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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고양이즙

title: 연예인1오바쟁이2015.04.28 12:43조회 수 988추천 수 1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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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필이, 앞에 잘 보게 "

선장의 목소리가 스피커로 울려나오고, 성필은 뱃머리에 서서 앞을 살폈다.
조개 조업을 하러 출항하는 형망 배의 엔진 소리가 드르렁거리며 출항 신고하듯 잠든 동네를 깨웠다.
누군가의 밑에서 일하는 지금과는 달리, 성필에게도 좋았던 시절은 있었다.

과거 성필은 자기 명의로 된 배만 3척으로, 선장 셋을 부리며 본인은 사업장 관리에만 신경 쓰던 선주였으나
풀린 형편에 덜컥 결혼을 서두르고 난 뒤 아이가 태어나자 가세가 급속히 기울어버렸다.
딸아이는 병雌뗏� 진단할 수 없는 허약병에 걸려 태어났다.
갈수록 뼈마디가 마르고, 기력이 쇠약해져 10살 이후론 학교도 보낼 수 없었다.
양방과 한방을 오가며, 때론 미신에 희망을 걸어 기도도 하고 불공도 드려봤지만 헛걸음이었다.
열여섯살 난 딸은 오늘도 집에 혼자 누워있었다.
혼자.. 그래, 진작에 마누라는 집을 떠나버렸다.
딸아이 하나 일으키는게 그렇게 어려울 줄 알았겠는가.
배 3척을 팔고, 집을 팔고, 땅도 팔고.. 가진 걸 몽땅 길바닥에 뿌려도 답이 없을 줄 알았겠는가.
마누라마저 잃어버리고, 명절에 찾아오는 친척없이, 휴일에 찾아주는 친구없는 비루한 삶.
그게 지금인 걸.

헌데 성필이 형망 배에 오르고자 추운 손을 호호 불며 선착장으로 향하던 아침의 일이었다.
오늘따라 더 수척해보였던 딸 걱정을 하며 선착장 옆 수산업 조합 경매장을 지나가고 있는데 불쑥 고양이 한 마리가
경매장 담벽에서 뛰어내렸던 것이다. 성필은 갑작스런 고양이의 출현에 놀라 '에라이 이 놈!' 하며 고양이를 쫓았지만,
문득 고양이가 뛰어내린 담벽을 올려다보니 생각보다 높은 위치였다.

'야.. 저 높이에서 살 수가 있나?'

순간 어디선가 들었던 '고양이의 목숨은 아홉개'라는 이야기가 머리를 스치자 성필은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저 꿈틀거리는 생명력.. 뭔가 있다고.


형망 작업은 새벽부터 시작해서 오후 점심 먹고 마무리 작업을 하고나니 평소보다 조금 늦게 입항했다.
선장은 고생했다며 조개를 한가득 봉지에 담아주었다.

" 이거, 가져가서 찬이나 하게. 잘 챙겨먹고 다니게. 딸도 잘 먹이고.. "

" 고맙습니다, 형님. 그나저나 저 위판장 경매하는데 있잖아요, 거 고양이가 저 담에서 뛰어내려도 살데요,
그거 희한하더라고요. 참.. 영물이다 그죠. "

" 허허. 그래 우리 마을 사람들 함부로 고양이 안 쫓는 이유도 있는거야. 저 꼭 눈빛이 사람 눈빛같이 해가지고.
밤에 보면 깜짝깜짝 놀래. 목숨도 보통 질긴게 아니고.. 누구는 고양이 소주인가 나비탕인가 해가지고 먹더마는.. "

성필은 선장의 기어드는 마지막 혼잣말에 마음이 혹했다.

'고양이.. 그래, 목숨이 아홉개인 영물을 엑기스내어 마신다라.. 이건 한 번 믿어보자.
마지막으로 딱 한번만 해보자. 신발, 까짓거.. 뱃놈이 배도 팔고 집도 파는데 고양이 하나 못 달여마실까. '


- 야아옹 야옹

" 고양아~.. "

ㅡ 야옹

하루 종일 누워지내는 미소에게 유일한 말벗은 매일 비슷한 시간에 창문 옆을 지나가는 고양이들 뿐이었다.
고양아, 하고 부르면 미소를 얼마간 쳐다보다가 가는데, 하루 종일 라디오를 들으며 시간을 죽이는 미소에게
살아있는 것과 교류하는 순간은 아버지와 있는 걸 제외하곤 그순간이 유일했기에 미소는 고양이를 친구처럼 생각했다.

