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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길모퉁이 파출소 앞 행복 정육점

닥터전자레인지2024.08.26 09:23조회 수 84추천 수 1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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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선분홍 조명빛, 각종 돼지, 소, 닭의 부위별 상품들이 진열된 투명한 냉장고에서 스산한 냉풍이 느껴진다.
뻘건 조명, 뻘건 고기들 심지어 선반위 심심풀이로 설치해 놓은 15인치 작은 TV마저도 뻘것다.
새하얀 점원들의 유니폼은 언뜻 정육점의 분위기와 상반되며 깔끔하게 보일지 몰랐으나 이마저도
조명빛에 가렸을 뿐, 자세히 볼때면 핏물을 닦아낸 흔적들로 얼룩저 울긋불긋 손가락 모양의 뻘건 꽃잎이라도
달라붙은 것 마냥 보였다.

"아~ 이거 소고기 마블링 이쁘게 잘떴네~?"

"그럼요. 스테이크용으로 좋을 겁니다."

아직 신혼으로 보이는 여성, 앞머리가 앞으로 쏟아지는지 검지와 엄지를 모아 가만히 머리를 쓸어 넘기며
고정한체 진열용 냉장고를 유심히 바라보고있다. 한손에는 손바닥 만한 지갑과 그위로 포게진 작은 메모장이
아무래도 저녁찬거리를 적어둔 것 처럼 보였다.

개인적으로 이런 신혼의 주부들이 우리 정육점을 찾는 것에 깊은 즐거움을 느낀다.

고기맛, 혹은 진짜 상등품의 고기가 무엇인지 아는 주부들이 늘어난다. 대형마트에서 저렴하게 판매되는
개차판 같은 고기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고기의 질에서도 우리 정육점은 일대에서 손을 꼽는 상등품이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건 고기의 관리와 운반 그리고 무엇보다 고기의 칼손질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공장에서 손질된 고기를 받아오는 방식이 아닌 살아있는 가축들을 직접 받아와 손질을 하는 방식을 고집하고 있는 우리는
남다른 고기맛과 육질 덕에 다른 대형상가에 종속되지 않은체 단일 정육점으로 거리에서 장사를 이어갈 수가 있었다.

고객들은 그 차이를 점점 알아 차리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확연히 느껴지는 정육사의 실력의 차이.

젊은 주부는 손가락을 입술에 기댄체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고민을 하는냥 골똘히 냉장고를 들여다 봤다.
왜 그런 그녀가 기특해보였을까? 나도 모를 흐뭇함에 가만히 웃음 지으며 그녀의 결정을 기다렸다.

젋은 주부가 결정을 지은듯 은근한 미소를 띄며 내게 말을 붙이려는데 정문으로부터 키작고 왜소한
아저씨가 한명 들어섰다. 벗겨진 머리와 볼록한 뱃살이 가늠짐작으로도 대충 오십대 중반이상은 되는 듯 했다.

주부는 스테이크용 한우 750g을 포장한체 돌아갔다.

주부가 자리를 떠나고 은은한 샴푸향과 비릿한 고기향만이 감도는데 오래전부터
들어선 중년의 남성은 손수건으로 얼굴만 훔치며 좀처럼 고기를 살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지 않았다.

주황색의 때타고 얇상한 가을점퍼와 흑갈색의 티셔츠를 배꼽까지 올려입은 면바지 안으로 넣어 입은 아저씨.
직업을 가늠하기 애매한 지저분한 운동화에 검고 붉은 때가 잔뜩 서려있었다.

아저씨는 헛기침을 "험험"하며 요란히 뱉더니 카운터 한폭판에 철제 서류가방을 얹으며 내게 속삭였다.

"댁이 사장되쇼?"

좀처럼 나와 눈을 마주치려 안는 중년의 아저씨.
나는 몸을 수그리며 아저씨의와 눈높이를 얼추맞춰 대답했다.

"네. 제가 사장인데요."

나의 대답을 들은 아저씨는 점점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마치 결심이라도 선듯 내게 물었다.

"여기, 사장님이 고기손질이 그렇게 대단하시다면서?"

칼질이 좋다는 평가를 어디에서 전해 듣게 되었든, 손님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니 기분이 좋았다.
나는 말로 대답하지 않고 기분좋은 미소만 머금었다.

