 쓰러져버렸다. 

상수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바닥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는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아, 아저씨..”



 



애처롭게 손을 뻗으며 말하는 환자를 상수는 

더 이상 살려두지 않았다. 날카로운 메스를 허공에 

날리기라도 하듯 절도있고 깔끔한 동작으로 하나의 생명을 

꺼버린 상수는 나와 다른 환자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히.. 히익!”



 



공포에 지린 환자들과 난 한곳에 몰리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는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상수에게 대응할 

무언가를 찾기 시작하는 환자들도 있었지만 애초에 

그럴 만한 물건이 병실에 있을리 만무했다.



 



“야, 상수야. 김상수! 정신차리라고 **!”



 



외침이 들릴리 없겠지만 상수는 잠시 

멈칫 하더니 피식 웃었다.



 



“나 안미쳤어.”



“..어? 어?”



“안미쳤다고.”



 



그것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어떻게 맨정신으로 

저런 일을 벌일 수 있으며 왜 내게 이런 일을 하려는 거지? 





어째서..



 



“단지 난 시키는대로 할 뿐이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위험하거든.”



 



그 말을 끝으로 상수는 내게 곧바로 달려왔다. 

두두두두. 병실 바닥을 격하게 치고 오는 상수의 몸이 

유독 거대해보였다. 슬로우 모션처럼 느껴지기 시작하는 

상수의 공격을 대략적인 감각으로 몸을 옆으로 피했지만 

불에 대기라도 한 듯한 저릿한 통증에 난 이를 악물 수 밖에 없었다.





 



“이.. 이 ****가.”



 



옆구리를 베였다. 붉은 색의 피가 

금세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으, 으아아!”



 



나와 상수의 대치 상태를 가만히 지켜보던 

환자들이 맹렬히 뛰쳐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목적은 나였었나. 제길.. 어떤 생각도 할 수 없다. 

어떤 판단도 내리질 못하겠다. 



상수가 어째서..



 



“야. 상수야. 일단 내 말 들어. 내 말 좀 들어봐.”



 



상수의 귀가 멀었다는 것도 잊은채 난 상수에게 말했다. 

하지만 상수는 멈출 생각이 없어보였다.



 



“죽어어어!”



 



맹수처럼 포효하는 듯한 상수의 모습은 처음부터 

내가 알고 있던 상수가 아니었다. 아무리 자기 입으로 

미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뭔가가 잘못 되었다. 

분명 상수 내부에서 뭔가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으.. 큭!”



 



하지만 그 전에 내가 살고 봐야했다. 

품으로 파고들려는 상수를 간신히 피해낸 뒤 침대 

쪽으로 허겁지겁 넘어가며 최대한 거리를 벌리는데 

성공했지만 이어지는 상수의 공격에 

난 쉴틈 없이 도망다녀야 했다.



 



“으아아아!”



 



간신히 병실을 나오는데 성공한 난 

무작정 중앙 홀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귀신에게서는 

느낄 수 없었던 전혀 다른 공포에 내 몸은 격하게 떨고 있었다.



 



딱. 따닥. 죽음의 소리다. 이 소리가 들리다는 것은..



 



“킥.. 킥킥.”



 



홀쪽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나를 보고 있었다. 

전부 같은 귀신의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곧 내 퇴로를 차단시켜버렸고 내 몸을 구속하기 시작했다.



 



“놔! 놓으라고 신발! 으아아아!”



 



발작적으로 그렇게 외쳤던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당해낼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타타탁. 



곧이어 들려오는 발소리. 그것이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그리고 상수의 거대한 인영이 보였고 곧 바로 

내 품으로 파고 들었다.



 



푸욱! 낯설고 묘한 감촉이 

바로 복부 쪽에서 느껴졌다.



 



“크헉!”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따뜻하고 

묘한 감촉에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프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혀, 형..”



 



상수가 인상을 찡그리며 날 보고 있었다. 

나를 보며 힘 없이 웃고 있었다.



 



“상수야.. 상수야!”



 



마지막.. 상수는 끝내 나를 찌르지 못했다. 

상수는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 힘겹게 

한 글자씩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 사관.. 사관을 없애야.. 없애야 해. 형.. 

그 사관이.. 모든 일의.. 원흉.. 원흉이야. 그러니.. 까..”







“..상수야! 상수야!”



 



푹! 푸우욱! 거세고 듣기 싫은 소리가 

그렇게 몇 차례 반복되었다. 상수는 곧 격하게 몸을 

꿈틀거리더니 움직이지 못했고 난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



 



홀에 수 많은 사람들은 넋이 나간 얼굴로 나와 

상수는 번갈아 보고 있었다. 그리곤 바닥을 가득 메우기 

시작하는 대량의 피를 보고는 저마다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꺄아악!”



“으아악!”



 



그 하이톤의 비명소리에 몸이 조금이나마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다. 간신히 상수를 옆으로 

뉘고서는 배를 바라보았다.



 



“....”



 



배에는 상수의 짓이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수 많은 구멍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뚫려 있었다. 

헉.. 허억. 미약하게나마 숨을 쉬는 상수가 

초점을 잃은 눈으로 나를 보았다.



 



“이.. 새끼.. 야..”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와 상수는 울고 있었다. 

상수는 마지막 남은 힘으로 간신히 손을 들러 

내가 있던 병실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처음 나를 잡았던, 

한 번의 안면이 없었던 훈련병이 서있었다. 직감적으로 

그것이 귀신이란 것을 알게된 난 상수에게서 

메스를 건네 받고 뛰기 시작했다.