" 휴. "

' 나 일어날 수 있을까, 아니야. 약한 생각하지말자. 아빠 고생하시는데 기운내서 일어나야지.
엄마도 찾아가야지. 고양이 밥도 주고, 달리기도 하고.. '

고양이가 멀찍이서 야옹하고 한 번 더 우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따라 구슬피도 우는 것 같았다.


" 요 새끼 "

벽에 몰려 온 몸의 털을 곤두세우며 울부짖는 고양이의 정수리을 삽이 내려쳤다.
고양이 비명 소리가 이어지기 무섭게 두번째 삽이 목을 찍었다.
파르르, 약하게 다리를 떨고선 다신 움직이지 않았다.
이것만으로도 고양이 목숨이 아홉개니 하는 건 그냥 속담이라는 게 분명하지만 한 번 맹신에 빠진 사람의
눈에 그런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잡아서 끓인다'는 단순한 목적에만 정신이 팔려있었다.

" 흐흐. "

제법 묵직한 쌀포대 하나를 여니 통통한 노란 털 고양이 하나가 먼저 들어가있었다.
그 위에 방금 잡은 고양이 하나가 얹혀졌다.

" 됐다. "

성필은 쌀포대 입구를 꽉 묶어서 짊어졌다.
황금 한 덩이를 들고 돌아오는 개선용사처럼, 성필은 성큼성큼 집을 향해 걸었다.

- 부글부글,
... 해가 저물었다. 집집마다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하고 있을 시간에 성필은 무언가를 푹 끓이고 있었다.
커다란 솥에 들어가있는 고양이 두 마리.

" .... "

조심스레 성필이 뚜껑을 걷자, 고깃국물에 노란 거품이 둥둥 떠있었다.
성필은 거품을 연신 걷어내며, 뽀얗게 나오는 국물에 흡족해했다.

" 이거야. "

혼잣말을 하며 성필은 거품을 계속 건져내었다.
부엌에 괴상한 고기 삶는 냄새가 감돌았다.


" 점심 왜 좀 남겼어. 다 먹어야지. "

성필이 미닫이 문을 열어젖힌 뒤 저녁 밥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 대신에 반찬 많이 먹었어. "

" 챙겨먹어, 아빠 배 나간다고 일일이 못 챙겨줘. 야, 이거 먼저 마셔라. 밥보다 이게 보약이야. "

" 뭐야. 엄청 냄새나.. "

" 몸에 좋은 게 뭐래냐, 약일수록 쓰다.. 그러잖아. 마셔. "

" 윽, 안 먹을래. "

" 너 안 일어날거야? 평생 누워있을래? 나 죽을 때까지 너 못 일어나면? "

" 일어날거야, 왜 안 일어나. 왜 또 그 얘기가 나와. 그냥 이거 먹기 싫다구. "

" 이거 마셔야 낫는 단 말이야. 좋은 거 끓인거야. 나쁜 걸 너 왜 줘. "

" 아빠 마음은 아는데. 솔직히 냄새 너무하잖아. "

" 약이라서 그렇다니깐. "

성필의 계속된 권유에 미소는 더 이상 마다할 수가 없었다.
자신 때문에 모든 걸 잃어버렸는데도 남의 배에서 품을 팔며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아빠인데,
그 고생에 비하면 이런 냄새 나는 국물 하나 못 마시겠어..
몸에 좋다니까 마셔보자. 아빠를 위해서라면.
미소는 결심하곤 국물을 조금씩 들이켰다.
못 일어나더라도 어때.. 저 아빠의 좋아하는 표정, 그거면 충분하지..

" 우읍. "

맛이 다른 고기 국물보다 엄청나게 역했다.
두꺼운 기름층에 털 몇 가닥이 떠있는 국물은 맛도 없고 몹시 누린내가 났다.

" 우윽. "

미소는 토가 올라왔지만 이불을 더럽힐까싶어 억지로 참았다.

" 약발이 드나보다. 미소야. 조금만 참고 마셔보자. 아빠 노력하고 있어. "

" 응.. "

성필이 반찬뚜껑을 열고 벽에 기댄 미소 허리에 베개를 다시 받쳐주었다.

" 저녁 먹자. "
" 응. "

성필과 미소, 부녀의 조촐한 저녁식사가 그 날 하루도 지나가고 있단 걸 말해줬다.
지난 세월, 그처럼 소리없이 치열한 전쟁이었다.