"내가 사장선생한테 부탁이 있는데요."

"어떤 부탁이요?"

"그, 손질을 좀 부탁할게 있어서."

"어디서 불법포획하신 것 아니신가요?"

"아! 아니~ 아니, 그런것은 아니라."

야생 고라니, 사슴등을 불법포획하고 그것을 식용으로 조리하는 것은 엄연히 불법이다.
짐승이란 본래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어서 새삼 손질하는 것에 큰 어려움을 없었다만
정육사 자격증을 취소당할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은 당연히 삼가하는 것이 좋았다.

나는 탐탁치 않은 얼굴로 거부의사를 밝혔다.

"그냥은 안되는거 잘 잘죠. 잘 압니다. 그래서 그 전에..."

중년의 아저씨는 서류가방을 돌려 손잡이를 더듬거렸다.
얼마 안있어 서류가방이 딸각하는 소리를 내며 내 앞에 입을 벌렸다.

"그냥, 그냥 와서 봐주시는 거. 그것만해주시면 일단 이거 한다발 드릴게요. 한다발, 그냥 아무것도 안해도 한다발."

한다발? 서류가방에는 오만원권 현금 묶음이 가득히 들어 있었다.
한다발이라는 것은 오백만원, 잠깐 물건만 봐주는데 터무니 없이 높은 금액이었다.

내가 깨림직한 기분이 들어 얼굴을 찌푸리자, 아저씨는 한다발을 더 꺼내들며 카운터에 얹어 놓았다.

"두다발."



오만원권 돈뭉치를 서류가방 가득담고 다니는 아저씨치고 자가용조차 한대 없는 사람.
아무리 생각해봐도 수상적은 것이 너무 많았지만 잠깐 칼손질할 물건 좀 봐주고 천만원.

나는 천만원의 현금을 정육점 도마 밑 서랍장에 감춰둔체
여섯시 칼같이 정육점 셔터를 내리고 아저씨를 따라나섰다.

택시를 타고 십오분 아저씨는 택시를 빌라 촌 앞에 세웠다. 근 일이십년은 지난 건물들인듯
적벽돌 미장마감에 허연색 페인트로 101, 102하며 동수를 세겨 넣은게 대충 둘러봐도 집값이
상당히 저렴한 동네처럼 보였다.

"이쪽이네."

아저씨의 급한 걸음을 쫒아 십여분을 더 걷자 동네 언덕배기 조금 못간 곳에 3층형식의 연립주택이 보였다.
아저씨는 말없이 몸을 빙글돌려 나를 처다본 후 연립주택 안으로 발걸을을 옮겨나갔다.

주위의 분위기가 마치 살인이 나도 찍소리한번 안들릴 곳 처럼 음산했다.

아저씨가 무거운 철문에 열쇠를 걸고 돌리자 녹이슨듯 끼긱하며 기분나쁜 소리가 들렸다.
현관에 대충 신발을 팽게치듯 벗은 아저씨는 "후~" 하는 한숨과 함께 웃옷을 대충 바닥에 널부러 트렸다.

거실부터 느껴지는 깔끔한 분위기, 의외로 정돈이 잘되어있는 집안의 행색에 은근히 마음이 놓였다.

"아저씨 물건은 어디에 있나요?"

내가 묻자 아저씨는 나를 두어번 흘깃거리더니 손짓을 하며 주방으로 불렀다.
주방으로 들어서자 시큼한 김치냄새와 약간 시간이 지난 듯한 반찬들 냄새가 은근하게 밀려왔다.

"흠, 흠!... 여기."

아저씨가 주방 냉장고 손잡이를 잡고 머뭇거리듯 몸을 움찔거렸다.
아저씨의 마음의 동요가 전달되는 듯 나 스스로도 이상하게 긴장이 되어 말없이 아저씨가 문을 열기만 기다렸다.



스륵, "?!"


아저씨가 문을 연 냉장고 안에는 아직 열여덟, 열아홉 쯤으로 밖에 안보이는 소녀가 눈을 감은체 담겨있었다.
내가 놀란것이 당연스럽다는 듯 아저씨는 내게 냉랭한 시선을 보냈다. 아저씨는 잠깐 나를 지켜보다 다시 냉장고
속의 소녀에게 눈을 돌리며 말했다.

