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무서운 스토리
한... 10년 전 쯤 이야기이다. 정확한 때를 밝히기는 좀 그렇다. 당시 질풍노도의 시기여서 그런지 몰라도, 하루하루가 너무 따분하고 지겨워서 차라리 죽고 싶었다. 누군가 나를 괴롭히는 것도, 뭔가 문제가 있거나 힘든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우울하고 기분이 좋지 않은게 몇날 며칠이 지나자, 이러다 미칠 것 같아 훌쩍 떠나기로 했다. 어디가 좋을까 고르던 중 아직 크게 개발되지 않았던 삼척이 괜찮겠다 싶어 무작정 삼척으로 떠났다. 아직 고등학생이고, 딱히 크게 돈을 모아놓은것도 없으니 오가는 차비 외에는 돈이랄 것도 없어 삼척에 도착하자마자 그곳 대합실에서 잠을 청했다. 그러다가 12시 쯤 되자 경비 아저씨가 쫒아내더라. 이른 여름이었지만 참 더웠던 기억이다. 밤에도 열대야로 힘들었는데 삼척은 바다가 근처라 그런지 바람이 시원했다. 털래털래 무작정 바다가 있을 곳 같은 곳으로 걸었던 것 같다. 그리고, 1시간 쯤 걸었나? 정말 길을 잘못들어 산에 들어가고 별 이상한 짓을 다 하고 심지어 5미터 정도 되는 절벽까지 기어내려가고 하천을 맨몸으로 건너는 미친짓 이후 어찌어찌 바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금은 그 곳에 이사부 공원이라는게 생겼다는데 당시에는 그냥 민박집 몇개가 고작이었고 멀리에 동해가 보이는게 전부인 적막한 해변이었다. 관광객 시즌인데도 불구하고, 정말 사람이 없는 깨끗한 바다. 한참을 바다에 앉아 구경하다가 이윽고 피곤하여 잘 곳을 찾기로 했다. 근데 뭐 돈이 있나 뭐가있나? 심지어 집에 연락조차 받기 싫어 핸드폰 까지 두고 와버린 상황이라 자는건 고사하고 밥도 먹기 어려운 처지였다. 배도 고프고 졸립기도 하니 갑자기 집이 그리웠다. 하지만 나온지 하루밖에 안되서 들어가는 것도 자존심이 상했다. 최소한 며칠은 이 곳에서 지낼 생각이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다시 걸었다. 아무리 여름이라도 반팔에 반바지 차림으로 해변에서 자는건 무리였다. 시간은 새벽 3시. 정말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스산한 바람만 부는 작은 이차선 도로를 따라 언덕을 넘었다. 여기를 통해 걸어가면 삼척시내로 나갈 수 있었다. 근처에 불 꺼진 민가들이 많이 보였는데, 그것들이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라는건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래 폐가였다. 생각해보니 어릴 적 동네에서 친구들과 놀던 폐가에는 옷가지와 이불까지 남겨놓고 가 친구들과 가족놀이 같은것도 하곤 했던 것 같다. 그걸 본 동네 할머니가 깜짝 놀라 뛰어와 우리를 혼내고 심지어 무당에게 데려가 쌀까지 뿌리는 짓까지 당했었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폐가에 들어가 자는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허약한 문을 열자 기름칠을 오래 하지 않아서 생기는 끼익 거리는 경첩 닳는 소리와 실리콘이 닳아 싸구려 유리가 샤시와 부딪히며 들리는 소음이 귀를 괴롭혔다. 집은 깨끗했다. 사실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혹시 불이 켜지려나?" 그래도 알 수 없는 한기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때문에 주머니에 들어있던 일회용 라이터를 들어 불을 켜고 안방인 듯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안방 역시도 폐가 특유의 약탈당한 흔적 같은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여성용 화장품들이 먼지가 소복하게 쌓여 거울 앞에 진열되어 있고 오래되어 보이는 가짜 자개장 문 한편이 열려있을 따름이었다. 자개장에 가자 이불들이 들어있는게 보였고, 이것들을 꺼내 안방에서 잘 까 싶었다. 혹시 벌레 같은게 이불속에 수십마리 있는게 아닌가 싶어 휙 하고 잡아 당겨 보았지만 다행히 그런것은 전혀 없었고, 곰팡이가 슨 흔적 같은것도 없었다. '하긴... 한 여름에도 이렇게 추운 곳이라면 의외로 습도가 높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전혀 상관없는 얘기겠지만. 이불을 들고 방에 깔려는데 이상하게도 이 방에서는 절대 자고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너무 피곤하고 힘이드는데도 안방은 뭔가 알 수 없는 한기가 있었다. 때문에 꺼낸 이불들을 들고 다른 방으로 옮겨갔다. 집의 구조가 안방과 작은방이 있는 그런 구조였고, 그 방 사이에는 밖과 그대로 연결된 마루? 뭐 그런게 있었다. 그 마루를 지나 작은 방으로 갔는데 이 작은방은 안방보다 더 깨끗했다. 이 방은 아기가 쓰던 방인지 천정에 모빌이 달려 있었고, 벽에는 미키마우스니 기린이니 하는 스티커들이 붙어있었다. 그걸보니 이 방은 그다지 무섭게 느껴지지 않아 바닥에 두꺼운 이불을 깔고 얇은 이불을 어깨에 걸친체 벽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엄청 피곤했는데도 그다지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도 잠을 자둬야 내일 또 일어나 뭐라도 하겠다 싶어 꼭 눈을 감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처다보는 느낌이 확 오더라. 그것도 내 바로 앞에서 말이다. 눈을 뜨지 않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뜨면 뭔가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눈을 감고 있으면 도망도 못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성과 감성의 싸움이랄까? 그런 소모적인 싸움을 속으로 계속 하다가 이내 이성이 승리했고 난 눈을 천천히 떴다.
