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게시물 단축키 : [F2]유머랜덤 [F4]공포랜덤 [F8]전체랜덤 [F9]찐한짤랜덤

단편

불발탄 이야기

여고생2016.09.07 13:16조회 수 1320추천 수 4댓글 2

    • 글자 크기


대에 있다보면 뜻하지 않은 홍수에 많은 밤을 작업으로 지새워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잠도 제대로 못자고 매일밤 비와 싸우며 순찰과 근무를 병행하곤 하죠.

인간의 한계를 시험해보는 아주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제부터 할 이야기는 제가 전방서 철책근무를 설때의 일화입니다.

제가 근무하던 철책은 12사단 52의 연대의 섹터로서 3개 대대가 6개월에서 1년 단위로 철수와 투입을

교대하며, 경계를 서는 곳입니다.

누군가 이글을 읽는 같은 곳 전역자들이 볼것을 감안해 사실 기재 할려고 합니다.

저는 그 중 1대대 소속으로 중화기 중대인 4중대에서 전역을 했습니다.

제 병과는 k4 라는 유탄기관총으로 주둔지에 있다가 전방에 투입 될 시에는 소대가 반으로 나뉘어 다른

중대 소총 중대에 배속되는 특수성도 있었지요.

그렇게 전방으로 투입된지 3개월 정도가 지나갈 무렵이었죠.

때는 8월달로 덥기도 미친듯이 더웠지만, 곧 있을 장마에 더위따위 아랑곳 하지않고, 장마대비 보수공사로

하루하루가 고된 시기였답니다.

낮에는 삽질 곡괭이질 밤에는 근무....

삽질과 곡괭이질 만으로도 몸이 녹초가 되겠는데...

하필 그 작업 지역이 지뢰밭 지역이라 정말 초긴장을 하고 작업 했던 기억이 새롭네요.

곡괭이 끝으로 지뢰의 뇌관이라도 내리 찍는 날엔....생각만 해도 등에 땀이 흘렀죠.

그러나 그 긴장도 찌는 더위와, 고된 노역에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지뢰밭이다 라는 자각마저 안 들게끔

하더군요.

그러던 어느날 이었습니다.

 

"이번주 주간 근무자 누구지?"

새벽 전원투입을 마치고 들어와 탄창 검사를 끝 마쳤을 때 소초장이 물어왔습니다.

저를 포함 군데 군데서 손을 들더군요.

"1중대 작업지원 갈사람 자진해서 손 들고 있어봐."

저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을 내려버렸습니다.

안그래도 작업에 노역에 근무에 환장하겠는데, 거기다 꿀같은 주간 근무동안 남의 집 일은 얼마나

짜증나는 일인지 온갖 계산이 손을 내리는 순간 지나쳐 가더군요.

좀 자세히 이야기 하자면 근무는 3가지 유형으로 나뉘는데 말그대로 해가 떠있는 동안 서는 주간근무.

해 떨어지고 자정까지 서는 전반야. 자정부터 해뜰때까지 서는 후반야.

그중에 후반야가 젤 힘들고 해가 길 때는 전반야가 좋지만 짧아지면 전반야가 후반야 보다 못한 근무가

되지요.

어찌되었든 저는 번개와 같은 움직임으로 마치 손을 들지도 않았던 양 손을 내려버렸습니다.

하지만...

"박병장은 열외. 내리고 있던 들고 있던 넌 어차피 가야돼."

"예?!"

"뭐가 예야. 박병장 당첨."

주위에서 킥킥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왜 저만 열외인 겁니까? 소초장님 아시잖습니까? 저 없으면 비닐 작업 안 돌아가지 말입니다."

"그래서 너 보내는거야."

"예?"

"1중대 행보관이 박병장 작업해 놓은거 보고 일주일만 빌려달라더라."

"..아.."

짧은 탄식이 흘러 나오더라고요.

그 당시 1중대에 4박 5일 포상휴가증 3장이 대대에서 유입이 되었다? 하는 소문을 들은 터였습니다.

원래 저는 4중대 소속이고, 1중대에 나온 휴가증이 저한테 돌아올리가 있겠냐하는 체념을 했더랬죠.

나름대로 포상휴가증 킬러로 군생활 하는 동안 3번이나 사냥에 성공했었죠.

친구들한테 말하면 겨우? 3번? 이런 반응인데, 제가 있던 곳은 포상휴가에 굉장히 쪼잔한 모습을 보였고

언제나 인원이 부족한 중화기 중대 특성상 포상휴가는 커녕 정기휴가도 짤라서 가야 하는 현실이었죠.

3번이란 기록은 중대 타이 기록과도 같은 타이틀이라 지금도 생각하면 나름 자부심이 생기네요.

"행보관이 섭섭잖게 해 준다니깐 기쁜맘으로 갔다와라."

"정말입니까?"

순간 머릿속에 휴가증이 번뜩 스쳐지나가더군요.

"1중대 애들 작업하라고 했더니 비닐작업이 개판이라고 행보관이 니가 와서시범 좀 보여달라고 하던데?"

"........"

속으로 지화자를 외쳤죠.

