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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감포에 간 이유

클라우드92019.05.29 13:28조회 수 1091추천 수 2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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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대학 4학년으로 다시 복학하는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아직 취업전선으로 뛰어들 용기도 없었고,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을 시절. 
 


생각해보면 그때 나의 유일한 즐거움은 내 대학친구와의 야간 드라이브였다. 

 

난 취업을 준비하는 4학년 생이었고, 

 

그 친구는 취업은 했지만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속편히 말할 친구가 필요한 직장인이었다. 

 

비록 성별을 달랐지만, 오래 알고 지냈던 만큼 만나면 편하고,즐거웠던 기억이 대부분인 걸 보면 

 

아마 그때는 이성으로 서로를 조금을 바라보지 않았나 생각도 든다.
 

그러던 중 그 친구는 작은 중고경차를 구입했고, 

 

나보단 운전에 서툰 친구가 우리집 앞으로 찾아와서 만나면 나에게 대신 운전을 시키곤 했다.  

 

나도 앞이 보이지 않는 답답함을 가슴에 가지고 있었고, 

 

그 친구도 사회초년생으로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우린 어딘가로의 탈출구가 필요했던 거 같다. 
 
몇 달을 정신없이 놀러 다녔다.

 

해운대, 달맞이 고개, 기장, 울산, 경주까지 새벽 2-3시가 될 때 까지 무작정 웃고, 떠들고, 음악을 듣고, 

 

자판기 커피를 마시면서 때론 힘든 친구의 눈물도, 나의 넋두리도 우린 말 없이 들어주곤 했다.
 
 

창문을 열고 달려도 춥지 않을 기온이었지만, 안개처럼 내리는 비가 내렸던 금요일 밤이었다.

 

그날도 친구는 8시에 우리집 앞에서 나에게 전화를 했고, 밥 안먹고 어디 가냐고 물어보는 엄마에게

 

"늦는다" 하고는 집을 나섰다.

 

오늘따라 축쳐져있는 친구에게 운전석을 넘겨받고는 조심스럽게 출발을 했다.

 

 '자.. 오늘은 어디가보꼬?' 내가 물었다.
 
 '글쎄..선동 가볼래?'
 
 '선동?..저기 구서동 지나서 있는 거 말하는거가?'
 
 '어. 그래 그때 우리 마을버스정류장에서 자판기 커피 뽑아먹은 곳 있다 아이가..'
 
 '그래 알았다 벨트 해라'
 
 
금요일 밤이라 그런지 도시 고속도로는 꽉 막혀있었다. 

 

30분이면 갈수 있는 거리를, 거의 한 시간이 다 걸려 선동에 도착했다.

 

가는 길이 지루했는지 졸고 있던 친구는 그새 잠들어 있었다. 
 


선동은 가끔 친구들과도 닭도리탕이나 백숙을 먹으러 자주 오는 곳이다.

 

상수원이라 그런지 깨끗하고 마을도 작아서 조용한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 한번씩 밤에 찾았던 곳이었다.

 

단지 밤에는 인적이 좀 드문 곳이라 몇몇 친구들은 기분이 이상하다고도, 

 

몇몇은 조용히 별을 볼 수 있어서 좋다고 이야기들 한다.

 


잠든 친구를 깨우고 자판기 커피를 한잔 뽑아서는 상수원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있는 다리 위로 조용히 올라간다.

 

“내 얼마나 자던데?” 친구가 물었다.

 

‘몰라, 한 20분 잤을걸..’

 

‘아.. 맞나. 요즘은 눈만 감으믄 자네.  회사에서 하도 기를 빼놔서 퇴근만하믄 완전 피곤하다’

 

‘야 회사생활이 다 그렇지 안그런 게 어디있노’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어두 컴컴한 상수원이 보이는 다리 가운데쯤 왔을 때였다.

 

반대편 어둠 속에서 나무 가지가 날카롭게 부서지는 소리가 다리 건너편 길에서 갑자기 들렸다.

 

우리가 내려와서 주차한 다리의 오른쪽과는 다르게, 다리의 왼쪽은 철마로 향하는 숲길이 있고 

 

그때 당시엔 불빛도 가로등도 없는 말 그대로 칠흑 같은 어두움이 벽처럼 무겁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정적을 깨는 소리라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는데 마치 영화에서 몰래 누군가에게 다가가다 

 

발 아래 떨어진 나뭇가지를 보지 못하고 밟아서 나는 그런 영화의 한 장면을 생각나게 했다.

 

친구는 듣지 못한 거 같았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 소리를 등지고 친구를 바라보는 순간.

 

불규칙적으로 흙 바닥을 끌면서 오는 신발 소리.

 

“스….윽… 스….윽…”

 

순간 머리 뒤가 쭈뼛서게 되는 느낌에 뒤를 돌아보지만 앞뒤 거리구분도 되지 않는 어둠 속에서 나오는 소리의 출처를 

 

알 수는 없었고 그 소리는 조금을 전진하고 나선 이내 조용해졌다.. 

 

이번에는 친구도 들었는지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냐고 물었다.


“야. 저거 무슨 소린데” 잔뜩 겁먹은 친구가 말했다.