"어..." 뭔가가 내 눈 앞에 갑자기 들이닥쳤다. 커다란 눈이 나를 아래서 올려다 보았다. 어린아이였다. 비명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아 그대로 헛바람을 들이키고 그저 눈을 뜬 상태로 내 무릎 근처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처다보는 아이를 그냥 같이 마주보고 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커다란 눈을 가진 아이는 한참을 나를 처다보다가 씨익 웃었다. 그 입꼬리가 잔뜩 찢어지며 누렇게 보이는 치아들이 드러났는데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기괴한 모습이었다. 눈은 마냥 커다랗게 뜬 그 상태로 나를 처다보고 입은 잔뜩 찢어져 입가로 침을 질질 흘렸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그저 계속 내 얼굴만 보며 귀까지 찢어진 입으로 웃어댔다. 녀석은 얼굴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내 시선에서는 절대 벗어나지 않고 날 놀리는 것 처럼 내 얼굴을 훑어봤다. 얼마나 그렇게 움직였을까? 녀석은 이내 마치 기계가 턱 하며 멈추는 것 처럼 멈춰서더니 이내 그 찢어진 입을 벌렸다. 새카맣고 끝도 보이지 않는 어둠 같은 곳으로 녀석의 치아에 고여있던 침들이 절벽으로 떨어지는 폭포들 처럼 줄줄 흘러들었다. 날 먹으려는건가? 도저히 버틸 수 없는 공포에 차라리 졸도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조차 없었다. 그때... 밖에서 문이 열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아니 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아마 이 소리로 보면 안방이 열리는 소리가 아닌가 싶었다. 그러자 날 처다보던 녀석이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하더니 후다닥 사라져 버렸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바라보았지만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떻게 해야할까 싶었지만 그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문을 열고 나갈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창문을 열고 나갔다. 오래된 집이라 창문이 작았지만 그래도 나 하나 나갈 정도는 충분했다. 낑낑거리며 창문 밖으로 나가자 이번에는 작은방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들리는 목소리... "우리 아기 어디갔니? 또 숨었니?" 소름 돋는다. 빌어먹을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그 병신같이 생긴 녀석이 겁에 질려 튈 정도면 지금 작은 방에 들어온 녀석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창문 밑에서 입을 손으로 막고 숨조차 쉬지 않은체 작은방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가~ 우리아가 맘마먹어야지?" 엄마인가? 언제든 아까 걸어가던 길로 달릴 준비를 하고 2차선 도로쪽을 바라보는데 아까 그 눈깔 커다란 녀석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섬뜩한 기분이 내 머리위에 느껴졌다. 달릴까?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도 얼마 되지 않아 모든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확 밀려나고 아무생각도 나지 않았다.
눈에서는 계속 눈물이 흐르고, 턱은 경직되어서 이빨이 부러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움직이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을 정도였다.
뭔가에 끌려 올라간 것 처럼 위를 올려다보자 잔뜩 산발한 머리에 아까 내 눈 앞에서 얼쩡거리던 녀석과 비슷하게 커다란 눈에 찢어진 입을 한 아마도 여자이지 않았을까 싶은 뭔가가 긴 허리를 창 밖으로 내밀고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넌 누구니?" 그때 갑자기 마법이라도 풀린 것 처럼 몸이 벌떡 일어나 길가로 달렸다. 풀들이 발을 붙잡고 뒤에서 금방이라도 그 괴물의 손이 내 목을 낚아챌 것 같았지만 다행히 난 길에 닿을 수 있었다. 아스팔트 위에 올라서자 거의 50미터는 되는 거리를 숨조차 쉬지 않고 뛰었는지 폐가 찢어질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건 중요치 않았다. 그 거리를 달려 처음으로 뒤를 돌아보았는데 창문은 닫혀있었고 대신 작은 방 쪽에서 아까 그 산발한 머리의 괴물이 천천히 몸을 빼고 있었다. 마치 긴 뱀처럼 보이는 그것은 하얀 옷을 입고 있었는데 한참을 몸이 빠져나오는 것 같은데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어서면 키가 5미터는 훌쩍 넘지 않을까 싶다. 난 그 모습을 보자마자 다시 산길을 달렸다.
그것은 좀비처럼 내게 손을 뻗으며 날 따라 걷고 있었고 나는 미친듯이 달릴 따름이었다.
난 그대로 삼척시내 경찰서로 달려갔고 온 몸이 피투성이인 나를 보고 경찰이 깜짝 놀라 동해에 있는 병원으로 경찰차를 타고 갈 수 있었다.
동해로 가는 차 안에서 나는 길 가에 서서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딜가든, 어떤 산을 지나치든 녀석은 먼 발치에 서서 나를 처다보는 걸 알 수 있었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여 경찰들이 부축하여 응급실에 들어가는 와중에도 멀리에서 녀석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엊그제 화력발전소 공사에 지반문제가 불거지며 시공문제를 맡은 우리 회사가 나를 파견하기 전 까지는 말이다. 세달간 이 지역에 있어야 했기 때문에 근처 원룸을 하나 빌려서 들어왔다. 그리고 이제는 강원대 때문에 사람이 많아져 왁자지껄한 삼척시내를 바라보다가 가끔 담배한대 피며 먼 발치에 보이는 산등성이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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