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을의 거지
이 이야기는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유치원대신 할머니 댁에서 지낼 때 겪어본 일이다.
우리 마을엔 거지가 살고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 마음으로 동네 아이들과 거지라고
놀려댔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하지만 집만 없을 뿐이지 마을의 허드렛 일을 이것 저것 하면서
마을 사람들과 친분도 있고,
마을 교회도 다니는 그런 착실한 분이셨다.
그땐 왜 그 아저씨를 놀렸는지....
사건은 내가 숲속에 들어간 따스한 봄에 일어났다.
난 동네 애들과 내기를 해서 숲속에서
사슴벌레를 잡아 오는 것으로 하였다.
그 내기에서 걸려버린 난 숲속에서 사슴벌레를 잡기 위해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 마침내 내 시야에 포착된
사슴벌레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게 사슴벌레를 잡고 돌아 가려는데
저 앞에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서 있었다.
나빈가? 하고 무지 크다~
(그 때 생각나는 것에 의하면..;)
저것도 잡아서 애들에게 자랑할 생각으로 가까이
다가가는데 그것이 뒤로 도망치는 거였다.
필사적으로 잡으려고 뒤쫓았다.
점점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른 채...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 그것은 완전히 모습을 감추어버렸고.
난 너무 깊이 들어왔다는 당황감과 공포감에 엄청나 게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젠 해도 지고.. 달이 떴을 땐...
나무 둥치 아래에서 벌벌 떨었다..
근데 어디선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찾아보니 부르는 소리를 듣고 그 쪽으로 향했다.
누군가 구해주러 왔다는 희망을 안고..
점점 그 소리를 향해 다가가는데 뒤에서 우악스럽게
날 끌어당기는 손길이 느껴졌다.
난 위를 처다보고 그대로 기절했다.
일어나보니 할머니댁의 내 방이었다.
주위엔 마을 이장님, 목사님, 가족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찌된 일인지..
어른들은 침묵했고..
내가 20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기억하지 못 하는
일들에 관해 이야기해주셨다.
그 거지 아저씨가 숲의 지리를 잘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날 찾는데 도움을 주셨고...
내가 절벽으로 떨어질려는 찰나 날 구해주신 것이다.
근데 그 때 어렴풋이 기억난다.
허공을 향해 뭐라고 중얼거리던 아저씨의 모습을.
'이젠 사람 그만 홀리고 좋은 곳으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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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이 되고 한 달 전에 그 아저씨가 고인이 되셨다고 하네요..
사실 그 아저씨는 상당한 재물이 있었는데,
아들들이 다툼이 심해 우리 마을에서 지냈다고 합니다.
부디 하늘에선 편하게 지내시길 바랄게요.
지금의 경주인 서라벌에 살고있던 어떤
노파 한 사람이 죽어서 염라대왕 앞에 끌려나갔다.
염라대왕은 남루한 차림의 노파를 훑어보고 나서 묻기 시작했다.
" 네가 살던 곳은 어디냐? "
" 신라 서울 서라벌이옵니다. "
" 지금까지 해 온 일은 무엇이지? "
" 별로 한 일이라고는 없사옵니다. 남편이 병으로 죽고 난 뒤 ,
아들 딸 오누이를 기르느라고 다른 일을 해볼 새가 없었습니다. "
" 그럼, 이만큼 늙도록까지 남들 다 하는 팔도강산
유람 같은 것도 한번 못 해보고 집만 지키고 있었단 말이냐? "
" 그렇사옵니다. "
" 개같이 집만 지켜왔다니....
원통한 생각은 들지 않느냐? "
" 제 자식을 위해서 희생하였는데
원통할 까닭이 있겠사옵니까! "
" 남같이 즐거운 일 한번 못 해 보고도 원통한 생각이 없다니..
너는 평생 집이나 지켜주고 사는 개밖에 더 될 것이 없겠구나. "
말을 끝마친 염라대왕은 `아나 -`
하고 부하 졸개들을 불렀다.
" 너희들, 이 늙은 것을 끌어내다가 개로 만들어
저 세상으로 돌려보내 주도록 해라! "
그런 일이 있고 난 뒤, 성이 성씨라고 하는 사람의
집 개가 새끼 한 마리를 낳았다.
개의 주인 성씨는 노파의 아들이었으니 죽은 노파는
아들의 집에 개로 태어난, 기구한 운명이었다.
그러나 정작 아들 성씨는 그런
내막을 알 까닭이 없었다.