안그래도 1중대 행보관이 괜히 작업하고 있는데 와서는 이거저거 시비나 걸고 지나갈때 부터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 느꼈었는데 말이죠.

휴가증 하나는 내꺼라는 설레바리를 치고 말았죠.

잠깐 그 비닐작업이 뭔가 설명드리자면,

경사가 굉장히 심한 계단 옆쪽 토사지역이라던가 하는 곳은 그 경사때문에 비가 내리면 그 물에 흙이 쓸려

흘려내려가 쌓여 그 근처를 개판으로 만들어 버리곤 했죠.

하물며 장마라면 말 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죠.

그런 급경사 토사 지역에 비닐하우스에 사용하는 비닐을 덮어 그 토사들이 흘러내리지 않게 작업을 하는

건데 생각으로 해보면 쉽겠지만, 막상 그 경사에서 버티며 삽질 하고 덮고 심고 묻고 하는 작업이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작업이었던거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무식한 작업인지...

조그마한 언덕을 군인식 깡으로 비닐로 덮는다는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포상 휴가증을 1중대장으로부터 한장 선물 받긴 했습니다.

그러나 그 휴가증은 작업지원 나간 그 일주일에 비하면 당연한 보상이었죠.

정말 간 떨어지는 경험을 했던 것입니다.

더블백에 대충 세면백하고 입을 작업복이라던가 양말 그런것들을 챙겨서 총을 매고 저녁 전원투입이

이루어지는 시간에 1중대 쪽에서 나온 전원투입 인원들이랑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철수 시간이 되어 원래의 소초가 아닌 1중대 오피쪽으로 철수를 하게되었죠.

"k4 아저씨 괜히 우리쪽에 와서 고생만 하다 가는거 아녜요?"

같이 철수해 내려가던 병장 아저씨가 말을 걸어오더라고요.

"맨날 작업이 어디서나 다 똑같죠. 아무래도 새로운 곳에서 서니 좀 더 지루하진 않겠네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보니 어느새 수통문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수통문에서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곧바로 1중대 오피 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죠.

예상대로 우리의 진행방향은 수통문을 등지고 걸어나갔고 어느새 반대쪽 섹터에서 철수한 인원들이

근무보고를 마치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 웅성이고 있는게 보이더군요.

확실히 중대 오피 섹터 인원이라 그런지 저희가 있는 소초의 인원보다 3배는 더 되어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자자 정렬."

대충 다 모인 듯 1중대장이 탄띠만 두른채 오피 행정반에서 나오며 근무자 정렬을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사열대에 올라서는 중대장과 제가 눈이 마주쳤는데,

"어이 박병장 대충 아무데나 껴라. 이등병 처럼 어리버리한 표정 짓지 말고."

순간 당황해 얼굴이 화끈거리더군요.

여기저기 킥킥 거리는 소리도 들리고.

그도 그럴게 다른 소초에 와서 어디에 껴야 할지 갈팡질팡 하는 모습을 중대장에게 보인 모양이었네요.

그렇게 철수 신고를 하고, 저는 중대장을 따라 잠깐 행정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박병장 여기 왜 온지 대충 감 잡고 있지."

"예. 그렇습니다."

"전에 나도 가서 봤는데 작업 잘 해 놨던걸?"

"하하..그냥 열심히 만들었지 말입니다."

"행보관이 박병장 좀 데려 오라고 난리였어. 아마 이번 작업 끝나면 기대해도 될거야."

"예 알겠습니다."

그 비닐작업이 사단 지시사항이었을 겁니다.

검열까지 나온다고 해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던거죠.

그중에서 제일 빨리 작업을 끝내가고 있던게 저희 소초였고, 경사도 제일 심했었지요.

정말 땡볕에서 미친듯이 삽질하고 심고 덮고 한 것 같습니다.

근무중에 졸다 가위까지 눌릴 정도로 그 당시 미칠듯한 작업량이었죠.

그렇게 대충 중대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행정병의 안내로 1중대 오피에 배속된 90미리 소대원들 내무실로

안내를 받게 되었습니다.

"충성!"

"아니 이게 누구야!"

내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반갑게 맞이해주는 90미리 소대원들.

같은 중화기 중대로 전방 투입시 찢어져 다른 중대에 배속된 터라 정말 오랜만의 만남이었죠.

"박병장 비닐 작업 하러 온다고 하던데 정말 와 버렸네."

"이야 말년 아직도 집에 안 갔습니까? 너네들 뭐하니 이 아저씨 빨리 집에안 보내고."

"저희들도 죽겠지 말입니다. 말년이라고 비닐 작업도 안 할라 그러고..."

"야야 이젠 짬밥좀 된다 이건가 박병장? 이등병 찌끄러기 였던게 엊그제 같은데."

"왜 이러십니까? 저 위에 올라가면 제가 왕이지 말입니다."

"크크 내가 박병장 한테 이런 소리도 듣고...전역할때가 된 건가?"

"박병장님 저 말년 좀 낼 빡세게 굴려주시지 말입니다. 아주 죽겠습니다."