야옹

" 고양아, 고양아. "

고양이는 왠일인지 미소를 쳐다보지 않고, 나타날 때부터 사라질 때까지 온통 주위를 경계해댔다.
요즘 따라 고양이들이 보이질 않았다. 미소는 친구가 사라진 것 같아 조금 시무룩해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훗, 하고 웃음도 나왔다. 순간 미소의 기분이 나아졌다.
아빠가 달여온 '약'을 지속적으로 마시니 희한하게도 살이 붙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간 뭘 얼마나 먹어도 힘이 딸리고, 다리는 젓가락처럼 앙상했었는데 이제 아니었다.
불과 얼마간 약을 마셨을 뿐인데 종아리부터 손목까지 살이 붙고 있었다.
벽에 기대서 늘 라디오를 듣고, 밥을 먹던 미소가 언제부턴가 벽에 기대지 않고도 허리를 꼿꼿이
가눌 수 있게 된 것도 놀라운 변화였다.

" 히히.. "
희망이란 게 있구나, 미소는 주전자에 담긴 '약'을 국사발에 한 가득 따랐다.
시간이 지나면 '약'은 젤리처럼 끈끈해졌는데, 그 고약한 맛과 향은 아무 문제가 아니었다.
그 맛은 희망의 맛이었기 때문에.

" 우읍, 우읍, "

미소가 얼굴을 오만상 찌푸리며 한 사발을 헤치우고 입가를 슥 닦았다.
얼른 나아서 고양이들과 놀고싶어.
미소는 일어서겠단 의지를 다시 다졌다.


마을에 고양이가 드물어졌다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횟집과 수협 경매장, 음식물 쓰레기 수거장, 생선 말리는 가정집처럼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이 어촌 마을에
고양이가 없다니, 마을 주민들의 호불호가 갈렸다. 생선 좋아하는 동물이 없으니 생선 떨어지게 생긴 징조라고
우려하는 사람과, 도둑고양이 없으면 차에 받혀 흉물스럽게 죽는 일도 없고 똥도 안 싸고 얼마나 좋으냐는 사람들,
그리고 그 중엔 고양이를 몹시 걱정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성필이었다. 그래, 몹시 걱정하고 있었다.
고양이가 다 떨어지면 어떡하지, 바로 그 걱정말이다.
그래도 아직은 안심할 수 있었다.
성필의 집 냉동고와 냉장고가 미어터지도록 고양이가 들어차있었기 때문이다.


약을 구하러다닌다고 요 며칠 뱃일도 안 따라가고 자신을 위해 고생한 아버지를 생각하면 미소는 마음이 먹먹했다.
고양이들도 발길이 뚝 끊기고, 미소가 세상에 의지하는 건 이제 아버지 하나 뿐이었다.
오늘도 자신을 위해 부엌에서 분주히 약을 달이는 아빠 생각을 하며 미소는 문득 큰 결심을 했다.

' 일어나보자. '

어제 아버지의 손을 잡고 벽을 짚으니 노력 끝에 엉성하긴 했지만 두 발로 서있을 순 있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자세가 너무 우스꽝스러워 한참을 웃었지만, 열 살 이후로 처음 일어선 순간이었다.
웃다가 눈물이 나와 아버지와 얼마나 얼싸안고 울었던지!

" 끙.. "

미소가 스스로 벽을 짚고, 다리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에겐 쉬운 일이, 자신에겐 도전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원래는 이 단계에서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과 함께,
근육에 도무지 힘이 들어가지 않아 넘어지기 마련이었고 그때마다 한 두군데가 부러지거나 늘어나서
병원 신세를 져야했기에 그간 일어나려는 엄두조차 못 냈었다.

" 으윽 "

안 쓰던 다리라 관절과 근육이 고통을 호소했지만 미소는 이를 악물고 고통을 견디려 애썼다.
몸이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 하아!.. "
한쪽, 한쪽, 오로지 일어서겠단 일념으로 고통을 참아내자 어느새 일어서있었다.

" .... "
두 손을 조심스레 벽에서 떼어보았다.
식은 땀이 좀 흐르긴 하지만, 자신이 기대지 않고 두 발로 서있었다.

" 압... "

아빠! 하고 크게 터져나오는 외침을 미소는 집어삼켰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렸다. 아빠가 얼마나 기뻐하실까,
약 끓이시는 뒤에 가서 놀래켜드려야겠다. 아, 내가 일어섰어..

미소는 한 발짝 내딛었다. 역시 다리가 시큰거리고 안 쓰던 삭신을 쓰는게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어찌 어찌 가능했다. 오늘 무리해서 열 흘을 앓더라도 오늘 아버지에게 이 모습을 꼭 보여드리고 싶었다.
미소의 이마에서 식은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다시 한 발짝.
미소가 6년만에 자기 힘으로 방 밖으로 향하고 있었다.
살짝 열린 미닫이 문 사이로 미소가 몸을 내미는데까지 시간이 꽤 걸렸으나,
지난 6년에 비하면 그건 찰나에 불과했다.


