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思考) 실험

엘리 블룸의 내면에 당도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엘리가 죽음을 맞기까진 얼마 되지 않는 순간이지만, 그래도 너무 불편해지시진 마십시오.
그녀는 92세로 오랜 행복한 생을 보냈으니까요.
물론, 그녀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뭐라는 거야?"라고 하셨나요?

네 그렇습니다.
엘리는 사고 실험이죠.
우리는 지금 어떤 한 가지 생각을 그려내기 위해 그녀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녀는 나이들 필요도, 여성이거나 엘리로 불릴 필요도 없죠.
그녀는 여러분의 조카일 수도, 이웃 혹은 그저 친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저 지금 실험에서 필요한 것은 누군가 당신이 알고 있을 터인 그런 존재입니다.
그러니 엘리라고 하도록 합시다.
우린 그녀를 당신의 92세 손녀라 부르게 될 겁니다.

"손녀?"라고 하셨나요?

그저 즐겨주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실험을 존중해주셨으면 합니다.
어찌 됐건 우린 저물어가고 있는 당신 손녀의 내면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시작하는군요.
보이시나요, 우리를 향해 달려드는 어둠의 장벽이?
바로 죽음입니다.
엘리의 뇌는 멎어들고 빛은 사그라듭니다.
그녀였던 모든 것, 그녀가 알았던 모든 것, 체세포 하나하나 그리고 기억 하나하나씩, 어둠으로 잠겨 듭니다.

그렇지만 걱정 마세요, 이것이 엘리의 종말은 아닙니다.
누군가가 그들의 기억 속에서 당신을 간직하는 동안, 당신은 계속해서 살아가게 된다는 말, 그 말 그대로입니다.
엘리는 그녀를 추억할 사랑스러운 손자들이 있답니다.

그럼 우린 왜 여기에 있는 걸까요?

사실, 이제부터가 여러분의 차례입니다.

눈치채셨나요?
엘리는 당신을 실제로 알고 있던 마지막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을 살아 숨 쉬던 인간으로서 간직하던 마지막 사람.
지금부턴 당신이란 것을 생각하더라도, 당신은 그저 남일 수밖엔 없겠죠.
이 순간 당신은 생동하던 기억에서 역사로 흘러갑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진정으로 죽는 순간입니다.

이런, 빛이 떠나가네요.

안녕, 엘리.
안녕,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