"최병장님 들으셨지 말입니다. 내일 열외 없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본 얼굴들이라 시끌벅적하게 이야기 하고 맛스타도 얻어 마시고 웃고 이야기 하다 보니

그 날 밤은 그렇게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당연히 오전 오후 내내 미칠듯한 비닐 작업.

휴가증 하나만 바라보고 이악물고 참은 듯 하네요.

그러던 둘째 날....

"박병장."

"병장 박 xx."

90미리 소대장 목소리가 등뒤에서 들리더군요.

인솔자로서 같이 작업을 나온터라 소대장도 작업에 투입되어 있었지요.

소대장의 꾹 눌러 쓴 전투모 밑으로 흐르는 땀을 보니, 제 더위까지 증폭이 되는 느낌이었답니다.

'날 더워 죽겠는데 어지간하면 벗고 하지....'

하는 생각이 잠시 들더군요.

간부들이야 일반 병들이 모르는 어떤 기합같은게 있는 모양이죠.

안그런 사람은 안 그러지만 제가 본 장교들은 다 그랬습니다.

"박병장 정말 이거 부탁하기 미안한데 말야."

"어떤일인데 말입니까?"

작업 추가 인가 보다 생각했죠.

하지만,

"김상병이 90미리 교육때문에 연대에 가야 하거든. 이번에 김상병이 분대장 달았잖아."

"김상병 말입니까? 벌써...."

저는 일주일 고참이 위로 두명이나 있어서 제대할때까지 분대장 견장을 달아보질 못했네요.

좀 부러웠죠.

"이병장이야 이젠 말년이니 예외고해서 김상병이 이틀동안 교육을 가야하는데 근무땜빵 좀 해줘야겠어.

박병장이..."

솔직히 간부의 명령조는 그닥 맘에 안 들었지만, 어차피 거부도 할 수 없고

싫은 내색 없이 수락해 버렸습니다.

"작업이 많아서 고생하는 거 잘 아는데...이번만 좀 부탁하자."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저 위에 있어도 서야 하는 건 마찬가지지 말입니다."

"그렇게 생각해준다면 고맙고."

그렇게 팔자에도 없는 근무를 설 생각을 하니 환장하겠더라고요.

팔에 힘이 안 들어가는게...

'이틀만 참자....'

하고 마음을 굳히기로 했죠.


그리고 저녁...

해지기 30분전에 전원투입을 준비하고 전원 초소에 투입 후 전반야 근무인 저는 철책에 남아 약 4시간

정도의 근무를 서야 했습니다.

생각지도 않은 근무라 좀 짜증이 나긴 했죠.

하지만 부사수가 전방에 올라와 자대배치를 받은 이등병이었기에 그다지 지루 할 것 같진 않았더랬죠.

군기도 바짝들어있을 때고, 고참의 관례라 생각되는 사회에서의 일들을 물어보기로 생각하니, 별 관심은

없지만 이것저것 물어보며 시간은 잘 가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이거 저거 물어보며, 떠들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흐른줄도 모르겠더라고요.

그 때였죠.

'삐익'

'5초 밀조이동 시작하십시요.'

두 번째의 밀조를 알리는 인터폰이 상황실로부터 연결되었습니다.

"응? 벌써 그렇게 됐나? 몇시야?"

"예. 23시 10분입니다."

"벌써?"

"예. 그렇습니다."

"그래? 이동한다고 알려."

"예. 알겠습니다."

부사수를 통해 이동을 알리고 우린 다른 근무자가 있는 곳으로 이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동하는 길은 울퉁불퉁한 언덕길이 아니라 완전 평지라 정말 땀 한 방울 흐르지 않더군요.

게다가 옆쪽은 소양강 물줄기가 흐르고 있어서인지 약간 시원한 기분이랄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떠들다보니 어느새 같은 근무조의 초소에 이르렀고, 다른 중대 아저씨라 그냥 눈인사 정도로만 끝내고

밀조이동을 마치게 되었죠.

그리고 올라선 초소.

전방에 강줄기가 훤히 보이는 그런 전망이었습니다.

왼쪽 아래로는 수통문도 보이고, 전방에는 그다지 키가 높지 않은 수풀들이라 그런지 시야도 확 트여 감시초소라고 하기에 딱 알맞는 그런 느낌이었죠.

수통문이란 물이 흐르는 강이나 개울에 단단한 철로 만든 철조망 같은 개폐형 문을 가르키죠.

다시 말하면 잠수를 통해 남침 해오는 적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이라 생각하시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한 시간만 개기자.'

라는 생각이 들자 부사수 한테 뭘 물어봐서 시간을 떼울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며 부사수를 지나쳐 초소 안쪽으로 들어갔더랬죠.

창틀에 거치된 k3 한정이 제일먼저 눈에 들어오자 반사적으로 바닥을 살펴 탄통이 있나를 살피게

되었습니다.

어렵지 않게 예상된 곳에서 탄통을 찾을 수 있었고, 저는 그옆에 대충 제 소총을 세워두고 부사수를 향해

돌아볼려고 했죠.

그 때 였습니다.

휙 스쳐가는 곁눈질에 보이는 뭔가에 신경을 뺏길때가 가끔씩들 있죠?

딱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뭔가 하고 전방쪽을 주시하니, 보이는 건 그냥 안개 뿐.