고양이들이 부패하고 있었다.
고깃국물은 잘 보관하지 않으면 쉬어버렸고, 고양이들은 저장 기간이 길어질수록 부패했다.
새로 잡으려고 마을을 나서도 이젠 찾기가 힘들었다. 똑똑한 녀석들은 마을을 떠나버리기도 하는 것 같았다.
결국 마을에 고양이 씨를 말린지라 하루를 꼬박 찾아도 한 마리 잡기가 힘들어 배 나가는 것도 포기하고
오로지 고양이 구하는데만 신경을 쓴 하루하루였다.

그나마 온전한 몇 마리가 한솥에 끓고 있었다.
아예 이번에 엑기스를 잔뜩 내서, 사골국물 얼리듯 얼려놔야 봄까지 먹일 수 있겠다고 성필은 생각했다.
볼에 살집이 오르자 제법 여자 태가 나는 것이, 비로소 딸이 사람 구실을 할 날이 머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성필은 사람새끼라도 잡아다가 못 끓여주겠느냐고 속으로 키득거렸다.
미소가 시집 간다고 사위 하나 딱 데려오면.. 후후.
성필의 백일몽을 깨운 건 그 순간이었다.

" 꺄아아악 ! "

째지는 비명소리에 놀란 성필이 국자를 놓치자 챙그렁 소리가 잠시간의 정적을 불렀다.

" .... "
" .... "

미소였다. 성필은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꿈인가 생시인가.
고양이였다, 미소는 솥이며 반틈 열린 냉장고며 고양이가 뒹구는 부엌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 어떻게.. "
둘은 동시에 같은 말을 하다가, 말이 서로 물고 물리자 다시 정적이 이어졌다.
그러나 성필이 뿌듯한 감정이 차오르는 반면, 미소는 분노와 배신감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솥 안에 고양이 몇 마리가 눈,코,입이 간신히 분간될 정도로 곤죽이 된 채 뻐끔뻐끔 찐득한 국물이 끓고 있었다.
미소가 가장 귀엽게 여긴 얼룩 고양이란 걸 알게 된 건 잠시 뒤였다.

" 미소야, 일어났구나! "

딸을 향해 성필이 두 팔을 벌리고 다가가자, 미소도 성필에게 몸을 날려 안기는 듯 싶었더니.

- 짝 !

" 어떻게 그럴수가 있어, 어떻게 고양이를 나한테 먹일수가 있어!! "

성필은 믿을 수 없었다. 아빠, 고마워요, 저 일어섰어요, 이런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는데
육년만에 일어선 딸이 자신에게 준 것이 고작 따귀와 핀잔이라니,
난 저 년 때문에 모든 걸 잃어버리고 이 순간만을 위해 모든 걸 버렸는데,
어떻게 저 년이 나한테, 아빠한테 이럴수가..

" 너 일어선 거 보면 몰라! "

" 저거 당장 버려, 빨리 버리라고! 아, 빨리 버려! "

미소가 고양이가 끓고있는 솥을 싱크대로 밀어넣으려 들자 성필은 미소를 밀어버렸다.
육년만에 일어선 미소가 무슨 힘이 있으랴, 미소는 바닥에 널부러졌다.

" 봄까지 마실 건데 왜 버려! 더 이상 고양이도 없어. "

" 봄? 웃기지마, 아빠 미쳤어? 고양이인 거 왜 말 안해줬어, 왜 나한테 고양이를 먹였어! "

" 너 일어서게 하려고 그랬다! 왜! 걸어다니니까 좋잖아! 자, 빨리 마셔.
이거 냉장고에 넣을거라서 방금 끓여서 약발 좋을 때 한 그릇해. 냉장고에 얼려야 돼. "

" 절대 안 먹어, 다신 안 먹어. 아빠는 미쳤어. 아빠 주는 건 이제 안 먹을거야. "

성필은 이성의 끈을 간신히 잡고 있었다.

" 아빠 화나게 하지마. 너 낫게 하려고 이렇게 한거야. 너 일어선 거 다 아빠 덕분이야. "

그러나 미소는 자신의 친구를 몽땅 잃은데다 그 친구를 끓여마셨다는 충격에,
아빠에 대한 감사함은 온데간데 없이 분노와 증오로 마음이 이미 돌아서있었다.

