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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의 엘리베이터

title: 풍산개안동참품생고기2015.12.03 10:38조회 수 1070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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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Y현에 자리한 회사에 다니면서 평일은 회사 기숙사에서 지내고,

주말에는 집으로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입사한 사회초년생이라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잘은 알 수 없었지만

요근래에 회사가 상당한 급성장 곡선을 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두달 전부터는 주말 오후근무가 끝나면 부서원들끼리 회식을 하고

본가로 돌아가게 되는 상황이 매주마다 벌어졌다.

술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아주 감사한 일이었다.



그날 밤도 거나하게 취한채 본가의 아파트로 들어왔다.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마침 우산을 잊고 오는 바람에 차에서 내려 아파트 입구로 오는 동안 내 머리카락과 윗옷이 비에 젖어버렸다.

다행히도 엘리베이터는 1층에 있었다.

본가는 꼭대기 바로 아래층인 16층.

엘리베이터 양쪽에 있는 거울을 보며 빗을 꺼내 머리를 매만지고 나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장난을 쳤다.

나는 어릴적부터 평행하게 놓인 거울 사이에서 같은 광경이 무한히 반복되는 것을 참 좋아했었는데

그날도 역시 엘리베이터의 좌우 거울 사이에서 내 모습이 무한히 반복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거울속 저 깊은곳 어딘가에서 붉은 빛이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뭔가 이상해서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했지만 그 빛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난 곧 그 일을 잊어버렸다.



다음주 토요일.

비가 내리고 있어서 밖은 아주 캄캄했다.

또 우산을 잊고 오는 바람에 비를 맞으며 아파트로 뛰었다.

「내가 우산을 회사에 뒀었나, 기숙사에 뒀었나」

회식자리의 술때문에 머릿속이 희미했다.

마침 엘리베이터가 1층에 있어서 「잘됐구나」하고 얼른 올라탔다.

거울을 보며 빗을 꺼내 머리에 빗질을 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붉은 빛이 번뜩였다.

무한히 반복되고 있는 내 모습들 중 아주 작은 하나가 피묻은 칼을 들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빗을 떨어트리고 말았는데, 그때 거울속의 나도 피묻은 칼을 떨어트리고 있었다.

하지만 바닥에 떨어진 것은 그냥 평범한 빗이었다.

다시 거울을 보았지만 역시 거울속에 비친 것도 평범한 빗이었다.

「내가 술에 많이 취했나」

약간 꺼림칙했지만 역시 이 일도 금방 잊어버리고 말았다.



다음주 토요일.

비가 내리고 있었고, 밖은 어두웠고, 나는 우산을 갖고 있지 않았다.

아무리 우연이라도 이정도가 되면 불안한 상상을 하게 되는게 당연하다.

엘리베이터는 1층에 있었다.

아파트 내부는 빗소리만 제외하고는 아주 고요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6층을 눌렀다.

그리고 잠시 고민을 하다 빗을 꺼내 머리를 빗었다.

거울속에서는 지난번보다 더욱 더 가까운 자리에 있는 나의 모습이 피묻은 칼을 들고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가까운 위치라 똑똑히 그 모습을 지켜볼수 있었다.

앞에서 일곱번째 위치였다.

나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못하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아무거나 마구 눌러서 그 층에 바로 내린 다음에

우리집까지 단숨에 뛰어 올라갔다.

「너 무슨 일 있었니?」

어머니께서 근심스런 얼굴로 물어오셨지만 솔직히 대답할 수 없어서 그냥 비가 많이 와서 달린거라고 대강 얼버무렸다.

엘리베이터 안에 내 빗을 흘리고 온것을 뒤늦게 깨달았지만 다시 가지러 갈 용기는 없었다.



그 다음주.

엘리베이터속의 모습이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다.

고민하다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서 토요일엔 절대로 집밖에 나가지도 말고

혹시라도 어쩔수 없이 밖에 나가게 된다해도 엘리베이터는 타지 마시라고 말씀을 드렸다.

사실대로 말하면 그냥 농담으로 받아들일까봐 불길한 꿈을 연속으로 꾸었다고 그렇게 둘러댔다.



토요일.

회사가 있는 Y현은 맑은 날씨였지만 본가로 돌아오니 역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우산이 없었고, 아파트 내부는 조용했다.

빗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이번에도 엘리베이터는 1층.

엘리베이터의 저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나를 정신병자라고 욕해도 좋다.

어쨌든 나는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와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반대쪽 벽에 바싹 붙은채로 계단을 올라갔다.

자꾸만 뒤에서 누군가 쫓아오는 느낌이 들어서 정신없이 달렸다.

숨을 헐떡거리며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께서는 TV를 보고 계셨다.

「너 옷이 왜 그래?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 말에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양복 어깨와 소매가 다 찢어져 있었다.

아마도 벽에 몸을 붙이고 올라오는 바람에 그렇게 된 모양이었다.

혹시 집에 무슨 일이 있었나 여쭤보았는데 오늘은 특별한 일이 없어서 그냥 집에만 계속 계셨고 아파트에도 아무런 일이 없었다고 하셨다.

「너 대체 무슨 꿈을 꿨길래 이렇게 호들갑이야?」

술때문에 머리가 아파서 내일 말씀드린다고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긴장이 풀려 침대에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일요일 아침.

아파트는 난리가 났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시체 2구가 발견되었다.

최초의 발견자는 아파트 청소하는 아주머니.

경찰이 CCTV를 판독한 결과,

한 청년이 칼을 들고 엘리베이터 입구쪽 구석에 붙어서 몸을 숨기고 있다가 엘리베이터로 들어오는 중년남성을 칼로 찔러 살해하고

자신도 목을 찔러 자살했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아파트 주민이었고, 평소에 아무 문제도 없었으며 서로 모르는 사이라고 했다.

나는 그제서야 어머니께 모든 것을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어머니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착각한거 아냐? 엘리베이터 거울은 지난달에 누군가 깨버려서 한쪽밖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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