그런데....

해뜨기 전의 스물스물 피어나는 그런 안개가 소양강 물줄기 위쪽으로 진하게 깔리고 있었죠.

'........'

원래 제가 있는 소초의 고가초소에서 해뜨기 전에 그 밑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뭐랄까...뛰어내리면

끝도 없이 가라앉을 것 같은 바다같은 느낌이랄까...

안개가 그만큼 짙고 양도 엄청나게 깔리지요.

그냥 저 밑엔 하얀 구름만 있다라는 생각에 원래의 풍경자체는 가려진게 아니라 그냥 없는 없을

것이다라고 느껴질 정도로 하얗고 진한 안개가 드리워지죠.

충동적으로 뛰어내려도 전혀 이상 할 것이 없는 그런 안개의 바다라고 하면 딱 맞겠네요.

그런 안개에 마음을 뺏긴건지, 저는 생각을 멍하게 그 안개를 바라보고 있었답니다.

"박병장님."

"으..응?"

"아까 하던 이야기 말입니다."

"그래 이야기 마저 해야지."

저는 뺏겼던 정신을 다시 찾고, 밀조 이동을 하며 신나게 떠들어댔던 이등병의 사회이야기로 다시

분위기를 전환시켰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지나 근무 교대 시간이 되어 저만치 투입되는 교대 근무자들을 볼 때 였습니다.

'응?'

한 순간이었습니다.

곁눈질에 뭔가 보인 걸 느낀 것이.

저는 반사적으로 초소의 전방을 주시하게 되었습니다.

아까보다는 좀더 진한 안개의 흐름...

그동안 산에 피어나던 안개만 보아서 그런지 물위로 진하게 형성되어 흐르는 안개는 왠지 모를 신비감

마저 주더군요.

그런데 이상한 점을 하나 느끼게 되었는데,

물안개라 하면 말그대로 물표면의 수증기가 위로 올라가면서 형성되는 안개라 물의 표면과 안개층은 같이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데, 제가 본 안개는 물론 거리가 멀어서 자세히 안보여 그런걸수도 있었겠지만

물의 표면과 완전히 분리되어 그 위를 흐르는 모양을 하고 있더라고요.

물표면에서 올라가는 수증기가 전혀 안 보이더란 말입니다.


'원래 물안개가 저런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며 좀 더 자세히 볼려고 한 그 순간 이었습니다.

그 때 였죠.

물 표면과 안개사이는 완전히 동떨어져 그 사이는 안개에 흐릿한 공간이 아니라 빈 공간처럼 가시적으로

뚜렷한 공간이었는데, 그 공간에 사람의 발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것이 안개층으로 부터 쑥 하고

삐져나와 물 위에 우뚝 서는 것이었습니다.

"허헉!"

저는 튀어나오는 비명을 참지 못하고, 뒷걸음질 치다 소초 벽면에 '쿵' 하고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부사수가 놀라 돌아보며 의아한 눈빛을 던지더군요.

그 순간 그 부사수 눈빛도 얼마나 무섭던지...저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지르게 되었습니다.

"야! 지금 봤냐?"

"예? 근무자 말입니까?"

왜 그러냐는 표정에 저도 한동안 어이가 없어, 부사수와 초소 밖을 번갈아 바라보며. 꿈인지 현실인지를

구분할려고 애썼던 기억이 나네요.

"뭐지 씨발...."

욕이 중얼거림 처럼 저도 모르게 튀어나왔습니다.

등에 한기가 스윽 타고 흐르더군요.

두려움과 공포가 엄청나게 밀려오던 순간이었습니다.

빨리 돌아가고 싶은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렇게 공포에 질려갈 무렵, 교대 근무자들이 도착했고, 저는 잰 걸음으로 거의 뛰는것에 가까울 만큼

중대 오피로 뛰어들어가게 되었죠.

그리고 내무실에 들어오자 마자 깨어있는 모든 인원들에게 그 이야기를 했죠.

당연히 드라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반응이었다죠.

다들 웃어 넘기는 그런 표정들....

하여튼 그날은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게 되면 의례 라면을 한개씩 들고 취사장으로 가곤 했었지요.

배가 고프던 안 고프던 긴 근무를 마치고 왔다는 여유랄까요?

잠자기 전까지 나름대로의 여유를 부려보는 것도 근무 후의 커다란 즐거움 이었습니다.

하지만, 낯선 곳에 있는 지금 날 위해 준비된 라면도 없거니와 왠지모르게 더욱 어둡게 느껴지는 내무실

취침등이 좀전에 보았던 그 장면을 계속 떠 올리게 했습니다.

"박병장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으..응?"

주둔지에 있을 때 일병이었던 심상병이 침상을 내려앉으며, 물어오더군요.

그 순간 눈에 들어온 그의 발목....

"왜? 뭔일있냐?"

되려 반문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의식하고 있는 그의 발목에서 억지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드랬죠.

"멍하게 계셔서 말입니다."

"그랬냐?"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전투화를 벗고 침상에 올랐습니다.

여전히 의식되는 발목...

"박병장님 취사장으로 가시지 말입니다."

"짬장?"