" 지랄하네. 약? 약? 고양이가 약이라고? 그걸 약으로 먹을 바에야
6년이 아니라 다시 60년을 누워있어도 그거 먹곤 안 일어나. "

그 순간 성필의 마음에서도 인간의 이성이 달아나버리고,
고양이를 때려잡을 때와 똑같은 눈이 번뜩였다.

" 이 씨팔년이- "

성필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미소는 아픈 것보다도 슬픈 게 더 컸다.
정신이 혼미해지도록 맞고 있으려니 눈에 보이는 건 성필의 무릎 아래 뿐이었다.

" 이이익 "
미소가 혼신을 다해 성필의 다리 한 쪽을 붙잡았다.
그 상태에서 미소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쓸 수 있는 무기는 하나,
유일하게 6년간 매일 사용해와서 기능에 전혀 이상이 없는 턱과 치아였다.
아드득,
미소가 고양이즙 마시듯 눈을 질끈 감고 성필의 발목을 깨물었다.

" 으아아악! 신발! "

성필의 발목 살이 너덜너덜거릴 정도로 미소는 몇 번이고 깨물었다.
성필은 엄청난 고통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피가 주륵주륵 흘렀다.
이러다가 죽겠다 싶은 마음에 이미 놓아버린 이성은 성필을 살고 싶어하는 짐승으로 만들었다.

성필은 바닥에 굴러다니는 국자를 집어들었다.

" 뒤져버려, 너 같은 거 죽어버려, 은혜도 모르는 년! "
" 으윽 "

성필을 물어뜯느라 피칠갑이 된 미소의 얼굴에 국자가 날아들었다.
그 모습은 마치 처음 미소를 위해 고양이를 잡던 그 날처럼, 비정했다.

한 대, 두 대,
미소의 코뼈가 부러지고 쌍코피가 튀어나왔다.
씩.. 씩.. 성필은 그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불과 오늘까지만 하더라도 사이 좋은 부녀였는데, 그 사실이 무색했다.
지난 16년, 서로를 의지했던 세월이 거짓말인 것 같았다.
부녀? 부성애? 효도?
그딴 건 이 부엌 안에 없다.
죽고 싶지 않으면 죽여야 하는 처절한 사냥만이 존재했다.

미소는 엉망진창이 된 얼굴로 떨리는 손을 내밀어 성필을 꼬집었다.
성필은 갈수록 심해지는 발목의 고통에 힘겨워하던 중 미소가 더한 고통에
그나마 남은 기력을 짜내어 미소의 정수리를 힘껏 찍어버렸다.
끝이었다.
살리기 위해 살아온 한 삶의 완전한 끝을 의미했다.
살기 위해 죽여온 삶이 언제부턴가 성필의 삶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 삶도 길진 않을 것 같았다.

성필은 심해지는 출혈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느꼈다.
아빠, 아빠 -
학교를 다녀오던 어릴 적 딸의 얼굴이,
자신의 손에 의해 피범벅이 되어 죽어버린 딸의 얼굴에 겹쳤다.

" 미소야.. 아빠야.... "

성필은 흐리멍텅한 눈빛으로 정신을 잃어갔다.
. . . . .
. . . .
. . .






형망 배 선장 인태는 계속 조업에 빠지는 성필이 염려되어, 한 손에 반찬거리를 가득 들고 성필의 집을 찾아왔다.
헌데 성필의 집 대문이 아닌 뒷문으로 뭔가 새어나와있는 게 보였다. 뒷문은 부엌과 바로 연결되는 문이었다.
인태는 조심스레 뒷문으로 다가갔다.
이게 피야.. 뭐야..
뻘건 것과 누런 것이 한데 뒤섞여 닫긴 문 틈으로 비죽비죽 나오고 있었다. 냄새가 엄청났다.
아니, 사람 사는 집이 왜 이래..

" 이봐 성필이! "

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고, 액체는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 성필이! "

인태가 문을 열어젖히자 와락 액체가 한움큼 흘러나오고,
그 뒤에 인태의 눈에 들어온 건 한 편의 지옥도였다.

" 으아악, 신발, "

인태는 그 광경에 미친듯이 도망가면서도 자신의 눈이 뭘 본건지 믿을 수 없었다.
만약 죽어서 사람이 지옥에 간다면 그런 지옥이 있을까.

팔팔 끓는 솥에서 알 수 없는 국물이 주륵주륵 흘러내리고 있었는데,
온 몸이 피로 붉게 물든 여자의 몸 위로 국물이 따라흐르고 있었고,
발목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성필이 쓰러진 채로 바닥의 국물을 힘없이 핥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살아남고 싶어하는,
그야말로 아귀 같은 모습이었다.


환상괴담, '고양이즙' 끝
괴담의중심 The Epita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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