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사를 갔다.
이사한 곳은 이사 전의 집에서 대략 도보로 30분 위치에 있었다. 그렇게 먼 거리로 이사간 것은 아니었다.
전에 살던 집 보다 더 연식이 덜 되었고, 꽤나 깨끗하게 인테리어 된 집이었다. 비록 오피스텔이지만, 마음에 든다.
실평수는 대략 13평. 혼자 살기엔 적당한 크기고, 전에 살던 집주인이 워낙 깨끗하게 써 따로 벽지를 바를 일도 없었다.
입주 청소가 끝난 뒤, 이삿짐 정리까지 끝나자 피곤함이 밀려와 잠든 나는 꽤나 괴상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사간 집은 14층이었는데, 창문 쪽에서 자꾸만 콩- 콩-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 돼 슬쩍 일어서서 창문을 보니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창 밖으로, 시커먼 물이 가득한 바다가 펼쳐져 있는 것이다. 세상엔 아무것도 없고, 그저 황량하고 시커먼, 물만이 존재했다.
그 까만 물 속에서 샛노란 두 개의 눈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화들짝 놀라서 깨 보니, 역시나 꿈이었다.
밖에는 비가 우렁차게 내리고 있기에 역시 꿈이었거니, 하며 밖을 본 나는 흠칫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냥 비가 아니라,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 처럼 내리고 있었으며 저 아래에는 이미 물난리가 나 있었던 것이다.
대폭우로 청주가 물에 잠긴 날이었다.
그야말로 온 세상이 물바다였다. 1층으로 내려가서 건물로 나가려고 보니, 1층에도 침수가 한창이었다.
갖가지 물건이 떠내려오고, 전기는 일시적으로 끊겼다. 지옥같은 폭우가 며칠은 이어졌던 것 같다.
그 날이 지나고, 며칠간은 아무 일 없었다.
약 1주일 쯤 뒤.
나는, 다시 기묘한 것을 보게 되었다.
내 방의 침대 위에 누워 있었는데, 웬 짧은 머리의 꼬마가 깔깔거리며 내 오른쪽 어깨 위에서 뜀뛰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마치 피에로처럼 활짝, 아주 비정상적인 표정을 지으며 깔깔거리는 목소리가 귀에 선명히 박혀 깨어 보니 역시나 꿈이었다.
평소 나는 어깨 통증이 심한 편이다. 오른쪽 날개뼈가 내려앉았기 때문인데, 그 곳의 욱신거림이 유독 심해 몸을 일으켜 앉았다.
날은 밝아 있었고, 늘 그렇듯 세상은 조용했다. 아침을 사 먹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가던 나는, 단발머리의 꼬마가 엄마와 함께 타는 것을 보았다.
순수하게 생긴 아이는, 맹세코 처음 보는 아이였다. 티 없이 맑고 예뻤는데, 꿈에서 본 그 아이였다.
몇층 사냐고 물어보았더니 12층에 산단다. 아이가 나를 보며 웃는데, 그 깨끗한 미소를 보며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꽤나 기묘한 일이었다. 본 적도 없는 12층 꼬마를, 꿈 속에서 보다니. 옷도 그렇다. 초록색 땡땡이가 들어간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그 옷도. 까만색 에나멜 구두도, 또 머리띠도 너무나 익숙했다.
나는, 기묘한 공포에 사로잡혀 그대로 도망쳐 버렸다.
그날 밤.
다시 꿈을 꾸었다.
이번에는, 낯선 방에 서 있었다. 나는 마치 게임의 관찰자 시점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는데,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방의 천장에, 바닥을 보며 딱 붙어 있는 자세라고 추측된다.
방 안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중년의, 원형탈모가 심하고 수염을 기른 아저씨가 식칼을 든 채 누군가를 푹 푹 찌르고 있었다.
푹- 푹- 푹- 푹-
그 소리가 어찌나 섬뜩한지, 귓가에 생생했다. 찔리는 이는, 중년의 여성이었다. 머리가 길고, 화장이 진한 여자다.
여자는 활짝 웃고 있었다.
아저씨는 한참 동안이나 여자를 찌르다, 벌떡 일어서서 식칼을 든 그대로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리고, 옆집 초인종을 연신 누르기 시작했다.
문 번호가 보인다. 1419호.
