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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제삿날에 혼령이 남루한 옷차림으로 오다

title: 유벤댕댕핸썸걸2016.09.06 09:34조회 수 1299추천 수 1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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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봉藥峯 서공徐公의 제삿날, 제사에 쓰일 음식을 성대히 마련하여 제사를 지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신주의 뒤를 보니 약봉이 의관을 정제하고 의자 위에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큰 아들을 불러서는, 아무개 대감의 혼령이 와 계실 것이니 모셔오라고 당부했습니다.

아들은 그 말대로 따라서 하였고 마침 달이 비출 무렵에 나가 보았는데,

 

달빛 아래에 그 대감이 있는 것이 아버지 혼령의 말과 같으므로

권하여 들어오게 하여 약봉 서공과 같이 동석(한 자리에 앉는다는 뜻)하게 하였습니다.

 

약봉은 또 아들로 하여금 아무개 대감의 혼령을 모셔오라고 하였고

아들은 시키는 말대로 따라서 또 권하여 동석케 하였습니다.

 

이 때 아들이 두 대감을 보니 그 모습이 사모를 쓰고 비단 도포에는 금빛이 나는 띠를 두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대감은 헤진 옷에 다 떨어진 갓을 쓰고 있어서 남루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아들이 '아버님이 청하니 안으로 들어가시지요?'하고 정중히 청하는 말투로 권하였으나

그 대감은 민망한 표정으로 '기제忌祭는 한 집안의 엄숙한 일인데 내 의복이 남루하여 차마 들어가지 못하겠다고 전해주게.'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이 약봉의 혼령에게 그 말을 전하니

"나와 더불어 공은 한 집안이나 마찬가지이거늘 의복의 새 것과 헌 것을 따지겠느냐? 어서 청하여 들어오시라고 해라."하고 약봉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아들이 전하여 청했으나 여전히 머뭇거리다가 아들이 간곡한 어조로 세번째 청하니 그때서야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집은 갑자기 음식 장만을 못해서였는지 석 잔의 술을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제사를 마치고 촛불 아래에 보니 대감이 모두 차례로 떠나는데 모두 취한 모습이었고 뒤따라 가는 약봉 또한 취한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그 세사람의 혼령은 모두 절친한 벗으로 재상이었으며 약봉과 교류하였던 대감들이었습니다.

 

그 대감들이 살아 있었을 때 자주 만났던 약봉의 아들들은 그 모습을 알고 있었고

찾아와 만나는 것을 보니 모습이 살아 생전과 다르지 아니하였습니다.

 

약봉의 아들과 세번째 들어왔던 대감의 아들도 서로 절친했던 벗이었는데

함께 과거 시험에 붙은 것을 계기로 벗이 되어 친분을 쌓았습니다.

 

이에 약봉의 아들은 세번째 대감의 아들에게 부친을 염할 때 어떤 의관으로 해드렸는지 물었습니다.

그 아들은 슬픈 모습으로 탄식하고서는 말하기를

 

"선친의 초상에 대해 어찌 말할 수 있겠소.

평소 우리 집에서 청빈하신 분이었는데 선친께서는 북관北關으로 유배 길에 오르셨으나 왜란을 만나 돌아가시고 말았소.

전쟁이 일어난 가운데 벌어진 일이라 너무도 황망하고 염에 필요한 것을 마련하지 못해 평소 집에서 쓰시던 낡은 갓과 떨어진 도포로 염해 드렸네." 하는 것이었습니다.

 

약봉의 아들이 제삿날 이야기를 하자 그 친구가 크게 비통해 하면서 새 의관을 지어서는 묘에 제사한 후 불사른 것이었습니다.

다음 날 꿈에 그의 부친이 나타나 새 관복을 얻게 되었다면서 크게 기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천예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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