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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반성문

title: 이뻐~!공생2015.07.15 11:29조회 수 1040추천 수 1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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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의 이야기는 어찌보면 필연적으로 나에게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사건에 관한 사실과 진실, 그리고 사건이면에의
나 자신에 대한 자조섞인 반성을 담고있다.



학창시절 공부도 중간, 교우관계도 그럭저럭, 외모도 평범한 특징없는 학생이었던 나는 종이 몇장으로 완벽한 설명이 가능한 평면적 인간 즉, 선생들이 자기소개서 작성이라는 명목아래 그들의 수업에 대한 귀찮음을 피력했던 몇 장의 갱지들 그 위에 나의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었던 그런 진부한 인간군상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진부한 삶에 대한 매너리즘에 빠져 무채색의 세상을 살아가던 나에게는 신문에서 볼 수 있었던 여러 사람들의 일련의 격동적인 모습이 부러웠다.똑같은 종이에 똑같은 색깔로 그려진 삶이었지만 나의 삶은 한낱 똥종이와같은 무익함으로, 그들의 삶은 재생용지와 같은 유익함으로 대별되었다.



이러한 삶, 아니 삶이라고 보기에도 민망한 생물학적 생존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에겐 부끄러운 목숨에 대한 자기파괴적행위로 일탈을 일삼기 시작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한순간의 일탈에 대한 치졸한 변명이지만



그도 그럴만한 나이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2학년때 일어난 이웃집의 화재사건을 기점으로 내 방황은 종지부를 찍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단독주택 마을이었던 점을 감안했을때 다행이도(?) 화재피해는 단독주택 1동 전소로 끝났기에 이제는 세상에서 잊혀진 화제가 되지 못한 화재사건이었다. 모두가 잊었지만 나 혼자만 이 사건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이유는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사건이기 때문이다.



인류가 보이지 않는 종말과 싸우며 정신적 망국으로 치닫던 반(半)광기의 1999년 어느 무더운 여름날 이야기는 시작된다. 엘리뇨라는 듣도보도 못한 녀석이 많은 사람들의 밤잠을 설치게 만들고 있었고 나 역시 녀석의 수많은 희생양 중 한명이었던 그날 에어컨의 존재이유를 절실히 느끼며 뜻하지 않은 밤산책을 나오게 되었다.



집에서 나온지 대략 30분 정도가 되었을까, 진원지가 불분명한 엄청난 굉음이 내 고막을 흔들었고 그 순간 너무 놀란 나머지 길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굉음이 지나간 후 불분명했던 진원지는 이내 솟아오르는 불길로 모든것을 집어삼킬듯 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었고 밤잠 못이루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사고지점을 애우며 모이기 시작했다. 나도 그 무리 중 한명이었다.



빠르게 모여든 군중들은 탄식과 걱정의 말을 내뱉었지만 무섭도록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고 마치 오래전 결성된 모임과 같은 일관됨을 보이며 군중 속 무리를 형성해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날의 치기라 생각되지만 나는 그 당시 이들의 모습에 분개하였고 이내 무리 속 이탈자가 되어 불길에 휩쌓인 집을 향해 달려갔다.



달려가는 순간 내 뒤에서는 나를 말리는 듯한 무리들의 외침이 있었지만 나를 걱정하는 느낌이 아닌 행동하지 않는 자기 자신의 양심을 위한 외침, 나로 인해 당신들이 가지게 될 일말의 죄책감을 피하기 위한 미봉책으로 들렸기 때문에 애써 무시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여 당당한 무시의 제스처를 취하며 사고지점으로의 다가감을 멈추지 않았다.



그도 그럴만한 나이었다.



소방당국의 발표를 인용해 결과부터 말하자면 '지난밤 원인불명의 LPG 가스 폭발사고로 인해 000씨의 부인 ***씨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으며 000씨는 방범창으로 인해 탈출에 실패, 전신 2도 이상의 화상으로 사망하였으나 딸 ###양은 사고 직후 구출, 심각한 가스중독으로 의식불명 상태입니다. 신고가 늦어 초기대응을 하지 못한 점이 이번 인명사고의 원인으로 판단되며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소방교육 프로그램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사건이었습니다.'라는 단촐한 한 문장으로 마무리되었으며, 나는 의로운 청년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지방 신문지 사회면에 기고되었다.



내가 부러워했던, 신문에서 볼 수 있었던 일련의 격동적인 모습이 나에게 현실로 다가왔지만 막상 현실로 다가와보니 그다지 유쾌하지 않아 웃을 수 없었기에 신문에는 내 무표정한 얼굴이 뭐 대단한 인물인양 인쇄되어 하루동안 흩뿌려졌고 하루동안 회자되었으며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잊혀져갔다. 그리고 신문은 언제 그랬냐는듯 또다른 사건들을 토해내고 있었다.