"내 딸이요."








-2부-



오랜시간 냉장고 문을 열어두자 소녀의 콧잔등으로 송골송골 물방울이 맺혀갔다.
수여분을 침묵으로 일관하던 아저씨는 딸아이의 몸이 상할까 냉장고 문을 조심스럽게 닫더니 거실로 돌아섰다.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면, 이 돈의 절반을 드리겠습니다."

아저씨는 서류가방을 거꾸로 털어내며 돈을 거실바닦에 전부 쏟아냈다.
수억원의 돈다발이 툭툭 소리를 내며 맥아리 없이 떨어지곤 거실 이곳저곳에 흩어졌다.

아저씨의 힘들어간 눈에는 간곡하다며 애원하듯 눈물방울이 맺혀가고 있었다.

"내 이야기만 들... 들어주면."

나는 뒤돌아 냉장고를 바라보았다. 아직 어린 소녀의 차가워진 시체.
살해됐다고 하기엔 너무나 말끔한 모습이었다.

"자살인가요?"

내가 아저씨에게 묻자 아저씨는 맺혀있던 눈물을 떨구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는 바닥에 주저 앉아 주섬주섬 돈다발을 모아 깔끔히 탑을 쌓으며 내 앞으로 스윽하고 밀었다.

"들어 보시겠습니까?"

나는 가만히 제자리에 양반다리를 하며 주저 앉았다.
아저씨는 없는 머리칼을 한번 쓸어 넘기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 아이는 올해 스물 한살입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이제 이년이 조금 안됐어요. 중학교 때부터 공부하는게 남들과
달라서 수재소리를 듣고 자랐답니다. 이 근처에서 고등학교를 나올때까진 전교에서 항상 1등만 했었죠. 멍청한
부모 밑에서 유별나게 머리가 영석한 아이가 태어난 겁니다. 사장님은 아이를 키우시는지요? 사장님께서 보시다
싶이 집안 형편이 이모양 이꼴이라, 아이가 공부를 잘한다는 것도 저에겐 부담이............ 부담이 되더군요."

아저씨가 가슴팍에 주먹을 가져가며 쿵쿵 소리내어 찧었다.

"사장님 혹시 A걸스라는 가수 아십니까?"

나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이제 막 유명해지려던 신인그룹입니다. 딸아이는 집안에 대학등록금이 부족하던 것을 미리부터 알고 있었어요.
오래전부터 이런 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며 작은 돈을 모으고 있었죠. 고등학교 삼학년 무렵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그 신인그룹에서 스카웃제의를 받았습니다. 저도 저희 딸아이도 비교적 등록금을 쉽게 모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상당히 기뻐했었습니다. 최근에는 방송에서 얼굴을 보는일도 허다했었죠. 혹시 다시 잘 보신다면 기억이 나실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아저씨는 거실에 내동댕이 쳤던 외투를 주워 올리더니 속주머니에서 하얀 봉투하나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유서입니다."

"지금 읽어보는게 좋을까요?"

"사장님이 편하신데로 하세요."

내가 봉투에서 편지를 꺼내들자 아저씨는 주머니에서 담배각과 라이터를 집어들곤 불을 붙였다.
총 넉장의 유서, 첫장을 읽고 나서 나도 아저씨에게 담배를 한까지 얻어 피우며 마저 읽어내려갔다.

'악마들', '비디오', '협박', '매일같이', '노리개', '임신'

내가 유서를 다 읽고나서 고개를 들자 아저씨가 이야기했다.

"저는 배운것은 없지만 그렇다고해서 세상 이치를 아주 모르고 살진 않습니다. 전에도 우리아이와 같은 꼴을 맞은
연예인이 있었다고 보도되는 뉴스를 수차례 접했었죠. 그 사람들은 지금 어떻습니까? 죽은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속죄는 하면서 살고 있다고들은 합니까? 저는, 저는 바보지만 알고 있습니다. 세상의 이치는..."



새벽 3시경 소녀의 시신을 정육점 작업 테이블위에 올렸다. 아직 고등학생인 줄로만 알았다.
시신이라서 인지 하얗게 세버린 피부가 마치 눈처럼 차갑게 느껴졌다.

