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다니는 저승사자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인데...

내가 유치원생이었을 때 복도식 아파트에 살았어

같은 동에 늘 같이 놀던 형도 살았고.

나, 동네 형, 우리엄마, 그 형의 엄마. 이렇게 넷이 친하게 잘 다녔는데...


그런데 어느 날 새벽녘,

그 형의 엄마가 현관 밖에서 자꾸만 칙칙- 하는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 자다 일어나 밖을 나가보니깐

저승사자가 현관 앞 복도에서 엎드려 네발로 기어다니고 있었다는거야

그것도 그 형의 집 앞만 왔다갔다.

뭔가 쓸리는 소리는 검은 도포가 바닥에 칙칙 끌리는 소리.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지만 저승사자는 신경도 안쓰고 계속 느릿느릿-

그 집 현관 앞만 왔다갔다 계속 엎드려 기어다니는거야.

하지만 꿈이였어,







다음날

그 형의 엄마는 당연히 무서워 참지 못하고 친했던 우리 엄마랑 점집에 찾아갔어.

무당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자 마자


'그 집 손(孫)이 죽는다. 방법이 없다. 이미 바꿀 수 없는 일'


이라고 소름끼치도록 냉정히 말하는거야.

그 형의 엄마는 더더욱 공포와 분노가 쌓여 황급히 돌아가려고 하는데...




그 때 무당이 뜬금 가만히 있던 우리엄마한테 얘기하는거야

'너 네집 손은 산다.'

그 형의 엄마 뿐 아니라 우리 엄마까지 얼이 빠져서 돌아왔지.


며칠 후...

나랑 엄마, 동네 형과 그 형의 엄마

여느때처럼 넷이 같이 시장갔다 돌아오는 길이였어.




넷이 아파트 입구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동네형이 오줌이 마렵다며 먼저 아파트로 후다닥 뛰어 들어간거야/







그 때 뜬금없이 나는,

아파트 주차장 아주 구석탱이에 세워진 과일트럭을 발견하고

그 쪽으로 튀어가 엄마한테 바나나를 사달라고 졸랐어.



엄마는 사줄 생각이 없었고 얼른 집으로 들어가자고 나를 타일렀지만

왠일인지 갑자기 바나나 타령을 무지하게 하며 트럭 앞에 딱 붙어 집쪽으로 안 들어가려고 했어.










그때.

그새 자기집까지 다 올라간 동네형이

복도 베란다 난간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엄마 문 잠겼어 열쇠 빨리빨리!!!!'

하고 소리쳤어.




그 형의 엄마가 가방에서 열쇠를 꺼내는 것을 본 형이 다시 후다닥 내려왔지.


근데 아파트 건물 입구로 다시 뛰어 내려온 동네형이 그 순간,


쌩하고 급하게 출발하는 봉고차에 치였어.

뻥하고 치여 몸이 붕 떠서 날아갔는데, 나는 제대로 못 봐서 기억이 없어.

그 형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여기까지가 엄마가 해준 그 당시 이야기야.


그걸 듣고 그 때 그 아줌마가 저승사자 꿈을 꾸고 그 형이 죽었단 얘기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우리엄마가 진저리 치는 표정으로 더 얘기하는거야

너 그때 그 아파트 복도 베란다 난간이 어느정도 높이였는 줄 기억하니?

딱 어른 가슴께까지 올라왔어.

나는 아직도.. 그 애가 난간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던 순간이 기억나 소름끼친다.



그 형을 뭘 밟고 고개를 내밀 수 있었던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