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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의 나나

title: 토낑도나짜응2014.11.28 23:33조회 수 806추천 수 1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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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의 나나 




나는 어릴 적 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우리 집은 작은 시골 마을 한 구석에서 농사를 지었기에, 주위에 나와 나이가 비슷한 또래도 한 명도 없었다.남동생이 있기는 했지만 아직 걷지도 못 하게 어려서 함께 놀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농사짓느라 바쁜 와중에 남동생까지 태어나자 더더욱 나에게 신경을 써 주지 않았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 때만큼 외로웠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어쨌든, 내 유년기는 '외로움'이라는 한 마디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집은 증조 할아버지 때 부터 쭉 농사를 지어온 집이라서 작은 창고 같은 방이나 별채가 굉장히 많았다. 

특히 집 뒤의 담벼락 구석에 세워진 방 하나보다 조금 더 큰 창고는, 언제 쓰였을지 모를 녹슨 농기구나 살림살이 등을 두서없이 넣어두었는데, 제대로 된 장난감 하나 없었던 나는 매일 그 곳에 들어가서 노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 거울을 발견한 것이 언제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원래 손 거울이었을 정도의 크기였는데, 내가 그 거울을 발견했을 때엔 거울 주변의 틀이나, 손잡이 등은 다 깨져 없어져버린 그냥 동그란 거울일 뿐이었다. 

굉장히 낡았지만 헌 거울 특유의 얼룩이나 상처가 하나도 없는 꽤 깨끗한 상태였다. 

그리고 또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어느 날 거울 안을 보자 내 등 뒤에 낯선 없는 여자 아이가 비춰져 있었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 보았지만,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그 여자아이는 거울 속에만 있는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얼굴이 하얗고 머리가 긴 예쁘장한 아이였기 때문에, 나는 어린 마음에도 조금 설레기까지 했다. 

그 아이는 거울 속에서 나를 바라보며 예쁜 얼굴로 방긋 웃으며 말했다. 

"안녕?" 

나는 그 소녀가 보고 싶어서 매일 그 창고에 갔다.창고에서 웅크리고 앉아 하루 종일 소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소녀는 자신을 '나나' 라고 불렀고, 나도 그 이름으로 불렀다. 

부모님은 하루 종일 창고에 쭈그리고 혼잣말을 하고 있는 나를 보고 조금 이상하게 생각하긴 했지만 크게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는지 거울을 빼앗아 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게다가 나나 이야기를 하며 거울을 보여주어도, 나나는 어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혼자서 매일 창고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질려서 나나에게 말했다. 

"함께 놀 친구가 없어서 너무 외로워." 

"이 쪽에 와서 나랑 같이 놀면 되잖아?" 

나나는 상냥하게도 자신이 있는 곳으로 나를 초대해 주었다.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예쁜 여자아이가 그렇게 말하자 어린 나이에도 나는 너무 기뻤다. 

"어떻게 가면 되는데?" 

내가 묻자, 나나는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잘 모르겠다며, 나중에 물어보겠다고 대답했다. 

나는 누구에게 물어보는지가 굉장히 궁금했지만, 왠지 그 것은 물어서는 안 될 질문 같아서 묻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 나나는 내게 기쁜 얼굴로 말했다. 

"이 쪽에 올 수 있는 방법을 알았어! 나랑 같이 여기서 놀자!" 

나는 너무 기뻤다. 하지만 외출 할 때에는 항상 부모님이나 할아버지에게 말씀을 드려라는 말이 떠올랐다.나는 몇 번이나 아무 말 없이 외출했다가 아버지에게 호되게 맞았었다. 

"엄마한테 물어보고 올게." 

"안 돼! 이건 누구한테도 말 하면 안 된대. 말했다간 큰일이 난대. 다신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대." 

나나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기에 나도 나나를 다시 못 보는 것은 싫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또 아버지에게 맞는 것은 더 싫었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고민하고 있자 나나가 말을 꺼내 주었다. 

"그럼 내일은 이 쪽에서 놀자." 

고민하던 나는 나나의 말 한마디에 이에 마음이 풀려 웃으며 대답했다. 

"응, 그래." 

"꼭 약속이야." 

"당연하지." 

그 날 밤은 잠이 오지 않았다.결국 부모님께 물어보지도 못했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불을 끄고 누워있자 여러가지 의문점이 떠올랐다. 

'그 조그만 거울 속엔 어떻게 들어가는 걸까?''그 곳은 어떤 곳일까?''나나는 왜 내가 사는 곳으로 오지 않는 것일까?''다시 이 쪽으로 돌아올 수는 있는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자 점점 불안해져 갔다.그리고 나나가 조금 무서워지기도 했다. 

다음날 나는 나나를 만나러 가지 않았다.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나는 창고에 가지 않았다. 

결국 그 날 이후로 창고에 가는 것을 그만 두었다. 

그런 저런 어릴적 기억의 파편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루가 됐고, 창고의 거울도 그 것들과 함께 가루가 되어 점점 잊혀졌다. 

고등학교 때 부터 도쿄의 고등학교에 진학해 기숙사 생활을 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고향에 돌아오는 일 없이 바로 취직했다.그리고 작년에 예쁘고 참한 여자를 만나 결혼까지 했다. 

어릴적에 가루가 된 기억의 파편은 세월의 바람에 쓸려간지 오래였다. 

아내가 임신을 했다. 