"예. 라면 끓고 있을겁니다."

"끓어?"

제가 있던 초소에서는 상식적으로 끓여먹을 라면도 없거니와...

'누가 끓이지?'

그러고 보니 같이 근무섰던 부사수들이 내무실 안에 아무도 보이질 않더군요.

다급히 대충 아무 활동화를 꺾어 신고, 그의 뒤를 따라 어두운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

걷는 중에 여전히 의식에서 떨어지지 않는 발목에 자꾸 힐끔 뒤를 돌아보게 되더군요.

아무것도 없는 어둠.

자꾸 그 어둠속에서 뭔가가 튀어나올 것 같은 두려움에 저는 심상병의 옆으로 바짝 붙었습니다.

위에서는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강렬한 두려움....

전설의 고향에서나 볼 수 있는 구식 화장실에 밤이고 새벽이고 할 것 없이 혼자 드나들던 지난일들이

정말로 신기했고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도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끼익'

허름한 취사장의 나무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두컴컴한 형광등 밑에서 삼삼오오 모여 라면을 먹고 있는

모습이 보이더군요.

우리 근무조만이 아닌 1중대의 다른 근무조들도 허기짐에는 매 한가지 였을테니까요.

"야 여기서는 라면 끓여먹는구나."

"위에선 그렇게 안 드십니까?"

"위엔 야 컵라면 밖에 없어. 전자렌지 딸랑 하나에."

컵라면에 물을 붓고 취사병 몰래 계란을 하나 꺼내 전자렌지에 돌려먹는 그맛이 잠깐 떠오르더군요.

하지만 이내 탁자앞에 놓여지는 끓인라면에 그 생각은 바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휴가 갔을 때 먹어보고 처음이네."

왠지 감탄 스러웠다고 할까요?

"박병장님 휴가 언제 다녀오셨습니까?"

"나?"

생각을 해보니 꽤 오래된 듯...전방에 올라오기 한 3개월 전이었으니..

"반년정도 됐나?"

"그렇습니까? 얼마 안되셨지 말입니다."

"그렇긴하지..."

라면을 한젓가락 솥에서 퍼올리며, 라면솥과 함께 가져온 나무 젓가락과 사기 그릇이 보고 있자니 참

신기해 보이기도 하더군요.

"거의 확실한 소문으로 박병장님 휴가 가실거라고 하던데 말입니다."

"쉿.."

저는 급히 심상병에게 주위에 눈짓하며, 그를 조용히 시킬수 밖에 없었죠.

다행히 주위 사람들은 라면 먹기에 바빠서 못 들은 모양이었습니다.

"야...안그래도 휴가증 모자를텐데, 딴 중대 놈이 가져가면 짜증나지. 일단 가는 날까지는 조용하자.

난 죄인이야 여기선..."

"크크크. 그렇겠지 말입니다."

능청스럽게 웃어제끼는 심상병.

한동안 저를 포함해 6명은 라면먹기에 바빴습니다.

그러다 젓가락을 넣고 솥을 휘휘 저어도 건더기가 잘 걸리지 않을 때쯤 저랑 같이 근무를 섰던 이등병

부사수가 쭈뼛거리며 말을 걸어오더군요.

"박병장님 아까 근무설 때 말입니다."

"아까?"

"예 근무끝나기 전에 말입니다."

"그런데?"

이등병은 무척 신경 쓰이는 얼굴로 근무지에서의 내 행동과 내무실로 들어와서의 내 말들을 계속 신경쓰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야야. 별것아냐. 니 놀려줄려고 그런거니깐. 라면이나 더 먹어라."

물론 남아있는 것이 없는 상태서 그런말은 설득력이 없었지만, 이등병이 벌써부터 그런것에 집중하면

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 저는 얼버무리기로 했던 거죠.

그렇게 라면을 먹고 부사수 셋과 그중 짬밥이 안되는 사수가 솥과 그릇을 들고 취사장 저 안쪽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저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끼익'

취사장 문소리가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거슬리는 소리를 내더군요.

평소 아무렇지도 않았을 그런 것들이 말입니다.

"박병장님."

"왜?"

"담배 한대 피시지 말입니다."

심상병이 담배한개피를 건네주길래,

"야 나 담배 안 핀다."

"아 그렇습니까? 의왼데 말입니다."

"뭐가 의외야."

살짝 입가가 올라가며 웃음이란게 지어지더군요.

그렇게 한동안 말이 없이 곤충소리며 물흐르는 소리며 들으며 내무실로 향해 걷자니 문득 좀전에 무서운

표정으로 말을 걸어오던 이등병의 표정이 떠오르더군요.

"저기 박병장님."

"응?"

"혹시 지금 많이 피곤하신거 아니시면, 저랑 잠깐 말씀 좀 나누시지 말입니다."

"......."

뭔가 할말이 있구나란 생각을 그의 표정에서 바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무실 막사 뒤쪽터에 빨래를 널어두는 곳이 있었는데, 심상병의 안내로 저는 그곳으로 갈 수 있었죠.

대충 자리를 잡고 앉자, 심상병이 담배를 끄고 제게 말을 하더군요.