“몰라 뭐 동물인갑지..”


“아인데….흙 바닥 긁는 소린데”


“음..글쎄..함 가볼래?”


“뭐 할라고가노 가로등도 없는데. 무섭다야”


“맞제… 나도 무섭다. 근데 궁금하긴 하네..”
 

“댔다. 가자”


“그래..”


친구가 먼저 등을 돌려 차가 있는 마을버스 주차장 쪽으로 두, 세 걸음 옮겼을 때, 

 

나도 친구 뒤를 따라 움직이다 습관처럼 뒤를 한 번 돌아봤다.

 

내가 서있던 다리 위 난간 쪽.

 

그 내 발 아래 있었던 구두 한 쪽.

 

윤기를 잃어 반짝이진 않았지만 뒤축이 접힌 신발 하나가 옆으로 뉘어져 있다.


‘왜 못 봤지?..’ 속으로 생각하다 문득 친구한테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XX야.. 저거 뭔데?”  두려움이 가득한 말투로 친구를 불렀다.

 

“뭐?”

 

“야…아까 우리 신발 소리 들었다 아이가?”

 

“근데 뭐….?” 친구는 무섭다는 듯 약간은 짜증 섞인 말투로 대꾸했다.


“저기 봐봐……우리 서 있었던 난간 쪽에……. 신발 안보이나?”


나는 다리 중간 쪽으로 다시 슬금슬금 이동하며 친구에게 손짓했다.

 

‘야….그냥 가자…. 그냥 가자니까..’  

 

친구가 인상을 쓰고 말했지만 난 기어코 다시 다리 중간으로 가서 그 신발을 손에 잡았다.

 

한참은 된듯한 신발, 메이커도 없고 무거운 신발이었다. 

 

마치 복고풍 영화에서나 볼 듯한 끈이 없는 진부한 디자인의 신발. 

 

그런데 뒤축은 접혀 있었고, 그에 반해 뒷굽은 새 신발처럼 날카롭게 그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 신발을 두 손가락으로 쥐고는 친구에게 뛰어갔다.

 

내가 달려오자 친구는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쳤고, 난 뒷걸음질 치는 친구 앞에 ‘툭’ 하고 신발을 던졌다.


친구는 고목처럼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고서는 그 신발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실제로 아무런 소리도 하지 않았지만, 부들거리는 친구의 어깨를 보니 괜한 장난을 한 것 같아 미안해졌다.


“야..왜.. 장난인데?”


“………….”


“미안.미안.. “ 

 

그 친구 어깨를 건드렸는데 그 친구는 매몰차게 내 손을 뿌리쳤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자..그럼 치워버리께..미안.” 

 

난 발로 툭 신발을 차서는 옆에 있는 도랑으로 밀어 넣었다.


신발이 떨어진 도랑 쪽을 보고 있던 친구는 무척이나 화가 난 듯 빠른 걸음으로 차 쪽으로 가고 있었다.

 

차 키를 내가 가지고 있었던 터라 조수석에서 문 손잡이만 바라보고 있던 친구는 

 

내가 문을 열어주자 차에 타서 고개를 창문 쪽으로 바라보며 턱을 괴였다.


그렇게 화가 날 줄은 몰랐는데, 갑자기 변한 친구 모습에 적잖이 당황한 나는 차에 타자마자 다시 사과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미안하다고 하는 나에게 조금은 누그러진 듯 친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감포 갈래?’

 

‘감포? 뜬금없이..경주말이가?’

 

‘어’

 

‘그래.. 알았다.’  

 

괜시리 미안하기도 해서 아무 말없이 출발했지만, 선동에서 경주는 80km가까이 되는 상당히 먼 거리였다.

 


경주IC를 지나서 보문단지를 지나서 한적한 왕복 2차선 도로로 들어섰다.

 

늦은 밤이고, 연한 안개도 끼어 있어서 속도를 내기가 힘들었다.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싶어서 장사가 끝난 과일 판매집 앞에 주차를 하고, 담배를 하나 피워 물었다.

 

친구는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몇시 쯤 된 걸까. 시간을 보니 11시 3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감포를 갔다가 집에 돌아갈 시간을 계산하니 적어도 2시 가까이 될 거 같아,

 

엄마의 잔소리가 귓전에서 맴도는 거 같았다.

 

친구가 차에서 내려서는 지금부터 자기가 운전하겠다고 한다.

 

안개도 있고 도로도 2차선에 구비구비 굴곡도 많아서 힘들지 않겠냐고 했지만 친구는 괜찮다며 운전석에 앉았다. 

 


운전을 못하는 스타일은 아니라 별 다른 걱정 없이 조수석에 앉았다.

 

천천히 차는 출발했고,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그때 왜 그런 이야기를 시작했는지는 모르겠다.


“예전에 내 친구가 해 준 말이 있는데 사람들은 보통 12시부터 새벽 6시 닭 울기 전까지 음기가 강하다고 생각하잖아. 

 

 근데 실제로는 12시부터 2시까지가 제일 강하대. 