도쿄에서 나고 자란 임신한 아내는 공기좋은 시골에 있는게 우리 아기에게도 좋을거라며 휴직을 하고 출산할 때까지 우리 고향집에 가 있겠다고 말했다. 

나는 주말에 혼자 집에 있는 게 싫어서 아내가 가고 난 후엔 거의 주말마다 집에 내려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날 밤에도 고향집에서 어머니가 해 주는 밥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반주로 마신 맥주 때문인지 새벽에 잠이 깨서 화장실에 갔다. 

우리 집은 옛날 집이라 화장실이 바깥에 따로 있다.몇 년 전 내가 돈을 보내 드려 최근에야 겨우 수세식으로 바꿨는데 그 전까진 푸세식 화장실을 그대로 쓰고 있었다. 

달이 밝아 달빛에 의지해 화장실에 갔다. 

눈부시는게 싫어서 불은 켜지않고 감각만으로 변기를 찾아 볼일을 보았다. 

화장실 바로 앞의 세면대에서 손을 씻었다.감겨오는 눈으로 무의식적으로 내 얼굴을 비추고 있는 거울을  슬쩍 봤다.  

분명히 닫고 들어왔던 화장실 문이 열려 있었다. 

이상하다.. 

그리고 그 열린 문 틈으로 담벼락 구석의 어둠속에 녹아든 창고가 보였다. 

이상하다.. 분명히 닫고 들어왔었는데.. 

뭐 잘 못 닫아서 열렸겠거니 하고 다시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문이 닫혀 있다.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서 거울을 다시 보았다. 

거울 속에서는 역시 문이 열려 있었다. 

창고의 하얀 문이 어둠과 대조되어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그러자 거울 속의 창고 문이 조금 열리는 것 같았다. 

그 한 순간, 머릿속에서 뭔가가 탁 하고 끊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면서 나나에 대한 기억이 머릿속에서 마치 영화 필름처럼 한꺼번에 풀려 나왔다. 

잊고 있었던 싫은 기억이 오랫동안 곯은 고름이 터진 것 마냥 기분나쁘게 터져나와서 내 몸을 지배했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뻣뻣해진 몸은 도망은 커녕 눈을 떼는 것 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역시 문은 열리고 있었다. 문은 어느 새 반 이나 열려 창고 안 쪽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창고의 하얀 문 틈 사이로 더욱더 하얀 무언가가 보였다. 

나나가 나를 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정신을 잃었다. 

다음날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잠 들기 전 모습 그 대로 이불 속에서 눈을 떴다. 

지지리도 찝찝한 악몽을 꿨나보다.꿈이라서 내심 다행이란 생각을 하면서도 더 이상 이 곳 집에 있는 것이 싫었다.나는 늦은 아침을 먹고 가족에게 대충 둘러대곤 바로 도쿄의 집으로 향했다. 

집을 나서는 길에 창고를 흘끔 바라 보았다.어제의 꿈 생각에 왠지 모르게 스산해 보였다. 

도쿄를 향해 운전을 하면서도 하나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일요일이라서 주말 나들이에 다녀온 사람들 때문에 길이 많이 막혔다.해질녘이 다 되어서야 겨우 집에 도착했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짐을 대충 챙겨 내리려는 찰나, 룸미러 안의 무엇인가가 눈을 스쳤다. 

나나가 있었다. 

뒷좌석 가운데에 앉아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개를 돌려 뒷좌석을 봤지만 그 곳에 나나는 없었다.다시 미러를 보자 나나가 거울 속에서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얀 얼굴, 검은 긴 생머리.나나는 옛날 조그마한 초등학교 저학년의 모습 그대로 였다. 

나는 부들부들 떨며 미러만 쳐다 봤다. 

나나는 그 날처럼 또 활짝 웃으며 인사를 했다. 

"안녕?" 

나는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나보다 훨씬 작은 그 아이의 웃는얼굴에 지지리도 추운 한기를 느끼며 떨고만 있었다. 

"왜 안 왔어? 나 계속 기다렸는데.."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우리 지금부터라도 이 쪽에서 놀자!" 

나나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거울 속에 비친 내 어깨에 손을 뻗었다. 

"아.. 안돼!!"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왔다. 

"미안해 나나, 나는 그 쪽으로 갈 수 없어. 못 가!" 

나나는 내 어깨로 뻗던 손을 아래로 늘어뜨리며 침울한 표정을 짓더니 마치 우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나나, 나에겐 이제 아내도 있고 아기도 태어날거야. 그러니까.. 아.." 

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어떤 감정인지 모를 눈물이 흘렀다. 

"그렇구나.. 어른이 돼서 이제 나랑 못 노는 거구나.." 

나나는 쓸쓸한 목소리로 혼자 말을 이어갔다. 

"할 수 없지.." 

나나는 다시 나를 쳐다보며 어릴적 내가 반했던 환한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 예쁜 미소를 보자 지금까지 내가 느낀 공포심과 그런 것들이 한 순간에 바보같이 생각됐다. 

나나는 내 어릴적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무서워해야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는데 내가 지레 겁을 먹은 것 같아 나나에게 조금 미안해 졌다. 

나나는 예쁜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내게 말하고 거울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럼 나 걔랑 놀래!" 

























그리고 다음 날 아내는 유산했다. 



출처:http://m.pann.na★te.com/talk/pann/320★193425&currMenu=search&page=1&q=%ED%9B%88%★EB%82%A8★%EC%83%81%★EB%8B%B4%EC%86%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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