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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20년 후

title: 섹시변에서온그대2015.09.01 11:24조회 수 847추천 수 1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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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가끔은 당돌하게 블로그

 

 

담당 구역을 순찰 중인 경관이 으스대며 거리를 걸어갔다.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의 그런 행동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습관적인 것 같았다. 시간은 밤 10시 정도밖에 안 되었지만 빗방울을 머금은 차가운 바람이 부는 탓인지 거리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져 있었다.

경관은 체격이 좋았다. 그는 뽐내는 듯한 품새로 문단속을 하기도 하고 경찰봉을 휘두르기도 했다. 그러면서 틈틈이 평화로운 거리를 주의 깊게 살펴보기도 했다. 그런 그의 모습은 마치 평화의 수호자 같았다.

그 일대는 담뱃가게와 밤새워 영업을 하는 간이식당의 불빛이 보이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사무실은 일찍 문을 닫았다.

경관은 한 지점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발걸음을 늦추었다. 한 사나이가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문 채 어두운 철물점 입구에 기대어 서 있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경관이 그에게 다가가자 그가 빠르게 말했다.

“별일 아닙니다, 경관님.”

그는 경관을 안심시키려는 듯이 말했다.

“뭐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20년 전에 약속을 했거든요. 이상하게 들리지요? 그럼 사정을 말씀드리지요. 20년 전에는 이 철물점 자리에 ‘빅 조우 브래디’라는 식당이 있었지요.”

“5년 전까지만 해도 있었죠.”

경관이 말을 받았다.

“하지만 5년 전에 헐렸지요 아마.”

철물점 입구에 서 있던 사나이는 성냥을 그어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 불빛에 그의 창백한 얼굴, 각진 턱,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오른쪽 눈썹 옆의 조그만 상처가 비쳤다. 그의 넥타이핀에는 큼직한 다이아몬드가 묘하게 박혀 있었다.

“20년 전 바로 오늘 밤.”

하고 사나이가 말하기 시작했다.

“이곳 ‘빅 조우 브래디’에서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녀석인 지미 웰스와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그 친구도 나도 이곳 뉴욕에서 자랐지요. 마치 형제나 다름없이 말이지요. 그때 내 나이는 열여덟이었고 지미는 스물이었습니다. 그 다음날 나는 한 재산 마련하기 위해 서부로 떠나기로 되어 있었지요. 하지만 지미는 절대로 뉴욕을 떠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뉴욕 외에는 살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여하튼 우리는 그날 밤, 20년 후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지요. 우리의 처지가 어떻게 변하든, 아무리 먼 곳에 있더라도 반드시 만나기로 약속했습니다. 20년이 지난 후에는 어떻게든 각자의 운명을 개척하고 돈도 모으게 되리라고 생각했지요.”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군요.”

경관이 말했다.

“그런데 다시 만나자고 한 기간이 조금은 긴 것 같군요. 그래, 당신이 떠난 후 그 친구 소식은 들었습니까?”

“물론이죠. 한동안 우린 편지 왕래를 했으니까요.”

그가 말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나면서 소식이 끊기고 말았지요. 아시다시피 서부란 무척이나 광활한 지역이니까요. 게다가 난 아주 바쁘게 돌아다녔지요. 하지만 지미가 살아 있다면 반드시 나를 만나러 여기로 올 것입니다. 절대로 약속을 저버릴 사람이 아닙니다. 진실하고 믿음직스러운 녀석이니까요. 나는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1천 마일이나 달려왔어요. 옛 친구를 여기에서 만날 수 있다면 그까짓 고생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지요.”

기다리고 있던 사나이는 뚜껑에 작은 다이아몬드가 여러 개 박혀 있는 멋진 회중시계를 꺼냈다.

“10시 3분 전이군요.”

그가 말했다.

“우리가 식당 문 앞에서 헤어진 시각이 정각 10시였죠.”

“서부에서는 일이 잘 풀린 모양이지요?”

경관이 물었다.

“물론이죠. 지미가 내 반만큼이라도 성공을 거두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친구는 어느 쪽이냐 하면 꾸준히 노력하는 타입이죠. 하여튼 믿음직하고 착한 녀석입니다. 난 서부에서 날고뛰는 놈들을 상대로 꽤 돈을 벌었지요. 많은 서부 사람들이 칼날 위를 걷듯 아슬아슬한 모험을 하고 있지요. 하지만 뉴욕 사람들은 판에 박힌 생활을 하지요.”