 

그래서 대부분 우연찮게 귀신을 보는 사람들은 12시부터 2시 사이에 귀신을 본다는 거야, 

 

 근데 지금은 12시도 안 된 시간이니까 괜찮다. 그러니까 쫄지마~”

 

별다른 대꾸가 없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친구는 추운 듯 연신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마치 휘파람을 부는 듯한 모습으로…

 

긴장을 해서 그러는지 땀이 난 손을 바지를 입은 허벅지에 계속 닦아내고 있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밤길 운전에 익숙하지 않아서 이겠거니 생각하며 앞에 보이는 길을 응시했다.

 

 

 

운전을 하다가 조수석에 타니 긴장이 풀어져서 인지 잠시 졸았던 거 같다.

 

실눈을 뜨며 크게 숨을 들이쉬면서 앞을 보니 차는 추령터널로 진입하고 있었다.

 

퍼뜩 정신을 차리니. 느낌이 이상했다.

 

코너에서는 조수석 손잡이에 손이 갈 정도로 평소보단 확실히 다르게 운전하고 있었다.

 

경차가 코너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고 돌아가자 심장이 툭툭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괜히 운전하는 사람에게 잔소리 같아서 그냥 아무 말 없이 있었다.

 

운전하는 친구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다행이 반대 쪽 차선에서 돌아오는 차들이 없었기에 조금씩 중앙선을 물고 돌더라도 위험해 보이진 않았다.

 

 

 

추령터널을 나와 얼마 달린 후였다.

 

멀리 반대쪽 차선에서 택시인지 승용차인지 모르는 차가 한대 오고 있었고,

 

코너도 아닌데 친구가 중앙선을 넘고 악셀을 밟기 시작한 것도 그쯤이었던 거 같다.

 

처음에는 속도를 내길래 직선도로라서 그러나 보다 생각했고 왼쪽 바퀴가 중앙선을 완전히 넘어갔을 때는 

 

운전하다 졸지 않았나 싶어 친구의 어깨를 툭 건드렸는데, 그 순간 완전히 택시 정면을 향해 악셀을 밟기 시작한 것이다.
  
그 짧은 순간에도 친구가 졸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느낀 건, 친구의 휘파람 같은 숨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입을 동그랗게 말고는 전방을 주시하며 다가오는 택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난 순간적으로 고함을 치고는 추돌하기 직전, 친구의 핸들을 오른쪽으로 잡아 꺾었다.

 

순간적으로 꺾은 핸들에 고속으로 달리던 차는 심하게 휘청거렸고, 

 

가드레일에 범퍼가 살짝 추돌하면서 반대쪽 차선에 1/3정도 걸친 채로 멈춰 섰다.

 

심장이 터질 듯 쿵쾅거렸고, 친구에게 고함을 쳤다.

 

‘야! 미쳤나!! 차선안보이나!!!!!!!!  뭐하는건데!!!!”

 

친구도 깜짝 놀라서 ‘아이고,, 아이고’ 를 짧은 숨들과 함께 내뱉고 몸을 떨고 있었다.

 

 

차를 옆쪽으로 주차하고 키를 뽑았다. 

 

일단은 누가 운전을 하던 충분히 안정을 한 뒤에 출발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차에서 내린 친구는 차 앞에 주저 앉았다.

 

나도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피워 물고는 친구에게 다가갔다.

 

“야……니 왜 그랬는데…… 졸았나?”

 

“아…니..”

 

“그럼 왜 그랬는데…… 차오는 거 안보이드나..’

 

“몰라…보이긴 했는데…. 보이긴 했는데..”

 

“근데 왜 중앙선 넘어가서 달리는데?”

 

“몰라.. 반대쪽에 불빛이 보이는데. 

 

그게 그냥 막 따듯하고 뜨거운 느낌이 들어서 빨리 가서 저걸 안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 말을 듣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우선은 내가 기대했던 납득할 수 있는 이성적인 어떤 이유가 아닌 대답이었기 때문이고,

 

내 기억으론 거의 50-60m 이상 정면으로 달려가는 우리 차에게 

 

상대방도 어떠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친구는 오늘 날 처음 만났던 시간과 선동에서 내가 장난친 것, 그리고 감포에 왜 와있는지 결국 기억해내지 못했다.

 

2시가 넘은 시각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천천히 차를 몰아 돌아올 수 있었고, 이후 더 이상의 야간 드라이브는 없었다.

 

 

물론 지금도 가끔 그 친구와 연락을 한다.

 

이제는 더 이상 그 날의 일을 이야기하진 않지만, 분명 서로의 기억 속에는 선명하게 남아있음을 알고 있다.

 

 

몇 해가 지나 또 다른 친구에게 그녀가 취업 전 복지관에서 일할 때, 

 

집에서 목을 맨 한 남성의 시신을 처음 발견하고 가지런히 벗어놓은 구두와 그 위로 떨어진 토사물들을 보고 

 

버려진 구두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다는 사실을 우연히 듣게 되면서 난 그날의 일을 오랜만에 다시 한번 떠올렸고 

 

그때는 이해하지 못한 그녀의 두려움을 조금은 이해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출처 : 네이트판... 괴르디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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