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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털뽑기

패륜난도토레스2024.03.09 18:18조회 수 366추천 수 1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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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미가 요즘 이상해졌다.
좋아하는 남자아이로부터 '콧수염이 있어서 싫다'는 말을 들은 후로, 틈만 나면 털을 뽑아대는 것이다.
트라우마라기보다는 인중에 난 털을 전부 뽑고 난 뒤로 털 뽑는 데 재미가 들렸다고 한다.
선미의 털뽑기는 수업시간에도 멈추지 않아서 선생님께 지적을 받기도 여러 번이었다.
뒤에서 안좋은 말을 듣는 것은 물론이고.
점점 같이 다니기가 창피해질 정도다.

 


"선미야.. 털 뽑는 것 좀 그만하면 안 돼?"

 

"왜? 털 뽑는 게 얼마나 재미있다구."

 

 

선미는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세심하게 손가락 털을 뽑고 있다.

 

 

"제발 그만 좀 해. 너 이제 뽑을 털도 없잖아. 머리카락까지 뽑으려고 그래?"

 

"아니.. 아직 많이 남았는걸. 계속 자라기도 하구"

 

"...후우...."

 

 

그때 막 점심식사를 마친 여자아이들이 교실로 들어왔다.

 

 

"와.. 쟤 좀 봐. 밥도 안 먹고 털 뽑고 있나봐"

 

"으엑... 역겨워"

 

"미현인 저런 애랑 왜 같이 다닌대니?"

 

 

자기를 욕하는 소리에도 선미는 눈길 한 번 안 주고 묵묵히 털을 뽑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부끄럽고 화가 나서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순간, 아주 괜찮은 생각이 떠올랐다.

 

 

 

 

 


"아무 날도 아닌데 웬 선물?"

 

"열어봐."

 

 

그간 아껴 모은 용돈을 이런 데에 쓰게될 줄은 정말 몰랐지만, 이걸로 선미가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하면 별로 아깝지는 않았다.

 

 

"제모기...?"

 

 

나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선미의 어깨를 톡톡 두들겼다.

 

 

"주말 동안 털이란 털은 다 뽑고 오라구. 학교에선 털 좀 그만 뽑고. 알았지?"

 

"...고마워."

 

 

 

 

 


월요일이 되자 역시 내 예상대로 선미는 털뽑기를 멈추었다.
다른 아이들도 선미의 갑작스런 변화가 신기한지 자기네들끼리 쑥덕거리고 있었다.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선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안녕 선미야?..."

 

 

가까이서 보니 선미는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선미야.."

 

 

선미는 고개를 홱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초점이 없는 귀신같은 얼굴에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미치겠어...."

 

"응..?"

 

"털을 안 뽑으니까... 미치겠다고!!!"

 

 

선미의 발작적인 외침에 교실이 순간 조용해졌다.
선미는 아침조례를 하기도 전에 가방을 들고 교실을 뛰쳐나가버렸다.

 

 

"헐... 미친 거 아니야?"

 

"털 뽑다가 신경 끊어졌나.."

 

 

여기저기서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선미의 얼굴을 보고싶지 않았지만, 과학시간에 받은 프린트물을 전달해야 하는데 선미의 집을 아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이유로 내가 떠맡게 되었다.

 

 

- 딩동

 

 

초인종을 눌러도 안에서는 아무 기척이 없었다.

 

 

- 딩동 딩동 딩동

 

 

"누구세요"

 

 

여러 번 연달아서 눌러대자 그제서야 선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야 미현이. 프린트물 전달해주라고 해서.."

 

 

문이 열리고 내 손에 들려있던 프린트물은 우수수 떨어져 바닥에 흩뿌려졌다.
선미의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었다. 눈썹도, 속눈썹도.
털이 뽑힌 자리가 온통 울긋불긋해서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괴물 같았다.

 

 

"으악!!"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프린트물을 내팽개친 채 도망쳤다.
달리면서 뒤를 돌아보니 선미가 프린트물을 주섬주섬 챙기는 게 보였다.

 

 

 

 

 


선미는 다음 날 학교에 오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이 전화를 해보았지만 받질 않는다며 나한테 선미의 집에 가볼 것을 부탁했다.
썩 내키진 않았지만 어제 그렇게 도망가버린 것도 미안하고 해서 나는 함께 먹을 간식거리를 사들고 찾아가기로 했다.

 

 

- 딩동

 

 

"선미야~"

 

 

- 딩동 딩동 딩동

 

 

"문 좀 열어봐~"

 

 

혹시나 해서 손잡이를 돌리니 문이 그냥 열렸다.
집 안은 아무 기척이 없었다.
선미의 방문에 걸린 귀여운 출입금지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또 어딘가의 털을 뽑느라 열중해서 초인종 소리도 못 들었겠거니 생각하면서, 놀래줄 요량으로 문을 벌컥 열었다.

 

 

"왁!..으아아악!!!!"

 

 

문을 열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피로 범벅된 침대 위에 죽은 듯이 앉아있는 선미였다.
선미의 한 손에는 식칼이 들려 있었고 배가 반쯤 찢어져 속이 보이는 상태였다.
난 곧바로 정신을 잃을 것 같았지만 선미가 미약하게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에 정신을 차렸다.

 

 

"서..선미야 움직이지 마.. 지금 119에 전화할 테니까.."

 

"도와줘...."

 

 

선미가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어 선미야, 조금만 참아! 앗 119죠? 여기.."

 

 

그때 선미가 내 손목을 덥석 잡았다. 나는 놀라서 전화기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도와달라고 했잖아"

 

 

선미는 조금 전의 목소리와는 다르게 소름끼칠 정도로 낮고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그.. 그래서 119에 전화하는 중이었는데.."

 

"그게 아니야"

 

 

선미가 피에 젖은 프린트물을 내 손에 쥐어주면서 말했다.

 

 

 

 

 

 

 

 

 

 

 

 

 

 

 

 

 

 

 

 

"융털이 어디 있는지 못 찾겠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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