"박병장님 아까 근무지에서 보신거....저는 알고 있습니다."

"뭐?"

"아까 김병장님이 웃어 제꼈지만, 그 분이야 원래 그런거 안 믿는 분이시니 그려러니 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뭔소리야?"

"여기 의외로 이런저런 소문 많습니다."

"........."

"전방 투입전 자살자 교육 동영상 생각나시지 말입니다."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죠.

전방 투입 2개월 전부턴 여러가지 교육을 하는데, 그 일과 중 하나였던 것은 자살하지 말라는 차원에서

행해지는 자살자 해부 동영상을 시청하는데 절대 잊을 수 없는 강렬한 동영상이었죠.

"그게 말입니다. 우리가 서는 2초에서 일어난 자살자라는 겁니다."

"정말이냐?"

"1중대장님이 그러셨으니 거의 확실하겠지 말입니다."

"........."

1중대장은 제가 알기론 1년전에 이쪽으로 부임해 온 사람이라 여기 전방을 모를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 입대도 하기 전 온 사람인데 꼰대가 어떻게 알고 있지?"

"박병장님 1중대장님 사단서 정보장교 하다 오신거 모르십니까?"

"정보? 아! 육사 출신이지..."

머리가 빠르게 회전되더군요.

사단 정보 장교면 여기저기서 일어난 일들 거의 파악하고 있으리라 생각되었습니다.

"그게 어쨌든...내일 작업 하면서 함 안내해 드리지 말입니다."

"뭘?"

"자살자가 와이어 매단데 말입니다."

"야 씨발.됐어."

저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오더군요.

"저도 알고 나서 박병장님과 똑같은 맘이었지 말입니다."

"그래 할말이 그거냐?"

"그건 아니지 말입니다."

심상병은 건빵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어디서 가져온건지 '자유시간'을 제게 하나 건네주더군요.

"전역한 저희 소대 고참들도 그랬고, 1중대 아저씨들도 그러고 요즘 여기저기서 이상한 이야기 많이

들리지 말입니다."

"이상한 이야기?"

"오늘 박병장님이 보신 것 같은거 말입니다."

"나 말고도?"

"예. 1중대에 제 동기가 한 명 있는데 말입니다. 얼마전에 근무서다가 사하나(41)쪽 계단으로 올라가는

귀신을 봤다고 하지 말입니다."

"뭔 귀신?"

"동기 말로는.....우워 이것 좀 보시지 말입니다."

하면서 걷어 올린 팔에 소름이 돋는 것을 보여주더군요.

"그 때 근무 끝나고 짬장서 만나서 이야기 했는데 말입니다. 닭살 돋아 뒤지는 줄 알았습니다."

"어떤 놈들이었다는데?"

"박병장님 훈련소에서 입었던 민무늬 전투복 아시지 말입니다."

"알지."

"그 전투복 입은 셋이 어디서 나타난건지 계단으로 올라가고 있더라는 겁니다."

"108계단?"

"108계단? 그렇게 부릅니까?"

"몰라 고참들도 그렇게 불렀었어. 108갠지 세 보지는 않았지..."

그당시 급경사의 계단이라 힘이들어 붙였겠거니 생각했습니다.

"하여튼 그 계단으로 3명이 올라가는데, 보는 순간 직감했답니다. 귀신이다라고..."

거기까지 들으니 소름이 스윽 돋기 시작하더군요.

'발목은...?'

이라는 생각도 들고...

"저도 듣고는 새끼야 뻥치지마 하고 말라 그랬는데...솔직히 걔 근무서는 스타일도 모르겠고...지 말로는

절대 졸면서 본게 아니라는데, 어떻게 부사수는 못 볼 수 있는 건지..."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저도 의아한게...항상 고참들이 말해주던 귀신이야기도 부사수나 사수 둘 중 하나는

꼭 못 봤다거나 하는 상황이 항상 따라다녔거든요.

그래서...

"니 동기 졸다 가위 눌린거 아니냐?"

"그런데 그건 아닌거 같습니다....걔가 본게 어떤 식이였냐면..."

 


근무라는게 굉장히 지겨울때가 있죠.

뭐 항상 지겨웠지만....

그렇게 지루한 시간 짜증나서 기지개를 펴다보니, 오른쪽 사하나 1초 옆 계단으로 누군가가 올라가는

모양이 보이더랍니다.

'사하나 근무잔가?'

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는데 갑자기 눈알이 커지면서 자기도 모르게 빠르게 고개가 다시

돌아가더랍니다.
 

 

'뭐야? 민무늬잖아...왜 세명이지...'

순간 당황스러워서 젤 먼저 든 생각은 대대순찰자를 여기서 놓쳤나 하는 생각과 곧이어 전신이 쏴 하는

소리가 들릴정도로 소름이 머리끝까지 타고 올라오더랍니다.

"야!! 야...야투경 줘봐!"

입초근무를 서고 있는 부사수한테 버럭 소리를 지를 수 밖에 없었다네요.

"야..야투경 말입니까?"

"씨발 빨리 줘!"

부사수는 상당히 당황해 하며, 목에 걸고 있던 야투경을 벗어 동기에게로 건네주었다네요.