아저씨의 집은 1418호가 분명했다. 그리고, 1419호는 내 집이었다.
깨어 보니, 역시나 꿈.
세 번이나 개꿈을 꾸다 보니, 어쩐지 섬뜩해졌다.
띵동-
그 순간,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초인종이 울린 것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덜덜 떨며, 문 앞에 섰다.
-누구세요?
-아, 안녕하세요. 18호입니다.
나는 문에 설치된 렌즈를 통해, 밖을 보았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 아저씨와, 그 뒤에 아주머니가 보였다.
-무슨 일이세요?
-아, 다름아니라 저희가 다음주부터 이틀간 공사를 할 것 같아서요. 양해를 구하러 왔습니다.
어쩐지 맥이 풀려, 문을 열어 주었다.
부부로 보이는 그들은 한 손에 작은 과일 접시를 들고 있었다. 잘 썬 수박이 한 접시.
아줌마가 활짝 웃으며 그것을 건네주었다.
-죄송해서 어쩌죠.
나는 그 미소를 본 적이 있다. 아줌마도, 아저씨도 처음 보았지만 그 미소는 보았다.
나도 모르게 억지 웃음을 지으며 과일을 받았다.
꽤나, 정신이 이상해져 가는 것 같았다.
그 뒤로, 꽤나 자주 꿈을 꾸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나와 괴기한 행동들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할머니 한 분이 내 등에 업혀 자꾸만 옥상으로 가자고 한 적이 있다.
옥상으로 향했더니, 그 곳에는 깎아지는 듯 한 낭떠러지가 있었다. 그러자 할머니가 나에게.
-학생. 저리로 내려가자. 내려가자.
하고 속삭이는 것이다. 꿈을 꾼 뒤, 퇴근길 엘리베이터에서 할머니와 마주쳤는데 3층에 사는 분이었다.
또, 어느 날은 웬 여자가 집 창문에 서서 하얗게 웃으며 손짓을 한다. 14층인데 말이다.
그 여자는 7층인가 8층인가에 사는 여자였다. 딱 보니, 나와 같은 고시생 같다. 물론 지극히도 평범한 여자였다.
그중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15층에 사는 아줌마였다. 혼자 사는지, 같이 사는지 알 길은 없지만 그녀의 집에는 강아지가 세 마리 있었다. 이건, 몇번 마주쳐 봐서 안다.
내 꿈 속에서, 아줌마는 자신이 키우는 개들에게 뜯어 먹히고 있었다.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개들이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아줌마를 뜯어먹는 모습이란...... 진짜로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솔직히 이쯤 되니, 무서워졌다.
인간 불신이나, 정신병에 걸릴 것 같았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이 꿈 속에선 그렇게 돼 있으니, 내가 잘못된 건가, 나쁜 생각만 하고 사는 건가- 에 대한 자책까지 드는 것이다.
진지하게 이사를 고려해 보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분명히 손해를 보겠지만, 여기로 이사온 뒤로부터 겪는 이 기묘한 현상들을 버티기가 힘들어 갈 때 쯤.
그러니까 오늘.
간만에 대학 동기를 만나 과음을 하고 돌아온 날, 다시 꿈을 꾸게 되었다.
이번엔, 아주 예쁜 여자가 나왔다.
그녀는, 레이스가 가득한 자신의 방에서 웬 남성과 성행위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유독 기억이 나, 나는 꽤 놀랐던 것 같다.
성행위가 끝나자, 그녀는 남성으로부터 돈을 받았다. 5만원 지폐, 3장.
남성이 집에서 나가고, 그녀가 돌아섰는데. 이게 웬 걸?
그녀의 엉덩이 부분에 하얀 꼬리가 나 있는 것이다. 마치 고양이 꼬리 같기도, 여우 꼬리 같기도 한 꼬리가.
그녀는 침대에 웅크려 앉더니, 낮은 목소리로.
갸르릉- 그르르릉-
하며 울음 소리를 냈다.
꿈은 그게 끝이었다.
잠에서 깬 나는, 시계를 본다.
이 글을 작성하기 시작한 시각, 대략 오전 3시 4분.
술기운이 아직 남아 있는데도 굳이 글을 작성하는 이유는, 어쩐지 잠이 오지 않아서다.
의외로.
이사를 굳이 갈 필요가 없을 지도-
출처 : 루리웹 루리웰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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