다만 그 강아지가 날 적부터 영리하고 점잖았기 때문에
보통 개보다 소중하게 귀여워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강아지는 자라는 것도 보통 강아지와는 달라
얼마 안 가서 개가 되었고,
큰 개가 되어서는 미추룸하게 인물이 잘생겼을 뿐 아니라,
하는 일 모두가 짐승 같지 않게 신통해서 집안 식구들은
모두 그 개를 영물이라 불렀을 정도였다.
주인 식구들을 보면 누구에게나 꼬리를 살살 흔들면서 반가워했지만,
낯선 사람이나 조금 의심스럽다 싶은 사람이 오기만 하면
마구 짖어대고 덤벼들어서 도적들은 감히 들어갈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던 형편이었다.
개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몰랐다.
' 그 밉살맞은 놈의 염라대왕 때문에 내가 개로 이 세상에
환생한 것은 원통한 일이지만, 그래도 자식새끼 집에서 같이 있게
된 일은 불행 중의 다행이 아닐 수 없구나.
자식과 며느리와 손자들이 잘 살고 있는 걸 보면
내 마음은 더 없이 편하단 말이야 .. '
큰 손녀딸은 재 너머 윗마을로 시집을 가서 살고있고,
그 아래의 아들 둘은 모두 서당에 가서 글공부를 하고있고,
아들인 성 생원은 머슴들을 데리고 농사를 지으면서
궁색한 것 없이 하루하루를 잘 지내고 있는 터였다.
그러나 자식에 대한 부모의 마음은
태산같이 높고 바다같이 깊은 법. -
어머니인 개는 어떻게 하면 자식내외를 도와줄까
자나깨나 그 생각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개에게는 기가막힐 불행한 날이 찾아왔다.
불 같은 뙤약볕이 퍼붓고 있는 한 여름의 더운 날이었다.
이제 막 일을 마치고 들판에서 돌아와 우물물에 세수를
하고 난 성 생원은 아내를 보고 이런 말을 했다.
" 여보, 내일은 중복날이 아니오 ?
남들은 모두 개를 잡아 복달임을 한다고 난리법석이던데..
우리들도 집에서 기르는 저 개를 잡아먹으면 어떻겠소? "
며느리 역시 그 개를 과분하리만큼 아껴오던 터라
뜻밖의 소리에 놀라서 남편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 우리 집 개.. 개를요? "
" 요즘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몸이 나른해 개장국이라도
한 그릇 끓여먹어야 기운이 날 것 같구려.
집에서 기르는 개는 작은 강아지라도 한 마리 사서
기르면 되지 않겠소? "
며느리는 남편을 더 말릴 수 없고해서 알아서 하라며
남편이 시키는 대로만 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개 잡을 준비를 해놓고 개를 찾으니까
벌써 언제 도망을 친 것인지 아무리 찿아봐도
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었다.
골목에 나가서 불러보아도 소식이 없고,
자주 산보를 나갔던 시장에서도 백방으로 찾아보았으나
전혀 찾을 길이 없었다.
' 세상에 참 모를 일도 많구나...
그렇게도 주인의 말을 잘 듣던 개가 거짓말같이 행방이 묘연해지다니. "
그 날 아침. -
재 너머 윗마을에 시집을 가 있던 딸이
아침밥을 지으러 나가니까 어떤 개 한 마리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딸을 쳐다보며 반겼다.
" 어머. 이 개는 분명히.. 여긴 어떻게 왔니? "
첫눈에 보아도 그 개는 친정집 개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개는 딸이 서 있는 앞에 쪼그리고 앉으면서 끙끙
앓는 소리와 함께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 이상한 일이네.. 무슨 까닭이 있는게로구나! "
딸은 개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나서 따뜻한 밥을 먹여주고
마루 밑에다 멍석을 깔아 편안하게 쉬도록 해 주었다.
그러던 며칠 후.
성 생원이 집 마루에서 낮잠을 자고 있으려니까
꿈에 죽은 아버지가 나타나서 호되게 그를 꾸짖었다.
" 천하에 둘도 없는 이 불효막심한 놈아!
네놈은 어찌하여 네 몸과도 같은 어미를 잡아먹으려 했느냐! "
" 아니, 아버님 !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
소자도 도통 영문을 모르겠.. "
" 닥치거라 네 이놈 ! 이놈아, 네 집에서 기르던
그 개는 네 어미가 이 세상에 환생한 거란 말이다! "
' 이거 큰일 났구나! '
성 생원은 깜짝 놀라 잠이 깨어 일어나서도
정신이 아찔하고 하늘까지 빙빙 돌고있는 것 같았다.