건네 받자 마자 아직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 그 셋을 바라보는데,

"으...으...."

자세히 볼려고 해도 거리가 멀어 자세히 볼 순 없었지만, 그 셋은....

 


"다리가 없이 그냥 몸통만 둥둥 떠서 올라갔다고 했지 말입니다."

"지랄한다..."

"저도 믿지는 않습니다. 여튼 야투경으로 보니 야투경으로는 안 보이고, 그냥 보면 보이고 아주

미쳐버리겠다고 했지 말입니다."

"부사수는?"

"부사수는 이등병 놈이라 뭔일인가 쫄아가지고 초소 안에만 있었다고 했지 말입니다. 그래서 동기가 야

너도 한 번 봐봐 라고 밖으로 나오게 하니깐 이미 계단 저 위로 사라진건지 꺼진건지....없더랍니다."

"........"

"말하는 꼴로 봐서 거짓말 같지고 않고, 연대에서 대기할때 몇일 지내보니 그런걸로 거짓말 할 놈은

아니지 말입니다."

뭐라고 해야 할지 참....

그때는 저도 제가 근무서며 겪었던 일들 중 처음 맛보는 것이어서...

슬금슬금 돋은 닭살이 전혀 사그러들지 않더라고요.

"걔만 그런게 아니지 말입니다."

"뭐야? 또 있어?"

"박병장님 근무서신 그 2초도 말입니다. 애들이 이상한거 많이 본다고 소문이 자자 하지 말입니다.

갑자기 밀조 이동 할때가 생각나더군요.

"야 그래서 2초에선 둘다 동초서는 거냐?"

"보셨습니까? 그렇지 말입니다."

그 2초는 날개진지도 없고, 특별한 엄폐물도 없어 보이는데...

밀조이동으로 그쪽으로 갈땐 사수 부사수 초소 밖에서 근무를 서고 있었던 겁니다.

두 근무자가 사이가 좋아 그런가 싶었는데, 사람들 딱 보면 분위기 파악되듯이 둘이 같이 즐겁에 뭘

이야기 할 사이는 아녀 보였거든요.

"아 씨발.....왜 이런 좆같은 일이..."

겨우 몇일 온건데 왜 이런일이 생기나 짜증이 확 나더군요.

지금이야 이렇게 쓰고 웃을 수도 있지만, 그당시엔 정말 죽을맛이란게 그런거라 생각했습니다.

읽으시는 분들이야 분위기를 어떻게 전달 받을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철책이란 곳이 정말 적막하고

안개라도 짙게 드리워지면 별 오만가지 상상이 되곤 하죠.

그 적막함 속에서 이상한 소리라도 들리면 괜히 소름이 돋고, 같이 있는 부사수도 어깨에 손 올려보면

사람이 아닐수도 있다라는 공포심이 무럭무럭 자라나곤 한답니다.

물론 그런 공포감때문에 헛것을 본게 아니냐 라고 반문 할 수도 있지만...

한마디로 말하자면 '아니다' 라고 대답하고 싶네요.

작업을 하다보면 지뢰 탄피를 보는 것은 허다하고 가끔은 유골도 나오곤 한답니다.

전쟁당시 수많은 군인들이 죽어 묻힌 곳이기에 분명 그럴수도 있다 생각은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자살이나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났던 이유가 아마 그런 지리적인 요건에 영향을 받아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요.

"근데 너는 본거 없냐?"

"저 말입니까?"

"있어?"

"........"

심상병은 주위를 스윽 살피더니 이내 말을 꺼내더군요.

"있지 말입니다. 저는 아니고 말입니다."

"누구?"

"박병장님 같이 근무선 이등병 있잖습니까?"

"최 머시기 였는데...걔?"

"예 최xx 이병 말입니다."

순간 머릿속에 취사장에서의 일이 휙 지나가더군요.

"그래서 그놈이 나한테 물어본건가? 진짜냐고..."

"그새끼 좀 이상한 놈입니다...저번에...."

약 한 달 정도 되었다고 했네요.

근무 로테이션상 사수와 부사수는 바뀌지 않게 되어 있는데, 심상병의 건의로 한동안 주간근무만 서다가

이번주가 되서 야간 근무에 투입되었다고 하네요.

"이등병한테는 어지간 하면 근무를 안 세우는데, 아시지 않습니까? 사람 없으면 그런게 어딨습니까?"

"그렇긴하지..."

"그래서 저놈 부소대장 전령으로 한 2주 다니면서 근무 파악시키고 바로 투입시켰지 말입니다. 그런데

하필 첫주 후반야에 저랑 걸렸지 말입니다."

"왜 재밌잖어. 이등병 데리고 노가리 풀다보면."

"저는 걔들 예기 별 관심도 없습니다. 사고나 안쳐주면 다행이지만 말입니다."

"여 심상병 많이 컸네. 내가 마지막으로 본게 너도 이등병이었어."

"저는 그래도 이젠 상병 아닙니까. 밥대우 좀 받아야지 말입니다."

"지랄한다 새끼 크크크."

"하여튼간에 첫 야간 투입이라 제가 다 긴장이 됐더란 말입니다. 근데 첫날 부터 아 정말....."