이 사건 이후로 나는 철이 들어버렸고, 길고도 짧았던 내 사춘기시절은 막을 내려 어른이 되기에 조금은 이른 나이에 어른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어른아이가 되어버린 나는 어른으로서의 책임감과 사명감, 아이와 같은 이유모를 고집과 열정, 그리고 사람으로서의 연민과 동정으로 인해 내가 구해낸 그 여자아이를 극진히 간호하게 되었고 정확히 사고발생 한달하고도 7일만에 깨어나게 되었다. 공부에 뜻이 없던 나였고 부모님도 그런 나를 이해해주려 노력하셨으며 일가친척없이 홀홀 단신으로 세상에 남은 그녀였기에 가능하였던 상황이었다.



그 후 삶의 의지를 잃은 그녀에게 화재 당시 아저씨가 나에게 남겼던 유언을 전해주어 그녀를 살아가도록 만들었다.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어찌보면 진부하지만 당연한 자신의 딸아이를 살려달라 부탁하는 아저씨의 모습을 떠올리려 애쓰면서... 나에게 있어서도 매우 힘든 과정이었다.



이후의 내 인생은 일종의 진부한 해피앤딩으로 마무리 된다. 그녀와의 긴 연애 끝에 결혼하였고 비록 변변한 직업을 가지진 않았지만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전형적인 가장의 면모또한 가지게 되었으며 평범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젠 그도 그럴만한 나이이다.



요즘도 가끔 창문에 붙어있는 차갑디 차가운 방범창을 보면 그때의 사건이 생각난다. 그녀를 구해 화재현장 밖으로 나온 후 쇠창살 사이로 들려왔던 아저씨의 살려달라는 외마디 비명, 작열하는 불꽃들 사이로 날아오는 날카로운 비명, 외마디의 날카로운 비명이 음속의 속도로 비수와 같이 날아와 내 마음을 관통하였고 이는 내 마음속 죄책감을 겨냥한 일종의 조준사격이었음을 의심치 않는다.



이 글을 쓰게 된 진짜 이유는 언젠가 진실을 말해야할



그도 그럴만한 나이가 되더라도



진실을 말하지 못할 것 같기에, 미래의 내 양심이 원할 구원에 대한 해갈을 위해 쓰게 되었다. 나는 내 아내에게 거짓된 삶을 선물했다.



아저씨, 다시말해 그녀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려 애쓰지 않으면 안됐다. 그녀를 살리기 위해 말해준 아저씨의 마지막 유언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진실을 말한다면 그녀는 확실히 죽을 수 밖에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년말고 날 살려줘!!"



이것이 진실이었으며 아저씨가 나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이다. 생에 대한 인간의 욕심, 생을 탐닉했던 기억을 표출하며 스러져갔던 그는 차갑디 차갑던 방범창의 쇠창살을 마주하며 뜨거운 죽음을 맞이했다. 당시 그에게 감옥같았을 쇠창살의 질감은 차가웠을까 뜨거웠을까...



나이를 먹고 생각해보니 아저씨는 교도소의 죄수같은게 아니었다. 나를 포함한 세상 모두가 그는 쇠창살에 같혀 죽었다고 여기었지만 오히려 그는 일말의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갈 우리를 지켜보던 교소도의 간수와 더욱 가까웠다. 그날 쇠창살에 갇혔던 사람은 그가 아닌 우리였다. 그와 함께 불타버린 창살 밖 세상과 양심에 우리는 그날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에 갇혀버렸다.



그렇게 종말이 다가왔고 밀레니엄이 찾아왔다. 종말은 오지 않았으며 비극으로 얼룩진 세기말의 수많은 사고를 뒤로하며 인류는 새 생을 얻는 듯 했으나 2001년 발생한 9.11테러의 충격으로 내 마음속에 자라나던 희망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서 인류의 종말, '정신적 둠스데이'는 1999년이다.



아직도 산타할아버지가 어딘가에는 존재할 것이라 믿고 있기에 거짓말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바보같지만 순수한 그녀가 살아갈 거짓된 삶과 종말 후를 살아가는 나의 삶, 자신들이 갇혀버린지도 모르고 방관했던 그네들의 삶은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그 당시 삶에 대한 집착을 보여주었던 비상식적이지만 어찌보면 가장 인간 본성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던 그는 죽었다.
역설적이고도 아이러니한 일이다.



어쩌면 내가 철이 들어버렸던 이유는 세상을 너무 빨리 알아버렸기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인간을 너무 빨리 알아버렸다. 알아버리기에는 너무도 빨랐던 18살의 나는



그도 그럴만한 나이가 아니었다.

 

 

출처 - 웃긴대학 고자루니 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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