" 그.. 그 개가 우리 어머니셨다니..? "
성 생원은 그 시간부터 온 식구를 총동원하여 개를 찾아 나섰다.
삼천리 팔도강산 방방곡곡이라도 돌아다니면서라도
그 개를 찾지않으면 안 될 형편이었다.
그러나 북산 밑 마을 전체를 훑어보아도,
남산 밑 마을 전체를 훑어보아도 개는 나타나 주지를 않았다.
그래서 다음 날은 재 너머로 가서 우선 딸네 집부터 들러,
" 어머니 ! 어머니 ! 혹시 여기는 안 계십니까? "
하고 외쳤더니 딸과 사위가 놀라서 버선발로 뛰어나왔다.
" 아니, 아버지! 어이된 일이십니까? 할머님은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시지 않았습니까..? "
그러고 있는 동안에 성 생원은 마루 밑에
누워 있다가 고개를 치켜든 개를 발견하고서
미친 듯이 달려가 부둥켜 안고 엉엉 울어댔다.
" 아이고, 어머님! 여기 계셨습니까! 이 천하의
불효막심한 놈을 물어 뜯어 주십시오! 어머니 .. 엉엉
앞으로는 좋은 음식도 장만해 드리고,
팔도강산 유람도 모시고 다니면서 전생에
못다한 효도를 해 올리겠습니다 .. 엉엉 .. "
그 소리를 듣고서야 딸도 그 사정을 깨닫고,
아버지와 함께 땅에 엎드려 울었다.
" 할머님, 할머님! 그런 줄을 알았더라면 더 맛난 음식도
올리고 집도 더 푹신한 집으로 올려드렸을 것을
이 철없는 손녀년이 그런 걸 몰라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풀어주십시오.. "
그 날로 개를 업고 집으로 돌아온 성 생원은 새로 좋은
개집을 마련해 모시고 고기를 사다가 푸짐하게 대접하였다.
" 어머니, 배가 덜 차십니까?
고기를 더 삶아 드릴까요? "
개는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먹는 것만
해도 충분하다는 뜻이었다.
" 어머니, 집은 괜찮으십니까? "
개는 또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이 집만 해도 더할 수 없이 편안하다는 뜻이었다.
-
다음 날부터 성 생원은 집안 일을 모두 부인에게
다 맡긴 채 개를 업고 팔도강산 유람길에 올랐다.
그래서 좋다는 절간은 다 찾아가보고,
좋다는 명승지는 다 찾아가 구경을 시켜드렸다.
가다가 목이 마를 듯 하면 물을 먹여드리고,
배가 고플 듯하면 밥을 사서 자기보다 먼저 드렸다.
개를 업고 다닌다 하여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와 비웃고,
지껄여댔지만 성 생원은 그런 것도 전혀 부끄럽지 아니했다.
어느덧 팔도유람을 다 마치고 고향길이 멀지 않은
곳의 고갯길을 넘어서자,
등에 업혀 있던 개가 끙끙끙 소리를 냈다.
성 생원은 그것이 잠시 쉬어가자는 소리인 줄
알고서 개를 땅에 내려놓았다.
" 종일 업혀 오시느라 어머니도 고단하십니까?
그렇지만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서라벌에 도착합니다. "
그러고 나서 허리에 차고있던 수건을 끌러 땀을 닦고
바람을 맞으며 잔디 위에 드러누웠더니 너무 피곤했던 탓이었을까.
성 생원은 깜빡 잠이 들어버렸다.
얼마 뒤에 눈을 떠보니 개가 온 데 간 데 없었다.
" 아니 .. 어머니께서 어디로 가신 거지..? "
일어서서 어머니를 부르며 찾아보았더니
개는 제발로 구덩이를 파놓고서 그 안에 들어가 자는 듯이
죽어 있었던 것이었다.
" 아이고.. 아이고 - ! 어머니!! 왜..
왜 이러고 계십니까.. 어머니.. 어머니 .. - ! "
성 생원은 개를 끌어안고 목을 놓아 울었지만
한 번 가 버린 목숨은 다시 돌아올 길이 없는 것.
성 생원은 그 자리에 큰 무덤을 쓰고
뒷날에는 비석까지 세웠으나,
지금은 몇천 년이 흐른 뒤라 비석은 남아있지 않는다. -
미친 인간이 제일 무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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