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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쓸모 없는 것

title: 연예인13라면먹고갈래?2015.10.24 10:06조회 수 1303추천 수 1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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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무렵,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셨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날 제대로 한 명의 사람으로 다루어 주셨다.

 

어렸던 나는 못하는 게 많았고, 그때마다 아버지는 화를 내셨다.


나는 도움도 안되는 '쓸모없는 거'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난 아버지와 성격이 닮았다고 하던데 아버지는 나를 탓하기보다는 나를 통해서 자기 자신을 탓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똑똑한 아버지를 무서워 하면서도 좋아했고, 아버지는 기분이 좋으시면 나와 많이 놀아주셨다.

 

그런 아버지가 암으로 인해 쇠약해지시고, 점점 한 사람의 몫을 해내지 못하게 되셨다.

병이 가져오는 아픔은 상당한 것이었는지 아버지는 괴로움 때문에 자주 몸부림을 치셨다.

 

그러나 나에겐 의학적인 지식 같은 건 없고 고통도 정확하게는 몰랐기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괜찮아요?"라는 말을 되풀이하는 의미도 모르게 되고, 나는 그저 멍하니 있는 것처럼 담담하게 되어갔다.


그리고 그쯤, 아버지의 성격도 점점 비뚤어졌다.


분명 병이 가져온 아픔의 탓이었다고 생각해.


아프지 않으실 때에는 그래도 그때보다 좀 더 나았으니까.

 

어머니의 귀가는 늦으므로 아픔이 가장 심할 땐 언제나 나와 아버지, 이렇게 단 둘 뿐이었다.


고통 때문에 사람 한 명이 해낼 수 있는 일도 못하게 되고,

셩곡도 우울하게 된 아버지에게 나는 병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굉장히 실망했다.

 

그때의 아버지는 식사를 해도 자주 토하셨는데,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다고 종종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뭔가 먹는 걸 좋아하셨으므로, 정말 그쯤부터는 성격이 확 비뚤어지셨다.

 

그런 아버지가 나에게 '나는 병자니까 잘 모셔라'라는 말씀을 하셨다.

확실히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그때 처음으로 자각한 감정이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였다.

 

내가 어렸을 적, 할 수도 없는 걸 억지로 시켜져서 실패하면 '쓸모없는 것'이라고 욕을 먹었던 게 꽤나 트라우마였다.

 

쓸모없는 건 버린다. 아버지는 자주 물건을 버리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나도 언젠가 버려질 거라고 떨던 것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키워주신 부모님에게는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아파하는 아버지에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에게,


나는 쓸모없는 거라고 만성적으로 업신 여기며 욕했던 점이나

아버지의 말도 있어서 꽤나 지친 터라 이성을 유지할 수 없었다.

 

지금은 자신만 지키려고 했던 내가 완전히 나빴다고 생각해.

아버지에게는 정말로 죄송스러운 일을 했어.

 

아버지를 향해 '쓸모없는 거'라고 말하며 엄청 웃어버렸거든.

그때 아버지가 하신 얼굴을 잊을 수 없어.

아버지에게 마지막 일격을 날린 건 분명, 바로 나다.

 

아버지는 그로부터 2주일 뒤에 돌아가셨다.

 

나는 슬픔보다도 드디어 자유가 된 것 같아서 상쾌한 기분이었다.

거기에 대해서도 자기혐오는 꽤 있었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안심했다.

 

그리고 1주기가 끝난 밤, 나는 아버지를 먹는 꿈을 꿨다.

피가 도는 스테이크, 큰 뼈에 달라붙은 고기, 내장 꼬치구이. 이걸 전부 다 먹고 나니

디저트로는 아버지의 머리가 캬라멜 소스랑 이것 저것이 뿌려진 상태로 나왔다.

 

꿈속에서 나는 자신이 먹은 고기가 아버지의 고기라는 걸 알면서도

아무런 생각없이 그걸 다 먹었다. 얼굴의 고기를 나이프로 자르고,

접시에 놓여진 소스에 찍어서 먹었다. 달고 즙이 많은 그걸 다 먹었다.

뇌부터 등뼈의 골수까지 부드러운 부분은 전부 다 먹었다.

 

그리고, 거기서 난 눈을 떴다.

 

잠에서 깨어 나니 이불이 피투성이였다.

일어나려고 손으로 이불을 잡으니 느껴지는 격통.

아무래도 나는 자신의 팔을 먹어버린 듯했다.

 

침실에 있던 거울을 보면 입가가 피투성이가 된 내가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 병원에 가니, 깊지는 않았지만 패여져 있었다.

 

역시 먹고 있었구나.

 

아버지가 나를 혼낸 건가, 내가 이상한 건가, 잘 모르겠어.

아마 후자가 아닐까. 지금은 내 역사상 이게 제일 무서운 이야기.

 

지금은 다니고 있지 않지만 상담을 받은 적도 있어.

 

아버지는 약간 의료에 가까운 직장에 다니셔서 입원은 꺼려하셨는데

내가 폭언을 내뱉은 그 다음날에는 입원하셨지.

 

입원한 뒤의 아버지는 마취약으로 인해 온화하게 되셔서 옛날의 아버지로 돌아간 것 같았어.

 

돌아가시기 며칠 전부터 의식이 몽롱해지기 시작했고,

마지막 순간에는 날 향해 눈을 크게 뜨고 뭔가 열심히 말하려고 하셨지만

목소리 자체가 나오지 않았고, 그러다가 얼마 되지 않아서 돌아가셨어

간호사가 말하기를, 마취약에는 마약이 들어가 있으니 그런 일은 흔하다고 했지만

아버지가 눈을 크게 번쩍 뜬 모습도 꽤나 무서웠어.

 

건조해져서 푸석 푸석해진 각막으로 이쪽을 째려보는데 마치 반사체 같은, 그런 느낌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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