경관은 경찰봉을 휘두르면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자,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당신 친구 분이 꼭 와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꼭 정각까지만 기다리실 겁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나이가 말했다.

“적어도 30분은 더 기다려 줘야지요. 지미가 이 세상에 살아만 있다면 그때까지는 꼭 올 겁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경관님.”

“좋은 밤 되십시오. 선생.”

경관은 인사를 하고는 순찰을 계속했다. 마침내 차가운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간간이 불던 바람이 이젠 강풍으로 변해 있었다. 근처를 지나는 몇 안 되는 행인들은 외투 깃을 세우고 손을 주머니에 찌른 채 침울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때 젊은 시절, 친구와 맺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1천 마일을 마다 않고 달려온 그 사나이는 담배를 피우며 철물점 입구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한 20분가량 기다렸을 때, 긴 외투를 입은 키가 큰 한 남자가 옷깃을 귀까지 올려 세운 채 길 건너편에서 서둘러 오고 있었다. 그는 곧장 기다리고 있는 그 사나이에게로 다가갔다.

“자네, 밥이지?”

그가 미심쩍은 듯이 물었다.

“지미 웰스인가?”

철물점 입구에 서 있던 사나이가 소리쳤다.

“이거 정말 믿을 수가 없군!”

방금 온 사내가 상대의 양손을 꼭 쥐며 말했다.

“틀림없는 밥이군. 자네가 살아만 있다면 여기서 만날 거라고 생각했지. 그나저나 20년은 정말이지 긴 세월이야. 여기 있었던 식당도 이젠 없어졌군. 밥, 식당이 계속 남아 있었더라면 그때처럼 저녁식사를 할 수 있을 텐데. 그건 그렇고 이 친구야, 그동안 서부에서 어떻게 지냈나?”

“대단했지. 바라는 건 모조리 손에 넣었지. 지미, 자넨 많이 변했군. 예전보다 2,3인치는 더 커 보이는걸.”

“아, 그래. 스무 살이 넘어 조금 더 컸네.”

“지미, 뉴욕은 살만 한가?”

“그저 그래. 나는 시청에서 근무하고 있네. 여보게 밥, 내가 잘 아는 곳으로 가서 지난 얘기나 나누세.”

두 사람은 서로 팔짱을 끼고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서부에서 온 사나이는 한 재산 마련한 것을 자랑스러워하며 한바탕 무용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새로 온 친구는 외투에 얼굴을 폭 파묻은 채 옛 친구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고 있었다.

저쪽 길모퉁이에 환하게 전등을 켜둔 약국이 있었다. 두 사람은 불빛 속으로 들어오자 약속이라도 한 듯이 얼굴을 보려고 동시에 몸을 돌렸다.

갑자기 서부에서 온 사나이가 걸음을 멈추고 팔짱을 풀었다.

“당신은 지미 웰스가 아니야.”

그가 매섭게 말했다.

“아무리 20년의 세월이 길다고 하지만 매부리코를 들창코로 만들 수는 없지 않는가?”

“그러나 20년의 세월은 선량한 사람을 악한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지.”

키가 큰 사람이 말했다.

“이보게, 멋쟁이 밥! 자넨 이미 10분 전부터 체포된 몸이네. 시카고 경찰 당국에서 자네가 이리로 왔을지도 모른다고 전보를 보냈어. 순순히 따라오겠나? 그렇다면 다행이네. 경찰서로 가기 전에 자네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 받은 쪽지를 주겠네. 창문 밑에서 읽어 보게나. 웰스 경관이 보낸 거네.”

서부에서 온 사나이는 작은 쪽지를 건네받아 펼쳐 들었다. 쪽지를 읽기 시작할 때에는 끄떡도 하지 않던 그의 손이 다 읽고 나자 가볍게 떨리기 시작했다. 쪽지의 내용은 간단했다.


밥에게


난 정각에 약속 장소에 갔었네. 그러나 자네가 담배에 불을 붙이려고 성냥불을 켰을 때, 시카고 경찰 당국이 지명 수배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네라는 걸 알았네. 차마 내 손으로 자넬 체포할 수 없어서 사복형사에게 부탁한 걸세.


-지미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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