"뭔데?"

"후반야 두번째 밀조 시작하고 나서지 말입니다."

심상병의 말에 의하면 그 문제의 자살자 초소로 밀조 이동을 마치고 심상병이 입초 근무를 설 때 였답니다.

30분 입초 후 동초 근무를 서는 방식으로 여름에는 몰라도 겨울에는 동초가 너무 힘들어 자살자가 나오고

사수가 부사수를 동초에다 말뚝을 세워놓는 가혹행위가 잇따라 군단 전체 지침사항으로 내려온 근무

지침이었지요.

하여 한시간을 나누어 정각부터 30분까지는 사수, 30분 부터 정각까지는 부사수가 근무를 서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4시 좀 넘었길래 탄통이나 깔고 앉아 있자 하는 생각에 하이바 벗고 잠깐 벽에 기대고 있었지 말입니다.

근데...."

밖에서 누군가 대화하는 소리가 들리더랍니다.

바로 부사수의 목소리란것을 알 수 있었다고 했죠.

'이등병이 빠져가지고 노래를 쳐 부르네.'

라고 생각하고 한마디 할려고 일어설려고 마음을 먹는데, 막 밀조를 마치고 돌아와 앉았버린 후에 바로

일어나기가 귀찮아서 그냥 신경을 끌려고 했답니다.

그런데 갑자기 신경이 확 곤두서더랍니다.

'뭐지?'

라는 생각과 곤두선 신경이 밖에서 들리는 이등병의 목소리에 몰리더랍니다.

'노래가 아닌데....누구지..?'

라는 생각에 미치자 심상병은 후다닥 탄통을 박차고 일어나 하이바를 쓰고 총을 들고 정면을 응시했답니다.

'씨벌..지금 왠 순찰자가 오고 지랄이야...대대서 왔나?'

그렇게 근무를 제대로 서고 있었다라는 모양을 보여주기 위해 나름대로 에프엠 근무 자세를 취하려는데,

다시 한 번 신경이 밖에 있는 중얼거림에 쏠리더랍니다.

그리고 등에 흐르는 써늘함.

뭐가 있는 것처럼 정말 자신도 모르게 완전 반사적으로 뒤를 휙 돌아보게 되더랍니다.

그리고 시선은 몸통이 도는 것보다도 먼저 천정으로 먼저 향하게 되었다지요?

'.........'

자신은 신경쓰지 않는다고 그렇게 마음먹고 있던 터였답니다.

하지만, 그날만은 그렇게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었다네요.

여기는 사람이 죽은 초소다 라고 하는 것이요.

'니미.....'

순간 욱 하는 마음에 튀듯이 초소 밖으로 뛰었답니다.

도저히 못 있겠다라고 했지요.

그리고는 나오자 마자 거의 윽박에 가깝게 부사수를 다그쳤다고 했습니다.

"야 씨발 너 누구랑 이야기 한거야? 미쳤냐?"

"예?"

"뭐가 예야? 씨발 순찰자가 오면 바로 알려야지 어떤새끼랑 뭔 대화를 하고 있어! "

"대화 말입니까? 순찰자가 오는 것 같아서 수화 한 것 밖에는 없습니다....."

심상병은 답답했는지 어디에서 순찰자가 오는지 그 부사수가 보고 있던 그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지요.

"야이 새끼야 어디가 순찰자야."

"어?"

"어어? 이새끼가."

자기도 모르게 손이 올라갈려던 찰나였다네요.

"심상병님 저기 안 보이십니까?"

"뭐?"

부사수가 손가락으로 가르킨 방향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고 하네요.

"이게 미쳤나 있긴 뭐가 있어."

다시 부사수를 바라보며 성질이 날대로 나는 중이었는데, 마주친 부사수의 눈빛을 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소름이 돋고 겁이 확 나더랍니다.

정말 안 보이냐는 식의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하는 부사수.

"정말 안 보이십니까?"

손가락은 그 방향 그대로 한 채로 말이죠.

 

 

"그날 진짜 사람 쏠 것 같은 기분이었지 말입니다."

".........."

"그새끼 평소에 안 그런 놈이지 말입니다. 근데 희안하게 근무만 들어갔다 하면 미치는 건지....그래서

소대장한테 말해서 근무 뺐는데, 이번주부터 재 투입 된거지 말입니다."

심상병의 표정을 보니 어느새 담배를 문건지 근심이 참 짙어 보이더군요.

"구라는 아닌 모양인갑네."

"후.....구라라면 좋겠지 말입니다. 근데 더 웃긴건 뭔지 아십니까?"

뭔가 사연이 더 있다는 표정이었습니다.

그 때쯤 되니 저도 모르게 등뒤를 자꾸 힐끗힐끗 보게 되더라고요.

등에 끊임없이 소름이 흐르고 있었으니까요.

 

 



    • 글자 크기
모텔에서 생긴일[흡입력 甲] (by 변에서온그대) 검은 커튼이 쳐진 고시원 4 (퇴실)완결 (by 익명_9b2b49)
댓글 2

댓글 달기


이전 1 2 3 4 5 6 7 8 9 10 ... 37다음
첨부 (0)