 



‘이.. 빌어먹을 새끼. 넌 기필코 내가.. 기필코!’



 



마음 속으로 다짐을 하면서 병실로 뛰어가니 

피범벅이 된 바닥 가운데에서 예의 훈련병이 

나를 보며 서있었다.



 



“이 개같은 새끼야.”



 



내 말에 훈련병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그리곤 내 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헛짓거리 하지마라 이 신발..”



 



한발자국을 내딛으며 훈련병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병실에 있던 배경이 순간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휘이이익.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한 그 배경은 

순식간에 바뀌어져 있었고, 

거기에는 아주 익숙한 작은 생활관이 눈에 들어왔다.



 



딱. 딱.



 



“!?”



 



부러지는 소리. 아니다. 이번엔 뭔가 다르다. 

이건.. 한 번쯤 들었던 소린데.. 이건.. 딱.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조교가 손가락을 교차시키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빈약해 보이는 

훈련병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아, 신발.. 그러니까 네가 아침에 나온 그 빵을 빼돌렸다고?”





“죄, 죄송합니다.”





“아, 조카 야마돌게 하네. 진짜 미쳤냐 니?”





“너무 배가 고파서 그랬습니다. 죄송합..”



 



훈련병은 말을 잇지 못했다. 거세고 강한 충격에 

반쯤 멍한 얼굴로 조교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따라 조교를 보니 내가 알고 있는.. 

아주 잘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넌 이제부터 신발 아무것도 못 먹을 줄 알어라. 

새끼야. 너 때문에 내가.. 아휴 신발. 말을 말자.”



 



그것은 사관이었다. 소싯적 사관이 조교였었다니.. 

나를 보며 웃으며 말하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하던 사관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어휴.."







사관은 답답하다는 듯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훈련병은 어쩔 줄 몰라하며 다시 고개를 숙이며 

힘겹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울상을 짓고 있는 훈련병을 보며 사관은 

가만히 연기를 내뿜었다. 그리곤 뭔가 생각났다는 듯 

훈련병에게 가까이 다가간 뒤 작게 속삭였다.



 



“그럼.. 내기하자.”



“..잘 못들었습니다?”



 



훈련병의 말에 사관은 심기가 불편했는지 

다시 손을 휘둘렀다. 짜악. 살과 살이 격하게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훈련병의 고개가 크게 돌아갔다. 

사관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들었잖아. 신발놈아. 진짜 시치미 뗄래?”



“..죄송합니다.”



 



사관은 아직 불이 살아 있는 담배를 내밀며 말했다.



 



“이 담배를 니 몸에 지질거야. 

근데 니가 소리 하나 안내고 참으면 봐줄게. 어때.”





“....”





“할래 말래.”



 



어물거리며 대답을 하지 못하는 훈련병을 보며 

사관의 손이 다시 올라갔다. 그것이 훈련병에게는 

__점이 되었는지 곧 하겠다고 말해버렸다. 





사관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한다?’ 라고 말한 뒤 

거침없이 훈련병의 팔뚝에 담배 불을 지지기 시작했다.



 



“!!”



 



그 엄청난 온도와 격통에 훈련병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고 사관은 인상을 구기며 욕설을 뱉었다.



 



“신발.. 누가 움직이라고 했냐. 아 조카 잡치게 하네. 

그게 참는거냐? 도망가는거지. 진짜 뒤지고 싶냐?”



 



그 후 이어지는 구타에 훈련병은 말 없이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렇게 얼마 가지 않아 훈련병의 얼굴에 이상이 생긴 것을 

확인한 사관은 눈썹을 긁적이며 생활관에서 나가버렸다. 

홀로 남은 훈련병은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



 



곧 훈련병은 자리에서 일어나 생활관 한쪽에 있는 

벨트를 꺼내 매듭을 매기 시작했다. 

곧 목구멍이 들어갈만한 매듭을 진 훈련병은 생활관 

문고리를 돌리며 말했다.



 



“저 새끼가 죽지 않는 이상 난 멈추지 않을거다.”



 



그것은 내게 말하는 소리였다. 모든 일의 원흉은 사관이었다. 

조교 시절에 그는 내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악마였다. 

지금의 그 모습은 세월이 지나면서 많이 온순해진 것 같았지만.. 

가만! 그럼 사관은 지금 이 사태가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건가? 

왜 귀신은 사관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일까.



 



“무당의 아들이야.”



 



바로 앞. 귀신이 내 시야를 가득 메웠다.



 



“컥!”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나며 귀신을 보자 

귀신은 낮게 이를 갈았다.



 



“그 빌어먹을 부적인지 뭔지.. 내 힘이 닿지 않도록 되어 있어. 

그러니 네가 해라. 그렇지 않으면..”



 



샤악. 다시 지척까지 다가온 귀신이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네 가족들 모두 없앨 것이야.”



 



그리곤 다시 배경이 바뀌었다.



 



“....”



 



상수도 이런 기분이었나. 이렇게 귀신에게 협박을 당해서.. 

그래서 나한테 그런 일을 한거였나.. 어느새 작은 웅덩이를 

이루고 있는 핏물들을 바라보며 병실에서 나오니 

수 많은 병사와 간부들이 홀 쪽에 모여 있었다.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내가 죽어 없어지지 않는 이상 

나를 비롯하여 내 가족들 모두가 죽게 될 것이다. 

귀신은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고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왜.. 어째서 이런 엿같은 일에 내가 말려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관을 죽여야 한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였다.



네이트펌 대박이님 글


자연보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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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소 썰 (by 노개념_이을용) 훈련병 (by 6시내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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