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게시물 단축키 : [F2]유머랜덤 [F4]공포랜덤 [F8]전체랜덤 [F9]찐한짤랜덤

2CH

등산화를 빌려간 친구

title: 메딕셱스피어2018.12.08 20:38조회 수 1183추천 수 3댓글 1

    • 글자 크기


저번 골든위크 때, 형부에게 들은 이야기다.

 

형부는 고등학교 때 산악부 소속이었다고 한다.

 

들어가자마자 흥에 겨워, 비싼 등산화를 제깍 사버렸단다.

 

 

 

세미오더로 산 제대로 된 물건이었다.

 

아마 5만엔 넘게 냈다나.

 

25년 전이었으니 체감상으로는 더 비쌌겠지.

 

 

 

하지만 작심삼일이라고, 형부는 정작 그래놓고 고문 선생님이 무서운데다 매일 근력 트레이닝을 하는데 질려버렸다고 한다.

 

상하관계가 요상하게 구축되어 있는 군대식 운동부에 싫증이 난 나머지, 여름방학도 되기 전에 탈퇴해버렸다나.

 

그때는 두번 다시 등산 같은 건 안 할 생각이었던데다, 부잣집 도련님 비스무리한 거였으니까 뭐.

 

 

 

물건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라, 형부는 거의 새것이나 다름 없는 등산화를 같은 반 친구에게 주기로 했다.

 

얌전하고 성실한 친구였다고 한다.

 

다행히도 사이즈는 딱 들어맞았다.

 

 

 

친구는 무척 기뻐하며, 평생 잊지 않겠다고 거듭 고마워했다.

 

워낙 비싼 신발이다보니, 차마 받을 생각도 못하고 그냥 빌려만 가겠다고 했단다.

 

형부는 잘 기억조차 못하고 있지만.

 

 

 

다만 [나한테는 이제 필요 없는 신발이야. 네가 잘 신어주면 신발도 기뻐할거야.] 라고 말하며, 스스로 멋있다고 한껏 으쓱거렸던 것만 기억이 난다나.

 

친구는 그 후, 대학에 가서도, 취직하고 나서도 계속 등산을 했다고 한다.

 

고지식한 성격이라 매년 연하장을 보내왔고, 거기에는 여름에는 호타카에 갔다느니, 이번 겨울에는 키타다케를 오른다느니 꼼꼼하게 등산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해부터인가, 소식이 뚝 끊겼다.

 

연하장을 받기만 할 뿐 딱히 답장도 하지 않았던데다, 형부도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으니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소문으로 늦게서야 친구의 부고가 전해졌다.

 

 

 

암이었다고 한다.

 

38살의 한창 나이였다.

 

깊은 우정이 있던 것도 아니고, 형부 입장에서는 그저 필요 없는 신발을 준 것 뿐이었다.

 

 

 

젊은 나이에 벌써 세상을 떠나다니 안타깝다는 생각 정도 뿐이었단다.

 

연하장이 안 왔다는 것도, 사실 부고를 들은 후에야 깨달았을 정도였다니까.

 

그리고 형부는 천천히 그 일을 잊어갔다.

 

 

 

그런데 작년 연말, 헛간을 개축할 때였다.

 

형부는 귀찮아하면서도 일손을 도우러 고향에 내려갔다고 한다.

 

그랬더니 있더란다, 그 등산화가.

 

 

 

신을대로 신어서 검게 윤이 나는 게, 집 헛간에 들어있던 것이다.

 

형부는 소스라치게 놀라, 황급히 가족들에게 물어봤다고 한다.

 

[아, 그거. 귀신처럼 초췌한 사람이 갚으러 왔더라. 계속 빌려써서 미안하더면서.]

 

 

 

형부는 등골이 오싹해져서 다시 물었다.

 

[그거, 언제 이야기야?]

 

[음, 작년일걸, 확실히?]

 

 

 

그렇다면 진짜 유령이 아닌가.

 

뭐, 실제로는 착각한 거고 친구가 죽기 전에 굳이 갚으러 찾아왔던 것이겠지만.

 

하지만 형부는 혹시나 친구가 죽은 뒤 갚으러 온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단다.

 

 

 

어차피 확인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살아서 왔든, 죽어서 왔든 정말 쓸데없이 성실하달까, 고지식한 녀석이야. 그런 닳아빠진 등산화를 이제 와서 갚으면 어쩌겠다는 건지. 하지만 녀석은 녀석대로, 계속 빌려쓴다고 생각하며 고마움을 느끼고 있던거겠지. 요즘 세상에 그렇게 고지식한 놈이 어디 버틸 수나 있었겠냐, 나처럼 적당히 닳아빠진 놈이나 버티지. 어떤 의미로는 빨리 하늘나라에 가서 행복할지도 몰라. 죽은 사람한테 할 말은 아니지만...]

 

형부는 묘하게 씁쓸한 듯 웃었다.

 

 

 

[어? 그 등산화? 있어, 아직 집에. 너 등산하고 싶으면 줄게. 신을 수 있을거야. 하하하... 거짓말이야, 거짓말. 절에다 공양했어. 또 저승에서 그 녀석이 신고 등산 다니라고 말이야.]

VK's Epitaph



웡 웡

    • 글자 크기
댓글 1

댓글 달기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조회 수 추천 수
7135 실화 밀폐된 주점 안에서... 2/32 title: 금붕어1현모양초 3300 1
7134 실화 군시절 겪었던 공포의 밤2 title: 이뻥아이돌공작 1044 1
7133 실화 신끼넘치는 친구이야기92 title: 그랜드마스터 딱2개ILOVEMUSIC 1033 1
7132 실화 호텔 기숙사2 쥬시쿨피스 476 1
7131 실화 소름끼치는 실화2 title: 아이돌미션임파선염 294 2
7130 실화 바보라고 따돌림 당하던 남자아이2 title: 보노보노김스포츠 1792 3
7129 실화 가만히 앉아서 어릴때부터 겪은 안좋은. 이상한 일을 하나씩 생각해봤어여2 title: 풍산개안동참품생고기 905 1
7128 실화 무서운 얘기 4번째...2 title: 메르시운영자 942 3
7127 미스테리 미스테리유물 오파츠 5-1편 : 남극이 지도 에 그려진것이 언제인가?2 빵먹고힘내 1134 3
7126 기묘한 기묘한 이야기 - '할머니'2 꼬부기 479 1
7125 실화 돌고 도는 무서운 이야기#52 title: 연예인13라면먹고갈래? 2382 1
7124 실화 제임스가 들려주는 무서운 이야기 6편2 title: 풍산개안동참품생고기 1638 2
7123 미스테리 메리셀레스트호 미스테리2 title: 이뻥아이돌공작 1023 1
7122 실화 내가 겪은일2 title: 이뻥아이돌공작 1566 2
7121 2CH [ 2ch 괴담 ] 아케미2 title: 토낑도나짜응 1293 1
7120 2CH [2CH] 칸히모2 title: 풍산개안동참품생고기 1187 1
7119 실화 야간알바하다가 생긴 일..2 title: 고양이3전이만갑오개혁 1410 0
7118 2CH 꿈중독 -1-2 title: 풍산개안동참품생고기 1362 2
7117 실화 묵혀놓았던...나의이야기.2 백상아리예술대상 5641 1
7116 실화 신끼넘치는 친구이야기102 title: 그랜드마스터 딱2개ILOVEMUSIC 1064 1
첨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