아저씨에게 물었다.

"지켜 보시겠습니까?"

"내가 사장님에게 큰짐을 지웁니다."

아저씨는 고개를 흔들며 한마디를 남기곤 뒤돌아 정육점 소파에 다가가 털썩하고 소리내어 앉았다.
사람들은 나를 미쳤다고 할까? 유서의 마지막 글을 되세기며 나는 소녀의 배를 가르기 시작했다.


'아빠, 저는 이제 죽음이 아니면 씻을 수 없는 병에 걸렸어요. 죄송합니다.'


1주일 후 A걸스 긴급 기자회견이 전국에 생방송 중계되었다.
공중파 3사 모두가 긴급 기자회견에 모습을 나타낸 아저씨의 모습을 내보내고 있었다.

아저씨가 첫입을 때면서부터 타다닥 거리며 플래쉬가 터지는 소리가 부산히 들려왔다.

"제 딸아이는, 제 딸아이는 지난 9월 2일날 자살을 했습니다."

아저씨의 고백을 담는 것에 필사적인 기자들의 아우성이 빗발치는 소리가 들린다.
아저씨는 기자들이 요란스럽게 질문을 퍼붓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그 이유는, 이유는... 소속사 대표의 상습적인 성상납 강요와 성폭행,
그리고 그 모습을 비디오로 담으며 저희 아이를 희롱하고, 창녀취급한 것 이었습니다."

아저씨는 가슴춤에서 몇장의 종이를 꺼내들더니 종이에 담긴 내용을 읽어내려갔다.

"SBK의 윤덕정PD님과 KBY의 박이명PD님 코왁스 엔터테이먼트의 김광성 대표님, 새동네당의 나지사 의원님
이 사람들은 악마다. 매일밤 나를 번갈아가며..."

아저씨가 유서를 읽어내려가는 중 기자석 방향에서 고함소리와 함께 기자회견을 중지하라는 항의가 빗발쳤다.
아저씨는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다 유저를 고이접으며 다시 가슴춤으로 집어 넣고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내가 이 자리에서 실명을 거론하고 무슨 지랄을 해도 어차피 당신들은 내일부터 다시 웃고, 다시 새로운
젊은 아이들을 가슴팍에 끼고 놀꺼야. 나는 알 수 있어."

생방송임에도 불구하고 기자석에서 날라오는 욕설이 마이크에 잡히며 그대로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윤덕정이 박이명이 김광성이 나지사, 너희들이 우리 딸을 너무 이뻐해줘서. 내가 너무 고마웠어.
내가 그냥 말로만 고맙다고 하기,하기가 미안스러워서 내 사비들여서 당신들한테 선물도 보냈는데, 고기세트 잘 받았어?
당신들 이 방송 보고있어? 당신들이 맛나게 처 드신 고기세트, 그거 우리 딸아이야. 우리 딸 뱃가죽, 다릿고기,
가슴!! 갈비!!! 너희들에게 보내 준 그 고기, 너희 아들, 딸, 마누라, 부모들이 냠냠쩝쩝 씹어먹은 그 고기!!!
그 고기, 우리 딸아이야!!!! 덕정이!!!!!!!!!!!!!!!!! 이명이랑 광성이!!!!!!!!!!!!! 지사 너희 이 개새X들 우리 딸래미
고기가 맛이 좋았더냐고!!!!!!!! 어차피 이따위 허접한 기자회견으로 너희들한테 아무런 위협 안되는거 나 잘알아.
이런걸론 너희를 벌할 수 없어. 하지만 알아둬. 너의 씻을 수 없는 죄가 너와 너희 부모, 너희 자식들, 너희 배우자로
하여금 사람고기를 씹게 만들고 그 사실을 지금 전국의 국민들이 알아버렸다는 걸. 너희들 알아둬!!!! 알아둬!!!!!!!! 너희!"

기자회견의 영상이 급하게 바뀌며 화면에 아나운서가 멘트를 하고 있었다.
셔터가 내려간 정육점 안 소파 위로 커다만한 철제 서류가방이 덩그러니 누워있었다.

한 소녀가 짓밟히며 받은 돈 수억원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어하는 듯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숨죽이고 있다.








출처
오늘의 유머
글쓴이:숏다리코뿔소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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